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호> 신입편집위원 무화과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수학 시험이 기억난다. 선생님께서 건네는 종이에 40점대인 내 점수 옆에 사인을 했다. 이런 종류의 수치심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치를 봤다. 서술형 답안에서 무엇을 틀렸는지 확인해 볼 겨를도 없이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그 주부터 대치동에 있는 수학학원에 등록했다. 안 가겠다고 그렇게 떼를 썼던 나였지만 저항할 논리를 빼앗겼다.
내가 40점대 성적을 받은 그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서울영재고를 준비하며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선행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공부를 그리 열심히 했냐고 물었을 땐, 초3 때까지는 놀기만 했다고 답했다. 난 그날 영재고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즈음에 내가 다니는 학교의 의미,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특징, 그리고 ‘높은 성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 전체를 의식하게 되었다.
수학과 영어는 중간과 기말고사 성적으로 분반 수업을 했다. 영어는 두 반으로 나뉘었지만, 수학은 세 반으로 나뉘었다. 수학은 반별 명칭이 괴이했다. 상위권은 ‘팔각기둥’, 중하위에서 중상위권은 ‘육각기둥’, 최하위권은 ‘원기둥’ 반이었다. 상위권일수록 많아지는 각, 면, 모서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친구들과 그 의미에 대해 저마다의 가설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구조가 복잡할수록 우월하다는 증거라는 친구도 있었고 각이 많으면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주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시험 이후 선생님들이 칠판에 종이 하나를 붙이고 가셨다. 난 육각기둥 반에 배치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와 사귄 몇 안 되는 가장 친한 친구들은 모두 팔각기둥 반에 갔다. 일주일에 여러 번 우리는 그렇게 분리되었다. 두 개의 반이 합쳐져 세 개의 입체도형 반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수학 시간이 되면 50명가량의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분반에 따라 대이동을 한다. 우리 반 교실은 팔각기둥이 쓰는 반이라서 나는 수학 시간마다 육각기둥 반인 옆 반으로 이동해야 했다. 원기둥 반 아이들은 기존의 두 반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층이 달랐다) 다목적실에서 수업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거듭될수록 분반으로 이동하기 위해 서로를 지나칠 때마다 어떤 반에서 수업을 듣는지로 서로를 대강 판단할 수 있었다. 판단의 대상은 처음엔 공부 실력이었겠지만, 점점 그 사람의 가치로 변질되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한 번 빼고 늘 육각기둥이 었다. 중상위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스스로를 ‘중간’에서 굳어져 버린 존재라고 인식하는 ‘육각기둥 자아’의 형성도 이 무렵 시작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분반 수업에 관한 모든 것이 치욕스럽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수치와 치욕을 내면화했다. 늘 부족한 나, 당당할 수가 없는 나, 가치가 없는 나, 실패하는 나. 그런 ‘나’뿐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일부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을 ‘기만’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편집실에서 도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는 정상급 대학에 진학한 내가, 입시 과정에서 느낀 소외감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내신과 수능 모의고사 성적으로 줄 세워지고 평가받는 환경 속에서의 누적된 소외감이 단지 연세대 입학만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내신이나 수능이 아닌 논술전형으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내신·수능 중심 전형으로 연세대에 올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는 것에서 기인한 변두리의 감각들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다.
‘어쨌든 원하는 대학에 갔으니 학창 시절의 상처는 잊고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하자. 너무 어렸던 과거 학창 시절 얘기는 그만두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취업을 걱정하는 게 성숙한 어른의 모습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를 포기하려고 했던 때도 있다. 하지만 어찌어찌 괴로운 학창 시절이 마무리된 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사건이 현재의 삶과 대학 이전의 경험을 단절해 주지 않았다. 또,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 많은 수의 학생들도 겪은 일이고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극복해 냈는데 내가 유난스러운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 생각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들을 그냥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학창 시절 능력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주변과 타협하며 서둘러 다음 단계로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 특히 연세지의 주요 독자로 예상되는 연세대학교 학생들 역시, 그때의 자신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지금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지 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글은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이 용어에 대한 논의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논리가 지배하는 교육 환경에서 내가 겪은 배제와 소외의 경험을 다룬다. 그 논리에 편입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그 과정에서 마주한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가 현재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실패하는 자아’를 형성했는지 분석하고, 그것이 현재의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추적하며, 나아가 이 글쓰기를 통해 내가 지향하는 해방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삶의 절반 이상을 대치동 학원가와 강남 8학군 중·고등학교에서 보냈다.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그곳에서 보내며, 나는 대치동 환경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내면화했다. 앞서 말한 ‘육각기둥 자아’와 ‘실패하는 자아’ 역시 이곳에서 자라난 산물이다. 그렇기에 대치동이 어떤 공간인지를 설명하는 일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미 많은 글에서 대치동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과 그곳의 행위자들이 어떤 논리를 따르는지 다루어 왔다. 연세춘추만 하더라도, 대치동이 능력주의와 학벌주의 논리를 기반으로 개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이를 부추기는 공간임을 지적했다.[1]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이 연재한 「대치동 이야기」[2]는 대치동 사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고, 대치동에서 논술 강사로 오래 일한 조장훈 작가의『대치동』은 사회적 지위 향상 또는 계급 재생산을 위한 학벌주의적 욕망이 모여들고, 이를 기반으로 부동산 투기의 온상이 된 공간으로서 대치동을 분석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글들과 다르게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던 때까지 대치동이라는 사회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 개인으로서, 나에게 대치동과 그 주변이 어떤 공간이었는지를 나눠 보려고 한다.
대치동에서 나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축은 단연 ‘학원 운영 시스템’과 ‘강사’였다. 대치동 학원들은 기본적으로 구별짓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경쟁 심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또 강사들은 수업 시간에 학벌·능력주의적 세계관이 스며 있는 말과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아이들이 경쟁에 잘 맞춰진 몸과 마음을 갖추도록 길들여 간다.
먼저 학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학원은 촘촘한 구별짓기를 통해 아이들이 굴욕감을 경험하도록 만들고, 그 굴욕을 만회해 자존심을 지키는 일 자체가 공부의 동기가 되도록 유도한다. 대부분의 학원들은 수업마다 시험을 보게 한다. 시험 성적과 등수는 프린트되어 강의실 문, 화장실 근처 벽 등 곳곳에 붙여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종이가 붙여진 곳으로 몰려가 성적을 확인한다. 1, 2, 3위는 볼드 처리와 음영 처리가 되어있다.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재시험을 봐야 한다. 내 점수와 등수, 재시험 여부는 평균과 표준편차와 함께 부모님께 문자로 전송된다.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 남겨지는 이들과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이들로 또 나눠진다. 집에 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권인 셈이다. 보통 밤 10시가 되면 학원 조교들이 이제는 가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원에 따라서는 10시가 지나도 재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보내주지 않는다. 밤 10시 이후 청소년의 교습을 제한하는 것이 유명무실한 제도임은 대치 동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다. 커튼과 블라인드를 치거나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에 검은색 스티커를 붙여놓은 학원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틀린 문제를 고치고 있다. 경찰이 학원가 순찰을 돌지 않는 한 쉽게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학교에서의 입체도형 반과는 비교도 안 되게 대치동 학원가에서의 구별짓기는 다방면으로 행해진다. 평판 좋은 학원의 입학 테스트를 통과할 만한 성적을 받았는지, 들어간 뒤에는 어떤 레벨에 배정되었는지, 그 반 안에서 상위권인지 하위권인지가 끊임없이 구분된다. 아이들은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형태의 ‘똑똑함’만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인 성적에 의해 줄 세워지기 일쑤였고, 곧 자신의 가치 또한 그 순위와 다르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적으로 입증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며, 성적이 비교적 낮은 학생들은 곤두박질치는 스스로의 가치에 한숨짓는다. 성적이 높든 낮든 모두가 겁에 질려있다.
대치동 학원 강사들은 능력주의적 마인드와 학벌주의적 사고를 강화하는 핵심 주체다. 이들은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명문대에 입학했고, 치열한 학원가에서 살아남아 ‘이만큼이나 학생을 모으는’ 강사가 되었다는 식의 성공담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를 거리낌 없이 과시한다. 비싼 것으로 유명한 특정 아파트에 산다거나, 당시 매우 비쌌던 가전제품을 자존심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결제했다는 일화를 말하고, 명문대에서 만난 동기들이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시계를 차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그때 처음 삼지창 로고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낼 수 있는 최대 수준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점까지 세세하게 늘어놓는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제자들의 합격 서사를 극적으로 재현한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자신의 수업에, 본인이 가르쳐 명문대에 진학한 제자들을 조교로 고용한다. 일종의 트로피를 전시하는 방식이다. 눈앞에서 프린트를 나눠주고 있는 조교들의 고등학교 시절 상승 곡선 서사, 의대에 진학해 적성에 딱 맞는 공부를 하며 즐겁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명문대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강사들은 공부를 열심히, 잘한 학생이 대학에 가서 자유롭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입하며 그 논리에 따라 이미 성공을 이룬 자신을 학생들이 의지하고 우러러보도록 만든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대치동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점점 더 넓혀 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공’의 의미를 점점 좁게 이해하게 된다. 명문대에 입학하면 성공한 인생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높은 성적을 얻는 능력을 오직 개인의 역량에서만 기인한 것으로 여기고, 성적이 낮은 경우에는 그 사람의 지능이나 노력 부족으로만 평가한다. 이 논의를 뒤에서 파트에서 이어나갈 것이다.
앞서 말한 성적에 따른 구획화 외에도, 나는 이 동네에서 ‘여러 측면’에서 성적이 높은 친구들과 성적이 높지 않은 나로 나뉘어 구분되었다. 문제는 이런 구획화가 대치동 학원가처럼 사교육이 집중된 공간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도 교묘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학우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게 그어지는 구분 선, 선생님들과의 유대관계의 밀도, 학교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와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인정받는지 사이의 간극, 이런 것들이 모두 성적에 따라 다르게 작동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시기의 경험을 모아봤다.
#1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풀어야 하는 부교재가 있었다. 얇은 부교재 하나를 풀어서 제출하는 게 하나의 수행평가였다. 제출 기간이 임박해오자 친구들은 부교재를 풀기 시작했다. 나는 부교재를 푸는 데 오래 걸렸다. 하루를 온통 부교재를 푸는 데 사용했는데도 다 끝내지 못했다. 어느 날 뒷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 둘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A가 부교재를 푸는 데 8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B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8시간이나 걸리냐고 웃으며 타박했다. 자기는 4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할 것도 많은데 이런 것은 빨리 빨리 풀고 버려야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와 같은 수학학원을 다니는 친구였다. 그 짧은 대화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난 늘 느리고, 그들은 늘 빨랐다. 느림은 비효율적이라는 비난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간을 더 많이 투자했음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며 숨겨야 했다.
#2 고1 때 우리 반은 다른 반에 비해 유난히 성적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반 배정이 이상하게 됐다고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부분 성적이 높은 친구들이었다. 그중엔 전교 3등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아침 일찍 와서 의자 4개를 이어 붙여 자곤 했다. 밤을 새서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반을 이동하는 시간인데도 급우들이 그 친구 자리에 모여 있어 나도 그 자리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쓰는 플래너가 펼쳐져 있는 것을 친구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학교가 오후 4시에 마치는 평일에도 순공 시간[3]이 10시간에 가까운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종종 벽을 짚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뜨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은 반의 다른 아이들이 그 모습에 주목하길 원했는지 그녀를 가리키며 기특하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루는 종례 시간에 그 친구가 빨리 하교하기 위해 가방을 완전히 싸놓고 그것을 어깨에 멘 상태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은 그녀를 언급했다.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이 종례 시간까지 문제집 펴놓고 한 문 제라도 풀고 가려고 하는 거야. 땡땡이(그 친구 이름) 좀 봐라. 바로 집에 갈 준비를 했잖 니.” 담임선생님의 한마디로 나는 순간 ‘원래 공부 못하는 애들’에 속하게 되었다.
#3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몇 주 안 되었을 때 과학 탐구 실험 선생님이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와 같이 입학한 다른 반 1학년 학생이 벌써 과학 탐구 실험 (필수가 아닌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용) 개인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었다. 그 학생이 전교 1, 2등을 하는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된 건 나중의 일이다. 선생님은 그 보고서가 얼마나 잘 쓴 보고서인지, 그 학생이 얼마나 기특한지, 우리가 그녀를 왜 본받아야 하는지를 오래오래 설명했다.
#4 난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대회 이름들은 이젠 희미하지만 읊어 보자면, 글짓기 대회, 창의 과학 출품 대회,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게 했던 발표 대회 등등 이었다. 난 플래너 쓰기 대회와 소감문 쓰기 대회와 같은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에서만 입상했다.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에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는 늘 탈락이었다. 그중 전교생이 필수로 참여하게 했던 진로 창의 발표 대회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반에서 5,6명씩 묶어서 팀을 구성하도록 했는데 우리 조는 미술, 춤과 같이 예체능을 준비하는 학우들이 반 이상이었다. 진로 선생님이 발표를 보고 점수를 매겨 본선에 진출할 사람들을 뽑는 것이었다. 간절하게 준비한 우리 조 발표 중반부터 선생님은 우리 발표가 아닌 휴대폰에 집중하셨다. 발표하고 있는 순간에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리는 것 같던지. 그런데 높은 성적을 받는 친구들로 구성된 다음 조의 발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들으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은상을 수상했다. 우리 조는 예선도 진출하지 못했다.
연달아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능력부터 탓하게 되었다. 내가 더 흥미로운 발표를 준비하지 못해서, 더 높은 성적을 얻지 못해서, 결국 이 학교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마치 내 역량 부족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온 힘을 다해 학교 활동에 참여해도 학교와 선생님들은 나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는 나’, ‘무엇에 도전해도 어차피 실패하는 나’, ‘잘하는 것이 없고, 오히려 잘하는 것이 있다면 더 이상한 존재인 나’라는 자화상을 그리며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갔 다. 아무도 내게 직접적으로 ‘실패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작지만 거대한 사회 에서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위치임을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 학원에 다니는데도, 비싼 문제집을 구매해 푸는데도, 심지어는 맛있는 밥을 먹었는데도 더 높은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하는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기억 영상들을 재생하고 멈추는 시간을 반복하며, 내가 실패하는 자아를 형성하고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든 주체가 여럿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에는 함께 성적을 비교하던 친구들, 내게 관심이 없는 학교 선생님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유도하는 강사들이 있었고, 조금 더 넓게 보면 특정 학생에게 기회를 몰아주고 구별짓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와 학원의 시스템이 보였다. 부당함의 원인을 특정해야 어디를 뚫어야 할지 감이 올 텐데, 당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구에게 쇄신을 요구해야 할까? 질문을 던질수록, 이것이 어느 한 지점을 뚫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가 아니라는 감각은 더 강해졌다.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환원할 수도, 학교나 특정 교사나 학원 강사를 이 모든 것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없었다. 서로 맞물린 여러 층위의 원인 가운데, 내가 살았던 공간의 모든 주체들이 그런 룰을 따를 수밖에 없게 하며 흐름을 주도해 나가는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규모가 크고, 동시에 개인이 개별적으로는 거의 저항하기 어려운 구조, 바로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였다. <여기서 잠깐!> 코너에서 이를 살펴보자.
내가 살던 동네의 청소년들은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적 가치관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이는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 직업관, 자아존중감, 또래 관계 등 전반적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내가 소외감을 느낀 원인도 결국 이런 이데올로기를 흡수해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 행위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과 제도 때문이었다. 따라서 능력주의와 학벌주의는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개괄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도울 것이라 생각한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한정된 지면 안에서 간략히 다뤄야 한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의 제도 전반을 지배하는 분배 규범은 능력주의로, 권력과 재화를 배분할 때 개인의 능력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하는 가치체계이다. 능력주의는 ‘노력’이 능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가정하고,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능력에 비례한 직위와 임금의 분배를 제도화하고 있으며, 구성원의 상당수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을 지니고 있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분배가 신분제 사회의 분배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태생적 신분이 재화와 지위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평등한 자유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분과 마찬가지로 능력 역시 유전이나 가정환경 같은 개인이 통제하기 힘든 요소에 크게 좌우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는 이미 다양하다.[4] 특히 가정환경 중에서도 가정의 경제력이라는 변수에 대한 나의 경험적 근거만 보더라도 비싼 컨설팅, 고액 과외, 팀 과외, 입시 정보나 질 좋은 자료를 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학생의 성적이라는 성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곤 했다. 전술한 #2의 일화에서 등장한 전교 3등 친구도 어린 시절 영국 유학을 다녀오고 고층 아파트에 살았으며, 더 앞의 서울영재고를 준비한다던 친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평사원이 대표이사가 되는 능력주의적 신화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가정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그것이 사회적 지위로 연결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자녀의 교육에 더 신경을 많이 쓰며 학생의 필요에 대해 적재적소에 해결책들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개인의 꿈이나 미래도 사회환경적으로 결정된 메리트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주어진 유전과 가정환경의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변량은 점차 축소되며 능력이 대물림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타고난 재능, 개인의 노력, 가정환경 등 매우 다양함에도, 능력주의자들은 이를 단순화해 이해한다. 그들에게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는 뜻이며, 따라서 능력에 따라 권력과 재화를 차등 배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공정한 일이라고 여긴다. 이들은 능력이 부족한 이유를 주로 개인이 통제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노력의 부족’에서 찾으며, 그에 따른 낮은 보상과 지위는 스스로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논의를 적용해 본다면,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을 옹호하는 능력주의는 사실상 ‘우연에 따른 차등 보상’을 정당화하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에 가깝다. 출발선의 조건과 환경 자체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능력을 순수한 개인의 산물로 가정하는 순간 능력주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노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을 가장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 역시 능력주의적 관점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 청소년들은 정유라·조국 딸 입시 특혜,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블라인드 채용, 여성할당제 논쟁 등과 같은 사례를 접할 때, 입시·채용·평가의 공정성 문제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능력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예외적 일탈로 이해하며, 그 해결책으로 능력주의에 대한 재검토나 성찰이 아니라 능력주의 규칙을 더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확인했듯이 출발선부터 불평등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능력주의를 강화하면, 그 모순의 부담은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간다. 그 결과, 이들의 공정성에 대한 민감도와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며, 능력주의는 공정을 회복하는 해법이 아니라 불만과 좌절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는 마이클 영의 공식[6]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믿도록 길들여지기 때문에,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그 원인을 전적으로 자기 능력과 노력에서 찾게 된다. 그 결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도 능력주의라는 프레임을 통과하면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며, 이는 사회적 저항과 문제 제기의 여지를 사전에 봉쇄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 정확하게는 ‘학력’이 능력주의 분배 규범의 주요 수단의 역할을 담당한다. 학벌주의는 ‘학업 성취’와 ‘사회적 보상’을 직접 연결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의 논리와 일치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학벌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역사적으로 학벌은 권력·부·명예를 획득하는 유력한 도구였고, 사회·경제적 급성장기를 겪으면서 “누구나 개인적 노력을 통해 그에 상응하는 지위와 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발 능력주의적 믿음 속에서 명문대학은 개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로 굳어졌다.
그 결과 학벌을 얻기 위한 경쟁은 특정 계층을 넘어서 전 계층이 뛰어드는 과열 경쟁이 되었으며 사교육이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상위 수도권 의대 9곳에서 강남 3구 (강남, 서초, 송파구) 고교 출신 의대 신입생 비율은 20% 이상이었으며 그중 한양대 의대는 무려 31.82%다.[7] 강남 3구가 입시 경쟁이 치열한 사교육 1번지임을 고려할 때 통계적으로 사교육이 명문대 진학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교육은 척결되기보다 중독된다. 그러나 사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곧 학력 격차, 다시 말해 가정의 경제력 차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공정한 경쟁’[8]을 구조적으로 왜곡한다. 사회적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재능과 노력보다 가정의 경제력에 의해 좌우된다면, 학벌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능력주의를 위배하는 이율배반적인 존재가 된다.[9]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구분한다. 좋은 학벌은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 목표를 달성하고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이라는 신호로 소비되고, 반대로 학벌이 좋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10] 사람들은 개인이 무엇을 해냈는가보다 그가 어떤 대학, 어떤 집단 출신인가를 먼저 보고 능력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 서열 체계에서는 일단 특정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그 이후 대학 과정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크게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는다.『대치동』을 쓴 조장훈 작가는 “학벌이 대기업 정규직과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시장에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이자, 차별적인 노동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한다며 학벌 취득이 더 이상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가깝다”고 말하며 학벌주의의 이면을 드러냈다.[11]
여기까지 읽었다면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와 관련하여 특히 ‘가정환경’이라는 변인에 필자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대치동과 강남 8학군이라는 공간에는 사회경제적 계층이 다양하다. 주요과목(국 어,수학,영어,과학 중 몇 개만)의 학원에만 갈 수 있는 계층, 이에 더해 부족한 과목에 대한 고액 전문과외를 받고 팀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계층, 모든 과목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명문대를 합격한 학생들의 예시 자료를 가지고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부터 교우관계까지 피드백을 제공하는 고액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계층까지 서열화되어있다. 나는 첫 번째에 속했다.
그 사람의 계층이 다시 성적과 등수 그리고 학교와 학원의 관심으로 귀결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능력과 노력을 탓할 뿐 아니라 나의 계층도 탓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원망의 대상이었던 나의 계층은 내가 당시 그렇게까지 학벌을 가지지 못할까 봐 겁을 냈던 이유이자 내가 성적이라는 기준에 과하게 몰두하여 실패하는 자아를 형성한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적어도 서울 소재 메이저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하셨다. 부모님 중 한 분은 명문대를 나왔고 나와 같이 강남 8학군 중,고교 출신이다. 또 내가 어떤 직업보다도 전문직이나 대기업과 같은 안정된 일자리를 얻길 바라셨다. 집안에는 명문대 졸업학위패, 졸업시계, 명문대 로고가 박힌 샤프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난 어느 순간부터 그 물건들 속의 로고를 열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명문대를 입학해야 했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성적을 잘 받아야 했다. 대학이 내 인생의 맹목적 목표가 되었다. 학창 시절 늘 실패를 내면화하고 나에 대해 기대가 조금도 없었음에도 다시 한 번 논술시험에 희망을 걸어봐야 했다. 다시 말해 나 또한 나의 계층 안에서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의 언어를 내면화하며 내가 이런 계층이라 누릴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특권이라고도 보일) 것을 누린 것이다.
최근 <길모어 걸스>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로리와 그녀의 남자친구 로건은 좋은 가문의 각각 부자인 조부모님, 부모님을 두고 있다. 둘 다 예일대 학생이다. 기자를 꿈꾸는 로리가 로건의 파티에 서 ‘성공을 위해 인맥을 이용하는 상류층’을 풍자하는 기사를 쓰고 로건에게 보여주자 로건은 불같이 화를 내며 “난 부잣집 아들인 게 부끄럽지 않아. 너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해? 너도 우리 중 하나야. 너도 사립학교를 나왔고 예일대에 다녀.”라고 말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글을 읽을 독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움찔했다.
다시 말해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연세대에 입학하고, 대치동 근처에서 오래 살았음을 보며 나도, 나를 소외시켰던 사람들처럼 또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한 명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구조 에서 소외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 구조의 수혜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위치가 능력주의와 학벌주의 풍토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다르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구조 안에서 한 번도 밀려나지 않고, 환경적 메리트를 발판 삼아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의 ‘정석 루트’를 타고 연세대에 입학했다면, 그 안에 스며 있는 모순에 관심을 가지거나 이를 감지해낼 수 있었을까. 혹은 환경적 메리트가 있었음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면 실패하는 자아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일기를 쓰면서, 정작 내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인 ‘나 자신’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창 시절 수없이 질문 받았던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나의 강점 같은 것들 에 나는 끝까지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냈다. 나는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같은 중요한 질문들까지, 애초에 다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어차피 내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에 도전하든 결국 다 실패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에 와서도 실패는 계속되었다.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졌고, 열심히 준비한 일들에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계속해서 세상이 여전히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내가 도전한 일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1년 전, 동기들과 함께 학과 지원을 받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12] 그때 친구들과 하루 종일 붙어 지내며 지켜본 건, 모두가 자기 자신을 꽤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각자 자기 가치관에 따라 수업에서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 무엇을 성취할지, 어디로 여행을 갈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살지 비교적 흔들림 없이 선택하고 있었다. 되는대로, 어쩔 수 없이 살면서 삶을 외면하고 있던 내 모습과는 달랐다.
그들이 자신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내게 그래 준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됐다. “너도 거기 가고 싶 어?”, “이거 먹어보고 싶어?”, “이거 해 보는 거 넌 어때?”라고 나에게 물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먹어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해내고 싶은 것,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하고 주장하는 일들을 오랫동안 스스로 무시해 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자각했다. 왜 그랬는지 오래 곱씹어 보니 그 이유를 찾은 것도 같다. 나는 나를 수치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부족하고, 이미 여러 번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만 많이 할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내 주장은 애초에 힘을 가질 수 없다고 스스로 단정해 버린 채 살아왔던 것이다.
1. 구조로부터의 해방
따지듯, 체념하듯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먼지 같은 네가 이 거대한 구조 앞에서 뭘 할 수 있는데?” 이 질문 앞에서 난 여전히 우물쭈물하게 된다. 개인이 능력주의와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체계에 대항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경주 트랙 위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에게 이 경주의 룰이 공정하지 않다고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은 채 나를 지나쳐 갈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학창 시절 나는 저항할 의지를 잃었었다. 구조 안에서 개인은 너무 쉽게 먼지 같은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나의 서사를 통해 아무런 의심 없이 강화되고 있는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구조 안에서 문드러져 가던 개인의 서사는 언제나 힘을 가진다고 믿기에,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앞서 자인했듯 나는 능력주의와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소외된 사람이자 동시에 수혜자라는 점에서 여전히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의 언어에 흔들린다. 하지만 최소한 그 언어만을 유일한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나의 자리에서 계속해서 균열을 내려고 한다.
2. 실패하는 자아로부터의 해방
내가 생각해 낸 실패하는 자아로부터 해방하는 방법은 내가 나에 대해 관찰하고 그에 대해 스스로 물어 주며 내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붕 떠 있는 나의 존재성에 모래주머니를 달아주는 작업이랄까. 그래서 TMI인지 알면서도 아래 단락을 작성했다.
나는 무화과를 좋아한다. 향이 진한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생각해 보게 하는 문장을 좋아한다. 난 아 주 부드러운 담요를 좋아한다. 라면 중에는 짜파게티를 좋아했고, 지금은 까르보 불닭이 좋다. 아주 가끔 브런치를 먹으면 상쾌하다. 봄의 활짝 핀 꽃을 싫어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싫어한다. 피곤할 때 오히려 어지러운 생각에서 자유롭다. 빈곤한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전술했듯 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내게는 해방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다. 과거를 다시 들춰 보고, 치욕스럽다고 여겼던 기억들을 차분히 언어로 옮기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더 이상 “패배자”로만 두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운 선언이기도 했다. 이 글은 ‘육각기둥 자아’와 ‘실패하는 자아’로만 나를 규정하던 습관에서 조금씩 물러나, 시험 점수와 대학 간판 바깥에 있는 나를 다시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완성된 해방의 서사가 아니라, 실패를 내면화한 자아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려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해방의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던 시절부터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지금까지 오래도 걸렸다. 이제는 나 좀 놓이지 않았나…? 마음이 편안하다.
이 글을 실패하는 자아를 내면화했던 자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해방을 향해 오늘도 조금씩 나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각주]
[1]복건우 원대한 안영채. 욕망을 줄 세우는 ‘대치동 밀착 보고서’. (2022.02.27).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8542.
[2]김세린. 영재반 관심있으세요?...’돼지엄마의 은밀한 제안[대치동이야기③].(2024.04.2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42687187.
[3]‘순수하게 공부만 한 시간’의 약자. ‘한눈 팔거나 멍때린 시간, 화장실 간 시간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한 시간’을 뜻한다. 공부한 시간이 성적과 항상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공 시간은 개인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또한 개인의 노력을 평가할 때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가장 쉽게 수량화할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에, 서로를 비교하고 서열화하는 가장 간편한 기준으로 기능했다.
[4]“심리학 분야의 연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전이 지능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했으며 부르디외는 문화 재생산 이론을 제시하며 능력의 형성에 가정환경이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논했다. 또한 신경생리학 분야의 연구에서는 인간의 ‘의지’의 작용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권희경, 이재준, “분배 규범으로서의 능력주의 비판과 청소년에 대한 이해,” 열린교육연구 33, no. 3 (2025), 재인용, 35.
[5]권희경, 이재준, 앞의 글, 35.
[6]‘능력주의’라는 용어는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Meritocracy』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이다. 그는 능력(Merit)=지능(I.Q.) + 노력(Effort) 라는 공식을 제시하며 귀족주의의 반대개념으로서의 능력주의가 어떻게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준다.
[7]김원진. 의대생 8명 중 1명은 ‘강남3구 고교 출신’…이걸 ‘좋은 결과’라 말할 수 있을까.(2025.10.25).https://www.khan.co.kr/ article/202510250600021#ENT.
[8]“근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 시스템은 이상적 평등의 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실적 평등과 기회의 공정성을 실현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해왔다.” 김동환, 홍종열, “드라마 속 청년세대의 집단적 권태와 능력주의의 인과성 고찰: 를 중심으로,” 글로벌문화콘텐츠 61 (2024): 6.
[9]이건만, “한국사회의 학벌주의와 계급갈등: 학벌자본의 이론화를 향해,” 교육사회학연구 17, no. 4 (2007): 70–80.
[10]최승리, “라몽의 경계이론을 통해 본 사회적 불평등과 낙인에 대한 고찰: 학벌주의를 중심으로,” 한국교육사회학회 학술대회자료집 (2024): 119–120.
[11]복건우 원대한 안영채. 욕망을 줄 세우는 ‘대치동 밀착 보고서’. (2022.02.27). https://chunchu.yonsei.ac.kr/news/articleView.html?idxno=28542.
[12]이마저도 연세대학교 학생으로서 가지는 하나의 특권으로, 나의 계급성을 드러냄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