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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Sep 08. 2019

8월, 사흘, 영화, TMI.



*<Ghost World>(2001), <다운 바이 로>(1986), <데드 맨>(1995) 의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하고 싶은 말들로 감상을 채우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더 힘을 빼고 개인적으로 풀어놓았다.   


20190815
<Ghost World>(2001, 테리 즈위고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20년 전 영화기는 해도, 게이 조크와 페미니스트 조크는 불편했다. 어쩌면 이니드와 베카 둘 다 그 시절 내 모습의 일부를 닮은 것 같아 보기 부끄러웠고, 어느 정도 시모어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약간 뿌듯하면서도 씁쓸했다. 엔딩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분은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이 든 소심한 너드와 어리고 어설프고 센 척 하는 너드의 약간 크리피한 로맨스물로 요약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엔딩이다. 둘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나, 둘에게 그 의미는 다르다. 이미 삶의 밸런스가 있는 시모어에게는 있는 그대로 사랑의 표현, 이니드에게는 앞날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의, 어쩌면 도피. 시모어의 룸메이트는 이니드의 불확실한 태도를 ‘여자’ 이기 때문이라고 대강 짚어넘기지만, 그것은 그 나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니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다. 그리하여 둘은 화해와 동시에 관계를 끝낼 수 밖에 없었다. 시모어는 다시 전으로 돌아가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상담을 받고, 이니드는, 떠난다. 자신이 속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그 지나가는 모든 장면이 아주아주 우울한 멜로디와 만나, 엔딩을 보기 전과 본 후에 아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Ghost World>(2001)



20190816
<다운 바이 로 (Down By Law)>(1986, 짐 자무쉬)

범죄영화라는 틀은 그저 캔버스다. 어떻게 감옥을 탈출하는지, 수영을 못하는 밥을 데리고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과감히 생략한다. 짐 자무쉬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그런 거’ 없이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공권력과 법은 매우 하찮다. 함정을 세팅한 실제 범죄자들에게 놀아나(거나 그들과 결탁해) 엉뚱한 범인을 체포하고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는다. J잭을 체포하며 더러운 놈, 이라고 비난했던 형사는, ‘돌봐주겠다’며 자신이 구해준(?) 미성년자가 웅크려 있는 침대 위에 올라간다.


<다운 바이 로>(1986)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건 잭과 잭이지만, 가장 마음 쓰이는 것은 밥이다. 같잖은 자존심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나머지 둘과는 다르다. 어설픈 붙임성과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이상한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놀라운 사랑과 믿음으로 모두를 구한다. 밥은 살인자이지만 ‘좋은 사람’, 잭과 잭은 억울하게 함정에 빠진 멍청한 마초들이다. 잭과 잭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밥을 두고 가버리고,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먼저 보내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진짜 나쁜 놈들은 아니다. 초반에 나오는 표현들이 조금 불편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잭과 잭이 얼마나 ‘나쁜 놈도 못 되는’ 인간들인지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80년대 영화기도 하고) z잭은 울며 화내고 물건을 부수고 던지는 애인 앞에서 귀찮은 듯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녀가 신발을 집어 들자 ‘신발은 안된다’며 벌떡 일어난다. 애인이 ‘그래 때려!’라고 소리치자 이내 포기하고, 나중에 바닥에 널브러진 신발을 주워 신는다. J잭 옆에 누워 있던 여성은, 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나른하게 비웃는다. ‘난 종일 여기 누워 있는데 제대로 된 포주라면 날 때리거나 해야 하지 않겠냐’고까지 말한다. 잭은 화내지 않고, 반응조차 없다가, ‘끊임없이 말한다’고 귀찮은 듯 부드럽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돈에 속아 함정에 빠진다. 잭과 잭은 ‘나쁜 놈도 못 되는’ 그리고 ‘나쁜 놈은 못 되는’ 사람들이다. 밥을 버리고 갔다가도 결국 데리러 오고, 유치하게 싸웠다가 애매하게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다운 바이 로>(1986)

 

배우들이 그저 연기만 한 게 아니라,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게 느껴졌다. 음악은 존 루리, 노래는 톰 웨이츠라고 오프닝 크레딧에 뜨기도 한다. 이들은 짐 자무쉬와 한 번만 작업하고 끝내지 않는다. 최근작까지 함께한 톰 웨이츠는 말할 것도 없고, 존 루리는 앞선 <영원한 휴가>(1982), <천국보다 낯선>(1984)에, 로베르토 베니니는 <커피와 담배>(2003), <지상의 밤>(1991)에 등장한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짐 자무쉬에게 사랑 넘치는 이탈리안의 상징 쯤 되는 걸까.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등장해 작품을 넘어서는 역할을 한다. <지상의 밤>에서는 관객의 혼을 빼갔고, 이 작품에서의 독백은, 아, 장면 자체로 작품이 된다. 알아듣지 못하는 이탈리어를 자막 없이 들어도 빨려들 듯 집중하게 된다. ‘로베르토’ 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실제로 그의 배우자인 니콜레타 브라스키도 본인의 이름으로 등장해, 서로 사랑에 빠진다.


<다운 바이 로>(1986)



20190817
<데드 맨(Dead Man)>(1995, 짐 자무쉬)


오프닝 크레딧 마지막에 올라온 제목 ‘Dead Man’ 은, 뼈로 쓰여 있다. 카메라는 느린 호흡의 장면들을 끊임없이 바꾸며 페이드 아웃을 반복한다. 마치 죽어 가는 윌리엄의 희미해지는 의식처럼.


<데드 맨>(1995)

 
노바디는 윌리엄을 돕는다.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끈다. 사실 이미 총을 맞고 죽어가는 윌리엄은 잡히거나 잡히지 않거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바디는 끝까지 윌리엄을 지키며, 그가 ‘멍청한 백인들’의 손에 죽거나 끌려가는 대신 천천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혼혈이기 때문에 두 부족 사이에서 항상 외톨이’였던 노바디와, 클리블랜드에서도 머신타운에서도 홀로 남은 윌리엄은 함께 다니다, 둘 다 죽는다.  


<데드 맨>(1995)


먹고 살기 위해 시작된 윌리엄의 여정이 죽음의 여정으로 변해가면서, 윌리엄도 변한다. 수트를 단정히 입고 안경을 꾹 눌러 쓴 채 가방을 두 팔로 끌어안던 긴장한 얼굴은,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갈수록 여유롭고 분명해진다. 작품은 노바디의 입과 윌리엄의 눈을 빌려, 여전히 차갑도록 잔잔한 톤으로 ‘멍청한 백인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 저지른 폭력을 드러낸다. 그들을 응징하는 것은 노바디가 아니라 같은 백인인 윌리엄이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이름이 같은 그는, ‘시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지만’, 노바디의 표현을 빌리면, ‘멍청한 백인들’의 몸 위에 총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다. 노바디를 보고는 ‘이교도와 팔레스타인인들로부터 저를 구하소서 어쩌구’ 하고 읊조리던 관리소 크리스천은, 죽음으로써 시가 된다.


<데드 맨>(1995)



조니 뎁은 십 대 중반부터 좋아했던 배우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을 보고 꽂혀서는, 뭣도 모르고 <슬리피 할로우>(1999)나 <에드 우드>(1994) 같은 팀 버튼 영화를 찾아봤다. 그리하여 좀 더 넓은 시네마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계기이기도 하다. 짐 자무쉬는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었고, 현재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필름메이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시간이 좀 걸렸던 감독이다. <데드 맨>은 짐 자무쉬 월드에 빠져들던 도중에 봤다. 내 십 대와 이십 대의 덕질 세계가 겹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자체도 상상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짐 자무쉬를 알기 전에 ‘조니 뎁 때문에’ <데드 맨>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은, 평생에 한 번 있는 경험이니까.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 쓰는 건, 조금 위험했다. 사실 조니 뎁이 저지른 범죄를 떠올리기 이전에, 최근 그의 연기나 필모그래피가 더 이상 내 흥미를 자극하지 않았기에, 10년 넘게 쌓아온 덕질의 막을 한참 전에 내렸다. 하지만 <베니와 준>(1993)이나 <에드워드 시저핸즈>(1990)같은 작품들을 다시 보지 않거나, 보더라도 그에게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한다. 2,30대의 조니 뎁은 너무나 아름답고, 특히 짐 자무쉬의 이 졸릴 정도로 잔잔한 톤의 (무려) 서부극 안에서 더욱 그렇다. 처음 봤을 때는 ‘그 사건’이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는데, 마침내 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짐 자무쉬 필름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된 오늘, 그는 좋아할 수 없는 배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엔 버젓이 조니 뎁의 새 작품을 홍보하는 CGV에 가서, 범죄자가 되기 전의 그를 보며 길티 플레져를 느끼고 말았다. 몇십 년 전의 그는, 조금 감상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합리화를 하며.  

그리하여 <데드 맨>에 대해, 짧게 쓸 수 밖에는 없었다. 더 길게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현재의 조니 뎁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한 작품이고, 너무한 캐릭터다. 결국 조니 뎁 대신, 죽어가는 윌리엄 블레이크를 좋아하기로 했다.


<데드 맨>(1995)



짐 자무쉬는 확고하고 독특한 예술에 대한 취향을 영화로 만들어버렸고, 시모어는 이것저것을 사랑하고 사랑해서 취향을 모아두었다. 그들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나도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이게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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