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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Dec 12. 2018

Pierre Niney, “Un Homme Belle”

-배우: 피에르 니니(Pierre Niney)

-참고한 영화:

<완벽한 거짓말(Un Homme Ideal)>(2014, 감독: 얀 고즐런)

<프란츠(Frantz)>(2016, 감독: 프랑수아 오종)


*<프란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에르 니니의 외모는 ‘아름답다’. 쌍커풀이 짙고 동그랗게 큰 눈 위로는 길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이 있다. 얇은 입술과 날카로운 코, 마른 몸매와 긴 목은, 그를 섬세하거나 예민해 보이게 한다. 외모에 걸맞게, 그는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역할을 맡은 적이 꽤 있다. 허나 그 아름다움은 조각상처럼 전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비밀이나 아픔을 담고 있어 더 매력적이다. 그 인물들이 피에르 니니를 만나 빛났던 까닭은, 그의 외모가 단순히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쁜 눈 속에 담긴 흔들리는 감정, 그리고 그것을 섬세하게 사용하는 그의 연기가 특별해서다.  

  인물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중요한 이야기에서, 그의 얼굴은 작품의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 <이브 생 로랑>(2014, 감독: 자릴 레스페르)에서는 보살핌이 필요한 예민한 천재 생 로랑의 것이 되었고, <프란츠>에서는 연약한 불안을 감추고 있는 애드리언의 것이 되었다. 생 로랑일 때는 안경으로 지적인 느낌을, 애드리언일 때는 콧수염으로 시대적 분위기와 우아함을 더한다.

2016,  <프란츠>


  눈이 큰 것은 배우에게 장점이 될까? 눈이 크면 담을 수 있는 감정의 크기도 클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틀에 박힌 모습을 보여줄 수도, 신선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거짓말(Un Homme Ideal)>(2014)을 보기 전, 피에르 니니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눈이 범죄자의 광기를 담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작품에 새로운 느낌의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눈은 크고, 눈동자 또한 크고 짙은 편인데, 멍하게 뜨면 ‘인형 같다’. 인형 같아서 예뻐 보일 때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인형의 것 같아서 무서워 보일 때도 있다. 동그랗게 뜨면 마치 토끼의 눈 같아, 어떤 불안이나 놀람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완벽한 거짓말> 속 마티유는 <프란츠>의 애드리언이나 <이브 생 로랑>의 생 로랑과는 달리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다. ‘이미지에서 나오는 분위기’보다 행동과 표현이 더 중요한 역할이다. 뻔하다면 뻔할 수 있는 고전적 형식의 스릴러이고, 피에르 니니의 연기 또한 작품의 톤에 맞게 정직하고 정확한 편인데, 그의 얼굴, 그러니까 ‘이미지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장면을 뻔하지 않게 만든다. 다시 정리하자면, 연기가 특별하다기보다는 그의 얼굴이 정직한 연기를 만나 특별해 보인다는 말이다.  


2014, <완벽한 거짓말>



  영화 내내 마티유는 불안해 보인다. 피에르 니니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어,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긴장해 있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앨리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별장에 있을 때 그가 많이 보여주는 표정이다. 편안해 보이는 앨리스와 가족들 사이에서 마티유 혼자 겉돌고 긴장해 있는 까닭은, 기본적으로는 거짓말 때문이다. 허나 그의 얼굴은, 날 때부터 부유해 경제적 압박 없이 편히 교양을 쌓을 수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바닥부터 올라가야 했던, 결국 실패했으나 거짓으로 성공한, 그래서 불안한 평범한 사람의 것이다.  

  사고를 가장하기 위해 차에 머리를 박거나 궁지에 몰려 난폭하게 운전하는 등 스릴러물에 클리셰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의 연기 자체는 사실 다른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얼굴, 독특하게 커다란 눈과 만나 관객을 특별히 집중하게 만든다. 화면이 자꾸 그의 얼굴을 비추는 것은 거기에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완벽한 거짓말>에는 마티유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나, 여러 부분으로 나눠진 형태의 거울에 마티유의 모습이 비치는 장면이 유독 여러 번 나온다. 마티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고전적인 연출이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범죄자, 혹은 천재를 가장한 평범한 사람. 이 연출이 피에르 니니의 얼굴과 만나 배로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가 어딘가를 집중해 뚫어지게 보면 정말 뚫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한끝차이로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앨리스에게 반해 다가갈 때는 <서른아홉, 열아홉>(2013, 감독: 데이빗 모로) 속 발타자르의 모습처럼 로맨틱하지만, 레옹 보방의 일기를 베낄 때부터 시작해 ‘이상적인 남자’가 되기 위해 집중해 연습하는 모습에서는 광기가 느껴진다. 큰 눈을 멍 때리듯 힘주어 크게 뜨면 싸이코패스 같은 느낌을 준다. 앨리스에게 소리 지르다가 애원하며 진심을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눈은 사랑과 광기를 번갈아, 또 동시에 담는다.    


2014, <완벽한 거짓말>
2014, <완벽한 거짓말>



  <프란츠>(2016)에서도 그의 광기가 담긴 멍한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데, 조금 다르게 쓰인다. 안나가 애드리언의 집에 찾아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 전쟁에 관한 기성세대의 대화에 반항적이고 자기파괴적으로 답할 때 사용된다.


2016, <프란츠>



 <프란츠>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예쁘고 슬픈 영화다. 흑백 화면 속 피에르 니니의 아름다움은 (사심을 보태)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완벽한 거짓말>이나 <서른아홉, 열아홉>과는 달리 연출이 독특한 작품인데, 그의 연기도 특별했다. 작품 분위기나 그의 얼굴처럼 예민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6, <프란츠>


  

 <프란츠>에서 그는 내내 어딘가 불안하고 지쳐 보인다. <완벽한 거짓말>의 급하고 날카로운 불안과 달리, 비밀스럽고 연약한 종류의 것이다. 초반에 애드리언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을 때, 그는 어딘지 당황스러운 것 같은 불안한 표정, 비밀스럽고 망설이는 태도를 보여 준다. 굽은 어깨와 생각에 빠진 듯 느릿느릿하다가도 급하게 빨라지기도 하는 걸음걸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와 눈동자. 보는 관객도 그 모습에 어딘지 불안해진다. 정말 저 예쁘장한 젊은이가 프란츠의 친구가 맞을까. 그 불안은 묘지에서 안나에게 불안을 털어놓을 때 터진다.

  프란츠를 죽이고 거짓말을 한, 또 안나와 사랑에 빠지고는 책임지지 못한 그를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그 자체로 너무도 여려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가누기에도 벅차 보이는, 불안하고 상처 받기 쉬운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 피에르 니니의 우수에 차 흔들리는 눈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눈이 고정되면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안나와 대화를 하다 발작적으로 “무도회에 갈래요?”라고 물을 때가 그러했다. 이후 그는 예의 굽은 어깨와 급한 동작으로 불안하게 뒤돌아 가지만, 그 순간의 사랑에 빠진 눈은 발타자르를 떠올리게 했다. <서른아홉, 열아홉>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안 좋아하는 영화인데, 사랑에 빠진 그의 눈만은 아름다웠다. 터무니없는 전개와 저급한 유머감각, 시대에 뒤떨어진 감수성 속에서 피에르 니니의 발타자르만 남았던 작품이었다.

2016, <프란츠>


  그와 달리, <프란츠>는 각본과 연출 면에서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주연 배우들의 이미지와 연기도 작품과 어울리게 특별했다.
  그 특별함을 느끼게 한 장면 중 하나가 애드리언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쓰러지는 부분이었다. 피에르 니니는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쓰러졌다. 물론 어느 배우가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에서 자 쓰러진다~ 하고 준비하는 연기를 하려고 하겠느냐마는. 어쨌건 짧은 장면이니까 ‘보통의’ 연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인물의 특징과 상황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쓰러짐을 보여주었다. 순간 온 몸의 힘이 사라진 것처럼, 눈이 멍해지고 몸이 살짝 떨리며 무릎이 픽 꺾인다.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의 스위치가 갑자기 꺼져버린 것 같아 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애드리언이라면 정말 저런 상황에서 그렇게 쓰러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쓰러지면서 화면이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는데, 연기와 딱 들어맞아 생기가 싹 가신 느낌을 주었다. 배우의 이미지와 섬세한 연기, 독특한 연출이 만나 완벽한 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2016, <프란츠>



 
  <이브 생 로랑> 이야기는 부러 넣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연기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완벽과는 거리가 먼, 끊임없이 예민하게 흔들리는, 허나 그 예민함 탓에 완벽한 결과물을 남겼던 천재, 생 로랑. 피에르 니니는 그의 감정을 맑은 눈에 섬세하게 담아냈다. 개인적으로는 <생 로랑>(2014, 감독: 베르트랑 보넬로)를 더 흥미롭게 보긴 했는데, 두 작품 다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았다. 허나 생 로랑 역할을 맡은 가스파르 울리엘과 피에르 니니 만큼은 훌륭했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머리에 박혔다. 글 초반에 언급했듯, 전형적으로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먼, 흔들리는 아름다움이다. (가스파르 울리엘에게는 피에르 니니 보다 묵직하고 깊은 느낌이 있는데, 그 또한 더 살펴보고 싶은 배우다.) 언젠가 두 배우를 한 작품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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