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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26. 2023

<133호> 장벽 없이 함께

편집위원 데어

흰색 배경에 위와 아래에 녹색 띠가 둘러져있다. 사진의 왼쪽에는 초록색 불이 켜진 보행자용 신호등이 있고, 오른쪽에는 제목 '장벽 없이 함께'가 쓰여있다. 

2년 동안 비어있던 캠퍼스를 뒤로 하고 대면 학기가 시작되었다. 연세편집위원회도 대면 학기를 맞아 신촌과 국제캠퍼스 주요 건물에 배포를 재개했다. 국제캠퍼스로 택배를 보낸 후 학생회관 경비실에서 큰 끌차를 빌려 책을 몇십 권씩 옮기는 작업은 분명 색다르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요란하고 불편했다. 쌓아 올린 책이 넘어질까 불안했던, 학생회관 3층 편집실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은 오히려 쉬운 편이었다. 바닥도 매끄럽고 엘리베이터도 있었으니까. 백양로에 나서자마자 울퉁불퉁한 벽돌길이 험난했다. 벽돌 하나하나를 타 넘을 때마다 끌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덜컹거리는 움직임에 책더미가 쏟아질 듯 흔들렸다. 위당관과 연희관에 책을 쌓아두고 돌아오며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가는 도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이의 턱, 완만한 경사로 등 '배리어프리'한 캠퍼스가 간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캠퍼스의 배리어프리


‘배리어프리’는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등장한 개념으로, 고령자와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없애자는 개념이다. 배리어프리는 말 그대로 barrier(장애물) free(~이 없는), 곧 장애물이 없는 환경이다. 한국어로는 ‘무장애 환경’이라고도 번역한다. 초기에는 보고서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건축 분야를 중심으로, 턱을 없애고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경사로를 설치하는 등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앞서 도입에서 언급한 개념도 물리적인 배리어프리에 가깝다. 현재는 그 개념이 제도적, 법률적, 문화적, 심리적 장벽으로도 넓어졌으며 그에 따라 저상버스, 정부 행사와 뉴스의 수어 통역,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 예술의 자막과 수어 통역 서비스 등이 도입되었다. 또한 연령, 성별,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디자인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도 등장했다. 이동권에서 출발한 ‘배리어프리’가 장애인의 전반적인 생활 환경으로까지 스며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2020년 총학생회 〈Mate〉는 장애인권위원회와 협력하여 ‘신촌캠퍼스 배리어프리 맵’을 제작했다. 해당 지도는 당시 접근 가능한 학교 건물 내외부를 대상으로 배리어프리 여부를 조사하여 제작되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제작, 배포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제도 매뉴얼’의 항목, TFT 팀원들의 판단, 장애인, 비장애인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만든 배리어프리 맵은 ‘교내 환경 파악과 길 안내’라는 지도의 목적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 의식을 고취시키고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받았다. 그러나 당시 코로나로 인해 출입 통제가 이루어진 구역과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위당관은 내부 조사가 불가능해 조사 장소에서 제외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시간이 부족해 각 건물의 주요 출입 통로인 1층의 지도는 강의실이 없는 경우 제작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휠체어 진입 및 이동 가능 여부에 집중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시각 장애를 포함해 이동에 제약이 생기는 다른 장애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휠체어 이용자의 물리적 배리어프리에만 집중한 셈이다. 

이에 더해 대면학기 전환 이후 첫 선거인 2023년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선거운동본부 〈바로〉는 신촌캠퍼스와 신촌 상권의 배리어프리 여부를 전수조사하고, 배리어프리 맵 지도를 새롭게 제작하여 배포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또한 필요할 경우 장애인 편의시설을 보완하고 확충할 것을 관련 기관에 요청할 것이며, 교내 학생 식당에 높낮이 조절 기능 및 디지털 촉각 패드, 점자가 포함된 스마트 키패드, 음성 안내 및 수어 통역 영상 등을 지원되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장애학생의 접근성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현재의 배리어프리 맵을 통해 본 신촌캠퍼스는 어떤 모습일까? 총학생회와 장애인권위원회 SNS, 장애학생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배리어프리 지도를 보면, 코로나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 조사하지 못한 공간도 있었지만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이동하기 어려운 공간이 많다. 물론 굳이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신촌캠퍼스는 산에 비스듬히 걸쳐 있기 때문에, 이런 '언덕 위' 건물으로의 접근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자명하다.

신촌캠퍼스 전체의 배리어프리 여부를 표시한 지도이다. 지도에 빨갛게 표시된 길은 휠체어 이용자가 혼자 이동하기 어려운 길이다. (출처: 신촌캠퍼스 배리어프리맵 TFT)
학생회관 앞에서 바라본 백양로이다. 언뜻 평탄해보이지만 정문과 언더우드관 앞 삼거리는 건물 2층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다.

예컨대 외솔관, 위당관, 교육과학관, 연희관, 빌링슬리관, 대우관과 그 별관은 언더우드관 양옆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르막길로 인해 비장애인으로서도 다니기 쉽지 않은 곳이다. 평평해보이는 백양로에서도 정문과 언더우드관 앞 삼거리는 건물 2층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지체장애인으로서 이동이 더욱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강의실까지의 길은 멀다. 각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한 개씩이고,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에 가려는, 또는 건물을 나가려는 사람들도 꽉꽉 찬다. 휠체어가 사람보다 더 많은 부피를 차지하기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뿐더러 심리적인 압박이 되기도 한다. 그밖에도 문턱이 있는 강의실, 대형 계단식 강의실에서의 어려움도 있다. 나는 종종 친구들과 언덕을 올라가며 캠퍼스가 넓고 산에 걸쳐 있는 점에 대해 불평하곤 한다. 하지만 지체장애인에게 캠퍼스는 불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막막한 원망의 대상이 아닐까?

각각 외솔관 2.5층, 1, 4공학관 3층, 경영관 4층의 배리어프리맵 지도이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휠체어 이동 여부를 표시했다.

장애인의 이동권


이동권은 필수적인 권리이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고 학교와 직장에 다니는 것은 모두 이동의 가능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소수의 직업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집에서 직장으로, 다시 직장에서 집으로 이동한다. 또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문화를 즐기려 영화관으로, 공연장으로, 전시회장으로 이동하며, 이 밖에도 단순히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식당과 카페를 간다. 다시 말해 사회의 이상적인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정서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하니, 이 모든 것은 이동권을 전제한다.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고,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위협받기 쉽다.

그러나 비장애인에게 이동은 숨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고, 그 필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 학생은 존재한다. 그것도 여럿 존재한다. 매 학기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이동·활동 보조 근로장학생을 모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정문에서 강의실까지 어떻게 갈까, 라는 질문에 당연하게 '걸어서'라고 답하는 대학생은 좀더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교의 노력


그렇다면 연세대학교 내에서 이동권과 학습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먼저 총학생회 산하특별자치단체이자 특별기구인 장애인권위원회가 각각 장애학생의 원활한 학업수행을 지원하고 장애인권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이 주의 장애이슈’라는 제목으로 장애인권과 관련된 시사뉴스를 알리고, 매년 장애인권문화제를 개최한다.  아카라카와 연고전 같은 주요 행사에서 배리어프리석 관련 사항을 안내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또한 윤리인권위원회 산하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존재해 학사생활과 관련한 지원을 맡고 있다.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이동권 측면에서는 이동·활동 보조, 기숙사 지원, 장애학생 전용 휠체어리프트 차량 연계 지원 등의 지원 제도가 있다. 그 중 이동·활동 보조는 학내이동 및 생활이 어려운 장애학생의 학내활동을 보조해주는 교육활동 지원 학생을 연계해주는 제도이다. 매 학기초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데, 신청한다면 센터 담당자와의 면담을 거쳐 한국장학재단 국가근로장학생으로 등록되고 장애대학생과 연계된다. 특히 우리 학교는 지형적으로 장애학생이 이동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고, 건물이 오래되어 적절한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있어 이동·활동 보조 근로학생의 역할이 강조된다. 다른 제도가 장비나 공간을 제공하는 등 학교가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이동·활동 보조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구성된 제도, 이동·활동 보조 근로를 경험한 학생 호랭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 이동 활동 보조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호랭: 1학년 때 장학금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 집 소득분위 때문에 장학금을 받을 수가 없어서 뭘 할까 하다가, 소득분위에 상관없이 장학금을 주는 게 있다고 누군가가 말해줘서 보게 됐어요. 그리고 [공고를 읽어보니]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과목을 처음에 못 넣었는데 교수님께 빌었어요. 저 장애학생 도우미 해야 하는데 못 넣었다, 인원 한 명만 늘려달라, 그렇게 해서 들어갔어요.

그렇게 17학년도 2학기에 한 번하고, 18, 19학년도에 쭉 하고, 21학년도에 복학해서 또 했어요. 지금은 정규학기가 끝났는데 그 이후에는 딱히 과목이 겹치지 않아서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 이동·활동 보조를 하면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 건지, 어느 범위까지 활동을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호랭: 유형마다 다를 것 같은데 제가 했던 보조를 기준으로 말씀드릴게요. 제가 맡았던 사람이 3명이 있는데요, 1학년 때 맡았던 분은 강의실과 강의실 사이를 이동 해야 했어요. 송도 캠퍼스는 건물의 문이 무거운 경우가 많아서 이동할 때 문을 잡아주고, 엘리베이터 문이 빨리 닫히니까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강의실에 오면 책을 꺼내고 자리를 세팅해 수업 준비를 도와주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책을 넣어서 다음 수업하는 곳까지 가는 활동이었어요. 필기는 본인이 하셨어서 대필은 안 했고요. 2학년 때 맡았던 분들은 같은 과 선배들이었는데 이동 보조 선생님들이 다 계셔서 이동 보조보다는 강의 대필 위주로 했어요. 그리고 그 전에 했던 것처럼 수업에 가면 같이 앉아서 책이나 자료 꺼내야 하는 게 있으면 꺼내주고 같이 앉아서 수업을 듣고, 비대면일 때도 똑같았어요. 강의 들으면서 열심히 필기해서 보내주는 그런 활동이었습니다.


- 그런 활동들을 함에 있어서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 궁금합니다.

호랭: 일단은 지각과 결석을 안 할 결심이 필요하죠. 저는 보통 다 전공 수업이었어서, 대필하는 수업 같은 경우는 절대 안 빠지고 들을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어요. 한 번은 PNP 과목에선 너무 결석을 하고 싶었는데, 결석할 수가 없어서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와서도 집중해서 열심히 듣고 필기를 해야 해요. 그런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활동을 시작하면 책임감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호랭: 저는 그냥 수업을 듣는 강의식 수업은 너무 편했어요. 그런데 조모임이 좀 힘들었어요. 제가 보조해드리는 분이 조모임을 하는 동안 좀 아프셨어요. 그래서 참여를 힘들어 하시고. 자료조사를 하는데 네이버 블로그를 그냥 가져오신 거에요. 그래서 제가 좀 화가 난 적이 있었어요. 저보다 학교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이셨는데.

그때 저는 활동 보조를 하면서 그 장애학생이 내가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나의 고용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 하거든요. 그러니까 동등한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을 해왔어요. 같은 과 선배이기도 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 내지는 친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러니까 [그 분이] 제 친구 같았으면 뭐라고 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정말 고민했는데 근데 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아프고, 비장애인에 비해 타이핑을 하는 데도 시간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가 되게 애매했어요. 그래서 그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수업에서 발표를 잘 하고 싶고, 상상하는 그런 그림이 있는데 그게 안되니까.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주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뭔가 그러면 안될 것 같았어요. 그런 식으로 대신해 주는 건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좀 조심스러웠는데 그 분이 조사하신 파트에 대해서 내가 한 것처럼 발표하기는 또 싫어서, 그냥 각자 맡은 파트를 각자 발표하자고 말했어요. 각자 파트는 각자가 책임을 지자. 그런데 그 분이 거기에 대해서 너무 부담스러워하셨어요. 자기는 목소리도 크지 않고 장애 때문에 발음이 부정확한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좀 그렇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옆에서 엄청 용기를 북돋아줬어요. 괜찮다, 내가 마이크를 준비하겠다, 할 수 있다, 사람들도 당신의 발음을 듣는 연습을 해야 된다, 이러면서. 결국 발표를 잘 해서 넘겼는데, 그 몇 주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 관계에 있어서 고민해야 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호랭: 네 엄청 친한 선배는 아니었어요. 1학년 때 맡았던 분은 동갑이고 이동하면서 대화를 많이 해서 좀 친해졌는데, 그 분은 저보다 나이도 많고, 이동할 일 없이 같이 수업만 듣고 바로 헤어지다보니 친밀감이 쌓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이야기하면서 풀기 애매한 그런 관계였던 것 같아요.


- 근로를 하면서 인상깊었던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호랭: 방금 말씀드린 그 상황이 인상 깊었고, 또 하나는 사회 혁신 수업을 들었을 때 지원금이 나와서 매주 간식을 먹게 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활동 보조를 했던 분이 손을 쓰는 데 불편함이 있었어서, 간식이 나오면 제가 먹여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수업 필기도 하고, 내 간식도 먹고, 그 분 간식도 먹여줘야 해서 굉장히 바빴는데, 중간에 현타가 오는 거예요. 나는 강의 대필을 하러 온 건데 이것까지 나의 역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말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인 게, 사회에서 돌봄 노동이 높게 평가되지 않고 저도 사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면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분 입장에서도 간식을 스스로 먹지 못함으로 인해 옆 사람이 불편해 한다면 본인도 불편해하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매주 나에게 뭔가 부여받지 않은 일을 하게 되니까… 당시에는 이것도 내 역할이겠거니 하면서 했는데 찜찜함은 계속 있었죠. 


- 활동보조 근로를 하면서 느꼈던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나, 과거와 비교하여 바뀐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호랭: 생각보다 사람들이 휠체어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상황에서 딱히 내리지 않았어요.  근로를 시작하면서 그런 상황이 있을 때 사람들한테 나와달라고 말하라고 교육을 받아요. 그래서 그런 말을 자주 해야 했는데 사실 그게 많이 불편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말을 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은데, ‘왜 이 사람들은 내가 나와달라고 말할 할 때까지 나오지 않지, 당연히 휠체어가 타라고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인데’, 그런 생각을 했죠. 사람에 따라서는 나와달라고 말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일 수도 있을 거고요.

송도에서는 문이 되게 무겁고 자동문도 별로 없었어요. 그게 휠체어 사용자나 두 손에 뭔가를 들고 있거나 목발을 짚거나 한 사람들에게 너무 큰 장벽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송도 건물에 이런저런 계단들도 많아서 계속 지하 주차장으로 다니게 돼요. 휠체어가 다니기에 더 매끄러운 길이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그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던 게 다른 [비장애인] 사람들은 다 햇빛에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소위 '캠퍼스라이프'처럼 다니는데 휠체어를 타는 제 친구는 지하로만 다니는 게 너무 기분이 나쁜 거예요.

그리고 진리관A에 장애인 휴게실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보이는 곳에 있고 그런 점이 저는 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같았어요. 장애인은 시설 속에 있거나 잘 보이지 않고, 대중교통을 타기 어려우니까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이런 식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분리시켜 놓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왜 장애인 휴게실이 따로 있는지는 이해가 돼요. 아직까지 우리 학내 사회가 그러게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아서 장애인의 니즈를 더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따로 독립된 공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거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 독립된 공간으로만 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우리 학교가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계단형 강의실에서 장애인 학생은 맨 앞에만 앉거나 맨 뒤에만 앉아야 해요. 계단식이 아닌 강의실에서도 높이 조절 책상은 보통 문 앞에만 있어요. 의자와 책상이 너무 많아서 휠체어가 자유롭게 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니기는 너무 좁거든요. 선택권이 너무 없다, 그런 느낌이죠.


- 다시 활동 보조 근로를 할 생각이 있나요?

호랭: 네 있어요.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되게 좋아요. 예를 들어 저는 필기를 거의 속기 수준으로 하는 편인데 나중에 시험 기간에 큰 도움이 돼요. 빠진 수업도 없고요. 그리고 혼자 듣는 수업 같은 경우에는 같이 듣는 친구가 한 명 생기는 거잖아요. 독강이 독강이 아니게 되는 거죠.


- 이 근로를 생각하고 있는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호랭: 하세요. 좋습니다. 방금 답변과도 연결되는데 따로 시간 낼 필요 없이 장학금을 받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려는 수업 앞뒤로 연강이 있더라도 이동 보조가 아니라 대필 같은 활동 보조가 필요한 유형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활동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매 학기초에 교육받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활동 보조를 하기 전에 상상했던 휠체어는 병원에서 쓰는 휠체어를 생각했는데 사실 휠체어는 엄청 무겁다, 이런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전에는 주위에 장애인 친구가 없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친구를 사귀어서, 뭔가 물어볼 게 있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거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는데, 극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관객이 입장하기 편하려면 어떤 게 좋을까 이런 고민이 생길 때가 있어요. 당사자가 아니니까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고, 또 활동 보조를 했던 경험이 레퍼런스가 되기도 하고. 예를 들어 입장 통로를 정할 때 휠체어 폭이 얼만큼 되는지 아니까 그에 맞게 통로를 정한다든가.       


호랭은 활동에 있어 장애학생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은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는 아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학교에서 휠체어 이용자를 본 기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적다. 

이동·활동 보조 근로는 ‘보조’라는 단어 때문에 일방적인 활동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해당 활동을 경험한 학생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많이 배웠다고 답했다. 직접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활동 경험으로부터 말이다. 또한 송도의 문과 장애학생 휴게실 등 그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이 그러하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초등학교 교사의 에세이를 봐도 ‘아이들에게 배웠다’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든 첫 만남에서 우리는 상대를 포함하지 않는 자신의 좁은 세계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소 퍼즐 조각처럼 연대할 수 있다. 연대의 정의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튀어나온 부분과 들어간 부분이 공존하기 때문에.


연대라는 배리어프리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제1항), 국가의 사회보장증진의무(헌법 제34조 제2항), 신체장애자의 생활보호청구권(헌법 제34조 제5항)을 통해 국가의 장애인에 대한 보호의무를 암시한다. 더불어 법률에서는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편의증진법)을 제정하여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2006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에서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에 이동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보행환경을 개선하여 교통약자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도록 하였다. 또한 2007년부터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며,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밖의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이동권에 대한 실제적인 보장 없이는 공허하게 들린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법률을 근거로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정하고, 특히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제도(BF제도)'를 통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고자 한다. 편의증진법과 교통약자법,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의 공동부령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에 관한 규칙」(2015. 8. 3 개정)에 따른 것으로, 어린이·노인·장애인·임산부뿐만 아니라 일시적 장애인 등이 개별시설물·지역물 접근·이용·이동함에 있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계획·설계·시공·관리 여부를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평가하여 인증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법률적, 제도적 보장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에 물리적인 보장—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설치—을 요구했을 때 그것이 실현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 학생의 이동권이 온전히 장애인 당사자의 의지나 개인의 선의로 보장되는 것 역시 어려울 뿐더러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못함이다. 더군다나 이제 ‘배리어프리’의 개념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의 생활과 경험에 주목한다. 똑같은 수업을 들었을 때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이 더 불편하고, 덜 몰입하는 경험을 가져가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장애인이 제 권리를 지속적으로 향유하고 그 질이 일정하게, 일상적으로 유지되려면 협력은 제도로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신촌캠퍼스를 포함해 완벽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모든 과도기적 공간에서는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결국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동활동 보조 근로는 제도를 통해 연대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장애학생이 캠퍼스를 거닐기 위해서는 각 건물의 배리어프리 상황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저 안다고 해서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학교 생활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공간이 있다. 같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장애인의 온전한 학교 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동·활동 보조 근로에 지원해 그들과 함께 학내를 이동해보는 것은 어떨까? 희생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보자는 제안이다.


참고문헌

박진용, 「장애인 이동권 보장 제도에 관한 공법적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8.

신촌캠퍼스 배리어프리맵 – 신촌캠퍼스 배리어프리맵 TFT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홈페이지 https://ko-kr.facebook.com/yonseijang15/ 

연세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홈페이지>지원제도>지원제도  https://ablecenter.yonsei.ac.kr/ablecenter1/able01/volunteer01.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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