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리 플라자 Aubrey Plaza
<더 리틀 아워즈(The Little Hours)>(2017, 감독: 제프 바에나)
<라이프 애프터 베스(Life After Beth)>(2014, 감독: 제프 바에나)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Happiest Season)>(2020, 감독: 클리어 듀발)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를 튼 것이 발단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라니. 번역된 제목에는 조금도 끌리지 않았으나, 맥켄지 데이비스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팔짱을 끼고 있는 스틸컷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 멋쟁이들이 우당탕 연애하는 모습을 가볍게 즐기려던 것뿐이었는데, 아직 퀴어 피플의 현실은 픽션 속에서도 가벼울 수 없었나 보다. 애비와 함께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던 나를 끝까지 견디게 한 건, 드문드문 등장하는 라일리의 존재였다. 당연히, 오브리 플라자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돌아버린’ 연기로 유명하다는 것, 아마 나도 곧 그에게 돌아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도.
그를 처음 목격한 건 몇 년 전, <크리미널 마인드>와 스펜서 리드에 돌아 있을 무렵이었다. 캣 아담스는 모든 면에서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백 명이 훌쩍 넘는 ‘언썹’들 중 손에 꼽을 강렬함이었다. 늘 그렇듯 과몰입 중이었으므로 -리드를 괴롭히다니 용서 못해- 하고 있었음에도, 캐릭터의 ‘매력’은 매우 와닿았다. 이 배우의 연기를 한 번 더 보면 분명 사랑에 빠지리라 짐작했다. 그 ‘한 번 더’까지가 꽤나 오래 걸렸다.
라일리로 크러쉬가 온 후, 본격적인 덕질을 위해 제프 바에나 연출작을 연달아 둘 보았다. 오브리 플라자는, 화자는 아니나 작품의 중심 톤을 잡아 주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희한하게,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홀로 저만치 튀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예상할 수 없는’ 연기였고, 매력이었다.
<더 리틀 아워즈>(2017), 첫인상부터 남다른 페르난다. 당나귀를 질질 끌며 주위를 살핀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와중 능숙하게 수녀복을 입는다. 지네브라와 마주치자, 경계하는 눈초리로 대강 둘러대고, 왜 묻느냐고 되묻는다. 되려 지네브라보다 집요하다. 리르코가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목과 눈에 힘을 잔뜩 줘 무서운 기세로 욕을 쉬지 않고 내지른다. 홀로 남자, 무언가 숨기는 듯 눈을 슬쩍 굴린다.
바로 그 눈이다. 진하게 곡선을 그리는 눈썹 아래, 굉장히 커다란. 범위가 넓은 흰자위와 날카롭게 또렷한 눈동자. 치켜뜨고, 때론 굴린다. 희번덕거리며 굴러가는 그것은, 왠지 눈이 아니라 '눈깔'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하는데, 매번 다른 동작과 섞는다. 즐겁게 놀 때는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눈웃음과 섞고, 장난기가 발동하면 어깨를 움츠리고 사선으로 응시한다. 공격이 목적이라면 부릅뜨고 노려보며 곧 돌진할 듯 얼굴을 앞으로 내민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초점이 약간 나가 있고, 수줍어할 때는 굴렸다 살짝 내리깔고 또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같은 제스처를 다양한 뉘앙스로 사용해, 순간의 감정과 함께 일관된 캐릭터성을 표현한다.
중세 수녀들의 대사를 현대적 말투로 쓴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캐릭터들의 매력을 부각했다, 특히 페르난다의. 깔끔한 음색에 곧은 발성. 톤이 낮은 편은 아닌데 귀찮다는 듯 힘을 빼고 깔아 뱉을 때가 많다. 주로 태연하고 단조롭게 늘어놓다가, 그대로 힘을 줘 별안간 질문을 쏟아 내거나 소리를 질러버리면 상대는 당황한다.
페르난다는 관객에게조차 패를 드러내지 않는다. 개성은 강한데, 무엇인지 모를 비밀 때문에 캐릭터를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제네브라처럼, 의아해하며 관찰하게 된다. 늘상 권태로워 보이면서도,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듯 치켜뜬 눈으로, 모두를 지켜보고 때론 경계한다. 허공을 노려보며 빵을 쥐어뜯다가, 저 멀리 창밖에서 들리는 리르코와 신부의 대화를 캐치하곤 고개를 슥 돌린다.
인물마다 비밀을 감출 때 쓰는 방법이 다르다. 페르난다의 것은 그다지 안 괜찮아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먹힌다.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의심조차 못하게 하지도, 의심을 받을 때 설득력 있는 변명을 하지도 않는다. 핑계를 대강 만들어 놓고, 통하든 통하지 않든 특유의 뻔뻔한 태도로 의심을 튕겨낸다. 마레아 수녀가 미사를 빠진 까닭을 물을 때도, 토마소 신부가 고해성사 내용을 베꼈냐고 할 때도, 그저 태연히 둘러댄다. 믿게 하려는 의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굴하지 않고 입장을 유지할 뿐이다. 추궁하자 오히려 따진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혹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상대는 제풀에 지친다. ‘원래 그런 애’로 여기게 된다. 성격이 드러나는, 희한하게 성공적인 전략이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질문이 들어오면 간단히 욕과 눈빛을 쏘아 제압한다. 리르코만 보면 눈을 부릅뜨고 상당히 본격적으로 괴롭히는데, 일종의 ‘놀이’다. 알레산드라의 화풀이에 따라가 합세하기 직전, 얼굴에 장난기가 돈다. 마세토를 공격하는 뉘앙스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진지하게 경계한다. 그가 걸어오며 웃는 걸 보곤, 눈이 번뜩인다. 쟨 누구냐고 묻더니, 갑자기 빗자루를 들고 돌진한다. 도끼를 목에 갖다 댄 채 끊임없이 공격적으로 묻는다. 마레아 수녀가 달려와 상황을 설명하자 도끼는 내려놓아도, 눈빛은 풀지 않는다. 한 번 봐준다는 투다. 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모든 움직임은 그냥 하는 게 아니다. 홱 돌아버린 채 한다. 오브리 플라자만의 난리법석이다.
마세토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달라져도, 태도에는 유사한 데가 있다. 웃음기 없이 다가가, 목에 칼을 가져다 댄다. 눈을 사선으로 맞춰도, 옷을 벗기고 위에 올라타도, 유혹보단 위협,적이다. 로맨틱은 가당치도 않고 섹슈얼한 면으로도- 마세토에게 끌리는 것 같지가 않다. 비유적 의미의 ‘헌팅’이 아니라 진짜 ‘사냥’에 가깝다고 할까. 후에 페르난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떠올리며 웃게 되는 장면이다.
오히려 마세토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마르타를 향한 눈빛에선 로맨틱한 수줍음과 끌림이 묻어난다. 참기 힘들다는 듯 미소 짓는다. 둘 사이에 선이 연결된다. 지네브라가 지난밤에 대해 묻자, 겉모양 만으로는 비슷한 표정을 한다. 다만 그 속에 로맨스 대신 장난기가 담겨 있고, 웃음이 향하는 방향이 상대가 아니다. 연결이 아닌 단절의 제스처다. 지네브라는 상태와 감정을 드러내며 머무르고, 페르난다는 거리를 둔 채 비밀스러운 매력을 흘리고 떠나버린다.
이입은커녕 이해도 어려운데, 그게 핵심이다. 놀라고, 약간 무서워하다, 기대하게 된다. 저 ‘수녀’에게서 다음엔 뭐가 튀어나올까. 수녀원의 통제권은 토마소와 마레아(결국엔 주교)에게 있고, 재력은 알레산드라(의 아버지)에게 있는데, 왠지 페르난다는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 호감을 사거나 무리에 섞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장난을 치고, 끼를 부렸다가 다음 순간 무관심하게 대하고, 무시하거나 돌연 공격한다. 흐름을 끊듯 뚝 잘라 답하거나, 미묘한 포인트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갑자기 따져 묻거나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능숙하게 연장을 들이대거나 입에 문다. 이런 ‘이상한’ 행동들이 죄다 매력의 일부로 작용하며 효과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까닭은, 오브리 플라자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정체’가 밝혀지는 서사가 있다면, 전후의 표현법을 달리해 연기할 수도 있겠으나- 오브리 플라자는 페르난다가 마녀임이 드러난 후에도 같은 톤을 유지한다. 주문도 일상적 말투로 왼다. 주교와 대면하는 순간, 뉘우치거나 변명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반항하거나 흥분하는 기색도 없다. 손을 모은 자세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죄목에서 ‘마녀 의식’이 언급되자 눈알을 굴리고, 주교가 “방금 눈알 굴렸어요?”라고 묻자 “아니요.”라고 답한다. 눈을 사선으로 치켜뜬 채 어이없다는 듯(약간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간결한 명장면이다. 그 맥 빠지는 태연함은 수녀로서도 마녀로서도 튄다.
시크릿 효과가 사라지면 매력이 사라질까? NEVER. 이런 인물에게 평범한 진심이 슬쩍 비치는 순간 사로잡히는 법이다. 사건이 ‘일단락’된 후 한풀 꺾인 상태로 “마녀인 거 말 안 해서 미안해, 너네 다 마녀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어.”라고 진지하고 매가리 없이 중얼거릴 때. 지네브라의 물음에 옆으로 눈을 굴려 슬며시 웃으며 “Yeah.”라고 답할 때. 경계가 풀리고 속내가 보인다. 양쪽의 생활과 동료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심이 와닿는다. 이 마녀수녀를, 다른 방향으로도 사랑하게 된다.
페르난다는 비밀을 감추고 있어 수상했다. 또 그와는 별개로 이상했다. <라이프 애프터 베스>(2014), 베스는 스스로도 비밀이 있음을 모르는, 오히려 부모에게 ‘속여지는’ 상태다. 이상하나, 수상하진 않다. 나사가 빠진 듯 멍하다. 잭의 시선으로 전개되고, 그가 상황을 깨달음과 함께 베스의 상태도 점점 ‘좀비스러워’ 진다. 태연하고 사랑스러웠다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야해진다. 조짐은 처음 다시 만난 날부터 보인다. 잭을 다락으로 질질 끌고 갈 때, 이미 눈과 입가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 있다. 그 특유의 눈알에선 유혹과 위협의 뉘앙스가 한 번에 풍긴다. 핫hot과 크리피creepy가 혼합되어 있다가, 점점 크리피의 비중이 커진다.
전형적으로 ‘좀비스러운’ 움직임들을 ‘오브리답게’ 표현하는 모습도 볼만하다. 흰자위 범위가 넓어 눈을 멍하게 뜨면 드라마틱한 효과가 난다.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입을 벌린 채 눈에 힘을 주고 허공을 노려보는데,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중얼거리다 별안간 고개를 꺾으며 맹수처럼 입을 벌린다. 어깨를 살짝 굽히고 팔은 축 늘어뜨리고는 발을 성큼성큼 무겁게 디딘다. 홀린 듯 열심히 집중해 흙을 파낸다. 중심은 기울어진 채다.
베스의 ‘이상’한 상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바닷가에서다. 잭이 노래를 시작하자, 눈알이 불안하게 굴러간다. 짜증이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듯, 짙고 꽉 막힌 신음을 내며 난간을 망가뜨린다. 허리를 굽히고 고함을 토한다. 안절부절못하다 신경질적으로 웃고, 목을 긁는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잭을 집어던진다. 폭력적으로 때려 부수다, 바로 전의 행동을 잊고 어리둥절해하며 초조해하기를 번갈아 매초 오락가락한다. 오브리 플라자는 무지막지하고 정신없는 에너지로 화면을 뒤흔든다.
작품 특성상 베스는 딱히 깊이 다룰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하고, 무섭고, 우습고, 다소 혐오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본인일 테다. 핑계를 대며 집안에 가두는 부모님과 왠지 자신을 피하는 애인, 자꾸 끊기는 기억과 생겨나는 집착. 굴뚝으로 얼굴을 내민 채 턱을 들고 내려다보는 짧은 씬에서 퍼뜩 깨달았다. 잔뜩 치켜뜨고 있던 눈이 확장되며 번쩍일 때, 고인 눈물이 보인다. 관객은 잭의 입장에 서서 이 ‘몬스터’를 목격하고 있지만, 베스에겐 그저 베스 아니겠는가. 온갖 욕망이 멍하고 혼란스럽게 들끓는, ‘썩어가고 있는’, 어찌 보면 안타까운 상태를, 오브리 플라자는 그 모먼트로 드러냈다.
자신의 무덤 앞에서 베스는, ‘넌 내가 알던 베스가 아니’라는 잭의 말에, 온통 흔들리기 시작한다. 딱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의 장면은 아니다. 통제가 점점 불가능해진다는 암시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브리 플라자는, 감정을 으르렁거림으로 묻어버리고 좀비 러닝으로 퇴장한다. 이후 전개는 다소 당황스럽게 넓어진다. 좀비월드, 대사와 씬의 템포들은 긴급하다. 거의 좀비가 다 된 베스는 목을 눌러 그르렁거리며, 기울어진 자세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배회한다. 유리를 부순다. 다리를 벌리고, 몸 전체를 앞으로 굽힌 채, 주먹을 퍽 하고 날린다. 날랜 파이터가 아니라 둔한 몬스터의 파괴력이다. 동시에 “Motherfucker!!”라고 외치는데, 목에 힘을 잔뜩 줘 울림 없이 날카롭게 긁으며 내지른다. 페르난다의 야무지고 또랑또랑한 고함과는 다른 종류의 소리다. 좌석 시트를 우악스럽게 물어뜯으면서도, 눈은 애처롭다. 엉망이 된 몰골로 스펀지를 우물거리며 다 새는 발음으로 말하는-베스는 사랑스럽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오브리 플라자는 그렇다.
작품이 끝나갈 무렵, 베스는 엉망이 된 몰골로 오븐에 묶여있다. 목이 꽉 막힌 듯 끙끙거리거나, 야수처럼 포효한다. 버퍼링이 걸린 듯 꼬인 혀로 눈을 몰며 “Together forever.”를 웅얼웅얼 되풀이하는 연기라니. 살을 뜯고 싶은 듯 이를 드러낸 채 하악거리고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도, 문득 팟 하고 자아를 떠올리는 모먼트가 보인다. 흐리멍덩한 좀비 렌즈에 가려 특유의 ‘눈깔’이 두드러지진 않으나, 뒤에 숨어 있는 그렁그렁한 눈빛은 비친다.
다음은 <라이프 애프터 베스>의 명대사들이다.
“하이킹! 하이킹!”, “프리티! 프리티!”, “라벤더! 라벤더!” 효과적으로 웃기면서도 왠지 슬프다. 잭과의 하이킹은, 베스가 그냥 좀비1이 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축이었다. 말했듯, 화자는 잭, 이 이야기는 그가 ‘온 세상을 좀비월드로 만들어서라도’ 베스를 ‘제대로’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오브리 플라자는 크리피하고 코믹하게 대상화된 캐릭터 톤을 출중하게 유지하면서도, 이 존재의 심리를 나름 드러내 보였다. 좀비호러로맨틱코미디의 ‘핵심 오브젝트’ 역할을 독보적으로 소화하는 가운데, 엉망진창 괴로운 속내를 짐작게 하는 찰나들을 섞어 놓았다. 그르렁거리며 뱉는 단어, 흔들리는 고개와 거친 숨, 반복되는 단순한 제스처들에 베스의 몸부림이 녹아 있었다.
페르난다도 베스도 별로 화자의 입장에 있지는 않았다. 둘 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 패턴을 보였다. 페르난다가 계획적으로건 즉흥적으로건 스스로 뭘 하는지 알고 직진했다면, 특수한 상태에 처한 베스는 저도 까닭을 모르는 채 몸의 반응에 이끌려 이리저리 뻗쳤다. 오브리 플라자는 특유의 위어드한 에너지를, 캐릭터와 작품에 어울리는 형태로 분출했다.
그리고 다시,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2020)(라고 쓰고 라일리 최고라고 읽는다). 라일리가 어색하게 눈알을 굴리며 가위손을 한 채 두 주인공을 ‘sneak around’하며 곁눈질하는 순간, 미처 다 퇴장하기도 않은 그의 재등장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애비와 맞닥뜨리자, 세심한 붙임성으로 말을 건다. 굳이 아는 척 친한 척 들러붙으며 신상을 캐지 않고,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말을 건넨다. 움츠린 어깨를 으쓱. 눈알을 굴리며 솔직하게 어색해하는 게 매력포인트다. 장난기를 묻혀 머뭇거리며 대화를 잇다가, 공감을 던지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한다. 시니컬한 유머와 조심스러운 위로에 배려가 가득하다. 하퍼와의 ‘과거사’를 털어놓을 때도, 담백하게 열었다 넘기고 덮는다. 마음먹은 듯 혀로 입안을 쓴 후, 정면을 보고 빠르게 툭툭 끊으며 이야기를 잇는다. 살짝 견디기 힘든 듯 눈을 위로 굴리더니, 이내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각인시킨다. 등장 비율은 적으나, 비중은 크다.
언급한 역할 중 비교적 ‘평범하’다. 싸이코패스 살인범도, 좀비도, 수녀 혹은 마녀도 아니다. 포지션도 특별출연 느낌으로- 약간 ‘덜 본격적이’다. 그럼에도 펍에서 노래할 때, 한 손을 얼굴에 비스듬하게 댄 채, 눈알을 빙빙 돌리고 목을 까딱거리며 타는 리듬 같은 건, 숨길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배우 본인의 끼다 싶었다. 라일리와 오브리 플라자에게 자동으로 작업당한 이가, 나만은 아닐 거다.
대체할 수 없는- 어색하고 이상하고 크레이지한 매력이다. 오, 사랑스러운 위어도Weirdo. 오브리 플라자의 캐릭터들은, 한 영혼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돌아버려 나온 분신들 같다. 이 배우에게서는, 일정 농도 이상의 ‘이상함’을 기대하게 된다. 그 ‘예측불가함이 예상될’ 만큼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익숙해져도 절대 질리지는 않으리라. 앞으로도 오브리 플라자를 화면 속에서 목격할 때마다, 매번 다른 뉘앙스로 다음 문장을 외칠 예정이다.
“Oh my, THAT’S Aubrey crazy xxxkin’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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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 플라자의 오랜 파트너 제프 바에나의 첫 연출작 <라이프 애프터 베스>. 몇 년 전 매튜 그레이 구블러의 (일관성 있는) 필모에 있어 볼까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국 오브리 플라자 덕질로 보게 됐다. 소문만큼 별로는 아니었다. 연기들 덕이 클 것이다. 3년 후 나온 <더 리틀 아워즈>는, 비슷한 데가 있는데 감수성과 개성이 톡톡히 깊어졌달까- 아 그냥 취향이었다. 마구 웃으며 봤다. (얼마 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버릇>을 봤는데… 수녀원.. 뭘까..) 오브리 플라자가 제작을 했더라. 최근 SNS에서 그와 제프 바에나, 앨리슨 브리가 또 함께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언뜻 봤는데, 이미 크레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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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작품들을 본 후 해피이스트 시즌을 봤더라면 또 다른 느낌이 들었을 거다. 결국 라일리는 하퍼를 ‘깨닫게’하고 퇴장했다. 대인배 같으니라고. 애비가 라일리와 만나는- ‘홀리데이로코’의 전형을 깨는 결말이 났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별로 취향은 아니었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작품이 말하려는 게 분명히 보이기는 했다. 하퍼의 행동은 끔찍했지만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으니. 최고 끔찍한 건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제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