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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r 18. 2021

Carey is not your Daisy.

캐리 멀리건 Carey Mulligan




<와일드라이프(Wildlife)>(2018, 감독: 폴 다노)

<프라미싱 영 우먼(Promising Young Woman)>(2020, 감독: 에메랄드 펜넬)

Feat. <위대한 개츠비> 책과 영화, 니콜라스 웬딩 레픈 작품 TMI.

 

* <와일드라이프>와 <프라미싱 영 우먼>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하이틴 시절 페이버릿 작가 중 하나였다. <위대한 개츠비>도 사랑했다. 유명세가 작품의 진가를 가린다며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었다.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보다 닉과 조던의 만남을 더 기다리며 읽곤 했었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 읽을 때가 되긴 했는데, 우선순위는 아니다. 센치하고 자잘하여 위대한 위트에 두근거리는 사이 필수적인 미소지니Misogyny에 발이 걸려 갈팡질팡하다 추억의 애정마저 식어버릴까 살짝 두렵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에 가깝다. 오래전 한 번 봤고, 이제 와 굳이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조던 베이커 스틸 한두 장이면 충분하다. 내게 캐리 멀리건 데이지 뷰캐넌은, 외모의 예쁨이 딱히 취향이 아니어서, 그마저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이 배우는, 대강 그런 이미지로,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와일드라이프>(2018)를 보기 전까지는.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와일드라이프>의 화자는 조다. 허나 조에게 이입해 함께 상처받고 원망하면서도, 세 사람 모두를 이해하게 된다. 섬세한 연출의 분배와 연기의 조합 덕이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틀에 맞춰 묘사하면 은, ‘착하고 예쁜 아내/엄마’였다가, 남편이 떠나자 돈 많은 남자에게 붙어 아들을 돌보지 않는 ‘나쁜년’이 된다. 당연히, 작품은 관객이 진을 ‘그런 여자’로 소비하게 두지 않았으며, 그 설득의 중심에 캐리 멀리건을 두었다. 그의 연기에는 진이라는 인물에 게으른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대사를 유심히 듣게 되는 작품이다. 결과적으로 날것의 표현으로 들리나 그 담백한 와일드함을 위해 꽤나 다듬어졌을 것이라는 짐작이 드는 문장들. 캐리 멀리건은 그 시적인 뉘앙스를 죽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느낌이 들도록 진의 대사에 목소리를 입혔다. 낮은 톤에 담긴 풍부한 울림은 다채로운 감정 표현의 기반이다. 부드럽게 힘줘 따스하게 내보내거나, 힘을 확 빼고 무심하게 툭 뱉거나, 쇳소리를 섞어 누른다. 그의 얼굴에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보조개다. 웃을 때도, 슬퍼서 일그러질 때도, 뺨에 선명하고 굵은 주름이 여러 겹 진다. 두 가지가 섞이는, 슬픈데 애써 웃거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지는 상황에서, 그만의 표정이 나온다. 처진 눈은 사랑스러운 눈웃음의 재료가 되거나, 깊은 슬픔의 창이 된다.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조의 시선 필터’라는, 제한 안에서, 캐리 멀리건은 조용히, 진의 ‘무너짐’을 쌓는다. 아들의 시선에 갇혀 다 보이지 않았던, 행동의 근거를. 해고당했다는 제리의 말을 듣자 진은 삼킨다. 일그러지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고, 올라가는 언성을 감추려 부러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걱정으로 처지는 눈에 장난기를 덧입힌다. 그는 참는다.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 주려, 싸우지 않으려고. 일자리를 구했다며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그에겐, 불안과 생기가 뒤섞인 긴장이 있다. 조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카메라는 거리를 두고 진을 담는다. 배우는 관객이 적나라하게 느끼는 대신 고민하고 짐작하도록 돕는다. 초반, ‘집에 있기로 남편과 결정했다’는 진의 말엔 불필요한 긴장과 적극성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세뇌하는 듯했다.


조가 집에 들어온다. 진은 눈물이 고인 눈을 돌려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제이크 질렌할이 소리를 곧게 올려 내지르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한다면, 캐리 멀리건은 잔뜩 떨리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눌러 내보낸다. 두 배우 모두 종종 연기에 어떤 ‘연극적으로 완전한’ 부분이 보일 때가 있는데, 그 개성이 달라, 만나게 되면 대단히 두근거리게 어우러진다.


진은 달라진다-착한 아내/엄마 연기를 그만둔다. 울며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하룻밤으로 충분하다. 곁에 없는 남편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I have to be smart about things.난 영리하게 대처해야만 해.”가 진의 판단이다. 그는 단호해진다. 힘을 뺀 말투로 비음을 섞어 무심하게 중얼거리고, 건조한 눈으로 시니컬하게 제리의 행동을 비꼰다. 그를 언급할 때는 눈을 내리깔며, 벗어난 과거의 일을 대하듯 거리를 둔다. 때문에 조는 어색함을 느낀다.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진은 이제, 아들 앞에서 연기할 생각이 없다. 대놓고 밀러에게 눈웃음을 보내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의견을 묻기도 하-지만, 딱히 묻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신경은 쓰지 않는다. 옛날이야기를 늘어놓고, 우울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상한’ 질문을 한다. 조에게 묻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에게, 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보인다. 사랑과 장난기가 담긴 미소를 건넬 때는 진심이 보이지만, 순간뿐이다. 조를 태우고 운전하는 그의 태도는 차갑다. 불타는 산 앞에 조를 내려주고, 뒤에 서서 슬픈 눈으로 묻는다, “Do you like it?” 카페에서는, 끊임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몸을 건들거린다. 웃었다가, 살짝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조가 ‘아빠는 괜찮을 거’라고 말하자, “Yeah.”라고 건조하게 답한다. 묻는다. “What about me?그럼 나는?” 진이 갑자기 질문할 때, 캐리 멀리건은 힘을 주지 않고, 툭 뱉는다. 문장 끝에 공허함을 남기며, 멍하게 솔직한 시선을 던진다.


진은 밀러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중얼거린다. 문장들이 둥둥 떠다닌다. 고개를 앞으로 돌린 후, 얼굴 전체에 꽉 힘을 주고 찡그린다. 관자놀이를 누른다. 가늘게 뭉그러진 목소리로, 쥐어 짜낸다, “I feel like heady to wake up.깨어나기 힘든 기분이야.” 숨을 길게 내쉰다. 눈을 감은 채, 발음을 눙쳐 낮게 속삭인다, “But I don’t know what from, or to.근데 무엇으로부터인지, 무엇을 향해서인지, 모르겠어.” 조가 겁에 질려 엄마를 부르자, 비로소 돌아보고 입꼬리를 올린다. 눈물이 고여 있다. 입을 꾹 다물자 아래쪽 뺨에 가득한 주름이 슬프다.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머리를 만 채 천천히 바람 부는 마당을 거닐다 마는 캐리 멀리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진이라는 인물을 설득한다. 밀러의 집, 완벽한 복장과 메이크업, 제스처는, 불안을 되려 드러낸다. 등이 파인 민소매 드레스는 움츠린 어깨와 팔의 뼈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진한 립스틱은 긴장으로 굳은 입술의 형태 그대로 우그러진다. 유혹의 웃음을 날리다가도, 인상을 쓰고 시니컬하게 중얼거리거나, 우울하게 눈을 내리깐다. ‘당신이 부자라 내가 접근하는 것’임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노골적으로 던지며 자조한다. 밀러와 눈을 똑바로 맞추고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곧은 중심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기분에 따른 반응이다. 최선을 다해 유혹하고 있음을 일부러 어필하지만, 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진은, 이런 ‘연극’에서조차, 더 이상 연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 그럴 힘이 남지 않아서 혹은, 무의식 중에 ‘실패’를 원하고 있어서다.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어야 할 텐데, 종종 진의 얼굴엔, 자기파괴가 어른거린다.


춤추는 진은 절실하게 웃는다, 끊임없이 숨차게 뱉는 ‘cha cha cha’에 울먹임이 섞였다. 그 절실함은, 표면적으로는 밀러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그저 지금 웃으며 춤추지 않으면, 쓰러져 버릴까 봐,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 차오른 숨으로, 웃으며 이야기하다, 별안간,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 돼서, 집에 가야겠다고 말한다. 코트를 입고, 주고, 키스를 받고, 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행동들. 스스로도 다음 순간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어 보인다. 캐리 멀리건은 설명할 수 없는 오르내림으로, 오히려 진의 감정과 상태를 설득한다.


밀러를 만나는 동안, 밀러와 있지 않을 때, 진은 엉망이다. 툭 치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왜 굳이 밀러를, 아들이 있는 집에 데려왔을까, 상대가 원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아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나쁜’ 엄마라는 걸? 조가 자신을 원망하기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못되게 굴면서 자신을 미워하도록 유도하는, 자기혐오의 한 방식이었을까? 캐리 멀리건의 눈 속에 겹겹이 맞물려 있는 감정의 결이, 자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마침내 제리가 돌아온다. 진은 태연하고, 의무적으로 따스하지만, 차가운 거리감을 두고 제리를 맞는다. 눈을 내리깐 채 차분하게 묻고, 생기 없이 웃고 대꾸한다. 별로 후회가 보이진 않는다, 지쳐 있지만, 전에 없던 확신이 어려 있다. 울음을 삼키며, 따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I need some times to figure things out.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 제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남자가 생겼냐고 묻는다. 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씨익 웃는다, 이상한 웃음이다. 점점 울음이 섞여 터지더니, 눈썹이 일그러지며, 가슴이 막혀 어쩔 줄 몰라하는 듯 발을 조용히 구른다. 울먹임으로 수렴하고, 마침내 욱 참는다. 대강이나마 ‘뭔지 알 거’ 같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리 화내고, 애원해도, 이 남자는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는지만, 신경 쓸 거다.’ 그래서 진은 차분하게 최소한의 할 말만 한다. 허리에 얹은 손, 붉어진 얼굴, 굴러가는 눈알. 핏기 없는 얼굴은, 제리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숨이 막혀오는 듯한 상태를 드러낸다. “Yes I am, but this doesn’t have to do with that.맞아, 근데 그건 이거랑 상관없어.” 남자는 묻는다. “Who is it?누군데?” 대화를 원했지만, 상대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진은 오히려 포기한 듯 누그러진다.


제리가 밀러의 집에 불을 지른 후, 돌고 돌아 집으로 달려온 조를, 비로소 진은, 똑바로 바라본다. 스스로의 분노와 불안에 잠식되어 아들에게 준 상처를 깨닫는다. 울음을 터트리지 못하고, 꾹 누른다. “날 비난한다 해도 널 미워하지 않을게.”에 캐리 멀리건은, 아들에 대한 진의 마지막 양심을 담았다. 홀로 선 후, 독립된 개인으로 조와 제리의 집을 방문한 진은, 안정적으로 긴장돼 보인다. 제리가 돈을 좀 보낸다고 하자, 조용히 우물거리며 거절한다. 약간 수줍고, 뿌듯해 보인다. 이제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 아들을 똑바로, 또한 ‘조’라는 하나의 낯선 인격체로 볼 수 있게 됐다. 손님인 채로, 사진관으로 어색하게 들어선다. 의자에 앉아, 좀처럼 눈을 들지 못하며 손을 안절부절 움직이다, 울음을 참고, 애써 웃으려다, 결국 웃지 못한다.


<와일드라이프>(2018). IMDB 이미지.



<와일드라이프>의 시적인 흐름을 타고, 캐리 멀리건은 오락가락 요동치고 또 절제하며, 탁하고 수수한 화면을 조각조각 흔들어 놓았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의 분명한 기승전결과 네온 빛깔 화려한 화면 가운데에서는, 드라마틱하면서 깔끔한 카리스마로 모든 요소를 한데 휘어잡는다. 담백하게 힘 있는 연기는 연출과 완벽하게 맞물렸다.



진은 어느 순간 연기를 그만두기를 택했다. 캐시는 어느 순간부터 연기하기를 택한다. 그의 연기엔 목적과 까닭이 있다. 작품은 설명을 최소화하고, 캐시의 행동을 따라 이야기를 한 겹씩 벗겨낸다. 아직 그의 이름도 나오지 않은 오프닝, 제리와의 만남에서, 관객은 구체적인 전개를 알지 못한(트레일러는 트레일러다)다. 캐리 멀리건은 충실하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는 연기를 하며, 알 듯 말 듯 뉘앙스만 남긴다. 그리하여 침대에 눕혀져 있던 캐시가 별안간 눈을 번쩍 뜨고 분명하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Hey, what are you doing.야 뭐 하는 거야.”라고 하는 순간, 관객은 섬뜩한 크러쉬crush를 겪게 된다.


유사한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닐과의 만남, 관객은 이제 캐시가 무엇을 할지 대강 안다. 캐리 멀리건은 취한 척을 하는 사이, 남자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관객만이 볼 수 있게 지루하거나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다. 방백이 있는 연극 느낌도 약간 든다. 남자의 손이 어설프게 다리 사이로 들어오자, 더 이상 못 참아주겠다는 듯 눈동자를 위로 올린다. 조용히 어르듯 “Hey,”를 뱉고, 남자의 턱을 잡고 눈을 똑바로 맞추며 나직하고 정확하게 말한다, “내가 말했잖아, 집에 가야 된다고.” 남자가 놀라 벌떡 일어나자, 흰자위가 드러난 눈으로 그를 좇으며, 일어나 과자를 집어먹는다. “I’m a nice guy.난 착한 남자예요.”라는 말에 고개를 살짝 꺾으며 차갑고 묘하게 묻는다, “Are you?그래?” 질문과 대답이 이어진다. 지루하게 잠긴 목소리와 가늘게 쥐어짜는 목소리를 오가며, 상황을 가지고 논다. 대사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남자를 벽에 밀어붙인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캐시는 여유롭게 남자들을 제압한다. 대충 즉흥적으로 하는 듯 하나, 모두 ‘본능적으로’ 완벽하게 계산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치밀한 것은 계획보다는 연기다. 남자들이 놀라고 소스라치는 건 상대가 취하지 않았음을 깨달아서 이기도 하지만, 그 드라마틱한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취한 척을 그만두는 게 아니다. 취한 연기를 벗은 후에도, 차갑고 아무렇지 않은 ‘싸이코’ 연기를 계속한다. 실눈을 뜨고 꼬부라지는 혀로 되풀이했던 말을, 눈을 부릅뜨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한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자신감과 확신이 가득해 막힘없이 흐르는 말, 당당하고 거침없는 동작, 하찮다는 듯 번뜩이는 눈빛. 긴장을 내보이지 않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야만 한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다. 대개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힘이 센 낯선 남자와 단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다. 조금이라도 얕보이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제리를 응징하고 나온 캐시는 소스가 주르륵 흐르는 핫도그를 아무렇게나 베어 먹으며 맨발로 걷는다. 멍하고 단호하다. 이마에 옅게 인상을 쓰고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는, 아니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공사장을 지나다, 남자들의 성희롱을 듣고, 멈춰 서서, 가만히 바라본다. 단순히 보기만 할 뿐인데, 저들은 겁을 먹고 화낸다. 겁을 먹어야 할 약한 존재가 겁 없이 응시할 거란 예상을 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지만, 흔들림 없이 공허하게 빛나는 눈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패턴이나, 유사한 면이 있는 사건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캐시는 배우가 되었다.


그런 캐시는 멋지다. 멋진데, 마음 편하게 반할 수 없다. 타고난 카리스마도 있겠지만, 그 독기는 지난 칠 년 간 쌓인 것일 테다. 그의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할 때도, 캐리 멀리건이 말없이 알려준다. 눈 밑에, 굳게 다문 입가에, 지친 손끝에 깊은 그늘이 묻어있다. 캐시가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남자들과 있을 때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다. 수첩에 이름을 적고 빗금을 그을 때, 유튜브를 보며 메이크업을 완성할 때는, 멍한 무표정이다. 언뜻 건조하나, 한 겹 들추면 끈적하게 뒤엉켜 있을 것 같은 우울이다. 그 얼굴은, 캐시의 행동이 고약한 ‘취미’도, 완벽히 계획된 ‘복수’도 아님을 드러낸다. 삶의 체인을 잇는 고리가 끊어져, 하루하루를 이어갈 까닭을 그 행위에서 찾는 것 같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보다, 카페에서 ‘보스’ 게일과 있을 때, 캐시는 더 편안해 보인다. 속내를 그다지 털어놓지는 않지만, 우울한 그대로 시니컬하게 농담을 던진다. 카운터에 팔꿈치를 괸 채, 별로 웃거나 시선을 맞추지 않고, 눈알을 굴리거나 입을 우물거리며- 가식 없이, 게일의 말을 듣는다. 한 손에 빵을 들고, 책장을 넘기며, 꽉 잠긴 목소리와 능청스럽게 흘리는 발음으로 대충 대꾸한다. “여기가 좋아.”는 게일이 단호하게 캐치했듯 거짓이나, ‘태도’는 진실이다 -내용은 거짓이지만, 말을 하는 태도에, 상대가 거짓을 믿게 하려는 성의가 없다. 때문에, 이어지는 “네가 좋아.”는 담백한 진심이다. 방금 전부터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는 고객을 슬쩍 본 뒤 빵을 든 손으로 대충 가리키며, 여전히 성의 없이, “고객들을 대하는 것도 좋고.”라고 중얼거린다. 고객이 틈을 비집고 주문을 하려고 하자, 아주 무신경하게 “No.”라고 뱉은 뒤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게일이 “조니가 널 봤대.” 이야기를 꺼내자, ‘티 나지 않게’ 경계심을 보인다. 눈을 쓱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가, 내리깔고, 다시 치뜨며 태연하고 단호하게 부정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흘리는 말투다. 말을 마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이 이야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다.


어쩌면 캐시가 가장 캐시인 공간, 카페에, 라이언이 들어온다. 평범한 헤테로 로맨틱 코미디 같은 만남이다. 라이언이 생각 없이 대뜸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캐시는 감정의 변화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상대가 제대로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시니컬하고 적나라하게 비꼰다. 카운터에 비스듬히 기대, 천연덕스럽게 눈을 뜨고 뚫어져라 본다. ‘귀찮으니 꺼져’와, ‘어쩌나 보자’가 섞인 시선이다. 커피에 침을 뱉는 캐시는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을 대할 때와 닮아 있지만, 같지는 않다. 태연하고 무신경한 가운데, 호기심이 있다. 다음 만남에서는, 시치미를 떼고, 웃음을 조금 참으며, 눈을 빛내거나, 내리깐다. 마음이 열리는 실마리가 보인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라이언은 캐시를 현재에 붙들어 놓다가도, 금방 과거로 떨어뜨린다. ‘왜 의대를 중퇴했냐’는 그의 질문에 대충 답하며 벽을 칠 때, 그의 집 앞에서,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캐시는 즐거운 척을 하지 못한다. 그의 입에서 메디슨의 이름이 나오자, 잠깐 멎고, 알 먼로의 이름이 나오자, 내려앉는다. 그늘진 뺨, 다른 곳에 가 있는 듯 언 눈동자, 겨우 짜내듯 느리게 가라앉은 말투. 상대가 아슬아슬하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학장과 메디슨을 대하는 캐시는, 남자들을 대할 때와는 좀 다르다. 그쪽은 ‘기대조차 안 했어’ 뉘앙스로 대하며,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난다. 이쪽은 묵은 분노, 보잘것없는 기대와 배신감, 같은 것들을 누르는 무게가 느껴진다. 메디슨에게 묻는 목소리는 차갑게 내리깔려 있지만, 인상 쓴 미간 아래 처진 눈은 슬프다. 캐리 멀리건은, 점점 차오르는 분노를 입가의 ‘미소’와 확장되는 눈, 까지는 말끝에 담아낸다. “Crying wolf.양치기 소년.(의역)”라는 표현을 듣고, 잠깐 어이없어 멍하게 굳었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상대의 말을 되풀이한다. 워커를 찾아갔을 땐, 이미 조금 ‘내려놓은’ 분위기다. 깊고 곧은 시선으로 응시하며, 미끼를 던지고는, 묻는 말에 조용하고 분명하게 답한다. 결정적인, 대답 사이에는 절묘한 공간을 둔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두 사람을 응징하고 돌아오는 길, 캐시는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운전대에 엎드려 있다. 지나가던 차에 탄 남자가 미소지니misogyny를 섞은 비난을 퍼붓자, 고개를 스르르 일으킨다. 표정 변화 없이 그대로 있다, 눈을 깜박인다. 남자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타이어 레버를 꺼내, 한 손으로 잡고, 걸어간다. 감정이 그다지 실리지 않은, 일상적이고 태연한 동작이다. 흐물흐물하지만 정확한 스윙으로 남자의 차를 깨부수기 시작한다. 무의식중에 하는 느낌으로 멍했다가, 점점 단호해진다. 남자가 “Crazy fuckin bitch!” 라고 소리치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다가가, 창문 옆에 서서, 부드러운 톤으로 묻는다. “Excuse me?” 겁에 질린 남자가 도망간 자리, 도로에 흩어진 조각들 사이에 캐시는 서 있다. 입을 벌리고, 정자세로,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처럼 몸을 앞뒤로 덜덜 떨며. 캐리 멀리건은 말도 눈물도 없이, 캐시가 에너지를 쥐어짜 이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음을, 어쩌면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임을 드러낸다.


라이언과의 관계를 버팀목으로, 캐시는 한동안 현재를 산다. 작품에는 그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핫도그를 쥔 채 걷고, 과자를 집어먹으며 말하고, 빵을 우물거리며 책을 읽고, 캔디를 물고 운전하는 등- 주로 뭔가 다른 것을 하면서 먹는데, ‘맛을 느끼며 먹는다’기 보단, 무신경하고 야무지게 입에 밀어 넣는다. 비정상적으로 끊임없이 흘러나가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행동인 듯 보이기도 한다. 라이언을 초대한 저녁 자리에서는 다르다. 타인과 정식으로 하는 식사여서 그럴지도 모르나, 전과 달리 음식을 의식하고 있다고 할까. 어색해서 먹기만 하는 것이든 어쨌든, 의지와 활기가 묻어난다. 엄마가 라이언의 직업을 칭찬하자, 대놓고 눈을 치켜떠 노려보며 불편한 기운을 숨기지 않지만, 라이언이 농담 섞어 적절하게 답하자 조용히 미소 짓고, 유머를 주고받으며 천천히 균형을 되찾는다. ‘극복’한 건 아니다. 상처를 그대로 기억하며 현재를 살기를 택한 것 같다. 평범하게 수줍어하고, 어색해하고,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트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사랑스러워 속상하다. 캐리 멀리건은 그 평범한 기쁨 속에, 공간을 만들어 유지한다. 앞으로의 흐름을 관객이 견딜 수 있도록-혹은 더 견딜 수 없도록.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집 앞의 메디슨을 보자, 캐시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적의 없이 솔직하게 머뭇거리며 사과한다. 그러나 메디슨이 ‘비디오’의 존재를 말하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화를 내거나 대꾸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과거를 잊고 살라니, 캐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봐야만 했다.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얼굴을, 카메라는 살짝 아래쪽에서 담는다. 입과 눈, 뺨이 점점 일그러지고, 보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눈을 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고개가 돌아가고 눈이 꽉 감긴다. 살짝 진정해 다시 화면을 곁눈질하자마자, 라이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겁해 입과 목을 떨며 소리 내 숨을 들이쉰다. 얼굴에서 시작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핸드폰이 손에서 떨어진다. 캐시가 붙잡고 있던 버팀목이, 별안간 그를 휘감더니, 빠져나올 수 없는 과거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라이언에게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지 않은 채 솔직했던 캐시는, 이제 모두 드러내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수첩에 적은 남자들을 대할 때처럼 연기하며 협박한다. 여지를 주지 않는다. 애원과 모욕에 반응하지 않는다. 뭘 할 거냐는 물음에 간드러지는 말투로 놀리듯 “I don’t know.”를 뱉으며 슥 사라진다. 최선을 다해 능글맞다. 즐겁다는 듯한 미소를 띤다, 속이 이미 새카맣게 타 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립스틱을 바르고, 물건들을 천천히 꺼내고, 느릿느릿 흙길을 걷는다. 작품이 다 끝난 후 다시 떠오르는 적막한 얼굴이다, 죽음의 예상이 담겨 있는. 그렇게 캐시는, 지독하게 완벽한, 마지막 연기를 펼치다 죽는다. 이후 그 없이, 그가 계획한 엔딩이, 비터스윗bittersweet한 카타르시스가 이어진다. 캐시-캐리 멀리건의 연기가 잔상으로 남아, 계획의 빈틈을 메웠다. 숨 막히게 멋지고 아팠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글을 시작하기 전, 캐리 멀리건의 필모그래피를 훑다가, 생각보다 본 작품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유명한 <드라이브>(2011)에도 나왔었구나. 기억하고 있었으나 떠올리지 못했다. 니콜라스 웬딩 레픈과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한 다른 작품 <온리 갓 포기브즈>(2013)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없이는 떠올릴 수 없다. 내가 전자보다 후자를 더 나름 ‘재미있게’ 본 까닭 중 하나다. 그러니까, ‘주인공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전형적인 유형의 여성’ 역할로 나오더라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캐릭터의 인상은, 달라질 수 있다. 배우의 탓은 아니다. 데이지와 아이린 모두 ‘남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이 수식이 일컫는 것은 여성이지만, 초점은, 남자에 있다.


<와일드라이프>의 진도, <프라미싱 영 우먼>의 캐시도, ‘남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아름다운 여자’라고 말할 ‘수는’ 있는 인물이다. 진과 캐시의 캐릭터 설정에 모두 ‘미모’가 있기는 하나,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진은 ‘아름다움’을 생존 수단으로 택했지만 그로 인해 괴로워하며, 결국 홀로 서고, 캐시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남자들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전형성을 입은 듯 보였다가, 그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더 돋보였다.


그 한가운데에 캐리 멀리건이 있었다는 묘사를, 지금껏 늘어놓았다. 진일 때의 그가 입체적인 서사와 감정 표현을 은근히 입었다면, 캐시일 때는 아예 다 깨부수고 독보적으로 볼드하게 쌓았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화면 속에서 목격했다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뛰어난 이해력과 표현력에, 영리한 감각과 풍부한 분위기를 더해, 감독이 의도한, 또한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모습의 인물이 된다. 앞서 데이지 뷰캐넌의 외모가 취향이 아니라고 했었다. 카산드라 토마스의 것은 약간, 취향이었다. 애초에 문제는 눈꼬리나 머리카락의 모양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캐리 멀리건이 좋다. 마음껏 나빠지고 우울해하는, 그러나 ‘당신’이 그린 이미지를 뒷받침하지 않는 방식으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쁜 꽃이기를 거부하고, 나는 애초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며,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향해 뻗은 손을 비틀고 조각낸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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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목걸이를 숨기는 캐시를 자꾸 상상했다.

아무런 위화감 없는 캐시와 게일의 관계, 레번 콕스와 캐리 멀리건의 편하고 쿨하고 담백한 직장동료-여성 유대감 케미가 매우 좋았다. 캐시가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됐을 다른 타임라인이 필요하다. 함께 ‘shitty franchise café’에서 티격태격 커피를 내리고 고객을 무시하며 늙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고프다.


<프라미싱 영 우먼>(2020). IMDB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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