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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Mar 08. 2019

‘퇴폐미’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데인 드한(Dane DeHaan)


이미지 출처: thefashionisto.com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2012,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크로니클(Chronicle)>(2012, 감독: 조쉬 트랭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Amazing Spider-Man 2)>(2014, 감독: 마크 웹)
<라이프(Life)>(2015, 감독: 안톤 코르빈)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2017, 감독: 뤽 베송)
<더 큐어(A Cure for Wellness)>(2017, 감독: 고어 버빈스키)

 
* <크로니클>,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더 큐어>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2)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2)의 감독이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2010)의 데릭 시엔프렌스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인생을 훔쳐보는 기분이 드는 지독한 작품들이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경우 주인공이 딱 누구라고 말하기도 힘든, 연대기(chronicle) 같다. 다만 시선의 주인공은 있다. 처음에 라이언 고슬링의 루크에게 있던 포커스는, 그가 죽은 후 브래들리 쿠퍼의 에이버리에게 옮겨지고, 끝내는 루크의 아들 제이슨에게 머무른다. 마약에 찌든 연약한 소년 제이슨을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묘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으나, 왠지 눈이 갔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2)


제이슨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데인 드한.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 중 하나인데, 화자 되는 영화는 어쩐지 별로 없다. 이름 높은 그의 ‘퇴폐미’를 제대로 담아낸 작품, 또 그렇지 못했던 작품들을 살펴보자, 라고 글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막상 관찰하다 보니 ‘퇴폐미’라는 말로는 그의 분위기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태롭다. 불안해 보인다. 그런데 계속 눈이 간다. 다듬어지지 않은 이십 대 초중반이 특히 그렇다. 아주 마르지는 않았지만 가녀린 느낌을 주는 실루엣. 창백한 피부와 탁한 푸른 눈, 다크서클, 마약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뾰족한 귀 때문에 무슨 뱀파이어나 요정 같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연기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뭔가 낀 듯 웅얼거리고, 느려서 슬로우 모션을 입힌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삑사리도 나며 자주 먹어 들어가는 발성,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로 들리지만, 그 자체가 데인 드한 목소리의 매력이다. 연극에 출연한다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카메라에 잡히는 그의 얼굴과 목소리 특성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내지르면 또 다르다. 다 잊어버리고 소리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다.



https://youtu.be/i-M5Qx57_UU

<크로니클>(2012) 트레일러. 트레일러마저 취향이다.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데인 드한의,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듯 거친 분위기와 목소리를 잘 담아낸 작품 중 하나가 <크로니클>(2012)이다. 초능력을 다룬 가장 어두운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탁한 화면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독특한 연출이, 데인 드한의 불안한 얼굴과 만나 (적어도 내 경우는)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사적인 대작’을 만들어냈다. 항상 다시 보고 싶었는데, 시작하면 감당하기가 벅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다가 결국 틀었다. 데인 드한을 말하면서 <크로니클>을 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크로니클>(2012)


[얼굴] 친구들과 같은 나이지만 어딘지 덜 자란 느낌의 앤드류. 얼굴이 뽀얗고 덩치가 왜소한 편이어서기도 하지만, 행동이나 분위기가 더 그렇다. 내성적이고, 겁이 많으며, 말투는 약간 어눌하고 덜 체계적이다. 하지만 한 번 뭔가에 빠져들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하달까 위험하달까 그런 잠재된 능력과 필이 느껴진다. 아마 그 이유 중 하나는 ‘그늘’일 것이다. 아픈 엄마와 알코홀릭 아빠가 있는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는 앤드류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하다. 내가 캐스팅 디렉터였더라도, 데인 드한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입히지 않은 그의 얼굴에는 깊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이렇게 말하니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그 어두움이 배우에겐 어떤 종류의 가능성이다.


[목소리] 카메라를 들고 있어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 이상하게도 앤드류의 감정은 필터를 거치지 않은 듯 곧바로 다가온다. 초능력을 얻는 순간, ‘I'm freaking out right now.’ 라고 말하는, 들고 있는 카메라처럼 온통 흔들리는 목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아빠를 힘으로 이긴 후, 도와주려는 스티브를 거절할 때의 목소리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이 때 통하는 것이 그의 눈인지 들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두운 화면에 스티브만 잡혀 있어도 앤드류의 얼굴을 예측할 수 있다. 목소리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메라 바로 옆에 있어 울리고 퍼지며, 까지고 끓어오른다. 천둥소리가 배경음이 되어 더 불안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몸] 앤드류가 공연하는 모습은 능숙한 마술사가 아니라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인다. 관객을 즐겁게 해 주려는 의도로 묘기를 부린다기보다는, 그냥 혼자 놀며 그 자체로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초능력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신체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마이클 B. 조던의 안정적이고 연극적인 백업과 비교된다.


<크로니클>(2012)


[다시, 얼굴] 전에는 이길 수 없었던 아빠를 내동댕이친 후 숨을 몰아쉬는 앤드류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하다.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적절히 컨트롤하지 못한다. -신체가 약해서라기보다는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은- 앤드류의 힘을 조종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두려움과 혼란, 쌓인 괴로움을 파괴적으로 폭발시켜버리는 앤드류는 위험하다. 단지 힘이 강해서가 아니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이기 때문이다. 두려워서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두려움의 늪에 다이빙해 허우적댄다. 데인 드한의 떨리는 뺨과 벌어진 입, 깊게 요동치는 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앤드류의 복잡한 심리를 그대로 드러낸다. 데인 드한이 쌓은 앤드류의 모습은, 후반부의 폭주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여기 또 하나의 폭주하는 데인 드한이 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의 해리 오스본이다. 솔직히 말하면 시리즈 다음 편 제작이 취소되어 가장 아쉬운 점은, 데인 드한 표 해리 오스본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제임스 프랭코가 연기한 해리 오스본이 약간 멀끔하고 별 생각 없는, 젤 바른 어두운 색 헤어와 까만 코트가 잘 어울리는 부잣집 도련님 느낌이었다면, 데인 드한의 해리는 좀 더 복잡하고 위태롭다. 곱게 빗질한 금발이 치명적인 각도로 눈을 덮는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약해 보이면서도, 잘못 건드리면 난리날 것 같은 위험함이 느껴진다.


노만 오스본이 죽고 스무 살에 회사를 물려받은 해리는 회의에서 변호사들을 휘어잡기 위해 센 척을 한다. 안정되고 카리스마 있기보다는 말했듯 위험해 보이지만, 왠지 거부할 수 없다. 피터와 있는 해리는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경계하듯 심각한 얼굴로 폼을 잡고 있지만, 곧 풀린다. 입꼬리를 씩 올려 활짝 웃고,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가득해지는데, 순수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악동 같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엘리베이터에서 해리와 그웬이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장면의 흥미로움은 이미 엠마 스톤에 대한 글에서 썼기 때문에, 이번에는 해리의 표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봐야겠다. 그웬에게 처음 인사를 건넬 때 그는 난간에 기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 깜짝 놀란 상태의 그웬과 대비된다. 피터와 그웬의 관계에 이야기할 때도 계속 웃고 있는데, 클로즈업된 얼굴은 천진함과 약간의 다정함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부탁하듯 "That's why he needs you." 라고 말할 때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눈은 간절하게 빛난다. 묘한 분위기를 느낀 그웬이 서둘러 인사하고 내리자, 그도 인사한다. 그웬 쪽을 응시하지만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중얼거리며 아련한 표정으로 있다가, 마지막 아주 짧은 순간 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다문다. 정도가 아주 미세하고 섬세해서 알아채기 힘들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데인 드한의 해리는 곧잘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다른 감정을 얼굴에 입힌다. CEO 자리에서 쫓겨나는 상황, 요원들에게 팔이 붙들린 해리는 애원하는 것 같은 말투로 다급하게 기다리라고 외친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증오로 불타오르는 눈이 있다.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입꼬리만 올려 미소를 짓는다. 몇 초 전 내뿜던 흥분을 가라앉힌 채, 몸에 여유를 두르고 걸어 나가며 뱉는 "I know my way out." 까지, 완벽하게 데인 드한을 위한 장면이다. 그가 정말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여기서 보여준 종류의 미소다. 해맑게 웃을 때도 멋있지만, 눈을 치켜뜨고 구긴 채 교활하고 위험한 느낌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얼굴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타고난 이목구비가 한몫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생김새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무엇이다. 외모와 연기, 감각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예술작품이 바로 ‘데인 드한 표 악마의 미소’다. (후반부에는 더 자주, 더 ‘악마적으로’ 등장하는데, 그린 고블린 분장이 가려서 좀 아쉬웠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실재했던 인물을 연기한다고 해서 본인을 아주 똑같이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 비앙 로즈(La vie en rose)>(2007)에서 에디트 피아프를 연기했던 마리옹 꼬띠아르처럼 거의 흡사한 인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극영화의 캐릭터는 정해진 모델이 있더라도, 감독과 배우의 해석이 들어간 새로운 인물일 수밖에 없다. <라이프>(2015)에서 제임스 딘을 연기한 데인 드한에 대해 혹평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제임스 딘의 특징과 본인만의 분위기를 적절히 혼합해 작품의 톤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느꼈다. (헤어나 패션은 기본이라 치고) 톤을 높이고 힘을 뺀 발성에 비음을 섞어 날카로움을 더해, 원래와 살짝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귀찮은 듯 꿈꾸는 듯, 말하는 듯 마는 듯 하는 말투를 사용한다. 항상 어딘가에 기대 있거나 삐딱한 자세, 끊임없이 피는 담배. 물론 제임스 딘 정도의 포스가 있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농도로 겹쳐 떠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곳에는, 데인 드한이 묻어나는 영화 속 캐릭터 ‘지미’가 있었다.


<라이프>(2015)


영화와 사랑 빼곤 다 귀찮다는 듯, 라디오 진행자의 질문에 무례할 정도로 대충 답하고, 당시 대세였던 서부극을 높게 긁는 웃음소리로 비웃는다. 이와 같은 지미의 허물없는 솔직함은 갈수록 어둡게 수그러든다. 필름 스타는 단지 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아니, 배우는 영화를 찍을 때뿐만이 아니라 항상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터뷰에서는 거짓말해야 하고 가기 싫은 행사에도 얼굴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지미의 표정은 흔들리고 위태롭다. 아, 그 표정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왜 데인 드한을 캐스팅했는지.


<라이프>(2015)


피어 안젤라의 약혼 소식을 공개 석상에서 듣는 지미의 표정은 복합적이고도 단순하다. 혼란스럽고 충격 받은, 아직 슬퍼하거나 화낼 겨를도 없는,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상태. ‘잘된 일’ 이라고 답하는 표정은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는데, 데니스가 카메라에 담을 정도로 풍부하다. 잔뜩 화나 있던 지미는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다. 그게 바로 데니스가 말했듯 ‘엉뚱하고 순수한’ 지미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얼굴 중 하나다. 슬픈 과거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눈물을 삼키다가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감정을 보호하고 세상에 치이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데인 드한은 특유의 해맑음과 어두움을 번갈아 혹은 동시에 보여주며 지미를 표현한다.


<라이프>(2015)


영화는 느리게 관찰하는 톤으로 데니스가 제임스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내기까지의 짧은 시간을 담는다.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데니스일 것이다. 데인 드한도 그에 맞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준다. 계속 조급한 상태로 긴장한 데니스와 달리 지미는 인디애나의 농장처럼 여유롭다. 자기만의 시간 속에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여유는 데니스의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들지만, 끝내는 물들인다. 지미를 주제로 성과를 내려고 했다가 매력에 빠진 데니스는, 그가 자기 세계에 빠지는 광경을 찍는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찰칵 울리는 순간, 지미의 세계는 깨진다. 시를 읊다 고개를 들 때, 영화의 장면을 캡처 하고 있던 나조차 돌아보게 만드는 아우라가 데인 드한의 지미에겐 있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 자신을 잃고 싶지는 않은-눈 밑의 깊은 그늘이 말해 주듯 데인 드한 또한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이프>(2015)



여기서 글을 마쳤더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별로였던 작품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연기와는 상관없이 영화 자체가 별로였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더 큐어>와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둘 다, 감독의 유명세에 못 미쳤고, 돈만 잔뜩 들인 느낌이었고, 너무 길었다. 데인 드한을 비롯한 배우들만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할 주제가 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싫었어서 그냥 주관적으로 비난해버리련다.


먼저 <더 큐어>(2017)는, 징그럽고 힘들고 남는 것도 없는 기분이 드는 영화였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까닭 중 하나가 데인 드한이 괴롭고 불안해하는 연기를 너무 잘 해서였던 것 같다. 망가지고 난리 나는 모습을 온 몸에 휘청휘청 드러낸다. 마지막, 한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내리막길을 달릴 때 짓는 악마의 미소를 보면 굉장히 혼란스러워진다. 그 이상하고 찝찝한 기분 자체가 영화의 의도 같기도 하니, 그에게 잘 어울리는 괴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역시 아쉬웠다.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2017)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2017)는 그냥 별로였다. 배우들의 매력과 시각효과에 기대 구시대적이고 뻔한 대사와 설정을 남발했다. 카라 델러바인과 데인 드한 각각의 매력-비록 서로 어울리진 않았지만-이 당연하게도 상당해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발레리안 같은 가부장적 플레이보이인 척 하는 로맨티스트 역할은 데인 드한에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는 연기로 모든 걸 극복하고 마치 그 사람이 된 듯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역할을 잘 해내면 된다. 어울리지 않았다고 해서 또 매력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며, 연기도 무난하게 했으니, 이건 배우가 아니라 캐스팅-아니 그 이전에 각본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캐릭터 구성 자체가 흥미롭지 않았다.



<라이프>(2015)


비교적 최근의 작품들에서는 <투 러버스 앤 베어(Two Lovers and a Bear)>(2016)처럼 외모보다는 연기가 돋보여야 하는 역할을 꽤 맡은 것 같은데, 보고 싶지만 사실 보기가 좀 겁난다. 앞의 두 작품처럼 연기가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 자체가 별로인 케이스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생 좀 그만하고 좋은 작품에서 진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dane-dehaan.org




+ 그의 최근 사진이 담긴 기사에 ‘관리 안하네’ 따위의 댓글이 달리는 걸 보고 약간 화가 났다. 외모로 이슈가 됐던 배우이기는 하나, 그가 하는 일은 ‘예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기’다. 나 또한 해리 오스본의 미모가 조금은 그립지만, 배우가 팬에게 외모를 평가받아야 할 까닭은 없다. 외모가 달라지면 그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면 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된다. 당장 <라이프>도, 날렵한 턱선과 여린 피부를 유지했더라면 어울리기 힘들었을 역할이다. 오히려 '예쁜' 외모를 벗어나는 것이 연기의 발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분위기는 외형만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은, 역시 남성 배우가 외모적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롭구나 하는 것. 아무튼 데인 드한 응원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네...


그래도 마무리는 해리 오스본으로 하는 사심..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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