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사쿠라 安藤サクラ
<백엔의 사랑(百円の恋)>(2014, 감독: 타케 마사하루)
<어느 가족(万引き家族)>(201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꽃무늬 원피스, 복싱 글러브. 만사 귀찮은 듯 비스듬하게 기대 이쪽을 향해 있는 실루엣. 그 독보적으로 널브러진 이미지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안도 사쿠라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오쿠다 에이지의 딸’ 정도로 그를 떠올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하면, 머릿속에 그의 유명한 아버지를 떠올릴 자리는 사라진다.
틈만 나면 굽은 등을 긁적인다. 게임을 하며, 담배를 피운다. 아무렇게나 음식을 집어먹는다. 몸에 힘을 주는 것이 귀찮다는 듯 어정쩡하게 사지를 벌려 축 늘어뜨린 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닌다. 자전거에 올라, 엉덩이는 안장에 착 늘어 붙이고, 핸들 쪽으로 상체의 무게를 다 싣는다. 구부러진 채 천천히 천천히, 마지못해 페달을 꾸역꾸역 밟아가며 비틀비틀 운전한다. <백엔의 사랑>(2014), 이치코는 ‘nobody아무도 아닌 자’다. ‘생산적인 일’이라곤 전혀 하지 않고, 생기 없는 얼굴로 백엔샵 같은 곳에서 ‘소비적인’ 소비만 한다. 그에 대해 매일같이 핀잔을 들어도, 도리어 맞장구를 치며 어쩔 것이냐는 태연함을 유지한다.
이웃집에 살고 있을 듯 흔한, 최대한 보잘것없고 아무렇지 않은 분위기. 안도 사쿠라는 그 자연스러움도, 부자연스러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쪽같이 입혀낸다. 그런 이치코의 눈은 이상하다. 영혼이 하나도 없는, 그러나 누군가 잘못된-혹은 알맞은- 곳을 건드리면 갑자기 돌변할 기운이 있는. 그 눈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스른다. 백엔샵 본사 매니저는 “그 눈빛 뭐냐.”라거나, “손님을 상대할 눈이 아냐.”라며 핀잔을 준다. 체육관 관장은 부드럽게 말한다, “그런 눈으로 사람을 보면 안 돼.”
화났을 때는, 꼭지가 돌았음을 당장 표출하지 않고, 잠깐 삭였다가 말없이 물건을 부수거나 던진다. 후미코가 머리에 케첩을 뿌려도 미동도 않고 있다가, 별안간 앉은뱅이 밥상도 아니고 커다란 식탁을, 한방에 뒤집어엎는다. 그 힘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부동산에서도, 체육관에서도, 훔쳐보다 말을 걸면 죄지은 듯 도망간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긴장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몸을 끌고 다니고, 귀찮은 듯 말을 툭툭 던지던 이치코는, 그 테두리 밖의 세계에서는 움츠러든다. 약간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정도가 아니다.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입속으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 겨우 답한다. 긴장해 비음이 섞이고, 몸은 굽은 채 굳어 있다.
유지와 있을 때도 유사한 긴장이 있으나, 조금 다르다. 눈치를 살피거나, 종종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 자체보다는 복싱을 하는 동작, 전체적인 이미지에 먼저 끌린 듯 보인다. 초반 체육관 앞에서, 이치코는 홀린 듯 정지했었다. 희한한 집중력이 들어간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유지의 시합을 볼 때, 경기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치코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목을 앞으로 쭉 빼고 몰입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폭력적일 정도로 퉁명스러운 말을 뱉는 유지. 원래 그런 식의 인간이라는 것은 알지만, 설레어 저절로 환해지는 이치코의 얼굴을 보면 이 남자의 도를 넘은 무신경함에 화가 난다.
노마가 일은 알려주지 않고 끊임없이 말만 하는 와중, 이치코는 답을 않고 그저 계산 연습을 계속한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하고 있어 다른 곳에 쓸 신경이 없을 뿐이다. 어설프고, 느리고, 정신없어 보이지만, 열심히다. 이치코에겐 사람을 상대할 때 필요하다,고들 하는- 어떤 ‘태도’가 배어 있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애초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도 하다. 그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다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나 모양이 남들과 좀 다를 뿐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무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다가, 점장이 지시하면 빤히 보기만 하는 반면, 아주머니에겐 기꺼운 동작으로 폐기 음식을 건넨다.
자신의 몸이 타인의 폭력에 통제당했던, 끔찍한 사건. 이치코는 잠든 남자 옆에서 조용히, 별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동작으로 전화기를 들어 신고한다. 터벅터벅 나와 걸어간다. 하체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찡그린 채 ‘아파’를 반복해 빠르게 중얼거린다. 단순한 신체적 아픔의 표현이다. 울거나, 괴로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상처 입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순간 그렇게 한 것이다. 다음 날 노마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치코는 흠칫한다.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에/ 잘못한 것은 전혀 없지만 일이 알려지면 어떤 상황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인간과 자신을 엮어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등등의 심리가 섞인 반응이다.
고기가 잘 뜯어지지 않을 때, 시합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치코는 유지 앞에서 운다.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서, 혹은 각도 때문에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짧게 끊어 흐느끼는 그 독특한 울음과, 잔뜩 까지는 목소리, 힘이 들어가지 않아 상대에게 푹 기댈 수밖에 없는 어깨의 모양 같은 것만으로, 눈물의 복합적인 까닭이 충분히 드러난다.
폭력을 겪은 이후 스스로를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거나, 연인에게 배신당한 상처를 풀어내고 싶었다거나, 이미 복싱의 룰에 반해버린 상태에서 그런 것들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었다거나- 하는 분석적인 말들로 이치코의 결정을 수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도 사쿠라가 말없이 전신으로, 지금 이것을 하고싶다-아니 해야겠다고 느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서로 마구 패고 서로 어깨를 두드려 주고 그런 게 하고 싶었다”는 이치코의 언어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했다.
처음에는 줄넘기도 제대로 못 돌리던 이치코가 점점 복서의 자세를 갖추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작품의 핵심 재미 중 하나다. 초반에는 가게 일을 배울 때처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일이든 운동이든, 이치코는 몸을 그런 방식으로 컨트롤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안도 사쿠라는 등이 펴지거나 주먹이 날래지는 등, 물리적 힘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눈에 빛이 번들거리고, 턱에는 악이 받치기 시작한다. 쌓인 것들을 죄다 담아 몸을 날리는 것 같다. 앞으로 쓰러질 듯 기울어져 발을 질질 끌거나, 어깨를 움츠리고 터벅터벅 걷곤 했던 이치코는, 이제 마구 달리거나, 당당히 성큼성큼 걷는다. 점점 제 근육과 관절을 통제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렇게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신감이 들어간 몸은, 멋지다. 전과 유사한-언제고 꼭지가 돌아버릴 듯한 기운이 있지만, 눈빛은 안정적이다. 자신을 아는 자의 건강함이랄까, 그런 게 있다.
“나는 백엔 짜리 여자니까요.” 마구 두드려 맞고도 일어나는, 이치코는 그런 이다. 그가 스텝을 밟고, 맞고, 또 맞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호흡이 엉망이 되고, 피가 섞인 침을 뱉고, 겨우 말을 뱉고, 다시 일어나 맞고, 쓰러지고, 맞고, 마침내 때리고, 또 때리고, 맞고, 결국 뻗는 모습은, 주섬주섬 일어나 상대 선수를 껴안고 바라던 대로 어깨를 두드리며 고맙다고 되뇌는 모습은, 굉장했다. 안도 사쿠라는, 이제껏 웅얼거리며 삼키고,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으며, 마음속에 구겨 넣어 묵혔던 이치코의 자기혐오, 아픔, 분노, 의지-그 모든 것을, 링 안에 터트렸다. 그리하여 조금 길었고, 살짝 넘치게 드라마틱했지만, 전부 하나하나 필요했던 장면임을 관객이 납득하게 했다. 이치코의 ‘평범한 내일’을 응원하도록 했다.
여기 또 응원할 수밖에 없는 ‘nobody아무도 아닌 자’가 있다. 이치코가 산을 오를 때 등을 밀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어느 가족>(2018)의 노부요는 평화롭게 걷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다. 이치코와 아주 다른, 그러나 역시 동네를 걷다 마주칠 것 같은, 살아가기 위해 ‘노바디’가 된 인물이다. 이 ‘만비키 가족’은 눈짓, 손짓 같은 것으로 의사를 전달할 때가 많다. 노부요의 은근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에는 성격과 경험이 담겨 있다. 안도 사쿠라의 목소리는 높은 비음이 섞여 있어 종종 까지듯 올라간다. 이치코일 때는 그 소리가 멋대로 잔뜩 묻어 나왔다.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이의 긴장, 정제되지 않은 설움이나 화 따위를 표현하는 데에 쓰였다. 노부 요일 때는 부드럽고 안정된 힘과 함께 적당히 섞여 있다. 삶을 자기 식대로 잘 알고 있어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늘 몸에 생활이 배어 있는 이의, 유한 단단함을 표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이치코가 그랬듯 입술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탓에 발음이 종종 이지러지는데도, 분명하다. 표정도 눈빛도 긴장 없이 분명하다, 그리고 따스하다. 따스하지 않은 세상에서 오래 지낸, 그곳에 따스함이 들어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때문에 타인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법을 아는 이의 것이다. 항상 ‘해야 할 일’을 아는 그에겐, 행동으로 옮길 용기 또한 있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맥주를 마시던 노부요의 얼굴은, 린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굳어진다. 살피고 돌아온 오사무가 린을 데려다 놓으려고 하자, 놓아주지 않는다. 시선을 허공에 고정한 채 천천히 주저앉는다. 말은커녕 눈빛도 던지지 않았지만, 상대와 관객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듣는다. 순간의 결정이지만 ‘옳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그가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그 고요한 얼굴에 다 담겨 있다.
그렇게 미간에 가느다란 선이 간 채 정지해, 생각하듯 허공을 응시하는 얼굴은, 린에 관해 이야기할 때, 린에게서 특정한 말을 들었을 때 종종 등장한다. 늘 아무렇지 않게 챙기다, 필요할 때면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묻거나 안심시킨다. 팔에 있는 화상을 쓸어 주는 린을 향해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만, 눈은 얼굴을 살핀다. 이후 마당에서 엄마가 사 주었을 옷을 함께 태우며, 말한다, 나직하게, 띄엄띄엄 분명하게, 상대에게 단어 하나하나가 전해지도록, “사랑해서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것이 머리뿐 아니라 마음속에 새겨지도록 하려는 듯, 린을 꼭 안아 준다. 그러다 눈물이 흐른다. 그것을 닦아 주는 린을 보고 웃지만, 자꾸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자리 하나를 놓고 동료와 맞서게 되었을 때, 상대가 협박을 시작하자, 노부요는 이마를 찡그리고 입을 쑥 내밀며 시치미를 뗀다. 린을 들먹이자 이내 고개를 돌리며 끄덕인다. 코와 눈이 살짝 붉어진다. 눈물을 삼키는 듯 턱을 내내 주억거린다. 그러다, 목에 두른 수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카락에 가려지지 않은 한쪽 눈으로 상대를 똑바로 응시한다. 고요하고 서늘한 힘으로 뱉는다. “그 대신 말하면 죽여버린다.” 수건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쓸어 넘기자, 힘을 빼 더 이글거리는 눈동자와 시니컬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드러난다. 그는 상대의 기를 누를 때 큰 제스처를 취하거나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대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가, 생각하듯 눈을 천천히 깜박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술을 움찔한다. 안도 사쿠라는 노부요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요동치는, 빠르게 진정하고 판단하는,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러나 저 속에는 슬픔이 쌓여 있는- 마음을, 무섭도록 간단하고, 놀랍도록 깊이 있게 드러냈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순리대로 가는 거’라고 눈물 없이 말해도, 숨겨져 있던 돈을 찾아내고 좋아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도 사쿠라가 스스럼없이 드러내 온 노부요의 따뜻한 정과 차가운 우선순위 덕이었다. 늘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기꺼이 책임지는 사람. 아마 오사무와는 잡히기 전에 입을 맞추어 놓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노부요는 그렇게 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형사 앞에서 찔리는 듯 머뭇거리는 오사무와 멍하게 생각에 잠긴 아키. 노부요의 얼굴은 피곤이 어둡게 묻어 있지만, 태도는 당당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바로바로 답을 내놓는다. 눈을 거의 피하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는, 모든 행동이 떳떳하다. 떨거나 흔들리지 않고, 내가 다 한 거,라고 말한다. 버린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을 주운 것이라고.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으나, 담긴 에너지는 화면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유쾌하고 따스하고 꼿꼿했던 노부요가 무너지는 장면은 아프다. “린이 그랬을 리가 없어요.” 눈을 꽉 감고 괴로워하며 말한다. 괴로움의 원인은 자신이 아닌 린이 처한 상황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형사의 다음 질문에, 이제껏 붙잡고 있던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는다. 눈물도 함께 흘러내린다. 노부요는 이치코처럼 울음을 무방비하게 토해 내지 않는다. 원래 없던 것으로 만들려는 듯, 손바닥 전체를 사용해 계속해서 닦아내고 닦아낸다. 지쳐 견딜 수 없다는 듯, 이마와 머리카락까지 함께 쓸어 넘긴다. “글쎄요, 뭐라고 불렀을까요.”
미안하다는 오사무에게, 괜찮다고 노부요는 말한다. 그 능청스러운 말투. 그런 투로 괜찮다고 해주면 정말 괜찮다는 착각이 들 테다. 쇼타와 눈을 똑바로 맞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중 미소를 보이지만 진지하다.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사무가 자꾸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갑자기 시선을 꽂는다. 그는 마지막 순간조차,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으나, 낯빛은 이상하게 밝다. 슬프고 후련하고 따스하다. 이쪽을 향해 얼굴을 장난스럽게 찡긋 하고는, 노부요는 화면 밖으로 나간다.
‘낳아야 엄마가 되는 거’라니. 노부요는 린과 쇼타에게 있어 누구보다 더 부모였다. 엄마나 아빠라는 호칭이 중요하지 않음을 자연히 알고, 그것을 적절한 톤으로 쇼타에게 알려 줄 정도로 현명한, 준비가 된 어른이었다. 그와 린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몇 초라도 보았다면, 형사는 “아이를 낳지 못해 질투가 나 유괴한 것 아니냐”는 말을 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택하는 편이 더 깊지 않겠어? 유대나 정 같은 거.” 노부요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코를 찡그리며 키득거리다가, 약간 투덜거리듯 핵심적인 말을 툭 던졌다. 그래 놓고는, 스스로 어이없다는 듯 다시 키득거렸다. 부엌에 서서 무얼 썰거나 담고, 삶거나 끓이는 노부요, 웃으며 말의 오르내림과 함께 젓가락을 주억거리는 노부요, 슬쩍한 넥타이핀을 슬금슬금 들어 보이며 천연덕스럽게 입꼬리를 내리는 노부요, 콜라를 마시며 걷다 일부러 트림을 하고 세상 해맑게 웃는 노부요. 웃기려고 애쓰지 않아 저절로 웃음이 새는, 별 것 없이 웃을 수 있어 값진 장면들이다. 그, 완전히 평범하고 편안해 특별한 에너지는, 때로 상대 배우의 다른 얼굴을 끌어내기도 한다. 흔한 일상의 모습으로 그런 웃음을 건네고 전염시킬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백엔의 사랑>도 <어느 가족>도 최근에야 봤지만, 안도 사쿠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몇 년 전이었다. 계기는 짧은 비디오. 일본의 한 방송에서, 그와 아야노 고를 가볍게 인터뷰한 영상 클립이었다. 번역해 올린 분이 삭제했는지 유튜브에서는 더 이상 검색되지 않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안도 사쿠라는 ‘아야노 고는 꺄하하 같다’며 꺄하하 웃었다. 생기가 넘쳤는데 -일본 젊은 여성 배우들에게 미디어가 요구하는 특정 클리셰와는 거리가 멀었다- 약간 짓궂은 데다 지나치게 들떠 보였다. 아야노 고는 늘 그렇듯 상냥하면서도 살짝 달랐다. 좀 당황해하면서도 뭔가 진심으로 신이 난 듯했다. 딱히 함께한 작품이 없는 두 배우 사이의 케미는, 이미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보류하고 있었다, 연기를 제대로 보게 될 때까지. 다시 말하면, 연기를 보기도 전 빠져 있었다. 작품을 본 후 돌이키니, 왠지 납득이 갔다.
기꺼이 흔해지는, ‘아무렇지 않아’지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그 상태로 몹시 깊어져 화면의 중심을 꽉 잡고 관객을 온통 흔들어 놓거나, 독보적인 매력을 입어 다채로운 즐거움을 안겨 주는 배우, 안도 사쿠라. 그의 에너지와 개성을 충분히 담을 만한 괜찮은 그릇들이 더 많이, 많이 필요하다.
* 배경 이미지: Vogue 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