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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Jan 06. 2019

대단한 솔직함, 안나 켄드릭

안나 켄드릭(Anna Kendrick)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A SIMPLE FAVOR)>(2018, 감독: 폴 페이그)
<피치 퍼펙트(Pitch Perfect)>(2012, 감독: 제이슨 무어)
<숲속으로(Into the Woods)>(2014, 감독: 롭 마샬)
 

* 위 작품들의 구체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나 켄드릭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샘솟는 에너지로 모든 것을 자기화해버린다. 주변에 있으면 나랑 정말 안 맞을 것 같은데, 영화나 미디어에서 보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만약 그를 대충 ‘<피치 퍼펙트>에서 노래 부르던 주인공’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이번에 나온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를 보고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포스터.


감정을 한 꺼풀 감추고 있어 매력적인 배우도 있지만, 안나 켄드릭의 무기는 솔직함이다. 부루퉁하고 날카로운 동시에 사랑스럽고 똑 부러질 것 같아 보이는 외모는 솔직함을 표현하는 데 적격이다. 허나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그 자체다. 연기에 내숭이라곤 없다. 사심 없이 에밀리를 순수하게 부러워하고 좋아하다가, 이후에 대놓고 파헤치는 스테파니의 군더더기 없는 솔직함은, 안나 켄드릭 이었기에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연기하는 에밀리의 터프한 섹시함과 환상적인 케미를 이룬다.


연기 못하는 연기를 맛깔나게 잘하는 배우는 매력적이다. 안나 켄드릭이 그렇다. 몰래 에밀리의 드레스를 입어보던 스테파니는 갑자기 찾아온 형사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애쓴다. 계속 미소지으려고 노력하고, 쓸데없이 말에 농담을 섞고, 태연한 척 한다. 그 와중 꽉 끼는 드레스가 불편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얼굴을 찡그린다. 스테파니는 괴롭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데니스를 노려보며 독설을 퍼붓고, 엘리베이터에 탄 후 다리에 힘이 풀려 뒤뚱거리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안나 켄드릭의 얼굴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소하고 확실한 감정을 풍부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한다. 에밀리의 장례식이 끝난 후 션과 키스하며 침대에 누운 그녀의 표정은 아주 솔직하다. 복합된 감정인데, 복잡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스테파니가 ‘힝 좋은데 너무 죄책감 들어’라고 귀에 직접 말해주는 것 같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그의 목소리는 높고 깔끔하다. 말은 빠르고 발음은 분명하다. 가끔은 ‘때려박는 랩’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안나 켄드릭이 진짜로 랩을 하는 장면이 있다. ‘에밀리의 과거 파헤치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신난 스테파니는 차를 타고 가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랩을 따라 부른다.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인상을 쓰고 리듬을 타며 손동작까지 한다. 너무 안나 켄드릭 같아서 연기가 아닌 것 같다. 이건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흥이 아니다.

https://youtu.be/zwaEtfYmHRw


안나 켄드릭의 랩은 사실 잘 한다기보다는 정확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치만 그가 영화에서 갑자기 랩을 시작하면 어쩐지 입을 벌리고 집중하게 된다. <피치 퍼펙트>(2012)에서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No Diggity’의 랩 파트를 시작하는데, 엄청나게 빠르고 정확하게 랩을 마친 후 수줍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부끄러운데 좋은 감정을 솔직하게 얼굴과 몸에 드러낸다. 사실 영화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함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흥이 퍼져나가는 장면은, 클리셰스럽고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이 장면도 그렇지만, 안나 켄드릭의 신나는 표정과 완벽한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리듬을 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노래가 끝난 후 특유의 ‘스웩’ 넘치는 찡그린 얼굴로 손을 크로스하는 안나 켄드릭을 보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앗, 어쩔 수 없이 <피치 퍼펙트>를 언급했다. 작품보다 안나 켄드릭이 돋보였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https://youtu.be/cqCkJJ_4gpg



뭐, 안나 켄드릭이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사실이다. 높은 목소리에 리듬이 들어가면 넓은 폭의 음정과 스타일을 넘나든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영화에 출연하면 자기 몫 이상을 해낸다. 연기도 잘 하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뮤지션들이 노래와 퍼포먼스에 익숙해 그 연기를 잘 하는 것과는 다르다. 노래 자체가 아주 독보적이지는 않지만, 연기와 만나면 단순히 두 개의 볼거리를 주는 것을 넘어 두 배 이상의 매력을 뿜어낸다. <숲속으로>(2014)가 바로 그 예다.


익숙한 동화를 엮고 비틀어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그리는 작품이다. 캐릭터도 많이 각색해, 라푼젤과 연인을 제외하고는 아예 새롭고 입체적으로 바꿨다. 원작 동화 등장인물의 전형적인 분장을 하고 있어도 배우의 스타일이 묻어난다. 두 왕자가 서로의 고통이 더 크다며 과시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난리가 난 것을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다섯 명의 인물들이 정신없이 싸우는 장면을 비롯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 드러나는 장면은 매우 많다. 매력의 반이 기발한 각본과 연출로 인한 것이라면, 나머지 반은 연기와 노래로 그것을 완성한 배우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노래도 연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노래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것과, 가사를 대사처럼 사용하며 노래 자체로 연기를 하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은 다르다. 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뮤지컬 ‘영화’의 경우는 또 다르다. 노래를 기술적으로 잘 부르는 것과 인물의 상태와 감정을 연기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숲속으로>에 출연한 배우들은 그 어려운 것을 완벽하게 해낸다. 메릴 스트립의 웅장함이나 에밀리 블런트의 강약조절도 훌륭했지만, 가장 눈이 갔던 캐릭터는 안나 켄드릭의 신데렐라였다.


<숲속에서>(2014)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서 도망가다가 역청을 바른 계단에서 멈춰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작품 속 신데렐라의 성격과 그녀를 맡은 안나 켄드릭의 적절한 연기가 한껏 드러난다. 공연하듯 노래하는 <피치 퍼펙트>의 장면들과는 결이 다르다. 가사는 곧 대사이자 신데렐라의 속마음이다. 안나 켄드릭은 단순히 ‘노래’에 집중하지 않는다. 표정을 시시각각 입에서 나오는 말에 맞게 변화시킨다. 미소를 띠웠다가 지우기도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가 눈을 빛내기도 한다.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하이힐 속에서 기우뚱거리면서도, 감정에 맞게 몸을 움직이며 극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오히려 목소리는 높은 톤으로 통일하고 노래 부르는 방식도 일관되게 해, 관객이 그의 멋진 노래가 아니라 장면과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 준다. 신데렐라가 일부러 구두 한 쪽을 계단에 붙여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 했다는 각색도 탁월했지만, 고민하는 과정을 연기하는 안나 켄드릭도 그러했다. 드레스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리고 앉아 구두를 손에 들고 눈을 굴리는 모습은, 과장해 말하면 신데렐라의 역사를 새로 썼다.
 
https://youtu.be/bgLvp3UUJPw



셀러브리티들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일반인이 알기는 힘들다. 다만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함께 찍은 영상에서 둘은 자신들과 관련된 구글 검색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Does Anna Kendrick use autotune(안나 켄드릭이 오토튠을 쓰나요)?”이라는 검색어가 뜨자 안나 켄드릭은 "How dare you(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하고 소리친다. 그 이후 너무 솔직한 반응이 이어지는데,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https://youtu.be/xmo8-Bh98fw



안나 켄드릭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도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솔직하고 에너지 넘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 너무 강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근데 그러면 뭐 어떤가. 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해내는, 계속 자신과 닮은 역할만 맡아도 질리지 않을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는 배우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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