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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Jul 18. 2023

<135호>오늘의 대학언론

편집위원 초록

하얀 정방형 이미지 중앙에  '오늘의 대학언론'이라고 적혀있다. 좌측 하단에는 마이크를 든 손이, 우측 하단에는 노란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있다.

20대는 힘이 없다. 우리가 행동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대학이 지성의 공간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고등학생 73.3%가 대학에 가는 이 시대에, 이전 세대 대학생들이 지녔던, 사회를 계도하고 인민에게 헌신할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우습다.     

혹자는 대학이 ‘직업인양성소’가 되었다며 비판한다. 청년고용률 46.2%의 세태에 그런 힐난마저 사치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대를 살아내야 한다. 인생의 재생속도는 언제나 일정하고, 이 영화의 결말을 아는 방법은 모든 장면을 겪어내는 것뿐이다. 사회를 변혁할 만큼 멋진 일을 해내거나, 부와 명성을 드높이거나, 그저 안정된 생활인이 되려 한대도, 그 전에 우리는 불안정하고 취약한 20대의 장면을 버텨야 한다. 이 영화는 스킵할 수도 빨리 감을 수도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씬(Scene)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어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까. 씨드머니를 모으고 투자를 배워서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 뒤 하고 싶은 일을 찾을까. 아니면 한 번뿐인 젊음을 즐거운 유흥으로 채울까. 그것도 아니면, 결국 나의 목소리는 묻힐 것이고 나중에는 어린 시절의 미숙함에 이불을 뻥뻥 차게 되겠지만, 오늘의 세상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렇다, 이 구구절절한 서두는 ‘연세’지에서 또 한 번 글을 쓰며 마지막 시나리오를 택해버린 필자의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쓰고 나니 1, 2, 3안이 너무도 매력적이라 나의 선택이 더욱 미련해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미련한 시나리오를 선택한 사람이 필자만이 아니다. ‘연세’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편집위원들, 연세대학교 언론출판협의회 소속 학생들, 각 대학에서 ‘대학언론’을 자임하며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운동이 세상을 바꾸고 대학언론이 그 변화를 선도하던 시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시대는 지났다. 대학진학률 73.3%, 청년고용률 46.2%의 이 시대, 20대의 한 컷(cut)을 대학언론 배경으로 찍기로 한 이 학생들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대학언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들이 현장에서 마주친 기회와 고난은 무엇인지, 오늘의 대학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가기 전에     

‘대학언론’은 대학교를 기반으로 하여 언론출판 활동을 하는 기관으로, 통상적으로 학보사(신문), 교지, 방송국으로 분류된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각각 ‘연세춘추’, ‘연세’지, 그리고 ‘YBS’를 떠올리면 되시겠다. 이외에도 영어신문을 발행하는 ‘Yonsei Annals’와 라디오방송국 ‘YIRB’, 그리고 상경대학의 ‘상경논총’, 사회과학대학의 ‘연희관015B’, 문과대학의 ‘문우’ 등 단과대 자치언론이 연세대 언론출판협의회 소속의 대학언론기구다. 이 글에서는 이 단체들을 ‘대학언론’으로 통칭하되, 필요한 경우 설명을 덧붙인다.               


[대학언론은 왜 중요한가]     


1. ‘학생운동의 시대’의 대학언론     

‘대학은 진리와 이상과 정의를 가르치기 때문에, 사회와 현실이 그렇지 못할 때 그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은 하나의 의무가 된다. (이효성, 1998)’     

이효성(1998)은 교육, 연구와 더불어 비판을 대학의 의무로 규정하면서, 대학언론을 비판의 의무를 실현하는 선도기관으로 보았다. 1998년 펴낸 그의 논문 ‘대학언론의 현황과 과제’는 ‘학생운동의 시대’와 그것이 끝나갈 무렵 대학언론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민주화 시대 대학언론은 곧 대항언론이었다. 대학언론의 비상업성(광고나 유료판매에 대한 의존성이 낮음), 필자와 독자의 균질성(대학 중심으로 생산/소비됨), 그리고 비전문성(집필에 생계를 의탁하는 전문 언론인이 아닌 아마추어 대학생이 집필함)은 더욱 선명하고 진보적인 보도를 견인했다. 특히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학 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대학언론은 대학생들의 현실비판과 투쟁의 장으로 기능했다.     

“울산대학교 총학생회실에도 ‘연세춘추’가 있었던 게 기억나요. 당시에는 학생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신문을 만들기도 했고, 학생회들 간의 교류도 활발했었어요. 특히 학생운동 노선 간의 논의 같은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우리는 서울권 대학 교지를 배송받아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었지요. 전국의 대학들이 크게 집회를 할 때면 주로 연세대에서 모였는데, 부산⋅울산⋅경남 학생들이 교내 건물 하나를 차지하고 잤거든요. 그때 자연스럽게 ‘연세춘추’나 ‘연세’지를 읽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87학번 ‘바로’의 경험(*필자가 구어체로 재구성함)     

그러는 중 대학언론은 특정 이념을 대변하는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띠거나, 다소 교격한 반체제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던 듯하다. 이효성의 논문에서는 “크게 부정시비가 없는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거나 지나치게 투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당시 연세춘추 편집국장이던 곽동원 역시 “선동⋅선전⋅대항 언론이라는 이념 아래에서 파생되어 나온 대학 언론사의 고압적인 자세는 언론매체로부터 독자들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1998년의 두 글에 모두 ‘대학언론의 위기’가 언급되는 것이 흥미롭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심해진 요즈음에는 학생들이 대학언론의 기자직을 지망하지 않고’(이효성), ‘소위 말하는 X세대가 학내의 주요 구성원으로 등장했고, 이들은 기존의 학내언론이 강조해왔던 정치⋅사회적 영역과 선동⋅선전보다는 좀 더 자신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곽동원). 인력부 족과 독자 이탈은 지금도 대학언론의 큰 고민이다. 우리네 골칫거리의 역사가 유구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은 언론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아,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 중심이던 대학언론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2. 2000년대 이후의 대학언론     

중세국어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X세대’부터, 모두들 떠들어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인 ‘MZ세대’까지, 독자들을 모으기 위한 대학언론의 자구책은 ‘멀티미디어화’와 ‘연성화’라 할 수 있다. 1959년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한 YBS(연세대학교 교육방송국)는 2002년부터 정규 영상방송을 시작했다. 연세춘추는 웹진을 발행했고, 현재 많은 학보사들이 자체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연세’지 역시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 발행에 힘쓰고 있다^^. 발행형식의 변화보다 중차대한 전이는 내용의 연성화다. 이 글에서 말하는 ‘연성 뉴스’란 “뉴스의 출처가 사적 영역이면서 인간적 흥미를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는 뉴스”로, 언론학자 미첼 찬리(Mitchell V. Charnley)의 정의를 빌린다. 학생운동이 그 동력과 위상을 상실한 2000년대 이후, 대학언론은 거시적인 사회개혁담론, 강성 선전 논조를 벗어나 대학 내의 이슈, 대중문화 등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가볍고 미시적인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연세춘추에서 발행한 ‘[Y,人] 위기의 대학언론, 변화에 발맞추는 사람들’에 소개된, 2000년대 초반 춘추에서 활동했다는 위정호 씨는 “학생들을 계도하려는 기존의 논조를 버리고 강의 평가와 같은 콘텐츠를 도입”했다고 회고한다.

대학언론이 ‘연성화’되었다는 것이 대학언론이 비판 기능을 상실했다거나 오락적 의제에 경도되었다는 힐난이 아님을 밝혀둔다. 대학을 조명하는 대학언론은 그 자체로 대학 공동체의 자정작용이다. 이전 시대의 대학언론이 학생운동 세력의 논의를 학생사회에 전달하려는 데 치중했다면, ‘연성화’된 오늘의 대학언론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 학내의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학생들과 논의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대학의 숙의민주주의에 기여한다. 대학언론은 정권과 체제에 저항하는 ‘대항지’에서, 학생생활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회의제들을 소개하는 ‘대안지’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3. 오늘의 대학언론     

숙명여대 총장직선제와 관련한 ‘숙대신보’의 보도는 대학 공동체를 의제로 삼고 대학 내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오늘의 대학언론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숙명여자대학교는 2020년부터 학교 구성원 전체(교직원, 학생, 동문)가 참여하는 직선제 선거를 통해 총장을 선출한다. 이 창학 초유의 사건은 2019년 숙명여대 총학생회 ‘오늘’이 주도했고, 숙명여대 학보사인 ‘숙대신보’의 역할도 컸다. 숙대신보는 전체학생총회, 총학생회장의 노숙농성, 노동조합의 집회 등 학내구성원참여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한 행보를 보도했다. 기획기사 ‘숙대신보, 총장직선제 도입을 묻다’는 학생회와 노동조합의 인터뷰를 담아냈다. 2020년 총장 직접선거는 그들의 부단한 투쟁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의 벽은 높았다. 2020년 총장 선출 투표의 반영비율은 교원 82%, 직원 7.5%, 학생 7.5%, 동문 3%로, 총학생회가 목표했던 ‘학생투표반영비율 25%’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 총장선거가 1학기 기말시험기간과 겹치고, 코로나19 상황임에도 온라인 투표 등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선거 후 총학생회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특정 후보 지지자의 선거관리위원회 참여, 불법 선거운동 등) 역시 석연치 않게 기각되었다. 허망한 심정이었겠지만, 숙대신보는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 ‘암탉이 뱉어낸 목소리’를 통해 총장 직선제 실현 과정을 기록하고 실현 이후 학생들의 평가를 들었고, ‘본교 장윤금 총장 취임 3학기 차... '공약 이행은 어디까지'’라는 기사는 선출된 총장의 공약 이행 내용을 점검했다.

숙명여대 학생들과 숙대신보의 성과는 단순히 총장 직선제를 도입한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대학 공동체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고, 대학의 수장인 ‘총장’ 역시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시해야 함을 깨달았다. 나아가 숙명여대 시위는 다른 대학들의 총장선거 관련 논의를 촉발했다. 숙명여대 시위 이후 서울여대학보와 동덕여대학보는 각각의 지면에서, 서울권 여자대학들의 사례를 반추하며 그들 학교의 총장 직선제 가능성을 점쳤다. 특히 동덕여대학보는 ‘숙명여대와 이화여대는 총장 선출 제도에 분노한 학생들이 총장직선제TF팀을 구성하고 공동행동을 진행하며 열띤 노력으로 이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대학언론이 대학의 이야기를 전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의 대학언론은 어디에 있나]     


대학언론은 생존의 위기에 서 있다. 위의 숙명여대 사례처럼 대학언론의 보도가 학교 전체로, 캠퍼스 문 바깥으로 파급되는 일은 매우 예외적이다. 1998년 ‘대학언론 위기설’에서 지적된 인력 부족과 독자 이탈의 문제는 25년이 지나 더욱 심각해졌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대학에 침투했고, ‘대학생의 목소리’를 내던 학내기구들은 하나둘 유명을 달리했다. 대학진학률 73.3%에 청년고용률 46.2%.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이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대학생’이라는 정치주체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우리가 아무리 용을 써도 8~90년대 대학언론이 지녔던 파급력을 갖진 못할진대, 그럼에도 우리가 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생이 말하지 않고 사회가 대학생의 말을 듣지 않는 시대에, 대학언론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질문을 가득 안고, 연세대학교 학보 ‘연세춘추’, 고려대학교 교지 ‘고대문화’, 전남대학교 교지 ‘용봉’ 편집실의 문을 두드렸다.      

연세춘추: 보도부장 제환(연세대 계량위험관리학과)

고대문화: 편집장 해진(고려대 철학과), 편집위원 상민(고려대 철학과)

용봉: 편집장 형호(전남대 사회학과), 편집위원 회성(전남대 역사교육과)

각각 파랑, 빨강, 노랑으로 표시합니다. 인터뷰 전문은 기사 뒤에 실린 부록 <대.친.소-대학언론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에 맞게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여 소개합니다.  

                                     

   

대학은 위기에 처해 있다. 언론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니 대학언론이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대학은 지성인을 길러내고 대안담론을 형성하던 소싯적의 위상을 빼앗기고 예비 노동력 양성소로 변질했다. 기실 노동력 양성소의 기능도 잘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언론사의 보도로 세상을 접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고 언제든 그 정보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언론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는 일은 요원해보인다. 대안담론 그 자체, 혁명의 동력 그 자체였던 학생운동기의 선배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일은 비참함만 더할 뿐이다.

이에 더해, 인터뷰이들은 ‘대학생이 더이상 대학언론에 관심 두지 않는 이유’를 지금의 대학생이 마주한 경제적 위기와 관련해 설명했다. ‘각자도생’. 당장 나의 생존을 걱정하고 노동시장에서 나의 자리를 사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통의 의제, 사회적 담론을 주목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인원이 충원되지 않으니 남아있는 사람들이 부담을 떠안는다. ‘내가 이 기사를 쓰기 위해서 지금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거지? 얼마나 성적을 포기하고 이걸 하고 있는 거지?’라고 자문한다는 제환(연세춘추)의 말이 서글프다. 이들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사람을 갈아 굴러가는 세계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압정테러(<대친소> 기사 참고-저자 주)나 에타 댓글세례 같은 무지막지한 공격만 백래시가 아니다. 재정은 대학언론사를 위협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다. 인터뷰한 모든 언론사는 재정문제를 안고 있었다. 연세춘추는 “왜 우리 등록금을 쟤네한테 써야 해?”라는 반응을 접했다고 말했다. 고대문화는 기존의 계간체제에서 학기에 한 번 발행하는 반연간 체제로의 전환에 재정적 고민이 있었다고 밝혔다. 용봉은 학교로부터 모든 예산지원이 끊겼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해 지면에 자세한 의사결정 과정을 싣지 않지만, ‘졸속 감행’이라는 표현은 매우 정중한 수준이라는 필자의 감상을 밝혀둔다. 연세춘추와 고대문화는 학생회를 통하지 않고 학교와 직접 교섭하기에 비교적 예산수급이 안정적인 측면은 있다. 두 대학의 인터뷰이 모두 예산집행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학교 당국에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숭실대학교에서는 총장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학보사 기자가 전원 해임되고(이후 협의를 거쳐 해임은 철회되었다), 예산을 핑계로 당해 신문 발행을 조기 종간해 파문이 일었다. 2021년의 일이다. 학교에도,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채, 언제든지 우리의 목소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없이 활동해나갈 수는 없을까?     

대학언론이 더 건강하게,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방법은 무엇일까. 인터뷰이들은 ‘대학생이, 학생사회가 바로 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인권을 고민하는 학생회, 다양한 의제들을 사유하고 행동하는 학내 자치 기구, ‘대학생’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사회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 그들과 함께할 때 대학언론의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학생사회의 논의를 상향식으로 담아내고, 새로운 이슈들을 의제화하고, 그 이슈를 많은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러 대학언론을 찾을 것이고, 모두가 대학언론의 논조에 동의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단체의 실존이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자, 이제 대학언론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나 하나 생존하기 힘든 세상에 우리 단체 꾸역꾸역 유지해왔건만, 이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학생사회를 회복시키는 임무까지 생겨버렸다. 난 대학언론에 관심도 없고 필요성도 모른다는 저 무심한 이에게 어떻게 다가서면 좋을까. 학생들에게 대학언론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대학생’으로서 사고하도록 도울 방법을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단체를 존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 학생들이 관심 가질 만한 학교의 이야기도 좋고,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대학생’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쓰는 모든 글은 다 ‘우리의 이야기’이니, 일단 성실하게 쓰자. 뭐든 쓰자.

쓰는 걸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가 먼저 찾아나서자. 편집실 문턱을 넘어 세상으로 나서자. 고대문화는 최근 ‘빈곤 보기: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주제의 오픈세미나를 진행했다. “의제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고대문화 활동이나, 의제에 관련된 학회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서 그런 걸 전반적으로 의도”했다고 한다(고대문화 해진).      

오늘의 대학언론은 인력 부족, 재정난 등 고질적인 공통의 문제를 겪고 있었고, 그러한 문제들은 사회의 변화와 ‘대학생’이라는 정치주체의 상실이라는 더 큰 맥락의 한 차원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대학언론’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일은 학생사회의 부활이다. 학생사회의 부활을 위해, 대학언론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고민하고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가 만나본 ‘오늘의 대학언론’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오늘의 대학언론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분투하고 있는 오늘의 대학언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학생사회, 대학언론, 나아가 지역사회가 건강한 담론장에서 상생할 방안은 없을까. 이미 시작된 노력들을 소개하고 필자의 제안을 한 가지 덧붙인다.      

1. 대학언론인네트워크(대언넷)     

    대학언론인네트워크(대언넷)은 대학언론인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홈페이지 단체소개 참고)다. 홈페이지에 기재된 단체소개서는 사업을 ‘연결’과 ‘지원’부문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연결’부문의 사업을 먼저 살펴보자면, 대학언론 온·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지역학보사 포럼을 주최했다고 한다. 이후 부산권 대학언론들의 모임은 ‘부산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를 결성해 꾸준히 활동중이다. ‘지원’부문의 사업으로는 대학언론인을 위한 아카데미와 상담센터를 마련하고, 언론탄압 대응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 활동을 펼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미지출처: 대학언론인네트워크 홈페이지

대학언론 간의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공통의 위기를 감각하고, 의제와 그 의제를 다루는 관점을 공유하고, 나아가 단체의 존속을 위협받는 상황이 생길 경우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생기는 것은 매우 큰 자산이다. 형호(전남대)는 지역에서 연대할 대학언론이 없다는 데서 오는 고립감을 토로했다. “[사회를] 조명할 수 있는 목소리가 서울에 많이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여러 주체들이 있고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있다는 데서 부러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는 그런 네트워크나 자원들이 협소하다 보니까 고립감을 좀 느끼기도 해요.” 한편 제환(연세춘추)는 인터뷰에서 “[연세춘추] 편집국장은 모든 학보사의 기사들을 매주 챙겨보고, 저희도 신문을 만들면 모든 대학으로 쏴줘요. 서로서로 ‘아 얘네는 지금 이런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하는 걸 확인도 하고, 그러면 우리는 또 ‘이걸 이런 측면에서 다뤄볼까’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런 무게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간행물을 통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대언넷이 이런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하고 공식 포럼 등을 통해 공식화할 수 있다면 대학언론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동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학언론에 특화된 저널리즘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대학 내 부당한 언론탄압 사례를 아카이빙하는 등의 활동 역시 대학언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언넷의 ‘대학언론인 아카데미 시그니처 코스’는 3기까지 성료했다. 이외에도 한겨레 김진철 기자,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 등을 초빙해 클래스를 열었다. 대언넷의 활동에 기성 언론도 호응했다는 사인으로 읽힌다.

전현직 대학언론인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라는 점이 단체의 지속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기는 한다. 공공의 지원이나 재정부조 없이 단체가 지속가능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지켜볼 문제이지만, 대학언론인들 간의 네트워킹을 독려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대언넷 사업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2.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윤영덕 의원 발의)     

대학언론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정책적 시도도 있다. 윤영덕 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동구남구갑)은 2022년 7월 1일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학칙을 제·개정하는 경우 대학평의원회를 통하여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할 수 없도록 하며, 학교 구성원의 알 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대학언론을 설치ㆍ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자유와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대학의 구성단위로서 학생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함을 골자로 하는 해당 법안은 숭대시보 사건(숭실대 학보사 해임 및 조기 종간 사건) 이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집행위원회가 제작했다고 한다(위 내용은 대학언론인네트워크 홈페이지 내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정책활동 파트를 참고함). 법안을 좀 더 살펴보자. 제 12조(학생자치활동)은 다음과 같이 개정 발의되었다.             


<현행>


제12조(학생자치활동)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ㆍ보호되며,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개정>


제12조(학생자치활동)

①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ㆍ보호된다.

② 학생은 자치활동을 위하여 학생회, 동아리, 학생언론 등(이하 “학생자치기구”라 한다)을 구성할 수 있다.

③ 학생자치기구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교육부령으로 정하되, 구체적인 사항은 학생회칙으로 정한다.

④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기구의 구성ㆍ운영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여서는 아니 된다.


정치권이 대학 내 학생자치활동의 종류(학생회, 동아리, 학생언론 등)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활동을 권장·보호한다고 명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법안의 틀을 잡은 것이 대언넷이기에 대언넷 역시 대학언론과 선순환을 이루는 학내자치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겠다. 5항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학생자치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여서는 아니’ 되니, 숭대시보 사건의 숭실대 총장의 행보는 위법한 것이 된다.             

제19조의4(대학언론)

 ① 학교는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 등 학교 구성원의 알 권리 보장과 의견 수렴 및 대학의 민주적인 여론 형성을 위하여 대학언론(이하 “대학언론”이라 한다)을 설치ㆍ운영할 수 있다.

 ② 대학언론은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신문ㆍ방송 등 언론 매체의 발행 및 편성

  2. 그 밖에 대학언론의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③ 대학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 학교는 대학언론의 자율적인 편집 및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

  ④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대학언론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

  ⑤ 대학언론의 설치ㆍ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학칙 또는 학교법인의 정관으로 정한다.


‘학생자치활동’으로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안은 ‘대학언론’ 조항을 신설해 대학언론의 운영과 대학언론에 대한 지원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대학언론의 편집권과 재정권을 보장해주는 조항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학언론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 학교는 대학언론의 자율적인 편집 및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3항의 내용은 편집권 독립을 매우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다. 대학 외의 사회, 특히 제도권 정치에서 대학언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으로 대학언론의 활동을 조력하려는 시도가 반갑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제도만으로 충분한 일은 없다. 직접적으로 기사를 검열하거나 기자를 억압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재정권을 빼앗기는 일이 대학언론에게 얼마나 실존적 위기로 다가오는지 이미 알고 있다. 숭실대 학보가 부당하게 발행 중지되었을 때, 학교 당국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예산 부족’이었다. 학교당국의 책임만을 규정해서 될 일도 아니다. ‘왜 등록금 아깝게 쟤네한테 돈을 써?’ 소리 안 듣고 활동할 방법은 없을까. 안정적인 재정을 구축하고, 학생들에게도 ‘대학언론 잘한다~!’ 얘기 들을 방법은 없을까. 아니, 애초에 꼭 독자를 해당 대학언론이 자리잡은 캠퍼스 내의 대학생으로 한정시킬 필요가 있나? 새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독자들과 만나는 건 어떤가?           


3. 대학 밖에는 지역이 있다: 대학언론발전사업?     

[오늘의 대학언론은 어디에 있나] 파트에서 ‘캠퍼스를 넘어 세상으로’ 향한 대학언론들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연세춘추는 자신들이 학외 주체(기성언론사, 경찰 등)들과 학생사회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고, 고대문화는 교내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와 적극적으로 교섭하고 연대했다. 용봉은 “지역에 교지기구가 몇 개 없다 보니까 지역 내의 표상이 확실하다,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먼저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고, 알고 보니까 전남대 선후배인 관계인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신원을 보장받는 느낌이라서 그럴 때는 자부심이 들기도 하고요. 지역 내 구성원들과 접촉할 일이 많아 자주 소통해서 그런지 끈끈함을 느끼기도 하고,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때도 용이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라는 감상을 전했다(용봉 형호). 대학 밖에는 지역이 있다. 어쩌면 캠퍼스 밖의 이 큰 세계가 대학언론에게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문제를 ‘청년’, 또는 ‘대학생’이라는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감각하고 전달하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고, 이대로 사멸하기에 대학언론은 너무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필자는 주구장창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어도 대학언론이 ‘등록금 먹는 하마’로 느껴진다면, 하아, 그것은 필자의 처절한 실패다. 그러나 만일 조금은 설득이 되었다면, 대학언론이 사라진다면 조금은 슬프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런 논의를 한번 꺼내볼까 한다.

현재 ‘지역신문’(광역·기초자치단체를 주 활동무대로 하는 신문)은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는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역신문의 진흥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취재장비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지역인재를 인턴으로 채용할 때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합동취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식이다. 공공이 지역신문을 지원하는 이유는 거대 미디어 기업의 일간지나 양산형 인터넷 언론이 대체할 수 없는, 지역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의제를 생산하고 보도하는 지역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에 대해서도 이런 지원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지자체 차원에서 가칭 ‘대학언론발전사업’을 추진한다. 지원주체를 지자체로 상정한 이유는 대학언론이 선명한 대안담론을 만들고 확고한 파급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위가 ‘지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언론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고, 대신 학보나 교지에 지역의제를 일정 비율 담게 한다. 대학언론은 좀 더 안정된 재정으로 매체를 운영하고, 적극적으로 지역 차원의 담론을 주도한다. 지자체는 학보나 교지를 공공기관이나 지역 명소에 배포하여 대학언론이 만들어낸 지역담론에 호응할 새로운 독자를 찾는다. 기사의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는 대신 얼마나 성실하게 취재하고 이야깃거리를 발굴했는지를 기준으로 지역기사들을 모니터링하고, 우수사례는 공유하여 대학언론 간의 네트워킹을 촉진한다. 대학언론은 ‘지역민’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얻고, 취재의 경험을 쌓고 다양한 학외단체, 다른 대학언론과 교류하며 역량을 키운다. 기왕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학교의 장은 대학언론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하거나 보조할 수 있다”고 하니, 학교에 대한 재정 의존성도 낮추고, 지역에 필요한 청년의 대안담론도 형성하고, 공상에 가까운 구상이지만 충분히 더 고민해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그래도, 오늘 우리는 살아있다]     

20대. 대학. 대학언론. 우리의 목소리. 하나같이 위태위태한 심상의 단어들이다. 학생운동기 기성언론 이상의 파급력을 지녔던 대학언론은 수많은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점점 소싯적의 위상을 잃어갔다. 오늘의 대학언론은, 오늘의 20대처럼,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낡고 지친 필름테이프같다. 그렇지만, 아직 끊어지진 않았다. 영화는 계속 상영 중이다. 내 영화의 한 장면을 대학언론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게, 위태한 가운데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대학언론의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학언론의 오늘 역시 찬란하고 아름답다. 궁핍하고 구차한 우리의 20대도 어쩔 수 없이 청춘이듯이. 그리고 필름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플래시백으로 오늘의 우리를 회상할 때, 최선을 다했던 오늘의 대학언론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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