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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세편집위원회 Sep 19. 2019

<121호> 강사법은 죄가 없다

기고자 둥지냉면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단순하다. 강사법 때문에 우리들의 수강신청이 힘들어진 것이 아니고, 난데없는 강사들의 밥그릇 싸움에 괜히 우리가 피해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강사법과 강사는 죄가 없다. 강사법의 정상적인 시행을 방해하는 대학, 입법 이후 7년의 유예 기간 동안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정부에 잘못이 있다. 이 글은 특히 대학이 어떻게 학생들에게서는 수업을, 강사들에게서는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수업이 사라지고 수업 담당 교수자의 이름도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에 학생들의 잘못이 없듯이, 강사들과 강사법은 잘못이 없다. 슬픈 말이지만 강사들에겐 죄를 지을 만한 권력조차 없다. 강사법이 제정되고 유예되고 다시 시행되는 우여곡절의 역사는 대학 내에 온존하는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역사는 대학의 기득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누가 배제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누구와 연대하여 어떻게 사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한 장의 편지 - 강사법의 시작     

◯◯이 엄마!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자였습니다.
사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었기에 언젠가 교수가 되는 그날에 당신에게 모든 걸 용서받고, 빌면서 “이젠 당신과 함께합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시작은 어지러이 갈겨쓴 문장들이었다. 분명 술과 눈물과 한숨과 고통으로 얼룩졌을 편지의 문장, 이미 답장을 보낼 수 없는 그 어지러운 편지는 대학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강사란 존재는 누구인지를 묻게 했다. 2010년 세상을 떠난 고 서정민 박사는 유서를 통해 강사와 교수 간의 폭압적인 위계관계와 교수가 되지 못한 강사의 처절하고도 비참한 삶을 고발했다. 그는 생전 54편에 이르는 논문을 대필했다고 하며, 특정 대학에서는 교수직을 대가로 수천만 원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스트레스성 산재’로 규정하고는 남은 이들에게 ‘투쟁’을 부탁하고 떠나갔다.


 이후 그의 죽음에 진실과 정의로 답하려던 사람들의 노력이 정제된 한 구절을 고등교육법에 추가했다. 2011년 일찌감치 개정되었던 법률은 4차에 걸친 시행 유예 끝에 2019년 8월부로 시행된다.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 강사는 교원이다. “학교에 두는 교원은 제1항에 따른 총장이나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강사>로 구분한다.” 근 1년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강사법이란 사실상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한 것뿐이다. 교원이기 때문에 공채를 통해 선발해야 하고 1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 퇴직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소청심사권이 보장되어 부당해고 등에 강사가 직접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강사의 임금이 전폭적으로 인상되는 것도 아니고,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승진이 존재하는 것도,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사들 일각에서는 이 정도의 처우 개선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학의 반발은 극심했다. 아니 혹자는 그것을 ‘자해 공갈’이라고 부를 만큼 대학은 강사법을 이대로 시행하면 곧 죽어버릴 것처럼 정부와 사회를 협박했다. 2019년의 한 기사에 따르면,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은 "자발적으로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왜 대학교는 수업을 없애나. 이는 대학교의 자해공갈이다. 대학교가 수업을 줄여나가면 무엇이 남는가. 선생님과 학생들이 손잡고 대학교의 자해공갈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은 강사를 해고하고 수업을 대규모로 감축하며, 그 빈자리를 겸임/초빙 교원으로 메우고 대형 강의를 확대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수업이, 그리고 교육과 연구가 사라져갔다. 강사를 살리기 위해 강사법을 만들었는데, 반대로 강사가 죽어갔다. 이 구조조정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사들이 대학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공간 속에서 처해 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강사란 누구인가? - 강사와 대학의 교육과 연구     


 우리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만나는, 흔히 ‘교수님’이라 불리는 교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전임 교원과 비전임 교원, 더 흔한 세상의 표현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덧붙이자면, 전임 교원은 다시 정년계열 전임교원과 비정년계열 전임교원으로 나뉜다. 비정년계열은 정년계열과 달리 정교수 승진이 거의 불가능하고, 임금 역시 40~60% 정도로 차등적인 대우를 받는 무기계약직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전임과 비전임, 특히 강사와의 처우를 비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전임 교원은 다시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서열화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년과 승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비전임 교원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위를 가진다. 당연히 정규직이기 때문에 4대 보험과 퇴직금, 연금도 보장된다. 특히 이들은 각종 00원장, 00처장, 00부총장, 총장 등의 보직을 겸하기도 하면서 실질적으로 대학 내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기도 하다. 교수는 안정적인 지위를 토대로 수업과 연구를 하는 대학의 인력인 동시에 대학 전반의 정치 과정을 독점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반면 비전임 교원은 시간 강사, 겸임 교원, 초빙 교원, 강의 전담 교원, 기금 교원 등 30여 가지의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되며 고등교육법상으로는 교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비전임 ‘교원’으로 분류되면서도 교원이 아닌, 법적으로는 일용잡급직으로 규정되는 존재들이었다. 특히 시간강사는 학기당 15주의 위촉 계약을 통해 고용되고, 종강 즈음 학교로부터 별다른 연락이 없으면 해촉된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처지였다. 특히나 강사의 임용에는 각 학과 교수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졸업 후 취직을 위해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과정 내내 지도교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학문적으로도 선배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비판하거나 반박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당연히 4대 보험이나 퇴직금은 이들에게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방학 중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아 종강 이후 기말고사 성적 평가나 다음 학기 수업 준비는 무급으로 해야 하는 지경이었다.


 강사의 근무 조건이나 처우는 대학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 먼저 대학에서 평균적으로 30% 내외의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의 고용이 불안하거나 근무 조건이 열악하다면 담당하는 강의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할 것이고, 그로 인해 상당한 비중의 수업의 질이 악화될 수 있다. 이 30%가량의 수치는 강사법 구조조정 이전의 수치로, 2019년 이후의 수치는 강사의 대량 해고로 인해 강사 강의 전담 비율이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갑자기 대규모로 생겨버린 강사들의 빈자리는 억지로라도 메워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연세대학교의 경우에도 2018년 본교 학부 기준 40%를 상회하는 비중의 학점을 시간강사가 담당했다(전임교원 약 53%, 기타비전임 약 7%). 강사를 채용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전임  교원이 맡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개설하거나 전임 교원의 강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대학의 교육 및 연구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우가 나빠지거나 심지어는 이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우, 대학 교육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이 독립적인 연구자 또는 교수자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판적인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강사들의 처우는 강사들뿐만 아니라 전임 교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수년 동안의 등록금 동결 이후 계속되는 대학의 재정 긴축에 의해 강사의 수는 점차 줄어갔고, 그에 따라 전임 교원들의 강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전임 교원들이 담당해야 하는 수업 수는 점차 늘어나게 되고, 그들이 교육과 연구에 집중하기는 어려워진다. 실제 몇몇 사립대학에서는 전임교원이 15학점에서 심하면 21학점까지 책임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한 학기에 5~7개의 수업을 동시에 맡기면서 양질의 강의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수업을 많이 맡으면서 연구까지 완벽히 해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따라서 충분한 수의 강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은 전임교원의 교육과 연구를 모두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더욱이 전공영역이 더욱 세분화되는 경향 속에서 한 사람의 교수자가 비슷한 여러 수업을 맡는 것은 수업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극심한 피해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국문학 전공의 전임 교수가 스페인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에 대한 수업을 할 수는 없다. 비슷한 교수자의 비슷한 수업들이 많아지면 학생들의 시간표는 천편일률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낼 수업의 부재는 대학 교육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연구/교육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을 구성원으로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전임 교원인 교수는 비전임 교원인 강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특권적인 대우를 누리지만, 그들의 특권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강사들의 희생이다. 단적으로 정교수와 강사의 임금 격차는 평균적으로 국립대가 5배, 연세대학교와 같은 사립대가 10배에 이른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 강태경의 글에 따르면 흔히 가장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교수와 강사의 임금 격차가 2배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한국 대학의 경우 강사의 저임금이 교수의 고임금을 떠받치고 있는 수준인 것이다. 실제 2017년 현재 전임교원의 최대 강의시수인 9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강사의 평균 연봉은 1,3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강사들 태반이 9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을 강의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평균임금은 더욱 낮을 것으로 추론된다. ‘연세대학교 강사법관련구조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연세대학교의 경우에도 2017년 기준 전체 수입 대비 강사료 지출은 약 1.65%, 전체 교원 보수 대비 강사료 지출은 약 3.3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강사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이러한 교수-강사 간의 차별적, 위계적 구조는 교육과 연구의 질을 악화시키는 것을 넘어서 그것의 재생산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 생활임금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지급받는 강사들은 강의 외에 추가적인 노동을 해야 하고, 그것은 결국 강의에 쏟는 노력을 줄이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2017년 서울시 생활임금 기준으로 계산한 생활 연봉이 약 2,050만 원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사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추가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노동이 얼마나 많은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더불어 신진 학문 세대라 불리는 강사들은 연구에 쏟을 시간을 아껴 부업을 해야 하고 그만큼 다양하고 새로운 학문적 탐구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강사에서 교수로 진입하는 문이 매우 좁아진 것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박사 학위 취득 이후 교수가 되기까지 1~2년 정도 거쳐 가는 단계로 강사 생활을 했었다. 심지어는 석사 학위만을 가지고도 교수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김영삼 정부 시절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과 대학설립준칙주의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기존의 대학 설립을 허가제에 기반하여 운영한 것에서 신고제 기반으로 변경한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대학 설립은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쉽게 허가되었고 대학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학의 수와 정원은 급증했고 그에 따라 교수 채용에 대한 수요 역시 충분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라 대학의 팽창적인 성장 정책이 끝나고, 교수 채용 역시 줄어들자 대다수의 강사들에게 강사는 과도기적 직업보다는 일생의 직업에 가까워졌다.


 상황이 이렇다면 강사로 일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생활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강사에게 독립적인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강사들이 대학에 무엇인가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강사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강사들이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대학은 장기적으로 재생산될 수 없다. 살인적인 저임금과 착취를 버텨낼 수 있는 강사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학부생이 강사의 비참한 생활을 알고서도 학문의 길을 택해 대학원에 입학하려 할까. 교육과 연구를 할 사람이 없는 대학이 존재할 수는 있을까.


 강사법은 이처럼 더 이상의 재생산이 불가능한 대학이라는 상황 속에서 제시된 상식적인 해법이다.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공개 채용을 통해 최소 1년의 임용 기간과 3년까지 재임용 절차를 보장한다. 원칙적으로 퇴직금과 방학 중 임금도 지급한다. 상대적으로 고용과 생활은 안정될 것이고, 수업을 할당받기 위해 전임 교수와 대학의 비위를 맞추는데 이전만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독립된 지위의 보장으로 비판적 학문의 자세는 향상될 것이고, 학생들은 충분히 준비된 양질의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사법은 직접적으로 심각한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강사법은 최소한의 강사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외칠 ‘투쟁’을 위한 요건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강사법 구조조정의 시작 - 강사 없는 강사법    

 

 사실 강사법의 취지 자체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강사법에 그다지 유쾌한 감정을 가지지 못하는 것 역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업 수의 부족, 수업계획서 미게재 사태 등은 강사법이 아니라 강사법의 정신에 역행하고 있는 대학들의 부적절한 대처로 인한 것들이다. 강사법 시행에 대비하는 대학들의 행태는 교육과 연구를 방기하는 대학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강사법, 즉 개정 고등교육법안이 의결된 2011년 12월 이후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이 임박하는 시기마다 강사 수를 감축해왔다. 4년제 사립대학 152곳에서 2018년까지 7년간 시간 강사의 37.2%인 2만2397명이 사라졌고, 기타 교원은 2만1998명으로 76.8%나 증가했다. 이는 각 대학이 강사법 시행에 대비하여 시간 강사들을 강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겸임/초빙/기타 교원 등으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점진적으로 단행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성균관대학교는 2019년도 1학기 시간 강사가 담당하는 학점이 0학점, 즉 시간강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서히 이루어져 오던 구조조정은 작년 8월 대학·강사 대표와 국회 추천 전문가로 구성되는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에서 올 8월부터 지금의 강사법을 시행하기로 합의하자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대학교와 우리 연세대학교다. 먼저 작년 10월 말, 고려대학교에서는 수업 수 감축, 대형 강의 권장,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강사 채용을 제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문건이 유출되어 논란을 낳았다. 특히나 대부분 강사가 맡아왔던 교양 수업을 대폭 감축시키고 과목 통폐합, 졸업 이수학점 축소 등을 포함하는 커리큘럼 개편을 한 달 만에 급조하여 진행하려 했다.


 한편 12월에는 연세대학교에서도 고려대학교의 경우와 유사한 문건이 유출되었다. 문건은 강사TO제, 책임강의시수제 등 학과의 강사 채용 및 수업 개설을 제한하고, 한 명의 강사에게 가능한 많은 수업을 할당하여서 전체 강사 수를 감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문건을 뒷받침하는 정황 역시 있었다. 당시 연세대 공대위가 파악했던 바에 따르면 글쓰기 수업의 정원이 100명 이상에 육박할 것이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1. 2018년 12월 유출된 연세대 강사법 구조조정 관련 문건.

 강사법의 시행을 대비하며 진행된 구조조정의 의미는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강사법을 만들었더니 대학들은 청개구리같이 강사를 대량으로 해고했다. 그에 따라 수업 수가 대폭 감축되었다. 대학은 강사법을 제대로 이행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일어난 대규모 구조조정은 학생들의 1학기 수강신청 대란으로 이어졌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피해사례 역시 다양했다. 수강신청 실패 후 돈을 주고 다른 학생에게서 수업을 샀다는 학생, 졸업을 위해 꼭 들어야 했던 수업이 갑자기 열리지 않아서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학생, 전공 수업의 수가 너무 줄어들어서 정규학기 내에 졸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학생까지 말이다.


 2019년 1학기 수강 신청 이후 연세대 공대위가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90%에 이르는 연세대 재학생들이 강사법 구조조정으로 인해 수업 수 및 교육의 질이 줄어들었다고 느꼈다고 응답했다. 압도적인 피해 응답 비율은 실제 수업 수 감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신촌캠퍼스 선택교양 수업(생활/건강 영역 제외) 약 66% 감소, 필수교양 수업 약 10% 감소, 국제캠퍼스 글쓰기 분반 약 29% 감소 등 18-1학기 대비 19-1학기 수업이 약 200개가량 사라졌다. 더욱이 강사 수의 감소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일 정도였다. 18-1학기 1,309명에서 19-1학기 473명으로 강사 수가 순식간에 약 64% 급감했고, 겸임/초빙/기타 교원의 수는 690명에서 1,424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연세대학교가 강사를 강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겸임/초빙 교원 등으로 전환하는 ‘꼼수’를 부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겸임/초빙 교원 등은 보통 대학 외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실무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수업을 담당하게 하기 위한 채용 형태이다. 실제 강사법 시행 매뉴얼 등에서도 ‘특수 교과’로 겸임교원의 자격을 제한하여 대학들의 꼼수를 방지하고자 하고 있다.

 특히 교양 수업의 피해가 가장 큰 편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연세대학교 측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학사 개편의 일환일 뿐 강사법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특정 전공 수업 수가 줄어든 경우를 일반화하지 말라거나, 개별 학과의 자율적 판단이라는 변명도 자주 하곤 했다. 심지어는 학사개편 이후 대형 강의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연세대라는 공동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공통의 교육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는 믿기 힘든 답변을 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정 학사 개편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남는다. 사라진 수업들은 어떤 수업을 새로 만들기 위해 사라진 것인가. 글쓰기나 제2 외국어 수업 등의 시수가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어든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리고 강사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과 앞서 유출된 문건의 내용까지 모두 우연의 일치라는 것인가. 백번 양보해서 정말 학사개편으로 인해 수업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어떤 학생도 자기가 들을 수업을 200개씩이나 줄이는 학사개편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가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이 학사개편이 아니라 실은 구조조정이 아니었는지 의문스럽다. 강사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 그것만으로 이미 일련의 사태가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강사법 공대위에 따르면, 3월 14일 교무처와의 면담에서 교무처장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보이는 글쓰기의 정원 증가로 인한 수업의 질 하락에 대한 지적에 “그런 것(분반 정원의 증가) 자체가 중요하나? 수업 목표를 잘 이루는 게 중요하지.. 이번 정도의 변화도 하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는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구조조정은 왜 일어났나 - ① 대학 재정     


 그렇다면 왜 대학은 구조조정을 하는 걸까? 대학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학사개편 등의 근거가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면, 구조조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이고, 둘째는 강사의 교원 지위가 가져올 대학 사회의 지각변동이다.


 먼저 많은 이들이 비용을 구조조정의 주된 원인으로 꼽지만, 강사법 자체로 인한 추가 지출은 그리 크지 않다. 실제 방학 중 임금은 강사와 대학 간 고용 계약을 통해 책정된다. 그런데 강사들이 노동조합 등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아 강사들이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방학 중 임금이 꼭 대학에 큰 부담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퇴직금 역시 학기당 3학점 이하로 강의하는 강사에게는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 강사료 자체가 인상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강사법 이후 추가지출을 포함하여도 강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입 대비 3~4% 남짓에 불과하다.


 다만 지난 10년간 등록금이 동결되었고, 한국 사립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이 6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전체 수입 대비 1% 내외의 추가 지출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해외의 등록금 의존율은 미국의 경우 주립대학은 16.8%, 사립대학은 26%, 영국의 경우 26.7% 수준에 머무른다. 덧붙여 대학의 재정 수입은 크게 대학을 설립한 법인(흔히 재단이라고도 불린다)이 지출하는 법인전입금, 국고보조금, 개인이나 기업 등이 낸 기부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구성된다. 선진국의 대학들은 등록금 외 수입이 큰 것인데, 그것은 대학 교육이 공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등록금이 동결되었다고 해도 연세대학교의 경우처럼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강사법으로 인한 지출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파렴치하기까지 한 것이다. 2016년 기준 연세대학교의 적립금은 대학이 5,300억, 법인이 1,546억 수준으로 전국 대학 중 3위에 올랐다. 적립금은 대학이 미래를 위해 쌓는 돈을 말하는데, 수업 수 확보와 강사 고용이라는 눈앞의 문제를 방치하고서 수천억 규모의 적립금을 조성하는 것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그렇게 대학의 미래를 위해 희생되는 학생들과 강사들의 현재는, 아니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의 현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한 10년 내로 전임 교수 30%가 퇴임을 앞두고 있어 대학이 훨씬 더 유연하게 재정을 운용할 여지가 있음에도 그 재정을 강사와 학생에게는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대학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다시 한번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강사법이 처음 제정된 것이 무려 8년 전이다. 비록 계속해서 시행이 유예되었다고는 하나 8년간의 사회적 합의를 거쳐 첫발을 내딛는 강사법을 무력화하려는 대학의 시도는 무책임하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강사법의 개정과 시행 결정에 대한 합의에 대학 단체들인 한국대학(전문대학)교육협의회(대학 총장 모임)와 전국대학(전문대학)교교무처장협의회 관계자들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정말 그 기간 동안 재정적 대책을 찾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무능력한 것이다. 수천억에 이르는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대학을 운영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책임과 무능력을 차치하더라도 교육과 연구를 근간으로 하는 대학에서 그 교육과 연구를 담당할 인력을 채용하고 수업을 개설하는데 비용을 아낀다면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대학들은 수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을 핑계로 강사법 시행에 따른 비용이 부담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할 일차적인 책임은 그 대학을 설립한 법인(국립대학의 경우에는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제5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학교법인은 그 설치‧경영하는 사립학교에 필요한 시설‧설비와 당해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갖추어야 한다.” 또 교육기본법 제16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학교와 사회교육시설의 설립자‧경영자는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을 위한 시설‧설비‧재정 및 교원 등을 확보하고 운용‧관리한다.” 대한민국의 법률은 일관되게 대학 재정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그 설립자인 학교 법인에 지우고 있다.


 그러나 사립대학 법인들은 최소한의 책임인 법정부담금조차 상당 부분 학교 회계에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법인이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법인의 살림을 대학에서 빚지고 있는 수준인 것이다. 여기서 법정부담금이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따라 교/직원을 채용한 고용주로서 사립대학 법인이 부담해야 하는 사학연금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산재보험 등 4대 보험 비용과 교직원 퇴직수당을 말한다. 2016년 기준 사립대학 법인의 법정부담금 부담액은 약 25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2억 원이 증가했으며, 법정 부담률은 48.5%로 전년 48%보다 0.5%p 상승했다. 또한 2017년 기준 대학 지원을 위해 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수익용 기본 재산의 평균 수익률은 고작 3.3%에 불과하여 법정 기준인 3.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수익용 기본 재산의 63.5%가 토지인데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이 1.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인이 대학 지원이 아니라 투기를 위해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대학 교육과 연구의 수혜는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대학 재정을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학생의 참여로 교육과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학교 법인, 학생을 채용함으로써 고등인력을 충당할 수 있는 기업, 국가를 이끌어갈 고등인력을 마련할 수 있는 국가 등 대학 교육은 다방면으로 그 결실을 맺는다. 때문에 대학 교육을 공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학 재정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대학을 설립한 법인에 가장 큰 책임이 뒤따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법인의 특별한 부담 없이 등록금 수입에 의존하여 대학을 설립하고 확장할 수 있게끔 허가한 국가 역시 재정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의 형태로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떠받치게 하면서 자신의 부담을 덜었다. 그러면서도 국가는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재의 수를 값싼 비용으로 길러냈다. 1990년 158만여 명이었던 대학생은 2018년 338만여 명까지 늘어났다. 그렇게 학생들은 국가의 방기와 법인의 무책임에 의해 재정의 부담과 교육 환경 악화의 부담을 이중으로 짊어지고 있다.


 결국 대학 재정을 부담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법인과 대학 재정 지원에 무관심했던 국가의 실패가 대학 재정 문제의 원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록금 동결이나 강사법 시행과 같은 공적 조치가 별다른 재원 마련 없이 대학에 행해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강사나 학생들과 같은 대학 내 약자들에게 전가된다. 사실 대학 재정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은 교수들의 연봉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봉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가장 마지막 문제로 처리된다. 즉 대학이 정말 망하기 전까지는 교수의 고연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비용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강사법으로 추가 지출이 생긴다면,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우리가 지켜보았듯, 그것은 약자인 강사들이었다. 책임과 손해, 피해를 약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권력의 기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강사법은 누가 대학에서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구조조정은 왜 일어났나 - ② 교원 지위     


 둘째, 강사법의 핵심이 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라고 할 때, 그것은 대학 내 정치적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 교수들은 총장 선출권, 수업 개설권, 공간 배정권 등 대학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사실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려왔다. 그런데 강사들 역시 교원의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가 전처럼 쉽지만은 않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강사들이 같은 교원으로서 총장 선출권을 요구한다면 어떤 논리로 그들을 배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교수들의 이해관계 속에서는 강사의 수를 줄임으로써 그들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강사의 공개채용이라는 방식 자체에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고 서정민 박사의 경우에서처럼 암암리에 강사를 채용하던 시절에는 교수가 강사에 대해서 일자리를 빌미로 여러 형태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교수들은 고용과 관련된 약점을 이용하여 강사들을 통제하기 어렵게 되었다.


 더불어 교원 지위는 미래 비용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강사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고 할 때, 일차적으로 그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살인적인 저임금을 향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이 노동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처지의 강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리라는 것도 예상이 가능하다. 강사법 이후가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강사들이 최소 3년이라는 재임용 가능 기간 동안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같은 대학 내에서 연대하여 더 큰 목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대학들이 비용 문제라고 여기는 문제들은 미래에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반적인 임금 문제는 물론이고 방학 중 임금, 각종 복리후생 등까지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그에 따라 결국 대학 내의 누군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법인에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사의 교원 지위 보장은 닥쳐올 미래의 시작에 불과하다. 강사법은 대학 내 위계구조를 뒤흔들 것이다.


 종합적으로,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강사와 교수, 학생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이다. 그것은 재정 부족의 측면에서도 지금까지 대학 재정 부담을 대부분 학생들에게 전가해온 법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교원 지위의 측면에서도 교수-강사 간의 위계적 권력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학 재정이 그렇게 어렵다면 왜 대학 재정 지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교수의 임금이 가장 먼저 삭감되지 않는가? 대학이 교육과 연구에 돈을 아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면, 강사들에게 주는 임금은 교육이나 연구와 무관하다는 말인가?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인, 교원이 아닌 강사의 주머니가 가장 먼저 비워진다.


 대학은 총장 선출이나 대학 운영에 참여하겠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사들의 목소리를 대하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학생들과 달리 강사들은 아예 대학에서 내쫓기고 있다는 것이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2019년 1학기에만 최소 15,000명에 이르는 강사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2학기 사라진 일자리를 포함하면 20,000명을 훌쩍 넘을지 모를 일이다. 강사들은 대학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기는커녕, 권리를 말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있다. 강사에게 대학에서의 시민권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우리가 목도한 것은 강사법의 시행을 온몸으로 저지하는 대학 내 기득권자들의 파렴치한 모습뿐이다.


지금, 2019년 2학기 첫 강사 공채     


 2019년 1학기에 이어 실제 강사법이 시행되는 첫 학기인 2학기에도 수업이 많이 줄었다. 연세대 강사법 공대위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8-2학기 대비 19-2학기 신촌캠퍼스 선택교양 역사‧철학영역 73% 감소, 인문‧예술영역 77% 감소, 세계문화‧언어영역 81% 감소 등 선택교양 일몰의 추세는 계속되었다. 신촌캠퍼스 필수교양 역시 가치와윤리 영역 65%, 국가와사회공동체 및 논리와수리 영역은 25%가  감소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학생들은 여전히 부족한 수업 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더불어 여름 방학 기간, 많은 학생들은 강사 채용 지연으로 인해 강사가 누군지, 수업 내용은 어떤지도 모르는 채로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깜깜이 수강신청’ 사태에 목소리를 모았다. 시간표를 어떻게 짜고 수강신청을 얼마나 성공했느냐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의 생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여기에도 강사법 매뉴얼(강사법 시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들이 설명된 교육부 매뉴얼)이 늦게 발표되어 생긴 문제라며 강사법을 핑계 삼았다. 이쯤 되면 강사법은 대학들에게 전가의 보도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해당 문제의 본질은 이미 8년 전 최초로 입법되고, 1년 전 시행이 확정된 강사법을 제대로 이행할 준비는 하지 않고, 앞서 본 문건들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강사법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한 대학들의 시간 낭비이자 업무 태만이다. 1년 전 시행 확정과 함께 공표된 강사 공채 관련 내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매뉴얼 내용이 늦게 나온 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학들이 미리 큰 틀에서 어떤 기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강사 공채를 진행할 것인지 준비하지 않은 책임이 학생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실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에 따르면 수강신청 2일 전인 8월 5일 기준 음악대학(80%), 사회과학대학(56%), 생활과학대학(47%) 등 교수자의 이름은 물론이고 수업계획서가 게재되지 않은 수업의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국가 지원 사업 선발에 수업 개설 수 및 강사 채용 규모를 반영하여 평가하겠다는 지침이 발표되자, 대학들은 연세대의 UT(Undergraduate Tutoring) 수업의 경우처럼 공채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새로 수업을 개설하여 공채를 진행했다. 실제 연세대학교의 UT 수업의 경우에는 7월 31일에 서류 접수가 마무리되어, 8월 7일 수강신청 전까지 채용이 마무리되려면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모두 완료되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더욱이 수업 계획서까지 같은 기간 내에 게시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깜깜이 수강신청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따라 구조조정으로 인해 부족해진 수업 수와 업무 태만으로 인한 깜깜이 수강신청 모두를 학생들이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 8월부로 강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2019년 1학기는 강사법을 어떻게든 우회하려는 대학들의 행태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강사 및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면적으로 충돌한 시기였다. 연세대학교에서는 강사법 공대위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맞은편에 대형 플랑을 걸고 수차례의 자보전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묵묵부답에 가까웠던 학교 본부를 상대로 조금의 수업이라도 더 증설될 수 있게끔 노력했다. 실제 그들의 입장문과 조사 자료는 수십 차례 언론 기사에 인용되어 직간접적으로 학교 본부를 충분히 압박했다. 교육부 차관 급 인사가 총장실을 방문하여 강사법 안착을 위해 수업 증설과 강사 채용 확대 등 협조를 요구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사진 2. 2019년 5월 연세대 공대위가 연세대 캠퍼스에 내건 5대 요구안 대형 플랑.


 지면의 부족함이 있어 대학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집중하게 되었지만 그런 대학들에 맞서 싸운 수많은 학생과 강사들이 있었다. 우리가 이번 학기 처음 맞이하게 되는 UT라는 1학점 전공 수업도 그 결실 중 하나이다. 전반적인 수업의 양과 질이 모자란 상황에서 1학점 수업이 다량 개설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교육부가 움직여 BK21과 같은 대학지원사업에 강사법 이행 관련 지표를 반영하게 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그 교육부를 움직인 것이 강사법 공대위의 학생들과 강사들이었다는 점은 앞으로의 ‘투쟁’ 과정에서 조그마한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추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강사들의 노동조합 결성 등에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할 많은 수의 수업을 위해서는 강사들의 목소리에 학생들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들 것이므로 대학들의 주요 수입원인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존의 재정구조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대학 재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학의 본연의 역할인 교육과 연구를 지켜낼 것인지는 학생과 강사를 포함한 모든 대학 구성원이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강사법을 둘러싼 문제들은 어렵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강사법 자체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우리가 강사에 대해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사와 학생과 교수가 얽혀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 숱한 언론 보도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강사법으로 몰아가는 대학의 변명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강사법에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강사법이 담고 있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학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강의실에서 매주 만나게 될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대학이 조금 더 나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강사법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부족한 이 글이 강사법에 대한 고민,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대학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기고자 둥지냉면 (apg3895@gmail.com)


참고자료

- "대학강사는 현대판 노예제도…강사구조조정 중단해야", 뉴스1, 2019.03.23.

- “전임교원 책임시수 증가로 설 자리 잃은 비정규교수들”, 매일노동뉴스, 2017.01.03.

- “강의가 사라진 강사들의 외침”, 한겨레, 2019.04.10.

- 「‘강사법’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시사IN》, 2019.04.24., 미국사례 조사.

- “강사법 유예 7년 동안 시간강사 37% 줄어…성균관대 감소율 96%”, 한겨레, 2019.5.29.

- “"강사법 대비 강의수 축소·과목 통폐합"…고려대, 대외비 문건 파문”, 뉴시스, 2018.11.14.

- “연세대, 강사정원제·책임강의시수제 도입…내부 문건서 드러나”, 뉴시스, 2019.12.14.

- “연세 교육, 대격변을 맞다”, 연세춘추, 2018,11.04.

-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외, 『미친 등록금의 나라』, 개마고원, 2013, 81쪽.

- “‘늙어가는 교수사회’ 10년내 30% 정년…“학습권 피해 우려””, 한겨레, 2018.03.27.

- “'법인 건전성' 법정부담금 부담률 성대 1위.. 연대 인하대 건대 동국대 톱5”, 베리타스알파, 2017.11.03.

- “교육부·학생 맹공에 연대·고대 강사 공채 규모 확대 조짐”, 뉴시스,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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