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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r 05. 2019

어메이징 엠마 스톤

엠마 스톤 Emma Stone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The Amazing Spider-Man 2)>(2014, 감독: 마크 웹)
<매직 인 더 문라이트(Magic in the Moonlight)>(2014, 감독: 우디 앨런)
<이지 A(Easy A)>(2010, 감독: 윌 글럭)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Crazy, Stupid, Love.)>(2011, 감독: 글렌 피카라, 존 레쿼)
<갱스터 스쿼드(Gangster Squad)>(2013, 감독: 루벤 플레셔)
<라라랜드(La La Land)>(2016, 감독: 데미안 셔젤)
<더 페이버릿(The Favorite)>(2018,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더 페이버릿>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엠마와 일하는 건 스릴 넘치게 휘몰아치는 강에 뛰어들어 아무것도 붙잡지 않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그 순간. 현재. 대단한. 필수적인. 누군가와 연기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래야 하듯.”
- 다이앤 키튼이 인용한 앤드류 가필드의 말. [interviewmagazine.com]


칭찬의 주인공 엠마 스톤은 ‘앤드류는 시인처럼 일상적으로 그런 표현을 한다’며 겸손하게 답했지만, 어쩐지 앤드류 가필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엠마 스톤은 모든 부분에서 예상을 빗나가는 배우다. 그의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렌즈를 낀 듯 투명하고 커다란(그냥 ‘큰’이 아니라 ‘커다란’이다.) 눈,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하지만 엠마 스톤은 작품 속에서 그 얼굴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용한다. 커다란 눈을 익살스럽게 뜨거나, 하얀 피부를 마구 찌그러트린다. 그리하여 한 번 보고 말 아름다운 마네킹이 아닌, 스스로의 독특한 연기와 남다른 매력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간’을 보여준다. ‘단순히 예뻐서’가 아닌 까닭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에서 ‘피터 파커의 비극적인 로맨스 대상’이라는 기능적인 역할을 할 때조차 그는 본인의 매력을 남긴다. 그웬은 그저 스파이더맨의 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는 과학자다. 오스본에서 일하는 그는, 회사의 부품처럼 시키는 일만 하지 않고,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사한다. 엠마 스톤은 평소 그웬을 표현할 때 허스키한 목소리를 조금 더 낮게 깔아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그러다 갑자기 악동처럼 웃음을 터뜨리면 깜짝 놀랄 정도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엠마 스톤은 둘 중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한 예가 오스본에서의 추격(?)신이다. 그웬은 정전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회사 컴퓨터로 검색을 하고, 요주 인물이 된다. 관리요원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 피터를 만나 캐비닛에 숨고, 둘은 결국 키스한다. 쫓기는 상태의 스릴이 좁은 공간에 흐르는 성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다소 일관성 없는 면도 있고 그웬의 역할을 로맨스 대상으로 좁혀버리는 부분이지만,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흐름이기는 하다. 엠마 스톤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얼굴을 적절히 혼합해 갑자기 분위기를 넘나들어도 이상하지 않도록, 관객이 화면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사실 더 좋아하는 건 이후 피터의 도움으로 엘리베이터에 무사히 탄 그웬이 해리를 보고 놀라는-‘멀쩡한 해리’와 그웬이 만나는 유일한- 장면이다. 숨을 돌리던 그웬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화면에 들어온 해리가 여유롭게 그를 바라보고 있다. 이때 그웬의 ‘Oh my god’이 인상적이다. 숨을 내쉬며 발음을 흐리고 끝을 내려, 정신을 빼놓는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엠마 스톤이 다른 작품에서도 꽤 내뱉었던,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이 감탄사는,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톤의 대사다. 피터라는 접점이 있으나 한 번도 서로 만난 적은 없던 둘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영화의 말미 그린 고블린이 그웬을 납치하는 전개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복선 같기도 하다, 피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꽤 들었기 때문에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 같은 이상한 케미가 발생하며, 해리의 의미심장한 대사가 덧붙는 순간 묘한 서스펜스와 아련함이 흐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엠마 스톤은 대놓고 ‘예쁜 여자’라고 대상화되는 역할을 맡는 경우에도 자신만의 표정과 제스처로 ‘나는 당신들의 뜻대로 조종당하는 인형이 아님’을 드러낸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2014)에서 그는 ‘젊고 예쁜 심령술사’ 소피다. 내가 쓴 것이 아니라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소피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코믹한 사랑스러움이다. 심령술을 연기할 때는 전혀 예뻐 보이려는 노력 없이 눈을 안쪽으로 모는 등 우스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2014)


초반의 천진하기만 했던 얼굴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늘이 드러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기해야 했던 슬픔을 담는다. 하지만 웃음 역시 잃지 않으며, 쉽게 동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기 방식으로 열심히 살고, 먹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 먼저 마음을 말한다. 댄스파티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채로 울 것 같은 눈을 하고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엠마 스톤은, 우디 앨런 영화 특유의 서캐스틱 뉘앙스를 잊게 만드는 자신만의 장면을 만든다. 그런가 하면 이후 다시 스탠리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에서는 반대로, 서캐스틱한 대사를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소화한다.


“Emma Stone is Magic.” (starsandcelebs.com)


진실로 그렇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의 소피는 사기꾼이었지만, 엠마 스톤의 연기는 마법이다. 우디 앨런 영화의 톤과 그의 연기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상도 있었는데, 글쎄. 내겐 그의 연기가, 이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우디 앨런 개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작품은 좋아하는 편인데,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솔직히 별로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심령술사를 연기하는 소피’를 연기하는 엠마 스톤만큼은 취향이었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2014)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에서 일부만 보여줘도 알 수 있었듯, 그는 코미디에 천재적인 배우다. 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두 작품이 <이지 A>와 <크레이지, 스투피트, 러브.>다. 그저 상황과 대사로도 웃길 수 있지만, 엠마 스톤은 그만의 방식과 표정을 탁월하게 사용해, 관객이 배우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우선 말할 것도 없이 너무도 유명한, <이지 A>(2010)의 주말 내내 노래 부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https://youtu.be/ylvh800i85I


사실 엠마 스톤이 아니었다면 <이지 A>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루머가 어떻게 한 사람을 매장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는 톤이 아무리 밝아도 보기 힘들고, 오해받는 올리브를 수식했던 이름, ‘슬럿’, ‘걸레’, ‘창녀’에 ‘실제로 해당되는’ 다른 여성들이 대상화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장르가 하이틴 코미디인 만큼, 영화는 루머라는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올리브의 매력과 우스운 상황을 잘 찍어냈고, 엠마 스톤의 사랑스럽고 코믹한 연기는 최소한의 집중을 잃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올리브는 아무리 주위에서 손가락질해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딱히 해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남들이 뭐라 지껄이든 난 내 식대로 살 거야’ 아우라를 온몸에 두르고 다닌다. 자신을 비난하는 고상한 애들은 두 배로 비꼬아주고, <주홍글씨>의 주인공에 비유하며 욕하자 아예 티셔츠에 전부 빨간 A를 박아 입고 다닌다. 괴상할 정도로 기발한 그의 행동은 엠마 스톤의 태연하고 익살스러운 표정과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올리브의 재치 있고 시니컬한 대사가 엠마 스톤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만나는 완벽한 순간을 모두 기념할지어다.


<이지 A>(2010)



또 기념해야 할 것은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로 시작된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 속 만남들이다. 과장해 말하면, 정황 상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모범생 해나와 플레이보이 제이콥이 끝내 연인이 되고 말 것임을, 두 사람의 케미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엠마 스톤이 맡은 것은 ‘해나, the 모범생’이다. 초반에는 별로 등장하지도 않던 그녀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영화가 반 이상 흐르고 나서다. 멋없는 애인이 청혼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이 빗나가고, 그가 또 멋없는 소리만 늘어놓자, 해나의 멘탈은 드디어 무너진다. 화난 해나에겐 미안하지만, 이 부분 통째로 굉장하다. 목소리 톤이 심각하게 변하고, 흐느끼듯 웃으며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린다. 곧 무언가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하고, 해나는 앞에 있던 사람의 진을 원샷한다. 쓴 것을 참으며 끝까지 들이키고 나서는 ‘난 진이 싫어’를 뱉으며 짓는 찡그린 표정 그대로 애인을 보며, 끔찍하다는 듯 ‘일자리 제안 고마워’라고 말한 후 걸어 나가는 기세라니, 어느새 작품의 주인공은 해나가 되어 있었다.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


해나는 그대로 ‘바에서 만난 핫 가이’에게 걸어가 키스하고, 집에 가자고 말한다. 기세 좋게 제이콥의 집으로 갔지만 한 번도 원나잇스탠드 경험이 없는 해나는 긴장한 상태다. 긴장을 온몸에 드러내며 솔직하게 심정을 말하는 그녀를 연기하는 엠마 스톤은, 앞에서도 말했듯 예뻐 보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고, 팔을 휘젓는다. 제이콥은 말한다, "You're adorable.(넌 사랑스러워.)" 작업 멘트가 아니라 진심임을 관객은 알 수 있다. 그 순간 해나는, 엠마 스톤은,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보통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순간, 게임의 주도권은 제이콥에게 넘어간다. 허나 오늘 밤 주도권은, 비에 젖고 긴장한 해나에게 있다. 제이콥은 익숙하지 않은 태도에 어색해하지만, 점점 빠져든다. 어찌 보면 식상한, ‘넌 다른 여자와 달라’ 서사지만, 엠마 스톤의 솔직한 표정과 라이언 고슬링의 촉촉한 눈은, 비평의 칼은 잠시 넣어 두고 이야기에 빠져 들게 한다. 멘탈이 나간 해나를 표현하는 엠마 스톤은, 자신만의 코미디 방식을 창조해 낸다. 라이언 고슬링의 담백하고 폼 나는 연기가 뒷받침해, 환상의 케미, 최고의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왜 수많은 아름다운 여자들과 원나잇스탠드만 반복하던 제이콥이 갑자기 해나와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는지 의문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엠마 스톤의 매력은 독보적이며, ‘예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케미는 참으로 안정적이고도 톡톡 튄다.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의 따뜻한 코미디, <갱스터 스쿼드>(2014)의 치명적인 누아르에 이어 <라라랜드>(2016)에서 둘은 보다 현실적인 동시에 판타지스럽기도 한, 아름다운 어울림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호흡이 데미안 셔젤의 감각적인 연출을 만나, 식상한 장면과 스토리가 클래식한 명작으로 탄생했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의 노래 부르는 장면도, 엠마 스톤의 다채롭게 마음을 울리는 얼굴과 만나면 달라진다. 장르가 굳이 코미디가 아니더라도 그의 털털하고 다소 정신없는 유쾌함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세바스찬을 놀리기 위해, 연주하는 그의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립싱크하는 장면이 그 예다.


<라라랜드>(2016)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연기를 보면 솔직하고 사랑이 아주 많은 사람일 것 같다는 짐작이 든다. <이지 A>에서 올리브가 루머에 휩싸인 결정적 계기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것보다 자신이 손가락질받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거짓말을 해 준 것이었고,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의 해나는 넘치는 정과 솔직함으로 플레이보이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올리비아 콜먼이 아카데미에서 <더 페이버릿>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눈물을 글썽거리며 ‘오마이’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면, 짐작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페이버릿>(2018)


이제까지 주로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캐릭터를 맡아왔던 그는, <더 페이버릿>(2018)에서 감정보다는 생존과 행동이 드러나는 에비게일 마샴을 연기한다. 차갑고 확실한, 일종의 연극적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위 말하는 ‘연기 변신’ 이라기보다는, 이제까지 보여주었던 장점을 토대로 스스로를 적절히 더하고 빼 작품에 어울리도록 맞추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살아남기 위한 연기의 수단으로 보여주며, 필사적으로 눈치를 보며 실제로는 모두를 혐오하는 에비게일의 진짜 표정을 솔직하고 확실하게 표현한다. 할리 앞에서 우는 척하다 한순간 표정을 바꾸거나, 마샴과 복도를 걸어 다니며 유혹의 눈길을 보내다가 뒤돌아서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그 종합적인 예다. 사라를 모함하기 위해 무표정을 한 채 얼굴을 책으로 쳐 대다가, 다음 순간 앤의 방 문 앞에 퍼질러 앉아 불쌍하게 엉엉 우는 장면도 있다. 소름 끼치는 동시에 웃기고, 심지어는 귀엽다. 엠마 스톤이기 때문이다.



“Q: 빌리 진 킹처럼 역사 속의 강한 여성을 연기하는 것이 당신을 신나게 하는가?

A: 확실히 그렇다. 감정적으로 복잡하고 겹겹이 쌓여 있는 여성을 연기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빌리 진 킹은 매우 진실된 역할이라서 좋았다. 큰 눈으로 웃으며 매력을 위한 매력을 보여주는(charming for charming sake) 것과는 다르다. 에비게일조차 매우 매력적이고 스윗하다. 그러나 그녀에겐 까닭이 있다. 여성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게 즐거워서 입힌 매력이 아니다. 그게 좋았다. 내 생각에 에비게일은 생존자(survivor)다. 비록 난 그렇게 하지 않을지라도, 에비게일의 행동에서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토끼. 그녀에겐 토끼를 밟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권력도 갖고 있는 상태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텐데 왜 그런 걸까.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걸까, 권력을 가진 후 그렇게 된 걸까?............................이 영화에는 수많은 굉장한 질문들이 뒤따른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동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세 여자를 보는 건 굉장하다.” (starsandcelebs.com)


<더 페이버릿>(2018)


엠마 스톤의 말처럼 에비게일은 ‘생존자’다. 그녀가 ‘냉혈한’이 된 까닭은 진짜 슬픔을 드러낼 여유가 없어서다. 무너지는 순간 끝이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대신, 그녀는 가짜 눈물로 권력과 안정된 삶을 움켜쥐기를 선택한다. 허나 건조하고 밝은 대사 속에는 아픔이 배어 있고, 굳게 다문 입술 위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린다. 에비게일이 잔인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비참한 생활을 멈추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설득하는 것은 엠마 스톤의 연기다.


<더 페이버릿>(2018)



“외면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매우 책임감을 느낀다. 전에는 내 선택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게 상당히 이상하다. 20대 초반은 어려운 시기였다. 서른이 된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좀 완전히 알게 된 것 같다. 어떤 직업에서나 있는 성장에 불과하다.............나는 두꺼운 피부(hippo skin)를 갖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피부를 얇게 유지하고 싶다. 그게 창의적이고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저 진정한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지만, 여전히 고뇌하고 있긴 하다.” 

[starsandcelebs.com]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을 때 더 안전함을 느낀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우주를 향해 도리깨질(flailing)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물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나아질 필요를 느낀다..............굉장히 오랫동안 두려웠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볼 생각이 들기 시작한 지 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단지 실패가 조금 덜 두려워진 것뿐이다.” 

[interviewmagazine.com]


인터뷰에서 엠마 스톤의 말들은, 대상화된 ‘아름다운 여자’가 아닌, 스스로의 에너지로 삶을 헤쳐 나가는 역할을 주로 해왔던 그의 실제 삶이, 연기와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는 외모가 아니라 연기를 매력으로 사용하는 배우인 동시에, 맡은 캐릭터들처럼 두려움과 호기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한 인간이다. 연기를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그가 에비게일에 대해 말했듯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예상하든, 엠마 스톤은 깨뜨릴 것이다.


이미지 출처: interviewmagazine.com



* 참고 인터뷰


https://www.google.co.kr/amp/s/starsandcelebs.com/2019/02/emma-stone-exclusive-interview/amp/


https://www.interviewmagazine.com/film/emma-stone-1#slideshow_47696.7



* <더 페이버릿>에 관한 글


https://brunch.co.kr/@yonnu20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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