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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an 26. 2023

<133호> 교환학생을 못 간 '루저'가 쓴 글

수습편집위원 야자수



며칠 전에 지역도서관으로부터 홍보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대치동 키즈로 불리며 카이스트를 과수석으로 졸업한, 좋은 대학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작가가 자신의 꿈을 위해 전 세계 80여개국을 여행하며 진정한 삶의 행복을 찾게 된 보석같은 이야기를 들으러 오세요. 일시...장소...신청방법...


여러 이유로 교환학생을 못 가 마음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치동키즈니까 전세계 여행할 수 있었겠지.’ 물론 이 생각을 할 당시 ‘대치동키즈’를 하나의 균일한 집단으로만 바라봤고, 그들을 향한 혐오도 약간 섞여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 작가의 여행 서사를 일절 차단하고, 그냥 내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해석해버린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돌아보니 엄청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외국으로 오랫동안 혼자 떠날 수 있는 과감한 용기는 한국에 내가 부양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 돈을 벌어 오롯이 해외로 떠날 초기자본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교환학생은 여러 문제으로 오염된 ‘헬조선’을 떠나, 낯선 타지로 가서 ‘진정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로 쓰이기도 했다. 기존의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연 외국을 나가야만 ‘진정한 삶’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본 글은 내가 왜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어떤 사회적 맥락 위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는지 찬찬히 되짚어가며 연세대학생들의 교환학생에 대해 써보려 한다.


만들어진 욕망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교환학생.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들은 “대학 가면~”이라는 조건부를 숱하게 들어왔을 거다. 대학에서만 즐길 수 있는 대학축제, 연애, 캠퍼스 라이프 그리고 교환학생. 교환학생을 가면 낯선 환경에서 공부도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고, 외국인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는 대학 버킷 리스트에 들어가곤 한다.

이런 요구로부터 나 또한 자유롭지 않았다. 중학생 때부터, 사주를 즐겨하던 엄마에게 “너는 역마살이 많아서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게 될 거야. 대학생 때 교환학생을 가든지, 외국을 돌아다니는 직업을 갖든지” 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나는 진짜 내 기질이 그런줄 알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떠나, 나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며 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해외’와 관련된 활동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학교에 와서는 해외로의 교환학생을 도전했으나 여러 장벽을 만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글은 해외 교환학생의 실패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토플을 해내지 못한 나에게 많은 질책을 했다. 하지만 이는 곧 ‘내가 왜 교환학생을 가려 했더라?’라는 질문으로 넘어갔다.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항상 구체적인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여태껏 나에게 교환학생은 대학생활의 로망이었을뿐 구체적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은 뜬구름이었다. “너는 역마살이 많아“라는 엄마의 말은 교환학생에 대한 욕망을 만들게 한 마법의 주문이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은 내재해 있다기보다는 구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보다는 아이폰을 사고 싶은 마음부터 연세대에 들어와 아카라카에서 열렬히 떼창하고 싶다는 마음, 자기 명의의 집이 있길 바라는 마음까지. 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당연한 것인가? 우리가 가진 욕망은 아무런 사회적인 맥락 없이 순수한 것이 아니다. 욕망은 시간과 장소라는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엮인 그물망 그 위에서 생겨난다. 교환학생이라는 ‘낭만’이 구성되었다는 전제를 이해한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전세계에 있는 국가끼리 인적,물적교류가 활발해지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현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인한 위계화된 국가 질서와 계층화된 교환학생 경험이라는 구조적 맥락 위에서 교환학생을 접근해보자. 2000년도 수도권 중산층에서 태어난 나는 해외로 나가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듣고 자라왔다. 대한민국이라는 장소와 2000년도라는 시간은 어떤 욕망을 구성하는 조건이었을까.


그들이 꿈꾸던 ‘교환학생’은

모두들 마음속에 있는 교환학생은 공통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그 욕망이 가진 표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해야 교환학생을 둘러싼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이폰이 더 ‘세련’되고 ‘힙’한 이미지를 가진다고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기에 젊은 세대에서 아이폰 사용률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교환학생이 가지는 표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표상이 만들어지게 된 시공간적 배경의 의미를 알아보자.


질문:안녕하세요. 자기소개랑 지금 교환학생 준비에 있어서 어떤 상태인지 말씀해주세요.
궁물: 인문대학 소속 20학번입니다. 지난 여름 방학에 토플 학원에 다니며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아서 포기한 상태입니다. 교환학생 과정 자체에 깨지는 돈도 물론이고, 학기 다니는 동안 소홀했던 학업에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려야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그동안 꿈꿔왔던 걸 한순간에 놓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지만 지금 저로선 가지 않을 것 같아요.
오미자: 사회과학대학 소속 20학번입니다. 2021년 하반기에 휴학하고, 집에서 인터넷 강의로 0원 프리패스, 즉 일정 점수를 넘으면 세금을 제하고 환급해주는 수강권을 등록했지만 결국은 토플 시험도 안 보고 흐지부지 끝났어요. 시험 응시료가 그때 당시로 24만원이나 했는데, 80점을 넘길 자신이 없어서 시험을 아예 안 봤던 것 같아요. 뭐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서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아마 시험 쳤으면 돈 낭비였을 거예요. 지금은 아예 갈 생각 없어요.


질문:고등학생 때 꿈꿨던 교환학생은 어떤 이미지였나요?
궁물: 교환학생 설명을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때 들은 말이 정확히 “돈은 한국 학교 등록금을 내고 공부는 외국에서 할 수 있다.”였어요. 이렇게 들으면 거기서 생활하는 돈만 있으면 만사 편할 것 같잖아요. 그래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단순했던.... 그걸 계기로 교환학생 후기를 올려놓은 여러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어요. 돈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지만, 인생에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미자: 대학생이라면 꼭 한번 해봐야 할 것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어서 (하하) 물론 연세대학생들도 자기 학교에서 모범생인 학생들이 많아서 공감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서 연대 붙고 선생님들이 저한테 대학 가서 여러 경험하라고, 특히 영어 선생님께서 시카고에서의 1년 교환학생 썰을 엄청 푸시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미국에서 접한 책들, 경험들이 자기한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얘기도 해주시고, 수업시간에도 좋은 영화나 그런 거를 많이 소개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우와, 도대체 미국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길래 저렇게 단단한 사람이 됐을까’ 하는 동경도 있었어요.


질문: 그럼 이제 대학교 와서 교환학생을 가려고 딱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궁물: 여러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데, 그들이 여행한 장소나 전공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어요. 신경 쓸 게 많아서 힘들 수는 있겠지만, 그 힘듦을 다 감수할 만큼 정말 값진 경험이고 남들에게 추천한다고. 모든 사람이 추천하는 덴 이유가 있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었죠. 또 여행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외국에 나가서 자신의 영역을 넓힌다는 일 자체가 멋진 일인 것 같아서 진지하게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 유튜버 영상을 보고 결심했어요. 꼭 가야겠다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스페인이란 나라를 진심으로 즐기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오미자: 그냥 2학년이 끝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3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했어요. 그 당시에 특별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요. 근데 그때쯤 제 동기들도 대거 휴학하고 토플 시험을 준비하던데요? 대학교 와서 무언가를 해야 할 적당한 시기들이 암묵적으로 있잖아요. 네... 그냥 때가 돼서 교환학생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 주변 친구들도 거의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고, 거기서 전공 관련한 다양한 수업을 듣는 것 같더라고요. 연세대에서는 안 열리는 수업들 같은 거 있잖아요. 그래서 속으로 엄청 기대했어요. 가서 뭐 듣지 하고… 뭔가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었어요.


이들이 꿈꾸던 교환학생의 표상은 한국과는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현지인 친구와 여유로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며, 짧은 방학에는 근교로 여행을 가는 모습이다. 그들은 교환학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배움’을 얻으려 한다.


이런 풍경외에도, 우리가 상상한 교환학생에는 일정한 양식이 있다. 해당 이미지 속에서는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스페인과 미국을 언급한 그들이 꿈꾸던 교환학생은 백인 중심 혹은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는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유럽과 서양권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위계를 반영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연세대학교 국제처 홈페이지에 매년 올라오는 교환학교 목록을 보면 총 32개국, 199개의 대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중 북미와 오세아니아 영어권은 36%(4개국), 유럽권은 38%(16개국), 아시아권은 20%(5개국), 기타는 6%(8개국)이다. 4개국의 북미지역과 오세아니아 지역에 교환대상 학교가 몰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대학교는 어떨까.




<표1> 국내대학 교환학교 문화권별 비율. *2022 봄학기 기준. **총 파견대학수(국가수)


국제적으로 위계화된 국가 및 대학 질서를 반영해보면, 우리 대학교는 ‘더 좋은’ 외국 대학교들과 협약이 맺어져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정말 ‘글로벌’한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타 대학교의 교환학교 목록과 비교해볼 때, 연세대학교는 비교적 적은 아시아 대학의 비율과 국가의 수를 보인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아시아 국가에서의 경험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촌 캠 내에서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북미/오세아니아의 대학, 그중에서도 미국의 44개 학교와 협약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세계를 뜻하는 ‘글로벌’이라는 말을 미국 지향으로 바꿔도 될 정도로, ‘글로벌’이라는 단어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자칭타칭 글로벌랭킹이 높은 연세대학교는 학생들이 생활할 ‘글로벌’의 공간을 어찌보면 제한해 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교환학생의 목표가 견문 넓히기라면, 다른 나라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위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정착비용이 비싸다는 점에서 그걸 감당할만한 학생들만이 그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우리가 그려오던 교환학생과 학교 파견국가의 경향성이 모두 서양의 국가들, 특히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여파로 설명할 수 있다. 대학생들은 각자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글로벌 문화자본을 추구하며 국가를 넘나들며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등교육 학문의 지식형성은 애초에 위계화된 장소 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김종영(2008)에 따르면, 2006년 기준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 통계에서 한국인 유학생 수(59,022)는 인도(76,503),중국(62,582)에 이어 다음 순위였다. 하지만 이는 각 국가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수치다. 인구수를 고려해  상대적인 수치로 바꿔보면, 인구 만 명당 한국 12.29명, 인도 0.65명, 중국 0.48명이다. 2006년대에는 한국의 선호도가 한방향으로, 특히 미국을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때의 시절을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의 부모와 교수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가정에서는 그 시대의 영향을 받은 부모 밑에서 자랐고, 대학교에서는 주로 미국에서 지식 담론을 형성해온 교수들에게 수업을 받고 있다. 부모와 교수는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입김이 센 어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사진1>1997~2019년도 한국-미국 대학생 이동.출처 미국 국무부 산하 공식 유학상담센터



비교적 최근은 어떨까. 미국 대학 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중국(372,532), 인도(193,124), 한국 (49,809) 순으로 미국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의 1, 2, 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15년 전과 변함없는 중국, 인도, 한국의 미국 선호도를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공식 유학상담센터에서 공개한 자료인 <사진1>에 따르면, 미국내의 한국인 유학생 수(파란색), 한국 내의 미국인 유학생 수(빨간색)를 나타내준다. 2009년을 기점으로 완만한 하강곡선을 타고 내려오고 있음에도,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의 비율은 여전히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위 통계를 보면 ‘교환’의 의미보다는 한쪽으로만 향하는 유출에 가까움을 볼 수 있다.

모든 나라가 미국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중국, 인도, 한국이 특히 미국을 선호하듯, 아프리카 학생들은 미국보다는 프랑스로, 남아메리카는 주로 미국이나 스페인으로 유학 가는 것을 선호함을 김종호의 2008년도 논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과거에 식민-피식민 관계를 가진 국가의 위계관계가 역사적,언어적인 이유로 유지되고 있음을 뜻한다. 학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서구중심의 식민지성이라고 비판한다. 식민지성이란 명시적으로 식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맥락에서는 문화적,경제적 흐름이 한 국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국에 기초학문과 연구중심의 대학이 많아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가는 거 아니야?’ 이 질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샹바오의 저서 <주변의 상실>에 따르면, 미국에 기초학문과 연구중심의 대학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 인과관계는 불명확하다. 미국의 많은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을 더 많이 유치하며 학교재정비를 보충해 연구재단에 투자한다. 그럼 자연스레 연구중심의 대학이 되기 더 쉬운 환경이 조성된다.

우리가 꿈꾸던 교환학생은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국제화 현상은 고등교육 간의 이동성을 활발하게 만들었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세계 안에서도 분업화된 교육지역을 만들었다. 기초교육이 주로 어느 나라에 집중적으로 몰리며 국가질서의 위계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특정 국가를 향해 교환학생의 낭만을 그려왔다. 그토록 꿈꿔왔던 교환학생은 대한민국이라는 장소와 국제화가 가속화되는 시간대에서 만들어진 욕망이다.


우리는 여기를 떠나고자 한다.

위에서는 어떤 시공간적 배경이 교환학생이라는 욕망을 구성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학생들 개개인이 가지는 욕망은 구조적인 관점인 시공간적 배경으로만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 입장에서는 교환학생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했는지 알아봄으로써 ‘교환학생’에 대한 퍼즐조각을 맞춰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고등교육의 무대가 국외로까지 넓어지면서, 대학생들은 교환학생이 주는 이점들을 누려왔다. 하지만 예전에 교환학생이 가졌던 이점이 지금까지 똑같지는 않기에, 교환학생을 둘러싼 담론이 두 가지 관점을 기준으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알아보자. 교환학생을 원했던 학생들은 자신이 어디에 해당하는 것 같은지 따져보면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취업스펙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해외교환학생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2000년도 초반에는 해외 교환학생을 다녀온 사람은 바로 기업에서 모셔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경향을 보면 실제로 교환학생이 취업 스펙으로서 중요한 요소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기업 인사팀과 대학교 교수들은 ‘해외경험은 업무와 연관되지 않은 이상 큰 평가항목이 아니다. 되레 즉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해외교환학생이 취업할 때 그렇게 큰 요소는 아니라고는 하고 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찝찝한 느낌을 없앨 수 없다.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가야 했고, 그래야 더 풍부하고 특색있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한다.

실무가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금방 포기하겠지마는, 만약 실무와 연관된다면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더 절박해진다. 무역기업이라 가정해보자. 외국 현지와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창한 영어와 그 나라에 대한 이해도를 주된 평가 척도로 삼는다. 인문계열과 이공계열의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취업계열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인문계열 학생들이 더 절박해진다. 교환학생을 향한 갈망을 모든 대학생이 균일하게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직 교환학생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환학생이 주된 평가항목이 아니라는 담당자의 말을 온전히 따를 수 없다.

‘해외 교환학생의 경험이 스펙으로서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라는 명제는 불분명해짐이 확실해 졌다. <사진1> 을 보아, 2010년을 기점으로 미국 유학의 인기는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교환학생의 경험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자 한다. 교환학생이 별로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 사회에서 이미 권력을 갖고 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 교수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직 권위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한 학생들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없다. 학생 입장에서는 교환학생이 스펙이 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기업 입장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교환학생 그렇게 필요 없어! 한국에서도 열심히 영어실력 늘리고 오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찝찝한 느낌이 계속 든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탈조선과 힐링으로서 바라볼 수 있다. 꼭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교환학생을 가기보다는 좀 더 낭만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다.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를 보면 ‘대학생의 특권이기 때문에’ 혹은 ‘공부를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종종 나온다. 구체적인 예시를 하나 들고오기 위해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즈음인 8월에 매거진 한경에서 나온 인터넷 기사를 하나 들고 오려고 한다. 해당 인터뷰는 K대 경제학과 4학년이 보스턴 메사추세츠 주립대로 교환학생 다녀온 경험담이다.


교환학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생들에게 교환학생을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덕분에 소위 ‘힘들 때마다 교환학생을 갔을 때 경험으로 버틴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혼자 생활하면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돼 오히려 한국에서 불안했던 마음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학기 중에도 여유롭고 다양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교환학생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교환학생을 가서 한국과의 문화차이를 느낀 점이 있나요?

“한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대형 강의를 수강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메사추세츠 대학은 수강인원이 20명 정도로 제한된 소규모 강의가 대부분이었다. 본교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피아노 수업을 들었는데, (...) 개인별로 지도해주고 각자의 실력에 맞게끔 과제 곡을 배정(...)다른 수업에서는 교수님께서 함께 에세이 주제를 고민하며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 주기도 했고, (...) 손을 들거나 의견을 내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걸 실감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강의가 진행되고 수업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이전까지 묵묵히 수업만 듣던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본 인터뷰에서는 해외 교환학생의 경험이 스펙보다는 힐링 혹은 자아찾기의 시간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끝없는 경쟁체제에 힘들었던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자아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대학교 수업과 미국 대학교 수업이 대조되는 묘사에 주목해볼 만하다. 한국에서의 대학교육은 대형강의에다가 학생들은 조용히 수업만 듣고 학생과 교수 사이에는 활발한 소통이 없다. 반면, 미국 대학교는 소규모 강의에, 학생과 교수 사이에 ‘양방향 소통’이 이뤄지고 수업 분위기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이라면 본디 이래야지’의 모습은 후자에 더 가깝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만 담론 형성이 계속된다면 큰 한계점을 가진다. 국내 대학의 문제를 개개인이 국외로 나가 해결하라는 식으로밖에 안 될 뿐이다. 모두가 한국 교육이 문제라는 것을 느낀다. 무한한 경쟁체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고, 일방적인 수업방식이 질리고, 심지어는 수치화된 지표로 공인되지도 않는 ‘갓생’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서 ‘탈조선’을 할 수 있고, 미국과 한국 간의 대학교육을 체감해볼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교환학생 비용을 기꺼이 지급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그 차이를 느끼고, 한국의 답답한 교육문화를 '지혜롭게' 다룰 수 있는 도구를 얻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교환학생 6개월 혹은 1년 동안 보낸 시간을 추억으로 곱씹으며 살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무비판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발언을 중심으로만 교환학생 담론이 이어진다면, 한국에 계속 남아 있는 학생들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

계속 국내 대학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우리는 이 모양이지?’라는 한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현 사태를 분석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다음 파트는 한국의 대학교육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떠안은 대학생들이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떠나기와 남기를 가르는 것

점차 한국의 답답한 대학생활 속에서 저항 없이 무기력해진 개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해외 교환학생’이었다. 하지만 떠날지 말지를 가르는 것은 수직적인 계층위계에 따라 이뤄졌다. 미국으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등록금 포함 약 2000만원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비용내용으로는 사전비용 (토플학원 및 응시료, 항공권, 비자, 건강검진과 보험 등)과  거주비용(기숙사비, 학교시설비, 생활비와 여행비)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외국경험이라는 ‘스펙’을 쌓기 위해 본국에서마저 금전적 시간적 소모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토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연세대학교 국제처가 내놓은 기준은 토플 점수 최소 80점 이상이고,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총 4가지의 영역을 시험 봐야 한다. 토익은 듣기, 읽기 부분만 보기에 시험비용이 약 5만원 정도 한다면, 토플은 200달러(약 28만원) 정도의 비용을 치러야한다. 교재비도 약 10- 15만원 정도이다. 그래 이 정도는 낼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이제 독학할 것인가, 학원에 다닐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질문: 토플을 공부할 때, 다른 선택지가 아닌 토플 학원 혹은 인터넷 강의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궁물: 우선 작년에 독학을 하면서 결과가 너무 썼기 때문에... 독학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고, 인강도 독학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원을 택했어요. 강제로 떠먹여 주는 공부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미자: 저한테 토플 학원비가 너무 비쌌어요. 만약에 교환학생을 가게 된다면 부모님께서 거의 모든 비용을 지원해줄텐데, 이거라도 아끼자 그래서 제 돈으로 토플 준비를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제 수중에도 돈이 많이 없어서. 약간 오기가 생기면서, 그나마 덜 비싼 인강으로 혼자서 열심히 공부해야지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오기가 몇주 지속 안됐습니다.


질문:토플 학원은 한 달에 얼마 정도 냈나요?
궁물:여름방학에 신촌 YBM 주5일반 다녔고, 한 달에 615,600원 냈네요.
오미자: 3개월 프리패스 권이 32만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교재값이 중급교재, 고급교재 합쳐서 14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다 쓰지도 못했어요.


질문: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궁물: 준비 과정 다 끝내지도 않았지만 단호하게 말해 보자면, 토플이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일정 점수 이상으로 받아야 하는 것도 물론이고,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데다 그 점수가 교환학생 갈 학교를 결정해 버리니까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런 시험이 너무 어려우니까 처음부터 맥이 풀린 기분이었어요. 솔직히 그 뒤는 전부 돈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죄책감은 심하겠지만 내 자신이 고생하지 않는 과정이라면, 토플은 자신도 고생하고 돈도 많이 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오미자: 호기롭게 혼자 공부하겠다 했지만 혼자서 매일 매일 공부하는게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3달 잡고 여유롭게 지내면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다른 친구들 보면 한달 딱 빡세게 거의 외부세계와 단절된 것처럼 하더라구요.. 또 스피킹이랑 라이팅도 해야하는데 스터디도 안하고 있는 상태였어서 혼자하기 막막했던 것 같아요. 혼자서 스피킹을 하다보니까 목소리도 자꾸 기어들어가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맨땅에 헤딩으로 공부했네요.


교환학생 자체 또한 거대한 금액이 기반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경험이었는데, 그 경험의 시작점조차 자본이 수반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학생들은 ‘말하기와 쓰기’의 영역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영역으로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학원’이라는 존재에 기대게 된다. 한국식 입시영어교육의 폐해라며 더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고자 기꺼이 큰돈을 주고 학원을 다닌다. 고등학생만 대학입시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을 위한 여러 사교육 시장들의 규모는 이미 거대하다. 비단 토플, 토익뿐만 아니라 공무원, 자격증, 코딩 등이 있다. 대학교 입학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서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외부 시장에 의지하게 되었다. 교환학생의 시작점이 토플 시험이 아니라 시험 준비 학원이 된 것이다. 시험 응시료 24만원이라는 비용은 누군가에게 실패하면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비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식 영어 교육’을 받았던 우리는 한 번에 확실히 붙기 위해 안전하게 학원을 다닐 수 밖에 없게 된다.

사전비용과 거주비용을 합치면 큰 비용이 소모되지만, 기꺼이 낼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거주비용이 애초에 부담되어 교환학생을 고려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구체적인 이유 없이 ‘외국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서’ 혹은 ‘마음 편히 여행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교환학생에 대한 낭만을 가지곤 하지만, 그 낭만을 현실화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달려 있다. 더 정확히는 큰 비용을 대학생 개인이 아닌 양육자가 지원해준다는 점에서, 양육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한국 대학 생활이 암울하다 여겨 그것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때의 선택지는 교환학생뿐만 아니라 더 넓어져야 하며 ‘진정한 자아찾기’를 대학생 개개인에게만 떠넘기면 안 된다.


남은, 그리고 남을 사람들을 위해.

여기까지 읽었다면 슬슬 궁금할 수 있다. 그럼 남은 사람들은 어찌 해야하나. 이 글 제목을 조금은 도발적으로 쓴 이유이기도 하다. ‘루저’라고 느낄 수는 있어도 그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한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주로 대학생일 것이라 추정되오니, 대학생들 입장, 그니까 교환학생을 못 간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했는가를 말해보고자 한다. 일단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교환학생이 사실은 특정 시대와 공간이라는 배경에서 만들어진 욕망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한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온전히 내가 원해서 가져왔던 꿈은 아니었구나, 뭘 그렇게까지 스스로 다그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욕망이 한 국가만을 향하고 있었던 식민지성은 아닌가라는 반성도 들었으며,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나중엔 이 세상에 대해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교환학생은 못 가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더 깊이 느끼고 공부해야지.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사실 교환학생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를 이런 개인적인 정신극복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나는 저런 생각의 흐름으로 이어졌지만, 모두들 이런 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환학생을 둘러싼 담론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문제이다. 무한한 경쟁체제과 번아웃이 반복되는 국내 대학 문화 속에서 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혹은 ‘탈조선’하기 위해 교환학생을 가려 한다. 다만, 학생들은 갈증을 풀기 위해 위계화된 국제 질서에 따라 주로 영어권 나라로 향했고, 그 나라에 정착하기 위한 비용을 기꺼이 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교환학생이라는 경험이 계층화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후, 그들은 다녀와서 교환학생이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여기서 영어권제도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한다고 단순히 지식인의 식민지성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계층화된 교환학생 경험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분명 한국 대학 문화 내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본 글에서는 1) 교환학생이라는 욕망은 미국, 유럽 중심으로 구성되고 2) 숨쉴 수 없는 한국 대학 문화를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으며 3) 이 욕망은 경제적 계층에 따라 달리 성취된다는 여러 층위의 문제를 제시했고 해결사처럼 시원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종종 우리가 겪고 있는 감정이 어느 사회적인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영어권 제도로의 교환학생 경험이 가진 표상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지 알게 되었다면,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어떤 대학문화와 결합했는지 알게 된다면,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인 한국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잘살아간다는 것은 한국을 지겹게만 느끼지 않고, 혹은 ‘탈조선’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말이다.


"몇 세기에 걸쳐 다져진 서구적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자화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깊이 우리를 타자화시켜 놓았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식은 시작에 불과하며 이제 그동안 식민지성에 알맞게 프로그램화된 자신을 탈프로그램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 각자 선 자리에서 일상성과 주변성에 대한 성찰이 시작된다. 감성도 성찰의 대상에서 제외 될 수 없다."
조한혜정.1994年.<탈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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