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퍼스트 필름>이 하는 시도

<마이 퍼스트 필름My First Film>(2024, 지아 앵거)

by 않인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깜박이는 커서가 보인다. 문장들이 타이핑되었다가 지워지고, 철자가 틀린 단어 밑에 붉은 점선이 생긴다. 영화감독인 비타는 수 년 전 찍었던 첫 영화를 회고하는 중이다. 누가 함께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 돌이킨다. 슬럼프에 빠진 베테랑의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 같은 건 아니다. 비타는 향수에 잠기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를 복기한다. 당시 했던 실수들, 잘못들, 다른 방법을 택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 상황들을 떠올린다. 그 길은 자학적 나르시시즘으로도 향하지 않는다. <마이 퍼스트 필름>은 거기 줄곧 있어 왔던 것들을 끌어올려 불완전한 기록으로 남기는, 방치된abandoned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총 예산은 5천달러가 채 되지 않고, 촬영은 계획보단 즉흥으로 진행된다. 크루는 비타에 대한 호의로 모인 지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현장은 비타의 고향 곳곳이다. 사랑이 과한 남자친구가 카메라 앞에 난입하면 비타는 강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스텝들의 표정은 굳는다. 주인공의 상대역 배우 캐쉬는 촬영중 마신 술 탓에 잔뜩 취해 운전하다 큰 사고를 당한다. 비타는 이 사건을 프로듀서에게만 이야기한 채 촬영을 이어가지만, 곧 다들 알게 되고 촬영기사 알렉시스와 주연배우 디나를 제외한 크루는 모두 떠난다. 이날을 돌이키며 현재의 비타는 내레이팅한다, “캐쉬는 죽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삶을 버릴 만한 가치를 지닌 영화는 없다.” 비타는 영화 촬영중 임신하게 되는데, 임신은 중단하고 영화는 중단abortion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첫 영화는 마치 그 주인공처럼, 창작자와 수많은 페스티벌로부터 방치된/버려진abandoned다. 비타는 또 내레이팅한다, “중단은 이해가 담긴 행위이지만 유기는 그렇지 않다.” 허면 <마이 퍼스트 필름>은 때로 중도 포기가 필요함을 말하려 하는가.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뒤엉킨 기억의 실타래를 응시함으로써 영화가 하려는 건 그보단, 결과가 영화만들기의 전부는 아님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감독 자신이 말하듯, “실패에 관한 공포를 내보내고”,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 깊이 현존present하는 일”[IndieWire]​에 얽힌 복잡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아들이는 일 말이다.

이 시도가 더욱 의미있는 건 ‘진짜’여서, 그리고 그 점을 드러내는 것까지가 영화의 매너에 포함되어서다. 영화 초반 문장들을 타이핑하는 주체, 영화를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궁리하며 장면들을 떠올렸다가 취소하는 주체, 후반 imdb 웹에서 (지아 앵거 감독의 실제 첫 영화인) <Always, All Ways, Anne Marie> 페이지에 접속해 ‘abandoned’라는 문구를 마우스로 드래그하는 주체는 비타인 동시에 지아 앵거다. 영화는 장면 사이에 메이킹필름을 삽입하는 등 반복해 벽을 깨는 제스처를 보인다. 이러한 연출 선택은 이 자기고백적인 영화가 막다른 길로 빠져 자아도취로 수렴하지 않는 까닭과도 연결된다. 화자는 비타이고 그의 생각과 심경이 자주 내레이팅되지만, 감독은 관객이 비타에게 이입해 그를(자신을) 양해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를테면 비타가 방 안 의자 위에 서서 낙하하는 폭포수를 떠올리는 장면, 배우 오데사 영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적절히 흩날리도록 커다란 판을 흔들고 있는 스텝의 모습이 끼어들어간다. 그 숏이 없었더라면 비타의 상념과 감각이 이미지화돼 흐르는 이 장면은 더욱 매끈했을 터이나, 영화는 부러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길 택한다.

영화의 마무리에서 비타-아니 비타의 옷을 입은 오데사-와 지아는 랩탑 앞에 나란히 앉는다. 오데사는 묻는다, “지아, 이거 어떻게 끝나죠?” 지아는 타이핑한다, “끝나지 않는다”고. 마지막 장면은 임신 중단 퍼포먼스다. 보이지 않는 도구로 보이지 않는 세포를 비타의 몸에서 긁어내며, 의사는 비타가 태어난 경위를 들려준다. 그의 게이 아빠(극중극 주인공의 아빠는 비타의 아빠가 연기하고, 그 아빠를 맡은 배우 맥스 퓨리는 감독의 친부다)가 어떻게 눈과 추위를 뚫고, 용기에 담긴 정자를 그의 레즈비언 엄마들에게 배달해 주었는지를. 이 모순되고 인공적인 장면에는 특별하고 진실된 무언가가 있다. 비타가 찍는 영화의 주인공은 비타와 다르지 않고, 비타는 지아 앵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저예산 인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서로를 돌보는 방법’을 (후회를 곁들여) 고민하고, 영화를 단독적인 감독-작가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의 공동 창작물로 명명하는 실험을 하는 <마이 퍼스트 필름>은, 비타-지아 앵거에게 귀속되는 영화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보단 기억을 토해내 그 잔해에서 무엇 하나를 골라낼 수 없음을 깨닫는 과정, 영화만들기에 관한 영화이자 지속가능한 영화만들기에 관한 구체적 고민을 솔직하되 뻔하지 않은 형태로 풀어놓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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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퓸 지니어스가 ost를 작곡해서 알게 된 작품인데 예상보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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