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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Dec 25. 2018

아담 드라이버, Adam “Driver”.

-배우: 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

-참고한 영화:
<패터슨(Paterson)>(2016, 감독: 짐 자무쉬)
<프란시스 하(Frances Ha)>(2012, 감독: 노아 바움백)
<로건 럭키(Logan Lucky)>(2017,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https://youtu.be/m8pGJBgiiDU


패터슨 시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은, 백미러를 흘기며 승객들의 대화를 듣는다. 대화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찾았을 때 그는 활짝 웃지 않는다. 다만 무표정에 웃음기를 담는다. 버스 기사는 승객들과 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버스를 운전하는 순간만큼은 승객들보다는 오히려 달리는 버스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패터슨>(2016)의 ‘패터슨’을 연기한 아담 드라이버의, 무심한 건지 진지한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표정은, 버스 운전사 역할에 탁월했다.


<패터슨>(2016)


아담 드라이버의 얼굴은 길고, 선이 굵다. 전체적으로 살짝 휘었고 입은 튀어나와 있어서 뭔가 불만이 있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으면, 사람 사이에 섞여 있어도 두드러져 보인다. 어쩐지 사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거부감을 일으키기보다는 눈이 한 번 더 간다.

사실 그의 외모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날렵한 선의 얼굴과 체형, 여리거나 날카로운 이미지에 주로 반하곤 했으니까. <패터슨>을 본 것도 짐 자무쉬 감독 때문이었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그게 배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아내 로라를 연기한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내 취향이었다면 모를까.


그러나 <패터슨>은 내가 본 그의 작품 중 처음에 불과했다. 방심했던 나는 <프란시스 하>를 보며 그에게 조금 빠져들었고, <로건 럭키>에서 심장을 강타 당했다. 나는 가끔 이상한 포인트에서 눈이 커지곤 하는데, 본인을 아나키스트나 코뮤니스트 혹은 예술가라고 티내는, 재수 없고 반반하게 생긴 힙스터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레이디 버드>(2017)의 카일. 그를 연기하는 티모시 살라메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엘리오와는 너무 다르게 멋있어 보여서, 엘리오에 붙었던 애정이 카일에게로, 티모시 살라메라는 배우에게로 확장됐었다. 대놓고 재수 없으라고 만든 캐릭터인데 맡은 배우가 너무 잘 소화해서 어쩔 수 없이 멋있어 보이는 경우, 라고 해야 할까.


<프란시스 하>(2012)


<프란시스 하>(2012)의 레브가 그랬다. 현실에 있으면 딱히 말 붙이고 싶을 것 같지 않은 인물인데,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 아 나도 저런 사람이랑 친구 아니 데이트 한 번 만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진중한 눈빛 때문이었을까,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은 레브 같이 빤히 보이는 캐릭터를 맡아도 뭔가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레브는 그냥 바람둥이 힙스터가 아니라 아담 드라이버만의 바람둥이 힙스터다.

그는 영화 속에 적지 않은 횟수로 등장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상당히 뜬금없고 짧았다. 레브는 자신의 집에서 열린 술자리가 끝난 후, 몇 시간 전만 해도 유혹의 대상이었던 프란시스에게, ‘더 있다 가라’거나 ‘데려다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너무도 당연하고 단호하게 나가는 길을 알려준다. 아 그 무심함이라니. 무심한데 또 가끔 보여주는 당연한 로맨틱. 몸에 밴 당연한 잘난척. 그는 모든 말과 행동을 당연하게 해서, 상대방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너 방에서 담배 펴?” 라는 프란시스의 물음에 그는 사과하지 않고 “너도 필래?” 하고 묻는다. 그 당연하고 무심한 태도가 바로 재수 없는 레브에게 빠져드는 포인트다.


<프란시스 하>(2012)


<로건 럭키>(2017)에서 아담 드라이버는 연기를 엄청 “잘한다”. 새삼스럽고 뜬금없지만, 정말로, 연기를 잘한다. 폭이 큰 감정연기를 해서 보는 사람의 혼이 빠지게 하거나, 캐릭터에 빙의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거나 하는 연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한 순간 시선을 확 빼앗는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빨려 들어가 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공의 동생 클라이드 로건이다. 그는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사고를 당해 한 손을 잃었고, 현재는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아담 드라이버는 클라이드와는 달리 두 손이 모두 있다. ‘두 손 모두 있는데 한 손만 있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관객이 그 자연스러움마저 의식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비장애인 배우가 장애인을 연기할 때 종종 그 ‘장애’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신체적 특징을 잘 연기해낸다는 것을 과시하려다 도리어 과하고 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아담 드라이버의 클라이드는 그냥 ‘클라이드’ 그 자체 같아 보였다. 한 쪽 손이 없는 것도 그의 특징 중 하나로 묻어나, 대사나 눈빛 같은 것들과 함께 클라이드의 한 요소로 기억에 남는다. 클라이드가 잃은 손 대신에 끼우고 있는 인조 손이 나중에 몇 장면에서 웃음 요소로 쓰이는데, 그게 장애인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혐오개그가 아니라 전혀 불편함 없는 단순 유머로 읽힐 수 있었던 데에는, 아담 드라이버의 깊고도 단순한 연기가 한몫했다.


<로건 럭키>(2017) 포스터.


그러니까, 내가 심장을 강타당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양아치 무리가 클라이드의 팔을 보고 깐족거린다. “외팔이” 바텐더가 등장하는 노래가 떠올랐다거나, “외팔이” 인데 술을 말 수 있냐고 묻는 등. 클라이드는 예의 그 변함없는 표정으로, ‘나는 정확히는 팔이 아니라 팔꿈치 밑으로 없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조 손도 빼버린 채, 한 손으로 마티니를 끝내주게 말아 건넨다. 걔네가 필요 없다고 했던 얼음도 넣어서. 하. 그 장면의 각본과 연출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그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의 얼굴, 거기 담긴 표정과 몸짓이 상당히 탁월했다. 화내지 않으면서도 굽히지는 않는, 무뚝뚝하면서도 무심하지는 않은. 카메라는 그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을 별다른 효과 없이 깔끔하게 담아낸다. 그 장면 덕에 이후 코믹한 설정이 등장할 때 캐릭터의 매력이 플러스되어 더 집중해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패터슨>(2016)


다시 <패터슨>으로 돌아가 보자. 패터슨은 버스 운전사인 동시에 시인이다. ‘버스 운전으로 돈을 벌며 꿈을 키우는 시인 지망생’ 따위의 설정은 아니다. 그는 버스를 운전하고, 시를 쓸 뿐이다. 현재의 작은 행복들에 만족하는 그는, 평화롭고 무심한 나날을 보낸다. 영화 중간중간 들을 수 있는, 패터슨이 시를 읽는 목소리도 그와 비슷하게 평화롭고 무심한 느낌이다.

아담 드라이버의 목소리는 굵고 둔하지만 비음이 섞여 날카로운 데가 있다. 그는 애써 감미로운 목소리를 내려 하지 않고,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해 시를 정직하고 정확하게 읽는다. 특별할 것 없지만 묘하게 집중되는 그 낭송은, <패터슨>, 그리고 패터슨 시의 ‘패터슨’과 닮아 있었다. ‘패터슨’ 시의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을 연기하는 ‘아담 드라이버’.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아주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존재들이 마치 애초에 연결되어 있던 것처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담 드라이버, 그의 연기는 마치 능숙한 버스 드라이버의 운전 같다.


<패터슨>(2016)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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