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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않인 Dec 17. 2021

고유의 기울기

알렉스 로더 Alex Lawther


 


<The End of the F***ing World(빌어먹을 세상 따위)>(2017, BBC, Netflix)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3, ‘Shut Up and Dance’(2016)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2014, 감독: 모튼 틸덤)

<프렌치 디스패치(The French Dispatch)>(2021, 감독: 웨스 앤더슨)

<라스트 듀얼(The Last Duel)>(2021, 감독: 리들리 스콧)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에서, 배우들은 주어진 동선을 철저히 지키며 연극적이고 엄격한 리듬을 따른다. 그래야만 계산된 요소들이 맞물려 완벽한 그림이 나온다. 언뜻 각자의 개성이 삭제될  같은데, 그렇지만은 않다. 배우의 이미지, 표현법의 디테일을 특정 방향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배경과 조화를 이루면 장면의 매력 또한 배가 된다.  컷들은 대개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색을 띰으로써 관객을 만족시키지만,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 마음  깊은 곳을 급습한다. 개인적으로, <프렌치 디스패치>(2021)  ‘The Moment’  하나는, ‘모리조 추락씬이었다. 연극 ‘굿바이, 제피렐리’, 어두운 무대 한구석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경 너머 슬픈 , 고요한 자세와 말투.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홀로말하다, 창문 너머로 떨어진다.  감독  장면이었지만, 완전히  배우만의 순간이기도 했다.


알렉스 로더. 그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이다. 여리지만 발성이 안정적이고 풍부해 가냘프기보다 섬세하다. 어조는 예민하나, 절제되어 있다. 나직하게 내면 갈라져 색다르고, 높게 내면 고운 색이 섞여 또 다르다. 강한 억양. 처진 눈과 진한 눈썹, 약간 비뚤어진 채 꼬리가 내려간 입술. 묘한 블루를 뿜는다. 입가의 선과 안정적으로 그늘진 목소리가 또래보다 성숙한 인상을 주지만, 다시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와 좁고 마른 어깨가 앳된 이미지를 부여한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그를 눈여겨보게 된 계기는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두 시간 반은 이 배우에게 있는 고유한 깊이를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품 전체에 깔린 앨리사와 제임스의 내레이션은 단순히 보조 서술 장치가 아니다. 연출의 핵심 중 하나다. 단순한 단어들을 탁월하게 묶어 놓은 대사가, 배우들의 목소리에 있는 담백한 울림과 만나, 매번 마음 정확한 곳을 건드린다. 앨리사가 속으로 하는 말과 겉으로 뱉는 말의 갭은, 끝내 제임스 옆에서 사라진다. 내레이션조차 진심이 아니던 제임스의 속내는, 앨리사를 만나고 흔들리다 뒤집힌다. 감정의 긴장이 생기고, 그것들이 오로지 한 사람과 얽혀 점점 퍼져나가다 온몸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 받아들인 후 수줍고 편안하게 드러내기까지를, - Graham Coxon의 가사를 인용하면, 그의 ‘State of mind’가, “Nothing’s ever really making any sense to me”(‘Angry Me’)에서 “I can’t stop thinking of you”(‘Walking All Day’)로 변하는 과정을 - 알렉스 로더는 특유의 섬세한 각도로 절절하게 표현한다.


우뚝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린다. 얼굴에 적당히 힘을 빼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표정을 유지한다. 말할 때는 항상 같은 톤을 쓴다. 그러나, 첫 화가 채 끝나기 전에 관객은 제임스가 ‘싸이코패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앨리사가 엄마의 사진을 들자, 굳은 채 눈을 껌벅거린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후로도 한동안 확장된 채 집중하지 못하고 번득인다. 무표정 속에 여린 상처를 꽁꽁 숨기고 있다. 눌러놓은 슬픔이 쏟아질까 두려워 반응이 흘러나오는 통로를 단단히 걸어버렸음이 언뜻 드러난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변한다’. 의식적 버릇이 성격으로 굳어지기도 하고, 그것이 사소한 만남을 계기로 깨지기도 한다. 예민함, 여림, 섬세함은, 느끼지 않으려 애쓰던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은 제임스의 성격이다. ‘자칭 싸이코패스’ 시절의 기계적인 딱딱함은 인위적인 방어막이다. 이후 앨리사와 함께하며 묻어나는 어색함과 어정쩡함은, 연습이 덜 된 감정들이 표출되며 나타나는 특징이다. 한편으로는, 감정을 한동안 억지로 감추거나 삭제해 온 탓에, 후천적 퍼스널리티가 된 것이기도 하다. 안타까우면서도, 그 모양이 나름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삐걱대며,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능숙함의 정도는 중요치 않다. ‘의도적인 영혼 없음’이, 빗장이 하나씩 풀리며 ‘진심이 담긴 어설픔’이 되어 가는 단계를, 알렉스 로더는 뺨과 입꼬리, 눈과 손의 떨림에 녹였다. 후반부 앞머리가 짧아져 짙은 눈썹이 드러나고 나서는, 그 움직임에까지.


“Sometimes I just let things happen. Even though I don’t want them to.” 제임스는 종종 고장 난다.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나도 내버려 두었다가, 도움이 온 후에야 겨우 풀려 반응한다. 황급히 지퍼를 올린 제임스는, 앨리사가 남자를 협박할 동안 굳은 팔을 어정쩡하게 올리고 고개를 움직인다. 흔들흔들과 끄덕끄덕의 중간쯤일까. 둘만 남자, 눈을 사선으로 돌리고 움직이지 않은 채 변명하듯 말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여전히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별로 없으나, 앨리사를 보는 눈빛 만큼은 풀려, 미세한 따스함과 편안함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욕을 잔뜩 먹은 식당 직원에게 머뭇거리는 사과의 미소를 보냈던 제임스는, 이후로도 앨리사가 ‘사람들과 그들의 물건을 존중하지 않을’ 때마다 불편해 하지만, 제지하지는 못한다. 앨리사가 춤을 추자고 손을 내밀자, 체념한 듯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굴리며 천천히 일어선다. 춤을 추는 건지 그냥 서 있는 건지 모를 자세로 흔들리다, 눈을 꽉 감고 겅중겅중 뛴다.


앨리사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칼을 재빠르게 손에 쥐지만, 얼굴에 있는 긴장은 긴장일 뿐 흥분이 아니다. 울음소리가 들리자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내린다. 어두운 옆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 간단한 동작에서,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제임스의 진심이 묻어난다. 어색하게 다가가 머뭇머뭇 감싸 안고, 고개를 돌려 천장을 본다. 확장된 눈, 아주 약간 벌어진 입. 이 기분은 뭐지, 이게 대체 뭐지, 하는 그의 머릿속이 들린다.


“I was good at feeling absolutely nothing.” 이제 제임스가 죽은 앨리사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는, 마음이 움직일 때다. 초반과 달리 얼굴에 일종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머뭇거리면서도, 보이는 제스처는 정직하다. 기분이 상한 앨리사를 풀어주려고 화분에서 꽃을 푹 하고 뽑아 컵을 찾아 꽂아 놓는다. 그러나 앨리사는 토퍼와 함께 들어온다. 꽃이 든 컵을 들고, 일어서다 멈춰 엉거주춤한 채로, 눈을 순하게 치켜뜬다. 입술을 달싹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대로 컵을 내려놓곤, 널브러진 재킷을 순순히 집어 소파에 걸친다. 잠든 앨리사를 굽어보다 아주 조심스럽게 기울어지듯 바닥에 누워, 늘어진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울음을 터트린다. ‘죽이기 위해서’라며 눈치를 살폈던 그는, 이제 상대 자체를 신경 쓰게 됐다. 완전히 깨달았다. 자신의, 또 앨리사에 대한 감정의 정체를.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진짜 살인의 기록을 맞닥뜨리고, 숨을 거칠게 토한다.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던 그는, 앨리사가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 고민을 끝내고 제때, 조금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행동한다. 그리하여 ‘원치 않는’ 살인을 하고는, 눈물 대신 콧물을 흘리며 떨지도 못하고 굳어있다. 내내 멍한 상태로 앨리사가 시키는 것들을 하다, 홀린 듯 쭈그려 앉아 시체를 들여다본다. 무얼 하냐,는 물음에, 눈이 동그래져선 모르겠다,고 답한다.


“Silence is really loud.” 앨리사가 떠난 뒤, 제임스는 내레이팅한다. 온몸에 힘을 주고 부들부들 떨며 꾹 참다가, 발작하듯 고개를 빠르게 푹 숙이며 울음을 터트리려다, 다음 순간 다시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뜬다. 진실로, “고요는 진짜로 시끄럽다.”는 느낌을 말없이 표현한다면, 바로 그와 같은 일련의 형태가 나올 것이다. 그 상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몸도 얼굴도 기울어진 채로 온통 떨며 다급히 부탁한다. 땅바닥에 누워, 그제야 온통 구겨지며 운다. 볼 때마다 정신없이 마음이 아려 오는 씬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 연기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절절하고 독특한 - 이 배우의 표정 하나하나가 새삼 감탄스럽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마음에 내내 담아두고 있던 엄마의 죽음을, 둘러대려는 목적으로 털어놓는 제임스. 여전히 떨면서도 중간중간 커다란 눈을 굴리며 형사의 반응을 살핀다. 헤어진 카페로 돌아와 체념한 채 앉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앨리사 옆에서 긴장과 기쁨을 꿀꺽 삼킨다. 조금씩 휘청거리는 몸과 고개. 웃음과 울음이 터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꽉 다문 입가에 미세하게 번지는 미소. 일정한 어조의 ‘OK’는 처음 만난 날에도 반복했지만, 뱉는 얼굴은 완전히 다르다. 편안하게 들뜬 눈이 곡선을 그리고, 꾹 다문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다. 알렉스 로더가 삐뚤빼뚤 그려 차곡차곡 쌓은 제임스의 진심은, 연출 의도를 시청자에게 적중시켰다.  


칭찬을 듣자 씨익 웃는다. 음악에 고개와 손을 삐걱삐걱 흔든다. 웃음과 동작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잠든 앨리사를 보고 감격스러운 듯 입을 다시며 울먹이는 미소를 짓는다. 제임스는 적응에 시간이 걸리고, 마음을 여는 데 계기가 필요하다. 레슬리의 집에 도착한 후 처음엔 계속, 몸을 어떻게 둘지 몰라한다. 괜찮냐는 물음에, 뻣뻣하게 상반신을 돌려 양손 엄지를 척! 정말 안 괜찮아 보인다. 똑같이 소파에 앉아 있어도 혼자만 목이 불편하게 구겨져 있다. 곧 ‘긴장의 긴장’은 풀리지만, 다른, ‘염려의 긴장’이 들어선다. 케첩과 머스터드를 종류별로 늘어놓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던져진 과자를 무의식 중에 가지런히 둔다. 못 미더운 제 아빠를 믿고 있는 앨리사의 안위가 염려되고, 그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눈썹에 힘을 주고 그늘진 눈으로 살피다, 종종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실패하자 입을 축 다물고, 결국 뺨과 눈시울이 붉어진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제임스가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은 몇 되지 않는다. 앨리사를 붙들고 있는 슈퍼마켓 주인을 협박할 때, 레슬리에게 “Don’t speak to her like that.”이라고 외칠 때. 그러니까, 앨리사가 위험할 때다. 총이 있는 척, 애써 눈을 부릅뜨고 협박하는 그는, 잔뜩 긴장해 위태롭다. 얼굴은 시뻘겋고, 눈빛은 흔들린다. 목소리는 있는 힘껏 짜내는 것 같은데도, 분명하다. 이뤄야만 하는 목적이 있어서다.


유니스를 얼결에 총으로 겨누게 되었을 때는 다르다. 하얗게 질려 곧 쓰러질 것만 같다. 정신과 총을 꼭 붙들고 있느라 말을 할 에너지도 남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으쓱한다. 유니스 같은 어른이라면 단박에 얘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파악했을 거다. 내렸던 총을 자기도 모르게 또 수평으로 들고 있어도, 둘 다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얼굴이 무너져 내리며, 덜덜 떠는 손으로 총을 건네며 자수하겠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거나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 순간 앨리사와 제임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서로를 지켰다. 제임스는 클라이브를 찔러야만 했고, 총을 들어야만 했고, 그걸 들고 홀로 달려야만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 바보야,라는 말은, 작품을 보는 동안 떠오르지 않았다. 줄거리를 다 알고 있으면서, 다시 볼 때마다 울었다. 그 까닭 중 하나는 알렉스 로더가 쌓은 제임스의 절실함이었다. 밤새, 그들은 함께 세상의 끝에 있었다. 앨리사가 자신의 ‘위어드 핸드’를 잡자, 고개를 머뭇머뭇 돌리더니, 결심한 듯 몸을 돌려하는 키스. 같이 떠나겠냐고 묻자, 울먹이며 뱉는 예스. 짧고 중요한, 조용하게 흔들리는 모먼트들을, 알렉스 로더는 섬세하게 포착했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시야를 가린 모자, 목이 늘어진 티셔츠, 굽은 어깨. 입은 말을 뱉지 못하고 삼킨다. <블랙 미러> ‘Shut Up and Dance’ 에피소드 속 케니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지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그저 좀 폼이 어설프고 소극적일 뿐 착한 이 같다. 오히려 그를 무시하고 놀리는 동료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장난감을 아이에게 건네며 보이는 미소는 해맑고 무해하다. 제임스는 이야기가 전개되며 성장하는 입체적 인물이었다. 케니는, 일종의 ‘반전’을 숨기고 있다. 위기에 처한 평범한 주인공에서 끔찍한 범죄자로. 드물지는 않은 플롯인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블랙미러식 연출, 알렉스 로더의 연약한 분위기와 연기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마지막 순간 충격의 구덩이에 던져지게 된다.


노트북이 보이지 않자 눈에 띄게 초조해하며, 날카롭게 동생을 부른다. 자신의 행동이 찍힌 영상을 보자 양 눈썹을 엄지로 문지르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자전거와 함께 휘청거리다 결국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길에 버려두고 가는, 케이크를 손이 아닌 팔로 어정쩡하게 받치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양들에 알렉스 로더만의 어쩔 줄 모르는 바이브가 있다. 남자의 끊임없는 고백을 듣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개와 입이 비뚤어진다. 얼굴이 찌그러지고, 울음이 터진다. 총을 발견하고 해야 할 일을 깨닫자, 숨이 곧 넘어갈 듯 입을 뻐끔거린다. 발작하듯 소리 지른다. 은행을 털기 전에 기절할 것 같다. 겨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뱉는 “Give me money.”가 애처롭다. 시뻘겋게 수축된 얼굴. 돈을 주는 은행원이 오히려 달래는 모양새다.


<블랙 미러> ‘Shut Up and Dance’. IMDB.


손을 쫙 펴서 위아래로 휘젓고, 고개를 빠르게 흔든다. 무의식 중에 눈썹이나 입술을 끊임없이 문지른다. 입을 꾹 다문 채 불안하게 호흡한다. 내내 곧 울 것처럼 목이 막혀서는 ‘지령’들을 따른다. 하나가 지나가면 체념한 듯 겨우 진정했다가, 다음 단계가 시작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닉 하기를 반복한다. 시청자는 초반 몇 분 동안 알렉스 로더가 드러낸 평범한 유약함에 감겨 있는 채다. 케니의 입장에서 의심할 여유 없이 사건을 따라간다. 그게 연출 의도다. 그 제스처들이 특별히 예민한 성격 때문만이 아니었음은, 결말까지 가야 밝혀진다. 숲에서 만난 남자가 “How young?” 이라고 묻자, 케니는 저도 모르게 눈을 괴물처럼 부릅뜨고 입을 일그러뜨린다. 고개를 흔들기 시작한다, 눈을 꽉 감고 마구 젓는다. 이제 이 ‘주인공’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놀랄 준비를 하라,는 신호다.


날이 저물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케니가 어두운 길에서 지친 발을 뗀다. 전화를 받는다. 확장된 눈과 얼굴에 경찰차 불빛이 반사되어 번득인다. 알렉스 로더는, 이 씬을 관람하는 이들이 케니에게 연민을 느껴서는 안됨을 알고 있다. 멍하니, 울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Exit Music’(Radiohead)이 탁월하게 무너뜨린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돌이키면 그제야, 알렉스 로더가 묻혀 놓았던 찝찝한 위화감이 떠오른다. 은근하고 적절했다.


<블랙 미러> ‘Shut Up and Dance’. IMDB.



이 배우의 고유한 얼굴은, 아주 초기작인, <이미테이션 게임>(2014)에서부터 보였다. 앨런 튜링의 ‘현재’, 동료들과 이니그마를 해독하던 때, 학창 시절이 번갈아 편집되어 있는 작품이다. 인물의 인생 전체를 기준 없이 늘어놓는 대신, 특정 이야기를 신중하게 골라 담는다. 그 선들이 교차해 마음과 동기를 드러낸다. 이런 작품이 주인공의 ‘과거’를 그리는 데엔 까닭이 있다. 앨런의 학창 시절은, 그의 ‘계기’를, 진심과 사랑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핵심적인 장면들이다.  


주황색과 녹색을 가르는 진지하고 신중한 손짓, 적당히 몰입한 얼굴, 야무지게 다물린 입. 머리 위로 당근과 완두콩이 쏟아지자 소스라치며 일어나 털어내고 또 털어낸다. 입은 살짝 벌어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나무 바닥에 갇히자 소리를 내지르지만, 비명보다는 발작적 신음에 가깝다. 새되게 갈라진다. 눈을 꽉 감고 끊임없이 두드리다, 갑자기 멈춘다. 크리스토퍼가 바닥을 들어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질려 덜덜 떨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다음 장면, 카메라는 먼저 천천히 복도를 걷는 두 사람의 등을 담는다. 부축을 받고 있어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움츠러들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역시 기울어진 채 말할 때 앞뒤로 흔들리곤 하는 고개, 그 동작과 같은 리듬으로 떨리는 목소리. 이번엔 카메라가 얼굴을 비춘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데다가 생각에 빠져 있는 탓에, 확장된 채 초점이 나간 눈이 보인다. 다시 카메라가 뒤를, 또 앞을 찍는다. 마침내 눈의 초점이 돌아와, 크리스토퍼를 향한다. 길지 않은 씬이었다. 카메라의 위치를 번갈아 배치한 편집은 탁월했다. 알렉스 로더의 섬세한 몸짓과 눈빛이, 앨런 튜링의 성격과, 감정의 흔들림을 드러냈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IMDB.


야외 대화 씬에서, 당시 앨런의 평소 말투가 비로소 들린다. 알렉스 로더는 입을 움츠려 목소리를 가느다랗게 내보낸다. 더듬듯 여러 번 열었다 닫기도 하는 디테일. 상대를 의식하며 바라보기보다 말 자체에 집중하는 탓에, 눈에 초점이 없다. 그 눈이 책으로 내려갔다가, 전처럼 크리스토퍼를 향하고, 웃음이 번지는 순간은, 상당하다. 이후로도 그의 시선은 자주, 같은 곳에 머문다.


어린 앨런의 마지막 씬은, 교장실이다. 마음을 꽉 닫아걸고, 방어적인 시선을 사선으로 던진다. 크리스토퍼가 죽었다는 소식에, 얼굴이 멎는다. 눈이 멍하게 번들거린다. 반복하는 “I don’t understand.”은 몹시 가냘프다. 입이 여러 번 열리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마침내 나오는 말은, “이제 가봐도 될까요.” 극적인 표정 변화는 물론 눈물 한 방울조차 없이, 알렉스 로더는 마음을 온통 흔들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표현한 앨런 튜링과, 세월의 간격을 두고 설득력 있게 맞물렸다.


그를 모르는 채로 봤다면, 당장 누군지 찾아봤을 거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연기였다. 그 후로 5년. 알렉스 로더는 TV와 극장을 오가며 흥미로운 작품들을 택해 꾸준히 연기해 왔다. 일관성 있으면서도 매번 다르게 인상적이었다.


<이미테이션 게임>(2014). IMDB.


 

2021년,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그는, 여전하면서도 새로웠다. <라스트 듀얼>(2021), 출연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이런 모습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제껏 주로 가만히 괴로워하던 그를 주로 봤던 내게, 이 어린 황제는 알렉스 로더의 배역으로서도 캐릭터 자체로서도 신선했다. 지정된 자리에서 전형성을 보여야 하는 인물이었다. 피에르나 자크 같은 남자들보다도 위에 있는, 중세 가부장제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 없이 즐기는 인간. 알렉스 로더는 굳이 특정한 남성성을 입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장점인 유약하고 예민한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살려, 그만이 두를 수 있는- 살짝 가볍고 장난스러워 크리피한 카리스마를 입었다. 물론 필요한 무게는 갖추고 있었다. 힘 있는 발성을 사용하면서도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깔지 않았다. 폼을 유지하면서도 최종적 권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흐트러짐을 개성 있게 보였다. 평면적이나 흥미로운, 그러나 작품 의도대로 깊이는 없는 인물을, 훌륭하게 완성했다. 그렇게 이 배우의 다른 가능성을 목격했다.


<라스트 듀얼>(2021). IMDB.


그리고 몇 주 후, <프렌치 디스패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는 이야기다. 주로 보였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이었으나, ‘특정 스타일의 작품에서 표현되니’ 연기가 새로운 범위로 뻗어나간 느낌이었다. ‘넥스트 벤 위쇼’라는 문구를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경력의 길이와 상관없이, 모든 위대한 배우에게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다시 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The End of the F***ing World>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독특한 제스처, 자세, 입모양, 말투.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진정성 있게 드러내는 감정. 꾹꾹 눌러 담는, 깊게 속으로 파고드는, 가냘프게 흔들려도 단단한 중심이 있는 연기. 그 섬세하고 어색한 기울기로, 소름 끼치는 범죄자도 권력자도 상처받은 소년도 다 해석해 내는 알렉스 로더. 꼭 ‘커다란’, ‘자연스러운’ 표현을 해야만 연기가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게 해 줬다.


<The End of the F***ing World>(2017, Netflix).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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