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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26. 2023

<133호> 집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기

수습편집위원 빈칸

*본 글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의미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글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의 출신 지역은 수도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비수도권이지만,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서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두 용어의 의미를 세세하게 구분하기보다는 함께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서울과 수도권은 질적으로 다른 지역일 수 있으나, 경기과 인천 역시 ‘수도의 권역’이라는 의미에서 수도권이라고 불립니다. 이 사실 자체가 한국에서 서울이 갖는 초집중성을 반영한다고 여겨 이 글 내에서만큼은 서울과 수도권을 혼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부산은 해운대. 춘천은 닭갈비. 여수는 밤바다. 대전은 성심당. 제주도는 감귤. 독도는 우리 땅.

언젠가 <서울 사람들이 바라본 대한민국 지역별 특징.jpg> 같은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던 게시글을 본 기억이 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어색한 사투리가 흘러나왔고, 내 본가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은 꼭 내 앞에서 그 드라마를 어떻게 봤냐고 물었다. 은퇴하고 나면 ‘사람 별로 없는’ 부산 해운대에서 고즈넉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출신 지역과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말해 봐도 이해할 리 없을 것 같았다. 내 에너지만 뺏기는 일일 것 같단 판단으로 어어 그렇지, 하고 얼버무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입 꾹 다물고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수도권 중심주의, 수도권 중심주의 하지만 사실 수도권 중심주의를 직접 체감하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쉽게 들어볼 순 없으니 말이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비수도권 본가에 살아왔던 5명의 인터뷰이–부산 출신의 자유, 울산 출신의 대추, 광주 출신의 부엉이, 제주 출신 연두와 너울–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안녕하세요만나서 반갑습니다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자유: 안녕하세요, 20학번 자유(가명)입니다.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이 본가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재작년까지 부산에서 지냈습니다. 부산 토박이예요. 비대면 수업을 했던 한동안은 부산에서 지냈고,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건 2020년 10월 31일부터입니다. 처음 3개월은 셰어하우스에서 살았고, 자취는 2021년 2월 26일부터 시작했어요. 월세를 내는 날이 26일이어서 기억이 납니다. 자취한 지도 이제 1년 반 정도 되어 가네요.

대추: 21학번 대추(가명)입니다. 울산이 본가입니다. 태어나서 평생 울산 울주군을 벗어난 적이 없고요, 대학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울산 밖의 지역에서 살아보게 되었습니다. 작년 11월 초에 송도 기숙사에 입사했고, 지금은 신촌캠퍼스 무악학사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어요.

부엉이: 19학번 부엉이(가명)입니다. 본가는 광주광역시입니다. 스무 살 전까지는 계속 광주에서 살았어요. 스무 살에는 송도 기숙사에서 살았고, 스물한 살에는 서울 망원동에 있는 이모 댁에서 한 학기를 지냈습니다. 지금은 신촌캠퍼스 우정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연두: 20학번 연두(가명)라고 합니다. 제주 토박이고요, 서울에 올라와서 살기 시작한 건 2021년 2월 말부터입니다. 벌써 2년째 서울에서 지내고 있네요. 그동안은 계속 탐라영재관(제주도 지방학사)에서 살았습니다.

너울: 너울입니다. 제주도에서 왔고, 22학번이고요. 누나는 신림동에 있어요. 지금은 송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대학 오기 전까지 쭉 있었어요. 올 2월 말에 올라왔고, 송도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part 1. 서울의 인력

“한국은 서울공화국” “수도권 중심주의 심각” “지방소멸 코앞에”...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그래서 때로는 뻔하고 지겹게 느껴지는 문구들이다. ‘지역별 인구 및 인구밀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수도권 인구는 전국 인구의 50.4%를 차지하며 절반을 넘어섰다. 2020년 전국 지역내총생산(GRDP) 중 52.7%는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꼭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교육·문화·의료 인프라가 쏠려 있다거나, 비수도권에서는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거나 하는 얘기들은 이미 너무도 익숙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실제 개인들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다. 질문을 통해 하나하나 알아보자.


서울과 비수도권 본가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인터뷰이들은 모두 “서울에는 사람이 많다”라는 점을 꼽았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울로 찾아오기 때문일 테다. 이들이 느끼는 서울과 비수도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너울: 교통이 당연히 제일 달라요. 제주도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훨씬 좋아요. 지하철도 있고, 버스 배차간격도 압도적으로 차이 나죠. 제주도가 서울보다 면적은 넓은데 그거에 비해서 교통은 서울이 더 좋으니까, 이동할 수 있는 범위도, 면적 대비 이동할 수 있는 범위도 달라요. 제주도는 넓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좁게 움직여야 한다면, 서울은 지역 전체를 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요. 제주도였으면 대정으로 간다든지 성산으로 간다든지 하는 건 말도 안 되는데, 서울은 거리가 좀 돼도 갈 수 있죠. 교통이 되니까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어요. 움직이는 범위가 넓으니까. 이동하는 계획을 짜기에도 서울이 편해요. 버스고 지하철이고 다 배차간격이 몇 분 내외니까요. 반면 제주도는 예측불허한 변수들이 많아요. 카카오맵 찍어도 버스가 잘 안 나오고 이러죠.

부엉이: 서울은 지역마다 특색이 뚜렷해서, 같은 서울 지역이라도 하더라도 누릴 수 있는 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광주는 지역별로 느낌을 세부적으로 나누기 어려운데, 서울은 홍대 느낌 따로 신촌 느낌 따로 강남 느낌 따로니까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서울에 있다가 한 번씩 광주에 내려가면 생기가 안 느껴져요. 역동성이 없다고나 할까요.

연두 : 확실히 서울은 사람이 많은 만큼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 10%라고 가정해 보면, 제주도는 인구가 60만 명 정도 되니까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6만 명이지만 서울은 1,000만 명의 10%만 돼도 100만 명인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대중적인 것과 조금 거리가 있는 취향이더라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훨씬 더 잘 갖춰져 있는 것 같아요. 마니아들끼리의 교류가 좀 더 쉬운 것 같은 느낌?

대추: 내가 아무리 추레하게 입고 다녀도, 아무리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녀도 서울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 지방에 있을 때는 공원에 나가기만 해도 5분에 한 번씩 아는 사람을 만나요. 진짜로 울산에선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튀는 옷을 입을 수도 없고, 뭔가 새로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그럴 수가 없는 환경인 거예요.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내가 아무리 희한하게 다녀도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안 준다는 것그게 주는 어떤 해방감이 있지만동시에 외롭기도 해요.


가장 먼저 너울은 서울의 편리한 교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부엉이는 서울의 첫째 특징으로 지역별 차이가 확실하다는 점을, 둘째 특징으로 역동성이 크다는 점을 꼽았다. 연두는 서울에는 개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더 많이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추는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생겨나는 익명성이 양가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서울이 갖는 특수성은 단지 ‘사람 많음’으로 설명되지만은 않는다. 그중 자유와 대추가 가장 먼저 꼽았던 것은 높은 문화적 접근성이었다.


자유: 일단 부산에는 이렇게 많은 뮤지컬과 연극이 없어요. 서울에만 있답니다? 서울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측면에 있어서 훨씬 좋아요. 부산에는 공연장도 별로 없고, 공연이 많이 열리지도 않거든요. 대극장 뮤지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부산에서 공연을 열죠.

빈칸부산은 그래도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데그래도 서울과 차이가 크게 나나요?

자유: 차이가 크죠. 서울에는 대학로처럼 소극장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지만 부산에는 많이 없어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과가 유명해서 경성대 근처에 조금 있기는 하지만, 대학로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소극장 한두 개 정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소극장연극협의회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면, 부산에 위치한 8개 소극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감각되는 것은 한두 곳 정도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대추: 저는 서울에 오고 나서야 제가 박물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울산에 박물관이 하나 있긴 해요. 고래 박물관. (웃음) 그런데 미술관은 올해 처음 생겼어요(울산지역의 첫 공공미술관인 울산시립미술관은 2022년 1월 6일 개관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공간에 가볼 기회도 없었고, 그걸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해볼 수도 없었죠. 그런데 서울에 오니까 박물관과 미술관을 즐길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엄청나게 크고 넓은 공간이 근처에 있고가기만 하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는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자유와 대추는 모두 서울에 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한국도시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박물관 총 819곳 중 128곳은 서울에 있으며, 수도권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3분의 1(266곳)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미술관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국 262곳의 미술관 중 46곳은 서울에, 102곳은 수도권에 위치한다. 박물관/미술관뿐만 아니라 공연예술도 마찬가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한 『문예연감』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수도권 지역의 공연예술 공연 횟수는 전체의 67%를 차지했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었던 2020년에도 전체 공연의 66%는 수도권에서 열렸다.

이렇게 서울에 문화 콘텐츠들이 집중된 상황에서,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자유: 부산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덕질을 하려고 콘서트를 가려면 한 이틀은 빼놔야 했어요. 대절해둔 버스를 타려면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하고, 또 저녁에 콘서트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생각해야 했어요. 시간도 시간이고, 돈도 돈대로 많이 들죠. 지금은 저녁에 시간 남을 때 뮤지컬을 보러 다녀올 수 있지만, 그때는 완전히 마음을 먹고 가야 했죠.          


직업적 다양성에서도 서울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직업 분포가 비교적 균질한 비수도권과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에는 훨씬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연두 : 제주도 친구들이랑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해요. 제주에서 돈 벌어 먹고살려면 공무원이거나 농협은행 직원이거나 자영업자여야 한다고요. 그만큼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풀이 넓지 않은 거죠. 당장 제 주변만 둘러봐도 그래요.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시고, 부모님의 형제분들도 다 농협은행 직원이시거나 자영업을 하시거나 그렇죠. 편견대로 귤 농사를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어느 정도 제 예상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빈칸제주보다 확실히 서울이 가진 직업적 다양성이 크군요.

연두: 네. 확실히 서울에서 지내는 게 미래의 저에게 더 많은 선지를 열어주는 것 같아요. 더 많은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거죠.

대추: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서울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거였어요. 저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의 울산 사람들은 대체로 공무원을 꿈꾸거나, 공부를 잘하면 공기업을 꿈꿔요. 특히나 저 같은 경우는 울산에 살다 보니 친구들 부모님 대부분이 현대에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았고요. 이외의 진로는 거의 없었죠. 그런데 연세대학교는 에브리타임 같은 것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을 지향하잖아요. 사기업에 지원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사람, 대학원을 준비하는 사람, 디자이너나 댄서를 지망하는 사람들까지요.

빈칸울산에 있는 대학은 직업 지향이 더 좁은 편인가요?

대추: 제 친구는 경북대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 에브리타임에는 공기업과 7급 공무원에 대한 내용밖에 안 올라온다고 그러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저에게 행정고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면 보통 행정고시를 거쳐서 5급 공무원이 되는 걸 지향하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빈칸그러면 서울에 오고 나서 진로 선택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대추: 지금 저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가 대학원에 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대학원 진학에 반대하셨고요. 집에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어찌 됐건 서울에 오니까 확실히 학문에 종사하는 분이 많죠. 제가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너울: 직장 다니는 건 서울이 나은 것 같아요. 제주도는 은퇴하고 나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직장 생활하기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의사나 교사 같은 직업은 괜찮겠죠. 지방이든 서울이든 환자랑 학생은 똑같으니까. 그런 직업이라면 딱히 서울이 갖는 지리적 이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언론사 같은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언론사에 다닌다고 하면 기왕이면 큰 언론사로 가는 게 좋으니까요. 제주보다는 서울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취재하기도 좋을 거고요.     


서울이 갖는 여러 이점을 고려해봤을 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겠다고 결심하는 건 숨 쉬는 것처럼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에게 ‘서울로 대학 가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일이다.

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했나요?

대추: 최대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어요. 저는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수도권 대학에 와야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으로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엉이: 뭔가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다 서울로 가는 것 같아요. 꼭 서울에 오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 한 명 한 명이 서울에 모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더 높은 곳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너울 : 원서 쓴 대학이 다 서울에 있어서 서울에 왔어요. 육사(육군사관학교)도 생각했는데 육사도 서울에 있으니까. 가고 싶은 대학이 다 서울에 있으니까 서울 생활은 당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붙는다는 전제하에서.

특히 문과니까요. 이과면 의치한약수(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로 지방으로 많이 가는데, 문과 애들한테 물어보면 서울 말고는 답할 수 있는 게 진짜 없죠. 서울 말고 갈 수 있는 데가 한의대 문과 선발이랑 공사(공군사관학교), 해사(해군사관학교), 경찰대학밖에 없어요. 대부분의 문과 애들은 성적만 된다면 서울 생활을 다 염두에 둘 것 같아요.


대추와 부엉이, 너울은 모두 공통적으로 “좋은 대학=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인서울 대학’이라는 말이 잘 보여주듯 한국에서 소위 ‘상위권 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들의 대부분은 서울에 위치한다. 2023 QS 세계대학지수 기준 한국 상위 10개 대학(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UNIST, 경희대, GIST) 중 6개(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는 서울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특히 너울이 지적하듯, 대학의 서울 쏠림 현상은 문과에서 더 두드러진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 UNIST, GIST를 제하고 상위 10개 대학을 추리면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서강대가 추가되는데, 이 네 개 대학은 모두 서울에 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갖는 위계는 ‘인서울 대학’을 바라보는 서울 출신 학생과 비수도권 출신 학생의 시각차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편, 이런 서울의 장점을 이미 누리고 있었던 이들과 그렇지 않은 비수도권 학생들의 경우 ‘인서울 대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었다.


대추: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보는 인서울 대학과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이 보는 인서울 대학이 다르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으면 가고안 되면 지방에 있는 데를 가자는 느낌이었거든요그런데 서울 출신 친구들은 서울을 나가는 걸 일종의 탈락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전문대에 가더라도 서울에 있는 데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신기했어요. 우리는 전문대에 갈 거면 괜찮은 지방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수도권 거주자가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반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들에게, 비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에 가는 것은 ‘밀려남’으로 이해된다.

대추의 인터뷰 내용을 곱씹으면서, ‘지잡대’라는 표현이 멸시적일 뿐만 아니라 서울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비용적 편리성은 대학 진학에 있어 고려하게 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니 서울 사람의 입장에서 지방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이 서울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방에 위치한 대학(카이스트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에 진학한다는 것은 1) ‘서열이 높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의미와 더불어, 2) 서울에 비해 열악한 인프라를 갖춘 지역으로 3) 이주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은 ‘잡스러운’ 일이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경하다’라는 표현이 오로지 지리적인 설명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비수도권 학생들이 경험한 서울은–많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더 나은, ‘상위의’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서울이라는 도시는 강력한 인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part 2. 서울로 오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모두가 서울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지출하는 비용들을 압도할 만한 편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만 서울로 올 수 있었다(앞서 언급한 ‘합리적 선택’과도 연결되는 맥락이다). 만약 합격한 대학의 서열이 ‘충분히’ 높지 않다면 서울행은 쉽게 좌절될 수 있었다. 자유와 연두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해보자.


자유: 제가 수시로 원서를 쓴 대학 중에 가장 낮은 대학이 경희대였어요. 대학에 붙고 나서, 엄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희대에 붙었으면 서울 안 보냈을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농담으로 듣고 싶지만 제가 봤을 땐 진담 같아요. 집에서 ‘좋은 대학에 가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긴 했는데, 어쨌건 상경을 하는 데 돈이 많이 드니까요.

연두: 사실 제 동생은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에도 붙긴 했는데, 지금 제주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서울에 가면 여러모로 돈이 많이 드니까 그걸 생각했을 때 제주대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거죠. 확실히 비수도권에 본가를 두고 있으면 기회비용을 따져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다 서울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연세대학교의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은 ‘연세대학교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다음에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서울에서 지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비용을 요구하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걸까?


서울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지출하고 있는 비용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자유: 일단 저는 아빠가 월세를 내주고 계세요. 월세는 관리비를 포함해서 60만 원 정도고, 용돈은 70만 원씩 받고 있어요. 제가 독립을 시작했을 때는 아빠가 무직이었기 때문에, 가족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컸을 거예요. 그때 우리 가족 월 소득이 엄마가 버는 월 180만 원이었는데, 그중에 130만 원이 저에게 들어가는 거니까요.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는 셰어하우스 월세가 또 다르긴 했지만요.

지금도 아빠가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계신 건 아니어서 부모님께는 부담이 클 거예요. 그렇지만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용돈으로 받는 월 70만 원만으로는 절대 못 살죠. 하물며 쓰레기를 버리려고 해도 쓰레기봉투를 사야 하고, 샤워만 해도 수도세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한때는 생수 값이라도 아껴보자 해서 물도 끓여 마셨었거든요. 그렇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죠. 확실히 돈이 진짜 많이 드는 것 같아요진짜 많이.

연두 : 작년에 처음 기숙사에 들어갔었는데, 한 달 반 정도 서울에서 지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제주도에 다시 내려왔던 적이 있어요. 집 현관문을 여니까 집이 대궐같이 보이는 거예요. 기숙사는 방 하나 정도 되는 공간에 두 명분의 침대와 책상, 화장실, 현관까지 있으니까요. ‘우와, 마루가 있어!’ ‘우와, 화장실이 두 개나 있어!’ ‘우와, 두 팔을 양쪽으로 뻗고 스트레칭할 공간이 있어!’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저는 이번 추석에 본가에 가질 못했어요. 명절 기간 비행기 티켓값이 정말 비쌌거든요. 왕복 20만 원을 내고 고작 3박 4일 동안만 본가에 있다 오기에는 부담이 컸죠. 작년 2학기에는 전면 비대면이라 아예 미리 내려갔다가 늦게 올라와서 큰 상관이 없었거든요. 이번 학기는 대면으로 바뀌기도 했고 또 수강 신청을 하다 보니 공강이 사라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돈으로 삶의 질을 사게 되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서울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비싼 주거비와 생활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본가에서보다 좀 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 서울은 비좁은 공간과 부담스러운 교통비, 더 열악한 생활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서울에서 살기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너울: 지하철이 너무 힘들어요. 지하철 타는 게 너무 싫어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인적인 교류는 없잖아요. 지하철은 그냥 수단이니까. 지하철이 분명 공간은 맞는데 그냥 물리적인 공간이 끝이라고 해야 하나. 기형적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 공간은 사람들 간의 교류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건데, 지하철은 공간은 엄청 좁은데 사람들은 붙어있고, 교류나 소통은 안 하잖아요. 그래서 불편하죠. 서 있는 것도 너무 짜증 나고. 지하철 때문에 삶의 질이 확 떨어져요.

대추: 학교가 2학기부터 대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길래, 제 친구 중 한 명은 급하게 학교 근처로 집을 구해서 왔거든요. 그 친구 집에 가봤는데 환경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한 명이 자는 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두 명이 자려면 의자를 거의 공중에 띄워놓다시피 해야 했어요. 집 안에 복도가 거의 없었거든요.

화장실에도 볕이 안 들고, 문도 잘 안 열리고. 창문을 열면 매연이 들어오니까 창문을 못 열고. 그러니까 화장실이랑 옷에 곰팡이가 많이 슬었더라고요. 에어컨을 켜면 관리비가 많이 나온다고 에어컨도 안 켜니까 너무 덥고 습했어요. 그걸 보니 삶의 질이 정말 낮은 거예요너무 두려웠어요.     


이들이 서울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돈 문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여러 가지 요소들은 개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너울이 느끼기에, 사람이 붐비다 못해 넘쳐나는 지하철은 기형적인 공간이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편리할 수는 있어도 편안할 수는 없었다. 대추는 친구 집에서 묵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서울에서의 낮은 삶의 질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서적인 소모의 측면도 굵직하다.


비수도권에 본가를 두고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서적인 소모가 있나요?

대추: 코로나에 걸렸을 때, 혼자 살 때 아프면 서럽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집에 있었으면 엄마가 챙겨줬을 텐데 서울에서는 그러지 못하잖아요. 혼이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는데, 허겁지겁 KTX를 타고 본가로 내려갈 때의 그 느낌.

또 제가 송도에서 지낼 때 외삼촌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때 하필 송도 기숙사 내에서 코로나가 터졌었죠. 당시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기숙사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요. 갑자기 돌아가셨던 거였다 보니 외삼촌의 장례식은 3일보다도 짧았어요. 그때 울산에서 하는 장례식에 가지도 못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과 떨어져서 서울에 살면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 바로 대처할 수 없잖아요. 울산에 있는 친구들을 못 봐서 슬프고 이런 건 괜찮은데,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없다는 게 주는 무력감과 불안감이 있어요. 이번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을 때도, 저희 부모님은 제가 북적이는 장소에 가지 않는 성격인 걸 알면서도 화들짝 놀라서 연락하고 그러셨어요. 그런 불안도 심리적 비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연두 : 어느 한 공간에도 완전하게 속해 있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그중에서도 속도감의 차이를 좀 느끼는 편이에요. 방학에 제주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제주에 있으면 불안하고서울에 있으면 조급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게 돼요. 서울에서는 많은 사람이 많은 일을 하면서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제주에 쉬러 와도 쉬는 게 아닌 느낌이 들죠. 반대로 서울에 있으면 제주에 있을 때보다 바쁘게 살아야 해요. 학교 공부도 해야 하고, 여러 활동도 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주에서 지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급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연세대학교가 제주 캠퍼스를 내 주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어요. 집과 학교를 동시에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본인이 직접 와서 생활하고 있고, 또 학교가 있는 서울. 가족들이 있는 본가. 이 두 개의 공간 사이에서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싹텄다. 대추는 위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연두는 제주와 서울이라는 두 공간 사이의 속도 차이를 체감했다.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은 이런 금전적·정서적 소모 이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스트레스를 느꼈다. 모든 것이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안에서, 이들의 존재는 흐릿해지기 일쑤였다.

     

학교에 다니면서비수도권에 본가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나요?

자유: 제가 1학년이었던 2020년에 정말 짜증이 많이 났었죠. 개강이 2주 미뤄지고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는 게 2주 미뤄지고 이랬으니까요. 집이 1~2주 만에 구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집을 구하려면 기차표도 예매해야 하고, 부동산과도 약속을 잡아야 하고 집주인과도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그런 지점들에 대한 고민 없이 몇 주 전에 공지를 띡띡 내주면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는 황당하죠.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으니까 이해는 하지만요.

부엉이: 2020년 1학기에 기숙사 신청이 안 돼서 이모 댁에 살았어요. 원래는 기숙사 2차 신청을 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니까 2차 입사를 안 받겠다는 거예요. 서울 올라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연두 : 코로나 상황 변동이 심했던 탓이지만, 동아리나 학회대외활동 같은 것들이 대면/비대면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어요. 저는 신청할 엄두조차 못 냈죠. 합격했는데 대면 활동으로 전환되면 오로지 그 활동 하나만을 위해 수도권에 집을 구할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1학년 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이전에 비해 대면 활동이 적다”라는 말만 믿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면으로 만나겠거니 하고 동아리에 지원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왕복 비행기 티켓값은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나중에 면접 일자와 관련한 메일을 받아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대면 활동이 있더라고요. 지원을 포기한다는 메일을 쓰면서 씁쓸했죠. 이런 거라면 처음 홍보할 때부터 알려주지하고 생각했어요.     


그러잖아도 불안정한 코로나 상황에서,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은 더 큰 불안정을 경험해야만 했다. 개강이 2주씩 미뤄지거나, 기숙사 입사가 취소되거나, 활동이 대면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똑같았지만, 비수도권 학생들에게는 특히나 더 큰 혼란으로 다가왔다.

<2022학년도 연세대 수시모집 및 정시모집 선발결과>에 따르면, 2022년 등록한 신입생은 62.2%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 출신이다. 출신 고교의 소재지와 본가의 위치는 다를 수 있겠으나, 이 수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서울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내에 비수도권 출신 학생들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 맞는 팬데믹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만큼은 명확하다. 한편, 이들이 경험한 ‘배려 부족’은 학교생활을 넘어 일상적인 순간들에서도 나타났다.      


연두: 저한테 다짜고짜 제주도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처음 만난 사이에 그렇게 추천을 요구하는데, 여행을 갈 계획이 있냐고 되물으면 아니라고 답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이 질문을 할 때는 저한테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잖아요. 네이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찐 현지인 맛집’을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 그렇지만 제주도도 다 똑같은 제주도가 아니니까 제가 사는 지역과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지역은 다르단 말이에요. 악의가 있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쁘죠.

또 단골로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저 수학여행 제주도로 갔었어요!”라는 말이에요. 친근감의 표시라는 걸 저도 아니까 ‘‘오, 어디 가셨어요?”하고 맞장구를 치기는 하죠. 그렇지만 제가 서울이 고향이라는 사람들에게 우와 정말요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 갔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건 맥락이 이상하잖아요. 이럴 때 서울 중심의 사고를 느끼죠.

대추: 술자리에서 2호선 게임 같은 걸 할 때요. ‘내가 여기서 정말 타인이구나이 아이들은 내가 그걸 모를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구나.’라고 많이 느꼈어요. 솔직히 제가 길치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아직도 아는 게 이대, 신촌, 홍대, 합정밖에 없어요.

또 사투리에 대해 엄청나게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제가 사투리를 쓰는 것에 대해 크게 감정이 없는데, 그냥 “너 지방에서 왔구나. 사투리 고쳐야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자유: ‘블루베리 스무디’,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같은 말들은 부산 억양과 서울 억양이 많이 다르잖아요. 블루베리 스무디는 아직도 제가 제일 어려워하는 말이에요. 또 한 가지 오해를 정정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산에서는 애교 섞어서 오빠야라고 말하지 않아요. 물론 제 주변에는 그걸 해보라고 시키는 ‘오빠’들이 없어서 괜찮은데, 제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빠야”를 해보라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응답하라 1997>이 잘못했고, 정은지가 잘못했죠. (웃음) 물론 사촌 오빠를 부를 때 ‘오빠야’라고 부르긴 해요. 언니들을 ‘언니야’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사람 이름을 부를 때 ‘누구야’ 하듯이요.     


여기까지 살펴보면, 한국에서 서울은 더 좋은 공간일 뿐만 아니라 ‘표준적 공간’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서울이 표준적인 공간으로 상정되기 때문에, 제주 안에서의 차이는 사라지고 제주는 덩어리째 관광지가 된다. 그래서 서울이 아닌 제주도로 간 수학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된다. 모두가 서울의 공간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암묵적 합의는 2호선 게임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서울 말투가 곧 표준어가 되기 때문에, 사투리는 틀린 것이 아님에도 ‘고쳐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서울이 곧 표준’이라는 명제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아니, 애초에 근거가 있기나 한 걸까? 부엉이의 말을 실마리로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사유해보자.


부엉이: 서울엔 서울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저처럼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들도 있고, 더 먼 지역에서, 혹은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어요. 사투리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20살에 송도에 왔을 때,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서 사투리가 융합되는 모습을 많이 봤었거든요. 제가 경상도 사투리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경상도 사람들도 서울 사람 영향으로 짬뽕되는 경우도 있고. 원래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우리들의 영향을 받아서 사투리 쓰는 경우도 많고요.


“서울에는 서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라는 부엉이의 말은 너무도 자명하지만 새롭게 들린다. 서울에 사는 서울 사람 아닌 이들이 자주 지워지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부엉이가 이야기한 이 자명한 명제를 되새겨보면, 서울이라는 공간이 자연히 표준성을 획득할 이유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자유와 너울은 사투리를 ‘고쳤던’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유: 저는 사투리를 빨리 고쳤어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서비스업 알바를 시작했거든요. 부산 말투로 주문받거나 손님을 응대하면 상당히 불친절해 보인단 말이에요. 제가 부산에 내려갔을 때 확실히 느꼈어요. 주문받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왜 이렇게 불친절하게 말하지?’ 하고 생각했는데 부산 사투리인 거예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 여기는 부산이니까 저게 맞는 거구나’ 싶었어요.

음… 저는 부산 사투리를 고친다고 해야 하나서울 말투를 쓴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저는 이 말투를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던 건 맞아요. 저는 말을 되게 툭툭 하는 편인데, 이걸 사투리로 하면 정말 싸가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좀 더 친절하게 말을 하려고 하면 사투리를 안 쓰게 되는 거죠.

너울: 제주어는 종결 어미가 좀 아기 같아요. 억양도 그렇고요. 표준어로는 “~했잖아”인데 제주어로는 “했네”. “~했어?”가 아니라 “~핸?”. “그래?”가 아니라 “기?” 이렇게 말하니까요.

지금 룸메이트 중 한 명은 고등학교 친구예요. 걔랑 같이 방에 있을 때는 사투리를 더 쓰고, 밖에 나오면 사투리를 안 쓰니까 괴리가 커져요. 다른 룸메이트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사람은 서울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랑 말할 때 가끔 나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와버리는데 그러면 바로 또 수정해서 다시 말하죠.


자유와 너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비수도권 출신인 이들 역시 ‘서울의 표준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이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체화해 왔던 언어의 이질성을 마주하고, 무의식중에 사투리를 ‘고쳐야 할 것’, ‘수정해서 말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비수도권이라는 비표준의 공간에서 서울이라는 표준적 공간으로 이주해온 이들이야말로 비수도권과 서울 간의 차이를 가장 잘 감각하고 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part 3. 남느냐 돌아가느냐

마지막 질문으로, 졸업 이후에도 서울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서울에 남고 싶은가요아니면 본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요본가가 아닌 다른 비수도권에 거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부엉이: 무조건 서울에서 지내고 싶어요. 만약 본가에 취직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서울에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지하철에 사람들이 붐비는 걸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사는 모습에 홀린 것 같아요. 서울은 사람들이 다들 바쁘니까 자극을 많이 받거든요그런데 광주에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대학을 광주에서 다녀봤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자유: 취직을 서울에서 하고 말고를 떠나서저는 본가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자정에 집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웃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까 계속 서울에 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은 있어요. 만약 본가가 아닌 비수도권에 취직이 되고 터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지만, 사는 지역을 옮기는 건 큰 결정이니까 서울에 계속 살지 않을까 싶어요

대추: 제가 만약 충청도에 살았더라면 본가에서 사는 걸 선택했을 것 같아요. 출퇴근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제 본가는 울산이니까. 솔직히 저는 수도권에 안 살고 싶거든요물가도 너무 비싸고사람도 너무 많고다들 너무 바쁘고 힘들어요그런데 현실적으로 제가 계속 공부하려면 서울에 있어야 하죠. 모든 인프라가 여기에 쏠려 있는데, 이게 바뀌려나 모르겠어요. 제가 마흔 살이 됐을 때도 안 바뀔 것 같아요. 저는 서울이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요. 저는 문화생활을 포기하더라도 한산한 게 좋아요. 그래서 정말 서울에 살고 싶지 않지만, 서울에 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연두: 제가 공무원이나 공기업 쪽으로 가게 된다면 비수도권에 살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주도 아니고 서울도 아닌 다른 지역에 정착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지역을 옮긴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젠 너무 잘 아니까요. 은퇴하고 나면 제주도에서 여생을 정리하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너울: 하고 싶은 일만 한다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친숙한 지방, 그러니까 제주도가 아니면 차라리 서울이 나은 것 같아요. 아니다, 제주도는 직장 은퇴하고 나서 살래요직장 생활하기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모든 인터뷰이에게서 서울에 남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이 좋지만 싫을 때도 있다는 이들에게 서울은 ‘무조건 지내고 싶은 공간’이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있어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들은 아마 별일이 없다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서울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을 테다.

처음 글을 열면서, 우리 주위에서 비수도권 출신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때는 이들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을까? 손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글이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본다.



epilogue.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글이라 기획 단계부터 마감까지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지만 인터뷰이들의 말을 하나의 글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이미지였다(서울 중심주의가 강화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별이 되진 않겠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강한 인력을 발휘하기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울로 빨려 들어간다. 사람이 몰릴수록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인력은 더 강해진다. 이 지점에서 “한번 수도권 집중이 시작되면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하던 전문가들의 말이 떠올랐다. 또 별이 생성되는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중력은 강해지고, 회전 속도도 빨라진다. 제주 출신의 연두가 서울과 본가 간의 속도 차이를 느낀다고 이야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또 내용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글을 기획하던 때만 하더라도 ‘서울이 당연히 더 좋은 공간이지!’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선 소위 ‘천만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한 달씩 상영하고, 온갖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카페들이 빠지지 않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인터뷰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꼭 서울이 좋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 역시 본가보다 서울에서 좀 더 낮은 삶의 질을 체감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글을 모두 마무리하고 나니, 수도권 중심주의의 핵심은 서울이 표준으로 책정되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서울에서 나고 자란 몇몇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해볼 수 있었다. 중심에서는 중심을 바라볼 수 없다. 그러니 그들 스스로가 중심에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서울이 표준인 한국 사회에서, 표준 속에서만 살아온 이들이 비표준을 이상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도 납득이 됐다.

한편 비수도권 출신인 이들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원이 필요하다는 사실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더 낮은 삶의 질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서울은 그걸 감수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 공간이니까.

글에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두 가지다. 첫째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다섯 명을 인터뷰한 것으로 정책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긴 역부족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터뷰이들이 제기한 여러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멋들어진 해결책을 내놓고 싶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도대체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 내려놓았다.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읍·면·리’ 단위에 거주했던 인터뷰이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글에 등장한 인터뷰이들의 출신 지역이었던 부산, 울산, 광주, 제주는 제주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광역시고, 제주도 어디까지나 ‘시’다. 게다가 각 지역은 모두 이름이 꽤 유명하고, 지역적인 특색도 뚜렷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비수도권 내에 존재하는 차이는 잘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이 글에서는 서울과 비수도권 간의 위계에 집중했지만,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지역들이 있는 만큼 그 지역 간의 차이도 상당할 것이다. 한계가 분명한 글이지만, 그래도 서울 중심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 한 사람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그것만으로 뿌듯할 것 같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 2020』, 201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 20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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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한국도시통계」, 2022년 7월 22일. (2022년 11월 24일 - 접속날짜)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23: Top Global Universities” <QS top universities>. 2022.06.08. (2022.11.24. - 접속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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