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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ug 20. 2021

THE "Everyman".(1)

데브 파텔 Dev Patel (1)



 

<무한대를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2015, 감독: 맷 브라운)

<호텔 뭄바이(Hotel Mumbai)>(2018, 감독: 안소니 마라스)

<라이언(Lion)>(2016, 감독: 가스 데이비스)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2021, 감독: 데이빗 로워리)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eat.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2011), <커뮤니티>



<커뮤니티> 파일럿 에피소드, 트로이 반스는 말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한테 숙제 맡겨야겠어”. 그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물론, 아벳을 지칭한다. 몇 화 지나지 않아 그들은 ‘소울메이트’라는 말로도 부족한 관계가 되지만, 이후에도 아벳을 ‘슬럼독’이라고 일컫는 이들이 종종 나온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인도인이기는 한지(첫 등장에서 아벳은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는 미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궁금해하지 않는다. 피부가 갈색이고, ‘대충 그렇게 생겼으니’, ‘슬럼독’. 세상에서 가장 쿨한 인간인 아벳은 눈썹을 슬쩍 올리는 정도로 넘기지만, 속으론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에 대한 ‘최악’의 레퍼런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슬럼독’, 자말 역할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데브 파텔. 이후 몇 년 동안 서구권 영화들이 이 배우를 ‘사용한’ 방식은, 아벳을 무신경하게 ‘슬럼독’이라고 부르던 누군가들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2011)은 오로지 빌 나이의 연기를 따기 위해 본 영화였다. 그를 비롯한 노년층 영국 배우들의 연기는 매력적이었으나, 애매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뉘앙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름다운 이국과의 화합~으로 로맨틱하게 얼버무리는, 예쁘고 게으른 영화. 그 ‘화합’의 장인, 메리골드 호텔 운영자 소니가, 얼마 전까지 데브 파텔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활기는 넘치는데 일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큰데 연애는 잘 못하는. 익살맞고 엉성하고 에너지만 넘쳐 웃음을 자아내는, ‘인도 청년’. 당연히 그게 다는 아니고, 나름의 서사가 있지만 사실, ‘그게 다’이기도 했다. 연기 자체는 능청스러워 작품에 잘 먹혔다. 아마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매우 열심히, 줄 하나쯤 놓고 와장창 연기해버린 것 같았다.

 

"(‘슬럼독~’ 이후) 난 종종 인도인 역할을 기다렸어요. 짙은 악센트를 쓸 수 있는 역할 말이에요. 왜냐면 다른 게 없었거든요. 나는 말 그대로 클리셰였어요: 실없는 사이드킥, 택시 운전사.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을) 당시, 함께 연기했던 Freida Pinto와 만나고 있었는데, 그는 굉장한 작업들을 하곤 했죠. 근데 동시에, 전형적인 역할로 캐스팅되곤 type-cast 했어요. 그 모든 백인Caucasian 주연 남성들 옆에 서 있는 이국적인 미녀 말이에요."

-Dev Patel, Interview by. Alex Moshakis [theguardian.com]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데브 파텔은, “인도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youtube, SPH Razor)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알고 있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그를 그렇게 소비한 영화 산업이라는 것을. 영국에서 태어나,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스타가 된 이후 주로, ‘비백인 조연’, ‘인도인 조연’으로 서구권 영화에 캐스팅됐다. 대개 관심 밖이었거나, 보았더라도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들이었고, 그가 맡은 캐릭터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한 작품이면 충분하다. 오로지 데이빗 로워리 때문에 <그린 나이트>를 본 나는, 작품에도 연기에도 압도되었다. 며칠 내내 반복해 장면들을 떠올리다가, 결국 다시 극장으로 달려갔다.


이어 다룰 세 작품 모두 <그린 나이트> 이전에 만들어졌으나, 최근에 관람했다. 데브 파텔의 가웨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영영 볼 일이 없었을 테다. 공교롭게도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글을 나누어야만 했는데, 원래 다른 기준으로 캐릭터를 구분할 예정이었으나, 인터뷰를 읽은 후 ‘캐릭터가 인도인인가'로 정했다. 먼저 묘사할 것은, ‘인도인’ 역할을 맡은 두 작품이다. 감독이 인도 사람인 것은 아니지만, ‘메리골드호텔식’의 시선도 표면적으론 덜하거나 없다. 데브 파텔이 연기한 인물들은 어떤 전형적인 기댓값을 수행하지 않는다. 특정 공간에서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행동’을 한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IMDB 이미지.


“정수 하나하나가 그의 가까운 친구personal friend인 것 같아요.” 리틀우드의 따스한 목소리와 잠옷 바람으로 눈밭에 나와 해맑게 웃으며 빙빙 도는 라마누잔의 모습이 겹치면, 관객은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이야기를 여는 하디의 문장은 라마누잔을 ‘근대 수학사의 가장 낭만적인 존재’로 칭한다.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 정신없이 사원 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잔뜩 적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람보다 숫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다니지만, 사실 그 속엔 사랑이 가득하다. 수/신에 대한 것이 중심이나, 한켠에 늘 자나키를 두고 있다. 수에 보이는 과감하고 확실한 로맨스와는 다른, 동반자를 향한 조심스러운 로맨스. “당신만 내게 말 걸어주면 돼.” 어찌 보면 뻔한 대사도 이토록 특별하게 들린다.


데브 파텔의 라마누잔은,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는, 때문에 솔직해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 같다. 천재의 순진함이랄까. 인도에서 계속 일자리를 거절당할 때는, 실망은 해도 기죽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비친다. 제 자신을 다이아몬드에 비유해도, 태도에 근거 없는 자만심이 아니라 진지한 긴장이 있어 뻔뻔하지 않다. 데브 파텔은, 자칫 터무니없이 들릴 가능성이 있는 대사들을, 차분하고 섬세한 에너지로 눌러 내보내, 진중하고 신선한 뉘앙스를 입혔다.


트리니티에 도착한 라마누잔은, 긴장하고 들떠 머뭇머뭇 조근조근 말하고 미소 짓는다. 데브 파텔은 ‘그저 젊은이일 따름’인 라마누잔을 슬쩍 보여준다. 이어지는 전개는 그가 하디와 방식을 조율하고, 협업해 걸작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여러 상황에 처하며 상처받고 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침내 진심이 전해질 거라고 기대했으나, 생활과 학문 모두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맞닥뜨린다. 동물성 기름을 입에 대고, 당황해서 급히 뱉고 자리를 뜬다. 어색하게 거짓으로 괜찮다고 답하고, 하디가 자리를 뜨자 뒷모습을 보고 머뭇거린다. 그늘이 비치기 시작한다. 생활은 드러내지 않고, 학문은 솔직하게 표현한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IMDB 이미지.


몸엔 온통 신이 묻어나도, 말은 차분하게 한다. “But you expect me to speak English.” 같은 대사는, 의도한 대로 훅 들어온다. 증명이 필요하단 말을 듣자, 얼굴이 떨린다. 소리도 떨리지만, 크기와 높이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데브 파텔은, 라마누잔의 감정이 격해져도 언성을 잘 높이지 않고 일관된 톤을 유지한다. 유사한 내용의 말을 할 때마다 매번 힘을 주면, 관객은 익숙해지며 지치고 대사는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이 배우가 택한 방식은 인물과 장면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우며, 후에 마침내 폭발하는 순간의 충격을 높인다. 공식을 건넬 때는 항상 진지하면서도 다급해 보이고, 증명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는 나직하면서도 분명하다. 괜한 오기를 부리는 게 아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새로운 진리들이, 신의 말들이 자꾸 떠오른다.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어 내보였고, 의심할 필요가 없는데 증명을 하라니- 갑갑할 수밖에. 하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신의 공식이 들려와 다시 사로잡히는 것 같다. 완전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입장을 짐작하게 한 것은 데브 파텔이었다.

 

순수와 진실의 에너지로 가득했던 라마누잔이, 기죽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은 보기 힘들다. 들떠서 홀로 정자세를 하고 이해의 미소를 지은 채 칠판을 응시하던 그는, 교수의 비아냥거림을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머뭇머뭇 칠판으로 걸어간다. 거침없이 분필을 놀리더니, 다시 머뭇머뭇 몸을 돌리며 어색하고 들뜬상태로 돌아온다. “I don’t know. I just know.” 자만이 아니다. 오히려 겸손하다. 어떤 경지에 오른 말씨다. 교수의 협박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른 채 뛰쳐나온다. 숨이 막히는 듯, 그렁그렁한 눈을 굴리며 뉴턴의 석고상 앞에 머무른다. 손을 턱 얹고, 가슴에 잠시 댄다.

 

남의 전쟁터에서 잘못도 없이 괴롭힘 당하고, 잘 먹지도 못하며 홀로 외로운 전쟁을 하는 라마누잔의 얼굴빛은, 병들기 전 이미 어둡다. 털어놓지 않는 건 강한 자존심 탓도 있겠으나, 누구도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디의 오피스, 그는 수학에 관한 대화를 열지만, 라마누잔의 답에는 스스로의 삶과 상태가 뒤섞여 있다. 젖은 눈이 구르고, 입술이 떨리고, 마침내 처음으로, 언성을 높인다. 숨이 들썩이고, 목이 멘다. 마지막 대사는, “I have wife, Mr. Hardy.” 대사의 내용은 정보 전달이지만, 그간의 감정이 진동한다. 방을 나와선 벽에 기대 스르륵 주저앉아, 종이를 내던진다. 화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람의 절망이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IMDB 이미지.


그는 그날 밤 증명을 하여 내놓지만, 이후 달라진다. 힘이 없어지고, 기가 죽는다. 협업에는 여전히 열중하고, 수와의 만남에는 설레어 하지만- 생기가 줄어든 자리에 독기가 들어선다. 소령과의 ‘대결’ 후 마침내 웃는데, 기침이 뒤따른다. 데브 파텔은 몸이 구부러질 정도의 심한 기침과 함께, 힘없이 빛이 사그라드는 느낌을, 병든 라마누잔에 입혀낸다. 그가 거울이나 창문에 비친 스스로를 응시하는 장면이 종종 있는데, 단순히 ‘얼굴을 비춰보는’ 게 아니다. 갑자기 캄캄한 앞날이나 밑바닥을 맞닥뜨린 것처럼, 언 채 눈을 떼지 못한다.

 

“기차에 치이는 게 나을 뻔했어요.”라며, 약간 위험하게 시니컬한 얼굴을 했다가, 하디의 농담에 서서히 펴지고 웃음이 팟 하고 터진다. 하디가 진지하고 진중하게 사과하자, 비로소 신에 신의 목소리에 대해 고백한다. 살짝 고개를 든 채, 진중하고, 고요하고, 약간 울먹이며. 그게 너무 진심이어서, 종교나 신에 대해서는 무신론자 하디에게 더 공감하는 나도, 귀 기울이게 됐다. 하디의 답에 실망했다가, 또 감동한다. 내내 눈물이 고여 있는데, 그 눈물의 성질이 순식간에 달라지고 만다.


이후 라마누잔에겐 진지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구석이 생긴다. 병상에서 FRS 회원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자, 가늘게 떨리는 소리로 믿기지 않는 듯 되뇌곤, 허공을 천천히 응시한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다 굳는다. 데브 파텔은 마냥 기쁨의 표현을 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 상태, 미래와 죽음, 그동안의 과정, 겪은 고통 같은 것들이 다 포함된 복잡한 떨림을 보인다. 관객은 이야기의 결말을 대강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우들의 섬세한 호흡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순간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끝까지 따라가게 했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IMDB 이미지.


라마누잔과 하디라니, 오리지널이 이토록 특별한데, 플롯과 연출도 보다 특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었다. 가끔 감독의 ‘선택’에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단순히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 들지 않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두 배우의 연기는 특별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다른 요소가 깎은 매력을 충분히 살려냈다. 데브 파텔의 섬세하고 선하고 차분한 에너지가, 제레미 아이언스의 역시 섬세한 시니컬, 은근한 따스함과 만나, 다 못 알아듣는 수학 공식마저 죄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우산만 따라가세요”에 이어지는 야외 씬은 개인적 페이버릿 중 하나다. 라마누잔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어설픈 구둣발로 잔디를 피해 달린다. 그 모양은, 겅중겅중 다다다. 겨우 우산에 닿는다. 이미 뛰느라 힘이 들어간 데다, 걷는 와중이라, 날카롭게 상기된 투로 말한다. 하디가 쓴 우산을 -뭐야 저게 하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올리고 슬쩍 본다. 여유롭게 받아치는 하디에게 말리지 않으려는 듯,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하디가 가방에서 출판된 증명을 꺼내 건넨다. 살필 동안 가 버린다. 라마누잔의 얼굴이 확 펴진다. 배에 힘을 줘 고맙다고 외친다. 하디는 뒤돌지 않은 채, 우산을 슬쩍 드는 제스처로 받아준다. 라마누잔은 종이를 펄럭거리고, 한 바퀴 돌더니, 그 어색한 걸음으로 겅중겅중 달려가며 또 빙글 돈다. 기쁨이 표정뿐 아니라 온몸에 묻어나는 연기다. 이 순간을 와이드 샷으로 담은 데엔 까닭이 있었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 IMDB 이미지.


감독은 이 ‘드라마’가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주리라고 생각하여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실존했던 인물을, 어떤 면에 집중해 어떻게 그릴 것인가는 일차적으로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지만, 배우의 이해력과 표현력이 더 크게 와닿을 때도 있다. 데브 파텔은 비범한 수학자이기 이전, 로맨틱하고 순수하고 솔직한 젊은이인 라마누잔의 인간적 매력을 보여줬다.

 


<호텔 뭄바이>(2018). IMDB 이미지.


그리고 3년 후,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른 데브 파텔은, ‘평범한’ 호텔 직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호텔 뭄바이>(2018).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묘사가 조심스럽지만, 데브 파텔이 연기한 아르준과 구체적 사건 일부는 허구이므로, 그 디테일에 집중해 적어보도록 하겠다. 일상의 일부인 곳이 파괴되는 상황을 맞닥뜨린 그는 일단, 뭄바이의 이야기를 여닫는 장면에 위치하며, 사건을 담는 시선 역할을 한다.  

 

이 캐릭터에게는 감정과 성격보단 생활과 일상이 먼저 보인다. 집중해 터번을 두르고, 아이를 달래 안고, 아내에게 미소를 보내는, 익숙하게 작업장을 묻고, 서둘러 걷는 모습. 급하게 도착해 간절하게 사정하고, 맞지 않는 구두를 발에 구겨 넣는다. 뉴스를 볼 새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다. 데브 파텔은 정신없고 또 ‘없어 보이는’ 연기를 잘하며, 인물에 맞게 무게를 달리 한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의 소니는 인간 자체가 덤벙거렸다면, 아르준은 생활에 치여서 그렇다는 것이 구분된다.

 

구두가 작아 자꾸 절뚝거리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다가도, 고객 앞에서는 프로답다. 적당히 붙임성 있게 주문을 받고, 고객의 실수는 미소로 넘긴다. 서비스업에 능숙한 티가 난다. 일을 하나라도 더 따내려고 노력하지만, 기꺼이 몸을 낮추더라도 ‘선’을 지킨다. 자신이 원하던 일을 맡은 동료가 꼬냑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하자, 입이 근질거리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조용히 귀에 속삭여 준다. 앞으로 긴박한 상황에서 보일 모습의 맛보기였다.


<호텔 뭄바이>(2018). IMDB 이미지.


캐릭터 고유의 성정은 일상의 에피소드들에 비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들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르준은, 후자에 가깝다. 레스토랑 유리문을 통해 총을  남자들을 처음 목격한 이가 그라서 다행이었다. 당황해 패닉 하는 것은 잠깐, 본인이 피하기  다른 이들을 엎드리게 한다. 끊임없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괜찮을 거라고 주위를 안심시킨다. 경찰에 연락을 시도하며 돌발 행동을 막는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다. 특별히 배짱이 좋거나 겁이 없는  아니다. 눈은 내내 두려움으로 확장돼 있고, 목에서는 울음이 새어 나오지만, 정신을  붙잡는다. 생활의 리듬에 맞춰 효율적으로 움직이던 근육은 이제, 다른 종류의 긴장을 입고 바삐 움직인다. 데브 파텔은 세세한 집중력으로 급히 돌아가는 카메라 사이에 캐릭터를 녹였다.


이후 CCTV룸 통화 씬의 대사, “문 열지 마요, 그들이 와요.”의 딜리버리를 여기서 함께 언급해야겠다. 일단 다급하다. 그러나 감정을 폭발시키려는 욕심을 없애고, 효율적으로 말이 전달되도록, 정확하고 살짝 건조하게, 똑똑하고 빠르게 말한다. 초 단위로 사건이 벌어지는 긴급한 상황, 아르준으로서도, 그를 연기하는 데브 파텔로서도, 적절한 표현법이었다.


<호텔 뭄바이>(2018). IMDB 이미지.


또 다른 방향의 훌륭함과, 속내가 함께 느껴지는 씬도 있다. 자신의 수염과 터번을 무서워한다는 고객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가족의 사진을 내보이며, 나직하게, 머뭇거리며 대화를 연다. 말끝이 뚝뚝 끊어진다. 상대와 사진에 번갈아 머무르던 눈이, 정면에 고정된다. 방금 차별과 모욕을 당했다. 눈동자에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분노를 꾹꾹 누르고, 실룩거리는 뺨을 진정시키며, 똑바로 마주 본다. 여전히 속삭이듯 나직한 소리로, 터번의 의미를 전한다. 그 복합적이고도 분명한 눈빛과 목소리에, 아르준의 현명함과 진심이 담겨 있었다.


신성한 용기의 상징, 벗으면 치욕이라던 터번은, 이후 주저 없는 손짓으로 아르준의 머리에서 풀려 브리의 상처에 감긴다. 짧지만 중요한 행동이다. 인물의 분명한 우선순위를 설득하는 것도 데브 파텔이다. 항상 앞장서고, 필요하면 뒤에 서는, 그 용기와 선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에겐 목적이 있다, “무사히 나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버릴 수 없다.”는 기준이 있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거나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이성이 있다. 그에 따라 움직이며, 필요한 긴장을 유지한다.


셰프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와중 뒤에 서 있는 아르준이 잠깐 화면에 잡히는 씬이 있다. 은신처에 도착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던 눈이 이리저리 구른다, 곧 울음이 터질 것처럼. 고립되어, 홀로 CCTV를 지켜보는 눈은 그렁그렁하다. 갇히고 나서야 여유가 생긴 그는 비로소 꽉 끼는 신발을 벗는다. 말초적인 고통에 일그러져 있던 눈가가 신경을 빼앗기며 서서히 펴진다. 화면에 잡힌 동료의 시체에서 젖은 눈을 떼지 못하다, 이내 내리깐다.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설 새가 없던 얼굴이 이처럼 달라지는 찰나, 관객은 인물과 가까워지고, 좀 더 그의 입장에서 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호텔 뭄바이>(2018). IMDB 이미지.


테러범들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상황에서도 당연하게 몸에 밴 듯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던 아르준은, 드디어 밖으로 나가, 특수부대와 만나고 나서야 걸음을 늦추고 넋을 놓는다. 벌게진 눈으로 지배인과 천천히 눈을 맞추고, 조용히 울음을 터트린다. 충혈된 눈과 지친 포옹에, 복합적인 심리가 묻어난다. 비로소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한다. 살짝 벌어진 입, 얼룩진 눈물. 초점 없는 눈은, 주변의 풍경을 향한다.


사건을 담는 시선이자, 이 작품이 기리는 ‘평범한 영웅’들 중 하나. 아르준의 캐릭터성은 분명하지만, 데브 파텔은 드라마틱하게 과시하지 않는다. 튀지 않는 톤으로, 필요한 만큼 진중하게 표현한다. 작품, 그리고 데브 파텔이 실제 사건과 인물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호텔 뭄바이>(2018). IMDB 이미지.



*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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