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바시코브스카 (Mia Wasikowska) in 고전 원작 시대극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2014, 감독: 소피 바르트)
<제인 에어(Jane Eyre)>(2011, 감독: 캐리 후쿠나가)
Feat. 팀 버튼의 <앨리스> 시리즈, <온리 러버스 레프트 얼라이브>(2013)
* <마담 보바리>와 <제인 에어>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전의 여성 캐릭터 묘사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은 외모가 (시대의 기준으로) ‘예쁘냐’, ‘예쁘지 않냐’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류의 설정이다. 허나 그 요소가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 의식/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므로, 원작 스토리에 충실한 방향의 영화화가 이루어진다면, 무시해선 안 되는 설정이기도 하다. <마담 보바리>(2014)의 엠마는 ‘예쁜’ 역할이었고, <제인 에어>(2011)의 제인은 ‘예쁘지 않은’ 역할이었다. 몇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배우가 둘 모두를 연기했다. 그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는, 둘 다 가능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여린 눈.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과 늘상 인상을 쓰고 있는 듯한 이마께. ‘예쁜’데 ‘예쁘지 않’고, ‘예쁘지 않’은데 ‘예쁜’, 희한한 외모였다.
<마담 보바리>(2014)를, 딱히 기대하고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플로베르의 원작을 정말 안 좋아한다. 엠마의 몇 대사에 진지한 비중을 두기는 했으나, 스토리는 충실하게 옮겼다. 오로지 흥미로웠던 건, 에즈라 밀러가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레옹과 달랐던 것처럼, 마담 보바리 또한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고전적 ‘미’의 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의 소유자, 존재 만으로 고전에 현대성을 불어넣는 배우, 미아 바시코브스카. 감독이 이야기에 새로운 해석을 첨가했다는 희미한 근거 중 하나는, 그가 만드는 표정이었다.
엠마는 자주, 홀로, 허공을 멍하게 혹은 관찰하듯 응시한다. 어쩐지 미아가 비슷한 시기에 연기한 인디아 스토커가 떠올랐다.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있을 때나, 그의 눈 한 구석에는 공상의 흔적이 있다. 영원히 자라지 않을 듯한 빛이 어린다. 정중한 투를 사용해도 순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 예의 바르게 웃어 보여도 들뜨거나 우울한 데가 있는, 입가와 이마. 미아의 표정에 있는 이중성은, 앞으로 흔들릴 엠마의 마음에 대한 암시가 된다.
결혼 후 엠마는, 남편과 둘만 있을 때 불편해한다. 동그랗게 뜬 채 눈치를 살피는 눈, 일부러 올린 입꼬리, 바르게 편 어깨 모두 경직돼 있다. 점차 그 긴장은 일종의 실망으로 변하며, 미간의 주름이 깊어지고, 입꼬리가 내려간다. 처음엔 설레었고, 사랑인 줄 알았고,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그와는 성향이 맞지 않는다. 십자수를 놓거나, 피아노를 치거나,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다른 데에 쏠려 있다. 지속적으로 지루함과 위화감을 느낀다.
권태의 기미가 보일 때 즈음, 레옹이 등장한다. 그를 대하는 엠마의 태도는 다르다. 눈치를 보느라 눈을 고정하는 대신, 힘을 빼고 웃음기를 담아 허공과 상대를 번갈아 응시한다. 편안하게 대화 자체에 집중하며 몸을 자연스럽게 놀린다. 상대에게서 말을 끌어내려 노력하는 대신, 저절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옛 일들을 말하며, 기분 좋게 미간을 찌푸리고, 웃느라 눈을 가늘게 뜬다. 미아는, 새로운 사랑의 설렘보단, 현재의 즐거움에 순수하게 취한 상태의 안정감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레옹이 마음을 표현할 때, 살짝 당황한 듯 보이는 엠마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레옹이 떠난 후, 엠마는 어두운 방에서 하녀에게 심정을 털어놓는다. 남편이 알아챌까 완전히 내지도 못하는 목소리가, 큰 움직임 없이 조용히 흔들리는 눈과 뺨이,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젖어 있다. 그렇게 쏟아내고 난 이후, 마음 한 조각을 잃어버린 듯 멍한 상태가 된다. 그리움보다는 공허함, 사람 자체보다는 함께했던 즐거움에 대한 상실감이다. 가만히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는 미아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그가 이 영화의 마담 보바리여야 했던 까닭 또한.
이제 엠마는, 딱히 남편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친밀감을 쌓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약간 비꼬는 투로 말하다가,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를 낸다. 남편이 말없이 손을 부드럽게 잡자, 입을 꾹 다물고 눈썹을 찍 올린 채 거친 손짓으로 눈물을 쓱 닦는다. 수줍고 순진하고 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살피던 그는, 이제 눈썹과 눈꺼풀에 힘을 줘 흰자위를 드러내며 허공을 본다. 자잘한 생기가 있던 몸짓은, 고집스럽고 우울하게 고요해졌다.
소소한 즐거움 뒤에 찾아온 이 우울을 달래 줄 것이라면 뭐든지, 엠마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런 그를, 후작이나 상인 따위 기득권층 남자들은, 제 욕망을 채우는 데에 이용한다. 작품은 그 과정을 딱히 새롭게 그리지는 않았는데, 어느 정도는 배우에 걸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게 귀에 귀걸이를 끼우거나, 이것저것 궁금해하거나, 대담하게 담배 케이스를 달라고 손을 우아하게 쭉 내미는, 위험한 수술을 하라고 남편을 설득하고, 단호한 손짓으로 인테리어를 지시하는, 그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들에서, 엠마가 시대를 잘못 타고났음이 언뜻 느껴졌다. 미아는 자신만의 에너지로, 각본이 허용하는 선에서 인물에 입체성을 불어넣었다.
엠마는, 후작을 레옹처럼 편안하게 대하지 못한다. 레옹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면, 후작은 의도적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엠마는, 그가 연기하는 대로 휘둘린다. 속이 타 숨을 몰아쉬고, 자꾸 돌아보고, 그가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초조해한다. 이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후에 레옹을 다시 만난 후에도 이어진다. 순수한 즐거움과 편안함, 설렘은 이제 보이지 않고, 정신없이 차오르는 욕망, 가라앉지 않는 들뜸, 불안감만 두드러진다. 후반부, 남편의 재산과, 엠마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는 함께 무너진다. 언성은 높이지만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남편,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투정 부리듯 입을 꾹 다무는 엠마는 대조된다. 아마 연출 의도에 맞게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갑갑했다.
감정과 마음의 상태는,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레옹의 차가운 눈빛을 받은 엠마는, 눈물을 쏟아내는 대신 몸을 천천히 돌리고 비틀비틀 걸어간다. 파산하고, 뢰르에게 찾아가 바닥까지 내보인 상태에서도, 미아는 엠마의 중심을 붙잡아 준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세는 흩뜨리지 않고, 똑바로 상대를 마주한다. 울음을 꿀꺽 삼키고 눈을 깜박하고 돌아선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독약을 꺼내고, 정신없이 숲으로 걷는다. 몸에 퍼지는 독에 괴로워하면서도 큰 소리는 내지 않고, 겨우 가쁜 숨만 내뱉는다. 멋대로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을 조이며, 꾸역꾸역 걸음을 내딛는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나서야, 조용히 쓰러진다. 오로지 눈만, 이리저리 오락가락 흔들린다. 그 씬이, 자기 자신인 채로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듯한 모습이, 미아의 연기가, 엠마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준 것 같았다.
화면을 수수하게 해 인물에 집중하려는 연출, 앞에서도 언급한 엠마의 몇 대사,로는 부족했다. 원작처럼 영화도, 엠마의 물질에 대한 욕망과 사람에 대한 욕망을 뒤섞어, ‘순진하게 유혹에 넘어가는’, ‘부정한 위험을 좇는’ 캐릭터로 그렸다(인물을 탓하든 그렇지 않든). 그러나, 미아의 개성 있는 페이스, 과장 없이 진지한 연기 톤이,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이입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도록 해 줬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의 화자 제인 에어는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예쁘지 않다’고 묘사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로체스터에 대해서도, ‘잘 생긴 얼굴은 아니라’는 서술을 남긴다. 두 사람에게 ‘미’로 인한 허영이 없었으며, 그 사이엔 거짓된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영혼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그 ‘미’라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데에 별 소용이 없다는 것도. 캐릭터에 독특하나 있을 법한 개성을 부여해, ‘보통 사람들’이 이입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었을 수 있겠다.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인물 설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시대와 현대의 ‘미’의 기준은 다르며, 사실 그 자체도, 점차 다양한 개인의 취향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맞을 테다. 그래서 캐리 후쿠나가의 <제인 에어>(2011)에 대한, ‘제인과 로체스터가 너무 예뻐서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감상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굳이 그런 내용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제인 에어를 현대에 영화로 만든다면, 그저 미디어의 기준으로 ‘예쁘지 않은’ 배우보다는, ‘스스로 예뻐 보이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느낌을 내는 배우가 더 적합할 것이다. 내가 떠올렸던 제인 에어의 얼굴이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것은 아니었으나, 어울렸다.
영화는 시간 순 전기식 구성인 원작을 살짝 뒤섞어, ‘사건’ 이후 새벽, 제인이 무작정 손필드를 나오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급히 걸으며 흐느끼고 있지만, 슬픔이나 절망 등 단편적인 정서만 입고 있지는 않다. 이마와 입가에 꾹 들어간 힘은, 굳은 결심, 내면의 강인함을 암시한다. 눈은 앞을 향한 채이나, 보고 있지는 않다. 복잡한 심정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황야에 이르러서는, 내면의 괴로움에 잠겨 있다가, 물리적 상황이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듯, 주위를 정신없이 두리번거린다. 얼굴에 단호함이 빠지고 두려움이 살짝 들어섰다. 간헐적으로 흐느끼다, 온몸으로 무너져 내렸다가, 울 힘조차 빠진 듯 덩그러니 앉아 있다가, 구부정하게 겨우 일어나 터벅터벅 휘청거리며 걷는다. 빗속에 웅크려 덜덜 떨며, 입술로만 ‘I must die’라고 중얼거리는데, 죽으려 하고, 죽어가고 있지만, 어쩐지 살고 싶어 하는 사람 같다.
이후 과거 파트와 현재 파트가 번갈아 이어지다, 하나의 플롯으로 만난다. 미아의 독보적인 마스크와 차분한 연기는, 플롯이 나뉘어 진행되는 초반에는 관객의 집중력과 흥미를 끌어올리며, 서서히 인물을 설득한다. 스케치를 본 세인트 존의 감상에, 제인은 말없이 살짝 인상을 쓰고 입을 꾹 다문다. 딱히 눈을 피하지도 맞추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 곧게 등을 펴고 시선을 적당히 앞에 둔 채 말을 아낀다. 제인의 반응은 늘 독특하다. 예의 바르나 예상과는 다르다. 희미한 미소는 수줍기보단 당당하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이 없는, 겸손하고 솔직한 이의 것이다. 대개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답하지만, 톤이 담백해 부담스럽지 않다. 관찰하듯 던지는 시선은, 본성을 꿰뚫는 듯하다.
과거의 제인이 미아의 얼굴로 등장하는 것은, 로우드를 떠나면서부터다. 선생과 마주하곤, 울컥하듯 입가가 움찔거리다 멎는다. “Bye.” 아련하나 단호한 목소리로 짧은 인사를 남기고, 망설임 없이 지나쳐 이쪽을 향해 걷는다. 감정을 소모할 가치가 없다는 듯한 싸늘한 무표정이다. 영화에서, 로우드에서의 생활은 단편적인 에피소드 몇만 등장한다. 그러나 그 찰나의 표정 변화에, 미아는 몇 년의 세월을 함축했다. 낯선 곳으로 향해 낯선 이들을 만나는 제인은, 긴장이 몸을 지배하게 두지 않고, 불안하게 우왕좌왕하는 대신 꼿꼿하게 중심을 잡는다.
숲 속에서 남자를 마주치고도, 경계는 하나 두려움은 없이 찬찬히 대놓고 뜯어본다. 그가 고용주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억지스러운 비굴함이나 상냥함을 꾸며내지 않는다. 필요한 말만 정확한 문장으로 내보내며, 영혼 없는 인사치레를 하는 대신, 침묵의 자리를 또렷한 시선으로 채운다. 상대의 권위적인 태도를 맞받아치는, 야무지게 다물린 입과 맑은 눈동자. 로체스터가 본인을 평가하는 말을 뱉을 때마다, 입꼬리를 살짝 내리고 눈을 한 번 깜박하며 도전적으로 바라본다. 굳이 맞서 싸울 것은 없지만 수긍하지 않겠다는 제스처다. 비밀스러우나 의뭉스럽지는 않고, 당당하나 거만하지는 않다. 제인과 닮았다. 생김새 자체보다는 분위기, 연기가 인물을 완성하는 것임을, 미아는 제인처럼 끈기 있게 증명하고 있었다.
항상 차분하고 정갈한 상태이던 그가 속내를 드러내는 순간은 신선하다. 창 밖을 보며, 답답한 듯 탁한 목소리로, 경험과 도전에 대한 목마름을 속삭이거나, 그림에 대해 말하며 눈을 내리까는 모습은, 속에 있는 열정을 암시하며, 그 가능성을 다양하게 열어 놓는다. 영화 속 제인의 열정은 곧, 아쉽지만 로맨스로 수렴한다.
점차 제인은, 로체스터를 의식한다. 그것이 사랑으로 변하는 과정을 원작은 일인칭 시점으로 세세하게 서술하지만, 영화는 두 배우를 섬세하게 담음으로 대신한다. 제인이 아델과 함께 웃으며,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로체스터를 신경 쓰고 있음을, 미아는 눈길을 주지 않고도 몸의 미세한 움직임과 얼굴 근육의 찡그림으로 드러낸다. 두 번째로 로체스터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경계가 살짝 풀려 있다. 고개를 한쪽으로 숙인 채 손을 만지작거린다. 눈가와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띄우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눈빛에 힘이 살짝 빠져 부드러워졌고, 말에 담긴 감정은 보다 풍부하다. 전처럼 스스로를 꽉 붙들고 있지 않다. 상대와 대화에 집중하고 반응한다. 마지막에는,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끌리지만 말려들지는 않고, 의아해 하지만 두려움에 떨지는 않는다. 자신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로체스터의 입술에 시선을 자꾸 빼앗기면서도, 두 눈을 끝까지 똑바로 바라보는 ‘구원자’ 제인. 방에 돌아와 문에 기대어, 붕 떠 있는 손짓으로 가운을 푼다. 고개를 한 번 푹 숙였다가 든다. 낯선 설렘으로 들떠, 멍하다. 다음 날 로체스터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만히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미세하게 앞뒤로 떨지만, 이내 꿀꺽 삼키고 차분하게 휙 돌아선다. 그가 돌아온다는 페어팩스 부인의 말에 뺨이 살짝 펴지며 입가가 미세하게 올라가고, 잉그램 양과 함께 온다는 다음 말에는 그늘이 지고 눈빛이 꺼진다. 그러나 곧 털어내고 일거리에 집중한다. 미아는 최소한의 제스처로, 로체스터에 의해 매초 변하는 제인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제인은 깨달았다. 몇 주 만에 잉그램 무리를 대동하고 돌아온 그를, 아무렇지 않은 척 대하지만, 감정을 삼키느라 몸이 앞뒤로 자꾸 흔들리고, 목에 힘이 들어간다. 눈에는 물기가 어린다. 그러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로체스터가 동요하자, 곧 찬찬한 호기심과 연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제 로체스터가, 마음을 알려 줄 차례다. 머리에 꽃을 꽂아 주는 그를, 의아한 듯 조용히 사선으로 응시하다,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홀로 어수선하게 몇 걸음 걷고는, 문에 기대어 들뜬 듯 입을 하 벌리지만, 금방 그늘이 진다. 기쁨과 우울이 혼합된 무언가다. 거의 고백을 받았음에도, 마음 깊은 곳으로는 그의 사랑을 느끼면서도, 애초에 가능성을 닫아 두고 있는 제인은, 인정하지 못한다. 사랑을 숨기지는 않으나, 자꾸 억누른다.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급히 고개를 숙이는 몸짓, 짐짓 태연하고 적당히 장난스럽게, “당신은 전혀 미덥지 못해요.”라고 속삭이는, 웃을 듯 말 듯한 입가. 그 타이밍에 로체스터는, 확신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대놓고 말하지 않으면, 본인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리드 부인의 고백을 듣자, 분노로 눈썹이 좁아지고 꾹 다문 입이 울렁거리지만, 그 정도로 끝낸다. 에너지를 소모할 가치가 없는 사람 이어서다. 로체스터를 마주해서는, 다르다. 창백한 얼굴이 붉어지고, 입이 일그러지고, 울먹이고, 자꾸 물러서면서도 발을 아주 돌리지는 못한다. 그가 잉그램과 결혼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제인은,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으며, 할 말을 다 쏟아낸다. 목소리가 탁하고 격해졌다 새되게 까진다. 비로소 그의 마음을 듣고 나자, 충격과 감격으로 미간이 뭉치며, 그제야, 눈물이 떨어진다.
청혼을 받았어도, 제인 에어는 제인 에어다. 페어팩스 부인의 우려를 그답게 묵묵히 넘기고, 멍하고 차분하게 기쁨과 불안을 누린다. 비밀이 밝혀지는 모든 상황을 꼿꼿한 시선으로 목격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결심의 얼굴을 한다. 제인의 사랑은 따스하고 솔직하다. 때문에, 분노는 차갑고 의지는 곧다. 힘과 권력과 부를 가진 남성 로체스터는, 힘과 권력과 부가 없는 어린 여성 제인을, 절대 꺾을 수 없다. 깨끗한 영혼의 순수한 고통이 화면 가득히 차올랐다. 그 아프고 신성한 에너지는, 미아의 온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인트 존과 있는 제인에겐, 무언가 빠져 있다. 여전히 관찰은 하면서도 관심은 딱히 보이지 않고, 반짝이는 호기심이 사라진 자리에 무심한 예의가 들어섰다. 딱히 경계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브라더로 맞이하면서는, 안도하고 의지하며 편안한 태도를 보인다. 브라더에게 청혼-이라기보단 동맹 제안-을 받고는, 로체스터의 방이 불타고 난 그 새벽처럼, 방에 들어와 문에 기대지만, 시선은 땅으로 떨어지고, 뺨은 어두워진다. 동일하게 고요하지만,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제인이 그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아서 이기도 하다. 마음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제안에 대한 거절일 따름이므로, 미안함 없이, 그에게 분노한다. 주체적이고 진정한 사랑의 대변자로서.
자신을 보지 못하는 로체스터의 눈을 열심히 좇으며, 제인은 눈물을 흘린다. 그 나직하고 촉촉한 목소리를 들으며, 느리고 차분한 동작을 느끼며, 로체스터는 안도했을 것이다. 제인의 분위기에 휘감기었을 것이다. 고요히 서로의 품을 음미하는 두 사람의 모습, 영화가 작품을 담은 방식이 묻어나는 라스트 씬이었다. 미아는 그 톤에 맞게 제인 에어가 되었고, 각색이 남긴 빈칸을 마이클 패스벤더와 함께 메웠고, 여백의 자리도, 잊지 않았다.
내게 미아 바시코브스카는, 처음부터 호감의 이미지로 남은 배우는 아니었다. 좋아하는 작품 속에서,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온리 러버즈 레프트 얼라이브>(2014). 인간과 공존하기 위한 스스로의 룰을 지키며 한 곳에 숨어 있는 이브, 아담과 달리, 에바는 본능에 충실히 행동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위험하고 ‘사랑스러워’ 정이 가지 않는 뱀파이어. 그렇게 적고 보니, 미아는 하나도 ‘안 사랑스러운’ 앨리스였다. 이처럼 애어른이나 어른아이 같은, 우울한, 퉁명스러운, 얼굴의 앨리스라니. 그동안 미디어가 그려온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팀 버튼 에스테틱에 매우 들어맞는, 그리고 오히려 원작과 닿는 데가 있는 분위기였다. 신선했고, 정과 납득이 갔다.
앨리스와 짐 자무쉬의 뱀파이어물 이후, <스토커>, <앨버트 놉스>, <크림슨 피크>, <마담 보바리>, <제인 에어>까지, 각기 다른 까닭으로 본 작품들에, 미아가 있었다. 우연히 마주치다 보니, 유심히 보게 됐다. 표면적 캐릭터는 다른데, 일관되게 우울한 정서가 있어 흥미로웠다. 내내 웃거나 전혀 웃지 않으며, 관객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미워할 수 없게 했다. 자신을 이리저리 숨기거나 드러내며, 다양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욕망을 표현했다. 때론 존재 만으로 장면에 개성을 부여했다.
고전 시대극에서도, 미아는 미아였다. 그의 분위기와 연기는, 책에서 묘사한, 타인이 바라보는 ‘미’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욕구, 행동의 근거에 집중하게 했다. 다시, 두 사람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겠다. 엠마에겐 감각이 있었으나 펼 기회가 없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만족해야 했기에, 더 갈구했다. 욕망의 대상이 되며 삶의 욕망을 찾았고, 약지 못해 그에 흔들리다 궁지에 몰렸다. ‘자신이 뭘 하는지 몰랐다’. 제인은 똑똑했고, 궁지에 몰려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뭘 하는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했다. 보호막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고, 무너지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기반으로 다져 강해졌다. 제인에겐 엠마처럼 타인에 대한 의식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내면의 곧은 중심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있었다. 엠마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본인만의 프라이드를 찾고 펼 수 없었던 탓이다. 엠마는 ‘마담 보바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제인은 미스이즈 로체스터가 아닌 ‘제인 에어’로 남고자 했다. 앞 문장들을 적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이,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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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2014).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엠마가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걸 보며 짜증이 났다. 엠마는 ‘예쁜’ 것을, 즐거움을 원했다. 악의 없이, 세상을 잘 모르고 원하는 대로 행동한 것뿐인데, 그러면 안 됐던 것이다. 욕망이 있다면 숨겼어야 했다. 순진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시대와 그 모든 남자들이, 플로베르가, 엠마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여버린 거다. 뭐, 오로지 에즈라 밀러를 보기 위해 본 영화였다. 드물게 ‘예쁜’ 분장을 하고 나와서도 저다운 웃음소리를 내고 마는 그에게 다시 빠졌지만, 구시대(과연…?)적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힘을 합쳐 한 사람의 피와 영혼을 빨아먹고 개인 탓을 하는 서사를 유려한 문체로 자랑하는 원작!을 성공적으로 비꼬지 못한 작품에, 그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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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2011). 원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가, 제인과 세인트 존이 가까워지고 시스터브라더즈가 되는 그 사이에 있다. 영화에선 생략됐다. 두 사람이 대화하며 주고받는, 로맨스 없이 유쾌한 긴장이 매력적이었다. 제이미 벨과 미아 바시코브스카의 케미가 어떨지 궁금했는데, 아쉬웠다. 세인트 존은 그렇게, 일종의 기능적 인물이 되어 퇴장했다. 어쩔 수 없다, 각색에는 선택이 따르니. 제이미 벨이 넘치는 끼를 눅이려고 애쓴 것이 세인트 존에게서 보였다. 사실 세인트 존은, 영화 보기 전 원작을 읽으면서도 제이미 벨로 계속 상상했다. 단순 덕질이었는데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