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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보스의 극적인 (퀴어) 록

Dramatic (queer) rock of Divorce

by 않인



Divorce,

<Get Mean>(2022), <Heady Metal>(2023) +


* 번역 인용에는 오역 가능성이 있음



Divorce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감각에는 무대 연기를 관찰하는 감각과 유사한 데가 있다. 인식한 오디오를 뇌가 어느 정도 소화하면, 극장에서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열창하는 뮤지컬 배우나, 거울벽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선율과 신체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는 댄서가 떠오른다. 디보스의 음악은 극적이다. 음의 높낮이나 강약의 폭이 크다는 의미이기 전에, 트랙과 앨범이 연극처럼 다가온다는 의미다. ‘연극처럼 다가온다’는 말은, 오디오가 뮤직비디오나 안무와 일체화 되어 있다는 의미보다는 곡의 가사와 그룹사운드의 내러티브가 자체로 극의 기능을 한다는 의미다. 자주, 보컬은 감성 풍부한 스토리텔러이고 그룹사운드는 앙상블이다. 이와 별개로, 디보스는 시각적인 요소도 중요하게 가져가는 밴드다. 이들의 “acting background”가 송라이팅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 뮤직비디오 속 퍼포먼스를 ‘재미있고 그들답게’ 보이도록 돕는 기반이 되어주었으리라 짐작한다.


열 여섯부터 협업해 왔다는 Tiger Cohen-Towell과 Felix Mackenzie-Barrow에 기타리스트 Adam Peter Smith와 드러머 Kasper Sandstrøm이 합세해 2021년 노팅엄, 4인조 밴드 디보스가 탄생했다. 이듬해 나온 첫 EP <Get Mean>은 얼터너티브 컨트리와 록을 넘나들며 네 트랙만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타이거와 펠릭스 각자의 보컬과 그 조화가 두드러지나, 캐스퍼의 드럼은 록 그룹사운드의 탄탄한 토대가 되고 아담의 끝내주는 기타는 정확한 위치에 절묘한 디테일을 얹는다. 두 메인보컬이 가사와 코드를 쓴 다음 넷 모두 함께 완성한다는 비공식 송라이팅 과정은[GOD IS IN THE TV] 꽤 효과적인, 아니 탁월한 방법이었던 듯하다. 자유로우면서도 균형 잡힌 이 밴드의 존재감과 각종 작업물이 그 근거다.


둔탁한 그런지 리프로 열리는 데뷔 싱글 ‘Services’는 강약조절이 돋보이는 트랙이다. 플레이풀하고 담백하게 진행되다 후렴에 이르러 터지고 이내 가라앉는 구성. 기타는 찢어지고 보컬은 울부짖는다. 어지러운 틴에이지 로드무비는 마지막 라인 “That’s where my miracle ends”로 사그라들고, 그 잔해는 그룹사운드로 몰아친다. ‘Pretty’의 펑크향이 짙은 도입부를 듣고 Cage the Elephant의 초기 레코드 몇을 떠올리기도 했으나… 어긋나는 보컬 듀엣은 쿨하게 뻗어나가기를 마다하고 못난 멜로드라마를 휘갈긴다. 비디오에 흐르는 것은 추상적 행위예술, 배우들(=디보스 맴버들)이 연기하는 바는 캐릭터보다는 정서다. “He ain’t pretty but he’s mine”-안 예쁜 ‘Pretty’에 세기의 사랑이 담겨 있다면, ‘Checking Out’의 예쁘장한 멜로디에는 “제 기능을 못하는 관계”(-Tiger, [THE LINE of BEST FIT])의 긴장이 흐른다. 컨트리에 록이 무난하게 어우러지는 듯하더니, 화자가 ‘너’에게서 느끼는 위화감이 증폭되며 “베개 밑에 숨긴 나이프”가 드러난다. 후렴의 감미로운 화음은 “흥건한 피를 흘려보낼 비”와 “내일 너와 함께 활활 탈 오래된 실수들”을 노래한다. 비디오의 배경은 일부러 엉성한 세트장, ‘배우들’은 옛 서부극에 등장할 법한 가족을 연기하며 가사의 픽션을 재현한다. 물론, “네 피가 카펫을 더럽히는” 결말이다. 디보스의 컨트리는 장르를 존중하며 뒤집는 ‘안 진지한’ 위장, 놀이의 일환이다. 재치있는 역할극은 음악을 지배하지 않고 별도의 재미를 더한다.


https://youtu.be/Te5xG_ybreM?si=Bi9sIY5GUlgbHOyo

'Services' mv


다음 EP <Heady Metal>은 일종의 컨셉 앨범, 동일한 배우가 챕터마다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는 옴니버스극에 비유하고 싶다. 파워발라드와 인디 포크, 모던 오페라(?), 컨트리, 팝, 발라드/가스펠-인데 전부 앞에는 얼터너티브, 뒤에는 록을 붙여 수식해야 하는-의 설득력 있는 혼종 여섯 트랙을 이어 들으면, 한 편의 뮤지컬이 상상되기도 한다.


“Heady Metal”은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와 일치하는 말장난이다.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금속성의 소리덩어리. Tiger는 이를 “정서적 시대정신zeitgeist”, “커다란 변화들을 겪고 있을 때 들이닥치는 감정의 무더기”라고 표현한다.[DIY Magazine] 화자는 ‘나를 먹어치우는 것에 값을 지불’(‘Birds’)하고, ‘말을 삼키’거나, ‘20년쯤 더 산 기분을 느낀다’(‘Eat My Words’). (자신을)죽이고, 고통스러워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실패하고, 망가뜨린다. 그런데 그 곁에 ‘너’가 있다. ‘Jessie’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된 ‘너’는 화자가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는 스토리텔링 상대이자 자체로 목적이다. ‘따라잡기 너무 힘든’(‘Birds’), ‘그 천장에 닿을 수 없는’, 심지어는 ‘두려운’(‘Scratch Your Metal’) 존재이지만, 그 두려움은 소중하다.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Sex & The Millennium Bridge’), ‘천국을 향한 기나긴 여행을 함께하는’(‘Heaven Is A Long Way’), 도피처보단 동반자의 얼굴을 한. 넘쳐흐르는 날것의 감정들을, 디보스는 엄숙한 표정으로 들이미는 대신 시트콤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소비해버린다. ‘스스로를 다 내보일 줄 아는’ 이 밴드는 ‘스스로를 별로 진지하지 않게 취급하는’ 법도 잘 안다.


<Heady Metal>이 장난스럽게 추구하는 이미지는 안티-메탈 혹은 ‘메탈스러운 것‘의 퀴어화다. 흰 상하의를 맞춰 입고 (왠지 촌스러운 보이그룹마냥) 모여앉은 네 맴버, 그 주위를 강아지들이 에워싼다. 앨범 타이틀은 핫핑크색 ‘헤비메탈체’로 널려 있다. 이 정체모를 커버 아트의 에스테틱은 ‘Sex & The Millennium Bridge’ 비디오와 느슨하게 연결된다. 검정 민소매에 헤어밴드를 두르고 짐짓 ‘마초적으로’ 드럼스틱을 마주치거나, 가죽재킷을 걸치고 카리스마틱하게 걷는 식의 제스처는 오프닝 한두 컷 뿐, 위장조차 아니다. 전통적 메탈(이라기보단 록스타)헤어를 하고 있는 네 맴버의 메이크업과 착장이 심상찮다. 진한 립스틱과 섀도우, 반짝이와 호피무늬. 이쯤 되니 헤어밴드마저 ‘의심스럽’다. 헤비한 그룹사운드가 삽입되기는 했으나 그다지 메탈은 아닌 음악을, 이들은 무대에서 공연한다. 속을 열어젖히는 듯한 가사가 감성적인 록발라드로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를 응시하며 웨이브를 타는 등 센슈얼하고 퀴어하게 움직이고, 그 동작을 케이지 안에서 수행하기도 한다. 특정한 누군가들이 점유해온 스타일을 퀴어링하려는 디보스의 시도는 그 의도된 안-심각함, 키치함으로 빛난다.


https://youtu.be/4Jar7kvlstM?si=EEm7OWdZCYxKD06X

‘Sex & The Millennium Bridge’ mv


“이 밴드의 에스테틱은 멋지게 보이려는 의도 대신 매우 감정적인 동기에서 비롯한다. 우리를 silly하게 보이도록 하기 또는 연극적으로 행동하기, 그게 바로 곡에 어울리는 것이고 우리의 방식이다. 내 몸이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지 않는 것, 그저 감정적 중요성이 무엇일지 걱정하는 것, 이게 우리가 연기로부터 가져온 거다.”

- Tiger, [DIY Magazine]


나머지 세 뮤직비디오는 독립된 단편극처럼 보이는데, 각 트랙의 장르를 따르며 그 서사보다는 정서를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환상적인 화음이 두드러지는 포크록 ‘Bird’의 비디오는 기이한 환상이 맴도는 로파이 페이크다큐, 컨트리록 ‘Eat My Words’는 ‘별일없는’ 웨스턴, 경쾌하게 출발해 파워발라드로 흐르는 ‘Scratch Your Metal’은 린치 한 스푼 섞인 댄스피스. 비디오가 없는 두 곡의 이미지도 선명하다. 보컬의 비장미를 그룹사운드가 적절히 뒷받침하는 ‘Right On Time’에는 판타지 호러 뮤지컬이 연상되고, 가스펠의 흔적이 들리는 ‘Heaven Is A Long Way’는 엉뚱하게도 난해한 현대무용에 어울릴 것만 같다.



이러한 세계를 구축해온 디보스가 12곡 길이의 앨범을 예고하니 본격 락오페라 같은 걸 상상해보기도 했으나, 이들의 정규 1집이 그릴 구체적인 모양은 좀체 예상하기 어렵다. 2024년- 디보스는 <Heady Metal>을 졸업하듯, 모호하게 끼어들던 컨트리가 곡의 감정적 기세에 눌리는 두 싱글을 낸다. ‘Gears’는 우울하다. 전작의 ‘재키’가 재등장, 정확히는 ‘언급되지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화자는 그를 간절히 찾아 헤매고, “어디에 기어가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부르짖는다. 디보스와 꾸준히 협업하는 Clump Collective가 연출한 비디오는 단편 영화 형식, 어처구니없고 별 것도 아닌 상황에 둘러싸인 주인공은 웃지 못한다. ‘My Room’ 또한 우울하다. 자발적 고립과 위악? 아니, 어쩌면 <Too Bright>스러운(“I don’t need you to understand / I need you to listen”- Perfume Genius, ‘All Along’) 선언일 수도 있겠다. ‘Gears’의 엔딩은 갈라지며 폭발한다. ‘My Room’의 경우 플레이풀한 합창, 그리고 역시 폭발. 과도기의 카오스를 카타르시스로 터트린 후, 디보스는 <Drive to Goldenhammer>를 통해 새로운 길로 들어서려는 것일까. 제목과 커버아트를 보고 궁금해지는 건 ‘황금망치’의 정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야 한)다고, 디보스는 설명한다.


“Goldenhammer는 장소여야 하지만, 우리가 강조하고 싶었던 바는 여정, 그것이 장소보다는 앨범의 정서와 주제가 되는 것,이었다. ‘골든해머가 어디이고 무엇인가’는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갈망하거나 원하는 것에 대한 무형의 아이디어다.”

- Tiger, [Rollingstone]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다. 우리 중 누구도 이 집이 어떻게 생겼고 거기 누가 거주하고 있는지를 요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길 향해 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향한 여행의 일부다.”

- Felix, [Rollingstone]


https://youtu.be/fVn6d004AMM?si=2VIwlaSEYUhtIncf

'All My Freaks' mv


3월 7일 앨범 발매에 앞서 맨 먼저 공개된 트랙은 ‘All My Freaks’. 보컬과 신스가 깔끔한 톤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경쾌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구성하나, 거기엔 “no man’s land”로 들어가는 복잡하고 무거운 상태가 담겨 있다. 젠더퀴어가 겪는 심리적 여정으로 (일단) 짐작해 본다. “날 싫어하는 법을 또다시 학습하게 될 수도 있지만,” 화자는 힘있게 외친다, “나는 오직 너희를 내 괴물(=친구)들로 만들기 위해 여기 온 거야.” 현대와 고전의 공간으로 나뉜 체육관에서 분리된 두 자아가 운동하고, 춤추고, 힘을 겨루는 이미지가 펼쳐지는 뮤직비디오도 이와 연결된다. 뮤지션, 배우, 댄서인 네 맴버들의 에너지가 담백하고도 명백하게 느껴지는, 여전히 유머러스하고 가장 파워풀하며 조금은 진지한(!) 작업이다.


실은 ‘All My Freaks’가 디보스의 첫인상이었다. 뮤직비디오로 시청하고 나서 오디오를 듣는, 여러모로 거꾸로의 리스닝 순서였다. 반복해 재생할수록 비디오의 장면들은 희미해지고, 음악의 독립된 역동성이 귀를 채우기 시작했다. 비디오 속에서 다양한 배우로 분하는 디보스는 과연 흥미롭다. 허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라이브 비디오,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연극적 음악을 공연하는 모습이다. 스트링과 퍼커션, 목소리의 울림과 갈라짐이 전하는 이야기에 몰입하며 리스너가 도달하는 곳은 아마도, 극장과 콘서트홀 사이, 그리고 무대와 객석 사이 어딘가다.


https://youtu.be/stOMOyoooEw?si=2x60LAchsbtMOlDE

'My Room' live





+ 나머지 선공개곡 둘


‘Antarctica’는 부드러운 현악기와 나직한 보컬로 앨범을 연다. 씁쓸한 낭만이 감지된다. “I was made to love you / but the living made me weak”(‘Antarctica’) ‘Pills’는 이상하다. 창작물이 ‘이상하다’는 말은 내게 있어 ‘듣도 보도 못한 멋이 있다’는 뜻과 비슷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송라이터의 언어를 옮긴다.


“…… 구조는 매우 비전통적인데, 여기 마법같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치와 분위기 면에서 굉장히 넓은 간격으로 점프하는 세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코러스도 없다. 이를테면 세 개의 미니 송,들인 거다. 가사는 수퍼 게이하고, 시간을 뛰어넘는다. 매우 연극적이다. 본질적으로 매우 camp하다. 매우 ‘추가적extra’인데,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내 퀴어적 경험에 관한 것, 내 첫 번째 퀴어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정말로 날것이다. 이 곡을 만드는 건 역동적이고playful, 신나고, 온전한wholesome 경험이었다.”

- Tiger, [Rollingstone]



* 주 참고 인터뷰


https://diymag.com/interview/divorce-diy-class-of-2024


https://www.rollingstone.co.uk/music/divorce-nottingham-band-drive-to-goldenhammer-pill-play-next-interview-4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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