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8
-드라마: <센스8(Sense8)>(Netflix) 시즌1
* 위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캐릭터 중심’ 시청자다. 여러 명의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끄는 드라마의 경우, 보통 인물 하나에 빠져 그 중심으로 본다. <커뮤니티> 시리즈의 아벳이나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클라우스가 그 예다(글로 쓰기도 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센스8>을 보면서는, 중심을 둘 캐릭터를 꼽지 못했다. 주인공 여덟 모두에게 정은 갔으나,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는 않았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은 그들 사이에 있었다. 인물 각각의 매력도 충분했지만, 서로 맺는 관계가 주는 매력에 먼저 사로잡혔다.
작품의 아이디어부터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에서 왔다. ‘센세이트’는 조나스의 말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와는 다른, 그들 이전부터 존재했고 마지막까지 존재할 종’이다. 누군가 이들을 연결해 ‘낳는(give birth)’ 순간, 전혀 모르는 타인과 감각이 연결된다. 상대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고,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하게 된다. 그에게 가하는 폭력은 곧 자해다. 성적 정체성과 지향성, 경제적 상황, 국가나 인종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타고난 특징-때로는 특권(privilege)-으로 인해 피해 갈 수 있었던 고통을 경험한다. 리토는 선의 생리통을 느끼고, 노미가 어린 시절 당했던 폭력을 다시 겪는다. 타인이 혼자 반복해 겪던 트라우마의 고통을 말 그대로 ‘나누’기도 한다. 윌은 라일리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며, 그녀가 과거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돕는다. 의지와 상관없는 필연적인 공감이니, 극단적인 형태의 역지사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센스8> 세계관에 따르면, ‘진화’된 인간 형태의 핵심 요소는, ‘관계맺음과 공감에 대한 태생적인 능력’인 것이다.
센세이트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칼라와 볼프강은, ‘특이한’ 만남으로 인해 상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대화를 나누며 더욱 ‘특별한’ 이끌림을 느낀다. 윌과 라일리도 마찬가지다. 라일리가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센세이트는, 그룹 간의 사랑을 ‘나르시시즘’이라 칭하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허나 이들은 ‘한 사람’이 아니다. 연결은 각기 다른 개인 사이의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아니, ‘나르시시즘’ 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자신과 닮은 존재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 않을까.
소재나 전체적 서사는 판타지스럽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현실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사건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몇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고통 받는다. 큰 회사를 움직이는 핵심인 선은, 놀고먹느라 회사 돈까지 횡령하는 남동생의 그늘 아래 있으며, 그와 거래처 사장에게 일상적으로 성차별과 성희롱을 당한다. 선이 누명을 쓰고 수감된 방에 모인 여성들은, 모두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남성을 죽인 이들이다. 아마니타와 사랑 넘치는 삶을 만들어 가는 노미, 그녀의 어머니는 노미 스스로 정한 젠더와 이름을 존중하지 않고 병원에 밀어 넣는다. 완벽한 연인의 표준처럼 보이는 리토와 헤르난도의 모습 역시, 집 안에서 뿐이다. 리토는 배우로서 쌓은 커리어가 무너질까 두려워 남성 애인의 존재를 숨기고, 어쩌다 밖에서 데이트라도 하는 날에는 보디가드라고 속인다.
하지만 이들이 다양성에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들에게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미는 병원에서 도망친 후 진실을 알아내려 노력하고, 리토는 다니엘라를 구하러 가는 길에 자신이 ‘faggot’이라고 불렀던 바텐더에게 키스로 커밍아웃한다. 저항을 이어가도록 돕는 것은 다른 센세이트들이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윌이 노미와 라일리 대신 결박을 풀고, 선이 카피우스 대신 싸우는 식으로 도움이 ‘떨어진’다. 하지만 상대의 존재를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도움은 의도적으로, 대화와 동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리토는 볼프강 대신 거짓말을 하고(“Lying is what I do.”), 볼프강은 이에 보답하듯 리토 대신 싸워(“Fighting is what I do.”) 서로를 위기에서 구한다. 노미나 볼프강과의 대화는 리토가 스스로를 숨기는 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에 이어, <센스8>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 중 하나는 ‘프라이드(pride)’다. 대놓고 오프닝부터 프라이드 행진 모습이 나오고, 첫 화에서 두 여성-노미와 아마니타-이 레인보우 페니스가 달린 기구를 사용해 섹스한 후, “Happy Pride.”라고 축하한다. 2화에서는 노미의 연설문과 함께 센세이트들이 모두 프라이드 행진을 하는 듯한 연출이 나온다. 노미는 힘주어 마무리한다, 프라이드가 죄악이라고? “Go fuck yourself, Thomas Aquinas.” 작품은 애매한 경계에 조심스럽게 발을 걸쳐 거리를 두고 서술하지 않는다. 다수자의 오만한 ‘인정’론적 시선도 아니고, 존재를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하지도 않는다. -특권으로부터 비롯된 무지 탓에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공부할 일이다. 당연한 것을 우리가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할 까닭은 없다.-는 뉘앙스의 분명한 입장을 전제로 개인의 삶을 털어놓기에, 더욱 확실하게 다채롭고, 자연스럽게 풍부하다.
더불어, <센스8>은 새로운 가족 형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라일리나 카피우스, 칼라처럼 친족을 사랑하며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들도 있으나, 앞에서도 언급했듯 가족이라는 이름이 노미, 볼프강, 선에게 준 건 폭력뿐이다. 이들은 자신이 몸담을 관계를 스스로 찾는다. 각자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특별하다. 선의 교도소 동료들, 함께 사는 리토와 헤르난도 그리고 다니엘라, 노미와 아마니타, 볼프강과 벨릭스.
센세이트들끼리 연결되면 그 관계가 더 흥미로워진다. 처음부터 서로를 선택한 것은 아니나, 느닷없이 생긴 연결에 당황한 채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수평적이다. 피로 이어져 있다는 까닭 만으로 무언가를 행사하거나 요구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들이 상대를 느끼는 것 이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알아가며 관계를 다시 ‘선택’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센세이트들이 공유하는 것은, 부모나 형제가 공유하는 피보다 깊다.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기본이며, 사실 관계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형상이라는, 볼프강의 말마따나 “피보다 진한 건 선택”이라는 것을 <센스8>은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런 저런 가능성과 아이디어가 종합된, 6화 섹스신 같은 명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미와 아마니타가 섹스할 때, 리토와 헤르난도도 섹스한다. 모두의 감각이 연결되어 마치 여덟 명(+두 명)이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연출을 택해 과감하게 표현했다.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뭐야이거포르노인가! 싶을 법도 한데, 작품의 성격과 아이디어,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는 굉장하게 다가온다.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라 미국에 온 조나스는 묻는다, 나는 어느 나라 국가를 불러야 하지? 인간은 뭐지? <센스8>은 편협한 ‘우리와 너희’ 논리로 편을 가르고 소수를 배제하는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 공감 능력이 없어 ‘살상을 잘 하는’(조나스) 인간들을 향해,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냐’(노미)고 묻는다.
“There’s a huge difference between what we work for and what we live for.”
(뭘 위해 일하는지와 뭘 위해 사는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센스8> 시즌1 9화, 노미.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 도움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여덟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 답을 스스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노미의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The real violence, the violence that I realized was unforgivable, is violence we do to ourselves, when we are too afraid to be who we really are.”
(진짜 폭력, 정말 용서 받을 수 없는 폭력은, 진정한 자신이 되기 두려울 때 스스로에게 행하는 폭력이야.)
-<센스8> 시즌1 9화, 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