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대다] 편집위원 모자
기록적 폭우, 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 115년만의 물폭탄… 8월 8일, 갑작스레 닥친 재난은 삶을 마비시켰다. 나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는 비가 무서워서 집으로 들어와 친구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강남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빗물이 무릎까지 차서 오도가도 못한다며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있었고,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 있던 친구는 영등포역이 침수되어 3시간 동안 나아가지 않는 기차 안에서 하루를 지샐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또 한 친구는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식당에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식당을 나왔다고 했다. 지방에 살고 있는 부모님은 서울에 물난리가 났다고 하니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물론 나도 굳이 비를 맞고 싶지 않았고, 안전한 곳에서 마음 편히 있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이틀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제습기를 틀어놓은 원룸에서 쾌적하게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침수피해가 뒤따르고 있다는 뉴스를 보던 중 관악구 반지하 일가족 3명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반지하에는 40대 여성 둘과 10대 여성 하나가 살고 있었고, 이들은 빠르게 집 안을 채우는 빗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주변 주민들이 이들을 살리고자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숨을 거뒀다. 이후 장마전선은 남쪽을 향했다. 부여에서 트럭에 탄 두 명이 실종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충남에 많은 피해가 있는 듯했다. 부여, 청양, 보령, 논산, 공주 등에서 농작물을 기르던 200헥타르의 땅이 침수피해를 입어 한 해 농사가 헛수고가 될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들었다.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것은 그들이 아닌데도. 재난의 현장에 장애인, 여성, 저소득층 등이 유독 많은 이유는 그들이 더 안전한 거주환경을 고려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쉽사리 자리를 옮길 수 없는 이들. 이들은 대부분 일자리가 집중된 서울에 살기 위해, 일터에 가는 비용(대중교통/자가용 등)을 아끼기 위해, 많은 가족 구성원과 한 집에서 살아가기 위해 반지하로 향한다.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본에서 빗겨난 1차산업 생산자들도 상황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하다. 날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벌이를 업으로 삼고 있기에 날씨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최근 몇 년간은 가뭄과 홍수로 번걸아가며 피해를 입고 있다. 삶의 터전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그래도 매년 농사를 짓는다.
나는 나와, 가족과, 친구들과, 지인들의 안전에 감사하면서도 평소 탄소를 배출해대며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나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동권이 중요하다며 본가에 갈 때마다 16년된 (탄소배출이 엄청난) 차를 신나게 몰던 나,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핑계로 택시를 불렀던 나, 덥다며 집에서 에어컨을 키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잤던 나… 어디든 멀리 나갈 수 있고, 언제든 원하는 곳을 갈 수 있고,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락한 삶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침수피해가 보도된지 하루만에, 고급 아파트 단지, 회사 건물들이 즐비한 강남은 언제 침수되었냐는 듯 다시 화려한 하루를 시작했다. 그곳엔 다시 유명한 외제차가 눈을 비빌 때마다 지나다니고, 저녁에는 도로가 꽉 막혀서 답답할 정도로 차를 모는 사람들이 많다. 일을 하기 위해 매일 먼 길을 이동하는 사람들 건너편에는 여전히 침수된 채로 방치된 반지하 집을 바라보는 이재민과, 이제는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고인(故人)이 있다. 또 그 옆에는 망친 농지를 떠날 수 없는 농민도 있다. 그 간극이 너무 커서 정신이 아찔해졌다.
편집위원 모자(dyj06128@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