플로렌스 퓨 Florence Pugh
<작은 아씨들(Little Women)>(2019, 그레타 거윅)
<미드소마(Midsommar)>(2019, 아리 에스터)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2016, 윌리엄 올드로이드)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종 그런 캐릭터가 있다, 연기하는 배우와 닮아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레이디버드> 속 시얼샤 로넌의 크리스틴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티모시 샬라메의 엘리오가 그랬다. 그리고 두 배우가 출연한 <작은 아씨들>(2019)에서는, 동시대를 다루고 있지 않음에도, 모두가 그랬다. 감독의 각색과, 그에 대한 배우들의 해석, 서로의 유대감과 호흡은, 한 여성woman 조만의 것이 아니라, 네 여성women 예술가(그리고 마미)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조가 통상적인 이미지와 닮아 있으면서, 감독과 배우의 색이 더해져 살아났다면, 에이미는 ‘재해석’이 제대로 빛을 발한 캐릭터다. 감정에 솔직하고 사랑에 똑똑한,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 머물러 후회하기보단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 예술가. 줄곧 가려졌던 이 면면의 어느 정도는, 배우에게서 나왔을 것이라 짐작한다. 에이미의 옷을 입은 플로렌스 퓨는, 자유자재로 철없이 사랑스러워지거나, 귀엽게 미워지거나, 놀랍도록 현명해졌다. 그레타 거윅의 조가 시얼샤 로넌이어야만 했듯, 그의 에이미는 플로렌스 퓨여야만 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넷 모두 ‘과거’와 ‘현재’의 상태나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역시 티 나게 다른 것은 에이미 마치다. 작품 편집상 ‘현재’ 유럽에 있는 에이미가 먼저 등장한다. 원작을 기억하는 관객에겐 약간 낯설다. 완벽하게 화려하고 단정한 의상, 야무지게 다문 입, 안정적으로 가라앉은 목소리, 곧은 자세. 그리고 그늘. 로리를 목격하자, 다른 모습이 튀어나온다.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차에서 뛰어내려 달려가 퍽 하고 안긴다. 얼굴 전체가 들떠 잔뜩 확장된 채다. 단순한 반가움이 아니다. 동경, 애정, 온갖 종류의 설렘이 담겼다. 타고난 성격과, 로리를 향한 감정이 드러나는 씬이다.
배우들 모두, 감정을 작품 톤에 맞도록, 순수하고 자연스럽고 은근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꽤 자주 웃음이 푹 하고 터진다. 로리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와중, 그를 처음 본 에이미의 몽롱한 눈과 애써 조신한 미소라니. 별 것 없는 대사, ‘나는 에이미야’가 몹시 귀엽고 웃기다. ‘과거’의 에이미는, 원작 독자가 기억하는 형태에 가깝게 묘사된다. 보고만 있어도 시끄럽다. 조가 터프하고 굵직하게 시끄럽다면, 에이미는 아기자기하고 산만하게 시끄럽다. 몸을 배배 꼬며 거울을 보고, 조를 쿡 찌르고, 조가 메그의 머리를 태우자 입을 쩍 벌리고 대놓고 재미있어하며 ‘까까까’ 하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과거’의 에이미를 플로렌스 퓨는, 항상 최선을 다해 그 순간을 즐기며, 더 즐거운 미래를 꿈꾸는 느낌으로 연기한다. 원하는 것, 꿈꾸는 것,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을 바로바로 표현한다. 항상 관심을 바라며, 욕심껏 중심에 선다. 말을 할 때는 턱을 들고 고개를 흔들거나 목을 쭉 빼며, 감정이나 상황이 강한 경우 대단한 목청으로 거의 소리 지르듯 뱉는다. 웃을 때는 입을 크게 벌리고, 울 때는 목놓아 운다. 선생에게 맞고 엉엉 ‘못난이’ 얼굴을 하고 울다가도, 금방 괜찮아져서는 책 속의 그림들을 보고 신나 한다. 엄마가 전쟁에서 다친 아빠를 간호하러 멀리 떠나 있는 상황에서도, 로리에게 선물할 발 모양을 본뜨다, 안 빠진다며 쿵쿵거리고 돌아다닌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조에게 지시를 내리며 팝콘을 주워 먹다, 아빠가 깜짝 등장하자 팝콘을 (정말 만화에서처럼) 내던지며 입을 쫙 벌려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무 생각 없고 철없어’ 보이는 에이미의, 이런 티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밝은 에너지는, 화면의 한구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살짝 얄미우면서도 못 말리게 귀엽다.
그랬던 에이미가, 서서히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는 모먼트가 있다. 고모 집에 홀로 잠깐 머물던 시기, 그림을 그리던 그를 고모가 부른다. 긴장해 커다랗게 굳은 눈으로 눈치를 보다가, 칭찬 뉘앙스의 말에 금방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에 웃음기가 담긴다. 그런데, ‘네가 네 가족의 희망이야, 결혼을 잘해야 돼’라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눈은 여전히 동그랗게 웃고 있는데, 입부터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진다.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에이미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다 방으로 들어간다.
뭣도 모르던 그때, 현실감 없이 우러러봤던 로리 왕자님. 세상을 알게 된 지금은, 옛날 순수했던 로맨틱의 추억에 불과한데도, 여전히 마음이 가는 존재다. 에이미는 방황하는 로리에게 날카롭고 단호하게, 호통친다. 화보단 속상함이다. 여전히 설레는 마음과 원망, 걱정이 뒤섞였다. 입이 자꾸, 울음을 참느라 꾹 다물리고 쳐진다.
이처럼 다른 이가 된 듯 성장하는 사람도 있겠다. 조를 남자애 같다고 흉보고,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던 ‘소녀’ 에이미는, 날카롭고 현명한 말로 로리를 가르쳐 감동시켜버린다. 똑같이 유럽을 여행하고도 성장의 갭이 그토록 다른 까닭은, 로리가 실연에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에이미가 가난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돈을 벌 방법이 없고, 벌어도 남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너무나 깨달아 버렸다. 깔끔하게 실용적인 동작으로 그림과 화구를 정리하며, 논리적이고 냉정하고, 또 무심한 투로 말을 늘어놓는다. 마무리 즘엔 감정이 격양되는지 울음이 살짝 비치지만, 금방 진정한다. 처음엔 장난스럽게 받아치던 로리의 눈이 깨달음- 두 가지: 에이미와 본인이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에 대한, 에이미를 향한 감정에 대한- 으로 진지해진다. 기분 좋은 긴장으로 들뜬 에이미의 시선은 로리가 아닌 문 밖을 향해 있다. 와중 로리의 신경은 점점 더, 에이미에게 집중된다. 아름답다는 말에, 옛날의 그 설레는 뺨이 잠깐 돌아오지만, 이내 몸을 돌려 나간다. 이 작품의 수많은 명장면 중 하나다.
로리의 초상화를 그리는 에이미는, 꼭 그를 떠나보내는 중인 것 같다. 깨달은 이후, 로리는 내내 에이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지만, 에이미의 시선은 그림이나 땅에 가 있어,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알아채지 못한다. 무심한 척 던지는 핀잔에는 정과 거리감이 함께 묻어난다. 그림을 건네고 난 얼굴엔 아련한 긴장이 어린다. 도구를 놓은 손을, 어색한 듯 맞잡고 있다. 어딘지 어색한 대화가 오가다, 로리가 간접적인 언어로 결혼을 제안한다. 에이미로선 몇 년을 짝사랑해 왔던 상대이니,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눈이 커다래지고 낯빛이 상기되며 입꼬리가 내려간다. 어렸을 때처럼 엉엉 울지는 않는다. 진정을 위해 손을 빠르게 올리고, 입을 꾹 다물고, 몸을 옆으로 돌린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화와 상처를 드러낸다. 참지 못해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솔직한 감정과 생각이 상대에게 전해지도록 화낼 줄 아는, ‘어른’ 에이미의 장면이다. 플로렌스 퓨는 인물의 속마음과 성숙한 내면을, 로리도 관객도 진지하게 알아챌 수 있게 한다. 조의 것을 다 빼앗는 듯 보였으나, 어쩌면 에이미로선 항상 조의 대역이 되는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에이미는 항상,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고민은 짧게, 결정은 확실하게 한다. ‘최고가 되던지 안 하겠다’며 그림을 포기했던 그다. 프레드 본의 청혼을 거절하고 확신에 차 들뜬 목소리로 로리를 찾는다. 그가 런던으로 갔다는 말에, 입술이 초조하게 움직이고, 눈이 멍한 혼란을 입는다. 그러나, 후회가 묻어나진 않는다. 더듬으며 내보내는 문장의 끝에, 흔들림 없는 눈으로 고모를 똑바로 본다. 감정에 솔직하고,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에이미. 자신을 사랑할 줄 알기에,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법을 아는. 한 번 결론을 내리면,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거나 헷갈려하는 일은 없다. 집에 돌아와 잔뜩 긴장해 있다가, 조가 애써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자 금방 울먹이며 털어놓는다. 하나를 매듭짓고, 금방 다음으로 넘어가는, 에이미 특유의 정서의 흐름이다.
오 이 활기찬 감정의 에너지. <미드소마>(2019)에서 그는, 이를 어둡고, 우울하고, 폭발적인 방향으로 활용한다. 캐릭터가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방법과 정도는 각기 다르다. 대니의 경우, 타고난 또 키워온 감정의 순도가 높은데, 최근에 들이닥친 상황에 ‘부정적인’ 쪽이 자꾸 자극되어, 숨기려고 애써도 다 드러난다. 플로렌스 퓨 본래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낮은 편인데도, 자주 울어 잠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두운 방, 애인 크리스티앙과 통화하는 대니의 얼굴이 보인다. 목소리는 나직하고 애써 차분하며, 울먹임을 숨기느라 자주 잠긴다. 대화에 위화감이 묻어난다. 감정은 대사가 아니라 눈물이 고인 눈에 담겨 있다. 단어 사이의 머뭇거림과 눈 언저리의 긴장으로 플로렌스 퓨는, 인물의 심리는 물론 관계의 상태마저 암시한다. 관객은 음악 없이 어두운 조명 아래 굴러가는 그의 눈동자에 집중하며, 마음을 졸이기 시작한다. 다음 통화 상대는 친구다. 집안을 돌아다니고 손짓도 섞어가며, 힘이 실린 목소리로 빠르고 분명하게 말한다. 불안한 상태지만, 숨길 필요가 없음에서 오는-일종의 편안함도 존재한다. 이번 카메라는 전체적인 움직임을 담는다. 굳이 클로즈업을 하지 않아도, 막힘없이 나오는 대사 자체에 감정과 속마음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다음 통화에서는, “No..“라는 울부짖음만이 반복된다. 허스키하게 잠긴 소리로 점점 빠르게 내지르다 울음을 터트린다. 상대의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연기할 겨를도 없는- 충격과 절망 같은 것들이 뒤섞여 무너져 내리는 사람의 소리다.
이후 등장하는 대니는, 멍하고 ‘불안정하게 안정’되어 있다. 크리스티앙에게 의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로부터 오는 안정보다, 버림받을까 걱정하고 눈치 보며 생기는 불안이 더 크다. 사실 대니는, 감정의 에너지만큼 의지의 에너지도 강한 인물이다. 항상 차분하게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현재의 상태와 감정을 말한다. 그런 그를 이상한 사람, 불편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 주변 인물들이며, 대니는 그에 맞춰 점점 더 솔직한 감정을 억누른다. 괜히 튀지 않으려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애써 즐거운 척한다. 이성적으로 시도하던 대화가 튕겨 나와도 본인이 사과하며, 조용히 내키지 않는 놀이를 피하려다 ‘불편한 존재’가 돼버려도 불편함과 함께 존재를 기꺼이 지운다.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은 상태다. 사방에서 신경 써 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다.
펠레와 대화하던 중 ‘사건’이 언급되자, 눈에서 동그란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입이 일그러진다. 머리가 알아채기 전에 몸이 반응한다. 환각 상태로 멍하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상체를 기울여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얼굴이 벌게지며 구겨진다. ‘터지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리며 힘을 준다. 배경은 푸르게 화사한데, 심장은 새카맣게 쿵쿵 울린다. 자꾸 억누를수록, 기습적으로 튀어나오는 반동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제 괜찮다고 안심한 바로 그 순간, 마음 깊은 곳부터 회오리를 일으키는 어둠을 플로렌스 퓨는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보여주면서, 대니 개인만의 형태를 지닌 감정임을 잊지 않았다.
감정이 올라오지 않을 때, 대니의 눈엔 텅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호르가의 낯선 환경과 경험을 만나고, 솔직하게 감정을 입으며 채워진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호기심, 점차 공포와 불안, 결국엔 ‘일종의’ 치유의 에너지로.
두 노인이 떨어지기 직전, 대니는 어떤 것을 예감하듯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마구 몰아쉰다. 첫 번째 낙하와 동시에 크리스티앙의 팔을 잡고 입을 가리지만, 곧 진정한다. 입과 눈을 멍하게 벌린 채, 다음에 일어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최면에 걸린 것 같기도 한데- 감정을 숨기는 것이 습관화되어 보이는 반응 같다. 순간이 지나가자 울음을 터트린다. 흐느끼며 걸어가다 홀로 멈추어 상체를 굽히고, 토해내듯 뱉으며 주저앉는다. 안에 있던 무언가가 같이 터져 나온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울고, 혼자 괴로워하고, 혼자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에 익숙했던 대니는, 패닉 하고 흥분하는 코니와 태연한 크리스티앙을 지켜보며, 또 혼자 ‘예민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맞추려고 애쓰지 않고, 유일한 ‘내 편’이라고 여겼던 남자를 비로소 객관적으로 낯설게 보기 시작한다. 플로렌스 퓨는 애써,가 아니라 정말로 차분한 톤, 눈물로 확장된 대신 분노로 좁아진 시선, 멍해서 둔한 것이 아니라 안정되어 느린 걸음걸이와 몸짓, 등으로 변화를 드러낸다. 다른 종류의 ‘낯설고 적나라한’ 공포와 불안을 겪으며, 감정과 상태를 직시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점점 감정을 주춤 삼키거나 뒤로 물리지 않고, 바로 표출해버릴 수 있게 된다.
집단 섹스 장면을 본 대니는 곧바로 반응한다. 뒤돌아 울음을 내뱉으며 구역질을 하고, 짧게 비명을 내지르며 숨차 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이어지는 단체 오열 씬이다. 서럽게 우는 대니의 얼굴이, 인상 깊었다. 초롱초롱한 눈에서 눈물이 조용히 예쁘게 떨어지는 게 아니다. 꼬리가 쭉 내려간 채 거의 감고 있다. 역시 쭉 내려간 입에서는 흐어어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얼굴 근육이 유자 모양으로 온통 쳐지고 구겨진 -어떻게 보이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 그 강렬함은 플로렌스 퓨만의 것이었다.
호르가에서의 사건들은 비유상으로 관계를 끊는 과정, 서사에 따르면 치유지만, 점점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도 배우도 어느 정도 의도한 바라고 생각된다, 이건 어쨌든 공포 영화니까. 환한 빛 속에서 비슷한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을 한 집단이 주는 으스스함이, 찌부러진 시체의 모양에서 오는 단순한 공포보다 더했다. 과한 꽃장식을 두르고 입꼬리를 축 내린 채 울먹이다, 결국 맹하게 차례차례 입술을 씨익 올리는 대니의 모습은 소름 돋게 아름다웠다.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 점차 운명을 받아들이듯 가라앉는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환하고 거대한 배경 속에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좀 재미있다. 내가 처음 작품 속에서 본 플로렌스 퓨가, <미드소마> 속 대니였다는 것이. <레이디 맥베스>에서 <리틀 드러머 걸>로 이어진 그의 명성을 알고는 있었으나, 배우보단 영화 자체가 궁금했었다. 리뷰에도 썼지만- 결과적으로, <미드소마>는 내 영화 플레이리스트에 보관되지 못했다. 허나 플로렌스 퓨는 두고두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레이디 맥베스>(2016)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플로렌스 퓨의 눈빛은 곧고 힘 있다. 힘이 빠져 있을 때마저 그렇다. 꿰뚫어 보는 종류는 아니고-사물을 가장 정직한 시선으로 목격하는 것 같다. 감독들도 이 얼굴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느끼고, 활용한다. 조용하고 서늘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는 카메라, 그 중심에는 결국 캐서린의 얼굴이 있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작품의 목적이 아니다. 살기 위해 시작한 살인은,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계속된다. 그의 원동력은 통제 불가한 광기가 아니라, 분명한 의지와 목적이다. 동기는 감정이지만, 과정은 매우 이성적이며, 윤리와는 관계없는 본인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 그 행동을 전부 변호할 수는 없기에 더, 캐서린은 캐릭터로서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뚜렷한 욕망으로 단호하게 빛나는 눈은, 어떤 비난이나 연민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관객이 작품의 배경과 캐서린을 탐색할 때, 캐서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탐색한다. 그가 저택 사람들을 향해 긴장된 미소를 보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는 건, 바로 초반뿐이다. 응접실 소파에 앉아서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캐서린은 존다. 갇혀 있는 상황이 지루해서다. 졸고, ‘father-in-law’에게 말대답을 하고, 노려보고, 남편을 비웃어도, 응접실 소파에서 맨발로 자고 있어도, 이어질 전개에 걱정보다 흥미가 붙는 까닭은, 플로렌스 퓨가, 만만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어서다.
꾹 다물면 꼬리가 내려가는 입, 노려보는 듯 진한 눈썹과 눈빛. 꼿꼿한 자세, 플로렌스 퓨의 신체는 화면의 중심을 당당히 차지한다. 낮고 분명한 톤과 단단한 말투, 단조롭고 투박한 억양, 플로렌스 퓨의 목소리는 고막을 가장 효과적인 각도로 타격한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거나, 껄껄 웃고 고개를 베개에 푹 묻는 자연스러운 모먼트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작품 속 시대에 완전히 녹아들어, 독보적인 매력을 더한다. (에이미가 깔깔 웃는 모습이 생각난다. 어떻게 플로렌스 퓨는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하게 현실적이고 맛깔나는 소리를 내는 걸까.)
안나에게 폭력을 가하는 하인들을 목격한 캐서린은, 낮고, 차분하고, 날카로운 목소리, 완벽한 권위가 묻어나는 태도로 명령하고, 호통친다. 무겁게 발을 옮기다, 벽을 보고 담배를 빠는 세바스찬에 시선이 멎는다. 완전히 의식적으로 말하고 걷던 방금 전과 달리, 눈가가 미세하게 풀어지고 말투에 힘이 빠지며, 무의식 중에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부터,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억누르면서도 확실하게 대사를 마무리 짓고 나온 캐서린은, 이상하게 들뜨고 태연한, 간드러지는 말투로 안나에게 세바스찬의 이름을 묻는다.
관객이 캐서린에게 거리를 두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안나를 대하는 태도다. 폭력을 당하는 안나를 ‘구해’줬지만,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이나 연민이 동기는 아니다. 상대의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도구’로 여기며, 정확히 ‘필요한 정도로 못되게’ 군다. 플로렌스 퓨의 무신경하게 안정된 눈과, 나오미 아키의 불안으로 동그래진 눈이 대조되며, 충실하게 복종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아온 안나와, 살기 위해 든 칼로 방해물을 모조리 베기로 결정한 캐서린의 관계가 꼬이리란 암시가 된다.
세바스찬과 밤을 보낸 후부터, 여전히 태연한 캐서린의 얼굴엔 지루함 대신 즐거움이 묻어난다. 레스터가 돌아오자, 술에 취해 그 고리타분한 엄격함과 둔함을 조용히 재미있어하며 자유롭게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이때 관객의 긴장은, 안나의 안위 때문에 생긴다. 레스터가 안나에게 캐묻는 동안,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 의자에 풀어져 기대앉아,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떠 사선으로 흘기는 캐서린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끝이 없는 당당함과 영악함. 그 태도 때문에 긴장보다는 흥미가 끓어오른다. 일단 적응해보려 노력은 하지만 원하는 것은 참지 않고, 들키지 않게 노력은 하지만 부끄러워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는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 대신, 꼿꼿이 노려보거나 눈을 내리깐다. 이제 가만히 앉아 졸던 자세로,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골몰한다. 살아남는 법을 알게 된 캐서린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다.
본인이 죽인 테디를, 다른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지키며, 꼼짝 않고 앉아서, 소리 없이 훌쩍이는 캐서린의 속이 궁금했다. 죄책감과 슬픔은 어느 정도 진심일까, 완전한 연기일까. 사실 캐서린이 타인과 어떤 욕망이 배제된 공감/유대를 보이는 유일한 장면은, 테디와 풀밭에서 대화를 할 때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밀어냈던 손을 잡아 준다. 이때 플로렌스 퓨는 감정의 동요를 드라마틱하게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이후 떠나겠다는 세바스찬을 말릴 때 다급하게 울먹이는 뺨을 보면, 캐서린의 세 번째 살인을, 어느 정도 ‘이해’(공감이 아니라 단순히 사고 과정을 알 수 있다는 뜻)할 수 있다.
결국 참지 못한 세바스찬은 울며 폭로하는데, 그는 씬의 주인공이 아니다. 카메라는 그것을 듣는 캐서린의 표정 변화를 담는다. 별로 변화,라고 할 것도 없다- 움직임 없이 똑바로 상대를 노려보다, 결정을 내리듯 짧게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노려본다. 이번엔 턱과 함께 사선으로 내렸다가, 올리며, 차갑고 정확하게 말한다, “He’s lying.” 이를 악물고 거짓말을 시작한다. 사이에 잠깐, 세바스찬을 향한 눈길이 아련해지는 모먼트가 있다. 미안함이나 후회보다는, 사랑의 배신에 대한 상처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캐서린은, 자신을 살아있게 하는 사랑을 따라 행동했고, 그것에 버림받자 살기 위해, 고민 없이 밀어냈다. 감히 내 마음을 의심하면 네 숨을 멎게 해 주겠어, 라는 경고를 지켰다.
대니와 에이미를 알고 있는 채로 본 캐서린은, 완벽히 똑똑한 연기의 결과물이었다. 그 잠재력의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플로렌스 퓨를 알지 못하는 채로, 그의 연기에 대한 기대치가 전혀 없는 채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정이 들지 않은 채로, <레이디 맥베스>를 봤으면 어땠을까. 아마 충격을 받고 당장 배우의 이름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금 무서워하게 됐을 것 같다.
홀로 정자세로 앉거나 서서, 입을 꾹 다물고 고민하거나 결정하듯 곰곰한 표정을 하고 있는, 혹은 상대의 말을 들으며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캐서린의 실루엣은, 자체로 매우 흥미롭다. 저 머릿속에서 무슨 계획들이 굴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택에 홀로 남은 캐서린은, 침대에 누워, 창가에 서서, 소파에 앉아, 여전히 허공을 노려본다. 눈빛이 점차 지치고 공허해진다. ‘약자’의 위치를 거부하고,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망설임 없이 제거해 나가는, 그러나 뻔한 ‘악마’가 되는 것 역시 거부하는. 어떤 행동/정서 패턴의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를, 또 그를 살아있게 하는 배우를 보는 것은,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
눈썹과 벌린 입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 몹시 여린데, 입을 꾹 다문 채 노려보듯 힘줘 살짝 올려 뜨면 서늘하게 강하다. 둥그렇고 시원스러운 실루엣에 어울리게, 매번 다른 모양을 그리며 굵직하고 곧게 뻗어나가는 감정의 에너지가 인상적인 배우 플로렌스 퓨. 그는 이미 처음부터,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연기에 자신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는 어김없이, 인물에 어울리는 종류의 에너지만을 골라 증폭시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