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카 로스(Angelica Ross)
<American Horror Story: 1984>(FX)
<Pose>(FX) 시즌1, 2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뉴 시즌의 주연 배우 리스트가 공개됐다. 익숙하고 유명한 이름들 -사라 폴슨, 에반 피터스, 케시 베이츠, 릴리 레이브, 빌리 로드 등- 사이에 지난 시즌 합류한 안젤리카 로스도 보였다. <포즈>를 통해 이 배우의 능력과 매력에 단단히 당했던 나는 조용히 난리법석을 떨었다. 뭐, 굳이 캔디 페로시티를 모르더라도, 지난 시즌을 건너뛰지 않고 본 AHS 시청자라면, 이 ‘신인’ 배우의 연기력을 납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즌을 아홉 개 째 따라가다 보니, 플롯 유형에도 익숙해졌다. ‘1984’ 전반부는, 처음엔 평범한 피해자 같아 보였던 인물들이, 예상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리며, 각자의 비밀과 목적을 점차 드러냄에 따라, 상황이 꼬이고 뻗치는 전개다. 본인 말처럼 자비에의 게이 포르노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 리타, 아니 도나 체임버스도 꿍꿍이를 품고 있는 인물이다.
‘리타’는 ‘다섯 친구’가 레드우드에 도착해 새로이 만난 인물이지만, 현지인은 아니며, 그들과 함께 외부에서 고용된 직원이다. 초면부터 농담조로 말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쿨하게 다가온다. 셰프 버티와 유사한 정도로 무던하게 매력적이던 존재감은, 그가 캠프파이어에서 ‘미스터 징글스’ 스토리를 늘어놓으면서 한순간에 불어난다. 설명하는 투는 담백하나, 그 담백함이 문장을 잇는 예사롭지 않은 속도감, 팔짱을 끼고 한 손을 올려 담배를 든 채 꼿꼿하게 선 자세 등의 요소와 만나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공기를 압도한다. ‘리타’의 말을 끊으며 자비에가 담배를 빼앗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람들과 하나하나 똑바로 맞추는 눈 속에는 두려움보단 ‘확실히 알고 위험에 대처하자’는 실용적 생존이 엿보여 믿음이 간다. 유머러스한 말투와 눈웃음,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는 시원한 미소. 합리적인 태도와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친구들’은 물론 관객의 의심도 누그러뜨린다. 안젤리카 로스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무표정과 냉소적인 유머감각, 유창하게 흐르는 말투를 자연스럽게 ‘리타’의 것으로 가져왔다. 캐주얼한 쇼츠와 올린 머리는, 캐릭터와 어울린다. 홀로 의무실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몸을 흔드는 모습은 몹시도 어울린다.
미스터 징글스에게 공격 당했다며 달려와서도, 겁에 질려 패닉하는 대신 매우 단호하고 건조하게 곤두서있는 모양새다. 비밀을 알지 못하고 보던 당시에는 이 인물의 성격으로 보였으나, 후에 그의 과거가 등장하며 그 침착의 까닭을 다시 납득하게 됐다. 리타를 연기하는 도나 체임버스,를 연기하는 안젤리카 로스의 치밀함이다.
‘친구들’과 함께 레드우드에서 살아나가는 데 집중하는 듯 보였던 그는, 돌발행동을 해 브룩과 관객을 당황시킨다. 그러고 보니, 태연하게 키를 건네며 미소 짓는 얼굴 부터가 수상했다. 안젤리카 로스의 눈은, 반짝이는데 끝이 찍 올라가 있다. 입만 웃고 눈은 그대로 두면, 섬뜩하다. 정확한 동작으로 브룩의 목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고는,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모습을, 고개를 꺾어 빤히 내려다보며, 약올린다. ‘oh honey’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안젤리카 로스의 그루비한 말투를 거쳐 최고로 얄밉고 무서운 형태로 배출된다. 그의 연기는 인물의 ‘반전’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팔짱을 낀 채 손끝에 올린 담배, 안정적으로 짚은 짝다리. 끝에 덧붙이는 ‘아마도I think’의, 어이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며 장난기마저 밴 말투는, 인물의 가치관마저 슬쩍 드러낸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자세.
이후, ‘리타’ 아니, 심리학 박사 도나 체임버스가 레드우드에 오게 된 과정이 묘사된다. 호플 박사를 설득할 때는, 재수 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한 눈빛과 말투를 사용하면서도, 상대의 득을 암시하며 합리적인 ‘척’을 능숙하게 해낸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가끔 눈썹을 치켜올린다. 벤자민 릭터를 설득할 때는 조금 다르다. 말투는 더 단호하고, ‘진실한 감정’이라는 요소를 첨가한다. 상대를 이해하고 있음을 어필하며,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시키는 데에도 힘쓴다. 상체를 앞으로 굽혀 몸을 가까이해 시선을 맞춘다.
몬태나와 도나 모두 진짜 목적을 숨기고 레드우드에 왔다. 몬태나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있지만, 별로 그게 핵심은 아니다. 동기는 감정, 목표는 복수, 살인.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활활 끓어오르는 ‘광인’ 바이브다. 도나는, 목적이 정당하다면 과정에서 ‘중요치 않은’ 생명 몇쯤 날아가도 상관 없다고 여긴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행동으로 속내를 덮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더 무섭다. 그의 예사롭지 않은 ‘광기’는 폭발하는 대신 고요하고 서늘하게 드러난다. 덫에 걸린 브룩을 보며 ‘순수한’ 호기심을 드러낼 때. 벤자민에게 자신의 손을 만져 보라고 하며 ‘대를 위한 소의 희생’논리를 펼 때. 차분하고 논리적인 말투, 안경 뒤에서 차갑게 빛나는 눈 모두 소름돋는다. 벤자민이 겁을 줘도, 놀라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오히려 상대를 다시금 설득한다.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던 도나의 사연은, 이야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몇 년 전, 도나는 아버지의 ‘외도’ 현장에 뒤따라 들어갔다가, 난도질 당한 채 침대에 묶여 있는 여성을 발견한다. 소스라치며 벽에 붙어 있다가, 패닉해서도 눈을 질끈 감고 희생자를 도우려고 노력한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온다. 눈 앞의 상황을 아직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당사자를 마주쳐 버렸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복잡한 절망에 짓눌리는, 아니 어쩌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마, 가장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감정을 따르게 되지 않을까. 공포, 당장 살아야겠다는 의지. 심리학자 도나는, 벌벌 떨면서도 일단 상대가 살상 의사를 내려놓게 하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설득을 시작한다. 아마 분명한 의도가 있는 대사지만, ‘아버지가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는 말들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설득 당하는 듯 하더니, 칼로 본인의 목을 찌른다. 그 사건으로 도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당시 본인이 말했고, 이제는 믿게 된 문장들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상당히 생산적이고 나름 건강한 태도다.
그러나 도나의 집착을, 사용하는 비정상적 수단들을, 이 트라우마적 경험이 다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괴물이 아니었음을, 더 나아가 본인이 괴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스스로의 안에 있는 어둠이 드러난다. 그것을 맞닥뜨린 것이 괴로워, 벤자민에게 죽여달라며 눈을 꽉 감고 목을 들이대지만, 실패한다. 빠르게 스치는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어린다. 그날 레드우드에서 살아남은 셋 중 하나가 된 그가, 앞으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취할 태도와, 맡을 역할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스토리 전개 내 기능적 역할에 충실할 것, 캐릭터 서사를 설득할 것과 더불어 매력까지 요구하는 AHS 월드에, 안젤리카 로스는 순조롭게, 아니 능숙하고 존재감 넘치는 워킹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가 쇼의 독립적인 세계관을 설정해 인물들을 흥미로울만한 위치에 배치하는 식으로 구성한다면, <포즈>는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여 인물 하나하나의 드라마를 존중하고 따른다.
캔디는 초반부터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다. 처음엔 엘렉트라 옆에서 함께 블랑카를 비웃고, 여럿이 모여 얘기를 할 때 능청스러운 입담과 표정으로 시선을 강탈하는 정도-인데, 그 강탈의 정도가 상당하다. 눈은 뜨악하게 뜨고,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시니컬하고 풍부하게 쏘는 억양으로 농담을 날릴 때. 룰루와 레드 수트를 맞춰 입고 경연에서 트로피를 탄 후, 코를 찡그리며 “Yes motherfuckers!”라고 으르렁거릴 때. 입술을 쭉 내밀고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대리어스에게 ‘픽업’당한 블랑카를 (위로는 절대 하지 않는다) 놀릴 때. 프레이텔을 향해 “I am somebody.” 라며 손을 꼬아 들어 포즈를 취할 때. ‘화면을 씹어먹는다’는 말을 실감한 시청자는 나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도나의 캐릭터성이 상황에 따른 행동과 역할의 변화에 있다면, 캔디는 그 한결같음에 있다. 위화감이라곤 없는 인물이다. 어떤 형태건 있는 그대로를 세상에 드러내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맞서 싸운다.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며 다른 사람을 따스하게 위하는 블랑카와는 아주 다르다.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대놓고 못되게 구는,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시스터후드를 발휘하는 캔디 페로시티. 안젤리카 로스는 특유의 개성있는 베이스는 유지하면서, 말투는 드라마틱하고 시니컬하게, 눈빛은 공격적이거나 장난스럽게, 제스처는 뽐내듯 과장되거나 위협적으로 강하게 사용해 캔디의 캐릭터를 형성했다.
캔디는 못됐다. 대놓고 못됐기 때문에,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리 못되지 않았다. SM 클럽에서 일하던 엘렉트라는 사고로 ‘고객’이 죽자, 블랑카와 그를 차례로 찾아간다. 캔디는 무심하게 귀걸이를 바꿔 다는 데에 집중하며, 목소리조차 낮추지 않고 시니컬하게 받아치며 놀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아니라면서, 자긴 감옥에 가지 않을 거라고 하는데, 나직하게 흐르듯 덧붙이는 “Orange is ain’t my color.” 아니, 몹시 캔디답게 재치 있는데, 또 매우 진담이어서 피식 웃음이 샌다. 그 무관심하고 태연한 태도로, 여전히 ‘bitch’를 남발하며, 집에 가듯 성큼성큼 문을 나서며, ‘날 따라오’라고 말한다.
트랜스피플, 게이피플이 자유롭게 즐기며 판타지를 실현하는 공간이지만, 통상적 ‘미’의 기준에 따라 이들을 상품화하고 평가해 때로 상처를 주기도 하는 볼룸 커뮤니티. 유희의 수단인데 뭐, 하고 넘길 수도 있다. 허나 컴피티션 참가자는 주로 트랜스 여성, 심사위원은 주로 게이 남성이며, 주제에 따라 참가 자체를 막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면 멈칫 하게 된다. 캔디는 이에 가장 먼저, 정면으로 맞서는 여성이다. ‘풍만한 엉덩이와 가슴’을 내보이는 몸매 경연, ‘망신이니 나가지 마라’는 엘렉트라의 반응에, 캔디는 화난 채 스테이지로 향한다. 어깨는 뒤로 살짝 당긴 채, 가지런하면서도 입체적인 걸음걸이로 걸어나간다. 방금 전 엘렉트라에게 반항하던 단호함은 있지만, 눈과 입에 미소를 입는다. 프로패셔널한 자세다. 캔디의 아름다움은 외모 자체가 아니라, 그 태도, 남의 평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자신만만함에서 나온다. 그 프라이드는 짙고, 진하다. 블랑카를 비웃은 전적 때문에 그에게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 나는, 여기서 그만 반하고 말았다. 프레이텔은 최선을 다해 비웃고, 캔디는 굴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대신, 이를 악물고 꼿꼿하게 상대를 노려본다. ‘니가 한 번 해보지 그래’라며 턱을 들고 눈빛을 쏘며 도발한다. 프레이텔이 얄밉게 진행자의 권력을 이용해 싸움을 피하자, 캔디의 뺨엔 그늘이 어린다. 심사위원들이 낮은 점수를 줄 것을, 이 시스템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내밀고 눈을 우아하게 내리깐다.
슬픈 눈으로 프레이텔을 째려보는 엔젤이, 바로 내가 짓고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홀로 담배를 피우는 캔디 옆에 앉아, 위로를 건네고 마음을 나누려, 엔젤은 전날 밤 스탠과 나눈 대화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직후의 장면에, 캔디의 독보적인 매력, 안젤리카 로스의 연기에 있는 개성이 담겨 있다. ‘Bitch! 왜 너네 연애 얘기를 나한테 들려주냐’고 그루비한 말투로 톡 쏘며 눈을 익살맞게 뜬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는데, 웃음의 또다른 까닭은, 이 캐릭터로 봐서 예상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는 것이었다. 엔젤이나 블랑카에게처럼 이입하고 완전히 응원하게 되기보단, 오 하고 지켜 보며 리스펙하게 된달까.
‘우리의 환상을 실현하는 공간이 볼룸이고, 이게 내가 나를 보는 모습’이라며 당당히 걸어나가는 캔디. 남들의 기준에 맞춰 ‘인정’ 받으려고 애쓰거나, 시선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 내 존재를 납득하라고 요구한다. 걸어나갈 때는 반응을 예상하면서도 자기 매력에 취한 미소를 짓고, 조롱 당하자 최선을 다해 ‘달려든다’.
캔디가 싸움을 걸 땐, 그냥 시늉만 하는 게 아니다. 정지해 입술을 꾹 다물고 쭉 내민 채 노려보다가, 별안간 팔다리를 굉장히 민첩하게 놀리며 달려든다. 그 동작이 정말 진심이어서, 주변 사람들도 대강 말릴 수 없다. 필사적으로 팔을 잡거나, 그의 가는 허리를 잡아채 들어 옮겨놓는다. 힘없이 들려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캔디의 모양을 보면 살짝 웃음이 나오는데, 배우가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캔디가 물리적으로 싸움 자세를 취하는 씬은 이처럼, 캐릭터 자체를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는 선에서 유머러스하다. 사소해 보이지만, 캐릭터와, 쇼와, 쇼 안에서 캐릭터의 역할 모두를 충분히 이해하여, 적당한 선을 아는, 또 싸울 줄도 웃길 줄도 아는 배우라서 가능한 연기다.
미소와 행동 모두, 캔디 식 싸움의 제스처다. 절대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맘 놓고 캔디를 놀려대는 건, 공격적인 태도 뒤에 숨은 상처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가 폭발하는 순간은 종종 나와도, 무너지는 순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성향이 그럴 수도 있겠고, 이미 수없이 무너져왔던 탓에 이젠 굳어버린 것이거나, 드러내지 않게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안젤리카 로스는 때로, 지나가듯이, 캔디의 아픔을 찰나에 드러내곤 다시 묻어버린다. 엔젤과 이야기하던 중 태연한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 한두 방울. 엘렉트라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이 싫다’는 얘기를 나누며 핏기 없는 얼굴로 꾹 삼키는 울음. 줄곧 가려져 있던 속이 슬쩍 드러나는 모먼트다.
중년 게이 남성들로만 구성된 볼룸 위원회 회의 자리에, 언제나처럼 화려하게 빼입은 캔디가 모델 워킹으로 걸어 들어온다. 당당하고 뻔뻔하고 진지하게 제안하지만, 프레이텔이 늘 그렇듯 비웃어 넘기자, 돌아서는 듯 하다가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나이프를 들이민다. 포즈는 위협적이지만, 찡그린 눈은 어쩐지 슬프다. 나이프를 땡그랑 우아하게 던져 내려놓고, 눈을 내리깐 채 차분하게 자리를 뜬다. 그런데 별안간, 무거운 빵이 날아온다. 하나, 둘. 캔디다. 전혀 차분한 태도로 정확하게 조준해 던지고는, 유유히 걸어나간다. 그의 똑똑한 아이디어에 응원을, 그 독보적인 싸움법에 웃음과 박수를 보내게 되는 씬이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캔디의 마지막 씬이었다. ‘2차’를 나간 캔디는, 살해당한다. 이토록 드라마틱하면서도 현실적인 쇼에서, 비현실적으로 매력적인 개성으로 시청자를 웃게 해줬던 캔디는, 현실적이어서 더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의 미소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캔디는 본인의 장례식장에 환영으로 등장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제 죽음으로 울고 있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앉았다. 캔디라서, 위화감이 없다. 초월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한결 같다. 태연함과 강함이 돋보이며, 유머감각은 여전히 시니컬하면서도 살짝 따스해졌다. 허구의 립싱크 무대로 이어지는 연출까지, 완전한 리스펙이 묻어나는 마무리였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무리한 각본이라고 하던데, 나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미국 인기 수사물 에피소드에 ‘victom/body’로만 등장했던 트랜스 여성 캐릭터들에게 바치는 사죄, 현실의 인물들과, 캐릭터에 대한 존중으로 와닿았다. 그리하여 캔디의 장례식은, 희망차고 따뜻하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눈물바다가 되었다. 안젤리카 로스의 무심하고 한결 같은 연기는 캔디를 한번 더, 살려냈다. 이후에 종종 프레이텔 옆 환영으로 등장하는 캔디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웠고, 또 슬펐다.
내 덕심은, 대개 픽션 캐릭터에 먼저 작용한 후, 그를 맡은 배우에게로 확장된다. 안젤리카 로스는 달랐다. AHS 동료 코디 펀과 한 SNS 화상 대화를, 굳이 새벽 네시에 라이브로 봤었다.(이미 코디 펀의 왕팬이었어서,) 덕질과 공부를 한꺼번에 하자는 취지였다. 백인 시스젠더 남성 코디 펀이,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 안젤리카 로스에게 ‘배우는’ 형식으로 연 토킹이었다. 그들은 ‘BlackLivesMatter’ 무브먼트와 미국 내 레이시즘, 프리빌리지 등의 주제를 다뤘다. 안젤리카 로스가 누군지 알고는 있었으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감히 넘볼 수 없는 멋짐이었다. 그 후 <포즈>를 봤고, 뭐 쇼는 물론이오 MJ, 엔젤파피, 인디아 무어, 등등을 사랑하게 됐다. 또 새삼, 배우 안젤리카 로스의 매력에 입을 벌렸다.
안젤리카 로스. 배우, 뮤지션, 운동가. 성적 소수자의 직업, 전문적 네트워킹을 위한 NPO, ‘TransTech Social Enterprises’의 설립자. 본인이 속한 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해 최선을 다해 유명세를 이용하는, 똑똑하고 멋진 셀러브리티. 그의 아티스트적 능력, 리더/한 개인/트랜스 여성으로서의 행동력과 기획력은 대단하다. 안 지 얼마 되진 않았으나, 존경하게 됐다. 안젤리카 로스는 화면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언제나, 자기만이 취할 수 있는 멋진 포즈로, 연기하고, 말하고, 노래하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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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덕질은 배우 전문이므로(?) 이 글에서는, 배우 안젤리카 로스에 집중해 감탄해 보았다. 이 위대한 인물에게 배우고 싶다면, 그의 인터뷰를 서치하거나, 앞에서 언급한 코디 펀과의 라이브 대화 등을 재생해 보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