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2023)
<너와 나(The Dream Songs)>(2023, 조현철)
* 위 작품의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미는 하은이 좋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운 ‘문제’다. 너도 같은지 궁금한데, 너는 내게 비밀이 너무 많다. 커지는 애정만큼 불안도 점점 불어나 이젠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백하기 전에 네 마음을 확인하고 싶다. 하은을 헤아리려 할 때마다 자신의 커다란 감정이 앞을 가려, 세미는 매번 조바심을 내버리고는 후회한다.
하은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나가 아니다. 상황을 잊어보려 벌인 작은 도피들은 이어폰처럼 엉키고 꼬여서 되돌아온다. 하은도 세미가 좋다. 너는 ‘내가 테이블 가장자리에 걸쳐 놓인 물잔처럼 위태로운 균형을 잡고 있을 때, 붙잡아 살려주는’ 이다. 좋아해서, 더욱 솔직하기 힘들다. 내 작은 한마디에도 서운해하는 너의 눈에 또 눈물이 맺히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잘 넘기고 잘 지내고 싶다. 그러나 하은의 생각보다도 세미는 하은에게 관심이 많으므로, ‘잘 지내기’는 쉽지 않다.
수학여행 전날,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던 세미는 꿈을 꾼다. 학교에서 빠져나가, 입원한 하은을 찾아간다. 밝던 해가 지기까지, 두 사람의 진심은 닿을 듯 엇갈리고, 마침내 만난다. <너와 나>는 일단, 그 반나절 동안을 다룬다.
화면을 채우는 음성은 세미나 하은의 것이 되기도 하고, 크레파스 통에 죽은 병아리를 넣었다는 예진, 하은을 이해하는 다애, ‘똘똘이’의 반려인, 할머니와 대화하는 다은의 것이 되기도 한다. 영화는 인물 각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와중, 시선은 누구의 것도 취하지 않는다. ‘똘이아범’의 입을 통해 그와 하은의 만남이 묘사될 때도 스크린에는 불쾌해하는 하은의 표정이 함께 포착된다. 내내 전지적 시점을 유지하며, 장면의 언어와 리듬은 인물들의 것을 따른다. 시공간과 결말마저 정해져 있음에도 캐릭터를 메시지에 묶어두지 않았으므로, 그 생생한 흐름에 자연히 감겨 몰입하게 되었다.
비현실적으로 환한 빛이 어른거리는 화면. 카메라는 운동장에서 출발해 서서히 세미에게로 다가간다. 카메라가 거울에 머무르고 거기 세미의 뒷모습이 비쳤을 때, 시선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아무도 아닌 전지자의 렌즈라고만 설명하기엔 존재감이 크다고 느꼈다. 극에는 없으나 ‘세미일 수도 있었던’ 관찰자의 것이었을까. 홀로 남아 그날의 세미를 기억하는 하은, 현재에서 그날을 떠올리는 작가, 혹은 관객의 것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영화는 관객이 세미와 하은에게 이입하는 것을 넘어, 어느 정도 동일시되기를 바라는 듯 했다. 감독의 말대로 ‘시스템을 보는’ 렌즈였다. 단순히 전체를 파악하는 것만이 아닌, ‘그 자리에 우리 중 누가 있었대도 이상하지 않다’는 암시를 드리운.
단서는 가득하지만, ‘이게 바로 그 이야기’라는 명시는 없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무렵 등장하는 ‘허구 안내’도 별다를 것 없다. 픽션으로만 본다면 ‘꿈 속의 단절과 죽음은 무의식의 반영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세미가 꿈 내용을 들려주는 동안 화면에 흐르는 하은의 나날은 아마도 꿈이 아니다. <너와 나>를 만든 이들도 본 이들도, 세미와 하은이 ‘수학여행 이후’를 기약하며 인사를 나눈 다음, 결국 이생에서 재회하지 못하리라 전제한다. 시대와 장소를 나타내는 지표들이 가리키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 예감보단 인지다. 이 극영화는 실재했던 사건과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너와 나>는 참사 직전을 다룬다. 세미의 순간들을 접한 관객은 그를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기억하게 된다. 하은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나 편지를 내레이팅하는 세미의 목소리가 배경에 깔리며, 다른 학생들의 수학여행 전날이 추억처럼 화면에 이어진다. 친구와 옷이며 과자를 고르거나, 우연히 선생님을 마주치고 즐거워하거나, 부모와 함께 짐을 챙기는 모습을 카메라는 애정 가득한, 그 세계 누구의 것도 아닌 시선으로 담는다. 영화는, 그 배에 탔던 사람 수만큼의 삶과 이야기가 존재함을 말하고 있었다.
세미는 꿈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제가 없는 곳에 홀로 남은 하은이 된다. ‘나는 너일 수도 있었다’는 메시지가 읽히나, 그게 다는 아니다. ‘네가 된다’는-가장 밀접하고 실현불가능한 사랑을, <너와 나>는 꿈이라는 초현실을 통해 이루어낸다. 거기 있는 것은 황홀한 판타지가 아닌 상실인데도, 영화는 세미와 하은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다루며 간절하게 사랑을 전한다. 두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관계를 중심에 둔 <너와 나>에는, 그 온갖 사랑이 담겨 있다. 그것들은 마지막에 한데 모여 풀밭에 잠들어 있는 세미를 둘러싼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쓰는 동안, 나를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랑을 떠올렸다.”고 조현철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하은을 살아가게 하는 것’을 전하려 했던 게 아닐까. 당장은 손가락 사이로 죄다 흘러나가는 것 같아도, 누군가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대도,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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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는 배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세미는 그곳에 닿으려 필사적이어야 했다. 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다.”(요약) - 조현철 감독
세미가 필사적으로 컨테이너에 닿으려 했듯, 현재의 ‘바깥 세상’에 사는 작가는 과거의 ‘이야기 속’에 사는 그들에게 닿으려 애쓰다가, 세미의 손에 상처를 내고 만 것일까. GV에서 감독의 말을 들으며 그런 짐작이 들었다: 막연한 감정을 들이붓기보다 표현의 당위에 대한 고민을 공들여 쌓았고, 디테일은 배우들에게 맡겼기에 이같은 작품이 나왔으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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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좋은 글은 아니다. 조심스러운 소재라 방어적인 감상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면, 한데로 모였으나 거기에만 머물러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있는 섬세한 고민의 흔적은 가지를 뻗었다. 관람 직전 읽어서인지 임솔아 작가의 <짐승처럼>이 떠오르는 데가 있었고, 또 몇 권의 책이 더 어른거렸다. 아무튼 개인적인 겹쳐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