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맥 밀러(Mac Miller)
*2018년 9월 17일 완성해 블로그에 게시한 글입니다. 세 달 전 세상을 떠난 맥 밀러를 기억하며.
화창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가벼운 운동 후 샤워를 한 다음,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린 뒤였다. 무언갈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평화롭게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완벽한 주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열 시 사십오분 쯤이었다, 그의 사망기사를 확인한 것은.
“아리아나 그란데 전 연인 맥 밀러 사망.”
나중에야 눈에 들어온 것이지만, 기사들에는 또 아리아나 그란데의 이름이 먼저 쓰였다. 한국 언론에서 맥 밀러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연인으로 알려졌고, 그렇게 불려왔다. 그 편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쉬웠으니까. 그러니 이번 뉴스에서도 그렇게 쓰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허나 뉴스의 내용은 그의 죽음이었다. 이런 소식을 한국 포털사이트로 접한 것이 후회되었다. 기분이 몹시 이상해졌다. 다 떠나서, 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구글링을 했다. 단어들이 이어졌다. ....dies from-,....found dead.... rapper...was dead...at age 26.....dies... dies... dead.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힙합과 랩을 많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맥 밀러는 내 최애 힙합 뮤지션이었다. 그가 주로 쓰는 흐느적거리거나 펑키한 비트, 힘을 쫙 뺀 것 같은 랩 스타일이 취향에 잘 맞았다. 랩 뿐만 아니라 믹스테잎에 종종 싣곤 하는 사이키델릭한 보컬도 너무너무 사랑했다. 그가 사용한 비트에 가사도 꽤나 썼었다.
사실 카톡을 먼저 봤다. 내가 맥 밀러의 팬임을 알고 있는 지인이, 맥 밀러...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메시지를 본 후 급히 아무 사이트에나 들어가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마약 소지 같은 걸로 감옥에 갔다는 소식이길 바랐었다.
사인은 아마도 약물과다복용. 나는 약이 그와 그의 작업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른다. 중독으로 고생하다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아닐 수도 있고, 다시 빠졌을 수도 있다. 다만 그의 가사에 종종 등장하는 약들은 어쩐지 자연스럽게 느껴졌었다.
“I wash these pills with liquor and fall”
-Perfact Circle 중에서. (정규 앨범 “GO:OD AM” 수록곡)
“Give me that acstasy”
-One Nine Six Nine 중에서. (믹스테잎 “Home N Stoned” 수록곡)
이런 구절이 들어간 그의 곡들을 대체로 사랑했고, 그의 상태가 어떤지에는 전혀 관심 없이 목소리를 즐겼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속상하다. 나는 그와 어떤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일개 팬이지만, 속이 상한다. 속이 상하는 것 밖엔 할 수 있는게 없다.
전날 새벽, 그가 마지막으로 올린 인스타그램 스토리 게시물을 무심코 보고는 별 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뜨기 시작한 후에도 스토리는 계속 떠 있었다.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화면 너머 그의 목소리. 마치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이 박힌 폰 케이스가 SNS 광고창에 뜨기 시작했다. “Tribute case, get yours!” 하루이틀이 지나자, 이번에는 티셔츠였다. 그의 얼굴, 앨범 커버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의 웹사이트에서 파는 공식 굿즈가 아니었다. 죽음 이후 올라온 상품들, 죽음을 이용하는 마케팅.
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조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남긴 작업물의 양은 스물 여섯이라는 그의 나이에 비해 엄청났다. 그는 쉴 새 없이 작업을 했다. 정규앨범 사이사이의 믹스테잎들, 피쳐링,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 자기 스타일을 잃거나 그저 그런 곡을 내는 법이 없었다. 한 달 전 낸 정규앨범 “Swimming” 또한 상당했고, 풍부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천재,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천재였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하는 내 모습에는 내 수많은 최애-다른 배우, 뮤지션, 소설가들-에 대한 그것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가사를 뭐 이렇게 써 바보같이! 하면서 좋아하고, 눈은 또 왜 저렇게 멍하게 떠~ 하면서 좋아하고, 연애한다고 티내네 멍청이가~ 하면서 엄청 귀여워했다. 맥 밀러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매우 리스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리는. 그러니까, 애정에 애정이 덧붙은.
그가 없는 지금, 그가 등장하는 영상들은 여전히 날 웃게 만든다. 화면 속의 그는 멍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헤헤 웃고 있다. 너무 바보 같고 좋아서 슬프다.
그는 겨우 스물 여섯이었다. 그는 터키 샌드위치를 좋아했고, 가사에도 가끔 썼다. 그가 있는 곳에도 맛있는 터키 샌드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Rest in peace, Mac Miller.
“Umm lemme get a turkey sandwich, uh lettuce, tomato”
-Frick Park Market 중에서. (Mac Miller 정규앨범 “Blue Slide Park” 수록곡.)
그리고, 터키샌드위치밀크셰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