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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pr 05. 2022

유령의 집

<스펜서>(2021)


 


<스펜서(Spencer)>(2021, 감독: 파블로 라라인)

 

* 위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 <재키>(2016)의 장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다이애나는 좀처럼 첫 술을 뜨지 못한다. 스푼을 든 채 자신을 향하는 눈길들을 겨우 맞받던 그는 숨을 막는 목걸이를 뜯는다. 떨어진 진주알과 함께 스프를 입에 떠넣어 씹어먹으며 제 숨을 막는다. 그가 먹은 것을 게워낼 때 목걸이는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재키>, 케네디가 죽은 날 밤 레코드를 틀어 놓고 계속해서 옷을 갈아 입으며 이 방 저 방을 오갔던 재키처럼- 다이애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상들을 입고 저택의 이곳 저곳에서 춤을 춘다. 허물과 실제 사이에서 마음껏 혼란스러워한다. 이 또한 목걸이 스프처럼, 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작품은 이처럼 감정을 ‘현실’과 섞어 시각화한다. 모두 다이애나의 몸이 ‘겪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 우울은 ‘실재’한다.

 

<스펜서>(2021). 다음 영화.


21세기에 ‘왕국’이 있고, 누군가가 ‘왕자’, ‘공주’ 따위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새삼 이상하다. 형식이고 이미지일 뿐,이기는 하다. 왕가의 역할이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은, 형식과 이미지가 되기 위해 살고 있는 걸까. 태생부터 ‘다른’, 그들의 식재료는 군인들이 운반하고, 주방 직원들도 마치 군사 작전을 수행하듯 일한다. 지정된 곳에서 살고, 지정된 식사를 하고, 지정된 옷을 입으며, 지정된 것들을 따른다. ‘보통 사람들처럼’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이브에 선물을 열어본다. 다이애나는 말한다, 이곳의 시제는 과거 뿐이라고. 전통이라며 추로 무게를 재고, 난방을 트는 대신 추위를 견디고, 어린 소년에게 살아있는 꿩을 쏘게 하는- 명분은 모두 ‘재미’. 사람들이 진실로 느끼는 재미가 아닌, 매 식사 때 입도록 배정된 옷과 같은 허깨비다. 그곳의 시간은 천팔백년대에 멈추어 있다. 촘촘한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산타가 하루 먼저 다녀가는 곳’. 왕족은 항상 보호되고 ‘우선시’되며 ‘최고’의 것을 누리는 특권을 지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들을 옭아매며 ‘두 가지 얼굴’을 지니기를 강요한다. ‘실재’하기를 원하는 다이애나는 별종으로 여겨지며 주시와 걱정의 대상이 된다. 그저 여왕보다 약간 늦게 도착하거나, 커튼을 열어놓은 채 옷을 갈아입거나, 정해 준 옷을 입지 않거나, 전에 살던 집을 궁금해했을 뿐인데. ‘왜 숨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냐’고 물을 수는 없다. 어려서부터 늘 지각했다는 다이애나, 자신만의 시간을 사는, ‘얇은 피부를 지닌 자’. 그는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견디는’게 아니라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원했을 것이다. 그는 순응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기분을 말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다이애나가 식당에 들어가 길을 물었을 때, 사람들은 답을 주는 대신 ‘다이애나잖아’라며 주목했다. 끝없이 ‘다이애나 여길 봐요’를 외치는 카메라들 앞에서 그는 겨우 견디며 웃지도, 차마 울지도 못한다. 시선이 닿을 때 마다 움츠러든다. 항상 추워하고 쫓기듯 말을 허겁지겁 뱉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바늘로 찌른 후 반응을 관찰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은 필요 이상으로 다이애나를 ‘감시’의 한가운데에 두지는 않는다. 일 대 일의 대화로 속을 내보이거나, 홀로 괴로워하고 흔들릴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아들이나 메기와 함께하는 자유의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내 그레고리를 비롯한 감시자들의 시선이 따라다닌다. 사흘만 견디면 돼, 다이애나는 말했지만, 그 사흘은 그의 십오 년이다.


<스펜서>(2021). 다음 영화.


찰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이 성취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지위에 갇혀 진짜를 숨기는 데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현실의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 않으므로 작품 속 캐릭터가 보인 모습만 다룬다.) 어쩌면 결혼 자체도 세상에 보일 가면이었을지도- 그렇다면 다이애나의 존재와 삶은 텅 빈 결혼으로 정의되는 걸까. 찰스는 자신 또한 짊어진 굴레에 아내가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변화의 가능성은 한 쪽에만 둔다. 그는 여성이 아니고, ‘왕족과 결혼하여 원래의 이름이 지워진 사람’도, ‘얇은 피부’를 지닌 자도 아니기에,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는다. ‘내 아들들이 아내에게 갈 것’이라는 선언 같은 외침은 최소한의 지지였을까. 이후 다이애나는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것을 먹으며 일탈의 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일탈’은 일시적인 것, 일상이 될 수가 없다.

 

찰스를 포함한 왕족들, 그레고리를 비롯한 직원들, 다이애나를 ‘사랑’하여 카메라와 시선을 들이대는 사람들. 모두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를 ‘걱정’했다. 그렇다면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존재를 지우려는 음모는 없다. 그저 끊어내거나 그만두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건 전통이라는 망령이다. 여왕과 같은 이들은 두 개의 얼굴을 유지하며 ‘저들이 준 옷을 입지 않는’ 식으로 조금씩 숨을 틔웠을 것이다. (다이애나가 이미지적 권위의 정점에 있는 왕실의 여성인- 여왕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장면은, 따스하기보다는… 허탈했다.) 누구 하나의 탓이 아니기에 이것은 더 ‘비극’이다. 다이애나는 그레고리가 경고처럼 가져다 놓은 앤 불린의 책과 같은, 실체 없는 것들과 싸우고 있다. 그것을 기꺼이 이은 모두가 다이애나의 숨통을 조이고 유령을 존속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스펜서>(2021). 다음 영화.


다이애나는 헨리 8세가 재혼을 위해 처형한 앤 불린과 자신을 겹쳐 보며, 초현실적 연출 속에서 앤 불린이 되기도 한다. 유령들의 세상 속에서 ‘왕족의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목걸이를 선물 받은 왕실의 여자들- ‘사냥용 꿩’들이다. 작품 초반, 죽은 꿩은 왕실의 바퀴에 채였고, 다이애나는 길을 잃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견디다 길을 잃었고, 아버지의 코트를 걸친 허수아비를 발견하는 순간 길을 찾았다. 이후 자꾸 생가에 들어가려고 시도하고, 다이애나가 다이애나일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썩어가고 있는 생가에서, 현재의 다이애나는 과거의 앤 불린에게 ‘구해진다’. 도망쳐,라고 앤이 말하자, 그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던 목걸이를 뜯어 버린다.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코트를 벗겨 입고, 입어야만 했던 옷을 걸쳐 놓는다.

 

결국 무엇으로 불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키는 파멜라에게 ‘이제 (남편이 죽었으니) 나를 재키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저택을 빠져 나와 드라이브스루에서 패스트푸드를 주문하며, 다이애나는 스스로를 ‘스펜서’라 칭한다. 결혼 전의 성- ‘보통의’ 사람들과 어울렸던 아버지의 유산과, (수많은 카메라들이 파헤치는 ‘다이애나’와는 달리) 익명성을 함께 지니는 이름이다. 재키는 자신이 겪은 남편의 죽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설명하고 이미지화하면서 ‘재키’가 되기를 택했고, 다이애나는 저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씌우려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못 견뎌하다 ‘스펜서’가 되기로 했다.


<스펜서>(2021). 다음 영화.


사냥용 꿩. 용도에 맞게 예쁘게 노닐다 죽거나, 달아나 길을 잃고 죽거나. 결국 유령이 되는 결말만이 있는 생물들. 다이애나가 한 마지막 저항의 제스처는 스스로 허수아비-꿩이 됨으로써 아들들을 데리고 그곳을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청바지를 입고 캡을 눌러 쓴 채 강가에서 미소를 짓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얼굴로 영화는 끝나지만, 우리는 현실의 다이애나 스펜서가 맞이한 끝을 알고 있다. 작품이 바탕으로 한 실화를 일컫는 표현은 ‘events’도 ‘story’도 아닌 ‘tragedy비극’. 어떤 ‘사건’ 하나만이 아닌- 생기 있고 아름다운 마음이 무너진 과정 전체를, 감정이나 판단을 삭제한 워딩 대신 ‘비극’으로 명시한다.

 

 

 

+

촬영중에 정말로 토하려고 했다는 크리스틴 스튜어트.(2022.02.17, [vanityfair.com]) 스크린  그를 보며 몹시 울었다. 그는 어느 정도 다이애나를 자신과 겹쳐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이애나의 삶도 그의 삶도, 구글링과   번의 클릭이면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곁들여 상세히   있다. 그들의 삶은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닌 걸까. 사랑하는 배우  하나인 그에게 ‘달리기로 파파라치를 따돌리거나 인터뷰 질문에 어깨를 으쓱할’(위와 동일한 인터뷰) 에너지가 있음에 감사한다.


<스펜서>(2021).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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