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nope
오~ 이런, 이번 학기도 수강신청을 망쳤다. 수강변경 기간에 나름 괜찮은 시간표를 건졌지만, 이는 순전히 운이었다. 분명 마일리지선택제는 도입 당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학교는 이것이 “예일대, 스탠퍼드 MBA, 싱가포르 난양대, 서울대 EMBA”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은 이를 ‘연세 카지노’라고 조롱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일방적 개편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수강신청 제도는 너무나 당연해져서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억울함과 궁금증이 섞여 수강신청 제도를 깊이 알아보고 싶어졌다.
1990년대 초에는 인기가 많은 수업을 신청하려고 전날 밤부터 학과 사무실 앞에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기간을 정해서 온라인으로 신청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부터이며, 전화회선을 이용한 수강신청의 문제점이 지적된 1998년 연세춘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연세대학교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온라인 신청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을 쓰면서 조사한 대상은 온라인으로 찾을 수 있는 1998년 자료부터이다. 그렇게 연세춘추와 YBS, 그리고 그 외 학내 언론의 기사들을 검토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직접 발표한 보도자료 및 공지사항을 모은 후 기성 언론에서 발행된 기사들도 검토해 보았다. 참고한 기사의 출처를 일일이 달기보다는 맨 뒤에 목록 전체를 첨부하기로 했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수강신청 제도가 꾸준히 변화해 왔고, 그에 따라 해결된 것들도 있지만 새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고 말하려 한다. 수강신청 제도는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섭을 통해 바꿀 수 있으며,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교육권의 영역이다. 수강신청 제도가 개선되어 오기는 했으나, 그에 따라 새로운 문제도 꾸준히 발생해 오고 있다. 내가 마일리지선택제에서 원하는 시간표를 만들지 못한 것에는 분명 나의 미흡함도 있지만, 마일리지선택제에서 수강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들이 정말 학교가 밝히는 것처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지는 따져 봐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대학교 수강신청 제도의 역사를 짚은 후 지금의 수강신청이 어떤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리대학교 수강신청 문제점”, 1998년 2학기 초에 발행된 연세춘추 기사의 제목이다. 이로부터 세 학기 뒤인 2000년 1학기 초에는 “우리대학교 수강신청 문제”라는 거의 같은 제목의 기사가 또 올라왔다. 거의 20년 전인 그때 연세대학교의 수강신청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앞의 기사에서는 수강신청의 문제를 세 단어로 요약한다.
“무지(無知), 무의지(無意志), 무변화(無變化)”
당시 학교에서는 수강신청 ‘전쟁’의 책임을 소위 ‘꿀강’만 찾는 학생들에게 돌렸고, 동시접속 가능 인원을 늘리겠다는 학교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한 모의수강신청 또한 성공적이지 못했다. 당시에는 한 번에 약 5천 명 정도의 학생들이 동시에 수강신청을 시도했는데, 동시접속이 가능한 최대 인원은 4백 명이었으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에 예비수강신청이 처음 시도되었으나, 2000년 1학기에 발행된 기사에서도 “수강변경 첫날 아침 9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약 2시간 동안 수강신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적혀 있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2004년에는 동시접속자 수가 기존의 2배로 증가했으며, 2006년 1학기에는 수강신청 제도가 개선되었다. 그러나 수강신청 때 터지는 서버와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계속 기사화됐다. 입학 후 처음 치른 수강신청에서 ‘서버가 터져’ 이틀 동안 진행된 수강신청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20년 동안 이토록 변한 게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진설명 시작>
강사법 시험에 따른 교육부의 세부적 지침이 최근에 발표됨에 따라 2019학년도 2학기에 개설되는 일부 과목의 수업 정보 확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담당교수, 수업계획서 등의 정보가 등록되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수강신청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사진설명 끝>
수강신청과 관련된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강사법 시행에 대한 대응으로 강사를 대거 해고하여 수강신청 이후에도 교수자가 확정되지 않는 경우마저 발생했으며, 강의계획서가 제때 올라오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강의계획서의 공지가 늦어지면 학생들은 수강신청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인 줄 알고 신청했다가 뒤늦게 영어 수업이라는 통보를 받기도 하고, 반대의 상황도 발생하곤 한다. 심지어 수강신청이 끝난 후에 강사가 채용되거나 변경되는 경우까지도 있다. 올해 연세대학교에서도 강사 채용이 늦어지면서 수강신청 이틀 전인 8월 5일까지 전공·교양 강의 약 3000개 중 4분의 1에 달하는 759개의 강의계획서가 게재되지 않았다. 강의계획서가 이렇게나 늦게 올라온다면, 속기 신청, 도우미 배정이나 강의실 변경을 위해 조금 더 일찍 수강신청을 진행하는 장애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은 더욱 침해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에 더해, 수강신청과 관련되는 연세포탈 등 학교 사이트의 보안이 취약하다는 문제 제기가 다수 이루어진 바 있다. 2012년에는 한 학생에 의해 다른 학생의 성적과 신상이 큰 어려움 없이 열람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었으며, 그 바로 다음 해인 2013년에는 와이섹에서 다른 학생의 로그인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마일리지선택제 모의수강신청에 참여한 일부 학생들에게만 공개될 예정이었던 모의수강신청 결과가 어떤 학생에 의해 열람되어 공개되었을 때도 학교 사이트의 보안 상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수강신청은 단순히 동시접속 인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연세대학교의 선착순과 마일리지선택제를 분석하며, 각 제도의 장단점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특히, 선착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일리지선택제를 도입하는 과정과 여기서 발생한 마찰, 그리고 마일리지선택제에서 새롭게 발생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글을 써 나갈 것이다.
수강신청 때 ‘서버가 터지는’ 이유는 충분한 수준의 동시접속 인원을 감당하는 서버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실제로 연세대학교는 이를 기존 시스템의 문제로 지적하며, 마일리지선택제의 장점을 부각할 때 언급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의 개편으로 인해 기존 선착순 시스템이 갖고 있던 문제인 특정 시점에 수강신청의 수요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고 수강신청과 관련된 비교육적인 행태들(수강신청 시작 5분 만에 종료되는 수강과열, 클릭 자동화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으로 인한 시스템 부하 및 타사용자의 불편 야기, 빠른 클릭을 위한 PC방 장시간 대기 및 이용 등)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착순 시스템은 어떤지 잠시 떠올려 본다. 나는 빠르게 신청 버튼을 누르려고 수강신청 시작 10분 전부터 손을 풀었다. 제일 위에 담은 수업을 누르고, 바로 그 아래로 넘어가서 누르고, 앗, 팝업을 차단하지 않았네, 팝업 차단 후에 나는 다시 열심히 누른다. 내 손이 정확히 한 번에 한 칸만큼 움직일 때까지 나는 계속 연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빠른 클릭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는지, 빠른 클릭을 위해 아예 수강신청 전용으로 맞춤 개발된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각 대학에서는 자체적으로 매크로를 규제하고 있으나, 매크로 규제 과정에서 무고한 학생이 매크로 사용자로 오인되어 수강신청에 실패하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선착순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기서는 사양이 좋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수강신청 당일이나 수강신청을 앞두고 다치거나 아파서 일시적으로 PC방에 갈 수 없는 사람은 수강신청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뿐 아니라, 수강권의 선착순 배분이 정당한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수업을 들을 권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배분해야 하는가? <네이비즘 서버시간>에 들어가서 “ysweb.yonsei.ac.kr”을 입력한 뒤 대기하다가 빠르게 마우스를 누르는 소위 ‘광클’ 능력?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광클’일 때 ‘올클’한 사람이지만, 저 방법이 수강 여부를 결정하는 정당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15년 1학기 수강신청에서 지금의 SE에 해당하는 ‘HE(Holistic Education)’ 수업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두 개를 나처럼 한 번에 신청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결코 많지 않았다.
이처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선착순 제도임에도, 나는 하나의 장점을 꼽을 수 있다. 내가 여태 수업을 얼마나 들었는지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언제든 수강신청에서는 속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는 것. 지난 학기에 동아리나 학회, 학생회 활동, 혹은 인턴을 하느라 학점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어도, 다음 학기에 선착순의 기적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당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특히 서버가 터져서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하얀 화면 앞에서 일어나는 기적일 뿐이고, 이 기적의 수혜자가 지난 학기의 수혜자와 다르리라는 확신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춘추의 어느 헤드라인처럼, 이는 “3초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로또”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기준을 세우기가 분명 어렵지만, 수강 여부의 결정에는 학생들이 한 수업을 얼마나 듣고 싶은지, 얼마나 필요한지 등의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수강신청 제도의 개편이 논의된다.
2015년 1학기에 수강신청 제도의 변경이 사실상 통보되었고, 이에 연세대학교의 세 캠퍼스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이때까지는 학생들과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제도개편을 알렸다는 점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파헤쳐 봐야 한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강신청 관련 용어를 우선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표 내용 시작>
수강신청 용어
마일리지선택제 부여받은 마일리지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수강 희망 과목에 배분하여 수강신청하는 제도
타임티켓제 수강과목을 학년이나, 전공 등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짓는 제도
대기순번제 선착순에서 수강 정원이 가득 찬 후에 신청 버튼을 눌렀거나, 타임티켓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학생에게 대기순번을 부여하는 제도
<표 내용 끝>
신촌 캠퍼스 52대 총학생회 <Solution>은 2013년 11월 출마 당시 기존 안에 대기순번제를 추가한 ‘수강신청 예약순번제(이하 초기안)’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즉, 선착순을 기본으로 하되 여기서 실패한 학생들에게 대기순번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때쯤 교무처에서는 기존 안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순번제·마일리지선택제에 타임티켓제를 추가했다. 수강 여부 결정에서 1순위를 투여한 마일리지의 값으로 잡되, 마일리지가 같은 경우 타임티켓제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총학생회와 학교는 수강신청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합의하여, 2014년 12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총 3차례의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편안 도입 시기에 대해 총학생회와 학교의 입장 차가 발생했다. 총학생회에서는 아직 개편안을 보완할 때라고 생각했으나, 학교는 당장 2015학년도 2학기부터 개편안을 시행하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신촌의 총학생회는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미래 캠퍼스에서는 총학생회가 실시한 투표에서 참여자의 약 80%가 개편안 즉각 시행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4월과 5월에는 신촌 캠퍼스와 미래 캠퍼스에서 수강신청 제도개편 설명회 및 공청회가 열렸다. 신촌 총학생회와 총장을 비롯한 학교 간의 면담도 진행됐지만, 학교는 결국 계획대로 2015년 2학기부터 개편안을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마일리지선택제가 시행된다.
2015년 2학기부터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마일리지선택제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학교는 이 제도를 열성적으로 홍보해 왔는데, 학교는 마일리지선택제의 장점을 수강신청 들어가는 화면의 ‘제도안내’의 첫 목차인 ‘목적’에 정리하여 적어 두었다. 이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가. 기존의 수강신청 방식이 선착순에 의해 결정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특정시점의 집중현상, 과목의 매매 등 비교육적인 행태)을 해결
나. 특정 과목 수강에 대한 욕구의 정도를 학생이 반영할 수 있도록 하여 학생 본인의 결정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
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학생의 불만을 최소화
라. 수강신청에 대한 수요가 정확하게 반영된 기초자료가 수집될 수 있어 과목의 정원조정 및 추가 개설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로 활용 가능
현행 수강신청 제도를 조금 더 정확히 알아보자. 지금 시행되는 제도는 셋으로 분류될 수 있다. 바로 마일리지선택제, 대기순번제, 그리고 타임티켓제도. 제도 안내에는 대기순번제가 추가수강신청과 수강변경에만 해당한다고 적혀 있으나, 마일리지선택 후 우선순위에 따라 대기 번호도 부여되기 때문에 수강신청 전 과정에서 사용된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대기순번제는 앞서 언급했듯 총학생회에서도 제안한 바 있다. 마일리지선택제뿐 아니라 이와 함께 사용되는 타임티켓제도에 대해 연세대학교는 2015년 4월 1일 보도자료에서 “수강과목배정을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짓는 타임티켓제도는 조지아 공과대학 등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라며, 이 시스템이 선진적이라고 홍보했다.
그렇다면 타임티켓제도는 얼마나 합리적일까? 다음은 수강신청 로그인 화면에서 ‘매뉴얼’을 누르면 볼 수 있는, 현행 수강신청 제도에서 수강 여부를 결정하는 우선순위 목록이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 (마일리지선택제) 기간의 신청내역
신청내역은 최종적으로 수강신청이 결정된 사항이 아니며, 선택한 마일리지 및 동점자 우선순위에 따른 성공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됩니다. 마일리지가 동점인 경우의 우선순위는 다음의 기준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1) 과목별로 학생이 배분한 마일리지
2) 특수교육대상자 여부
3) 개설학과에서 설정한 전공학과와 학생전공(복수전공)의 일치 여부
4) 신청과목수(학과별 형평성을 고려하여 최대 6개까지만 반영하며, 수강허용학점의 예외 과목(채플, 사회봉사, 주니어세미나, RA리더십, RC자기주도활동, UT세미나, 군사학 등)은 과목수에 포함하지 않음)
5) (수강신청(마일리지선택제)기간 종료 시점의) 졸업(수료)신청 여부
6) 초수강(재수강 아님) 여부
7) 총이수학점/졸업이수학점(1.00까지만 반영함)
8) 직전학기이수학점/학기당수강가능학점(1.00까지만 반영함)
우선, 마일리지선택제를 도입한 것이니 1순위는 넘어가도록 한다. 2순위는 장애학생의 교육권과 관련되는데, 부득이하게 우선수강신청 기간이 지나서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닌 학생들과 함께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이를 고려하여 특수교육대상자를 2순위로 올렸다고 볼 수 있다. 3순위는 전공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즉, 1순위는 현행 제도의 근간이고, 2순위와 3순위는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4순위부터 8순위다.
우선 4순위를 보도록 하자. 신청과목수는 왜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포함되었을까? 이는 수업을 많이 듣는 학생이 수강신청에서 유리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과연 처음 수강신청에서 더 많은 과목을 신청한 학생이 실제로 더 많은 수업을 들으며 학기를 보낼까? 나는 이번 수강신청에서 5개를 신청했다가 3개의 수강에 실패했고, 수강변경의 결과 총 6개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즉, 수강변경 기간이나 수강철회 기간에 과목 개수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수를 추가하여 4순위를 다시 해석해 보자. 이것은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때, 실제 수강 의사나 여부와는 무관하게 더 많은 과목을 신청한 학생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그러나 ‘더 많은 과목 신청’과 각 과목에 대한 학생의 선호도 혹은 필요성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는 신청과목수와 과목 선호도, 필요도, 학생의 성실성 사이의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본 적이 없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5순위는 꽤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마일리지도 똑같이 넣고, 똑같은 전공에, 신청과목수도 같은 상황에서 졸업을 앞둔 사람과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전자에게 해당 과목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물론 과목의 내용, 학생의 선호도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딱 이 수업만 더 들으면 졸업할 수 있는’ 상태는 분명 그에게 해당 수업이 더 필요하고, 더 높은 효용을 선사하리라고 추정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를테면, 6cm짜리 문턱을 넘으려고 할 때, 5cm만 발을 들면 넘지 못하지만 여기서 1cm만 더 들면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이때 이 1cm의 효용은 다른 1cm보다 크다는 것이 일명 ‘문턱 효과(Threshold Effect)’다. 이에 따르면, 예비 졸업생에게 수강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한두 과목 때문에 졸업을 못 하면 이를 채우기 위해 계절학기나 초과학기를 등록해야 하는데, 이때의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생각해도 예비 졸업생을 우대하여 빠르게 수업을 듣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신청과목수보다 졸업신청 여부가 후순위인 이유에 대해서는 적혀 있는 바가 없다.
그리고 6순위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학생사회 전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는 2013년부터 재수강 3회 제한 제도를 강행했다. 학교에 따르면 “재수강 제도는 건강문제 또는 경제적 압박 등 부득이한 이유로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 달리 성적을 낮게 받은 학생에게 과목을 재수강해 우수한 성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일시적 사유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도입된 제도”로, 1994년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홍보처에서 2012년에 공지한 재수강 변경안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 재수강 의존으로 인한 제도개편 필요성
가. 취업 및 진학을 위해 저조한 성적을 높이기 위한 제도로 악용.
나. 학습 분위기가 흐려지거나 더 유익한 교육 활동에 투자되어야 할 자원이 낭비.
다. ‘학점 인플레’로 인하여 성적 평가에 대한 기업과 해외 유수 대학원의 신뢰 하락.
라. 1~2개 학기 미뤄지는 등 학생에게 낭비되는 시간과 비용이 학부형과 사회에 부담.
정갑영 총장에 의해 2013년부터 ‘재수강 3회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재수강 제도 개편안이 도입되자, 연세대학교 홍보처는 이를 “학사운영의 정상화”라고 표현했다. 이는 얼핏 보면 취업보다 학문이라는 대학의 ‘본질’에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지만, 학생들이 재수강을 “악용”하게 되는 사회의 환경은 문제 삼지 않는다. 또한, 늦은 졸업이 당사자와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위 문서에서는 학교가 학생의 비용마저 사회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다. 즉, 재수강 제도는 부득이한 이유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학생의 구제 방책으로 마련되었으나, 학생이 아닌 기업과 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이 장려되고 급기야는 개편된 것이다.
재수강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학점을 높여야만 하는 사회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재수강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책임 전가다. 재수강 제도 자체가 대학의 ‘본질’적인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따져 봐야 할 문제이겠지만, 지금의 문제도 다룰 수밖에 없는 행정에서는 당장 재수강이 꼭 필요한 학생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마땅하다. 재수강 횟수를 아끼려고 수강철회나 중도휴학을 감행하는 학생들까지 생겼다. 그만큼 지금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재수강은 각별한 존재다. 이런 상황이기에, 확고한 근거 없이 초수강생을 재수강생보다 우대하는 타임티켓제의 6순위 또한 의문이 남는다.
7순위와 8순위, 나는 이 구간이 특히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설명할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임티켓제의 7순위와 8순위는 실패나 여유를 관용하지 않는다. 첫 단추를 잘 끼운 사람을 우선순위로 두는 이 제도는 수강신청에서 일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발생시킨다. 우선, 차근차근 우선순위를 차례대로 분석해 보도록 하자. 같은 마일리지, 같은 전공, 같은 신청과목수라는 조건에서 둘 다 졸업신청자가 아닌 경우는 많다. 같은 전공의 두 학생이 6과목, 즉 18학점을 신청하면서 전공과목에 최대 마일리지를 넣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전공과목과 교양과목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빈번하게 생길 것이며, 교양 수업은 전공 여부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필수교양/대학교양 수업에서 이러한 상황은 아주 흔할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 7순위와 8순위는 수강 여부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정원보다 많은 인원이 몰린 수업들의 2019-2학기 마일리지 수강신청 결과를 조회해 보았다. 특정 학과에 치우치지 않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필수교양/대학교양 수업 중 다양한 분야를 골라서 총 10개의 과목에 대해 어떤 기준이 수강신청에서 결정적인지 살펴보았다. 과목 목록은 다음과 같다.
<표 내용 시작>
과목명, 담당교수, 강의시간, 정원(A), 참여인원(B), A분의 B 순서이다. 시작.
문명과질병 / 박돈하 / 화4,목5,6 / 65 / 229 / 3.52
철학과윤리 / 고정식 / 수5,금5,6 / 126 / 141 / 1.11
수화 / 김미실, 남기현 / 월7,8,9 / 45 / 72 / 1.6
유럽도시문화공간으로읽는역사 / 홍석민 / 온라인 / 190 / 398 / 2.09
이상행동의심리 / 양현정 / 온라인 / 190 / 308 / 1.62
오래된미래,르네상스 / 김상근 / 수7,8,9 / 92 / 243 / 2.64
가족생활과법 / 신정민 / 금7,8,9 / 107 / 254 / 2.37
경제학개론 / 유병하 / 월3,4,수4 / 64 / 161 / 2.51
우주의이해 / 김용철 / 월3,4,수4 / 107 / 243 / 2.27
인공지능의이해와활용 / 손의성 / 월5,6,수6 / 37 / 161 / 4.35
<표 내용 끝>
이 과목들의 ‘마일리지수강신청결과 조회’에서 2순위인 특수교육대상자 여부는 비고란에 별표로 처리되어 학년별 정원에만 포함되며, 위 과목들은 교양이므로 3순위인 전공 여부도 의미가 없어서 기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앞에서 다룬 1~6순위를 이 과목들을 통해 살펴보았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순위) 정원은 거의 예외 없이 마일리지를 36 선택한 학생들로 가득 찼다.
(4순위) 신청과목수는 거의 예외 없이 6이었다.
(5순위) 졸업신청 여부는 수강 커트라인 근처에서 변동이 없었다.
(6순위) 초수강 여부 또한 위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7순위와 8순위가 수강 여부에서 O와 X를 가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달아 입력된 ‘O’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X가 1회 혹은 연달아 등장하는 구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X가 주르륵 연달아 나올 때, 경계에서 순위가 차이 나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7순위 혹은 8순위의 영향이었다. 즉, 지난 학기의 이수학점이 더 높거나, 총 이수학점이 더 높으면 그다음 학기 수강신청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일리지선택제의 문제가 발생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물론, 학생 자치활동이나 대외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도 18학점, 21학점을 꽉 채워 들으며 성적도 좋은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학생 자치활동이나 대외 활동에 들이는 시간과 학업에 들이는 시간은 따로 있지 않다. 둘은 모두 시간을 24시간 중에 할당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 여름 《연세》의 학내기획에서 짚어 보았듯이,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학생사회에서 멀어진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학생회나 후보자에 대한 실망, 생업과 취직의 압박 등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한 독자위원의 지적처럼, 사실상 신촌 캠퍼스를 신촌-송도로 이원화해 버린 One-Campus 정책은 그 의도가 어떠했든 공간 분리를 통해 선후배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학생사회의 결속력을 약화했다. 나는 이에 더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학점을 충분히 이수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수강신청도 어려워지는 수강신청 제도도 알게 모르게 학생들이 자치활동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큰지 작은지,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학번을 생각했을 때 총이수학점이 적은 편이며, 이 때문에 수강신청이 어려워져서 직전학기이수학점 또한 적은 편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수강신청 때마다 최대로 마일리지를 선택한 전공과목 중 적어도 하나를 수강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이번 학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4~5개의 수업을 듣고 관련 내용을 깊이 공부하고 싶었으며, 대학 생활의 로망이었던 학회와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싶었다. 성적도 나쁘지 않게 받았고, 동아리 활동도 즐겁게 했지만, 그 이후 나는 수강신청 시즌마다 어차피 수강에 실패할 과목에 티끌만 한 희망을 붙들고 최대 마일리지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이 상황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성적을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학업 성적과 수강 여부 결정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관계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현행 수강신청 제도에 ‘빈익빈 부익부’를 포함한 여러 결함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으며, 이 문제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마일리지선택제 시행 이후로 연세대 학생들은 수강신청 당일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PC방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수강신청 순간에 마음 졸일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 마일리지선택제는 2학년 이상의 학생들이 맨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때 한정된 방식이고, 신입생 및 1학년, 2·3차복학생은 여전히 새벽부터 시작되는 클릭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서버 문제도 다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마일리지선택제 시행 이후 수강신청 성공/실패 여부를 확인할 때 서버가 터지기도 했고, 선착순과 대기순번제가 사용되는 추가수강신청, 수강변경, 계절학기 수강신청에서는 꾸준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당장 이번 2019-2학기 수강변경에서도 나는 약 1시간 동안 ‘응답 없는’ 하얀 화면 혹은 멈춘 화면을 간절하게 붙들고 가슴을 졸여야 했다.
<표 내용 시작>
최대 마일리지가 있는 학과 및 최대 마일리지
국문 20
신소재공학 18
심리학 12
정치외교학 18
중어중문학 18
행정학 18
영어영문학 12
사회학 20
경제학 12
언론홍보영상학부 12
응용통계학 12
교육학 18
경영학 12
<표 내용 끝>
이뿐 아니라, 전공에 따라 최대 마일리지가 다르며, 전공수업의 수강신청 경쟁률이 높은 전공일수록 교양과목의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어 왔다. 전공수업에 높은 마일리지를 사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교양과목의 수강은 어려워진다. 응용통계학과, 정치외교학과 등 복수전공자가 많은 전공의 수업에서도 마일리지 경쟁은 불꽃이 튄다. 이는 마일리지선택제의 목적이라고 적혀 있는 학생의 수강 욕구와 수강신청 수요조사 모두에 어긋나는 결과다. 정원보다 많은 인원이 신청한 수업이라고 수업 개수가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요조사는 명목에 불과해 보이기까지 한다. 단과대별 최대 마일리지는 해마다 자주 바뀌어 왔으며,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 경우에도 불만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고 하지만, 그 말이 교육권 개선을 위한 논의를 막는 수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제54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Catch>와 <Flow>는 모두 재수강 3회 제한 폐지와 마일리지선택제 수강신청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Catch>에서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문제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향으로, <Flow>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 학우들의 의견을 넓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 내놓았다. 그러나 마일리지선택제 자체에 대한 논의와 교육권 논의는 중단된 듯하다. 수강신청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 수와 비교했을 때 수업의 수, 교원의 수가 너무 적고, 강의계획서가 제때 올라오지 않아 학생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대학교 교육권 문제의 근본 원인과 현행 수강신청 제도의 문제점이 꾸준히 논의되어, 더 많은 학생이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편집위원 nope (writingnope@gmail.com)
연세춘추는 이하 ‘춘추’, 연세교육방송국은 이하 ‘YBS’, 연세대학교 공지사항 및 보도자료는 이하 ‘본부’, 그 외 언론은 각 언론의 이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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