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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Dec 19. 2018

루니 마라의 “무표정”

-배우: 루니 마라(Rooney Mara)


-영화:
<캐롤(Carol)> (2015, 감독: 토드 헤인즈)
<블랙버드(Una)> (2016, 감독: 베네딕트 앤드류)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2017, 감독: 데이빗 로워리)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과 <캐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eat.

<송 투 송>(2017, 감독: 테렌스 맬릭)

<밀레니엄>(2011, 감독: 데이빗 핀처)

<사이드 이펙트>(2013,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메리 막달렌>(2018, 감독: 가스 데이비스)



데이빗 핀처가 감독한 캘빈 클라인 광고의 한 장면에서, 루니 마라는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춘다. 예쁜 춤이나 잘 추는 춤은 아니다. 눈을 꽉 감고 팔과 다리를 마구 흔든다. 마치 부끄럽지만 음악을 듣고 신나 못 견디겠어서 나오는 몸짓 같다. <송 투 송>(2017)에서 페이가 비브이와 함께 있을 때 춤추는 모습과 비슷하다. 나는 궁금했다. 그 장면에서 그는 페이였을까 그 자신이었을까. 몇 퍼센트가 루니 마라였을까. 루니 마라가 연기하는 인물들에게선 순간순간 자신 고유의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밀레니엄>(2011)에서 리즈베트의 겉모습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러나 책 속에서 튀어나온 리즈베트가 아닌, 루니 마라가 섞여 있는 리즈베트였다. 목소리나 말투, 표정은 여전하다. 다만 약간 더 굽은 등, 조금 더 치켜뜬 경계하는 눈, 조금 더 딱딱한 말투 등 약간의 변화를 줄 뿐이다.

루니 마라는 인물에 맞춰 자신을 많이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인물 자체가 된다기보다는 자신과의 접점을 찾아 섞는 느낌이다. 비슷한 표정이나 몸짓으로도 다양한 인물을 표현해낸다. 그렇다고 그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다 비슷비슷한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인물들에게서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는 감정을, 여러 종류의 ‘무표정’을 사용해 담아낼 때가 많다. 눈빛이나 입꼬리 같은 것을 미세하게 변화시켜 찰나의 변화를 표현한다. 뉴욕타임즈에서 몇몇 배우들을 선정해 정기적으로 내는 짧은 연기 영상(The New  York Times: Take flight, The New York Times: Touch of evil)에서도 그는, 무표정이다.  


2015, <캐롤>



<캐롤>, (2015, 감독: 토드 헤인즈)
-상대를 대하거나 관찰하는 시선

<캐롤>에서 테레즈의 표정이나 말투는 다른 작품에서의 루니 마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토드 헤인즈는 인터뷰에서 “작품 초반의 테레즈와 후반의 테레즈는 ‘다른’인물이고, 루니 마라는 그것을 매우 잘 소화했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루니 마라는 초반과 후반의 테레즈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까. 물론 의상과 메이크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또한, “의상과 같은 분장은 중요하다, 옷은 그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 알려준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완성하는 것은, 옷을 입은 배우의 움직임이다.


영화 초반의 테레즈는 우유부단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아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거절도 잘 하지 못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지만, 순간의 결정을 하기 힘들어해서 정작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할 때도 있다. 또 낯선 상대나 상황을 만났을 때 긴장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동시에 그 긴장을 들켜버린다.


루니 마라는 초반의 테레즈를 연기할 때 주변을 자꾸 둘러보는데, 눈치를 보며 관찰하듯 살펴본다. 캐롤과의 첫 번째 데이트에서도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다 캐롤을 발견하자 아주 살짝 미소 짓는다. 마치 좋음을 감추듯이. 레스토랑에서도, 캐롤이 테레즈를 똑바로 보며 그 순간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테레즈는 수줍은 미소를 지을 듯 말 듯 하며 끊임없이 눈치를 본다. 그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잠깐씩 캐롤에게 빨려드는 듯한 시선을 길게 던지기도 한다. 리처드와 길에 있을 때 차가운 무표정이다가, 캐롤의 차가 오는 것을 발견하자 또 살짝 미소 짓는다. 그 살짝의 차이로 리처드와 캐롤에 대한 감정을 표현한다. 차를 타고 가며 리처드를 보다가 말다가 하며 또다시, 좋음을 감추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캐롤의 집에서 하지가 화를 낼 때, 그는 거의 가만히 서 있다.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 다만 어깨를 들썩 한다. 그리고 기차를 타자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우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소리도 없이. 그것으로 그는 내내 긴장해 있다가 깜짝 놀라는 테레즈의 마음을 관객이 알 수 있게 한다.


루니 마라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한 편이다. 말할 때는 힘을 많이 주지 않는다. 그는 거의 그 톤을 변화시키지 않고 연기한다. 그러나 초반의 테레즈를 연기할 때는 가끔 중얼거리듯 말한다. 뉴욕타임즈 사무실에서 필의 키스를 받았을 때, 확실히 거절하거나 승낙하지 않고, 이러면 안 돼, 모르겠어, 하고 중얼거린다. 우유부단한 테레즈를 표현하는 것이다. 캐롤과의 관계가 진행되며 캐롤을 대하는 그의 표정은 살짝 달라진다. 좀 더 오래 캐롤을 똑바로 바라보고, 좋음을 참듯 웃는 것이 아니라 활짝 미소 짓는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리차드를 똑바로 보고 힘주어 싫다고 이야기한다. 캐롤에게 묻기도 한다. 자신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또 스위트룸을 하나 예약하자고 한 것도 테레즈였고, “Take me to the bed."라고 말한 것도 테레즈다. 루니 마라는 이 대사들을 과장하지 않고 그 나직한 말투를 조금씩 변화시켜가며 말한다.  



2015, <캐롤>


캐롤과의 관계에서 처음 원하는 것을 가졌다가 잃은, 후반부의 테레즈는,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행동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조금 ‘연기’할 줄 알게 된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들키지’ 않고, 원하는 대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터에서 캐롤의 편지를 받은 그는 잠깐 망설인다. 루니 마라와 토드 헤인즈는 그 잠깐의 망설임을 타자치는 손의 주저함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손으로 단호하게 편지를 구겨 버린다. 캐롤을 만났을 때는, 전처럼 빨려들 듯 보거나, 눈치 보는 게 아니라 똑바로 응시한다. 담배도, 제안도, 바로 거절하지만, 숨이 차는데 억누르는 듯한 미세한 긴장과 설렘을 거의 무표정인 얼굴 속에 담아낸다. 캐롤의 어깨가 손에 닿았을 때, 잠깐 눈을 감고는 떨리는 숨을 억누른다. 초반부에 캐롤의 집 피아노 앞에서는 눈치를 봤던 것과 다르게. 초반부의 테레즈가 사람들을 눈치 보듯 살폈던 것과는 달리, 파티의 사람들을 차분한 눈으로 관찰한다.


2015,<캐롤>




<우나>, (2016, 감독: 베네딕트 앤드류)
<고스트 스토리>, (2017, 감독: 데이빗 로워리)
-멍한 무표정

<캐롤>은 루니 마라의 멍한 표정을 별로 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두 작품, <우나> <고스트 스토리>는 그의 여러 무표정 중에서도 멍한 표정을 자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이는지도.

 

2017, <고스트 스토리>


<고스트 스토리>의 M이 타인을 잃은 사람의 모습이라면, 우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이다. 두 작품에서 모두 그는 눈에 힘을 뺀 무표정을 하지만, 조금 다르다. <고스트 스토리>에서 연인을 잃은 M의 눈은, 울고 난 후처럼 살짝 젖은 상태로 하늘이나 허공의 어떤 점에 멍하게 고정된 것 같다. 힘이 빠져나간 표정이다. 그러나 우나의 눈은 정말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다. 애초부터 힘이 없었던 것 같은 표정이다. <사이드 이펙트>(2013)에서의, 몽유병 환자를 연기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우나의 얼굴이, 처음 등장할 때 클럽 조명 사이사이로 보이는 그의 모습을 더 신비롭게 만들고, 그에 대해 궁금하도록 만든다. 이후 화장실에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카메라는 벽에 붙어 있는 우나의 어깨 위쪽만 잡는다. 입으로는 기계적으로 숨을 내쉬고 있지만 감고 있던 눈이 중간 중간 힘없이 떠질 때 보면, 눈동자가 멍하다. 전혀 즐기고 있지 않다는 것, 성관계가 어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이의 회사로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역시 아무것도 담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살짝 웅크린 채 걸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구토를 하는데, <캐롤>에서 달려나가 울음을 토하듯 구토하는 장면이나, <고스트 스토리>에서 구토하는 장면과는 또 다르다. 전혀 찡그리지 않는다. 한 번 뱉어내고 난 후,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입을 헹군다. 저 사람의 구토는 어쩌면 일상적이고, 그가 어떤 것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법을 택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2016, <블랙버드(Una)>


그 멍한 표정이, 레이를 만난 후 쏟아내듯 따지는 모습을 더 부각되게 만든다. 루니 마라의 평소 목소리와 말투는 나직하고 부드러운 편인데, 이것이 미국식 영어 발음과 만나 더 부드럽게 들린다. 그러나 여기서는 부러 더 따박따박 말한다. 영국식 억양을 사용해 더 강하게 들린다. 잘 볼 수 없던 그의 모습이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2017, <고스트 스토리>


<고스트 스토리>에서 루니 마라는 연인 C를 사고로 잃은 M을 연기한다. 통곡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가만히 연인의 시체를 보는 그의 뒷모습은 ‘멍하다’. 뒷모습에서 멍한 슬픔이 묻어난다. 상실을 멍한 상태로 표현한다. 얼굴을 일그러트려 고통을 표시하지 않는다. M이 ‘멍하게 살아가는’ 모습 중 기억에 남는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M이 멍하게 누워 C가 작곡한 음악을 듣는 장면이다. C가 없는 현재 그가 누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장면과, 과거에 C가 처음 그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이 교차해 나온다. 과거 장면에서, 이사를 가자는 M의 말을 대충 넘긴 C는 음악을 들어보라고 말한다. 헤드셋을 건네받은 M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무표정으로 음악을 듣다가, 음악이 끝날 무렵 눈을 내리깔고 작게 한숨을 쉰다. 과거의 의도된 무반응은 현재 M의 모습을 더 슬프게 만든다. 루니 마라는 거의 눈빛의 차이만으로 과거와 현재, 같은 음악을 듣는 M의 다른 감정과 상태를 표현해, 오히려 보는 이의 슬픔을 심화시킨다.   


다른 하나는 파이를 먹는 장면이다. M이 없는 집에 이웃이 파이와 메모를 두고 간다. 집에 온 M은 파이와 메모를 발견한다. 메모를 읽고 버린 후, 주방 바닥에 기대 앉아 포크로 파이를 퍼먹는다. 집에 들어와 파이를 먹는 장면 내내 그는 무표정이다. 울지도, 한숨을 내쉬지도 않으며, 힘들어 죽겠다는 제스처를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살짝 지친 것 같은 몸짓으로, 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고 파이를 자르고 포크를 꺼내는 등의 실용적인 동작들을 천천히 할 뿐이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파이를 먹는 몇 분간의 롱테이크 장면이 이어진다. 그는 파이와 허공을 번갈아 보며 먹는 것에 열중한다. 가끔 코를 훌쩍이기만 한다. 그러나 그 장면 끝에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파이를 게워낸다. 텅 빈 마음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일상을 도로 뱉어낸다. 과장 없는 표정과 몸짓이 장면의 마지막을 더 와 닿게 만든다. 이는 <캐롤>에서 연인을 잃은 후 토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2017, <고스트 스토리>



다시 캐롤로 돌아가 보자. 파티하는 곳에서 벗어나 택시를 타고 캐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과정에서 테레즈는 역시 거의 무표정이지만, 몸짓에서 망설임이 묻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캐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다가간다. 그 장면은 <메리 막달렌>(2018)에서 메리가 군중 속에서 예수를 보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캐롤을 보는 테레즈의 표정은 메리가 예수를 보는 표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사랑하고 동경하는 대상을 보는 눈빛. 물론 메리의 눈빛에는 걱정도 섞여 있다.


위에서 언급한 장면처럼, <캐롤>에서 루니 마라가 연기하는 모습은 다른 작품에서의 모습들이 떠오르게 한다. 표정이나 말투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슷한 요소가, 분장만 다르게 해도 캐릭터에게 어울리도록 바뀌는 것은, 자신과 캐릭터를 잘 섞어 연기하기 때문이다. 또 앞에서 말했듯, 각기 다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보편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롤> 인터뷰(루니 마라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테레즈는 어떤 인물이다.” 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할 때 ~했을 것이다’, ‘~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와 같이 짐작하는 언어를 사용한다.)에서 <밀레니엄>을 찍을 때 데이빗 핀처 감독이 자신이 발전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의견을 많이 물었고, 그래서 그와 작업하며 연기에 있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연기를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인물을 단정 지어 자신을 동화시키기보다, 인물에 자신이 녹아들게 해 인물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것. 배우의 목소리가 섞인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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