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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제모름 Aug 03. 2019

장르: 짐 자무쉬.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2019)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 (2019, 감독: 짐 자무쉬)

*위 작품의 구체적인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드 돈 다이>(2019) 포스터.


<데드 돈 다이>는 좀비물/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좀비가 등장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곳곳에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짜 장르는, ‘짐 자무쉬’다. 그의 이름을 보고 극장에 갔다면, 익숙하지만 색다른, ‘김빠져서 웃긴’ 무언가를 보고 돌아왔겠지만, 스릴 넘치는 좀비물이나 일반적으로 ‘배꼽 빠지게 웃긴’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당연히 실망했겠다. 일부러, 좀비를 실감나게 연출해놓고, 커피, 와이파이, 클리블랜드, 캔디 같은 단어들(그리고 이기팝….)을 끼워 스릴을 버리고, 아담 드라이버와 틸다 스윈튼 등의 배우들에게 뜬금없는 설정을 적절히 덧칠해 자기 색깔로 망쳐버린다.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든다.


<데드 돈 다이>(2019)



(요새 영화의 줄거리나 장면을 이야기할 때 ‘스포일러’라는 말 자체와 그 기준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어서 그 단어를 잘 쓰지 않고 있는데,) ‘짐 자무쉬’ 장르의 영화에서 스포일러를 따지자면, 모든 것이 해당될 것이다. 디테일이 전부이며, 장면 하나하나 자체로 중요하고, 따라서 ‘중요’하지는 않다. 딱히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심오한 상징들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마도, 없다. 마을을 뒤덮은 좀비들의 목을 외계인이 사무라이 검으로 베고 다니는 이야기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일상이 그렇듯, 딱히 위대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개인들 각자의 삶이 맞물려 발생하는 소소하고 밋밋한, 때로는 별나고 이상한, 관계와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함, 별 것 없음이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고, 담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클리프와 로니가 주인공 같아 보이지만, 바비, 행크, 펀, 소년원의 세 친구들, 조이 일행, 프랭크, 밥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서로 나누는 별 의미 없는 대화가 메인 사건이다.


<데드 돈 다이>(2019)


‘멋진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 하는’ 영웅 서사는 없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클리프와 로니지만, 그들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 감독의 이름까지 언급하며 ‘대본’ 이야기를 나눈다. “This whole things gonna end badly(모든 것이 나쁘게 끝날 거야).” 라는 로니의 대사에 의미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복선이었음이 밝혀진다. 물론 관객은 이것이 대본을 바탕으로 연출 된 이야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속의 캐릭터가 직접 ‘스크립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건 다른 의미다. 아담 드라이버/로니, 빌 머레이/클리프의 경계가 ‘이야기 안에서’ 사라져버린다. 딱히 신선한 설정이라고 하기는 힘드나,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따지면 다르게 다가온다.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이야기가 절정에 올랐을 때, 극적으로 충격을 주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니다. 쌓아온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무너뜨리고 서스펜스에 구멍을 내 바람을 뺀다. 마치, ‘이거 좀비 스릴러 아니야! 하나도 긴장감 안 넘쳐! 기승전결 같은 것도 없어!’라고 외치듯. 로니가 멋지게 칼을 휘두르고, 클리프가 비장하게 총알을 채워도, 결국 정해진 결말을 향하는 연기라는 걸 방금 그들의 입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우스울 뿐이다.


<데드 돈 다이>(2019)

 

환경 악화로 인해 죽은 자들이 깨어났다는 설정이나, 마지막에 밥이 망원경으로 상황을 관조하며 하는 말을 메시지로 인식하고, 이때의 대사는, 그때의 상황은 뭘 상징하는 거지? 하고 고민한다면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Only Bob left alive’는 단순히 결과일 뿐 주제가 아니고, 그가 물질에 찌든 좀비들이 어쩌구 하고 중얼거리는 건, ‘고작 그 식상한 주제를 촌스럽게 직접 말하려고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려는 훼이크다. 뭐 감독이 환경을 걱정하거나, 특정 ‘물질’을 싫어할 수는 있겠다. <Only Lovers Left Alive>(2014)의 인류에 회의를 느끼는 아담과 이브나, <패터슨>(2016)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패터슨을 떠올리면- 하지만 그건 캐릭터 설정이다. 감독의 목소리가 들어갔다 해도, 개인적인 생각일 뿐 딱히 그 메시지를 관객의 머릿속에 심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데드 돈 다이>(2019)


그리고 그 ‘물질주의에 찌든’ 좀비들이 되풀이하는 단어 중 몇은, 짐 자무쉬가 사랑하는 것들로 보인다. (기타: 짐 자무쉬는 자신이 만든 예술(영화) 속 캐릭터들이 다른 예술, 특히 음악을 직접 언급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잭 화이트나 이기 팝 등의 뮤지션들을 출연시키기도 한다. / 커피: 영화, 그것도 옴니버스로 만들기까지 했다.-<커피와 담배>(2003) / 패션: 그의 작품 속 캐릭터의 ‘패션’에는 상당히 디테일한 취향이 담겨 있다, 빈티지라고 해도 패션은 패션.) 고로 짐 자무쉬가 현대인의 물질주의를 비판하며 뭘 가르치려고 한 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은 굳이 메시지를 꺼내본다면, ‘세상은 물질로 가득해. 우리는 망했어. 밥처럼 은둔하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이런 걸 대강 만들어 봤는데 아무튼, This whole things gonna end badly.’ 라는 자포자기 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이런 저런 웃음들을 엮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스터질 심슨의 ‘The Dead Don’t Die’가 계속 흘러나오는데 커피 마시는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잘 모르겠다.


‘The Dead Don’t Die’ 싱글 커버.



허나 디테일한 웃음이 핵심이라는 건, 아마 맞을 것이다. 짐 자무쉬가 종종 각각 혹은 함께 쓰는 방법은, ‘Pause, Stare, and Repeat’ 이다. 한 박자 쉬고 천천히 말을 뱉는 경우, 빠른 템포의 핑퐁식 대화에서는 만들 수 없는 종류의 웃음이 나온다. 별 것 없는 대사를 반복 할 때도 잠깐 쉬는 것이 포인트다. (예를 들면, “Wild animal, or several wild animal.”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반복해 나올 때, or전에 잠깐 쉬는 것이 포인트다.) 어색한 정적의 순간을 만들기도 하고, 말없이 허공, 사물, 상대를 빤히 응시하는 인물의 굳은 표정을 강조해 담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도 자주, 특히 아담 드라이버의 얼굴을 통해 효과적으로 쓰였다.


<데드 돈 다이>(2019)


배우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아담 드라이버는 <패터슨>에서 그랬듯,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로 기능하며 흐름을 담당한다. 틸다 스윈튼의 경우,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고, 작품마저 초월하는 존재로 동떨어져 있다. <Only Lovers Left Alive>의 이브가 떠오르기도 한다. 붓다 상 앞에서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는, ‘스코티쉬 액센트로 말하는 외국인 장의사’ 젤다는 외계인이었고, 그가 UFO를 타는 장면이 대본에 없었다고 로니(혹은 그냥 아담 드라이버)는 말한다. 의도는 잘 모르겠다.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이상하고 맥락 없는 감탄과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데드 돈 다이>(2019)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 짐 자무쉬의 템포와 온도가 맞는 관객들에게만. 그는 이제 마니아층을 보유했기에 대다수 관객의 입맛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오른 감독이고, 애초에 그 위치에 오른 까닭은 꾸준히, 대다수 관객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건 ‘알고 있어야’ 더 웃긴, 감독과 배우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 영화다. 아담 드라이버의 필모그래피를 알고 있어야만, 로니가 스타워즈 열쇠고리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제대로 웃을 수 있다. 이제 이 감독은,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에 대한, 그것이 담긴 자신의 예술에 대한, 거기 출연한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을, 물질주의 좀비를 이용해 드러낸 것이다. 짐 자무쉬 영화 중 베스트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데드 돈 다이>는, 사람들이 보고 욕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현상마저 웃긴, 나 같은 자무쉬바보를 위한 영화다.  


<데드 돈 다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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