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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an 09. 2019

“A SIMPLE FAVOR”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A SIMPLE FAVOR)>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A SIMPLE FAVOR)>(2018, 감독: 폴 페이그)
Feat. <나를 찾아줘(Gone Girl)>(2014, 감독: 데이빗 핀처), <화차>(2012, 감독: 변영주)


*세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 SIMPLE FAVOR>(2018) 포스터.



“A SIMPLE FAVOR”

(영어에서 ‘Favor’라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부탁’으로도, ‘호의’로도 해석된다. 서로에 대한 ‘favor(호의)’로 시작된 관계, 에밀리의 ‘a simple favor(간단한 부탁)’과 스테파니의 ‘a simple favor(단순한 호의)’가 낳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이어지는 이야기, . ‘a simple favor’라는 구절은 에밀리의 말에서 따왔지만, 중의적 뉘앙스를 노리고 제목으로 썼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이미 <나를 찾아줘>와 <화차>를 경험한 관객들에게, ‘완벽해 보이는 여자의 실종과 그녀의 어두운 비밀’ 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연기를 잘 하게 된다고 했던가.(<시티 아일랜드>(2009, 감독: 레이몬드 드 펠리타, <최선의 삶>(2015, 임솔아))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며 살아온 여자의 인생을 옆 사람이 파헤치는 이야기다. 그러나 <화차>와도 <나를 찾아줘>와도 다르다. 일단 두 작품과 달리 남편의 시선이 아니라 그녀를 좋아하고 순수하게 부러워하는 친구 스테파니의 시선이다. 보다 객관적이고 대상화가 덜하다.



<A SIMPLE FAVOR>(2018)


스타일리시하다. 에밀리의 옷만이 아니다. 작품의 톤이 그렇다. 스릴러지만, 코미디다. 일단 한 번 웃겨 주고 나서 사건이 시작된다. 스테파니의 악의 없고 솔직한 동경과 에밀리의 쿨함은 상극으로 보이는 두 사람을 이어 준다. 두 여자가 만나면서 생기는 웃음은 신선하고 적절하다. 죽음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눈물이 떨어질 새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남편과 오빠의 죽음은 자신 탓이라며 눈물을 흘리는 스테파니에게, 에밀리는 ‘그래서 누가 더 보고 싶냐’고 묻는다. 에밀리이기에 가능한 대사고, 이 작품이기에 편하게 웃어버릴 수 있는 장면이다.
 


-에밀리

<A SIMPLE FAVOR>(2018)


남들 눈에 완벽하게만 보이는 에밀리는, 사실 말이 거칠고 제멋대로이며 빚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허나 그 자체로 완벽하다. 걸걸한 목소리로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욕을 뱉는 모습이 바로 그녀에게 빠져드는 포인트다. 작품은 에밀리를 최고로 매력적으로 그림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대상화하는 것을 피한다. 초반의 코미디 덕에 에밀리의 매력을 느낄 시간이 충분하다. 일단 좋아하게 만들고 나서 비밀을 캐내, 관객이 그녀를 악당으로 대상화하기보다는 에밀리라는 캐릭터 자체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처럼 소름끼치는 소시오패스로 느껴지지도, <화차>의 경선처럼 불쌍한 범죄자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녀는 살기 위해 남을 속였지만 삶 자체를 연기하지는 않는다. ‘에밀리’는 가명일지 몰라도, 그 이름으로 쌓아온 기억은 그녀 자신의 것이다. 에밀리는 그냥 에밀리다. 멋지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러나 그 방법을 잘못 터득한. 그래서 결국 죽지도 이기지도 않고 죗값을 치르며 잘 산다.


<A SIMPLE FAVOR>(2018)



-스테파니

<A SIMPLE FAVOR>(2018)


관객의 심장을 치는 건 에밀리의 몫이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은 스테파니에게 있다. 초반의 스테파니는 에밀리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시기하거나 뭘 빼앗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에밀리가 실종되었을 때도, 죽었을 때도,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한다. 건성으로 수사하는 경찰 대신 발로 뛰고 머리를 굴리며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런데 니키를 봐주다 보니 어쩌다가, 션을 위로하다 보니 어쩌다가 그녀의 자리를 꿈꾸게 되어 버린 것이다. 스테파니는 솔직하고 확실하다. 슬퍼할 땐 슬퍼하고, 즐거워할 땐 즐거워한다. 죄책감과 만족감 사이에서 애매하게 부유하는 상태를 길게 끌지 않고, 발랄하게 에밀리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에밀리에게 전화가 온다. 스테파니는 물론 놀라지만, 충격 받고 두려워하는 상태 또한 오래 유지시키지 않는다. 바로 그 에밀리가 가르쳐 준 깡에, 특유의 끈기와 꼼꼼함으로, 사건을 해결해버린다. 에밀리의 가장 큰 잘못은, 스테파니 같은 사람을 이용해 먹은 것이다.



<A SIMPLE FAVOR>(2018)




-에밀리와 스테파니

<A SIMPLE FAVOR>(2018)


에밀리와 만나고 그녀를 파헤치는 것이 어쩌면 스테파니에게는 그녀를 꽉 붙잡고 있던 죽은 남편과 오빠를 끊어내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 해야 돼.” 라는 에밀리의 말처럼, 두 사람의 죽음은 스테파니의 잘못이 아니다. 의심만으로 분노하고 이성을 잃은 남편 스스로의 잘못이다. 스테파니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지언정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She is a saint.)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보통 착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단순히 착한 사람에서 멋진 사람으로 변해간다. 에밀리를 이긴 스테파니가 멋진 집과 남편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는다. 연애도 하고 아들도 잘 키우며 자신의 방식으로 씩씩하게 살아간다. 에밀리 같은 여자였기에 스테파니를 위로해 줄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에밀리가 뱉는 ‘Brotherfucker’는 애칭이자 욕으로 코미디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션

<A SIMPLE FAVOR>(2018)


재미있는 건 에밀리의 남편 션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는 것이다. 외모나 사회적 지위도 빠지지 않고 분량이 적은 것도 아닌데, 이야기 구성상 역할이 그렇다. 션이 하는 것이라곤 걱정하고 슬퍼하다가 죽은 아내의 친구를 꼬시고 아내의 귀환에 벌벌 떨고 두 여자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감옥에 갈 뻔 했던 것뿐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스테파니와 에밀리다. 두 사람이 에밀리의 무덤에서 마티니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션 같은 남자 너나 가지라는 에밀리에게 스테파니는 자신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남편이란 심하게 말하면 잘생긴 제물일 따름이다. 물론 그 별 볼일 없는 남자를 연기하는 헨리 골딩 만큼은 매력적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결말

<A SIMPLE FAVOR>(2018) 티저 트레일러에서 캡쳐.


끝을 더 깔끔하게 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에밀리와 스테파니가 서로를 속고 속이고 결국 나름의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조금 늘어졌다. 깔끔한 결말을 내기 위한 깔끔하지 못한 전개랄까. 그치만 뭐 나름 괜찮았다. 이리저리 뻗치는 전개를 캐릭터의 매력이 붙들어놓았으니까. 마지막에 셋이 각자 잘 지내는, 특히 에밀리가 교도소에서 멋지게 농구하는 모습이 나와서 좋았다. 아니 그 모습이 작품 자체였다~는 건 과장이고. 잘 살아보려다 감옥에 가게 된 에밀리에게 마음이 쓰였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아니 그녀는 감옥에서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비록 멋진 수트를 입진 못하지만 말이다.



<A SIMPLE FAVO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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