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신입편집위원 정강
*연세춘추 2025.03.24. 기사 ‘[등록금 인상 기획②] 등록금 인상, 찬성과 반대의 대립을 넘어서’를 참고해서 읽어주세요.
<인트로>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10여 년 만에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정말 등록금을 올려야 했던 것일까. 학교야 지난 10년간 언제나 그랬듯 돈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언론에서는 연세대가 전국 대학 중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학교가 버는 돈은 학생에게 쓸 돈이 아닌가? 등록금이 4.98% 오른 것은 동기들에게는 딱히 문제가 아닌가 보다, 국가에서도 조용하고 친구들도 문제 삼지 않는다. 쪼들리는 건 언제나 개인의 사정이다.
물가가 오르기는 했다. 분기별로 교통비가 오르는 건 기본이고 이제 서울 마을버스에선 환승도 안 된다. 주거비, 생활비, 통신비 등 각종 비용을 재고 따져서 조금이라도 더 가성비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윤리이다. 학교 운영하는 비용만 쏙 빼놓고 이 모든 것이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보다는 학생인 우리가 더 빈곤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는 학교를 1원 단위로 잰다. 내가 듣는 학점 수대로 수업을 매겨서 교수 머리마다 임금을 매긴다. 내가 밟는 백양로의 길이를 잘라서 평단가를 매긴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구독 프로그램은 내가 단독으로 구매하면 30만 원, 논문 사이트도 돌아다니면서 안 읽을 논문까지도 모조리 쓸어 담아 보자.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은 하루에 2리터씩 받아 마시면 생수 값 천얼마 정도는 버는 셈일 테다. 요즘은 책이 비싸니까 도서관에 신착 도서 신청하면 또 얼마간 괜히 배가 부르다. 더 나서서 더 뽑아먹는 것이 ‘꿀팁’이고 ‘갓생’인 세상이다. 이미 등록금도 내버렸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성비를 더 추구하는 일뿐 아닐까? 한 술 더 떠서 열심히 사는 인간들은 장학금이며 프로젝트며 학교에서 돈 타서 쓰는 것도 같다. 그들에 비해 학교를 알차게 다니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의 성실에 달린 문제다.
우스운 꼴이 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편집증에 걸려서 가성비를 찾을 게 아니라 학교가 그냥 돈 낸 값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교수 평가 뒤져가면서 이 사람은 별로고, 이 사람은 점수를 잘 주고 따위를 찾아다녀야 하는 게 아니다. 좋은 수업을 듣기 위해 삼백칠십만 원 돈 걸고 도박해서 결국 남들 돈 주고도 안 들을 수업 주워 담는 것도 웃겨 죽겠다. 낡은 학교 시설도 마음에 안 든다. 다 무너져가는 기숙사도 싫다. 돈은 충분히 낸 것 같으니 좋은 시설에 기왕이면 교수 한 명 당 학생 다섯 명 미만으로 받아서 제대로 가르쳐주면 좋겠다. 현실은 다섯만 모이면 그 수업은 폐강이다. 형편없는 대학, 심심하면 경영대 에스컬레이터[1]를 타면서 생각한다. 세상에 이렇게 갑을 관계가 뒤바뀐 소비가 어디 있나?
[1] 내가 연세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설. 타고 있으면 절로 부유해지는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래, 교육 소비자[2]라는 말이 있다. 나는 학생이 아니라 교육 소비자다. 그것도 대단히 악에 받쳐서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 피 같은 돈 삼백칠십이 면 인생을 바꿔도 몇 번이나 바꿀 돈이다. 그런 돈을 내고 우리가 이런 처지라니 말도 안 된다. 분명히 중간에 누가 착복을 했을 테다. 학교서 사용하는 돈은 모조리 투명하게 공개해서,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됨이 당연하다.
[2] 탈운동 표방 선본으로서 당선된 최초의 선본 들 중 하나인 제36대 총학생회(1999년)는 특정 정파에 의해 주도되는 소모적인 정치에 관한 논의 대신 학교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교육소비자’론에 입각하여 대학 공간을 ‘학생복지’를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했다. 선본의 이름 ‘자기로부터의 도전’은 교육소비자론이 의존하는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적 주체와 그것이 지향하는 자기계발의 관점에서의 학교공간 재편이라는 상징적 전환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등록금 사용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에 속한다. 의외로 검색하면 많은 것들이 학교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공개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투명성을 위해 이전에도 지금도 노력해 왔다. 무엇보다,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가 있다. 등심위에서는 등록금의 공정한 책정과 활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교를 앉혀놓을 수 있는 유일한 장이다. 그런데 거기서 이번에 등록금을 인상하자고 승낙한 것이다.
잘 모르겠다. 더 달려들어야 하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대신 이런 질문을 해 보자. 학교가 말하는 긴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교는 왜 언제나 그토록 위기이고 빈곤한가, 왜 학교에 대해 우리는 권리를 가지고도 알지 못하나, 왜 더 알려는 시도는 이토록 무력한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1> 등록금 인상의 논리들
학교가 등록금 인상에 대하여 제시하는 논리는 언제나 긴축재정이다.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한 지난 10년 간 최저임금이 인상된 것은 물론이고 에너지 비용, 용역비 등 각종 물가가 급격히 상승한 영향을 고려해 달라는 뜻이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학생활동과 연구 인프라 개선이 지체되고 있으며, 대학은 다양한 사업을 원활히 운영하지 못해 수입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3] 장기적으로 대학의 발전을 위축시키는 무조건적인 긴축 재정 대신, 학생과 학교가 합의를 통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그 혜택을 학생에게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2025 등심위 논의의 핵심이다. [4]
[3] 연세대학교. “2025 등심위 제1차 회의록”. 연세대학교. 2025년 1월 3일. https://ibook.yonsei.ac.kr/Viewer/Q7H0VDMYH1FW.
[4] 연세대학교. “2025 등심위 제4차 회의록”. 연세대학교. 2025년 2월 2일. https://ibook.yonsei.ac.kr/Viewer/BSXRUIBZPQK7.
그러나 한편으로 ‘돈이 없다’는 학교 측의 주장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연세대의 수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2024년만 해도 수익용 재산의 확보율이 38.9% 상승했기 때문이다. [5] 연세대의 재정은 지극히 건전한 것을 넘어서, 국내 여타 사립대학과 비교했을 때 전국 최고 수준이다. [6] 그러나 교육기관인 대학이 좋은 수익률, 1조 이상의 재정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5] 이상현. “[2025 대입잣대] 상위대 수익용 재산 확보율 건대 443.1% ‘압도적 1위’.. 연대 한대 톱 3”. 베리타스알파, 2025년 02월 17일.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312
[6] 고재연, 이미경. “국내 첫 대학법인 평가… 연세대학교 1위 [INUE·한경 대학법인평가]”. 한국경제, 2025년 10월 20일.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01357711
대학이란 어떤 기관인가? 대학은 학교다. 학교란 교육을 하기 위한 장소이지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영리 단체인 회사가 아니다. [7]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학교 재단은 수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한에서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의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그 수익을 사립학교의 경영에 충당하기 위하여’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8] 사업의 목적이 학교 경영에 충당하기 위함이라면 이 사업의 수익금이 학교와 학생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7] 학교재단은 학교재단의 이익을 구성원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설립 목적(교육, 학술, 장학)을 위해 사용하는 비영리 법인으로 분류된다.
[8] 사립학교법 제6조 제1항.
그러나 막상 연세대학교의 예산, 결산안을 살펴보면 연세대 법인의 수익사업은 연세대 운영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것 같다. 연세대가 법인 수익사업체로부터 얻은 이익 중 학교 운영 및 설비를 지원하기 위해 학교 운영 예산으로 들여온 금액은 [9] 2023년 수입총액에 비해 5.2%에 불과하며, 이는 2010년과 비교했을 때 고작 1.3% p 증가했다. 법에서 정한 하한선을 준수하는 이상으로 [10] 학교 법인에서 추가로 연세대의 재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교육부에서는 법인 전입금을 증대하여 대학교육에 대한 학교법인의 기여를 확대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전국 사립대학을 봐도 법인의 투자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11] 재정 건전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우리 학교 재단의 운영수익의 축적은 아마 여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사립대학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자본이나 잉여금 처분도 할 수 없다. 재단 입장에서는 돈을 쌓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토록 이유가 없는 축적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 것은 애초에 가능한 것인가?
[9] 경상비전입금이라고 부른다. 우리 대학에서는 연세우유, 연세빌딩 임대 등의 수익사업으로부터 그 돈을 확보하고 있다.
[10] 법정부담전입금은 사립학교법인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법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대학에 전입(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주로 교직원의 사학연금, 건강보험료, 퇴직수당 형태로 지급된다.
[11] 임희성. “2010~2023 사립대학 법인전입금 실태 분석”. 대학교육연구소. 2025년 2월 6일. http://khei.re.kr/post/3177.
<2> 꺼진 불을 다시 보기
1) 등록금심의위원회의 경우
그 모든 이유를 검정하기 위한 장이 바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이다. 2025년 등심위에서도 학생위원들은 이번 등록금 인상안 책정의 근거와 기금 운용 상황에 관해 질의했다.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자구책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도 마찬가지로 질문의 대상이었다. 교직원 위원은 장학이나 학생복지 예산을 제외하고 부서 운영 비용을 감축하는 등 자구책을 실현했으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12] 장기적으로 대학의 발전을 위축시키는 무조건적인 긴축 재정 대신, 학생과 학교가 합의를 통해 등록금을 인상하고 그 혜택을 학생에게 돌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2025 등심위 논의에서 학교가 점하고자 하는 논의지형이다. [13]
[12] 연세대학교. “2025 등심위 제1차 회의록”. 연세대학교. 2025년 1월 3일. https://ibook.yonsei.ac.kr/Viewer/Q7H0VDMYH1FW.
[13] 연세대학교. “2025 등심위 제4차 회의록”. 연세대학교. 2025년 2월 2일. https://ibook.yonsei.ac.kr/Viewer/BSXRUIBZPQK7.
그러나 등심위에 참여한 학생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등록금 인상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교직원 위원과 전문가 위원의 표결만으로 인상안은 확정되었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제도 시행 초기부터 등심위는 ‘논의’ 단계에서는 양측이 의견을 주고받지만, ‘표결’ 단계에서는 언제나 학측 안이 관철되는 구도가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2014년에는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는 학생위원들이 학측의 동결안에 항의 퇴장을 했음에도 교직원·전문가 위원들의 표결만으로 등록금 동결안이 가결될 수 있었다. 교직원 위원과 학생 위원이 동수로 참여하고 학교가 선임하는 전문가 위원이 등심위를 구성하는 현 체제에서는 학생 위원이 전원 불참해도 등심위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
등심위의 구조적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춘추 등을 통해 지적되어 왔다. 이 글에서 이미 논의한 정족수 문제는 물론이고 대학원과 외국인 유학생, 미래캠퍼스의 대표권이 보장되지 않거나, 제도해석을 학교 측에 유리하도록 했던 점들은 [14] 매 등심위마다 지적되었다.
[14] 남혜은, 정호찬 외, “[등록금 인상 기획②] 등록금 인상, 찬성과 반대의 대립을 넘어서”. 연세대학교, 2025.3.24.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32034.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학교가 등심위라는 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학교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등록금을 인상하지는 못했다. 2013년 총장 면담을 통한 등록금 인하를 제외하더라도, 2014년 이후 학부 내국인 등록금은 등심위를 통해 계속 동결되었다. 2015년 학부 등록금과 2024년 계절학기 등록금 인하, 2018년 신입생 입학금 16% 인하 역시 같은 흐름을 보여 준다. 이 사례들은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학교는 등록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등록금은 단 한 번도 등록금심의위원회라는 형식적 테이블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대로’처럼 보이는 등심위라는 절차를 통과해야만, 역설적으로 그 ‘마음대로가 아닌’ 결과—학생사회와 여론, 제도적 견제 속, 다시 말해 등심위 외부의 맥락 속에서 조정된 결정—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식적 절차 중 하나인 등심위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마치 등록금이 그 내부의 쟁점만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등록금 문제를 등심위 내부의 기술적·절차적 사안으로 협소화하는 위험에 빠진다. 등록금은 애초부터 더 넓은 정치적·사회적 장에서 구성되는 문제이며, 등심위는 그 장을 구성하는 하나의 제도적 표면에 불과하다.
2) 등록금심의위원회 투쟁의 역사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아닌, 등심위를 낳은 등록금 투쟁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등록금심의위원회라는 기획 자체가 가진 야망이 있다는 사실을 겨냥해 보자. 그 야망의 정체는 대학 내에서의 실력에 대한 욕망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 투쟁은 단순히 등록금 인상률/인하율을 두고 벌어지는 투쟁이 아니라 학생이 성원권을 확보한 학교에 대한 요구로 이해되어야 한다. [15]
[15] “등록금 심의위원회는 과도기적 제도였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등록금 책정위원회로 가는 것이었고, 그 싸움을 이어간 것이었죠. 등록금 투쟁의 전형이 [인상률의] 퍼센테지를 놓고 학교와 학생들 사이에 줄다리기로 기억이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전술이었고 (…) 전략이 있었죠.” 다돌. 2025년 11월 23일.
우리는 등록금 투쟁의 기원을 1989년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16] 89년 정부가 대학교육의 양적 팽창을 감당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늘리는 대신 사립대학 등록금 인상 규제를 없애면서 사립대학 등록금이 급격하게 인상되었다. 89년부터 IMF로 인해 인상세가 감소하는 97년까지 사립대학 재학생들은 학교의 예산과 재정 운영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채, 해마다 10% 안팎의 등록금 인상을 감당해야 했다. 이 인상 통보에 대해 반대하는 재학생들의 투쟁이 바로 등록금 투쟁이었다.
[16]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 결정 권한을 대학에 넘겼다. 이전까지는 문교부가 등록금 인상률을 관리했으나,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하여 등록금을 인상하도록 했다. 자율화 조치가 시행된 89년 전국 사립대학 평균 등록금은 100만 원 미만에서 323만 원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89년을 기점으로 하여 ‘등록금 인상 통보-학생 총회-본관 점거-협상’이라는 등록금투쟁의 기본적인 구도가 형성되었다. 등록금 인상과 등록금 투쟁의 격화를 다루는 신문 보도는 자율화 조치가 처음 이루어진 89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가(300건 미만 →633건) 96년 전국 대규모 인상이 결정되면서 또 한 번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등심위의 원형이 되는 ‘등록금 책정 분과’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6년 합의문이었다. [17] 그 해 노수석 열사가 시위 과정에서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면서 진상규명 요구와 등록금 인상 중단 요구가 결합되었고, 그 결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 1996년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은 최초로 ‘등록금 책정 분과’ 설치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고, 학생들이 대학의 등록금 책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공식적으로 명시한 첫 사례였다.
[17] 박병언, 이순희. “합의문”. 노수석추모사업회. 1996년 5월 10일.
물론 최초의 등록금 책정 분과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등록금 책정분과는 자문위원회로 출발했기에 심의나 의결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2001년 4월 20일 본관점거 농성을 통해 총학과 단대 학생회는 등록금 책정에 관한 사항을 교수학생협의회에서 논의할 것을 합의했다. [18] 이 투쟁의 성과로 2001년 교수학생연구협의회에 등록금소위원회가 마련되었지만 [19], 여전히 학교 재단은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6.7% 인상하는 등 비민주적 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학생들은 매년 대규모 인상 앞에서 납득하지 못한 채, 겨우 ‘참여’의 자격만을 보장받는 불안정한 위치에 머물렀다.
[18] 박인영, “학교·학생회 협약서 도출”. 연세춘추, 2001년 5월 7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4401.
[19] 정명원, “학교·학생 등록금 논의의 장”. 연세춘추, 2004년 7월 25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5748.
2004년 투쟁을 통해 등록금책정자문위원회를 심의기구인 등록금책정위원회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20] 학교와 학생의 협의문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05년 교수평의회는 “96년 합의문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학교 재정은 기획실을 중심으로 한 본부 경영진이 담당해야 할 문제이므로 학생과 교수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입장은 곧 교수평의회의 등록금책정위원회 불참 선언으로 이어졌다. 재단은 이를 이유로 학생과 합의대로라면 본래 의결기구가 되기로 협의한 등록금책정심의위원회를 강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학생 참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권리임이 드러났다. [21]
[20] 김아람. “비권의 한계인가, 집행력 부족인가”. 연세춘추, 2005년 2월 25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7369.
[21] 김남준. “교평, 등책위원 추천 거부하기로”. 연세춘추, 2006년 1월 1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8668.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결과적으로 2006년 등록금 투쟁은 7월까지 이어지는 장기전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등록금 투쟁의 화려한 부활’로 읽기에는 상황이 미묘했다. 오히려 학내 곳곳에서 투쟁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춘추는 학생회와 학교를 “등록금을 놓고 달리는 두 폭주기관차”에 비유하며, 학생회의 투쟁 방침이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총학생회 내부에서도 극단성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참신한 여론수렴’이라는 기획을 내세우고, 비폭력 시위문화인 촛불시위를 도입하거나 재단에 대한 감사청구를 실시하는 등 투쟁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22]
[22] 윤자영, “엇갈린 두 주체, 연세의 눈길을 사로잡다”. 연세춘추, 2006년 3월 2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8724.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2006년 4월 무렵 “투쟁의 의의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이 드물다”, “성과가 없다”는 여론이 학내에서 형성되었다. [23] 본관 점거를 포함해 7월까지 이어진 이례적 투쟁은 교육투쟁합의안을 이끌어냈고 등록금책정위원회의 논의를 재개시키기도 했지만, 학내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결국 43대 총학생회의 성과는 2학기에 합의문의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뒤이어 열린 44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비운동권 선본이 당선되며 흐름이 단절되었다. [24]
[23] 김영래, “대화의 부재 속에 빛바랜 교육투쟁”. 연세춘추, 2006년 4월 3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055. 11월 44대 총학 중간점검 기사에서는 ‘하긴 하는데’, ‘반응이 없어’, ‘변화가 필요’, ‘존재감부족’, ‘결과보고는?’과 같은 인상적인 평가가 남아있기도 하다. 김재욱, “지난 1년, 연세인 행복하셨습니까”. 연세춘추, 2006년 11월 6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958.
[24] 연세춘추, “[사설] 선본, Wisdom Of Wonderfulness가 돼주길”. 연세춘추, 2006년 12월 4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250.
이후 학내에서 소외되었던 등록금 의제는 2008년부터 ‘반값등록금’이라는 이름으로 학외에서 다시 집결되기 시작했다. 2006년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발언을 기점으로 반값등록금 정책이 정치권에 진입했고, 2007년 대선 국면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핵심 논쟁 중 하나로 떠올랐다. 후보 본인은 공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반값등록금에 대한 상상이 확산되고 있었다. [25] 서울권 사립대 총학생회들이 연대체를 꾸리고, 시민사회 〈등록금 대책 전국 네트워크〉가 조직되는 등 운동의 무게중심은 학내에서 학외로 옮겨갔다. [26] 2000년대 내내 학교 안에서만 정당화되던 학생운동이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전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값등록금은 2008~2009년 한국 사회운동의 주요 의제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25] 우리 대학 언론에서도 반값등록금을 가파른 사립대학 등록금인상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하는 논의들이 등장했다. 관련된 내용은 이상민, “[국장칼럼] 등록금 열병”. 연세춘추, 2006년 4월 10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148 등 참조.
[26]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된 등록금넷 범국민대행진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9148.
그런데 신기하게도, 반값등록금 운동 이후 우리는 학내에서 등록금 투쟁을 거의 추적할 수 없게 된다. 등록금 투쟁의 상징적 거점이었던 노수석추모제는 2010년대에도 이어지지만 문화제 형식으로 전환되는 등[27] 이전의 등록금 투쟁 형식을 유지할 동력을 잃었다. 학교 바깥으로 확장된 반값등록금 운동은 다시 학내로 회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28], 2011년 반값등록금 연고제, 반값등록금을 위한 전국 대학생 거리수업[29] 등 다양한 실천들이 활발하게 이어졌음에도 그 정점은 2011년이 마지막이었다.
[27] 정석엽, “등록금 문제, 문화제로 재 논점화”. 연세춘추, 2010년 4월 3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979.
[28] 연세대 내에서는 이후의 흔적을 좇을 수 없다로 간추릴 수 있지만, 반값등록금 투쟁을 주도했던 고대, 서강대, 숙대, 이대는 동맹휴학을 결의했으나 시험기간 등으로 학생총회 투표율이 저조하여 사실상 동맹휴학이 무산되는 등 학내의 관심을 지속하는데 실패했다. 이대희, “동맹휴업 실패… “하지만 촛불을 끌 수는 없다””. 노컷뉴스, 2011년 6월 10일. https://www.nocutnews.co.kr/news/4202850.
[29] 정세윤,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다”. 연세춘추, 2011년 9월 25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6916; 김종혁, “반값등록금 시위 도중 경찰과 충돌”. 연세춘추, 2011년 10월 1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6949.
그런데 정작 등록금 이하·동결세가 본격화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며, 흔히 ‘반값등록금’으로 인식되는 국가 학자금대출 확대정책(취업 후 상환제도 포함)은 2013년에야 시행되었다. 즉, 투쟁이 최고조에 달한 2011년 이후 학내 운동은 급격히 소멸했지만, 정작 그 '성과'로 여겨지는 정책들은 2013년에야 시행되었다. 투쟁이 종료 수순을 밟은 것도 아니고 투쟁의 동력이 사라진 뒤에 도착한 이 정책들을 과연 '투쟁의 결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3> 대학의 재와 먼지와 사리
2009년 등록금 동결이 결정되었던 2008년 12월, 중앙도서관 앞에는 흥미로운 자보들이 붙는다. 아방가르드 친구들 안녕?이라는 천연덕스러운 인사말로 시작하는 「등록금 동결, 그거 누가 그랬을까?」 자보는, 이번 동결이 등록금 투쟁의 성과라기보다 2007년 편입학 비리, 2008년 교직원 비자금 조성 사건 등으로 향한 학외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실제로 연세대의 등록금 동결 발표는 다른 사립대학들이 잇달아 동결을 선언하던 시점보다 더 늦게 나왔다. 더구나 비자금 보고가 있었던 12일, 중운위의 비자금 해결 요구 기자회견이 있었던 15일 직후로 시점이 겹친다는 점은 이 자보의 추측에 무게를 싣는다. 동결 결정이 등록금 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면 그 동결이 등책위를 거쳤을 것이라는 지적은 이 동결이 학생 참여의 성과가 아니라 학교 운영의 필요와 위기관리 전략 속에서 ‘독자적으로’ 생산된 결정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자보가 ‘등록금 동결’이라는 결과가 실질적으로는 교직원 처우 축소,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삭감, 외주화 확대 등으로 충당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평등·자유·연대로 나아가는 연세대 학생행진 또한 등록금 동결을 명목으로 학교가 ‘비정규 시간 강사와 학교의 미화, 경비를 담당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이 자보들에 흐르는 잔인한 비관의 정서는 명확하게 지시하는 바가 있다. 등록금 동결이라는 목표의 달성은 무언가 우리가 목표하지 않은 것과 함께 왔다.
2010년대에 우리 대학들에 주어진 것들을 일단 돌아보자. 학생들이 학내에서 의제를 더 이상 전유하지 못하고 스스로 소외되어 있다는 점은 앞에서 명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목표들은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동결 결정된 2009년에 따라온 2010년의 인상률은 2.5%로 2000년대 10%에 육박하는 등록금 인상률에 비하면 상당히 낮아졌다. 2011년 동결, 2012년 2.3% 인하, 2013년 0.8% 인하, 2014년부터는 등록금 동결이 계속 유지되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실질 등록금은 크게 낮아진 것이다. 장학 기준도 크게 변화했다. 소득 기준으로 장학금을 나누어주고, 실질적으로 학교 내의 분배 문제도 개선되는 것 같아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 [30] 결국 2013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등록금 책정분과라는 이상을 가졌던 등록금 투쟁은 비록 제도상의 결함들을 안고 있을지언정, 학교와의 협상 테이블인 등록금심의위원회와 등록금 동결이라는 애매모호한 응결점을 찾은 것 아닌가? 우리는 등록금 투쟁에 승리했던 것일까?
[30] 연세대는 2012년 등록금을 인하하면서 장학금의 상당 부분을 성적장학에서 가계곤란장학금으로 재편성했다. 이상욱, “133억짜리 제로섬 게임”. 연세춘추, 2012년 2월 29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403.
사실은 이렇습니다! 학생에게 있어 반값등록금 정책은 실제로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감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연계형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으로 일부 학생에게만 적용되었다. 국가장학금 정책의 대상이 아닌 학생들은 졸업 이후 상환하도록 하는 저금리 학자금/생활비대출 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교육의 수익자 부담 원칙은 지연되었을 뿐 경감되지 않았다. 대학에게 있어 그 실질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일환이었다. 재편된 국가장학금 II유형은 등록금의 인하 혹은 동결을 선결조건으로 요구함으로써, 자금지원을 매개로 등록금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이와 함께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선정해 이들 기관에 대해 서는 학자금 대출까지 제한했다. 고등교육예산은 충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 간 차등 지원을 펼치자 대학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었다. 교육여건 지표는 대학에 따라 사실상 굳어져 있고, 성과지표인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역시 수도권 대학과 국립대학들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다. 이로 인해 일부 대학은 취업률이나 재학생 충원율 등에서 처음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고, 대학 서열이 더욱 고착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구조조정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교원 수, 시설관리, 수업의 질 등이 관리 지표로 제시되었고, 이에 따라 차등재정지원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미달대학’이 지정되었고, 미래캠퍼스도 해당 조치를 피하지 못한 적이 있다. 지방 사립대들은 대거 위기에 처했고, 대학 통폐합과 학과 통폐합이 뒤따랐다. 등록금을 동결해야 하는 압력이 커지자 대학들은 다른 방식으로 재정을 마련했다.
국가 정책과 연동되어서 강도 높게 관리되는 내국인 재학생의 등록금과 달리, 외국인·대학원생의 등록금은 지속적으로 인상되었다. 연세대에서도 내국인 재학생들의 등록금 동결은 유지되었으나, 대학원생은 2016, 2020, 2024년, 외국인 유학생은 2017, 2019, 2020, 2023년 등록금 인상이 결정되었다. 외국인 입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국제대학/학부 신설도 증가하고 있다. 국제학부(대학)를 신설하는 것은 줄어드는 학생 수에 대응하고 재정 보충을 하기 위해서이다. [31]
[31] 조훈, “[수요논단] 대학의 국제화는 국가 산업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한국대학신문, 2024년 11월 27일.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71480.
인건비를 절약하려는 움직임도 파악되었다. 학습 자율성을 명목으로 자율학습기간을 도입해 실질 수업 시수가 줄어들었고, 대학은 이에 더해 도서관 운영 시간 감축, 성폭력센터 상담원 감축, 경비원 수 감축, 강사 구조조정을 통한 수업 축소 등 온갖 방식을 동원하여 운영비를 감축했다. 2021년 강사법이 도입되면서 강사의 노동 여건 개선이 의무화되자, 대학들은 강사를 대거 줄이면서 수업 자체가 사라지거나 대형화·비전문화되는 등 강의 질이 급락했다. [32] 이 상황을 보면 최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대규모 온라인 강의 AI 부정행위 적발 사건이 다른 각도에서 보인다. 윤리적인 책잡기에 가려져 더 필요한 질문이 감추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 한 강의에 많은 학생들이 몰리게 되었으며, 학생들은 점수 잘 받는 꿀강에 매달리게 되었는지가 논의되어야 했던 것이다.
[32] 응팡, “대학에서 강사들이 사라진다”. 연희관 공일오비, 2021년 1월 12일. https://brunch.co.kr/@yonsei015b/26.
물론 그렇다고 대학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의 부는 재편성되었고, 특히 연세대와 같은 상위권 대학의 경우는 이 구조조정 국면의 명백한 수혜자다. 명문대와 비명문대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상위 대학들은 이전보다 훨씬 넓은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다. 재단 자본의 증식은 더욱 가속화되었으며, 수익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학들은 자신들의 시장성을 적극적으로 강화해 왔다. 창업·혁신·대학스타트업이니 하는 이름들의 홍수, 계약학과의 확대, 기업과의 협력 체제가 ‘미덕’이 되는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교육시설·교지의 기본 조건까지 완화된 지금, 대학은 점점 더 그 자체가 기업처럼 기능하며, 기업처럼 될수록 더욱 '유능한' 셈이다.
<4> 상아탑의 상속자들
1) 소비자라는 태도에 관하여
우리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는가? 등록금 투쟁이 성공했다면 무엇을 불러왔을까? 지금 등록금 투쟁이 꿈꾸던 것 대신 도래한 것은 우리 대학에 어느 정도의 개선과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고작 불편 정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연세인들이 처한 환경의 핵심이다. 다른 대학들에 비해 너무도 유리한 토양이다, 마치 누가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은 기묘하고 오싹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결과는 단지 학교의 영악한 전략 때문이었을까? 국가 정책의 압력 때문이었을까? 연세대 학생은 그저 ‘러키비키 하게’ 좋은 대학을 구매한 소비자인 걸까?
그러나 정말 학교의 구조조정이 학생들의 의식과 별도로, 혹은 학생들의 승인과 별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누가 지금 다름 아닌 ‘손님은 왕’이라는 격언, 소비하는 자의 고유한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학교에 개입하고 있는가? 바로 학생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 2022년 학내에서 시급인상 및 처우개선 투쟁을 학습권 침해로 고소한 것 아닌가? 손해배상청구 내용도 상징적이다. ‘등록금을 수업 일수로 나눠 시위 소음으로 피해받은 일수를 곱한 후, 별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피해보상금’을 더하여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등록금을 하나의 서비스 가격표로 간주하고 대학을 그 서비스 제공자로 이해하는 소비자 논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내가 구매했으니 세상은 그 값을 보장해야 한다는, 모두를 거래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는 폭력적인 믿음이 가장 투명한 형태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소비자적 통치의 시도는 청소노동자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99년에 시작해서 점점 더 철저해진 교수평가 제도, 97년 경부터 강화된 행정 직원 서비스 요구, ‘종합봉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전산·행정 서비스를 기업처럼 효율화하라는 요구[33]—모두가 같은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더 나은 서비스, 더 빠른 응대, 더 세련된 행정.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이 요구들은 사실 모두 ‘교육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33] 김현정, 효율적 행정 개편이 서비스 향상의 지름길. 연세춘추, 1998년 3월 16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70.
2) 교육 소비자 담론의 출현
언제부터 이런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대하셨나요? 청소노동자 고소한 건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너무하다는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두들 학교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34] 바로 이 지점에서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 연세대는 흥미로운 장소가 된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교육소비자의 관점이 아직 ‘등록금 투쟁’의 이상과 경쟁하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4] 서론에 드러난 사고방식은 이 유형의 가장 극단적인 실현 사례이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밈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씨발 대학등록금뽕뽑는법”[디지털 이미지]. 더쿠, 2018년 10월 3일. https://theqoo.net/square/879571463.
학내에 처음으로 ‘교육소비자’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제36대 총학생회선거(1998년)에서이다. 36대는 비운동권을 표방한 최초의 총학 중 하나로, 기존의 ‘정파’ 중심, ‘소모적 정치’ 중심의 학생회를 비판하고 학생을 ‘학교 교육의 수혜자’로 규정하는 ‘교육소비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서 “정치적 성향은 학내 문제에 대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비판이 등장한다. 소모적인 것과 결부된 ‘정치’는 가장 긴요한 ‘학생 복지’와 대립항으로 설정되고, 학생회는 학생복지를 중심으로 할 때만 온전한 기구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금 흔히 말하는 ‘학생복지 중심 총학’의 원형이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35] 이 전략은 ‘탈정치 작은 총학’을 표방한 42대 총학에서도 반복된다. ‘정치운동세력’이었던 41대 총학은 ‘학생복지에 관한 정책’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정치’에 몰두하는 대신 투명하게 예산을 집행했다면 공약 달성과 학생 의견 수렴, 학생 복지가 달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비판이 나중에 고스란히 42대 총학에게 돌아간다는 점은 [36] 우습게도 비판의 준거가 되는 이 척도, 투명성에 대한 투표자 공공의 동의와 신뢰를 보여준다.
[35] 연세춘추, 자기로부터의 도전 - 김병기, 전민희. 연세춘추, 1998년 11월 16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549.
[36] 이상민, [십계명] 탈(脫)정치. 연세춘추, 2005년 9월 12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8142.
등록금 협상에 관한 입장에서도 교육소비자 담론과 등록금 투쟁 사이의 지향점 차이는 명확하다. 42대 총학은 총학의 역할을 “경기가 잘 진행되도록 하는 ‘레프리(심판)’이지 직접 뛰어들어서 싸우는 ‘권투선수’가 아니”라며 학생 사회가 “학교의 기본 속성”인 “학문탐구”를 잘하는 곳이 되기 위해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있는 것으로 보았다. [37] 그러나 총학이 원하는 레프리의 역할, 학교와 협상해서 정치 대신 장학금 등으로 복지하는 전략은 실제로 중운위의 반대에 부딪혀 논란을 일으키는 등 원활하게 추구될 수 없었다. 레프리가 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레프리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원활함이란 대표자 개개인의 역량이나 인물 차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캠퍼스 전체의 인식이 완전히 이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테다.
[37] 김아람. 2005.
그렇다면 그 변동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났나? 96년 노수석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강력한 학내 등록금 투쟁이 전개되었지만, 새천년의 연세인들은 이미 운동권에 대한 관심이 저하된 상태였다. 등록금 인상 문제는 모든 재학생에게 영향을 미쳤음에도, 투쟁의 장인지 합의의 장인지에 대한 의견은 크게 분열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등록금을 투쟁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합의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한편에서는 등록금 투쟁이 '과거 운동권의 폐단'과는 다르게 학생들에 의해 제기되어야 할 '정당한' 권리라고 파악했다. [38] 다른 한편에서는 학생을 대학교육의 소비자로 인식하고, 등록금을 자기에게 투자하는 자본으로 비유하며 대학이 가격에 상응하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9] 또 다른 입장에서는 경직된 등록금 투쟁 대신 학교와 협조·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40] 의견들의 각축은 등록금이 아직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또한 등록금 투쟁은 방식상 거부 대상일지언정 차마 아무 말 없이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38] 송인혁, “‘등록금 투쟁’ 왜곡 유감”. 연세춘추, 2000년 3월 27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39.
[39] 최우열,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등록금 문제를 진단한다”. 연세춘추, 2000년 3월 27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423.
[40] 연세춘추, “등록금 투쟁, 이래도 좋은가”. 연세춘추, 2000년 4월 10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562.
2002년에는 학생회의 독선을 지적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등록금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학생들의 독선적 속성을 포착하는 학측의 입장은 물론이고 [41] 학생들 사이에서도 등록금 투쟁에 관한 무관심, 관여 거부가 특징적으로 드러났다. 춘추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총학이 복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다. [42] 여기서 학생들이 요구하는 복지란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동떨어진 정치적 이슈’보다 ‘개인적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미래를 향상하는 것은 등록금을 얼마간 깎는 것이 아니라 ‘수업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이 시각은 등록금 투쟁의 쟁점을 등록금의 부분적의 인하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등록금 투쟁의 지향을 가격 흥정적인 것으로 한정하고, 그 지평 내에서 등록금을 얼마간 절약하는 대신 개인에 대한 투자로 전환해 줄 것을 촉구하는 논의이다. 이미 인식의 변화는 들어와 있었다.
[41] 연세춘추, “학교, 학생회 대화채널 아쉬워”. 연세춘추, 2002년 3월 25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5111.
[42] 오승준, “멀어진 학생회, 다가온 무관심”. 연세춘추, 2004년 7월 25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5627.
3) 결정된 것들에 대하여
핵심적인 변곡점은 2005년이다. 2004년까지는 운동권 학생회가 투쟁을 이끌어나갔다. 운동권에서 비운동권으로 학생회가 옮겨가야 한다는 논의가 점차 진행되다가, 2005년 낮은 투표율로 비운동권 학생회가 당선되면서 국면이 완전히 무관심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학생회에 특정 요구를 제기하는 글보다 ‘등록금 투쟁 자체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글들이 늘기 시작했다. 학생 자치 자체가 소멸한 것이다. 애초에 구매하는 장소에서 자치가 필요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격에 알맞은 값을 하도록 삶의 방식과 실천들을 미세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등록금 투쟁같은 소모적인 사업에 삶을 소모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것이 된다. 2007년에는 비운동권 총학 영향으로 등록금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2008년은 투쟁이 있었으나 이 기조가 이어져 투쟁방식을 변화하고자 한 촛불문화제조차 높은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촛불문화제와 결합되었지만, 학생들은 교육권과 노동권의 연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동체를 인식하는 지평 자체를 한정한 결과 학내 노동자들과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대신 서비스와 재화를 교환하는 무관한 타인과의 만남으로 축소해 버리는 것이다. ‘연대와 동원의 중간’이라는 표현은 학생들이 자기 의제와도 단절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43] 이는 단순한 사고상의 무능이 아니라 정치적 무능력이 양성되는 과정이었다.
[43] 김필, 이경민, “촛불만큼 뜨거웠나요?”. 연세춘추, 2008년 3월 30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1871.
2008년 웹진 연두에 게재된 한 이례적 칼럼을 주목하자. 이 글은 피노키오의 목소리를 빌려, 무상 대학 교육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학벌주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등록금 인상을 거절하지 못하며, 재단 적립금을 학생에게 돌려주는 방식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연세인을 비판하고 있다. [44] 이 이례적인 칼럼은 당대 그리고 이어지는 재학생들의 태도를 아주 구체적으로 날카롭게 도려낸 글이었으며, 앞으로 올 10년의 정서를 예비하는 글이었다. 비슷한 통찰은 2009년 연세대 축제를 다룬 또 다른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한 경쟁 속에서 타인을 ‘희생변제물’로 삼고, 대다수의 가난한 대학생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축제 문화를 꼬집은 이 짧은 기고 역시 동시대 학생들의 감각을 정확히 드러냈다. [45]
[44] 김필, “피노키오는 등록금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춘추, 2008년 8월 30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2249.
[45] 이혜정, “[시선] 희생제례와 상상의 실험”. 연세춘추, 2009년 5월 23일.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13883.
이 이후의 논의는 전도되어 오히려 이 탈정치라는 기조가 마치 갑작스럽게 도래한 것처럼 수선하는 글들이 곳곳에서 솟아났다. 자연화된 지금-여기의 시각 속에 갇힌 한 탈정치에 관한 비판은 공허한 ‘참여 독려'의 말에 그친다. 이 독특한 참여의 양태는 그것이 기울인 노력을 제대로 보상받은 셈이다.
이 모든 흐름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는 분명히 등록금 투쟁과 모르고 멀어진 것이 아니라 알고 멀어진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 혹은 탈정치라는 말의 본래적인 착각이 여기서 드러난다. 연세대 재학생들은 등록금을 둘러싼 대학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여러 경쟁하는 시야들 사이에서 결국 교육 소비자의 관점을 선택했다. 나아가 타인과 제도에 대한 통제 시도를 자신의 생존 전략으로 삼는 이러한 감정 구조 전체가 바로 연세인의 초상화 아닌가? 그 초상들이 모여 지금의 대학을 이루고, 그 대학이 국가·재단과 함께 짜는 체계가 지금의 대학-국가-학생 관계를 만들어 왔다. 그래서 등록금 동결이 가능했고, 대학이 떠맡은 구조조정의 부담을 주변화하면서 ‘누가 버려질 것인가’의 문제를 학생 스스로가 판단하고 수용해 온 것 아닌가? 그 자연화된 선택의 값이 10년을 돌아 지금 여기, 등록금 인상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나가며> 탑을 도는 사람들
결국 이 정치도 붕괴가 임박했다. 대학은 더 이상 지금의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 대학은 너무 비싼 기관이 되었고, 지난 세대가 탈정치라는 방식으로 봉합해 두었던 체계에 이미 금이 가고 있다. 10년 만의 등록금 인상은 그 균열의 증상이다. 영세한 대학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최적화의 수단을 이미 다 사용했고, 이제는 그 어떤 ‘조율’이나 ‘조정’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탈정치의 배치는 사실상 개입의 상상력을 봉쇄한다. 대학은 지금의 형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모든 것의 붕괴 조짐으로 보이는 10년 만의 등록금 인상이라는 결정 앞에서, 우리 교지는 어떤 방식으로 대학이라는 장소를 다뤄야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 앞에서 하루는 학교에, 다른 하루는 국가에 그 책임을 묻고 따졌다. 혹은 이미 학교를 떠난 선배들에게, 대학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 구조 전체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승인하고 지불하기로 한 학생 스스로에게 지금 대학의 모습에 대해 묻지 못한다면, 교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왜 이 구조가 마치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도래한 것처럼 말하고, 왜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을 우리 안에서 응답하지 못하고, 오로지 탓을 돌릴 바깥을 찾아야 하는가? 그렇게 애써 건져 올린 ‘우리’라는 표상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재학생의 대부분이 한 목소리로 등록금 인상을 반대한다고 말하더라도, [46] 각 재학생이 이번 인상을 감당해야 하는 토양은 당연히 천차만별이다. 이 서로 다른 토양을 하나로 묶어낸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유산처럼 물려받은 단 하나의 유사성—소비자로서의 대학생 정신일 것이다.
[46] 2025년 1월 2일부터 7일까지 신촌, 미래, 일반대학원 총학이 함께 실시한 ‘등록금 인상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교가 제시한 5.49% 등록금 인상률에 응답자 3천800여 명 중 96%가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소비자 정신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역사 앞에서, 이 허구적 동일성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상속받는 사람이 스스로 상속받을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상속된 등록금 투쟁의 역사로부터 어디까지 도망할 수 있는가? 그 앞에서 우리는 대학을 ‘구매할 수 있다’는 믿음의 편협함을 스스로 의심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믿음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부당한 일도 없다. 대학은 우리 대부분에게 결국 스쳐 지나가는 공간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집도, 차도, 가족도, 노후도 갖지 못할지 모른다는 비관을 마음 한켠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 삶의 굴레 속에서 대학이라는 장소 하나만을 분리해 생각하라는 요구는 무리다. 그렇게 된다면 기만일 것이다. 그런 믿음은 또 다른 허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라고 믿는 이 대학 안에서 여전히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존재하는데… 구조조정되고, 뿔뿔이 흩어지고, 갖추지 못해도 빚이라도 진 것처럼 대학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가 이들보다 더 먼저 대학의 종말을 말할 자격을 가질까? 일할 권리를 요구하고, 학술할 권리를 요구하고, 학교에서 여자로 퀴어로 동식물로 존재할 권리를 요구하는 자들이 곳곳에서 소용돌이치는데, 누가 감히 여기를 버리듯 떠나는가? 곳곳에서 대학이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증오스러울 정도로 차근한 노력이 아닌가?
시각자료설명
그림1 경향신문 1989년 3월 25일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등록금투쟁의 결과 학교와 합의한 내용을 중앙도서관 앞에 게시했다. 학생 서넛이 모여서 중앙도서관 기둥에 붙여진 자보를 보고 있다.
그림2 아방가르드 우리가 간다! 가 중앙도서관 기둥에 게시한 「등록금 동결, 그거 누가 그랬을까?」자보. 이하는 전문.
아방가르드 친구들, 안녕? 시험 보느라 정신없지, 밤새가며 공부하다가 졸고, 레포트도 같이 내야 해서 마음만 더 급하고, 학점 걱정은 곧 다강로 크리스마스마저 무덤덤하게 만들어버린다니까! 슬프다 슬퍼. 그런데, 이 와중에 우리의 이 복잡한 머리 속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준 소식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등록금 동결이 아닐까 싶네. 동록금 마련 어떻게 할 지 생각하기도 힘든 이 시간 이지만 어번 학생들은 등록금 마련에, 대출 이자에, 집안 걱정에 속이 썩어가고 있었을 테니. 다행이야, 다행. // 그런데 말이야. 친구님들, 등록금 동결, 그거 누가 그랬을까? 누가 이 학교 등록금 동결시켜 준걸까? 교육부 장관이 등록금 동결시키자며 초대한 만찬에도 '그런 데 왜 가냐'며 무시했던 종장님이, 어떤 일로 마음을 돌리셨을까? 학생들 3500명의 서명과 등록금 동결 기자회견에 힘입어 마음을 돌리셨을까? 아니면, 때맞춰 터진 엄청난 비자금 사건에 휩쓸려 눈물을 머금고 등록금을 동결했을까? // 그래, 친구. 나도 충강님이 등록금 등결을 외치는 우리를 보고 뜻을 돌렸다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겠지. 연세대학교, 정확히 말해서 연세재단이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한 이유는 07년도 편입학 비리, 08년도 교적원들의 비자금 조성으로 인한 YONSEI의 이미지 타격 대문이야. 우리 할 들을 거였다면 고려대나 이화여대, 성신여대 등이 등록금 동결 발표할 때 같이 했겠지. 그랬으면 매일 주구장창 부르짖는 'The First. The Best'의 이미지도 살리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인상 남기고, 일석이조잖아. 연세대학교 이거, 등록금 동결 되었다고는 하지만 완전 구려, 이건 확실해. 구리면 종 개끗하게 해줘야겠지? 난 깨끗한 연세대를 취해 우리가 할 일이 많다고 말하고 싶어, 그럼 한 번 살펴볼까? // 1. 등록금 동결이 학생들의 뜻을 받아들인 거라면, 학교는 등록금 책정 위원회를 제대로 세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거야, 그래야 앞으로도 학생들의 의건을 수렴해 등록금 동결을 할 테니까! 아니라면, 학생들이 동결을 원해서 되었는지, 비자금 가리려고 그런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이런 '우연의 일치'(정말 우연일까?)는 밝혀길 길이 없지. 그렇다면 총학에다 "동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등록금 책정 위원회를 만들도록 학교와 싸우라"며 응원해야겠지? 될 수 있다면 '장학금을 얼마나 더 늘릴 지'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도 같이 얘기하라고 주장하는 거이. 등책위에서 등록금 책정뿐 아니라 운용도 함께 논하는 위원회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 그런 것을 요구하자고. // 2. 학교가 돈을 줄여서 등록금 안 올린 것을 어디에서 메꾸는지 살펴봐야 할거야. 분명 교직원 임금 깎고, 최저임금법 개정되면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깎아서 돈 메우려고 할텐데. 흐음, 학교가 힘들까-, 월급쟁이나 (이하 YONDOO 워터마크로 인해 보이지 않음)
그림3 제48대 총학생회가 게시한 '재주는 곰이 부리고'라는 낙서가 적혀 있고, 12월 3일 인상이 발표된 이후 총학생회에서 등록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학교 당국과 대화를 나눈 타임라인이 12월 15일까지 순서대로 작성되어 있다. 타임라인의 내용은 연세지 141호 연표를 참고.
그림4 신자유주의에 맞서 평등·자유·연대로 나아가는 연세대 학생행진에서 게시한 등록금 투쟁에 관한 자보. (전문요약) 연세대는 등록금 동결을 어렵게 선언했다. 벌려놓은 사업이 너무 많아서 등록금 동결을 뒤늦게 선언했다. 등록금 동결이 만만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소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등록금 투쟁을 넘어서는 싸움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림5 익명의 사용자가 작성한 '씨발등록금뽕뽑는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 1. 500ml짜리 텀블러가져와서 정수기최소 4번담아먹는다. 그럼 2L한통에 1500원. 100일나와서 매일 저렇게떠다먹으면 15만원이득 2. 충전기가져와서 핸드폰충전. 보조배터리도 충전. 노트북도 충전 3. 공짜와이파이로핸드폰노트북존나한다 4.e북 이용한다 시발개이득 책존나많이공짜로본다 5.학교에서 특강열리는족족 참여한다. 그럼 특강시작전에 간식나눠준다. 간식열심히받아먹는다 6.그다음엔.시발.... 7.아무리등록금뽕뽑을래야 8. 뽑을수가.. 결론=330만원어치........생수
참고문헌
김일환. 2016. "한국 대학구조조정의 형태 변화에 대한 연구 : 2003-2012." 경제와사회 110: 201-238.
—. 2025. "대학구조조정의 역사를 통해 본 윤석열 정부 대학정책." 경제와사회: 53-97. 10.18207/criso.2025..145.53
박거용. 2011. "이명박정부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교육비평 (29): 9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