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씽>(2023)
<씽씽(Sing Sing)>(2023, 그레그 퀘다르)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씽씽>을 보며 내 신경을 곤두세운 소품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펜이었다. 일종의 학습된 불안이었다. 그동안 접한 교도소 배경의 수많은 극영화와 시리즈를 통해 나는 (이를 테면) 정신과 의사의 셔츠 주머니에 있는 펜을 노리는 ‘죄수’의 사나운 눈빛을 보아 왔다. 하지만 <씽씽>에서 대부분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펜은, 펜일 따름이었다. 무언가를 적고 대본에 밑줄을 긋기 위한 도구 말이다.
<씽씽>의 “씽씽”은 교도소 이름, 작품의 배경이다. 셰익스피어극 코스튬을 입고 무대에 오른 콜먼 도밍고의 독백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이어 무대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며 재소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정렬하는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관객은 먼저 인물들을 배우로 받아들인 후에, ‘재소자/교도소’라는 다른 정체성/상황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관점을 효과적으로 따라가려면 출연 배우 등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캐릭터들의 모습이 엔딩 크레딧에 하나씩 떠오르며 그중 대부분이 “자기 자신himself”의 역할을 맡았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을 (내가 잘 모르는) 배우로 먼저 본 나는 캐스팅 정보를 확인하며 놀라워했다. 그 다음엔 실제 촬영지였던 ‘씽씽 교도소’의 전경을 새삼 되새기며, 영화의 시도, 배우들의 용기와 ‘연기’에 감탄할 차례였다. 이미 한참 운 채로 여운을 음미하는데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실화 바탕의 픽션에 실존 인물이 출연하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개적인 대중 예술에 참여했다’는 것 때문은 (당연히) 아니었다. 이 문제의식은 ‘그들이 내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내가 그들을 보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 ‘진짜’의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물론 <씽씽>은 각본을 바탕으로 하는 극영화고, 배우들은 어디까지나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았다. 허나 실제와 허구의 경계는 모호했고, 모호한 것은 감정만이 아닌 경험과 캐릭터성까지였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픽션’에 의문을 갖게 된 계기는 야론 샤니의 <사랑의 3부작: 부활> 관람이었다. 비전문배우의 삶을 재료로 영화를 만듦으로써 ‘진짜를 담으려는’ 감독의 시도가 착취로 다가와서였다. 그러나 <씽씽>의 카메라는 인물들의 취약함과 고난을 집요하게 전시하고 있지 않았다.(<부활>이 그랬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긴 테이크의 클로즈업 숏은 배우에게 자신을 드러낼 시간과 공간을 주는 제스처에 가깝게 다가왔다.(짐작이지만, 카메라 뒤에서 감독이 “take your time” 이라고 말했을 것만 같다.) <씽씽>이 과거에 유해한 남성성을 수행하며 “분노에 잠식당했었다”는 실제 인물/배우들의 고백을 촬영함으로써 전하려는 바는, 연약함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가 때로는 힘과 안정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연기/예술이 그 좋은 방법이라는 점일 테다. 영화는 그 방향을 사실상 오프닝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하나 더, 내가 간과한 것은, 이들이 ‘실존 인물’이기 전에 다수의 연극 무대에 오른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라는 점이다. 앞서 적은 바를 뒤집으면, 크레딧에 “himself”라고 표기되어 있다 해도, 클래런스 맥클린이 연기하는 ‘Divine Eye’를 비롯한 역할들은 진정성과는 별개로 배우들의 “한 버전”[ScreenRant]일 뿐 동일한 존재는 아니었다. 이야기의 주인은 배우들이었고,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곧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였다. 주인공의 모델 ‘Divine G’의 까메오 출연 사실을 비롯한 비하인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몇 년 전 다큐멘터리로 분류돼 있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관람하며, ‘인순’ 본인이 본인을 연기하는 판타지-픽션 파트를 삽입한 영화의 선택이 탁월하고 적절하다고 느꼈다. 극으로 알고 보기 시작해 어쩌면 ‘다큐멘터리 비슷한 것’이 있었음을 깨달은 <씽씽> 앞에서는 왜 망설이게 되었는가. 이미 허구로 소비한 후 ‘탁월하다’는 초기 감상을 느껴버린 상태였기에 뒤늦은 죄책감이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실화 바탕의 이야기가 정제된 픽션으로만 존재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씽씽>은 실화와 예술의 힘으로 ‘교도소 영화’의 전형성을 깨고, ‘교도소’의 목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야기’로 다듬은 실화를 안락하게 소비해 온 관객을(나를) 성찰하게 만드는 데에도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