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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7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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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관 공일오비 Sep 19. 2022

#6 버스와 서울과 친해지는 일

[넘실대다] 편집위원 서로

나는 서울에서 생활하기 이전까지는 버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워했다. 탈것이 으레 그렇지만 버스는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서두르게 했다. 정차하는 시간과 역들을 지나치는 시간이 아주 짧아서 타고 내리는 나의 속도를 그에 맞추려면 지나치는 역에 주의를 기울이고 미리 내릴 태세를 갖추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특유의 느긋하고 느린 성향 탓인지 잽싼 버스의 움직임에 나를 맞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었다. 일단은 올바른 버스에 올라탔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고 있다가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치기 일쑤였다. 타이밍 적절한 승하차에 수십 번 실패하고 나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지하철로만 다닐 수 있는 경로를 일부러 골라서 다녔다.     


지하철은 방향을 잘못 타거나, 엉뚱한 곳에서 내린 경우 복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또 어느 역이든 내렸을 때의 풍경이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곳이 낯선 곳이라는 점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어디서 내리더라도 기다란 플랫폼과 그것을 장식하는 광고판, 조금씩 놓인 자판기들과 빼곡한 계단이 나를 맞이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잘못 내리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심호흡을 한 뒤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잘 따라가면 반대편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버스의 경우는 달랐다. 우선 잘못된 역에서 내렸을 때 곧바로 내 눈앞에 놓이는 새로운 풍경들이 나를 겁먹게 한다. 처음 보는 간판들과 사람들, 처음 보는 너비의 도로들이 나를 맞아주는 것은 언제나 낯설고 두렵다. 그 상태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한 횡단보도는 또 어디 있는지, 제대로 된 버스를 다시 탔는지 확인하는 것은 혼이 쏙 빠지는 일이다. 기력이 다 소진된 채로 약속 시간에 늦거나 귀가 시간이 늦춰지는 건 덤이다. 만약 잘못 탄 버스가 막차였다면… 긴말은 하지 않겠다.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내가 있는 반경 1m만 서울에서 똑 떼어진 다른 곳인 것만 같았다. 같은 수도권이지만 서울의 풍경이 경기도의 그것과는 또 달라서였을까. 미묘하게 다른 점은 많고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서울 사람들은 지하철만큼이나 버스도 아주 잘 활용한다는 점이다. 또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도 새로웠다. 고자질하자면 경기도 버스는 정류장에 승객이 없을 때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승객이 있더라도 미묘한 눈 맞춤이나 차를 타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또한 지나친다. 때때로 시외버스들은 가장자리 차선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도 않은 채 무심히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이제까지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임박하면 고개를 쭉 내밀고 버스가 언제 오는지 살펴야 했다.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 카드를 주섬거리며 꺼내거나, 더 강력한 손짓으로 나의 존재를 기사님께 알려야 했다.     


서울의 버스들은 대체로 그보다 더 친절했다. 애초에 어떤 정류장이든 승객이 없을 때 자체가 드물긴 했지만, 서울의 버스는 모든 정류장에 정차했고 내가 버스 기사님께 눈짓과 몸짓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으로 편안했다. 넓은 8차선 도로와 그것을 가득 메운 차들, 큼직큼직한 고층 건물들의 풍경도 새로웠다. 버스 타기를 그렇게나 싫어하던 나였지만 서울에 살면서부터는 버스 외의 선택지를 쉬이 고를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를 타야만 했고, 그래서 서울 내에서 어딘가로 이동할 때는 몸과 마음 모두 오로지 버스에 집중해야 했다. 이어폰을 꽂을 수도 없었다. 노래에 심취해서 내릴 역을 놓치거나 안내 방송을 못 들으면 안 되니까.     


버스를 탈 때마다 예민하게 깨어 있는 몸에 익숙해지나 싶었을 때쯤, 버스 안에서 문득 내가 지금 서울에 있고 그곳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반경 1m도 분명 서울이라는 영역이고 나는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렇게 되뇌었다. 내가 어떤 장소를 정겹고 익숙하게 느끼게 되는 요소 중 하나는 그곳으로 향하는 탈것과 친해지는 것이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외우는 버스 번호와 지하철역의 이름,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다는 익숙한 느낌, 머리로 계산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향하는 방향.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의 뿌듯함과 이유 모를 정겨움이 있다. 나는 연희동에서 지내고 있는데, 매번 신촌역에서 서대문03 버스를 타고 한성화교중고교 정류장에서 내린다. 또 자주 710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과 교보문고로 향한다. 그렇게나 낯설던 버스가 눈에 익어가는 순간에서 서울에 대한 정겨움이 생겨난다. 내가 서울 안에서 지도 없이 움직일 수 있다니… 그게 뭐라고 어찌나 신기하고 반가웠던지. 여전히 서울 안에는 낯선 곳이 더 많지만, 그중 일부가 내게 정겹게 느껴지고 또 아끼는 장소가 생겼다는 건 언제 생각해도 반가운 일이다.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향하는 몇 개의 버스 번호를 외울 수 있다. 경복궁으로 향하는 272, 광화문 교보문고, 신설동, 혜화를 아우르는 710, 이제는 가장 익숙하고 반가운 서대문03…. 지도를 켜지 않아도 망설임 없이 향할 수 있는 곳들, 겁먹지 않고 탈 수 있는 버스들이다.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도, 2층 카페에서 도로를 내다보다가도 이 버스들이 지나가면 괜한 반가움에 그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나, 버스 안에서 뭘 하고 있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더 극단적으로는 버스에 냅다 올라타서 경복궁으로, 혜화동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한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글을 끄적이는 지금, 어김없이 내 곁을 지나치는 버스에게 넌지시 묻고 싶다. 우리 이제 꽤 친한 거지?     


버스는 아직 내게 편안한 탈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것에 또 다른 묘미가 있음을 느낀다. 버스 안에서 휙휙 지나가는 도시 풍경을 구경하는 일, 되려 버스로 인해 느껴지는 서울의 익숙함은 그 나름의 좋음이 있다. 또 한편으로 서울에 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좋다. 요새는 자전거와 친해지는 일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길가를 지나가다 보면 따릉이나 여타 공유자전거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야심차게 따릉이 어플을 깔아 이용권도 끊어두었지만 어째 아직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항상 그런 장면을 상상한다. 땀을 잔뜩 흘리며 자전거를 타다가, 애정을 듬뿍 담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을. 언제고 더 반가워질 서울과 낯선 탈것의 세계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편집위원 서로(seoro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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