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외로움과 어떤 공간

<141호> 편집위원 금별, 선우, 현서

by 연세편집위원회

[글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말]


우리는 각자와 서로의 외로움을 살펴보기 위해 가을과 겨울 동안 서로가 자주 마주하는 외로움들이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매주 한 번씩 가져왔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길게 다룬 몇 가지 주제들을 추려 각자 글을 써나갔다. 울 수 있는 장소, ‘고향’이 무엇이며 그곳은 어디인지, ‘집’이 무엇이며 그곳은 어디인지…. 이 세 가지 주제를 각자 하나씩 맡아 자신의 대화록을 정리해 기록했다. 그 밑에는 그 외침에 대한 길고 짧은 반말투의 답글이 달려있다. 대화 당시의 느낌을 조금 더 살리고 싶을 때는 대화의 속기록을 발췌해 곳곳에 짧게 실었다.


이 글은 명시적으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면서도 그것을 고향과 집이라는 공간의 축들로 살펴보고 있다. 우리는 대학에 입학한 뒤 나고 자란 지역과 단절되었고 서울에서 낯섦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공통의 배경이 있었다. 그 떠남의 과정을 통해 갖게 된 고향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곳인지, 어떤 힘과 괴로움을 주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고향을 떠난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고향을 떠나 우리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곳, 언제든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우리가 물리적·심리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집에 대한 말들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글은 외로움의 순간이나 그 기원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가 떠나온 고향과 머무르는 집(그리고 동시에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현서:

외로움. 그것이 형체가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있을까? 방 안 잘 들여다보지 않는 어느 한 장소에, 헤집어 보는 데 기력이 필요한 마음 한 켠에 머무르고 있을까. 사실 내 생각에 그것은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에 힘입어 곧잘 자취를 감추는 일종의 만성적인 상태인데, 어떤 예상치 못한 순간이 그 망각을 깨어낼 때 내 초라한 외로움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야 비로소 내가 외로움의 존재를 ‘느낀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제법 잘 어울릴 만한 순간에, 혹은 일견 외로움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활기찬 순간에라도 불쑥 고개를 드는 외로움을 붙잡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나는 학창 시절 모두가 웃고 즐기는 축제에서도 인파와 소음에 질려, 체육관 2층에서 친구들의 무대를 간신히 내려다보며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서글퍼 약간의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그때 내게는 연말을 맞았지만 끝나지 않은-벗어날 수 없는-고행길에 대한 두려움, 바쁜 와중에 공연을 준비한 친구들의 노력을 한껏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즐기는 무언가를 내가 즐기지 못한다는 외로움 따위가 있었다.


그렇게 어느때라도 쉽게 고개를 들던 외로움은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대학이라는 새로운 장소에 오며 자취를 조금씩 감췄다. 내가 잠정적으로 머물고 있는 외로움의 정의에 따라 나는 가끔, 단단해져 가는 나의 망각을 깬 사건을 만나 그것을 고민하다 다른 전개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외로움을 쉽게 잊어온 것만 같다. 외로움을 잘 잊게 된 것은 나를 오랜 시간 괴롭게 만들었던 심리적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략이기도, 어쩌면 유전이라는 축복의 뒤늦은 발현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위한 몇 가지의 과정은 내가 외로움을 대하는 방식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왔다고 느낀다. 우리는 매주, 대체로 흐린 날씨에 만나, 한 주간 실시간으로 맞이하거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길어지는 외로움을 상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한 주간의 생각을 우리의 일기장과 머릿속에 붙잡아두는 것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위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애써, 혹은 느슨한 정도로나마 시도해 왔다. 망각으로 지워지는 외로움을 머릿속에 붙잡아두는 것, 그것을 서로 앞에서 말이나 글이라는 형체를 입혀 바라보는 것. 그것이 대단하지 않은 이 글의 거의 전부다.


이 글은 예상보다 더 질척이는 내용들을 담게 되었는데, 이는 언제나 글 안에서 새로운 문제의식, 명료함과 시의성 같은 속성들을 욕심내어온 나의 이전 목표들과 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것을 다루는 이 글도 명료하지 않다. 그나마 외로움이 모두에게 만성적이고 예측 불가한 시점에 불쑥 찾아온다는 점에서 소재의 시의성 정도만을 기대할 수 있는 이 글을 지면에 뱉는 이유, 뭘까?


어떤 종류의 글을 써나가든지, 글이 나를 앞서간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글도 분명히 내게 그런 측면을 가질 것이다. 글은 지금 모니터 앞에 놓여있는 나보다 더 완성된 어떤 것, 나에 의해 활자라는 형태로 고정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이라는 완결된 흐름을 글에게 쥐어주기 위해서 나 자신을 밀어붙이고, 다그치고, 그러다 지쳐 글을 종종 방치해 두고 다시 어루만지는 과정이 글에 쌓여있다.


나는 내가 ‘완고’한 글을 독자로서 다시 읽게 될 때 언제나 그 글이 담은 확신에 위로를 받으면서도(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으로 인해) 동시에 부끄럽다. 그 글이 다시 독자가 된 나에 비해 너무 수려하고 확신에 차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내가 고른 표현의 수려함 때문이 아니라 글과 그 글을 쓴 주체 간의 필연적인 모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글도 언제나처럼 그런 부끄러운 글이 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이 글을 지면에 남기는 것은 구조되기를 바라지 않는 sos 신호를 남기는 마음에 가깝다. 외로움에 대해 이런 고민을 품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리기. 외로움을 마음과 생각 한 켠에 품고 사는 혹자가, 고민의 자리에 홀로 놓인 것이 아님을 확인받도록.


선우:

두어 달 전 내 옆에 있는 가까운 이에게 나 너무 외로워! 소리지른 적이 있다. 말하는 나도 듣는 그도 ‘외롭다’는 형용사를 어찌 다뤄야 할지 몰라 곤란에 부딪쳤다. 그것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듣는 그가 나에게서 기침처럼 터져 나온 그 말의 맥락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말을 한 본인이 문장의 시작과 끝을 전혀 밝히지 못하는 건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얼른 그 어정쩡한 단어로부터 도망쳐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이후 나는 외롭다는 선언을 하게 된 그 날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외로움이 내 몸과 마음을 휘감을 때의 느낌은 늘 생생하고 익숙한 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움켜 쥐어 입밖으로 소리내 말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 몇 년 간 정신과에 간헐적으로 내원하면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오는 추락의 느낌을 일상 속에서 다루는 훈련을 받아왔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계획하지는 않더라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늘 자연스레 함께 해왔다. 그래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명목 아래 “정상적인” 삶의 궤적을 위해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었다. 그런데 두 달 전, 그러니까 ‘외롭다’는 말을 입에 올린 시기에 나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만두었다. 의사는 물론이고 내 주변 누구든 염려할 만한 결단이었지만, 그리고 나도 누구보다 정신과 진료는 최소 6개월 간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했다. 약이 잘 맞지 않아서도, 의사가 싫어서도, 완전히 회복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져서도 아니다. 단지 내가 왜 이런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더 이상 설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도 (‘이번 주는 안 좋았어요 – 왜 안 좋았나요? – 잠을 못 잤어요 – 왜 못 잔 거 같나요? – 불안해서요 – 왜 불안한 것 같나요? –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어요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식의 반복되는 대화), 내 안색이나 신체의 오작동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통 내가 진단받은 병명을 말하면 그들은 모두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너는 단지 이러저러한 트라우마나 트리거에 의해 감기 같은 정신 질환을 겪는 중이야. 이건 너의 영속적 상태가 아니야, 너는 곧 나아질 거야…. 언젠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나의 불능과 고통을 헤집어내어 모든 걸 해명하는 것에 지쳐버렸다. 이런 해명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받쳐주는 많은 인간과 사물에게서 멀어졌다.


외롭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게 된 사건은 그런 피로함을 느껴 병원과 (잠재적으로) 결별한 시기와 들어 맞는다. 나는 진료실에서도 단 한 번도 ‘외롭다’는 형용사로 내 상태를 설명한 적이 없다. 몸과 정신이 가라앉는 느낌을 의사에게 설명하기에는 왠지 감상적이고 좁은 단어라고 느꼈다. 적어도 내게 그런 사적이고 구체적이고 연약한 단어는 친밀한 이의 눈을 바라보아야 뱉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 이해하고 싶은데 실패하는 느낌, 누군가에게 내 가슴을 잘라 열어 그 안을 훤히 보여주고 싶은 느낌, 누구도 내 집에 들이고 싶지 않은 느낌, 초대받지 못한 느낌, 초대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모순적으로 뒤엉킨 온갖 느낌들을 외로움이라는 말로 총칭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서가 141호 글 기획 회의에서 외로움에 대해 살피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별다른 깊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글을 싣는 작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의미나 당위의 문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철저히 나 자신을 위해서 현서가 내민 손을 지푸라기처럼 잡았다. 나를 지금 이곳에서 이루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고장난’ 나를 의학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 해명하는 건 그만두고, 가장 친밀하고 사적이고 연약한 방식으로 내 곁에 있는 모든 쓸쓸함을 살피고 싶다고 느꼈다. 동시에 함께 글을 쓰고 고민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밥을 함께 먹는 소중한 동료인 현서에게도 지푸라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가 체험하는 것과 다른 범주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외로움이 ‘지푸라기’를 운운할 긴박한 감각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가 현서, 별과 외로움을 탐구하는 모임을 시작한 지 두 달이나 지난 상황이다. 이런 작업의 의미를 믿고 설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언어화 한다는 게 내게는 커다란 모순으로 느껴졌다. 살아내고 싶어서 동참하게 된 일이 어딘가에 ‘실릴 만한’ 공적인 가치가 있는 글로 읽히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의욕을 잃었다. 현서와 별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와 대화할 때는 외롭지 않은데, 이걸 글로 담아낸다고 생각할 때 외로워져.


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나와 별과 현서의 시간을 두 가지 차원의 실험으로 여기며 몸을 던져 성실히 참여하는 것이다. 나의 외로움을 붙잡고 공부하는 것, 그리고 외로움을 글로 기록하며 나누는 공동체를 이뤄 보는 것. 설령 글이 이곳에 실릴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더라도 (연세지 사람들, 독자들, 우리들에게), 아무 당위나 명목이 없는 작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몸과 마음을 기대고 도움을 받아온 이 공동체에게, 그 일원인 내가 느끼는 것들 – 이 작업에 아무런 건설적인 계획이나 희망 없이 뛰어든 맥락을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느낀다. 서로를 지푸라기처럼 잡고 외로움을 잘 들여다보기. 그것이 전부다.


별:

사전을 펼친다는 것


사랑을 물어다닌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연인에게 품겼던 당시의 감정을, ‘좋아한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을 때. 사랑일까, 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다니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부터 시작해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까지. 근근한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던 지인들에게도, 80명의 친구들에게 그렇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사랑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나의 결심은 사실,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필요와, 용기를 따져보고 싶었던 것이도 했다.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약속의 말인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겠어서. 나의 사전에 아직 그 뜻이 쓰이지 않았던 단어를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책장에 꽂힌 사전에 쓰인 사랑이나, 그 누군가의 사랑과는 나의 사랑이 어쩌면 다를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세상에 이미 쓰인 말들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나의 마음은 아주 새 약속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2년을 왔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움과 동시에, 나의 사랑은 그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구별하는 과정이었다. ‘a=b다’라고 고정되어 있는 식으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이미 존재하는 등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관계성이 언어화되지 않은 채 내게 들어와 있음을 그 누구보다 나의 마음은 알았다. 마음은 감각하고 있지만 도무지 형언되지는 않는 그 사건들의 한복판에서. 마음의 리듬을 미처 재빨리, 총명하게 따라오지 못하는 말을 뒤로 하고, 나는 그렇게 사전을 펼친 채 마음이 쓰게 했다.


사랑이 무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처음의 의도를 잃은 채, 한편에서 더 크게 느낀 것이 있다. 80명의 친구들의 대답을 하나같이 들으면서. ‘한 단어 아래에 이렇게나 서로 다르구나’. 사전은 표준국어대사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사전 또한 있다고 정말 오롯이 느낀 적이 이때부터이다. 그리고 사실은 대사전보다는 내 주변인들과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자의 사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것과, 언제든 펼쳐 열어 맞대어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생각하게 됐다.


상대의 사전을 펼쳐 열어 보겠다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 상대와 나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 순간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은 어느 정도 상호적인 교감을 나누는 관계에서 이는 것으로 전제되니, 그러니까 사전의 주인들끼리 마주앉아 들여볼 수 있는 기회의 단어이다. 쓰여진 것과 쓰일지도 모르는 것이 대화하게 되는 순간.

대화를 잃어버린 채 사전 그 하나 홀로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다. 외로이 놓인 사전. 외로이? 우리는 정말이지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릇 영향권의 영역에서는 ‘나’의 경계가 희미해지게 마련인데, 그것이 정말 뚜렷이 느껴지는 때가 바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때일지 모른다. 많고 많은 감정 중에 나 홀로 있음을 느끼게-되는 감정이 바로 외로움. 독백의 시간.


지난 7월 편집실에 모여 서로의 글감을 공유하던 중에 현서는 대뜸 외로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댔다. ‘아차-’ 싶었다. 내가 저 아이의 사전을 너무 오래도록 닫아둔 것이던가, 사전의 주인이 제 발로 찾아와 ‘외로움을 읽어줘’라 말하기에 이루게 둔 것인가. 홀로 놓이게 된 현서의 사전, 그 속의 여러 마음들 중에서도 정말 홀로홀로 있던 외로움을 들여다봐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사전을 펼쳐 서로 들여다보게 됐다. 제 사전에조차 쓰이길 망설이고 있는 마음들의 분주한 질감을 듣고 느끼는 시간.


1. 현서와 울 수 있는 장소


(2025년 9월 17일(수) 대화)

별 현서 어제도 울었어?
현서 지하철은 울기 좋은 장소.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 표정을 보지 않아서.
별 만약에 집에서 울고 싶으면 어떻게 울어?
현서 방에서. 어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고 느낀 게 몸이 거부하는 것처럼 엄마 아빠 앞에서 절대 눈물이 나오지 않아.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는 것처럼. 어제도 비슷하게 애인과 마주보고 있을 때는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뒤돌면 빵 터지듯이. 누군가의 앞에서 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한 경험이야. 몸이 반응하는 거니까.
선우 자취방에 혼자 있을 때는 울어본 적 없어?
현서 자취방의 좋은 점은, 소리 내어 울 수 있다는 것? 고등학생 때는 칸막이 책상에서 울거나 저녁 시간에 쉴 때 침대에 누워 울거나.
우는 장소.jpg

<이미지: 2025년 10월 13일(월) 금별 일기장 발췌본>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체로 '또 울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서울에서, 학교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이제는 편히 울 수 있는 공간이 이 자리가 된 것 같다.'라고 적혀 있다.

별 요새는 내가 우는 곳이 바로 거기야. 어디든 내가 있는 곳. 요새는 열람실에 자주 있으니까 거기서. 어디서든 울어도 되지만, 맘 놓아서 울고 싶다는 장소나 관계를 갈망하는 게 분명 있는 것 같아. 선우는?
선우 어디서든 울 수 있다. 눈물이 안 나온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고. 참기가 어려웠던 적은 있어도…. 그럼에도 나 혼자서 울고 더 힘들어지든, 아니면 툭툭 털고 일어나든 내게 사라지고 하는 의식으로 눈물을 선택하고. 요새는 그 선택이 의식적이라고 느껴질 정도. 울면서 청소를 했어 최근엔. (…)


현서:

어디에서 터놓고 울 수 있을까? 물론 사람은 이론적으로 언제든 어디에서든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울지 않기가 기대되는 순간이 참 많다. 예컨대 면접을 볼 때, 중요한 시험을 볼 때, 치과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손을 꼭 잡아줄 때,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성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특정한 규범이나 기대를 떠나 몸이 마음에 앞서 눈물에 제동을 거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나의 경우에는 나의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쏟을 수 없는 요상한 알고리즘이 몸 안에 탑재돼 있다. 이 점은 내 몸의 반응임에도 ‘알고리즘’에 빗대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몸이 울지 않는 방식으로 반응할 것을 먼저 계획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지하철에서 자주 울었다. 지하철에서는 서서 울 수도 있고 앉아서 울 수도 있다. 피곤하거나 졸고 있는 사람처럼 살짝 고개를 숙이고 울면 된다. 서서 운다면 인파를 등지고 울 수 있어서, 앉아서 운다면 서있는 사람들을 장막 삼아 울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내 얼굴이 아닌 다른 것들을 애써서 들여다보고 있기에 지하철은 울기 좋은 장소다. 누군가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 내 눈물 자국이 남은 가방을, 이내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라도 아마 그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모른 척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들이 휴지를 건네거나 선뜻 등을 토닥이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나는 지하철에서 기꺼이 울 수 있다. 내 눈물이 아무 무게도 갖지 않는 곳, 이런 곳을 눈물이 ‘외’로운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곳에서 나는 기꺼이 눈물을 쏟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울기(crying) ‘의식’을 수행한 것이 위로가 되었고 또 그 의식 수행의 장소로서 지하철을, 불가피한 이유로 택하게 된 것 같아 약간 서글펐다. 쉬이 공간을 고르지 못하고, 곧 도착할 집 혹은 그 외의 어딘가에서 울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이나 계획을 세우기 전에 그냥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눈물이 먼저 나와버렸달까….


그러니 좀 더 생각해보면 울 수 있는 장소를 정해두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눈물의 장소로 지하철을 택한 불가피한 이유는 사실 계속 어떤 생각들을 하다 그냥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소를 ‘택했다’고 말하기에도 조금은 모순이 있다. 앞단락의 표현처럼 ‘택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쓰다보니 이것 또한 일정량의 모순을 품은 기묘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울 수 있는 장소란, 그저 내가 울 수 없는 자리의 여집합일지도 모른다. 울 수 없는 자리 혹은 순간 말고는 어디든 울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러니 더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내가 울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내가 울지 못하는 장소, 울지 못하는 순간이다. 나의 외로움은 그런 곳에서 온다. 나는 대체로 외롭기 때문에 울기보다는, 어떤 순간 울고 싶은 ‘나’에게 솔직할 수 없다는 것이 외로움을 부른다고 느낀다.


별:

울면 우는 것이지, 울 수 있는 장소를 따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사실 여기, 그리고 저기 이렇게 단칼에 구획지어 울 수 있는 곳을 가리킬 수 없다. 선우가 말했듯 어디서든 울 수도 있고, 현서가 말했듯 어딘가에서는 몸이 울음을 멈추게 한다. 울음은 사실 제 몸 누일 곳과 누이지 못할 곳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울 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것은, 어디선가는 울음을 참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여기에선 터놓고 울지 못하겠다, 아- 얼른 터놓아 울고 싶다. 울음은 나의 연함과 약함이 드러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나의 연함이 다른 것이 아닌 표정으로 드러나게 될 때. 나의 표면이 기어코 나의 속을 실낱없이 드러낼 때. 때문에 우는 순간은 정말 나의 알맹이가 밖으로 나온 한 순간인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안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그 순간, 나는 나를 밖으로 꺼낸 거다.


울음과 외로움이 연결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밖으로 꺼내어진 나의 나를 어딘가에선 가려야 했다. 한 꺼풀 벗겨진 그 자신을 어디 뉘일 곳 없다는 그 외로움. 누군가에게는 보여주지 못하겠을 때, 나만이 한껏 품을 수밖에 없는 나의 울음에 대한 외로움. 우는 일 자체는 적었으면 하면서도, 현서가 울 수 없는 여집합이 점점 커지기를 바란다. 현서의 울음을 기꺼이 곁에서 지켜주는 대화자가 되고 싶고, 또 현서가 아닌 누구일지라도 당신이 우는 순간에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선우:

현서 너랑 지하철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던 날이 떠올라. 지하철에서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 모두가 서로에게 무심하고, 그런 무심함이 마치 잠시 머무는 이동 수단에서 꼭 지켜야 할 규범인 것처럼 느껴져 지하철 속 공기가 답답하다는 말을 했잖아. 너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래서 현서가 지하철에서 울기 의식을 수행했다는 기록을 읽으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이해가 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눈물을 불러온 감정이 - 외로움이든 무엇이든 -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거고, 홀로 울지 않는 이상 눈물은 전염되잖아. 내 눈물을 보는 이를 동요시켜서 위로의 말이든 포옹이든 눈물에 관한 질문이든 뭐든 건네 눈물을 막아내려는 시도가 부단히 이루어지고. 그래서 눈물이 전염되지 않는 곳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저번에도 말했듯이 어디서든 쉽게 눈물을 흘리면서 일시적이지만 강한 해소 - ‘씻김굿’ 또는 ‘카타르시스’ - 를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취미가 있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앞에 있는 이가 누구든 그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내 슬픔에 잠기기를 선택해온 것 같아. 눈물의 무게가 나에게는 남들보다 좀 가벼운 셈이지. 눈물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나한테 그리 큰 고민이 아니었어. 그런데 최근에 어떤 사건 이후 나는 내 눈물의 가벼움을 새삼 깨닫고 충격을 느꼈다. 오랜만에 본 엄마의 눈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해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내가 울면서 전화를 한 어느 밤 이후로 매일 악몽을 꿨다는 거야. 꿈 속에서 나는 멀리 서서 다가오지도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고 했어. 정말 끔찍했어. 딸이 한밤중에 울면서 전화가 왔는데, 멀리 있어 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음성으로만 눈물과 그것을 가능케 한 상황을 상상해야 한다니. 그걸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작작 울어라ㅋㅋ)


‘울 수 있는 곳’이라는 화두를 던진 현서의 마음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의 얼굴보다 눈물을 참고 참다가 후일 혼자 어디선가 해소하는 사람의 몸짓과 침묵을 떠올리게 되어. 내가 외롭다는 느낌에 잠식되어 수업도 잘 나가지 않고 잠적했던 지난 학기에 우리집 문 앞에 찾아와 빵이랑 쪽지를 걸어뒀던 너를 떠올리게 되어. 그러니까 너는 내가 뿌리는 눈물을, 울음의 당사자인 나보다 더 깊고 지난하게 들어 보려고 한 거야. 나는 눈물을 참는 중인 너를, 또 내가 편하게 울 수 있도록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들의 몸 안에서 모이는 눈물들을 제대로 듣고 보려고 해왔을까. 예전에 내가 너한테 선물한 시집에 있는 시, 김중일 시인의 ‘눈물의 형태’라는 시가 생각나. 그런 이야기를 하며 또 너는 운다/ 나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쇠젓가락을 가지고 네 맞은편에 앉는다/ 그리고 쌀알처럼 떨어진 네 눈물을 아무 말 없이 하나하나 집는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형태라는 듯 …


김중일_눈물의형태_.jpg

<이미지: 김중일의 시 ‘눈물의 형태’를 읽고 생각하며>

*공책 배경에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얼굴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두 인물 사이에는 젓가락과 밥그릇이 놓여져 있다. 오른쪽에 위치한 인물이 눈물을 흘리고 있고, 그 눈물이 밥그릇에 떨어지고 있다.


2. 선우와 고향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의 애인은 어딘가를 ‘고향’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깨달은 건 관념적으로 ‘고향’은 비로소 떠남을 통해 성립하는 공간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대구-진주 토박이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유년기 - 옆 동네 거창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그곳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누군가 고향을 묻는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내가 거쳐온 영남 지방 여러 도시들 중 이름을 하나 댄다. 평소에 고향이라는 단어는 그 정도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사소한 주제로 입에 오를 수 있고, 친구들과 음식이나 언어습관을 비교하는 순간에도 가끔 등장한다.


그리고 그곳, 구체적으로 짚을 수는 없어도 서울에서 차로 네 시간이 걸리고 마음을 제대로 먹어야 왕복 이동을 시도해볼 수 있는 그곳을 ‘고향’으로 강하게 호명할 때, 나 혼자서든 내 앞의 상대에게 말할 때든, 그 ‘고향’ 이라는 단어가 비교적 큰 힘을 가지게 될 때는 서울이 나를 외롭게 만들 때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얼굴이 험상궂어 차갑고 무관심 할 때. 이 도시가 애써 정주하고자 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에게 내어줄 자리는 없다고 말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서울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나 음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개인들의 품성이나 언행 탓으로 쉽게 돌릴 수 없는 거대한 공기의 흐름이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고, 모두가 무언가를 팔거나 사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지난 공사가 끝난 건물 옆에는 또 다른 ‘신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 우상향 곡선을 갈망하는 흐름이다. 물론 이런 커다란 흐름 안에서도 부지런히 눈을 돌려 내게 유의미한 관계를 길어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예를 들어 나는 줄곧 친구들의 집과 마음을 은신처로 삼아 왔다. 거기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그 속에는 변함없는 우정과 따뜻함이 있다. 내가 도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걸 절대 비웃거나 보채지 않는 묵묵함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와 샴쌍둥이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 도시민으로서 외출하는 날이 있고, 나도 결국은 피신을 그만두고 홀로 서울을 마주 봐야 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잘 참아진다. 운이 안 좋은 날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싶어진다. 내 삶이 자본주의로부터 절대 멀어질 수 없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이 도시에서, 내가 숨을 쉬는 것조차도 하나의 죄악이라는 것을 잊고자….


그렇게 서울이 미울 때 내 부모님이 살고 있는, 내가 지금 구사하는 말의 억양과 세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을 형성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돌아갈 때도 있다. 하루 이틀 정도라도 서울이 아닌 곳에 가고 싶어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거기서도 나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느낀다. 나는 내 고향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나는 그곳의 모든 것을 ‘비-서울’이라는 틀 안에서 재고 판단한다. 미디어에서 늘 보도되듯이 ‘쇠락’하고 있고 곧 ‘소멸’의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는 내 고향은 서울에 비해 너무 좁고 비밀이 없고 떠나갈 계획을 세우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나는 커다란 도시가 내 고향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 착취가 또 다른 형태와 크기로 고향의 온갖 구석에 스며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제 고향에서도 만날 친구들이 없고, 상경한 나를 기특하게만 여기는 어른들이 종종 나를 – 어떨 때는 차가운 도시의 얼굴보다도 더 – 외롭게 만든다. 그곳은 내가 정주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지금의 나를 맞이할 수 없다. 방학을 맞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때, 얼른 서울에 있는 애인과 친구들에게 가고 싶어질 때가 많다. 예약되어있던 날짜보다 더 일찍 출발하고 싶어져 기차표를 새로 살 때도 있다. 정말 변덕스럽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인지 지금 살고있는 서울인지 모를 그 ‘그리운’ 고향이라는 것이, 나를 가장 외롭지 않게 만드는 때가 있을까? 그건 그 사이 어딘가를 이동하는 순간이다. 기차나 버스에 타서, 또는 더 길고 피로한 운전을 통해서, 짧은 거리라면 걸어서, 이동할 때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가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건 그립다는 느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운 무언가를 향해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만이 나를 강하게 휘어잡는다. 나를 반길 얼굴,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대해 중얼대는 소리를 들어줄 사물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이동하며 그리는 형상과 도달해서 마주하게 될 실재가 얼마나 닮아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그리움을 가능하게 한 관계(맺음)의 기억들이 있으니 괜찮다. 나는 계속해서 떠난다. 내 고향은 이곳저곳 다른 시간대에 흩어져 있지만, 그것들은 내 안에서 쌓이고 새로이 구성되고 있으니 한 곳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는 셈이다.


추신. 고향이 어딘지, 있기는 한 건지 생각하던 바를 이곳에 와락 옮기다보니 몸이 어딘가로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수많은 그리운 고향을 거느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심지어 누군가의 고향이 되었을 - 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어떤 익숙한 얼굴들이 그립다. 그런데 그 그리움이 나를 기쁘게 만든다. 내일 볼 수 있을 거니까.


별:

선우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3년 전, 학교엘 다니러 이곳 서울로 오게 됐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고향이란 것이 생겼다. 20년을 넘게 살아왔던 집이, 이제는 편도로 6시간을 빼곡히 채워서 어쩌다 한 번 가는 곳이 됐다. 왕복 12시간은 되다보니 살던 집은 더이상 여느 때처럼 쉬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마저도 명절에 새벽같이 일어나 재빨리 기차표 한 장 선점하지 못하면 갈 수가 없는 정말 으레 말하는 고향이 된 것이다.


고향.jpg

<이미지: 2025년 3월 27일(목) 금별 일기장 발췌본>

*하얀 배경의 공책에 손글씨와 손그림이 그려져 있다. '5) 마음, 시야의 주체성 기르기. 눈알 네 개가 아바타를 에워싸고 있고, '신경쓰지 X'라고 쓰여져 있다. 마음의 지도, 벌어짐에 대해서. 한반도 전도가 그려져 있고, 서울과 의령의 위치에 점이 표시되어 있다. 집이 멀리 있다 마음에는 그만한 공간이 있다. 한 사람마다의 '세계'는 다르다. 아바타 세 개가 있고, 각각 머리 위에 원이 겹겹이 그려져 있다.'

‘마음의 지도. 벌어짐에 대해서. 집이 멀리 있다. 마음에는 그만한 공간이 있다.’


고향과 서울에서의 새로운 집 사이 약 350km의 거리는 마음에도 그만한 거리를 안겼다. ‘집’을 말할 때면 새로운 집과 옛날 집 중에서 나는 아직도 옛날 집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선우와 나는 집이 아주 멀리 있다. 하지만 멀어짐과 달라짐에 대한 쓸쓸함은 이제껏 붙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자연히 좋아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고향이 내게 주는 향수는 그런 거였다.


먼 집이 된 고향, 그런 고향과 나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온 물리적 거리만큼의 마음 거리. 친밀했던 것들과 떼어지면서 생겨난 최초의 한 겹. 떼어지고 싶어서 떼어지는 것이 아니라, 떼어질 수밖에 없음의 상황. 그 최초의 한 겹은 겹겹이 되고, 쌓이기만 반복했다. 그렇게 여러 겹은 다시 하나의 공간이 되었고, 떼어진 것과 다시 달라붙기까지는 이제는 어색함과 분절감이 있었다. 선우가 ‘나는 내 고향에서 가장 이질적이다’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고향을 생각할 때에 찾아오는 외로움이란 그런 거다. 그런 시공간이 있다. 쉬이 갈 수 없다는 불가능성과 어렸던 미성숙의 기억을 점하는 곳.


동생 편지.png

<이미지: 2021년 4월 17일(토)에 막내 동생에게서 받은 편지.

고향에서 서울로 올 때면 12살 어린 동생이 이별 편지를 써주곤 했다.>

*A4용지에 편지가 쓰여있다. '예준 올림. 2021년 4월 17일 토요일. 별이누나에게 누나 빨리 공부랑 수업끝나서 빨리 만나서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추억 또 만들어야지. 그래서 누나랑 재미있 신나게 만나서 놀고 싶어ㅠㅠ 공부 수업 빨리 끝나서 다시 만나자 아 맞다 그리고 누나 할말이 있어 누나 사랑해 하트. 우리 빨리 만나자 안녕 빠이빠이 사랑해! 나도 공부 잘해서 받아쓰기 또 100점 맞으께 공부 잘할게 사랑해하트 안녕 우는 아바타 얼굴. 받는 사람 금별누나 하트.'


고향 떠나 서울 와서 분명 쌓아진 겹 또한 존재한다. 말과 글, 음으로 부대끼고, 몸과 땀으로도 부대꼈던 이곳에서의 인연들. 선우가 그리워 반길 얼굴들 중 하나가 무려 나일 것이라는 김칫국을 마신다. 이곳 서울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캠퍼스 안팎 또한 고향이 되겠지. 고향을 그저 떠난 곳-이 아니라, 마음 배경으로 삼아둔다.


현서:

둘과 나(경기도 출신)는 나고 자라 온 배경도 상황도 꽤나 달라서, 별볼일 없는 내 고향 이야기도 조금 해볼게. 나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동네에 머물면서,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를 아직도 주말이면 자주 서성이고, 그 학교 앞 건물 1층의 변화 계보를 읊어볼 수도 있어. 그래서 선우의 >고향< 정의에 따르자면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아서, 고향이 없어. 그것이 내게 슬픔이나 외로움을 주는가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아주 익숙한 친구가 생긴 느낌이 들어. ‘친구’는 너무 다정한 표현이려나?


그러니까 서로를 오랜 시간 애호해온 사이라기보다는 의도와 관계없이 계속 마주치게 되고, 관심을 주든 안 주든 항상 자기 자리에서 주어진 몫을 잘 수행하고 있는 애. 동네란 것은 아무래도 공간이다 보니 설계나 구획에 맞춰서, 대체로 그 존재만으로도 제 역할을 잘 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동네는 매년 똑같이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길은 여전히 좁고 보도블럭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지. 내가 이 공간을 ‘나의 동네’로 인식한 14년 전쯤 그때부터 변함없이.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동네 길을 걸으면, 딱히 회상을 원하지 않는 순간이더라도 옛 기억에 머리속에 물밀듯이 들어온다. 길을 같이 걷던 친구들, 그 중 특히 좋아했던 애, 그때의 날씨, 서로를 계속 바래다주었던 것, 그리고 그들과 나눈 대화, 약간의 먹거리 따위가.


선우와 고향(현서) 사진.jpg

<이미지: 다녔던 초등학교로 향하는 동네의 길>

* 밤이 되어 어두워진 하늘 아래, 1차로 차도와 양 옆의 자전거 도로, 인도가 난 길의 모습.


동시에 (서울과 구별될 만한) 고향이 없어서 외로운 순간은, 이 동네를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자신있게 선언할 만한 구심점이 없을 때일까. 선우 네가 말한 대로 먹는 음식, 어휘나 말투, 타인을 부르거나 대하는 태도 따위가 지역마다 다르니까, 떠나온 고향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 그런 것들이 대략 설명될 수 있기도 하지. 그러나 내 동네가 낯선 타인에게 서울이라는 ‘표준’에 가까운, 그곳에 닿고자 애쓰는, 표준이라는 그 말만큼이나 무난한 무향무취의 공간으로 해석된다고 느낄 때, 낯선 상대가 쉽게 이해하거나 기억할 만한 나의 공간적 출처가 없다고 느낄 때, 내 동네 이름을 뱉는 것이 딱히 덧붙일 말이 없는 사족 같은 정보처럼 느껴질 때 조금 외로운 것 같다. 사실 나는 엄마의 몇 안 되는 전라도 사투리를 장난처럼 따라하는 이상한 특색을 가진 사람인데 말야(꼭 이 특색을 지역과 연계할 필요도 없겠지. 사실 우리 엄마의 말투는 그 어떤 사투리도 아닌 엄마만의 말장난에 가깝고 난 그것이 좋아).


3. 별과 집


집.jpg

<이미지: 2025년 2월 13일(목) 금별의 일기장 발췌본>

*하얀 배경에 검은 글씨체가 쓰여 있다. '2025년 2월 13일(목). PM 23:48. 연세지 140호 동계 합숙 세미나. 화성 병점역 인근 파티룸. 완이가 발제하고, 모두들 '내 미래 집 그려보기' 과제를 하고 있다.

스크린 앞에서 시계방향으로 소민, 완, 지슬, 태현, 나, 선우, 채원, 태웅이 앉아 있는 구도의 책상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완이 발제 목차 0번의 주제가, '집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집에서 느끼는 감정 집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지, 였다. 흐앙. 딱히 생각이 없었다! 응어리진 마음은 있었는데, 형언되는 것은, 형언하고 싶은 것은 부차적이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올 2월 연세지 동계 합숙 세미나 때에 공간 세미나 발제가 있었다. ‘집이란 어떤 존재인지, 집에서 느끼는 감정, 집에서 주로 무엇을 하는지’ 등등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미래의 집 그리기’ 시간에 나는 그 무엇도 그리지를 못했다. 사실 그리지 않길 택한 것이었다. ‘나는 미래의 집이 그려지지가 않는데…? 음. 옛날부터 없어 왔는데.’ 무엇보다 나에게 ‘집’이라 어루 만져지는 것이 지금 당장 있지가 않았다. 설령 희미한 형체가 어떻게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친구들에게 내보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응어리진 마음만이 느껴졌다. 그러한 마음이 절로 형언되는 것이나, 형언하고 싶다는 의지는 부차적이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저 형언되지 않는 어떠한 묵직한 마음이 ‘있다’고만 어렴풋이 알았다. 그것의 리듬이나, 마음의 속마음은 몰랐던 것이다.


집이라는 개념이 그랬다. 글을 쓰기까지 두 달 동안 현서와 선우와 집-외로움을 얘기했고 이미 어느 정도 완성해둔 글도 있었지만, 마감을 하루 앞둔 날 어떠한 깨어짐이 왔다.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내 집’을 감히 그리지를 않아 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않고서 집과 맺는 관계에서의 외로움을 말하는 것은 진짜일 수가 없었다. ‘집’을 떠올리지 않기로, 더이상 생각 않길 애써 택하며 도망친 만큼, 드리워진 외로움이 속에 있었다. 쌓여 알게 된 앎이 아니라, 무너져 내려 알게 된 앎이었다. 외로움은 바깥으로부터 자연히 오는 것이기도 했지만, 내가 도망침으로써 자아낸 것이기도 했다. 마음 어딘가에 말이라는 것이 덮혀지지 않은 어느 공간이 있었고, 사실은 나는 그곳을 들여다보기를 무의식적으로 피해오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숨어왔고 또 숨으려는 곳을 나도 몰랐던 거다. 마음이 먼저 숨어버리고 그 궤를 알려주지 않아 한참 뒤에야 더듬어 그곳을 찾아내게 될 때. 집을 생각하는 마음을 재빨리 다시 더듬어야만 했다.


사실은 정말이지 집은 여러 곳이 된다. ‘주거’의 형태를 물리적인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안주한다-는 느낌을 주면서 지속적으로 걸음이 닿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그곳은 집이다. 선우가 연세지 138호 사진전에서 ‘어디든 집’이라고 말했듯. 마음이 잠을 잘 수 있는 곳. 이런 것을 따르면 보통 나의 마음-집은 일기장, 책, 누울 수 있는 평평하고 딱딱한 길바닥, 애정에 기반한 관계 등이 된다.


그 중에서도 관계에서 오는 안주-감은 서로 간 교감에 기반해서 그럴까, 더욱 지속적이고 가시적이고 ‘확실하다’며 더욱 자주 머무르고만 싶어진다. 누군가와 맺게 되는 함께의 집 말이다. 어디든 집이 될지라도, 그곳만큼은 더 오랜 집이길 바라는 곳. 집은 짓고/들어가고, 그저 있고/머물고, 나오고/떠나며 집이다. 누군가와 함께 짓고, 머물고, 오가는 온갖 흔적이 곳곳에 있는 공간. 그곳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저 함께 있으면 그걸로 좋다’는 지금-여기의 존재감만이 충만히 느껴지는.


내 최초의 집과 오랜 집은 아무래도 가족들과 함께한 집이지만, 가족들과의 집으로부터 나와 처음 지었던 집은 고등학생 1학년 때. 교제하던 연인과의 것, 그리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와의 것이었다. 고된 일과를 보내고 돌아가게 되는 곳, 여전히 어린 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곳, 서로 함께여서 좋음-을 공유하는 곳, 토닥임이 있는 곳. 그러던 어느 한 날, 내가 그들에게 집이 되어주지 못했을 때, 혹은 그들이 내게 집이 되어주지 못했을 때. 나는 그 이후로 집을 잃었다고, 그리고 집을 잃어 왔다고 사실은 지금까지도 알아채지 못해왔다.


집 밖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은 나를 외로이 만들지 못한다. 그보다는 집 안에 있더라도 더이상 포근히 몸과 마음을 맡기고 누워 잠들지 못하게 되었을 때. 집 문이 잠겨 들어가질 못할 때, 열쇠구멍은 그대로인데 내가 더 이상 열쇠를 끼워 넣지 않게 될 때, 혹은 집이 무너져 내렸을 때. 나는 더이상 집에 있지 못하고 외로이 된다.


집과 외로움.jpg

<이미지: 2025년 6월 13일(금) 금별 일기장 발췌본>

*하얀 공책에 검은 글씨체가 쓰여 있다. '2025년 6월 13일(금) PM 17:26. 00이랑 관계 유지에 시간을 갖기로 했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드문드문, 특히 밤에 집에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일단, 있는 것에 집중하자. 외로움과 우울은 부정의 상태, '없다', '결핍'이라 생각하는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때 필요한 건, '긍정', '있는 것 보기', having, Being의 관점!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 건 확실하다. 내가 글을 써낼 수 있는 것도,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것도 확실하다. 요리를 해도 좋구...'


집은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눈에 비친 자연이 아니라, 내 속에 들어선 하나의 자연. 내 속에서 쌓이고, 머물고, 드나드는 여전히 내 안의 것. 눈 밖으로 비치는 것이라야 이것이 다르고 저것이 다르고 또 어떻게는 같지만,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어 같고 다름의 시비가 무색한 곳. 그런 점에서 누군가와 이러한 마음-집에 함께 있다는 감각은, 교감이 빚어내 쌓은 흔적이다. 집은 내 가장 안에 있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의 속마음은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이미 들어서 있다’는 감각이 주는 어떠한 안일함 혹은 안주감. 이곳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그 자신의 외로움을 말할 수 없다.


선우:

집과 불화하는 시간이 있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이 모임에서 처음 꺼낸 때를 더듬어 보니 나는 ‘청소기 돌리기’에 대한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불결한 거 다 빨아들이겠다는 느낌으로 거의 눈 감고 막 청소하고 그럴 때가 있거든. 근데 먼지 하나하나 닦는 행위의 청소가 아니라 그냥 청소기로 슉 이렇게 ‘진짜 지저분하네’ 하면서 미는 게 그 후자가 어떤 부분에서 정말 무관심한 청소다. 집을 이렇게 내 공간으로서 가꾸는 게 아니라 그냥 최소한의 위생을 위해서, 여력이 없어서 하게 되는 그 행위가 되게 별로라는… 생각을 했어. 우리 집에는 내가 보기 싫어서 제쳐두는 공간이 있는 것 같거든. 눈길도 잘 안 주는 공간. 베란다 구석이든 TV 쪽 수납장이든, 옷장의 왼쪽 구석도 그렇고…. 내가 내 몸을 돌보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와 좀 비슷한 거 같아.(10/19 대화 중)”


“외로움은 점점 더 외로워져 우리집의 기다란 베란다 한 구석에서 늘 숨을 죽이고 날 쳐다보고 있다. 애석하게도 나는 빨래를 널 때 외에는 베란다에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난 베란다의 왼쪽 공간에만 건조대를 둔다. 오른쪽 공간에 눈길을 준 적은 별로 없다. 밀대로 바닥을 밀거나 진공청소기로 몇 초 안에 불결한 것들을 빨아들일 때, 그럴 때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발을 들인다. 외로움은 그런 곳에 있다.(9/18 일기)”


무관심청소.jpg

<이미지: 무관심 청소>

*하얀 배경에 청소기와 선으로 연결된 초상의 그림이 있다.


여기서 집은 별이 네가 말한 넓은 정의로서 집이라기 보다는, 내가 살림살이를 두고 그것들로 내 삶을 작동시키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이다. 내 영혼이 머물러 사는 곳. 그래서 집은 몸과 동일시하기 가장 쉬운 곳이야. 내가 집과 맺는 관계가 온전하지 못할 때는 내가 나의 몸을 거부할 때와 늘 겹쳐 있어. 그것이 순간이든 조금 더 긴 시간동안이든, 내가 내 몸과 하나됨에 집중하지 않고 잠든 것처럼 움직이고 있을 때나 가슴 깊숙한 곳에 얹혀 있는 가시를 모르는 척 어마어마한 양의 밥을 목구멍으로 욱여넣을 때다. 그럴 때 내 집은 아프고, 불결하고, 못나 보여. 내가 벽에 붙인 포스터들이 꼭 모르는 얼굴처럼 느껴져. 그러면 집에 있어도 다른 ‘집’을 찾아 떠나고 싶어지는데, 꼭 내가 아닌 다른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느낌과 비슷해.


가끔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남들의 소리를 듣기 싫어서 이어폰으로 신경질적으로 귀를 틀어막는 시기가 찾아와. 희한하게 집에서도 똑같이 해. 이어폰 대신 tv로 야구 중계 방송을 크게 틀어두는 거야. 집은 고요한데 내 안의 말소리마저 듣기 싫으니까 그래. 이렇게 집과 몸을 빗대어 그 속에서 내 외로움을 바라보다 보니, 10월 19일의 대화 중에 ‘무관심 청소’라는 괴상한 개념을 입에 올리게 된 거다. 먼지가 얼마나 쌓였는지, 어쩌다가 먼지가 이곳에 수북해지게 되었는지 헤아릴 새도 없이 청소기로 빨아들여 내 눈 앞에 있는 것을 당장 없게 하는 청소가, 내 몸의 언어를 듣지 않으려는 무심하고 철저한 회피와 맞닿아 있었어. 별이 네 말을 빌리면, “더이상 생각하지 않길 택하며 도망친 걸음만큼, 속에는 드리워진 외로움이 있”는 거야.


물론 늘 불화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나의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비로소 집과 화(和)하며 집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 갓 이사해 어수선하게 꾸며진 집에 온 현서가 “여기 정말 선우 집 같다”라고 말했을 때 난 우리 집을 무척 사랑하게 됐어. 별이 네가 우리 집에 처음 와 잘 자고 간 날에도. 또 애인이 어질러진 부엌에서 티백과 머그잔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능숙하게 찬장을 여는 순간에도 그래. 내 몸을 다른 이와 포개어 그 몸의 무게와 질감이 피부로 느껴질 때 아이러니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감각하는 것처럼….


현서: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구호가 많은 이에게 절실하듯이, 로또에 당첨되면 곧바로 집을 사겠다고 이야기하듯이…. 그냥 집이 아니고, ‘나의 집’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주 오래전, 동굴을 찾아 지내던 인류의 조상부터 이어져 온 일종의 본능이 아닐까? 이 욕망에는 수억대의 부동산을 확보하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물을 붓지 않고 정주할 수 있는, 충분히 쉬고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둘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별과 선우가 말한 대로 어디든 집이 될 수 있고, 어떤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 상대의 마음까지도 집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기쁘고 소중한 일이다. 그건 ‘내 집 마련의 꿈’만큼이나, 혹은 그보다도 어렵고 귀한 일이 될 거야…. 그럼에도 나는 ‘집’을 생각하면 자꾸 그것을 물리적 공간으로 떠올리게 되네. 내가 나를, 그리고 그 집 자체를 돌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예컨대 서글픈 일이 있을 때 몸을 웅크리고 눕거나, 씻거나,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말이야.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내어주고, 계절에 맞춰 냉기나 훈기로 집이 나를 돌본다면, 나도 집을 돌봐야 하지. 가구 배치나 집 꾸미기, 더 주기적으로는 먼지나 머리카락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이불을 털고 등등의 방식으로.


집은 과묵하고 정직한 공간이어서, 내가 어떤 이유로 그것을 돌보지 않았을 때 저항하지 못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생각해. 그러니 집-집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면, 일단 지금 머물고 있는 공간-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곧 나를 관찰하는 것이 된다. 늦잠을 자거나 등의 이유로 아주 급하게 나가야 했던 날 귀가하고 나면, 집에 그 순간의 정신없음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게 씁쓸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 그런 점에서 나는 요새 그런 집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아. 나와 정직하게 관계 맺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나의 집을, 곧 나 자신을 시간을 내어 더 잘 돌보기를 바라.


또 선우가 고향에 대해 얘기할 때, 이동하는 순간에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했지. 그 시간은 향해가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비슷하게 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내가 지금 향해가면서도 그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곧 지금 머무르는 공간, ‘나의 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공간이 있고 그래서 그곳으로 그리움을 품고 돌아갈 수 있고 그 시간이 우리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갖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도무지 지하철 안에서는 그리움만으로 나를 채울 수 없지만(이때 나를 채우는 다른것들: 무관심 의무, 피로감, 요새는 박혜경의 노래들) 그래도 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 그리고 그것이 나를 다른 어떤 때보다 안심시킨다. 그 안심의 순간을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어서, 선뜻 집을 나설 수 있는 거지.


글을 마치며


삼 개월간 우리는 외로움을 더듬고 그곳에 말을 붙였다. 알아내길 기대하면서가 아니라, 마음이 말해주길 기다리면서. 때문에 우리의 접촉은 회의라는 이름이 아니라 ‘만남’, 논의가 아니라 ‘대화’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렇다, 이 글은 필자들 사이에 이미 있던 친밀감을 배경삼아 시작된 하나의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더 드러내는 방향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외로움이라는, 어쩌면 겉으로 꺼내기에 쑥스럽고 혼자만의 공간에 지나지 않을 그곳을 우리는 서로에게 꺼내보였다.


선우 메모.jpg

<이미지: 2025년 10월 25일(토) 선우의 메모>

*하얀 배경에 연필로 마인드맵이 그려져 있다. '언어-외로움, 뿌리-외로움'을 중심으로 외로움과 관련된 가지가 적혀 있다.


꼭 글이라는 것이 공적인 말하기와 듣기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그 고민을 많이 했다. 사적인 이야기, 사적인 고민을 연세지 지면에다 싣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닐지, 어떻게 독자들에게 이 지면에서 멈추어 달라고 설득의 논리를 펼칠지. 사실 편집회의에서 동료 편집위원들을 설득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를 이 ‘에세이’라는 지면에 싣는 이상, 이 글과 말들은 설득과 납득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 애초에 아니었다. 사회의 어느 것과 이 에세이의 화자들의 것을 겹쳐 보이고, 또 독자 그 자신의 것과 겹쳐 보이는 독자만의 공간이 그곳에 있는 것이 바로 에세이 아니겠는가. 외로움이라는 단어 아래 자신의 것과 그 밖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겹쳐질 수 있고, 어떻게 겹쳐지지 못하며, 겹쳐져서는 안 되는지를 고민하면서.


그리고 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선우, 현서, 금별은 자기 발 밑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어 여기까지가 나-라고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와 사회, 그리고 그들간의 접합을 그 누구보다 고민하는 이들이다. 자신들과 언제든지 어떠한 형태로 연결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이미 이 글이 쓰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외로움을 ‘홀로 있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홀로 있다는 감각’으로 본다면, 그것은 곧 내 안의 어떤 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외로움은 내 존재가 더욱 드러난 장소인 것이다. 무엇이 지나간 뒤 남은 장소라 여기기보다, 나의 나, 내가 드러난 기회의 순간이 바로 외로움이라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사전을 펼쳐 서로 들여다보았다. 제 사전에조차 쓰이길 망설이고 있는 마음들의 분주한 질감을 듣고 느꼈던 시간.


별:

셋이서 같이 외로움에 대해 들여다보았던 두 달 동안, 나는 그 사이 이별을 했다.

이전의 나라면 정말 끝없이 무너졌었을 텐데, 외로움의 존재를 껴안고 난 이후에 찾아온 이별이었어서 그런지 정말이지 나는 덜 무너지고, 덜 아프고 덜 슬퍼했어. 요새 드문 깨닫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하나의 시간 축과 또 다른 하나의 시간 축이 맞물리며 비로소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고, 사실 그 일은 정말 경이롭다는 건데. 너희와 함께 모닥불 피우며 고민하던 시간이, 나에게는 그런 경이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 길고 길었던 하나의 시간 축에서 빠져나오게 되어서 갈피를 잃지도 몰랐을 나에게 너희라는 시공간을 나눌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요 근래에는 내가 외로움을 조금 다른 태도로 보게 된 것 같다고 느껴서, 사실은 ‘더이상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왔던 것 같아. 드문드문이라도 요새는 전혀 외롭지가 않은 상황인데, ‘외로움’을 왜?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하는. 외로움을 말하다 보면 또 외로워질 것만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며칠 생각해보다 이런 내 생각 자체가 사실은 안일한 거라고 생각도 했다. 결국엔 언제 또 절실히 느끼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나의 외로움을 빚어내는 큰 줄기를 알고 난 후로는, 나의 외로움이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마음이 정말 편했어. 외로움은 다름 아닌 마음이 ‘나의 나’라는 존재를 묵직하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 마음이 무언가 필요해서 내는 목소리이기도 한 것이니, 그 목소리를 내가 다시 기꺼이 껴안으면 그거면 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 물론 정신없이 외로운 바로 그 순간에는 정말 괴롭고 힘든 마음이지만, 어찌 됐든 외로움의 항상성을 깨닫게 된 셈이지.


선우:

나는 이 모임이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친구들에게 정신과 상담 치료의 외주를 맡기는 모양새가 될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나에게도 너무 지긋지긋하고 시커먼, 너덜거리는 티백처럼 느껴지는 내 속이, 남들에게 그러지 않을 리가 없고, 나의 그것들을 사려깊은 별과 현서가 듣다가 같이 힘들어져서 - 또는 내게 질려서 - 이 모임이 지속될 수 없다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내가 실패하고 - 이들을 실패시키면 어떡하지.


나는 - 우리는 실패했나? 더 깔끔하고 우아한 글을 써내는 건 실패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장을 쓰고 있다는 건 내가 세 달의 긴 작업을 돌아볼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처음 내가 외로움을 선언한 글에서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서로를 들여다보기, 그리고 들여다 봐온 시선들을 다시 들여다보기.


이렇게 (피할 수 없었던) 인위적인 작업을 시작해 두어달 동안 수없이 서로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내게 자리가 생겼다고 느꼈다. 별과 현서를 비롯한 내 주변 사람들의 삶에, 나를 위해 주어진 자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새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그들이 차지하는 구석이 더 또렷하고 커졌다. 내가 모임에 나가지 못해도 다음 모임이 얼른 임기응변 식으로 생겼고, 어떤 날에는 수다를 떨며 밥만 먹고 회의는 하지 않고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일상을 버티면서 근근이 찾아오는 아픔과 혼자의 감각을 더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집 밖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친구들에게 이런 느낌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외출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외로움을 듣고 돌아오는 날에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가 이것을 어떻게 더 잘 들을 수 있을지 - 외로움을 듣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언젠가 모임을 위한 일기를 쓰며 외로움의 기원을 더듬다가 내가 이때까지 의미화 하지 못했던 나의 외조부의 뒷모습을 떠올린 적이 있다. 말수도 없고 퉁명스럽던 그는 노쇠해 이제 더이상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비로소 그를 알아보고 있는 것 같아 기뻤다.


나는 외로움에게도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나의 외로움, 현서의 외로움, 별의 외로움,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얼굴들의 외로움, 내가 잊고 지냈던 외조부의 외로움…. 외로움에게 헌신하는 한 학기를 보내면서 나는 외로움을 내 집으로 들였다. 어쩌면 우리의 글이 계속해서 ‘공간’을 호명하고, 공간이 ‘스페어 (spare)’ 해주는 - 내어주는 또는 모면할 수 있게 해주는 - 외로움을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별과 현서에게, 연세지 동료들에게

문제는 ‘제자리’라는 게 없다는 거겠지. 젠장…. 우리가 훑어온 글에서처럼, 공간과 개인이 맺는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미끄러지고 있으니까. 너희에게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사실은 착각이었나 혼란스러운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거고. 311호 편집실도 곧 내가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없어지겠지? 우리가 서로를 물리적으로, 지속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 더 수월하게 서로의 외로움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었을 거야. 그래도 내가 학교를 떠나 너희와 흩어지게 될 앞으로가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쓰게끔 해준 듣고 말하는 힘과 서로를 지탱했다는 감각 (무게감) 은 오로지 ‘지금’의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이 작업이 나를 살렸다는 - 우리가 서로를 지푸라기처럼 잡고 버텼다는 기억이 나에게 삶을 이어나갈 경험적 근거이자 힘의 원천이 될 것 같거든. 내 고향 글의 마지막 문단이 생각나니? 나는 너희를, 너희랑 함께 한 마지막 학기를 늘 그리워할 거야. 그리고 이 그리움이 나를 앞으로도 움직일 거야.


현서:

나를 고립시키는 지독한 고집들을 관찰하면서, 어쩌면 내가 직접 나의 외로움의 자리를 일구고 있는 지점을 생각해 본다. 기꺼이 기댈 줄도 알아야 남에게 손을 내어줄 수 있다는 말이 격언처럼 왕왕 들려올 때, 나는 곧잘 외로워지곤 했는데 왜냐면 나는 이제까지 나 자신을 전자에 좀 너무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팍팍하다는 세상에서 기꺼이, 아무 대가 없이 기댈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몇 안 되는 관계-가족이나 친구, 연인 따위-에 기대는 것은 지금도 나에게 고민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줄곧, 주변 이들에게 힘닿는 데까지 불쑥불쑥 손을 내밀고 싶은 욕심 또한 내게 있었기에, 그 일종의 격언은 그런 나의 욕심에도 불구하고 너는 너의 ‘기대는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이상 영영 남에게 손을 내어줄 방법을 모를 것이라는 저주처럼 느껴져 왔다.


실제로 나의 외로움은 대체로 나의 아집으로부터 파생되는 경우가 잦다고 느낀다. 일명 ‘외로운 고양이 짤’이 문득 생각난다…. 어떤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뿌리라고 여겨지는 관계, 전인격적 관계들의 손길을 애써 모른 척하고 때로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그 아집이다. 바로 그 몸부림이 나를, 때로 그들을 상처 입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마치 그렇게 삶을 살도록 설계된 로봇처럼 그들을 떠나거나 모른 척하기 위한 몸부림을 곧잘 친다. 그 이유는 명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그것이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내 과거의 여러 ‘겹’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몸부림을 나와 글을 쓰기로 한 이들-별과 선우- 앞에서 내려두고, 참을 수 없는 눈물을 기꺼이 이들 앞에서 내보내면서, 이들 앞에서 지나가는 외로운 생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한 학기의 기쁨이자 괴로움이었다. 좋아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기쁨, 이상한 몸부림이 각인된 나도 아직 이들 앞에서 속이나 눈물을 내보일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 (내가 하면 안 될) 취약한 일을 하고 있다는 괴로움 따위가 뒤섞인 시간이었다.


우리 안에서 이 ‘외로움 팀’, 외로움 모임의 향후 행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고 말했을 때, 기꺼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그 행방에 대해 쉽게 떠올리거나 가벼운 말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이 찾아오면 내가 머무를 자리는 이들-별과 선우-의 곁이 아니라 타지가 될 수도 있고, 그 외의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애호하는 이들과 물리적 단절을 맞게 될 때…. 그들의 부재를 이유로 더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될까.


이들에게 한 학기 간 나를 찾아온 외로움을 보이고 가끔 눈물짓는 것은 부끄럽고 조금은 어색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반응, 그리고 이들 앞에서 내가 기꺼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거나 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씻겨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씻어낸 것은 앞서 내가 저주라고 생각했던 격언일 수도 있고, 그저 외로웠던 나의 마음일 수도 있다. 이 글을 꾸려온 기간의 감각을 오래 기억하면서, 마음을 붙일 새로운 이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 앞에서 더 기꺼이 눈물짓고, 망각을 깨고 아마도 간만에 찾아왔을 외로움을 좀 더 오래 붙들어두는 것. 그리고 그런 경험을 입에 머금고 별과 선우와 또 내가 애호하는 이들을 찾아가는 것. 그게 내가 지금 가장 가까이서 상상하고 싶은-선언하고 싶은 미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개의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