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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un 12. 2021

그는 엘리트가 아니었다.

안데르 in <ÉLITE>




안데르 (Ander Muñoz) in <엘리트들(ÉLITE)>(Netflix) 시즌1~3

Feat. 오마르

(+전지적 안데르  대변인 시점 엘리떼 감상)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학생이 학교 수영장에서 살해당한다. 수많은 사건들이 부딪혀 일어난 결과다. 그 진실이 깔끔하게 밝혀지지 않아, 또다른 형사 사건들로 이어진다. <엘리트들>(Netflix) 시즌3까지의 줄거리에 대한 단편적인 요약이다. 수사 플롯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과정을 담은 플롯이 촘촘히 맞물려 전개되는 작품이다.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다음 화, 그 다음 화를 찾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일이 꼬인 걸까?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악해서? 어리석어서? 각 캐릭터의 경솔한 행동을 미지근하게 욕하고 있을 무렵, 던질 생각도 못했던 질문에 답을 내리는 데에 도움을 주며, 머릿속을 정리해 준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애들이에요. 어른인 척 하지만 사실 뭘 하는지도 모를 때가 많죠. 어른들이 도와줄 걸 아니까 넘어지는 거라고요. 이 일에서 어른은 형사님이에요.”​


형사에게도, 다른 어른들에게도 죄가 많다. 애초에 세 학생들이 전학 온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떠올려 보자. 대부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주인공들이 치는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와 그것을 감추기 위한 범죄들을 저지르고, 때로 그 방식을 제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위대한 부모들. 진실보다는 해결에 관심이 있는 무능한 공권력. 핵심을 담은 대사를 안데르의 입에서 끌어낸 건 의도적이었고, 적절한 연출이었다. 그가 할 법한 말이었고, 그가 했기에 호소력이 있었다. 그렁그렁한 눈동자와 목소리가 형사를 깨닫게 했고, ‘그런 어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


<ÉLITE>(Netflix) 시즌2. 트레일러 스크린샷.

 


1. 안데르는 엘리트가 아니다.


안데르는, 별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 인상에 남았다. 라스 엔시나스에 세 장학생이 도착하자, 각기 달리 반응한다. 구스만과 루는 대놓고 비아냥거리고, 마리나는 관심을 보이며 챙기고, 카를라는 재미있어하며 이용한다. 안데르는 그냥 있는다. 그러다, 친구들이 크리스티안을 위협하자 말리고, 사무엘의 일터에서 시비를 걸자 제지한다. ‘그냥 가자’, ‘그만해’라며 어깨를 잡는 정도의 담백한 제스처다. 딱히 목적이나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그런 상황이 불편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쟤들 좀 건드리지 마, 유치하니까.” 구스만이 ‘배신’이라는 표현을 쓰자, 안데르는, ‘웃기지 말라’며 피식 웃는다.


미래의 지도자들이 다니는 학교에, 엄마가 교장이라 입학할  있었던 안데르는, 크리스티안의 ‘낙하산농담에 해맑게 웃는다. 스스로 숨기거나 의식하지 않아, 동급생들도 그에게 엄마를 겹쳐 보지 않는다. 시즌3, 레베가 교장에게 자퇴 권고를 받자 다들 맞선다. 안데르도 고민 없이 곁에 선다.  모자에겐 따로 화해하는 씬이 필요하지 않다. 시즌2, 엄마의 안부를 묻는 오마르에게 안데르는 농담 섞어 답한다. “이혼한다고 세상이 끝나진 않아.”  모자는 서로를 개인으로 존중한다. 교장은 매번 좋은 어른의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들에겐 괜찮은 엄마다. 안데르는 엄마와 자신을,  학생인 순간과 아들인 순간을 적당히 분리해 왔다. “ 운이 나빠서 엄마 같은 부모가 없거든요.”라던 그는, 엄마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ÉLITE>(Netflix) 시즌1. IMDB 이미지.

 

안데르의 계급은 다수의 부유층 학생과 소수의 장학생 사이에 ‘끼어’ 있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적대심도 없다. 편을 갈라 한쪽을 택하거나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하지 않는다. 부모의 성을 뗀 개개인으로 친구들을 대한다. 남의 재산이나 연애사에는 관심이 없다. 본인의 현재, 연애에 집중하며, 적당히 무심하게 부당한 상황에 맞선다. 현실에 무지한 것도 아니다. 크리스티안이 마리나의 사교계 데뷔 파티에 데려가 달라고 하자, 내키지 않는다며 말한다, ‘멍청한 파티’. 결국 크리스티안을 위해 참석해선, 이 파티가 무엇이고 왜 멍청한지 설명한다.


파티를 즐기지 않지만, 이쪽 저쪽에 매번 초대 받는다. 안데르는 어디에나 있다. 구스만네의 파티에도, 사무엘의 파티에도. ‘사고’를 당한 크리스티안의 병실에도 있다. 우연한 계기로 ‘그냥’ 친해진 둘은, 끝까지 ‘순수’한 우정을 유지한다. 얄미울 정도로 밝던 크리스티안이, 마지막까지 그늘 없이 대하는 친구는 안데르 뿐이다. 나노가 누명을 쓴 후, 사무엘을 괴롭히는 구스만을 제지하는 것도 항상 안데르다. 말리기 위해 같이 다니는 건가 싶을 정도다. “편 가르는 짓은 그만둬, 결국 너 혼자 남게 될 테니까.” 본인의 말처럼, 무조건적으로 한 편에 서지 않는다. 상대를 위하면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폴로를 걱정하는 카예타나와 안데르의 근본적인 차이다.


안데르의 행동 기준은 확실한 편이다. 의리와 정직이 그 중심의 일부다. 관계 유지 보다는 친구 자체가 중요하다. 하기 싫은 테니스를 끊고 하고 싶은 연애를 하며 더 곧아졌다. 주변 사람들을 적당히 건강하게 신경 쓰며 제 인생을 살던 그의 세계에 모순을 만드는 건, 폴로의 고백이다. 오히려 본인의 범죄였다면(애초에 그럴 리 없지만) 바로 자수했을 텐데. 밤새 자수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맞은 아침, 폴로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는다. 진실을 말하기가 더 힘들어진 그는,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나노의 보석금을 몰래 보내자는 아이디어는 폴로도 카를라도 아닌, 술에 잔뜩 취한 안데르에게서 나온다. 이후 폴로는 ‘잊으려고’ 노력하며 자기 연민에 매몰되고, 고민과 죄책감은 안데르의 몫이 된다. 별로 객관적인 시청자가 될 생각이 없었던 나는 내내 약간 화난 채 시즌2를 견뎠다. 나의 챔피언이 타인의 죄에 묶여 균형을 잃고 소중한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걸 보면서.

<ÉLITE>(Netflix) 시즌3. IMDB 이미지.



2. 안데르는 사랑한다.


안데르 무노즈가 얼마나 괜찮은 인간인가 하는 묘사를 계속하려면, 그 ‘소중한 관계’에 대한 언급은 필수다. 이 (전)테니스 유망주가 지닌 매력의 핵심은, 타인과의, 특히 오마르와의 관계에 있다. 이들이 맞닥뜨리고 빠져들고 어긋나고 사랑하며 관계의 모양을 다듬는 과정은, 이 시리즈 최고의 매력(‘중 하나’ 아니다.)이다. 마약상과 구매자로 처음 낯을 익히고, 데이팅 앱을 통해 예상치 못한 두 번째 만남을 갖는다. 이성애 여성과 남성이었거나 별 접점이 없었다면, 원나잇으로 끝나거나 순조롭게 연애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마음과 사건의 타이밍이 어긋나며 애틋해지기만 한다.


아빠가 정한 타이틀 ‘테니스 챔피언 안데르 무노즈, 안데르가 약을 사게 만들었다. 이제는 오마르와 만나기 위해 약을 찾는다. 키스하고 싶어 약을 먹여달라고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양아치 무리에게(오마르에게 차별적 뉘앙스로 말했으니 양아치 맞다.) 시비를 건다. 연락 하지 말라니 자꾸 손을 잡으며 배시시 웃는다. 아이디를 바꿔 연락해 만나는  성공한다. 처음에는 겁내며 도망갔던 그가, 확신이 생긴  하는 행동은 이토록 일관되게 적극적이고 사랑스럽다.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있는 오마르가 미래를 절망하며 자꾸 치는 벽을 향해, 안데르는 현재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돌진한다. 밀어내면  가까이 다가가 설득한다.  자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오마르가 외출을 금지당하자 편지를 써서 나디아에게 건네고, 가게에 손님인  찾아가 애원한다. 각자의 화를 이기지 못해 날뛰는 구스만과 폴로를 말리러 따라가, 가장 심하게 두들겨 맞은 안데르. 눈을 뜨기도 힘들지만 마냥 행복하다. 오마르의 입에서 마침내 간절한 사랑 고백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진심을 끌어내기 위한 극적 장치, 살짝 클리셰였지만 설득력은 충분했다. 이제껏 안데르가 던진 마음들이 오마르의 벽을 서서히 허물었을 테니까.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 안데르 . 그의 ‘순수한용기가 아니었다면,  연애는 진전되지 못했을 거다.


<ÉLITE>(Netflix) 시즌1. 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형태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아빠가 만든 틀에 묶여 있었다. 시즌1은 안데르가 자아를 드러내는 시기였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서, 싫은 일을 참는 데에도 한계가 온다. 결국 아빠의 테니스 챔피언이 되기를 거부한다. 시즌2에서는 아들이라는 역할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던 오마르가 ‘독립’하고, 관계가 성장한다. 성 지향성을 밝히(특히 가족에게)는 것에 대한 고민은, 집에서 쫓겨나면서 반강제로 해결된다. 함께 살면서, 둘은 드디어 공개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엘리떼에 무난한 연애란 없다. 폴로의 살인고백은, 안데르의 모든 관계에 균열을 낸다. 어쩌다 폴로와 잔 후 그토록 기다렸던 오마르의 전화가 와도 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만나자마자 털어놓았던 그다. 거짓말이 성정에 맞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지도 시치미를 떼지도 못하고 속만 탄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 연인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짜증만 낸다. 오마르의 진심을 듣고 자신이 반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지만- 여전히 술을 병째 마시고 기절하거나,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오마르는 지쳐 떠나기로 결심한다. 카를라가 자백하고 나서야, 안데르는 털어놓으며 무너진다. “내가 폴로보다 더 나빠. 모두에게 버림받아도 싸. 날 떠나.” 갈등은 곧바로 해결된다. 그 말은 틀렸고, 오마르에게 소중한 건 안데르였으므로.


<ÉLITE>(Netflix) 시즌2. 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내내 폴로의 죄를 떠안고 괴로워했던 안데르는, 다음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초반에는 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숨겼고, 밀어냈다. 상황에 허우적댔다. 구스만을 속여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여기며 돌연 치료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가족과 연인, 친구의 설득으로, 쓸데없는 부채감 없이 치료와 연애를 지속하기로 한다. 시즌1과 비교하면, 어떤 방향으로든 많이들 성장했다. 안데르는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견디는가 싶더니, 하지 않아도 될 성장을 넘어 해탈해 버린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정리하고 싶다.”, “어차피 죽을 건데 거짓 자백하고 감옥 가서 죽으면 어떻냐.” 그 말투가 시니컬하지 않아서, 본인 말대로 ‘스님’ 같아서 더 안타깝다.


말리크의 등장으로, 밀어내도 돌아와 머물렀던 오마르가 흔들린다. 안데르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마다 제가 더 아파하는 걸 보면서, 저러다 지치겠다 싶었다. 이 바람은 한숨 돌리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안데르는 감을 잡고, “네가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도 좋다.”고, 속뜻 없이 말한다. 진단을 받은 직후의 자기파괴적 이별 선언과는 다른 뉘앙스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얼굴엔 그늘이 진다. 질투나 절망은 없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깊고 복잡한 종류다. 이어 하는 행동은, 말리크에게 오마르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 그 다음은,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잘 하지도 못하는)거짓말로 오마르를 밀어내는 것이다.


<ÉLITE>(Netflix) 시즌3. IMDB 이미지.


드디어 안정되나(엘리떼에선 안정이란 게 없다.) 싶었던 관계가 다시 어긋나기 시작하고, 매번 최선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둘을 보는 게, 시청자 입장에선 갑갑했을 수도 있겠다. 허나 직접 겪지 않았어도, 당사자들에겐 그리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이제 겨우 성인이 된 연인이 치료에 기약이 없는 병과 싸우게 됐다. 각자 달리 복잡하고 괴로울 테다. 그러나 안데르는 늘 사랑 앞에 용감하다.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단계, 오마르 입장만 생각하(지만 그의 진심은 모르)는 단계를 지나, 비로소, 둘 모두의 현재가 소중함을 느끼며, 다시 한 번 고백한다. “지금 필요한 건 바로 너.”라고.


시즌1에서 사무엘을 속이기 위해 나눴던 안드레스-로만 농담은, 시즌3 피날레에 다시 등장한다. 라스 엔시나스의 한 세대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고백하자면, 오마르와 안데르가 각자 또 함께 잘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엘리떼 시청의 주된 목적이다. 누군가가 죽거나 실종되는 중심 서사 사이사이 전개되는, 이 안타깝고 아름다운 연애사의- 무해한 스핀오프가 절실하다.


<ÉLITE>(Netflix) 시즌1. 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ÉLITE>(Netflix) 시즌3. 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3. 안데르는 그래서 빛난다.


겹겹이 비밀에 싸여 매력적인 인물도 있지만, 안데르의 매력은 겉과 속, 앞뒤가 같다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다른 캐릭터들과의 독대는 -딱히 많이 얽히지 않았던 이들과의 것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챔피언(테니스 그만둔 지 세 달 넘었다), 나 대신 사무를 지켜줘.” 크리스티안과의 끝까지 친구 모멘또는 세 번 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폴로 사건에 대해 거짓말을 술술 하는 카예타나를 신기한 듯 얼이 빠져 지켜보는 얼굴 같은 건,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의 유머러스함으로 적당한 타이밍에(나처럼 과몰입한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여성 캐릭터들과의 투샷은 주로 편안하게 흥미롭다. 적대감이나 성적 긴장감이 차고 넘쳐 때로 부담스러운 이 시리즈에서, 레베-나디아 사이 유대나 루-오마르의 쿵짝을 비롯해 가장 순수하게 흐뭇한 모멘또 중 하나다. 시즌1 초반에는 오마르를 향해 ‘부모님을 위해 몇 년만 참으라’던 나디아가, 시즌3에서 망설임 없이 “가족이잖아.”라고 말하며 안데르를 안는 순간은, 감격스러웠다. 레베와 병원에서 보여 준 베스트프렌드 바이브에는, 가슴이 아픈 와중 설렜다. 안데르가 교실에서 백혈병에 걸렸음을 밝힌 후, 카를라가 머뭇머뭇 걱정하자, 그는 동정은 싫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현재를 놓치고 살아. 내게는 현재밖에 없어. (스님처럼 말하는 것도 항암의 또 다른 부작용이지.)” 그 말을 듣고, 카를라는 예라이와의 억지연애를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까자면 잔뜩 깔 수 있는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까닭 중 하나는, 소수의 주인공을 위해 다른 이들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 여럿의 입장과 서사를 분배하느라 설명이 다소 부족해지는 한이 있어도, 대부분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안데르는 입체적인 서사를 입고 변화하면서도, 일관된 성정을 유지했다. 맞물리는 각자의 난리통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별안간 깨닫는다, 진정 이런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제 유일한 재능이 테니스라던 안데르는, 뭘 ‘잘’ 하는 대신 열심히 사랑하고 살기를 택했다. 이 핸섬 보이의 매력은 외모에 있지 않았다. 그가 고민하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통의 십대가, 아니 대부분의 인간이 갖지 못한 면들을 목격했다. 심지어는 삶을 돌아보게 됐다. 드문 부와 재능, 외모를 가진 십대 엘리트들 가운데서, 안데르는 엘리트가 아닌 채로, 아니어서 빛났다.


<ÉLITE>(Netflix) 시즌1. 넷플릭스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

굵직한 사건, 성격과 성정 위주로 적느라 사소한 매력 모멘또를 충분히 묘사하지 못했다. 다른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지나가듯 언급되는 -무신론자라거나, 샤워를 오래 하는 버릇이 있어 집에 보일러를 한 개 더 달아야 했다는 등의 정보들. 항상 세우고 다니는 교복 마의 깃은 귀엽고, 종종 타고 등교하는 자전거도 몹시 어울린다. 호스로 잔디에 물을 뿌리다 그대로 머리에 잔뜩 뿌리기도 한다.(누구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가 없다는 게 포인트다.) 흥미 없는 파티에선 홀로 뭘 잔뜩 주워 마시고 방방 뛰거나 빙빙 돈다. 애정을 표현하거나 진심을 호소할 때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상대의 가슴이나 어깨에 치댄다. (호데르… 애교가 있네…)


++

오마르와의 장면은 하나하나 소중하다. 개인적으론 시즌2 둘의 관계성 성장이 좋았다. 호박과 멜론이 없는 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서도, 가게에서 일하느라 허리가 아프다는 오마르를 위해 쿠션을 선물로 주는 안데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지만, 클럽으로 달려가 안데르에게 키스하는 오마르.(“반품 영수증 줄까?”) 오마르가 ‘카리(자기)’라고 부르는 걸 질색했지만, 나중에는 술에 취해 자연스럽게 ‘카리’라고 부르는 안데르. 할로윈 프랭크 앤 퍼더-록키 코스튬도 개인적 덕질 모멘또 였는데 안데르가 너무 인상을 구기고 있어 아쉬웠다. 나중에 다른 클래식 퀴어시네마 캐릭터 분장 해줬으면 좋겠다.​


<ÉLITE>(Netflix) 시즌1. IMDB 이미지.


+++

시즌3에서 안데르가 아프다는 건 들었는데 구스만과의 화해를 위한 요소인가 했었다. 보면서, 너무 픽션회로를 굴린 것에 대해 반성했다. 작품이 신체적 고통과 변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건 머리카락이 빠지는 장면 정도다. 나머지는 안데르 자신의 언어로 드러내기를 택했다. 여러 캐릭터들 간 분량을 조절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고, 현실 반영이 부족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병으로 인한 고통을 대상화해 전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방향으로 보였다.


++++

울고 있는 안데르를 발견한 이가 레베였음에 감사했다. 레베는 겉과 속이 항상 같지는 않지만, 안데르처럼 앞뒤가 같고, 뒤끝이 없다. 호불호/관심무관심이 뚜렷하고, 호+관심에 속하는 이들에겐 친화력이 최고인 인물이다. 시즌2에서 오마르가 안데르를 놓치지 않도록 설득했던 그는, 시즌3에선 안데르가 병을 홀로 끌어안지 않도록 돕는다. 레베를 쓸까도 고민했지만, 서사가 아쉬워서 말았다. (이러다 또 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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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4 예고는 오만데르 위주 엘리떼 애청자를 너무나 불안하게 한다…………… 안데르 내가 여기서 당신이 얼마나 괜찮은 인간인지 한 설명을 다 취소하지 않게 해줄래… 평화로운 연애는 이제 바라지도 않아 깨지만 말아줘요…. 작가님들 시즌3에서 오마르를 안데르에게 돌려줬던 것처럼 결국엔 안데르 오마르에게 돌려줄 거죠? 늘 그랬듯 로만드레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불안해서 말투가 바뀌었다.)

​​



*스크린샷 딴 영상 

https://youtu.be/60l8pu1o1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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