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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7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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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19. 2022

#3 "네?"

[넘실대다] 편집위원 느루

휠체어는 철도로 이동할 수 있나요정말로요?”


KTX가 종착역에 도착하면 객실 복도를 따라 긴 하차 줄이 생긴다. 나는 그 줄에 서는 것이 귀찮아서 제일 끝까지 앉아 있다가 줄이 사라지면 짐을 챙겨 내리곤 한다. 얼마 전에 서울역에 도착해서 여느 때처럼 내리는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2분, 3분이 지나도 줄이 없어지지 않았다. 의아해서 반대쪽 줄을 따라 내려서 대합실을 향해 걸었다. 알고 보니 내가 내리려고 했던 문에서 휠체어 탄 분이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내리고 있던 것이었다. 역무원과 승무원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휠체어를 붙잡고 낑낑대며 플랫폼으로 휠체어를 받아내고 있고, 계단 위에서 보호자와 승무원으로 보이는 여자 2명이 휠체어 승객분을 부축하여 하차를 돕고 있었다. 그 승객분은 전혀 거동이 안 되는 상태였고, 보호자와 승객분은 주위에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있었다.


고상홈 구축은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안 중 하나이다. 쉽게는 지하철을 생각하면 된다. 열차와 플랫폼이 계단이나 경사 없이 붙은 플랫폼을 고상홈이라고 한다. 당연히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및 장애인, 휠체어 승객 등이 쉽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플랫폼이다. 하지만 광역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무궁화호/ITX새마을/KTX/SRT를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상홈을 이용하는 KTX 승하차의 경우 거동에 불편이 없는 성인조차도 가끔 아찔함을 느낄 정도로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그마저도 열차와 플랫폼 사이의 틈이 꽤 넓어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도이다. KTX가 이 정도니, 무궁화호, ITX새마을 등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지하철은 고상홈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강장과 출입문 사이 간격이 넓은 곳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며, 따라서 역무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이 휠체어 승객이 있으면 발판을 가져다주어야 겨우 탑승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를 보면 결코 교통약자들의 인프라가 결코 완전한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세대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신촌역을 보라! 지하철 2호선 탑승 시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간격이 정말 많다. 하물며 나 또한 출근길에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다가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허공에서 헛발질을 한 적도 있으니, 고상홈 구축만으로 이동권 보장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 아닌가?


고상홈 구축을 해도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완전히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의 사례에서 보듯이 도저히 휠체어 탄 사람들이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동선이 완전히 마련되지 않았고, 설령 마련된 역이라고 할지언정 일반인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의 동선 편의성과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여전히 이들의 이동권은 비장애인에 비하여 참담한 수준이다. 사실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여러분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휠체어와 같은 속도로 걸으며(!) 휠체어 ‘만’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통로를 이용해보길 권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환승역에서 휠체어 승객이 어떻게 환승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길 강력히 권한다. 1 역사 1 동선 구축만으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결코 같은 수준의 이동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7일,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전동스쿠터를 탄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다가 추락해 숨지는 일이 있었다. 그 후 6월, 경찰은 양천향교역 운영사 측에 책임이 없다고 결론짓고 내사 종결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고 당시 CCTV를 살펴보면, 고인이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1-2분간 기다리다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휠체어 이용자뿐만 아니라 노약자 혹은 일반인마저 이용하는 ‘편한 이동 수단’이기 때문에 전동휠체어 혹은 전동스쿠터 이용자가 여기에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김상희 씨는 [비마이너]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1]


“이 치열한 엘리베이터 쟁탈전에 차마 끼어들 수 없는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 치열한 탑승 경쟁에 동참하려면 싸움꾼으로 변신해서 나도 좀 타겠노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한다. 가끔 이 장면을 못 견뎌서 나와 동행하던 사람이 “전동휠체어 사용자부터 태우자”고 하면 “당신이 뭔데 왜 나서나”며 나를 가운데 놓고 시비가 붙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은 늘 일촉즉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보글보글 끓는 양은 냄비 같은 곳이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해당 엘리베이터가 전동스쿠터 혹은 전동휠체어가 탈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더인디고]의 보도[2]에 따르면, 양천향교역의 엘리베이터 입구 폭은 90cm에 불과하다. 2008년,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 지침’에 따른 엘리베이터 설치 규정이 “엘리베이터 전면에는 휠체어 사용자의 승강을 위해서 1.5m×1.5m 이상의 유효공간을 확보한다.”로 변경되었지만, 양천향교역의 엘리베이터는 그 이전인 2006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니 CCTV에서 확인된 고인의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두 대를 지나치고 사람들이 서 있는 엘리베이터 앞을 지켜본 후 차단봉이 없는 에스컬레이터로 진입하는 선택이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이용자가 줄을 서있고, 그마저도 물리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에스컬레이터는 고인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로의 진입을 막기 위한 차단봉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 사고는 일어나고야 말았다. 


규정상 엘리베이터 설치 지침 개정 전에 설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양천향교역 운영사의 과실 혐의점을 찾지 못하여 수사를 끝냈다고 한다. ‘법적으로 틀린 것은 없으니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사고가 일어난 이후 9호선 구간에도 차단봉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사람이 죽어야 조치가 이뤄진다. 책임지는 이는 없다. 법적 문제는 없으니까 말이다.


책임지는 이는 없지만, 고인에게 악플을 다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로 고인과 전장연에게 인신공격을 가하는 이들은 포털의 댓글 창에, 커뮤니티에, 그리고 SNS에 널려 있다. 온라인의 많은 이들이 ‘중립기어’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이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의 사건에 대해서는 ‘중립기어’는 내다 버리고 ‘인신공격성 집단린치’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이동권 투쟁’을, 아니 ‘이동권 문제 제기’를 반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라면, 더 이상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이들과 결을 같이하며 출근길 시위를 하는 전장연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던 서울경찰청장은[3], 일단 이동권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이 ‘지구 끝까지 도망치기라도 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 준 이후에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을까?


결국 돈이 문제다. 돈. 정부와 기업의 합리적 선택을 위한 최적점은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점에서 찍히겠지만, 이제는 그 효용 곡선을 산출하는 방정식을 손봐야 할 시기이다. 99%의 일상을 존속시키기 위해 1%가 불편을 감수하는 사회에서, 1%는 항상 사회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그 어디에도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조문은 없다. 그 1%가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시위하러 나서면, 몇 년간, 어쩌면 수십 년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거나 혹은 ‘다수를 볼모로 잡고 피해나 주지 말라’는 일침 아닌 일침이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면서 약자에 대한 포용과 경제적 번영을 외치는 것은 양심이 없는 게 아닌가?     


시내버스가 매드맥스를 찍어야 한다고요?”


이번 여름에 인턴을 하면서 평일에 2호선 신촌역-2호선 선릉역을 출퇴근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 출퇴근을 하고 나니 대략 집에서 몇 분쯤에 나서서 몇 분에 오는 버스를 타고 신촌역에 가서 몇 분 기차를 타고 언제 왕십리에서 내려서 언제쯤 선릉역에 닿을지 계획이 착착 생긴다. 계속 출퇴근을 하면서 문득 어떻게 이 수많은 교통수단이 배차간격을 지키면서 다니는지 경외심이 생기곤 했다. 출퇴근 지하철에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면서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에 뛰어 타고, 또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버려지는 몇 초의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기관사분들의 노력 없이는 ‘예측 가능한 출근길’이란 실현 불가능한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2005년 일본에는 유난히 철도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그 중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사고는 JR서일본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라고 할 수 있다. 105명이 숨졌고, 수백 명이 다쳤다. 원인은 간단했다. 커브 구간에서 규정 속도인 70km/h에 비해 46km/h가량 초과한 116km/h로 진입했으며, 이로 인해 열차 선두부가 공중으로 뜨며 탈선했고, 열차는 잭나이프 현상[4]을 일으키며 인근 맨션에 충돌하면서 대형 인명피해를 냈다. 사고 원인은 출퇴근 시간 미숙련 기관사가 배차간격 및 시간표 준수를 위한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무리하게 과속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간사이 지방 철도회사들의 유례없는 경쟁 속에 철도회사들은 최대한 빡빡하게 시간표를 짜놓고 기관사들에게 배차간격 엄수와 시간표 준수를 요구했다. 이 배차간격을 지키지 못한 기관사들은 회사로부터 일근교육이라는 징벌성 교육을 받는 등 압박이 심했고, 이에 따른 그들의 스트레스도 상당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쯤 되니 의문이 하나 든다. 공공 교통수단에 경쟁과 성과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정말 좋은가? 경쟁으로 승객의 비용이 줄어들고 편의성과 정시성이 향상되면 좋겠지만,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는 지나친 정시성 확보 압박이 되려 안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 정시 운행 실패의 책임을 오로지 기관사 혹은 운전기사가 져야 하는가? 지하철의 경우에는 러시아워에 승객들의 뛰어들기 탑승, 승하차 시간 소요 등으로 인해 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도로를 이용하는 버스는 교통체증 등의 문제로 지연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관사나 운전기사의 역량만으로 회복할 수 없는 배차 지연의 책임을 오롯이 이들에게만 물으려 하는 데에 있다. 설령 지연이 발생했다고 할지언정, 그 책임과 압박을 기관사와 운전기사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어할 수 없는 교통상황에 따른 지연의 책임을 버스회사간의 경쟁과 기관사에 대한 압박으로 소화해야 하는 현실부터가 적절하지 않다. 


서울시는 배차간격을 잘 지킨 버스회사에 인센티브 형식으로 보조금을 지원한다. 그렇지 않은 회사는 당연히 얄짤없다. 그렇기에 버스회사는 기사들로 하여금 강요와 압박을 동원해 배차간격을 엄수하도록 요구한다. 언뜻 보면 서울시가 인센티브를 통해 버스회사들로 하여금 ‘정시성’을 지키도록 유인하는 좋은 정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이용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낳는다. 경쟁에서 승리한 버스회사만이 인센티브를 가져갈 수 있는 환경에서, 대중교통의 안전성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한겨레]의 보도[5]에 따르면, 버스 회사가 배차간격 준수를 요구하는 동시에 급브레이크나 신호위반으로 승객 민원이 들어오면 강제로 하루 휴식을 취하게 하고 수당 70만 원을 깎는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면 버스는 당연히 연착할 수밖에 없고, 운행 중에 지연 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호위반이나 난폭운전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버스 회사는 안전운전과 배차간격 준수라는 양립하기 힘든 것들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버스회사는 인센티브가 걸려 있기 때문에 버스기사에게 배차간격 준수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중교통의 정시성은 시민 편의 입장에서도 꽤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배차간격 준수를 위해 인센티브를 내걸고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배차간격 미준수 및 지연의 책임을 엄한 곳에 전가하는 것일뿐더러, 승객의 안전을 담보로 사실상 내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중교통의 정시성과 안전에 관한 문제도 돈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배차 정시성 문제를 포기하자니 서울시의 입장이 난감해지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시성을 지키기 위해서 인센티브로 버스회사를 유인하는 정책이 서울시의 교통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현실적이지도 않고, 더군다나 그것이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은 정책을 시행할 때 고쳐야 할 부분이 매우 많음을 시사한다. 시내버스의 정시성, 시민의 안전, 서울의 교통상황, 버스 기사의 압박감, 버스회사의 재정 등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방정식에서 단지 인센티브로 ‘정시성’만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정책은 분명 재고되어야 한다.


편집위원 느루 (hushpond@yonsei.ac.kr)




[1] 비마이너.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휠체어 이용자는 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가>

[2] 더인디고.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 [기고] 양천향교역, ‘장애인 에스컬레이터 추락사’ 책임은 ‘지하철 9호선’

[3] 경향신문. 구교형 기자. <서울경찰청장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엄포>

[4] 고속주행하던 열차가 갑작스레 감속 혹은 정차하게 되면 선두차의 뒤에 연결된 차량들이 관성에 따라 잭나이프의 칼이 접히듯이 서로 뭉개져 충돌하는 현상을 말한다.

[5] 한겨레. 장나래 기자. <오세훈 ‘230억 성과급’ 미끼로…버스 정시운행 ‘위험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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