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기획기사 ④
간담회를 기획하기까지
10월의 어느 날, 《연세》, 《문우》, 《015B》의 편집위원들은 우연한 계기로 만났다. 이들은 코비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제안했다. 우리, 학내 언론으로서 무언가 해 봐야 하지 않겠냐고.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도 연세춘추와 노동자연대에서 나온 총 3개의 기사를 빼면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문제의 맥락을 파악하고 연대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세 언론이 만났다. 빠르게 기사를 쓰고, 간담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이 상황과 맥락을 자세히 알리기로 했다. 한동안 이루어지지 않던 노동자와 학생 사이의 연대도 되살리고 싶었다. 지금은 사실상 활동을 멈춘 ‘연세대학교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도움으로 노동자분들과 연락할 수 있었다.
10월 24일, 처음으로 노동자분들께 찾아갔다. 4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백양로를 걸으며 피켓들을 읽은 적은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직접 여쭤 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더는 그저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10월 24일 정오, 노동자분들은 그날도 피켓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코비 컴퍼니와 연세대학교에 책임을 묻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심층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했다.
11월, 우리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8일, 《연세》는 백양로의 현수막들을 중심으로 현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를 썼고, 11일과 12일에 연달아 노동자분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인 《문우》와 《015B》의 기사가 <아코디언>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왔다.
그리고 11월 13일 11시 30분, 연희관 B015호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이하 자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공개 간담회”가 열렸다.
목소리들
간담회는 6분 늦게 시작되었다. 백양누리와 제4공학관에서 연희관까지의 거리는 짧지 않았다. 백양누리에서 일하는 세 분, 제4공학관에서 일하는 세 분, 그리고 노조 임원 분들과 민주노총 상근자까지 총 열한 분이 오셨다. 우리는 간담회에 앞서 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들을 통해 각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에 참석 요청을 전달했고, 제55대 총학생회 선본 <Mate>, 제57대 공과대학 학생회 선본 <PAGE>, 제12대 문화인류학과 학생회 선본 <온도>, 제17대 사회학과 학생회 선본 <DIVE>가 이에 응하여 참석했다.
간담회 당시 자도를 떠올려 본다. 자도에 들어가면 노동자분들과 학생들이 각각 두 줄로,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왼쪽의 온돌 자리 중 노동자분들의 얼굴이 보이는 자리에도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았다. 마주보는 얼굴들로 메워진 자도에서 간담회는 시작됐다.
Q1. 코비는 무엇이며, 이 선전전은 얼마나 오래 했고, 당장의 요구사항은 무엇인가요?
분회장님에 따르면 연세대 안에는 코비 컴퍼니(이하 코비)까지 합쳐서 총 7개 회사가 있다.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하려면 8시간 전일제 고용이 바람직하지만, 코비는 3~5시간씩 노동자를 고용하는 용역회사다. 코비는 노조가 건넨 기본합의서에 사인도 안 하고 임금 교섭도 거절했으며, 그때부터 감시단을 붙여서 노조에 가입한 분들만 직접 감시해 왔다.
요구사항은 코비를 퇴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질 용역 업체와 같이 일할 수 없어요.
- 연세대학교 분회장
Q2. 최근에 감시단을 파견해서 압박하는 현상을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직접 감시단에게 피해를 입은 노동자분들이 입을 열었다. 아침의 감시는 제4공학관에서 백양누리로 이어졌다. 제4공학관 노동자분들은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근무하는데, 감시단은 미리 와서 노동자분들을 기다린다고 한다. 노동자분들이 도착하면 감시하고, 조롱하고, 눈치를 준다. 그리곤 7시부터 근무하는 백양누리 노동자분들께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간식도 들고 다니면서 땀 흘리면서 먹어야 하는데 감시단들이 이러고 쳐다보고 있어요. 등에 땀이 막 나고, 사장님이 또 복도에서 쳐다보고 있어요. 왜 왔냐고 하면 보려고 왔대. 하루이틀도 아니고. 깜짝깜짝 놀래. 일하다가도 옆에 누구 있나 확인해. 지금도 나타나요. 그러니까 이게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무서워서 진짜.”
- 제4공학관의 청소노동자
‘업무지원단’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감시단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한 사람에게는 다가가서 정말로 ‘업무를 지원’했다. 사장은 조합원인 반장을 정직시키고 비조합원을 총괄반장으로 임명했다. 그 이후 총괄반장은 사장의 지시에 따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녹음 및 촬영으로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조합원과 노동조합에 대한 압박은 감시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장은 대놓고 비조합원들에게만 포상금을 주며 차별대우를 이어갔다.
이런 문제는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3년 동안은 감시가 없었으나, 사장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에게 5시 반까지 출근하라고 요구하고 감시단을 붙였다. 분회장님은 이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9월 25일에 5시 20분까지 출근했는데, 사장과 감시단이 여성 노동자분들 방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한다. 일하려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노동자들은 출근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감시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연차 휴가와 공휴일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노조에 가입하기 전에는 평소의 1.5배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 공휴일에도 똑같은 돈을 받으며 일했다. 정수기도 없었다. 1년을 쉬지 않고 일해도 연차 수당은 없었다. 4년 만에 하루 쉬겠다고 말한 조합원에게 사장은 화를 냈다.
Q3. 근무시간이 짧고 인력 충원이 없어서 3, 4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비단 코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루에 8시간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2017년 구조조정 이후로 힘들어졌다. 정년 퇴임으로 빈 자리에 인원을 채우지 않아서 업무량이 2~3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산학협력관과 GS칼텍스 건물은 세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게 되어, 다른 건물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도와주어야 마칠 수 있는 수준이다. 제4공학관이나 백양누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걸 4시간 동안 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집에 가면 녹초가 돼서 자는 거지. 7, 8, 9, 10층을 세 명이 가서 다 해야 해. 하루 종일 할 일을 단시간에 시켜 버리고.”
- 제4공학관의 청소노동자
이처럼, 연세대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은 법에 보장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고, 더 많은 노동을 쉼없이 하면서도 그에 해당하는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권리를 행사하려 노동조합에 가입했더니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방해했다. 감시단 6명을 고용할 돈으로 청소노동자를 고용했다면 건물은 깨끗해지고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조금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코비는 깨끗한 건물과 노동자들의 삶이 아닌 노조 파괴를 선택했다.
책임과 연대
코비는 연세대학교와 계약한 용역 업체다. 즉, 연세대학교가 원청이고 코비는 하청이라는 뜻이다. 하청 업체는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간접고용이라고 불리는 이 이상한 구조는 학교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 하청 업체가 챙겨야 하는 돈이 있으니 당연하다. 이 구조의 목표는 비용 절감보다 책임 회피에 가깝다. 하청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원청은 “우리는 당신들 고용주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책임이 사라지는 구조다. 현 상황은 코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비가 임금을 덜 주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코비는 어디서 돈이 나서 감시단을 고용했을까? 그 돈은 원래 누가 낸 돈이었을까?
연세대학교의 간접고용 문제는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다. 코비와 다시 계약하지 않더라도, 코비 소속 노동자들은 연세대학교에서 계속 일할 것이다. 업체가 바뀌어도 일터를 유지하는 고용 승계 조건 때문이다. 업체가 바뀌어도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은 책임 소재가 어디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간담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상근자는 코비의 노조 파괴 전략이 2016년 세브란스 병원이 회유, 감시, 이간질 등으로 청소노동자를 파괴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2011년에 연세대학교가 민주노총 압박을 위한 복수노조 설립을 하청 업체와 긴밀히 논의한 적이 있었고, 이후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코비 사태 또한 연세대학교와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학교는 비용을 핑계로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비노동자분들이 정년 퇴임한 후 생긴 공석을 채우지 않고 있다. 강사법 시행 이후에는 강사 수와 개설과목 수를 줄여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 분명 학생들과 청소경비노동자들, 강사들은 개별적이지만, 학생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서는 청소경비노동자들과 강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청소경비노동자들과 강사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면 학생들의 권익도 그에 따라 개선된다.
분회장님은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에 진행한 점거 농성을 떠올리셨다. 분회장님에 따르면, 당시 민동준 연세대학교 부총장은 학생들을 모아 놓고 노동자분들의 임금이 등록금에서 나가는 것이니 투쟁에 동조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 학생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록금을 미끼로 노동자와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다. 그러면 5시 20분부터 11시 20분까지 일하는 감시단의 임금은? 인력을 줄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기껏해야 5시간씩 계약하던 코비가 학교의 지원 없이 6시간 일하는 6명의 감시단을 고용했을 리 만무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관리하는 청소•경비노동자의 충원보다 노조 파괴가 더 중요했던 걸까.
“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에요. 총무과 행정직 이분들도 학생들 등록금으로 움직이면서 자기들이 주인 노릇 하고 있는 거예요.”
- 연세대 분회장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연세대학교 강사법관련구조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코비 사태 해결에 연대할 이유도 충분하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나가며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요.
이렇게 학생분들과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자리 마련해 주신 거 진심으로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귀를 기울여 주셨구나, 너무 감사합니다.
간담회에서 노동자분들이 해 주신 말씀이다. 간담회를 기획하고 노동자분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 학생들은 노동자분들께 “천군만마”가 되었다.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고, 사람들에게 알릴수록 노동자분들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모으고, 누군가의 곁에 서고, 부정의에 저항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연세대학교는 오랫동안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은 채, 일단 결정하고 통보하기만을 반복해 왔다. 국제캠퍼스 건설도, 재수강 3회 제한도, 수강신청 제도 변경도, 강사법 시행 이후 개설과목의 폐지도. 이처럼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학교에 얼마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나는 백양로에 서서 피켓을 들고, 학생회관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학교에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노동자분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연대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연세대학교는 노동자분들의 요구를 계속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백양로와 학생회관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는 한, 학생들은 침묵만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목소리와 목소리는 서로의 용기가 된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
연세 편집위원 nope
아코디언 기획기사
1. 백양로의 빨간현수막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2.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들려드립니다.
연세춘추
노동자연대
- "서울대 노동자 죽음 보고 딱 우리라고 생각했어요"
코비 컴퍼니와의 계약 직후 상황이 담긴 기사
민중의소리
- 홍대·연대, 청소노동자들과 마찰… 용역업체까지 충돌
참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