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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Apr 15. 2023

<134호> 가짜 별

편집위원 모호


흰 배경 안에 인스타그램 프로필과 함께 “가짜 별”이라고 쓰여있다


★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일행을 만나러 지하철을 탈 때도, 그 일행을 기다리는 순간에도, 그리고 잠에 빠지기 직전 오는 찰나의 정적에도 나는 휴대폰을 놓지 못한다. 분명 휴대폰이 아니라 빳빳한 새 책을 쥐고 쿰쿰한 종이 향기를 즐기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젠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하루 스크린타임 5시간은 너끈히 넘기는 나는 도대체 어디에 그 많은 시간들을 쓰고, 버리고 있나.

웃기게도 하루의 3시간 이상을 나는 인스타그램에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은 내 삶에 질퍽하게 스며들어있었다. 틈틈이 깊게 스며들어서 이젠 어떻게 빼내야 할지도 모르게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기존에 쓰던 구린 폴더폰을 집어던진 나에게 스마트폰과 SNS의 유혹은 참 달콤했다. 어린아이가 화려한 놀이공원의 불빛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처럼 SNS, 그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은 나에게 놀이공원의 불빛 그 자체였다.


처음엔 지인들의 게시물, 스토리를 읽는 것이 즐거웠다. 함께 있지 않아도 지인들이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얼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신이 나서 댓글도 달아보고 스토리 답장도 달아보았다. 즉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과 활동 상태를 비활성화시켜놓지 않는 이상, 상대가 휴대폰을 보고 있는지 알 수도 있기에 활동 중인 지인과 밤새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개강을 하고 대학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는 마치 정해진 형식처럼 이루어졌다. 처음엔 친한 지인들만 팔로우 되어있던 내 계정은 과 사람들, 조별 과제 사람들, 다양한 대내외 활동으로 만난 사람들 등으로 그 폭이 넓어졌다. 그들은 매일매일 스토리를 올리며 일상을 공유했고 가끔 게시물을 올려 그 순간을 기록해두기도 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삶을 합법적으로 염탐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면 인스타그램만큼 적절한 것은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카톡도 잘 확인하지 않게 됐다. 디엠이 있는데 굳이 카톡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 까닭이었다.


다만 의미 없이 첫만남의  기념으로 팔로우한 나머지 친밀을 확신할 수 있는 사이를 벗어난 내 팔로워 목록들은 가끔 나에게 질투와 시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우리 나이 또래가 사기 힘든 귀중품을 지닌 모습, 친구들과 호화 여행을 간 모습, 남자친구와 행복해하는 모습 등등은 인정하기도 싫을 만큼 부러웠다. 그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내 삶이 진짜인지 그들의 삶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별처럼 빛나는 그들의 삶에 비하면 내 삶은 너무 가짜 같았다.


그래. 그들에게 열등감을 느낀 순간 솔직히 남들도 나를 부러워하길 바란 마음도 사실이다. 시기, 질투가 나중엔 경쟁심으로 변질되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1학년 1학기 당시에는 귀중품을 사면 착용사진을 곧바로 스토리에 올렸고, 누구와 밥을 먹던 비루한 사진 실력임에도 굳이 굳이 찍어 역시나 스토리에 올렸다.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상 하루하루를 찍어 자랑하기도 했다. 내가 이만큼 사랑받는 사람이고, 이만큼 화려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어쭙잖은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내 인스타 친구 중엔 남자친구랑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다. 매일매일 만나는데도 참 다채로운 데이트 코스를 즐기고 둘이 서로를 못 이기게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게 퍽 부러웠다. 내 성향은 꽤나 내향적이고 독립적이어서 매일 매시간 함께 있는 것보다 중간중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팔로워가 부러워 의식적으로 매일 남자친구를 보기도 했더랬다. 다행히도 상대는 매일 만나는 걸 좋아했지만 난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놈의 ‘자랑’을 위해서 성실하게도 그 친구를 만나 매일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아, 나 남자친구 매일 스토리에 올려서 내가 누구랑 사귀었는지 다들 알 텐데. 헤어진 걸 어떻게 설명하지.

였다. 퍽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너네도 결국엔 깨졌구나. 그 짤의 주인공이 내가 됐다고 생각하니 정말 몸서리쳐질 만큼 부끄러웠다.


헤어지고 나서는 안 그래도 외로운데 팔로워들이 알콩달콩 예쁘게도 사귀는 모습만 올리니 그게 참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가 나서 더 외로워졌다. 솔로인 친구들과 있을 때면 연애 얘기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 얘기를 하는 나의 속마음엔 알콩달콩하게 사귀는 내 팔로워를 부러워하는 속마음도 은근하게 섞여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질투가 익숙해지면서 점차 내 외로움이 사라지는 순간에 내가 부러워하던 팔로워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난 어제 남자친구랑 싸웠어. 좀 크게.”


나에겐 나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내 기준 그 팔로워만큼 알콩달콩 예쁘게 연애하는 사람은 없었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그들은 한 번의 다툼도 없이 그저 행복해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들도 다툼이라는 걸 한다는 게 나에겐 나름 쇼크였다. 그제야 난 내가 보지 못한 이면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팔로워 말고도 알콩달콩한 연애를 기록했던 모 커플이 사실 그동안 대판 싸웠고 결국 최근 헤어졌다든지. 먹스타그램 운영을 위해 예쁜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는 내 친구가 맘에 드는 사진을 건지기 위해 매번 카메라와 씨름을 해 수백 장 중에 한 장을 겨우 건진다든지. 항상 명품을 든 사진으로 도배를 하던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든지. (명품 때문에 일을 한다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명품을 쥐기 전까지의 과정을 우린 알지 못한 채 타고난 부라고 어림잡아 짐작하며 그 노력을 낮추기 마련인 것을 짚고 싶은 것이다.) 결국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들은 결과물이었다. 그 과정을 담고 있지 않은.


멋들어지게 꾸며진 레터링 케이크가 실은 한 입 먹으면 텁텁한 버터 향을 풍기는 것처럼. 휘황찬란한 게시물과 스토리라는 포장지 속 텁텁한 현실을 우리는 딱히 고려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이걸 느낀 순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우리는 무얼 바라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 이 놈의 정보화 시대, 단단히 잘못됐어

현재 SNS의 대표 선발주자는 인스타그램이지만 SNS는 계보가 있다. 이전엔 페이스북, 그리고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싸이월드 등. 사실 나의 경우엔 사용해본 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정도가 전부이다. 블로그의 경우엔 최근 블로그의 유행이 다시 돌아오면서 간간히 기록용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유행을 몸소 체감한 것은 역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뿐이다.


페이스북은 나의 중학교 시절을 점령했고 인스타그램은 나의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점령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이겠지만 지금의 디엠이 당시의 페메(페이스북 메시지)였고, 지금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이 페이스북 프로필이 아니었던가. 페이스북 역시도 현재의 상태를 기록할 수 있었고 상대의 활동 상태 역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출신 학교와 지역, 연애 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공개적으로 상대의 타임라인에 글을 남길 수도 있었다. 혹은 인스타그램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게시물 또한 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페이스북으로 소통했고 그 유행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지만 싸이월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서서히 페이스북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사그라든 재 너머로 새로운 SNS가 부상했고 그게 바로 인스타그램이었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역시도 과시는 군데군데 묻어있고 소위 흑역사라고 말할 법한 것들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SNS의 특성상 당시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담아내게 되는데 과거의 자신이 몇 년이 흘러도 부끄러움 없이 세련되기란 퍽 쉽지 않으니 말이다. 예시를 들자면 싸이월드의 눈물 셀카, 페이스북의 ‘연애중’ 띄우기 등등이 그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인스타그램이 그때보다 더한 과시와 자랑에 파묻힌, 자기 PR을 넘어선 보여주기의 과도기라고 느낄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그리고 싸이월드의 차이는 뭘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글이 위주냐, 사진이 위주냐에서 페이스북과 싸이월드는 글이었고 인스타그램은 사진인 점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과 싸이월드도 역시도 사진을 첨부할 수 있긴 하지만 대체로 글이 그 위주를 이루는 형식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인스타그램은 사진 없이는 게시를 할 수 없게 되어있다. 단순히 게시물이 아니라 스토리를 올리는 것도 말이다. 스토리란 24시간 동안 사진과 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내 기능을 의미하는데 텍스트만으로는 올릴 수 없다. 대부분 뒷배경이 있어야만 나오는 것이 스토리이니 말이다. 과정과 생각을 담아내는 것보다 그 결과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피드의 글로 열심히 그 과정을 설명한다고 한들, 일단 화려한 결과물인 사진부터 보고 시작을 하니까.


게다가 요즘 세대의 특징인지, 아니면 플랫폼 자체의 특징인지 인스타그램은 그 어떤 SNS보다 화려함을 과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과정의 이해 없이 접하는 낯선 화려함은 생각보다 훨씬 더 모호한 이질감으로 와닿는다. 풀파티, 오마카세, 바디프로필 등등. 물론 그것들을 향유하는 게 잘못은 아니라지만 20대들이 자주 즐기기엔 과하게 비싼 이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피드에 뜬달까.


이 모습을 시각화하자면 일본의 버블 경제 순간을 연상케 하고 저절로 시티팝 배경음악이 떠오르며 그 하늘엔 반짝거리는 별이 떠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그 별이 진짜 별이 아닌 가짜 별, 즉 전등 정도였던 씁쓸한 반전이 있는.



★ 이 피드 속엔 나완 다른 세상 뿐인데

인스타그램을 볼 때면 내가 다른 세상을 잠시 엿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단순히 남의 인스타를 보면서 느끼는 이질감이 아닌, 내 인스타를 볼 때도 그건 마찬가지다. 피드 속에, 그리고 스토리 속에 있는 인스타 속 나의 모습은 나 같지 않달까. 극단적으로 표현해보자면 대량생산된 인스타 놀거리에 발맞춘 밀랍인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보기 위해 첫 번째로 내가 친구들을 만나 하는 것들을 회상해보겠다. 나의 만남은 대체로 서울의 핫플레이스(예컨대 홍대, 성수, 신사, 강남, 혜화)에 가서 팔로워들의 사진 속에 언급되었던 맛집에 가 테이블링을 걸어두고 근처를 잠깐 산책한다. 지루한 웨이팅이 끝나면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먹음직스럽고 분위기 있어 보이게.


그리고 나선 또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카페를 간다. 마찬가지로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메뉴를 시킨 다음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해 내가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린다. 내가 내 팔로워의 사진을 보고 식당과 카페를 간 것처럼 나의 팔로워는 내 인스타그램을 보고 그곳에 찾아가는 것으로 이 코스는 남에게 토스된다.


회의가 드는 구조다. 마치 공식처럼 반복되는 그 모든 상황이 말이다. 실제의 나는 그냥 집에서 간식을 주워 먹고, 대충 배민을 시켜 밥을 먹거나 집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익숙한 메뉴를 먹는 사람에 불과할 뿐인데 인스타 속 나는 친구가 알려준 핫플을 찾아다니며 예쁜 사진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렇게도 인스타그램이 네 맘에 안 든다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게 어디 쉽단 말인가?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인스타그램 아이디부터 공유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 그것을 찍어 함께 한 이의 계정과 함께 스토리에 올린다. 인스타가 없다고 하면 “왜?”라는 반응이 당연스레 나오는 환경에서 인스타그램을 안 할 수 있을까? 나만 소외된 것처럼 느낄 것이 뻔한데?


다른 SNS처럼 인스타그램도 그 끝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삶에서 인스타그램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이것을 멈추기란 다소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인스타 세상과 나를 멀게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인스타 감성’이다. ‘인스타 감성’은 다른 언어로 대체 불가능할 만큼 그 자체의 특징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상할 정도로 인스타그램은 그 어떤 SNS보다 유별나게 화려하다. 그리고 동시에 저만의  ‘쿨함’에 집착한다. 그래서 더욱 이질감이 든다. 그게 매체에서 말하는 MZ세대의 특징인지 아니면 인스타그램 자체의 특징인지 정말 알 수 없다. 혹자는 매체에서 과도하게 풍자하는 걸 수도 있을 것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원인을 찾아내서 글에 언급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도 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확실히 인스타그램은 다른 SNS와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진을 게시하면서도 게시글의 글은 그 무엇보다도 시크하달까. 그 유명한 짤이 있지 않은가. 에이핑크 오하영이 자신의 그룹 멤버였던 손나은을 만났을 때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각각 올린 내용이 다른 것.


인스타그램엔 ‘길가다 손나은님 만났어요, 영광입니다.’

트위터에는 ‘길에서 손나은 만난 썰 푼다.’


이게 바로 인스타그램이 다른 SNS와의 유별난 차이일 것이며 인스타 감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감성을 가진 자영업들은 인스타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 합장 이모티콘과 함께 모든 것을 인스타로 해결하고자 한다. 피드에 올라오는 인스타 감성 식당, 카페, 바는하나같이 인스타로 예약을 받고, 모든 것을 인스타그램으로 문의하길 요구한다. 영업시간, 메뉴, 그리고 심할 때는 가격까지도 말이다. 이러한 인스타 감성 카페는 SNL에서 풍자되기도 했다. 가게와 관련된 것을 대면으로 물으면 무례를 논하며 합장을 하는 모습은 웃음과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인스타 감성 카페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 역시도 그런 인스타 감성카페들을 가본 적이 있다. 그곳은 다들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석진 골목에 위치했는데 간판이 없어 찾기 굉장히 힘들었다. 게다가 테이블은 무릎 정도에 올 만큼 낮고 의자는 등받이 없이 불편한데 유리 진열대에 담긴 디저트들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게 귀여우며 음료 역시도 알록달록 화려한, 그런 카페였다. 양은 누구 코에 붙이나, 싶을 만큼 작은 주제에 가격은 참 사납기 그지없었다. SNL이 현실 풍자를 제대로 한 듯, 메뉴판 밑에는 구체적인 사안은 DM으로 문의 주길 바란다는 내용은 참 웃펐다. 그들이 DM으로 부탁한다고 하는 이유가 정말 빠른 소통을 위해서였다면 대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면 문의를 받았어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M 문의를 원하는 것은 상업자에 대한 존중을 넘어 특별대우까지 바라는 모습으로 보였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물론 인스타로 문의를 달라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스타에 웬만한 공지사항들을 이미 띄워놨고 디엠을 보내면 바로바로 확인을 해주는 것도 팩트이니만큼 말이다. 하지만 굳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스타가 필요하며, 결정적으로 인스타 없이는 이 카페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이 참 기이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문의마저도 인스타로 하지 않으면 무례를 논하는 세상이라니. 언제부터 인스타가 그렇게 당연한 소통의 창구였단 말인가. 대면 소통을 할 수 있음에도 온라인 소통만을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가 궁금이나 정당한 항의를 표할 시,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한정된 환경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또한 인스타 감성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카페인 건 그럴 수 있다지만 당당한 MZ라는 컨셉에 잡아먹혀 기본 예의와 결례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은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물론 손님과 주인의 쌍방 예의가 중요하다지만, 자신의 마감과 기분만 충실해 소비자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꺼림직한 불편함이 느껴진다.

나만 이런 기이함을 느끼지는 않는지 인스타 감성 카페 후기들은 하나같이 서비스를 논하곤 한다. 긴 웨이팅을 끝내고 들어가도 편히 앉을 수 없는 인테리어와 더불어 불친절한 서비스는 당연히 불만을 자아내니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타 카페들의 인기는 식지 않고 더 거세진다는 것이다. 소비하지 않으면 그만이라지만, 인스타가 유행인 시대에서 스토리와 피드에 올리면 예쁘기 그지없는 그 카페들을 소비하지 않기란 참 힘든 모양이다.



★ 내 맘에는 구멍이 있어. 그건 뭘로도 못 채우는 것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인스타그램을 단순히 유행을 위해서만 소비하는 것만은 아니다. 애초에 SNS의 의의는 쌍방향 소통과 기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과거를 떠올릴 때면 드는 헛헛하고 공허한 감정, 그리고 그것을 달랠 수 있는 과거를 새긴 인스타그램. 결국 그것은 분명 인스타의 순기능이다.

처음 인스타가 론칭되었을 때, 이 앱의 목표는 온라인 사진 및 비디오 공유였다. 이전의 다른 SNS도 이 목표를 함께 했지만 인스타만의 특징은 폴라로이드를 연상케 하는 정사각형 이미지였다. 2015년부터는 이미지 크기에 구애받지 않게끔 변경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하면 정사각형 이미지가 고정적으로 떠오른다. 이 점에서 과거 폴라로이드를 사용해 삶을 기록했던 유저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스타만의 특징이 나온다. 또 폴라로이드를 사용한 세대가 아니더라도 Y2K 감성을 추구하는 현세대에게도 폴라로이드 감성을 그대로 지님과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원할 때마다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인스타 장점은 이 앱의 유행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인스타는 게시물 열람에 있어서는 꽤 공개적인 앱이지만 하루의 어떤 순간을 짤막하게 기록하는 ‘스토리’를 올릴 때는 ‘친친’을 사용할 수 있다.  친친이란 ‘친한 친구’를 의미하는데 팔로워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 스토리보다 조금 더 의식 없이 스토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도 이 친친을 애용하곤 한다. 스토리엔 텍스트가 최대한 적고 작은 깔끔한 사진을 올리지만 친친엔 재밌는 내용을 올리기도 하고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재밌게도 남의 친친에 내가 속해있을 때는 친밀감이 올라가는 느낌도 든다. 이 사람에게 내가 생각보다 가까운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더 프라이빗하고 비밀스러운 내용을 올리고 싶을 땐 친친보다 사실 비계를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비계는 비공개 계정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은 사회생활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개 계정과 달리 비공개 계정은 정말 친한 소수의 사람들만 팔로우해서 시시콜콜한 일상을 담아내곤 한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공개 계정은 필터링을 굉장히 많이 거르고 걸러 올린다면 비공개 계정은 필터링 없이 오늘 내가 뭘 먹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거리낌 없이 올릴 수 있어서 좋다. 공개적이고 사회적인 일상과 프라이빗한 나만의 일상을 각기 다르게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은 인스타를 마치 ‘현대적인 일기장’으로 와닿게 해주었다. 질색나는 인스타 감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이유는 결국 여기서 나오는 것이고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SNS는 그 시절의 우리를 가장 많이 담아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이 싸이월드를 떠올리면 2-30대를 추억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페이스북을 떠올리면 중학교를 회상한다. 또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학을 다니는 지금 이순간을 추억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대체할 또 다른 SNS 또한 역시 그 길을 걸을 것이고.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우리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이 글에서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글을 쓰면서 다른 편집위원들에게 결론을 어떻게 낼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궁금하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단 나부터도 인스타를 애용하고 있고 스크린타임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인스타그램을 자제하라는둥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이 글은 인스타에 관한 글이기에 인스타의 허위를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글에서 인스타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배제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 또한 다루고 싶었다. 아무리 인스타를 비판한다고 한들 솔직히 이걸 사용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나 역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고 무책임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 역시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같은 마음이다. 나를 열등감으로, 그리고 보여주기식으로 만드는 인스타가 싫다. 하지만 동시에 끊을 수는 없다. 인스타로 범벅된 세상에서 뒤처지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인 마음 때문에.


그래서 나는 이 모순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그게 지금 이 결론을 쓰고 있고, 그리고 앞으로 나만의 도입을 써 내려가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인스타를 보며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느끼는 것은 여전하다. 누군 비싼 호화 오마카세를 먹고, 명품을 사고, 남자친구와 행복한 하루를 누리고, 멋있는 대외활동을 하는 등등. 그 모든 것들은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열등감으로 느끼기보다는 그들의 노력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들이 겪었을 노력의 크기를 가늠해보며 내 노력을 그처럼 가다듬으려 하고 있다. 열등감이 아니라 발전의 동력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같은 편집위원인 빈칸이 이 글을 보고 남겨준 말이 있다. 인스타그램을 글자 하나씩 풀어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었다.


[인은 in, 너무 깊숙이 스며들어있고 스타는 star, 말 그대로 반짝거리는 별 같지만 그램(gram)처럼 가볍다]

빈칸은 이 말이 자신이 뱉었음에도 별로인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이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인스타는 말 그대로 삶에 깊이 스며든 가벼운 가짜 별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인스타가 가벼운 가짜 별로 내 가슴에 박히는 것이 아닌, 나를 달리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원동력 같은 진짜 별이 되게끔 노력할 것이다. 물론 별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인스타 역시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 노력으로 하여금 나는 발전할 것이다. 이게 나의 결론이다.


가짜 별이 진짜 별이 되는 그날까지.

오늘도 무수한 별처럼 빛나는 인스타 속 세상으로 떠나보겠다.



편집위원 모호

junghyow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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