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초록
도깨비 신부의 삶을 마치고 환생한 은탁은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지금은 서문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늦잠을 잔 은탁은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공유자전거 일레클을 빌린다. 은탁이 수업을 듣는 연희관은 걸어가면 30분이지만, 일레클을 타면 10분이면 거뜬하다. 여유있게 도착한 은탁은 수업 전 커피를 사가기로 마음먹고 위당관 지하 1층 청경관 트레비앙에 들른다. 키오스크에서 웰컵 공유텀블러를 빌려 개인컵 할인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자 은탁은 중앙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한다. 그때 예보도 없이 비가 쏟아진다. 은탁은 당황하지 않고 업브렐라를 대여해 집에 온다. 이사를 앞둔 은탁은 쓰던 서랍장을 당근마켓에 올려 되팔기로 한다. 집정리를 하던 은탁은 핸드폰 충전기를 두 개나 발견한다. 급한 연락을 받느라 편의점에서 샀던, 충전이 잘 되지도 않는 것들이다. 애물단지가 된 충전기를 보며 은탁은 생각한다. '그때 충전기를 빌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이미 생활 속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은탁이 이용한 공유재화 이외에도, 사람들과 재화를 나누어쓰는 '공유'의 행태는 낯설지 않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더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물건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공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공유(共有)(이하 "공유"라 한다)"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공유경제를 포함하여 공간, 물건, 정보, 재능, 경험 등 자원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사회적·경제적·환경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출처: 서울특별시 공유촉진조례 제 2조 1항
이 글에서는 공유를 '행태'로서 규정한다. 즉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와 대조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재화를 향유하는 모든 행동형태가 폭넓은 의미의 '공유'라 할 수 있다. 이 정의에는 에어비앤비, 우버 등 개인이 소유하고 있되 사용하지 않는 자산(유휴자산)을 이용할 권리를 거래하는 공유경제, 공급자가 공유재화나 서비스를 마련하고, 이를 이용할 권리를 거래하는 구독경제, 그리고 중고물품 거래가 모두 포함된다. 이외에도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 운영하는 협동조합, 주택소유권을 나눠갖는 형태의 사회주택 등이 모두 ‘공유’로 정의될 수 있다.
공유는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리는 단선적 과정을 타파한다. 은탁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 대부분의 시간 동안 주차장에 방치되는 자동차와 자전거, 몇 번 안 썼는데 망가지는 싸구려 우산 대신 나누어 쓰기를 택한다. 은탁은 필요한 것을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한다. 물건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며 더 많은 시간 활용된다. 너무 많은 것들이 함부로 소비되고 함부로 버려지는 이 사회에서 공유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소유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 생활에서 ‘공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공유자전거, 킥보드 등 이동수단에서부터 우산, 텀블러, 면접용 정장에 이르기까지, 공유재화를 활용한 대여, 구독 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재화는 사용자의 '소유'로 귀속되지 않고, '공유재'로서 관리, 활용된다. ‘당근마켓’은 필요에 따라 물건을 되팔고 중고 물품을 구입하며 재화의 사용가치를 연장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그것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당근’은 물건을 버리는 대신 택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다.
이러한 공유사업에 늘 따라붙는 의구심이 있다. 저게, 진짜 될까?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다뤄서 금방 망가지는 건 아닐까? 길가에 내팽개쳐진 공유킥보드처럼, 돈만/물건만 받고 잠수를 탔다는 중고거래의 ‘빌런’들처럼, 관리가 제대로 안 되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은 결국 '공유는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남과 물건을 공유하는 일이 낯설고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유는 급진적 변화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빌리고, 이용하고, 되돌려두는 것에 익숙하다. 우리 사회에는 공유모델이 오랫동안 성공을 거둔 분야가 있다. 다시 글의 서두로 돌아가 은탁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은탁이 사용한 공유재화에는 공유자전거와 텀블러뿐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이승민(2022)은 논문 "공공도서관과 공유경제 - 유형의 공유로부터 무형의 접근으로"에서 공유경제의 초기 모델은 도서관이라고 주장하면서, 수세기 동안 정보, 미디어, 각종 도구 등을 공유해온 도서관이 공유경제의 성공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읽고싶은 책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책을 살 것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볼 것인지 고민한다. 공유라는 행동양식이 일상적인 ‘선택지’로 우리 생활에 녹아있다는 증거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 등을 자연스레 이용한다. 그 버스와 지하철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대중교통은 공공이 마련한 공유재(公有財)이자, 시민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유재(共有財)다. 우리의 이동을 책임졌던 교통수단은 실은 ‘공유버스’와 ‘공유지하철’이었다.
또 하나의 예시는 ‘아나바다’ 운동이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이 표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계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가계지출을 줄이고 물건을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대두되었다. 가정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거래하거나 물물교환하는 ‘벼룩시장’은 아나바다 운동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어릴적 돗자리를 펴고 작아진 옷과 철지난 장난감을 팔거나 그것들을 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998년 1월부터 진행한 서초구의 서초토요벼룩시장은 2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무한도전> 레전드 편이 탄생하기도 했던 동묘벼룩시장 역시 이 흐름을 함께하고 있다.
혹자는 당근마켓과 공유경제를 ‘현대판 아나바다’라고 부른다. 공공도서관과 대중교통, 아나바다 운동은 공유가 그리 혁신적이지도 획기적이지도 않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생활양식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공유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이제 ‘공유’ 자체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공유할 것이며, 무엇을 위해 공유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공공도서관은 지식의 보급과 계몽을 위해, 대중교통은 노동자를 일터로 실어나르기 위해, 아나바다 운동은 소비를 줄여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오늘의 공유는 무엇을 목적해야 할까?
이 조례는 공유의 촉진을 통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출처: 서울특별시 공유촉진조례 제 1조
‘환경’은 오늘날 공유사업의 핵심 의제다. 연희동의 제로웨이스트 카페 ‘보틀팩토리’는 2018년 ‘유어보틀위크’를 진행해, 안 쓰던 텀블러들을 기부받아 기증, 활용하는 행사를 주최했다. 망원시장에서는 장바구니와 에코백을 기부받아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사용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물건의 사용수명과 활용빈도를 높이고, 나아가 생활을 함께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공유’를 시도하고 있다.
‘오늘의 공유’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필자는 유어웰컵 팀의 차동혁(정외20) 대표를 만나, 오늘의 공유사업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지점들을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1월 30일 13시 진행한 인터뷰를 구어체로 재구성함)
A. 간단히 말하면 ‘공유텀블러’, 외부에 소개할 때는 ‘다회용컵 대여 및 관리서비스’라고 합니다. 연세대학교와 주변 카페, 공공기관 등 10개소에서 운영중입니다. 원래는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 간 거래) 모델로 교내 트레비앙과 시중 카페에 다회용컵을 납품하는 형태를 구상했고, 실제 몇몇 공공기관에서는 그렇게 운영중입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B2C(Business to Customer; 공급자가 고객에게 직접 서비스)모델을 운영하고 있어요. 어플에서 키오스크에 부착된 대여 QR코드를 찍으면 위치정보와 블루투스 정보를 통해 사용자를 인식하고 대여함의 문이 열리고, 마찬가지로 QR코드를 스캔하여 반납합니다. 수거된 컵은 외부기관과 협약을 맺어 운송, 세척하고 다시 공급합니다.
A. 소위 ‘코로나학번’으로서 미래와 사회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환경이슈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귀결되었습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유서비스들이 등장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저 역시 이러한 공유서비스를 통해 환경문제를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텀블러가 환경을 보호하는 데 좋다고 하지만, 들고 다니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요.
A. 손상과 회수의 문제는 기술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텀블러에 미세 스크래치를 내 내구성을 높이고, 어플을 통해 대여와 반납을 관리하며 미반납시 페널티 금액이 과금되도록 했습니다. 무엇보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 웰컵을 이용하는 건데, 웰컵을 들고 집에 가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잖아요. 회수율은 95% 이상입니다.
A. 사회에 아직 안착되지 않은 사업을 운영하는 것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장점은 우리 사업이 사회의 난제를 푸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거. 단점은 기존 시장의 행위자들에게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 일회용컵은 가장 편리하고, 저렴하고, 익숙한 방법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회용컵을 쓴다는 건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누군가는 다소 불편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존 시장구조에 익숙해져있는 행위자들은 이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죠. 고객과 카페 점주 중 누가 그 불편을 감수할 것인지가 늘 문제가 되는 듯해요.
A. 절충적인 구조라고 생각해요. 월정액이라는 부담은 있지만,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면 오히려 고객도 혜택을 받죠. 시중 카페에서 텀블러 할인이 정착되었지만, 저희가 조사하기로는 40% 정도의 학생들이 이를 모르고 있고 실제로 할인을 활용하는 경우는 10%에 불과했어요. 쓰지 못하던 할인을 쓰게 해줌으로써 고객들에게도 혜택을 주자고 생각했죠.
A. 영업을 다니며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분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실 연세대학교에서 공유텀블러를 시도한 게 저희가 처음은 아니에요. 2018년에 SK와 교내 환경동아리가 ‘영 텀블러’라는 사업을 시도했어요. 그때는 생협과 제휴해 카페에 다회용컵을 직접 배치하는 형태였는데, 사업이 장기적으로 관리되지 못해 결국 그 관리부담을 생협이 다 끌어안게 되었대요. 웰컵을 생협 카페에 납품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때의 경험 때문에 난색을 표하시더라고요. 결국 키오스크를 배치하는 우회책으로 선회하게 되었죠. 연세대에 키오스크를 배치할 때 열 곳을 접촉했는데, 결국 네 곳만 허가를 받았어요. 가장 이용자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과대학은 ‘건물 관리자분들이 운영할 여유가 없다’고 하셔서 배치가 무산되었어요. 이런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시는 정도가 다 다르다보니 설득하는 게 어려웠죠.
A. 인식의 측면)
‘왜 공유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유어웰컵의 경우에 텀블러를 안 쓰던 사람을 쓰게 만들려고 했는데, 절반 정도의 이용자는 이미 텀블러를 썼던 사람들로 나타났어요. 환경보호 가치에 동감하고 이미 텀블러를 써오셨던 분들에게 텀블러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써보면 좋을 것’ 정도이니까요. 텀블러가 ‘쓰면 좋을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텀블러를 쓰는 것의 불편함을 모두가 기꺼이 감수할 때 공유텀블러 역시 정착할 거라 생각해요.
A. 제도의 측면)
제도의 역할이 오히려 더 커요.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늘 많이 나왔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으니 문제가 이어지거든요. ‘좋은 제도’와 ‘아쉬운 제도’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먼저 좋은 제도로는 ‘텀블러 할인 제도’가 있어요. 이 제도는 환경부와 각 프랜차이즈 카페 대표들이 자발적으로 협의해서 내놓았어요. 물론 실효가 크지 않아 ‘그린워싱(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면서도 ‘친환경’의 이미지를 어필하는 행태)’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커피 업계가 그들의 위치와 책임을 인정하고 노력했다는 건 인정할 만하죠. 아쉬운 제도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들 수 있어요. 2022년 6월부터 1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일회용컵을 이용할 때 300원 보증금을 내고, 반환했을 때 돌려받게 하기로 했는데, 12월부터 제주와 세종시에 있는 카페들만 대상으로 시범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저희 서비스도 보증금제에 거는 기대가 컸어요. 학교 주변 카페들과 트레비앙에 제품을 납품하려 했는데, 보증금제가 시행될 것으로 생각되었던 작년 4월까지만 해도 전면적으로 활용하겠다며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거든요. 그런데 보증금제가 무산되자 유인이 다 사라졌어요. 업주들 말씀으로는 다회용컵이 편리하지만, 돈을 내고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카페에 컵을 납품하는 계획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보증금제가 정말 필요한 제도였다고는 생각해요. 불편함이 있고 한계가 있어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되는 거잖아요.
A. 유어웰컵의 다회용컵 역시 플라스틱이고, 운반, 세척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건 맞아요. 다회용컵 생산공정은 일회용품보다 많은 자재와 과정을 필요로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텀블러를 50번 이상 사용하면 그때부터는 비가역적인 환경보호 효과가 발생한다고 해요. 텀블러를 많이 쓸수록 그 효과는 커지죠. 웰컵은 최소 500번을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있어요. 또 로고와 장식이 없기 때문에 100%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정리하자면 텀블러를 사놓고 활용하지 않는 것은 환경오염이 맞아요. 그 사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유라고 할 수 있겠네요.
A. 집마다 한 개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공유의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원래 우리는 가구 당 자동차를 한 대 이상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잖아요. 근데 이 사회는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게 대중교통보다 오래 걸릴 정도로 인구와 교통 과밀된 사회가 되었고, 구축 아파트의 경우 주차난이 심각하죠. 그런데 우버나 소카 등 자동차 쉐어 서비스가 등장했어요. 당연히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생각했던 재화에 새로운 선택지가 마련된 거죠. 유어웰컵 사업이 지향하는 바 역시 그런 거에요. 일회용품과 개인 텀블러 중에,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한다는 거.
A. 저 역시 ‘텀블러를 꼭 써야 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일단 불편하니까요. 그런 분들도 쉽게 쓸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추는 게 저희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꼭 웰컵을 써야 한다!라기보다는 새로운 선택지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일회용품은 편리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개인 텀블러를 챙겨다니는 수고로움은 덜고 싶을 때, 그럴 때 새로운 선택지로서 고민해달라, 그런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소모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일회용품도 아닌, 몇 번 쓰고 처박아두는 개인 텀블러도 아닌, 이용부담은 줄이고 재화의 사용가치는 극대화하는 ‘공유’. 차동혁 대표는 이러한 공유의 역할을 깊이 이해하고, 유어웰컵 서비스를 통해 구현하고 있는 듯 보였다. 텀블러의 내구성과 재활용을 고민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국가보조기관과 협약을 맺어 운송과 세척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유어웰컵 팀과 그들이 이끌어가는 ‘오늘의 공유’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 역시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의 공유는 기후위기 시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물건의 사용가치를 높이고, 이용자 역시 편리함과 혜택을 누리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공유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Proficient Market Insight에서 2022년 9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130억 달러(USD)였던 전세계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시장규모는 예측기간(2022-2027)년동안 연평균 32.08%씩 성장하여, 2027년에는 6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다른 리서치 전문기관인 Juniper Research는 구독경제(subscription)의 시장규모가 2022년 2756억 달러에서 2026년 5991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공유의 분야는 확장되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공유는 소유를 상당 부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패러다임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공유가 넘어야 하는 언덕은 많다. ‘오늘의 공유’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민영화다. ‘어제의 공유’, 즉 공공도서관, 대중교통, 아나바다 운동 등을 주도해온 주체가 주로 공적 부문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의 공유사업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영리사업자다. 공유사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모든 사회적 가치들에 선행하여, 사업자는 수익을 내야 한다. 민영화된 공유는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공익적 목표와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먼저, 공유플랫폼을 표방한 기업들이 다국적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며 신자유주의적, 착취적 시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칼럼 “Why Work Is Turning Into a Nightmare(왜 노동은 악몽이 되어가는가-필자 역)”에서 공유경제를 “부스러기 나눠먹는 경제(share-the-scraps)” 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플랫폼을 보유한 거대기업의 초과이익과 고용불안정이다. 그가 진단하기에, 지금의 공유경제는 각각의 개인들이 유휴자원을 거래하는 평등한 장터가 아니라, 거대 플랫폼 기업에 노동자들이 위태롭게 매달린 종속적 시장구조다. 예를 들어, 그가 보기에 우버는, 우버의 홈페이지가 선전하는 바와 달리, 남는 시간에 손님을 태워 차량의 사용가치를 높이는 종류의 사업이 아니다.우버에 생계를 의존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버가 그 노동자들을 ‘남는 시간(downtime)을 활용해 돈을 버는 자영업자’로 규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그들의 실질적 고용주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수요와 공급을 매개할 뿐’이라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 아래, 최저임금도 고용보험도 무의미하다. 노동자들은 더 싼 값에, 더 열악한 노동조건과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팔아넘기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거듭한다. 그동안 우버는 노동자들과 소비자들로부터 얻는 이중의 수수료로 막대한 이익을 누린다. 이 약탈적 플랫폼경제(platform economy)에서는 공유사업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사회적 가치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문제적 상황은 작금의 ‘공유경제’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자문하게 한다. 우버가 공유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다. 수요에 따라 이리저리 떠돌며 파편화된 인간의 노동이다.
혹자는 공유경제가 진정으로 호혜적 관계를 쌓고 사회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가진 모든 자원을 상품화하는 오늘의 공유가 오히려 사회를 더 조각내는 일이 아니냐고 말이다. 전통적인 공유, 즉 안정적인 사회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이 재화와 용역을 공유하는 일은 상호신뢰를 전제했다. 마을에서 우물을 공동사용, 관리하거나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서로의 농사를 돕는 행위들은 상호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공유에 참여하며 그 신뢰를 더욱 굳건히 하고 관계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사회운동계 대안언론을 표방하는 ‘월간 워커스’는 오늘날 공유경제라 불리는 상업은 각자의 편익을 취하는 고립된 개인들의 거래로 이루어진다고 비판한다. 개인들은 수익을 위해 공유에 참여한다. 예전같으면 친구에게 주거나 기부했을 물품들을 이제는 당근마켓에 올려 수익을 얻는다. 차를 태워주거나 공구를 빌려주거나 심부름을 해주는 등, 친밀성에 기반해 도와주고 도움받았던 일상적 행위들이 공유시장에서 모두 영리화되었다. 월간 워커스는 공유경제를 민영화의 새로운 단계라고 호명하면서, ‘필요한 생활수단과 생활기술을 모두 ‘렌탈’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건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절대적으로 ‘화폐’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다음은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도우리)에 소개된 사례다. 영리화된 공유와 공유가 목적했던 사회적 목표 간의 괴리를 보여준다. “당근마켓 이후 ‘아름다운 가게’ 등 물품 기부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중략) 당근마켓 판매자들은 그 ‘나눔’을 통해 평점을 올리고, 그 평점을 기반으로 판매율을 높일 수 있다. 또 매달 ‘무료 나눔의 날’을 정하고, 최다 무료 나눔자를 선정하는 당근마켓 측의 선전을 보면 유저 접속률과 거래 물량을 많이 확보해 결국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는 의심이 든다.” 당근마켓 ‘무료나눔’이 지닌 영리성은 ‘무료나눔’이라는 언어가 ‘아름다운가게’가 지향하던 ‘나눔’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사회는, 공유를 통해 만나고자 했던 ‘자원을 활용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소유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했던 공유는 민영화되고 과도하게 영리화됨에 따라 그것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을 답습하게 되었다. 공유가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제의 공유’가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공유시장을 주도하고 공유재화를 제공해야 하는 걸까? 영리 추구의 부수적 수단이 아닌, 생활로서의 공유. 구성원들을 돌보고 그들이 서로를 돌볼 수 있게 하는 공유. ‘내일의 공유’가 풀어야 할 과제다.
은탁은 저승이와 써니씨를 만나러 ‘전환마을부엌 밥풀꽃’ 식당으로 향한다. 저승이와 써니씨는 전환마을 은평의 마을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 밥풀꽃 식당에서 열리는 퍼머컬처(permaculture; 지속가능한 농업) 수업을 듣기도 하고, 춤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마을회의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얼마 전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 만든 김치를 은탁에게 보내주었다. 은탁은 협동조합 운영 방식의 공공임대주택, ‘누구나 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은탁은 ‘누구나 집’의 주민참여 협력적 생산/소비센터인 ‘시너지센터’에 돌봄교사로 취직할 예정이다.
사람들이 공유에 희망을 걸었던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이 물건을 사고 버려야 운영되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의 대안, 구입-소유-폐기의 단선적 과정에서 벗어난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공유는 부수입을 얻기 위한, 더 싼 값에 재화와 용역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며 오히려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의 공유가 이러한 부작용을 낳은 이유는 공유가 금전거래를 통해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공유시장에서 수요자들은 돈을 써야 공유에 참여할 수 있었고, 공유상대방과는 극히 일회적인 금전관계만을 맺었다. 우리는 내 서랍장을 가져갈 ‘당근’을 궁금해하지 않고,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우버 기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 공유는 점차 본래의 협력적 성격을 잃고 매우 개별적인 행위가 되었다. 소유자본주의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은 각자도생의 공유시장에서 공유가 영리추구의 수단이 된 것은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공유’의 목표를 민영화된 공유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공유가 지향했던 사회적 가치의 복원에 둘 때, 당면과제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2022년도 2학기 연세대학교 현대사회의 돌봄과 친밀성의 구조(교수 김현미) 수업에서 특강을 진행한 전환마을 은평의 대표 소란(본명 유희정, 활동가)은 자신의 공동체를 ‘돌봄이 순환되는 공간’으로 소개했다. 전환마을(Transition Town)은 기후위기에도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 공동체를 표방한다. 전환마을의 핵심 철학인 퍼머컬처(permanent+culture의 합성어)는 '지구를 돌보라(Care earth)ㆍ사람을 돌보라(Care people)ㆍ공정하게 분배하라(Fair share)ㆍ영혼을 돌보라(Spirit care)'는 선언이다. 주민들은 함께 농사를 지어 작물을 길러 먹고, 목화솜으로 옷과 이불을 만들고,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다시 거름으로 활용한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막걸리를 주조하는 막걸리 워크숍과 도토리묵을 쑤는 도토리 워크숍을 진행한다. 직접 생산한 재료로 만든 건강 도시락을 취약 계층에게 보낸다. 탄소흡수 효과가 높은 다년생 식물을 길러 흙 속에 탄소를 저장한다(1,224평의 땅에 심긴 밀은 1년에 4톤의 탄소를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흡수할 수 있다). 전환마을 은평의 공유는 단순히 재화를 나눠쓰는 일회적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노동을 함께하고 그 산물로 함께 생활하고 나누는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확장된다. 그의 강연에 따르면, 이 라이프스타일은 서로를 돌보고, 취약계층을 돌보고, 지구를 돌본다. 마을의 공동텃밭은 구성원들을 돌보고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유자원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이 생산한 상품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또 상품을 사기 위해 돈을 버는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은평시민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생산과 소비에서, 자본에서 벗어난다. 공유는 마을 내의 자원순환과 돌봄을 더 촘촘하게 만든다. 전환마을 은평에서는 10가구씩 100단위의 그룹이 모두 공동체를 형성한다. 특강에서 소란은 마을에서 마늘을 길러 김장을 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개인 단위에서 작물을 수확했으면 김장을 하는 대신 팔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공유 공동체, 공유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전환마을 은평은 ‘내일의 공유’를 상상할 때 참고할 만한 역할 모델이다.
‘누구나 집’은 안성, 인천, 부산, 천안 등지에서 건설중인 임대주택으로, ‘생활의 공유’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누구나 집’은 ‘분양가 확정 분양 전환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우선 이 복잡한 명칭을 좀 더 뜯어보면, ‘분양가 확정’은 이미 입주 당시에 주택의 분양가격이 정해져있다는 뜻이다. 임대료를 내며 주택에서 실거주한 후, 10년이 지나면 미리 추산된 분양가를 지불하고 ‘분양 전환형’, 즉 집을 구매할 수 있는 형태다. 임차인은 입주 시 집값(분양가)의 10%만 지불한다. 나머지 중 80%는 공공이 보증을 서 낮은 이율의 대출금으로 충당하고(‘공공지원’), 10%는 시행사와 시공사 등 기업이 부담한다. 이두희 국토부 과장은 "예정대로라면 2023년 착공하고 2025년에는 입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되는 점은 많다. 10년 후 집값이 상승하면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어 투기자본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 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건설 자체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점,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권 다툼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집’이 극복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임대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일부 갖고, 공동체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소비하게 한다는 ‘누구나 집’의 구상은 무척 흥미롭다. ‘누구나 집’, 그리고 ‘누구나 집’의 핵심 사업인 H10프로그램과 시너지 센터가 ‘내일의 공유’가 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누구나 집’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누구나집은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이다. 임차인은 협동조합 조합원이 된다. 임차인이 납부하는 10%는 이 협동조합의 출자금이다. 협동조합 공동의 신용으로 이율을 낮춰 저렴한 임대료를 실현하겠다는 의도다. 집값의 10%로 내집을 가질 수 있다는 H10프로그램은 임대차라는 기존의 부동산 원리 대신 협동조합의 공동소유권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시너지센터는 생활협동조합과 유사한 입주민 커뮤니티다. 단지 내 시설에서 소비를 하면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다양한 대여서비스와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해 ‘공동체경제’를 육성한다. 또한, 주민들에게 시너지센터와 공동주택을 운영하기 위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마을의 일자리를 마을에서 충당하고, 마을에서 소비하며,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나미(2022)는 논문 “인류세와 기후변화 ;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적 위기와 공동체의 대응”에서 마을공동체의 복원과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만이 에너지의 고갈과 환경위기에 맞설 재생가능한 자원이라고 주장한다. 내일의 공유는 관계성을 회복하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보고 나아가 기후위기 등 공동의 의제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이 되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공유가 그랬듯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상처럼 들리지만, 어제와 오늘의 공유가 그랬듯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시작된 일이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생활공간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마을공동체가, 마을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마을이 주거권을 보장하는 주거공동체가 지금, 오늘의 우리와 함께 있다.
900년 동안 살았다는 도깨비처럼, 공유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괴상하고 낯설다고 생각했던 공유라는 패러다임은 사실 도서관으로, 대중교통으로, 벼룩시장으로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해 왔다. 이 도깨비는 모습을 휙휙 바꾸어, 공유플랫폼과 구독경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오늘에 살아있다. 놀라운 힘을 지닌 이 도깨비는 자원을 활용하고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금 나와라 뚝딱! 화폐가치를 만들어내는 도깨비의 힘은 사회적 유대를 약화하고 노동시장을 악화하기도 했다. 도깨비에게 꽂힌 영리성이라는 검이 공유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 검을 뽑고, 우리의 도깨비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바로 그 도깨비 신부일 수도 있다. 우리의 고민과 실천으로 그 검을 뽑으면, 도깨비는 또 새롭고 찬란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지도 모른다. 두터운 사회적 연결망에 기반해 공동의 의제를 함께 고민하는 내일의 우리는 또 한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역시, 공유는 도깨비지!”
수습편집위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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