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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y 25. 2021

어슴푸레했고, 더디었고,

이상희




<누에치던 방>(2016, 감독: 이완민)

<5월 14일>(2018, 감독: 부은주)

<아득히 먼 춤>(2016, KBS2)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리다’. 항상 비교를 내포하는 형용사다. ‘(다른 것에 비해) 느리다’는 뜻이다. <분노>(2016). 오니시 나오토는 ‘느리다’. 느린 그대로 균형을 잡아 리듬을 이룬다. 속도를 맞춰 걷는 유마의 존재는, 그가 안정적으로 리듬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누에치던 방>(2016), 채미희도 느리다. 말씨도, 걸음걸이도, 손짓도, 감정에 대한 판단도 모두 느려 그의 실루엣은 뒤쳐진다. 미희에겐 미희만의 속도가 있다. 리듬을 이루지는 못한다. 지금껏 홀로 균형을 잡지도, 자신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이를 만나지도 못했다.


합격자 명단을 보고 눈을 깜박, 한숨을 내쉬지 않고 입을 조금 벌려 ‘삼킨다’. 말, 눈물, 화, 숨도, 그렇게 매번 삼켜 왔을 것 같다. 결심하고 자의로 꾹 참는 게 아니다. 내보낼 타이밍을 매번 놓친다. 관습적이고 ‘보편적인’ 질문과 예의, 관계, 부모가 지은 이름으로 불려야만 하는 공간들에 미희는 숨이 막힌다. 그러다 편히 숨을 쉬는 법을 잊는다. 고등학생 미희가 샤프심을 뚝뚝 부러뜨리고 약식을 꾹꾹 눌러 먹으며 본심을 중얼거릴 때, 보는 나도 숨이 다 막히는 것 같았다.


자꾸 놓쳐 누르고 누르다가, 턱까지 차오르면 날카롭게 터트린다. 부모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모르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살피던 옷을 점원이 재빨리 가져가 포장하자, 미희는 잠깐 정지해 있는다. 천천히 카운터로 가, 노여움을 꾹꾹 누르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요, 제가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눈은 아래를 향한 채 이리저리 구르고, 입은 살짝 열린 채 비틀려 있다. 그 상황만 보면, 당황스럽다.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다. 사법고시에 또 떨어지고 애인과도 헤어졌는데 돈도 일자리도 없어서-따위 정보의 나열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상희는 상황이 보여주지 않는 것을 드러낸다. 설명할 수 없는 상태를 설득한다.


<누에치던 방>(2016). 출처: 다음영화.


카드사 영업 직원에게 수입을 물을 때, 모텔에 들어가 숙박비를 물을 때, 미희는 뚜벅뚜벅 다가가, 우뚝 서서 고개를 약간 내려 시선을 아래로 둔다. 천천히 돌진하듯 질문한다. 은근함이 없다. 요령이 없다. 결심한 듯 솔직한 어설픔은, 일상적 ‘연기’를 하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성숙과 익주는 ‘이상하다’. 거짓말은 해도 ‘연기’는 하지 않는다. 지하철 역사에서 공연을 하고, 철학이나 사회학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나간다.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인다. 예의를 차리지 않고 속에 있는 말을 턱 꺼내 놓는다.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지 못한다.


‘보편적인’ 세계에 끼어 숨이 막혔던 미희는, ‘이상한’ 세계에 들어가 숨을 틔운다. 미희는 성숙을 ‘찾아간다’. 속이려는 의지조차 없다.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입은 “나 기억 안 나?”라고 말하지만, 눈은 도와달라고 말한다. 그날 처음 만난 성숙 옆에 앉아 미희는 운다. 갑자기 찾아온 익주가 왜 이름을 지웠냐고 묻자,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 “좀 그렇잖아요 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 같고.” 목소리에 긴장이 없다. 전처럼 호흡을 쥐어짜 말을 뚝뚝 끊거나 급히 뱉어내지 않는다. 톤과 흐름이 부드럽다. 천천히 단어들을 굴린다.


<누에치던 방>(2016). 출처: 다음영화.


성숙은 미희를 모임에 데려간다. 그가 주제를 던지면 모인 이들은 의견을 내놓는다. 논리 정연하진 않지만, 솔직하고 나름 편안하게. 미희는 주위에 막을 형성하고 나서 겨우 입을 연다. 불편해 목이 꽉 닫혀 있다. ‘힘들어요’로 시작한 문장은 ‘버겁고’, ‘부끄럽고’ 따위 단어들로 이어진다. “여기도 힘들어요, 이런 거 왜 물어봐요 근데?” 일어난다. 극적으로 박차고 나가는 모양새는 아니다. 빨리 떠나고는 싶은데, 동작이 빠릿하지 않아 주섬주섬이 된다.


익주의 고백에 미희는 조용히 글썽거리는 얼굴로 창밖을 본다. 유령 같다.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옆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사선으로 내리고 눈을 깜박인다. 어색하게 비틀거리며 또, 주섬주섬 자리를 뜬다. 그 후 성숙과 만나 갑자기, 쏟아낸다. 날카롭게 떨리는 소리로 눈썹을 치켜올리고 독기 가득하게 쏘아댄다. 눈은 아래를 향해 번들거린다. 이번에는 다르다. 돌아오는 게 있다. 성숙은 맞서지 않고, 나직하고 따스하게 감싼다. 성숙과 있으면 미희는 솔직해진다. 웃을 때는-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히 하거나 흐느끼듯 흐흐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 줄줄 울었던 그는, 병원 침대에 누운 성숙을 보고 흐느낀다. “성숙아 어디가 아파.”, 여리게 묻는다.


<누에치던 방>(2016). 출처: 다음영화.


따스한데 안일하지 않은, 갑갑하고 이상한 이야기였다. 역시 갑갑하고 이상한 주인공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던 건, 이상희 때문이었다. 나직하고 둔한 음색, 천천히 늘이는 말투. 때로 관념적이고 연극적인 대사들은, 그의 입을 통해 사람의 말이 되었다.


어떤 공식을 따르려다 뒤집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미희는 어설프게 두두두두 달리면서 어떻게 됐냐고 들뜬 목소리로 묻는다. 해맑게 웃는다. “못봤다아아아아아-!” 하고 소리친다. 허구적 들뜸은 실물을 맞닥뜨림으로써 깨진다. 유영과의 만남도 그렇고- 실재하는 인간을 추억거리나 극복의 수단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제스처일까. 웃을락말락 움찔거리던 입꼬리는 근경의 날카로운 말과 함께 굳는다. 그렇게 작품이 끝난다. 이상희의 애매한 표정이 시야 끝에 들러붙어, 자꾸 ‘이상한’ 것들을 떠올리고 곱씹게 했다.



<5월 14일>(2018). 출처: 다음영화.

 

<5월 14일>(2018) 속 사람들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민정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방향은 일관되고, 일방적이다. 말하고 지시하고 부탁하고 요구하고 핀잔을 주고, 기다리지 않는다. 민정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가버린다. 민정은 먹고 웃고 대답하고 양해를 구하고 시키는 것을 하고 떠안기는 것을 받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참고 쫓기고 뛰고 걷고 거절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다. 점점 지친다.


상호작용은 없다. 30분 내내 카메라는 거의 민정만을 담는다. 터지기 전까지, 심리는 절대 이상희의 얼굴로만 드러난다. 충분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영기를 뜨악하게 바라보는 눈, 지쳐 자주 내리깔리는 눈. 툭 끊어지는 전화에 뚱하게 벌어지는 입, 체할 듯한 상황에서도 어쨌든 야무지게 음식을 오물거리는 입. 집중할 때 혀를 내미는 모습, 잠에서 깨어나 누에고치처럼 몸을 이불로 둘둘 감고 앉아 있는 모습, 바람을 맞으며 걷는 모습 하나하나가 말한다. 터지는 순간은, 기대했을 때, 언 마음이 녹을 뻔했을 때다. 조심조심 편지를 가지고 나와 배시시 웃는 뺨에 너무 순수한 기대가 있어, 무너짐이 두려워졌다. 민정은 주저앉는 대신 터트린다. 미희의 절박한 날카로움과는 다른, 벼락같은 분노. 시원시원하게 따지다, 굵게 내지르기도 한다.


“이쁘네.” 슈퍼 주인장이 지나가듯 흘린 말에, 피곤이 가득하던 미희의 뺨이 살짝 언다. 곧바로 반응이 나가지 않는다. 느릿느릿 약과를 까 건네는 주인장의 보글보글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서서히 눈물과 웃음이 함께 번지며 씩씩하게 인사하는 이상희의 눈가는, 글쎄, 잘 어울렸다. 이 씬을 위해 이야기는 여기까지 끌려 온 것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5월 14일>(2018). 출처: 다음영화.



<누에치던 방>의 주인공은 미희와 성숙(+익주)이었다. 스스로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5월 14일>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민정, 그의 감정 변화가 중심이었다. <아득히 먼 춤>(2016)은 조금 다르다, 화자는 이나, 주인공은 현과 파랑이다. 현은 파랑을 담음으로써 주인공이 된다. 파랑의 춤은 말이 아닌 것을 통해 관객에게 닿는다. 수진의 대사는 한 조각일 뿐이다. 핵심은 현에게 드리워진 파랑의 그림자다.


형사는 묻는다. “왜 죽은 것 같아요?”(무례하다.) 관객의 머릿속에도 맴도는 질문이다. 파랑의 죽음은 사건이고 물음표다. 초반에 실마리들을 던져두고, 풀어나간다. 기억으로 대상을 ‘재’관찰하는 방식이다. 관객은 관찰자적 주인공 현의 입장에서 파랑을 바라보게 된다. 이해하지 못하다, 어쩔 수 없이 기억하다, 결국 일부를 이해하는 과정을 함께한다. ‘이해하지 못함’은 대사에 담겨 있으나, ‘이해함’은 그렇지 않다. 이상희는 현이 입으로 하지 않는 말을, 눈과 떨리는 뺨으로 한다.


<아득히 먼 춤>(2016). KBS2 유튜브 영상 클립 스크린샷.


현은 답한다. “안나요. 기억, 안난다구요.” 둔하게 머뭇거리는 투다. 눈은 허공을 향해 있다. 뺨은 창백하다. 말도, 걸음도, 눈도, 멍하다. 장례식장, 먹지 않겠다는 정빈을 슬쩍 응시하고, 말한다. “나 주세요.” 숟가락을 들다, 엉엉 우는 슬기를 툭 본다. 차분하나 오기가 묻어나는 시선이다. 현은 태연함을 유지하며, 그것을 티 낸다. 통곡과 흐느낌 사이에서 홀로 이상하기를 택한다. 죽음과, 당연한 듯한 애도에 대한 화다.


수진이 옆에 앉자, 티 나게 불편해한다. 눈을 맞추지 않는다. 뒤늦게 도착한 승열이 묻자, 조용히 답한다, “자살이에요.” 경위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납득이 되지 않아 머릿속으로 정보만을 되뇌고 있다, 소리 내 재생한 것 같다. 승열은 당황하고, 수진은 현이 괜찮지 않음을 알아챈다. 관객은, 다른 까닭으로 알아챈다. 현은 우뚝 서 있다. 말투는 둔하다. 고개와 입을 주억거리다, 승열이 가자마자 푹 주저앉는다. 시선을 허공에 두고 라이터를 찰칵거린다.


수진은 무섭다고 말한다. 현은 답한다, “왜 어떻게 통곡이라도 좀 할까요. 그럼 좀 덜무서운가. 다들 참 신기해. 언니는 슬퍼요, 나는 솔직히 실감도 안나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화나요.” 이상희는 꾹꾹 누르듯 말들을 끊어 뱉는다. 그런 현은 무섭다. 수진의 말대로 갑자기 터질까 걱정된다. 처음 볼 때는 현의 심리를 대사 그대로 받아들였다. 끝까지 보고 나면 달리 와닿는다. 그날의 대화가 치명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물론 파랑의 죽음은 현의 탓이 아니다.) 비교적 곧바로 마주한 수진과 달리, 무게를 감당키 힘들어 외면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화난다’는 거짓이 아니나, 전부는 아니다. 그 화는 파랑만이 아니라 자신, 또 상황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멍함은 일종의 방어 기제다. 이상희가 그 틈새에 담았던 위화감이 도피의 제스처였음을 깨닫는 순간, 그 표정의 깊이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득히 먼 춤>(2016). KBS2 유튜브 영상 클립 스크린샷.


현은 우연히 제안을 받는다. 파랑의 공연을 추모식에 올리는 것. 대놓고 타산적인 학생회장의 얼굴을 뜨악하게 응시하다, 소스라치듯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아니야, 아니야.” 난처해하며 눈을 굴린다. 조교의 설득에, 감당키 힘든 듯 고개를 쳐든다. 꽉 찬 숨을 뱉는다. 응급실에서 깨어난 슬기가 ‘내 탓’이라고 할 때, 역시 고개를 위로 들어 눈과 함께 굴린다. 입은 벌어진 채 움찔거린다. 추모 공연을 준비하다 동료들과 다툰 후 홀로 서서, 허공을 보며 숨을 푹 내쉬고 입술을 다신다. 이상희의 표정들은, 언뜻 유사하나 하나하나 다르다. 머뭇거리면서 정확하다. 드라마틱하지 않으나 와닿는다.


파랑의 공연 영상을 보고 학생회장 무리는 낄낄거린다. 현은 동그랗게 뜬 눈을 잠깐 내려, 차분히 그 웃음을 꿀꺽 삼킨다. 울컥 뿜어 맞서는 대신, 꾹 넘기고 능청스러움을 입는다. 태연하게 앙상블을 맡기곤 답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리를 뜬다. “오케이. 잘해보자.” 느릿느릿 나직하고 힘있는, 어딘가 연극적인 투다. 미세한 통쾌함을 느끼려는 찰나, 머리를 날리며 빠르게 걷는 현의 모습이 이어진다. 속도가 만드는 바람에 울분을 식히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납득하지 못했던 결말이고, 매번 실망을 안겼던 파랑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조롱당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아득히 먼 춤>(2016). KBS2 유튜브 영상 클립 스크린샷.


생전의 파랑과 있을 때, 현은 담담하고 쿨하지만, 멍하지는 않다. 작품을 시작할 무렵에는 능청스럽게 농담을 섞어 핀잔을 준다. 직설적으로 쏘아댈 때는 날카롭다. 의심은 역시나가 되고, 불신이 커진다. 행동과 태도에 실망하며 마음을 나누기를 그만둔다. 파랑을 참아내는 상황에 익숙해진다. 화가 반복되며 그 온도는 식고, 정도 식는다. 마지막으로 파랑이 찾아갔을 때, 현은 벽을 친다. 차갑게 밀어낸다. 옷소매에 붙잡힌 머리카락을 무성의하게 태운다. 내리깐 눈 언저리에 서늘한 짜증과 혐오가 있다. 현이 쏘아댈 때, 머리카락을 끊어낼 때, 카메라는 파랑의 얼굴을 담는다. 그의, 구교환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상희는 그에 맞게, 깔끔하고 ‘여지’ 없는 연기를 한다. 구교환의 아련함, 흔들림, 머뭇거림, 절박함….같은 것들이 돋보이도록. 관객은 숨을 죽이고 파랑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현이 파랑의 죽음을 ‘정리’하는 과정은, 결말을 납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염소의 집에서 찾은 종이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적힌 연출 의도를 읽는 장면은, 파랑의 춤이 현에게, 관객에게 닿는 순간이다. 중얼거림이 잦아들고 손이 떨린다. 종이에 있던 시선이 서서히 허공으로 향한다. 시간이 없어서 혹은 다른 결말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비로소 납득했기 때문에 현은 파랑의 결말을 ‘택한다’.


<아득히 먼 춤>(2016). KBS2 유튜브 영상 클립 스크린샷.

 

앞서 묘사한 현의 표현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제스처가 자주 있었다. 추모식 공연이 끝난 후, 마지막 장면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현은 다시 올려다본다. 동작 자체로는 유사하나 전달하는 감정과 분위기는 다르다. 참기 힘든 듯 눈과 고개가 구르거나, 입이 벌어져 움찔거리지 않는다. 깨끗하고 후련한 느낌인데, 아주 홀가분하지는 않다. 파랑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이상희는 그 경계를 담으며, 말없이 이야기를 정리한다.


생략과 맞물림을 적절히 택한 극본/연출에, 능숙한 두 배우의 독특한 스타일이 만나, 드문 작품이 탄생했다. 단정 짓지 않는 구교환 특유의 표현법은 신파랑을 자꾸 알고 싶게 했다. 거리를 둠으로써 훅 다가왔다. 현이 멍하게 목격하고 떠올리고 기억하고 깨닫는 순간들을, 이상희는 담담하게 눈에 담았다. 남다른 깊이로 화면에 내려놓았다. 현은 파랑을 담는 눈이면서, 현으로 존재했다. 작품의 채도, 속도, 온도는 현의, 이상희의 것이었다. 어슴푸레했고, 더디었고, 따스했다.


<누에치던 방>(2016). 출처: 다음영화.




이상희가 스크린 속에서 웃으면, ‘상처가 하나도 없어’(<누에치던 방>) 보일 때도 있고, 너무 많은 것을 겪어 무뎌진 것 같을 때도 있다. 이상희는, 이상하다. 어딘가 어설픈 그대로 완전하고, 매끈하지 않은데 빛이 난다. 무던한 듯 여리고, 연약한 듯 단단하다. 따스하다. 이상하다, 한 번도 그런 나를 그린 적이 없었는데, 그는 나도 따스한 사람이고 싶게 만든다.



 



+

부끄럽지만 한국 여성 배우에 대한 첫 번째 글이다.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독립영화는 그래도 보는 편이었지만, (도피성인지..) 언젠가부터 취향이 자꾸 해외로 가버리는 중이다. 언젠가 써야지 하면서, 만약 쓰게 된다면 첫 번째는 이상희가 될 것이라고, 구교환 글을 쓸 무렵 생각했다. 짐작이 실현되기까지 몇 년이 걸린 것은, 내가 이상희를 처음 만난, 그에 대해 쓰고 싶게 만든 작품을 언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늦고 아쉬운 글이 되었다.  


(다음을 쓰게 된다면 이민지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유사하게 언급할 수 없는 작품이 생기고 말았다. 구교환을 올릴 때는 알지 못했으므로, 이슈화 된 후에도 내버려 두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한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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