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제모름 Oct 06. 2019

드라마틱 리얼리티

<제인을 찾으세요>(2018)


 

<제인을 찾으세요(Ask For Jane)>(2018, 감독: 레이첼 캐리)


*위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과 결말, <메기>(2018)의 장면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임신 중절’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지만, 현실감을 위해 ‘낙태’를 사용했습니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드라마틱하다. 경찰이 다리에서 뛰어 내리려던 십대를 데리고 와 문을 두드리고,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던 여성이 찾아온다. 헌데 웃을 수가 없었다. 또, 드라마틱하다. 누구는 쥐약을 먹고 죽고, 누구는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누구는 뜨개 바늘로 스스로 낙태하려다 피를 잔뜩 흘린다. 헌데 울고 넘길 수도, 없었다. 그 ‘드라마틱함’이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수많은 여성들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현실을 겪으며 살아가거나, 죽었던 것이다. 출산을 하다 아기는 살고 산모는 죽는, 그때는 당연히 넘겼던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들마저 다시 떠오른다.

<제인을 찾으세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결혼해 내 발목을 잡기 위해 일부러 임신한 거냐고 소리 지르는 남자친구, 딸이 강간을 당했다는데 오해를 풀고 그 남자와 결혼하라는 아버지, 보트를 사야 한다며 낙태 수술비를 줄 수 없다는 남편, 종양을 제거하다 뱃속의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며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인 환자의 수술을 주저하는 의사, 결혼 전이니 피임약은 줄 수 없고 다 하늘의 뜻이니 기도하라는 의사, 낙태 수술을 마친 후 앞으로는 ‘다리 좀 오므리고 다니라’는 의사, 피임 교육이 학교 신념을 거스른다는 교장. 전부 남성들이다.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녀들을 임신하게 만들고, 책임을 떠넘기고, 삶과 현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법과 종교만 읊어대는 남자들. 너무 전형적인 그들의 태도는, 부끄러울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낙태 수술을 담당하고 방법도 가르쳐 준, 의사 면허도 없는 사이비 시술사가, ‘진짜 의사’들보다 의사다워 보였다. 물론 50년 전보다 현재의 상황이 훨씬 낫기야 하겠지만, 한국에서 올해 들어서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그나마 이제까지 재판을 받은 여성들의 판결은 뒤집을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작품은 여성 개개인의 생활과 현실, 죽음과 삶에 초점을 맞춘다. ‘왜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기보단 ‘왜 할 수 밖에 없는가’를 직접 보여준다. 깊게 들어갈 시간은 없었지만, 여성들이 낙태 방법을 배우고, 더 이상 남성 의사들의 불확실한 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됨으로써, 스스로들의 몸을 통제하고 권리를 찾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아이디어도 짚고 넘어간다. ‘우리가 교육 받은 백인 여성’ 이라서 경찰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언급, 흑인 여성을 더 고용하는 게 어떠냐는 물음에 대한 로즈와 제니스의 대답을 들으면, 이 인물들과 이야기가 생각하는 폭이 얕지 않다는 것이 보인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로즈와 제니스의 이야기로 시작해, 다른 곳에서 저마다 현실에 맞닥뜨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만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벅찼다. 친구의 삶을 되찾아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연결망이, 모임이 되고, 점차 분명한 형태를 갖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이어짐으로써, 다른 여성들의 생명을 구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도 쥐게 된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작품은 여성들을 ‘피해자’와 ‘활동가’로 나누어 대상화하지 않는다. 제니스는, 13살 때 교회에서 성폭력을 당했던 여자애, 가 아니라 그냥 제니스다. 매기는, 17살 때 낙태수술을 받고 죽을 뻔 했던 여자애, 가 아니라 그냥 매기다. 하나하나의 인생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각각을 주인공, 인격체로 느끼도록 만들었던 건, 이야기와 인물을 대하는 감독의 기본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메기>(2018)의 지연을 표현하며,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건강하고 따뜻한 ‘지연’이라는 사람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이옥섭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인물을 존중하는 카메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감옥에 가면 거기서 모임을 만들면 되겠다’, 는 73년의 로즈와, 몇 년 전 친구의 낙태를 도왔던 로즈의 마음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feel right) 결국 그들이 하고자 했던 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었으므로. 이들이 항상 완벽하고 바람직하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끝까지 함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상황과 결정 하나하나가 이해된다. ‘제인’들은 엄청난 의지를 지닌 운동가들이 아니라, 그냥 여성들이 ‘살기를’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더 용감하고 대단했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이 용감하고 평범한 여성들이 당당히 법원에서 빠져나올 때, 웃음보다 눈물이 났다. 만약에,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지 않았다면? 조금 늦었다면? 기구 외에 이들이 수술을 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면? 누가 말실수를 했다면? 이들은 감옥에 갔을 수도 있었던 거다. 잘못한 건 오로지 ‘법을 어겼다’는 형식적인 문구 하나 뿐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는데도. 글을 쓰면서도 자꾸 울컥한다. 제인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근데 속이 답답하고 복잡하다. 나만 느끼는 상태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한다.


<제인을 찾으세요>(2018)



매거진의 이전글 “better way”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