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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Sep 30. 2019

“better way” ?

<뷰티풀 보이>(2018)


<뷰티풀 보이(Beautiful Boy)>(2018, 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

*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뷰티풀 보이>(2018) 포스터.
<뷰티풀 보이>(2018) 국내개봉 포스터. ’감동실화’.


‘감동실화’. 풀면 감동을 주는 실화,다. 영화나 책 소개에 하도 많이 써서 이제 광고 문구의 한 전형이 됐다. 그 탓에 나처럼 쓸데없이 싫은 게 많고 취향을 부르짖는 관객들에겐, 오히려 광고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는 역효과를 낳는다. 진짜 이야기고, 누군가의 삶인데, 왜 ‘감동실화’는 대개 클리셰라는 느낌이 드는가. 그리는 방식 때문이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정한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면, 몸은 반응해 눈물을 흘려도, 결국 뻔하다, 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솔직히, 소재에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뻔한 교훈을 유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겠지만, 티모시 살라메, 그리고 그와 스티브 카렐이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안 볼 수는 없었기에, 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근데 너무너무 울어버렸다. <뷰티풀 보이>는, ‘감동실화’라는 틀에 박힌 문구로 광고하기에는 너무한 작품이었다. 이제까지 수십 번도 더 쓰인 유형의 플롯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같지 않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을 제공해서는 아니다. 이것은 문제해결 교과서 같은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이 한 계기로 중독되고, 위기와 갈등을 겪고, 결국 극복하는 커다란 기승전결 공식은 없다. ‘노력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따위의 메시지도, 예쁘고 무책임한 희망도 밀어 넣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힘듦과 어려움을, 절망을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는 교훈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고, 현실이라고 말한다.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개인적으로 다룬다. 이해, 기적 같은 단어를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대신 수시로 오르내리는 상태와 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재활원에 자발적으로 갔다가 사라지고,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울며 사과했다가 날카롭게 뛰쳐나가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닉의 부모들 -비키와 데이비드와 캐런-은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없었다면 닉의 회복은 아예 불가능했겠지만, 데이비드의 사랑과 응원 자체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결국 본인의 의지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고, 있어도 힘들다. 러닝타임이 다 끝나가도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는다. ‘힐링’ 같은 건 전혀 주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보는 내내 긴장과 눈물을 머금고 간헐적으로 흘리다가, 다 끝나고 나서 엉엉 울게 된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왜 내가 울었다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얘기를 자꾸 하는가. 영화를 보고 자주 우는 편인데,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울었는지, 울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항상 무심코 따져보게 된다. 감정이 왜 자극됐는지 생각하다 보면, 때로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나 감독이 감정을 다루는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그걸 끌어낸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다 보니 자꾸 TMI하게 되는 것이다. (는 또 TMI다. 원래 내 글은 기본적으로 TMI니까.)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초반이 꽤 지나도록 현재의(당시의) 닉은 등장하지 않는다. 보다 먼저 나오는 건 과거의 어린 닉이다. 작품은 데이비드의 시선으로 ‘뷰티풀 보이’를 추억한다. 삽입된 과거의 장면들은, 마치 현재 그가 부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가 거의 끝나 갈 때쯤, ‘사실 나는 딸이 약물과다로 죽기 전부터 애도하고 있었던 것’ 이라는 어느 엄마의 말과 함께 관객은 알게 된다, 데이비드가 닉을 줄곧 애도하고 있었음을. ‘산 사람을 애도하는’ 이야기에는,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과거의 화창한 날 닉과 드라이브를 하는 데이비드와, 현재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재활원에서 사라진 닉을 찾는 데이비드의 초조한 모습이 교차된다. 어린 닉이 차에서 고래고래 따라 불렀던 곡이 가득 흘러나오며, 데이비드가 약과 빗물에 흠뻑 젖은 닉을 부축해 차에 태운다. 신나는 멜로디와 안타까운 장면은 서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불편한 기분이 들며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Gotta find a way, a better way, a better way(Nirvana-Territorial Pissings, ‘Nevermind’)” 커트 코베인의 찢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죽음도 떠오르고, 닉의 상태와 연결되어,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이 든다. 과거와 현재를 비슷한 구도로 교차해 편집하는 건 딱히 참신한 연출은 아니나, 탁월한 배경음악 덕에 ‘산 사람을 애도하는’ 특별하게 아픈 장면이 됐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닉의 시선은 이야기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등장한다. 확실하거나 분명하지는 않다. 자녀를 사랑하는(사랑이 의무는 아니니) 부모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있을 데이비드의 시선과 달리, 닉의 마음은, 정말로 닉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알 수 없기에 더 슬프다. 닉은 가슴에 큰 구멍이 있다고 말한다. 구멍의 원인을 작품은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닉은 소위 ‘천재’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나, 그것이 이유,라는 진단 또한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캐내려 하지 않고 오로지 닉의 당시를 그리는 데에 집중한다. 중독자를 탓하지도 않는다. 원래 단어는 보지 못했는데, ‘유행병’이라고 약물중독을 표현한다. 판단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a better way’가 뭘지, 같이 얘기해보자,고 말을 건넨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원래 목적에 부합하게, 배우들 얘기를 꺼내면, 스티브 카렐로 시작해 티모시 살라메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둘 다 워낙 능숙하고 섬세해서 딱히 덧붙일 건 없지만, 티모시 살라메에 대한 사심만 살짝 덧붙여 본다. 계속되는 불확실함, 수시로 오르내리는 상태를 드러내는 얼굴. 웃음 속에 묻어나는 불안함과 외로움. 말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가슴으로 파고들도록 만드는 표현력.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는 뭐랄까 작품을 그대로 통과해 개인적이고 직관적으로 꽂힌다. 그렇게 와 닿는데 내 일로 공감 되기 보다는 오롯이 그 인물만의 감정이나 상태로 다가와 존중하게 된다. ‘알 수 없어서 더 슬프게’ 만들었던 핵심은, 바로 티모시 살라메였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어쩐지, ‘알 수 없어서 슬픈’ 기분에 기시감이 자꾸 들었는데, 이야기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 갑자기 떠올랐다. 일 년 쯤 전 (아마도)약물과다로 20대에 죽은, 너무 좋아했던 한 뮤지션이. (그냥 팬이었을 뿐이지만, 그의 죽음은 내게도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딱히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생각들이 밀려온다. ‘Junky약쟁이’ 클리셰로 등장해 웃음 요소로 쓰이곤 했던 약물중독자 캐릭터들도. 물론 문제 삼으려는 건 아니다. 나도 사랑하는 ‘약쟁이’ 캐릭터들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왜 그들의 매력에만 사로잡히고 삶과 현실에는 관심도 없었는가 하는 이상한 죄책감이 자꾸 드는 것이다. 허구의 캐릭터에게 너무 진지한 감정을 가지는 것인가. 글세 나는 그의 죽음 이후 그냥 이런 생각들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이제 ‘암 걸릴 것 같은’, ‘죽을 만큼’ 처럼, ‘약 빤 듯한’, ‘마약 같은’ 이라는 말 또한, 수식어로 쓸 수 없어졌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닉은 죽지 않았다. 취하거나 취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동생의 말처럼, 여전히 닉이고, 여전히 아름답다. 살아 있다면 없지는 않은 가능성을, 그 희망이라고 하기도 힘든 가느다란 실을, 작품은 조심스레 비춘다.


<뷰티풀 보이>(2018)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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