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이해일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창세기 3:16)
‘잉태하는 고통’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이브가 받은 저주다. 이 구절을 처음 읽은 나는 ‘아기를 안 낳으면 저주 하나를 피할 수 있군!’이라고 기뻐했다. 13살쯤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몹시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월경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고 치면, 월경은 평생에 걸친 ‘잉태하는 고통’인 셈이었다. 출산 계획이 없는 나로서는 가끔 자궁을 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억울한 일이다. 일생에 한 번쯤 신을 만나서, 출산 생각이 없다면 각서를 쓰고 월경을 안 하는 절차를 밟게 해주면 안 되는 걸까?
이 글은 초경을 겪고 딱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과거를 회고하는 글이다. 월경의 번거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애써보았던 과정과 느낀 점을 담았다. 생리는 여성의 신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로 인해 ‘생리현상’을 줄여 말하는 부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에 월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생리통’처럼 좀 더 익숙한 ‘빡침의 대명사’가 있는 경우 그냥 생리로 표기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월경 기간에 겪었던 불편함을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겠지만 그것이 절대 나의 능력과 자아를 잡아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월경에 관한 여성의 불편은 월경 공결제 논의와 같은 경우엔 철저하게 무시되고 부정되다가도 이상하게도 필요할 때가 되면 과하게 강조된다. 특히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용될 때 말이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동안 중요한 일을 그르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할 거라는 논리다. 하지만 월경으로 인해 기분이 불쾌하거나 기운이 없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공금 횡령하거나 핵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다. 월경은 아프고 힘들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생리통이라는 생리통은 다 가진 사람이다. 여자가 백 명이면 백 종류의 생리통 증상이 있을 텐데, 나는 어느 여자와 생리통 이야기를 하든 얼추 모두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증상을 다 겪는 자궁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주요한 아픔은 역시 ‘쥐어짜는 통증’이다. 월경기간에는 허리가 쥐어짜는 것 같이 아프다는 나에게 한 친구는 “우리 누나는 괜찮던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말을 하고싶은 의도가 다분했다. 나중에 생리통은 자궁 내막을 탈락시키기 위해 자궁이 수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통증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나는 그 새끼를 한 대 치고 싶어졌다. 내 내장이 정말 말그대로 스스로를 쥐어짜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리고 아랫배에 납덩이가 있는 것 같은 묵직한 통증, 소화가 잘 안 돼서 생기는 똥배 통증, 뼈 사이사이가 들뜬 것 같은 시린 통증, 가슴이 부어서 당기는 통증 등등이 있다. 게다가 배란통도 있다. 여성들의 월경 전·중·후 증상은 너무 다양해서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통증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다. 월경 기간에 뭣 모르고 브라우니와 핫초코를 한 번에 먹은 다음 급격한 생리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이후[1], 나는 월경이 시작하기 한참 전부터 초조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을 먹으면 되잖아!”라고 하는 사람들은 두 대 치고 싶었다. 수많은 여성이 ‘진통제를 자주 먹으면 내성이 생긴다’는 말을 믿고 진통제 없이 월경 기간을 버틴다. 고3 때 온찜질팩을 받으러 갔다가 보건 선생님이 ‘한 달에 한두 번 먹는 거로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전까지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 2017년, 그 유명한 ‘생리대 파동[2]’이 일어났다. 일회용 생리대는 초경을 시작했을 때부터 내게 당연한 듯이 주어졌다. 그랬던 생리대가 환경호르몬과 화학물질 덩어리인 데다 습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노 이상의 배신감이었다. 나는 냉이 많은 체질이라 365일 팬티 라이너를 달고 살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된 걸까. 많은 여성이 기준치 이상의 화학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를 사용한 이후 생리통이 심해졌음을 토로했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겪어온 고통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억울함을 느꼈다. 한편 나의 고통이 일회용 생리대 때문이었다면 이제라도 좀 더 나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대안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내내 남녀공학을 나온 나에게 생리대란 마약 거래하듯 몰래 주고받는 비밀스러운 물건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찜질방이나 수영장을 가자는 제안을 거절할 때 으레 “행사 중이라……”라는 말로 월경을 돌려 말하곤 했다. 볼드모트처럼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 날’, ‘마법’, ‘행사’ 따위로 대신했으므로 생리대 또한 ‘그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서 매달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 내가 이걸 뭘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이제 진짜 여자가 되었구나~’, ‘달의 주기를 따르는 신비함~’,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몸~’, 같은 막연한 이미지들과, 그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불쾌한 아픔만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따라서 내가 알고 있던 월경용품의 세계는 말도 안 되게 좁았다. 월경용품 자판기 이 끝부터 저 끝까지 온통 하얀 ‘화*트 중형’만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유*킴벌리와 서울 메트로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라도 체결된 게 틀림없다)에서 다양한 월경용품의 존재는 나의 상상 밖이었다. 그랬던 내가 분노를 추진력 삼아 나에게 맞는 황금 월경용품, 엘도라도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편리함 ★★★★☆
착용감 ☆
건강 ☆
환경 ☆
빡침 ★★★★★★★★★★
이건 사실 리뷰할 필요도 없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일회용 생리대다. 가장 대중적인 월경용품이자 생리대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피에 젖은 생리대를 몇 시간 동안 차고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땀이 차고 간지럽지만 긁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샐 뿐 아니라 ‘따뜻한 굴 낳는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생리대 광고에서는 언제나 여성 모델이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깃털 따위를 흩날리며 잔디밭을 뒹굴지만, 실제 월경 중 그 광고를 보면 그저 어이가 없다. 생리통이 전혀 없는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피 묻은 생리대의 찝찝함과 잘 때 피가 샐지도 모른다는 불안, 불쾌한 냄새 같은 불편함에서는 예외가 없다. 월경에 대한 ‘짤’들이 하나같이 격노에 휩싸여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진 설명]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월경 관련 ‘짤’들.
(사진설명 시작. 첫번째 사진에는 생리 중에 드는 생각이라고 쓰여있는 원그래프가 있고 약 10%가 연보라색, 나머지 90%가 진분홍색으로 칠해져있다. 연보라색이 의미하는 바에는 '괜찮아 일이주 안에 끝날 건데 뭘'이라고 쓰여있고 진분홍색이 의미하는 바에는 '대자연 X발'등의 쌍욕이 쓰여있다. 두 번째 사진의 제목은 생리통을 해부학적으로 표현한 짤이고, 인간 골격 모형의 골반 부근에 장난감 티라노사우르스가 끼워져있다. 세 번째 사진은 트위터 캡처본으로 다음과 같이 써있다. 생리대가 쾌적해서 생리 기간이 기다려진다는 말은 코피 막는 거즈가 넘 쾌적해서 코피가 빨리 났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멍청한거 모르지 모르니까 썼겠지.)
문제는 이 생리대가 우리에게 거의 유일한 선택지처럼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딱 한 번 학교에서 여자아이들만 모아 놓고 성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한창 아이들이 초경을 경험하는 시기에 생리대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한 교육이었다. 생리대 회사에서 파견된 강사가 스쳐 지나가듯이 몇 가지의 월경용품을 보여준 기억이 난다. 5초도 할애되지 않는 월경용품 슬라이드에서 강사는 “탐폰 같은 건 여러분들이 쓰기는 어려우니까”라고 말하며 바로 일회용 생리대 사용법으로 넘어갔다. 1991년 경향신문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월경을 하는 여성의 87.4%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다고 한다.[3] 그런데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17년에도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은 전체 월경 인구의 80.9%로[4], 여성들의 월경용품 사용은 전혀 다양해지지 못했다. 올바르고 실질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나마도 생리대 업체에서 파견한 강사에 의존하고 있어[5] 여성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한 탓이다.
생리대가 나를 찝찝하게 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하루에도 몇 개씩 버리게 되는 다 쓴 생리대와 이를 둘둘 감싸는 엄청난 양의 휴지였다. 일반적인 일회용 생리대는 자연에서 완전분해 되는 데 450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생리대는 자연에 유독가스를 내뿜고 미세 플라스틱을 남긴다. 한 명의 여성은 일생 동안 평균 1만 4,0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6]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나라는 사람이 고기보다도 차라리 자궁을 포기하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나는 종종 이 지구 어딘가 돌돌 말린 일회용 생리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상상한다. 기분이 두 배로 불쾌해진다.
그리하여 내가 대안 월경용품을 찾는 기준이 세워졌다. 착용했을 때 편안할 것, 나의 몸에 건강할 것, 환경에도 해롭지 않을 것. 또한 일회용품에 익숙해진 나에게 사용의 편리함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후의 경험들을 통해 사용의 편리함도 추가로 고려하게 되었다.
편리함 ☆
착용감 ★★★☆
건강 ★★★★☆
환경 ★★★★ (물을 많이 쓰므로 -1)
번거로움 ★★★★★★★★★★
내가 찾은 첫 대안은 면 생리대였다. 화학물질도 거의 들어있지 않고, 월경 기간 내내 엄청난 폐기물을 생산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면 생리대들의 장점은 무엇보다 ‘예쁘다’는 것이다. 우습겠지만 이건 꽤 중요한 장점이다. 언제나 더 편리한 쪽으로만 움직여온 인류가 일회용 생리대에서 면 생리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넘어설 만한 유인이 필요하다. 물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면 생리대를 사용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직접 고른 알록달록한 면 생리대가 크기별로 정리 되어있는 모습은 “잘 써보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데 도움이 됐다. 업체는 이런 효과를 잘 알고 있는지 최근에 고양이 무늬 면 생리대를 출시했다(!).
[사진 설명] 색깔과 용도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면 생리대
팬티 라이너[7]로서 면 생리대는 훌륭했다. 땀이 차거나 가렵지도 않았고 빨래도 그다지 번거롭지 않았다. 빨랫비누로 금방 깨끗해졌고 샤워하면서 한두 개의 면 생리대를 빠는 일은 그다지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일회용 라이너를 면 생리대로 바꾸자 한 달 만에 쥐어짜는 통증이 완화됐다. 여전히 묵직한 통증이나 근육통은 남아있었지만 내장을 뒤트는 것 같은 통증이 사라졌다. 이틀 정도 쥐어짜는 통증을 겪던 나는 일회용 라이너를 끊은 뒤로 한 두 알의 진통제만으로 월경 기간 내내 쥐어짜는 통증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일회용 생리대 회사들에게 중지를 날리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월경 기간의 면 생리대였다. 아무리 지퍼백에 넣는다지만 피가 묻은 천 뭉치를 종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은 어쩐지 찜찜했다. 다행히 전용 세제를 사용하면 핏자국을 지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손쉽게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제를 푼 물에 면 생리대를 담가 두면 됐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서 연출되는 장면이 아무리 좋게 봐줘도 고기 핏물 빼는 광경이라는 점이었다. 줄곧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나로서는 가족이나 하우스메이트에게 아침마다 시각적인 불쾌함을 선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면 생리대를 월경 기간 내내 사용하는 것은 단념했다. 면 생리대는 내게 월경 기간보다는 평소 팬티 라이너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입으면 생리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월경 팬티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의 주 월경용품이 되지 못했다. 세탁이 번거롭고 흡수가 완벽하지 않았으며 조금 낡으면 월경혈이 바지에 묻어나는 제품도 있었기 때문에 역시나 보조에 그치고 말았다.
편리함 ★
착용감 ★★★★(잘못 넣으면 불편하므로 -1)
건강 ★★★★★
환경 ★★★★★
진입장벽 ★★★★★★★★★★
대망의 월경컵은 감히 월경용품의 ‘이단아’라 할 만하다. 흡수체 없이 월경혈을 컵에 받는다는 발상 면에서나 질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는다는 사실 면에서나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나는 이때까지도 탐폰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생리대 파동 이후 대안으로 떠오른 월경컵은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한동안 ‘여성주의자라면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하는 머스트-해브-아이템’이 되었다. 실질적인 유용성 외에도, 그동안 여성의 질 안에 무엇을 넣는 것을 금기시해 온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월경컵을 조사하면서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왜곡된 성교육을 알게 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배신감을 준 것은 ‘처녀막’ 이야기였다. 첫 성관계를 하면 이 막이 찢어지면서 피가 난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왜 믿었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질을 봉하고 있는 막이 있다면 여성의 몸에 포탈이라도 존재하지 않고서야 도대체 월경혈은 어떻게 흘러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질이 막혀 있다는 유언비어는 여성들로 하여금 삽입형 월경용품을 아예 고려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청소년기에 ‘탐폰은 섹스를 해본 사람만 써야 한다더라’고 들었다. 이건 단순히 잘못된 과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 현상 뒤에는 (‘처녀’막이라는 엄청난 작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질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행위 자체에 과도하게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터부 삼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청소년기에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만큼 해로운 것은 가르쳐줘야 할 정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심리적 진입장벽을 뚫고 처음 월경컵의 삽입을 시도했을 때 나는 내가 나의 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 바닥에 손거울을 내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최초로 나의 성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몹시도 복잡하게 생긴 이 부위의 구조는 무엇이고, 도대체 입구는 어디이고, 얼마나 아픈 것까지 괜찮은 것인지…… 나의 첫 월경컵 삽입은 거의 운에 기대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담으로 그날의 나의 감상은 ‘사람들은 도대체 섹스할 때 뭘 느끼는 거지?’였다. 질 안이 이렇게 놀랍도록 별 감각이 없는데 말이다. 야한 만화와 소설에서는 질에 손가락 하나만 넣어도 여자가 자지러지던데, 모두 판타지에 불과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적인 흥분을 위해서는 ‘성적인 무드 + 정확한 지점 + 적당한 자극’이 모두 필요하다. 실리콘으로 만든 손가락만 한 컵을 좀 접어 넣는 일에 야릇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펼쳐지지 않았다. 처음 사용해본 삽입형 월경용품은 분명 간지러움이나 ‘따뜻한 굴 낳는 느낌’도 없고 운동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러나 관리가 불편해도 너무 불편했다. 익숙한 집 화장실에서 컵을 빼서 세척하고 다시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공공화장실에서 이 작업을 하려면 화장실 칸 안에 물을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텀블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월경컵 세척용 물통을 챙기는 날은 언제나 묘연했고 난 화장실에 갈 때마다 500mL짜리 생수를 사야만 했다.
장애인 화장실을 사용하는 대안을 찾아내기도 했다. 현행법상 장애인 화장실은 장애인 이용자가 없을 때는 비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다. 장애인 화장실은 소변기와 세면대가 한 공간 안에 있으므로 집 화장실에서 월경컵을 비울 때처럼 컵을 바로 세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안은 오래지 않아 뜻밖에 서울 장애인 화장실 인프라의 열악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거친 관리상태와 불안한 잠금장치와 그걸 지켜보는 나…… 신촌에서 내가 마음 놓고 월경컵을 비울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은 백양누리와 경영관, 현대백화점 정도가 다였다. 결국 점차 컵을 잘 안 쓰게 됐고, 4~5일의 월경기간 중 외출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익숙한 곳만 가는 하루 정도만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월경컵만의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바로 내 신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월경의 50%에서 75% 정도는 혈액인데, 혈관 속의 피보다 농도가 훨씬 연하며 신체 상태에 따라 농도가 변하기도 한다. 나머지는 점액질과 자궁 내 점막 조직들, 질에서 나온 세포막 등이다. 종종 묻어나오는 빨간 젤리 같은 무언가가 바로 이것이다. 월경혈은 공기와 접촉하자마자 부패가 시작되는 데다 생리대의 화학물질이 월경혈을 변질시킨다. 따라서 생리대로 월경혈의 상태나 냄새, 양을 파악하여 몸 상태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월경컵으로는 매달 월경혈의 온전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자궁 근종 소견을 받아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생리할 때 덩어리는 많은 편이에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음, 평소에는 보통이었는데 두 달 정도 전부터 늘어났어요.”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을 때의 짜릿함이란!
편리함 ★★★★★
착용감 ★★★★★
건강 ☆
환경 X
죄책감★★★★★★★★★★
월경컵도 넣어보고 두려움이 없는 나에게 탐폰은 도전이랄 것도 없는 선택지였다. 그리고 만약에 정말 월경용품의 엘도라도가 있다면 탐폰이야말로 그것에 가장 가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편하기 때문이다. 피가 흘러내리지 않는 편안함과 빼서 바로 버리면 되는 편리함의 조합이라니!
하지만 나를 망설이게 했던 건 탐폰 또한 일회용 생리대와 마찬가지로 화학물질 덩어리라는 사실, 그리고 플라스틱 어플리케이터[8]의 존재였다. 유럽에서 구매했던 탐폰은 어플리케이터 없이 심플하고 작은 총알 모양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모든 탐폰이 어플리케이터와 함께 들어있다. 부피가 늘어남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잔뜩 만들어낸다. 삽입형 월경용품의 고질적인 불안 요소인 독성 쇼크 증후군(Toxic Shock Syndrome[9])에 대한 걱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탐폰은 너무나도 쾌적했고 나의 몸과 나의 행성 모두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 달콤한 쾌적함을 야금야금 즐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길티플레저에 제동을 건 것은 뜻밖에도 ‘돈’이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할 때도 생리대 가격은 부담스러웠지만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지출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내 평생의 고정비용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월경컵이나 면생리대를 사용하면서 한동안 일회용 월경용품을 구매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탐폰을 구매하면서 나는 문득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 월경용품의 개당 가격은 평균 331원으로 181원인 미국·일본, 218원인 프랑스에 비해 훨씬 비싸다.[10] 물론 단순히 가격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2011년에서 2016년 사이에 소비자 물가지수가 5.6% 상승한 것에 비해 주요 브랜드 월경용품 가격은 거의 두 배의 속도로 상승한 걸 보면 내가 엄살을 부리는 중은 아닌 것 같다.[11] 정부는 2004년 월경용품을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으로 지정했다. 인구의 반이 매달 불가피하게 구매해야 하는 생필품이기 때문인데,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월경용품 매대 앞에서 1+1 제품을 만지작만지작 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프랑스에서 ‘월경 중’을 돌려 말하는 표현은 ‘영국군이 쳐들어왔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영국에서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게 ‘프랑스군이 쳐들어왔다’이다. (서로 욕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실 월경을 월경이라 하지 못하는 현상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붉은 깃발을 게양한다’고 하는데, 이걸 더 돌려서 ‘일본 국기를 걸고 있다’라고 하기도 한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사촌’이나 ‘친척 아주머니가 방문했다’라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생리대 브랜드 이름을 빌려 ‘마법에 걸렸다’라고 하거나 ‘그 날이다’라고 말한다.[12]
문화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많은 문화권이나 지역이 월경을 더러운 존재나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월경 터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월경 중인 소녀를 마을 밖에 격리하거나 집 안에 가두는 관습도 쉽게 발견된다. 플로리다 연안의 원주민인 티무쿠아족은 월경혈이 살아있는 것들을 해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월경 중인 여성들이 생선과 사슴고기에 접근하거나 불을 붙이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13] 사실 플로리다 연안까지 갈 필요도 없다. 2015년 인스타그램은 미국인 예술가 루피 카우르가 올린 월경혈이 묻은 뒷모습 사진을 두 번이나 삭제했다가 항의를 받고 멈췄다. 일본에서는 ‘여성은 월경 기간에 몸의 온도가 변해 초밥을 만들 수 없다’는 속설로 인해 여성 쉐프가 기피되기도 한다.
모두가 쉬쉬하고 그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월경이지만 놀랍게도 인류가 존재한 이래 그 반은 언제나 월경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월경용품들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이브에게 창조주가 화*트 중형을 쥐어 줬을 리 없다. 인류의 발전과 정확히 함께 월경용품도 변화해왔다. 어떤 물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언제나 절대 빠지지 않는 그곳, 고대 이집트에서는 월경 기간에 파피루스 속대를 돌돌 말아 질구에 삽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리넨 천을 비슷하게 활용했다.[14] 그 뒤로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수천년 동안 무명천을 빨아가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벨트나 끈을 이용해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사진 설명] 중세 시대에 사용되던 생리대의 형태. 언뜻 보면 차라리 기저귀와 비슷하다.
1900년대가 되자 몇 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월경용품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 세상에 많은 근대적 발명품들이 그렇듯 월경용품 또한 어느 정도 전쟁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에 의료용 우드 펄프를 제공하던 킴벌리-클라크사가 펄프를 활용해 1921년 그 유명한 ‘코텍스(Kotex)’를 내놨기 때문이다. 일회용 생리대는 처음에는 생각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남는 천을 생리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생리대를 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자 세탁이 필요 없는 일회용 생리대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무궁화위생화장지공업사에서 처음으로 ‘크린패드’라는 이름의 생리대를 출시한다. 하지만 착용법도 불편했고 파지를 원료로 사용했으며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크게 상용화되지 않았다. 이후 서울제지의 ‘아네모네 내프킨’, 킴벌리-클라크사와의 합작 회사인 유한킴벌리의 ‘코텍스’ 등이 접착식 일회용 생리대를 출시하면서 바야흐로 생리대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회용 생리대 시장은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여성들을 마케팅 타깃으로 했다. 유한킴벌리는 ‘코텍스’ 광고에 짧은 바지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로 자전거를 타는 모델을 등장시켰다. 카피는 “누가 여성을 해방시켜주는가?”였다. ‘코텍스’의 후속 브랜드 이름을 아예 ‘후리덤’으로 짓기도 했다. 오늘날 많은 여성에게 분노와 배신감 유발한 일회용 생리대가 한때는 여성들에게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이다.
활동성과 당당함을 내세우던 생리대 광고는 천 생리대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고 일회용 생리대가 보편화된 이후 미묘하게 달라졌다. 영진약품의 소피아가 ‘품위, 몸가짐, 안전’ 등을 내세우면서 유한킴벌리도 ‘맑고 순수한 여심’, ‘아름답게, 깨끗하게’ 같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89년 P&G가 ‘위스퍼’를 들고 시장에 진입해 연극배우 추상미와 같은 전문직 여성을 내세워 무섭게 유한킴벌리를 추격했다. 유한킴벌리는 이에 ‘화이트’ 광고에 평범한 여대생을 등장시키며 깨끗함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15]
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이후 유한킴벌리는 P&G에 뺏겼던 점유율을 다시 회복했다. 유한킴벌리는 오랫동안 비슷한 마케팅 전략을 유지했고 ‘화이트’ 모델은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등용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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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위스퍼’ 광고 캡처와 ‘화이트’ 광고 캡처
(사진 설명 시작. 위스퍼 광고에서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올린 여성이 당당하게 웃으며 주먹을 쥐고 '화이팅' 자세를 하고 있다. 화이트 광고에서는 각각 하얀색과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여성이 차를 마시고 있다. 자막은 최윤영 대학생 20세, 이경화 대학생 20세라고 쓰여있다.)
재미있는 건 1979년에는 한 일간지 실린 생리대 광고를 불평하는 투고다. 투고자는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함께 보는 TV”에서 생리대 광고를 하는 것이 “민망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16] 이 글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당시 그런 목소리가 많기는 했는지 1980년 9월 방송윤리위원회는 생리대 전파광고를 금지한다. 이 금지조치가 해제되는 데는 15년이 걸렸다. 이처럼 생리대 광고를 ‘남사스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문화도 현대적인 월경터부라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생리대 광고는 최근까지도 파란 액체를 피 대용으로 사용하며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게 월경혈을 연상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희망적이게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도 점차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이런 걸 기념해야 하는 건 좀 웃기지만, 2018년 일회용 생리대인 ‘나트라케어’의 TV 광고에서 처음으로 ‘그날’이 아닌 ‘생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뿐 아니라 월경 기간 불편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여성의 감정을 화면에 꾸밈없이 드러내 많은 공감을 받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유한킴벌리 또한 ‘화이트’ 출시 24년 만에 광고에 빨간색을 등장 시켜 월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17]
[사진 설명] ‘나트라 케어’의 광고
(사진 설명 시작.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하고 있는 여성이 어딘가 불편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 자막은 '그 날에도 멈추지 마세요'라고 띄워져 있다.)
생리대 시장은 소비자인 월경인구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점유율 경쟁을 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왔다. 전문직 여성이나 여대생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고 유명인을 내세우거나 여성들의 인식 변화를 발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여성의 월경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2017년 생리대 파동 이후로 제대로 된 법적 규제나 안전 기준이 마련되지도 않았고, 기업들은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팔던 생리대를 그대로 팔고 있다.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마크와 조금 더 비싸진 가격을 추가해서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월경용품의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았냐고 한다면, 대답은 “아니”다. 모든 월경용품들은 다 조금씩 불편했다. 다회용 면 생리대는 세탁이 번거로워 월경기간 내내 쓰기는 적절하지 않았고 월경컵은 관리가 불편했다. 그나마 탐폰이 가장 이상적인 사용 경험을 제공했지만 여전히 찝찝함과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어떤 월경용품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조금씩 바꿔 쓰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월경 기간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근원은 간단했다. ‘내가 뭔가 해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기본적으로는 탐폰을 쓰고 생리통이 영 심하다 싶으면 면 생리대나 생리컵을 쓴다. 월경혈의 양이 줄어드는 4, 5일째나 잘 때는 되도록 면 생리대를 쓰고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익숙한 곳을 가는 날엔 생리컵을 사용하기도 한다. 생리컵이 불안할 때는 가끔 면 생리대를 보조로 착용한다. 나는 다가오는 아프고 불편한 월경을 속절없이 당하는 게 아니라 나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선택지가 생겼다는 변화가 월경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놀랄 만큼 평안하게 했다. 결국 나를 가장 무섭고 불편하게 했던 것은 월경 그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속수무책으로 모든 걸 견뎌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자동차 사고보다 비행기 사고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내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본 적 있다. 덜 다치거나 예방하기 위해 무언가 노력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동차 사고와 달리 비행기 사고는 그저 자리에 앉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를 잃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근본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여성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도록 강요되어 왔다. 때로는 종교의 이름으로, 관습의 이름으로, 또 때로는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18]. 그 몸의 주인이 속한 사회의 문화와 위계가 새겨지고 구성되며, 또 발현되는 현장이다.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2018)에서 여성의 몸을 다양한 문화와 권력의 ‘각축장’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월경, 섹스, 임신, 출산, 낙태…… 재생산과 관련된 모든 이슈에서 여성의 몸은 여성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 따라 이러쿵저러쿵 다뤄졌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선택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건 때로 낙태죄처럼 명시적이고 강력한 법적 규제이기도 했지만 묘한 터부, 야릇한 성애화, 교육의 부재와 같이 쉽게 알아챌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교묘함은 여전해서 생리대 파동 이후에도 제대로 된 조사와 강제성 있는 제도, 실질적인 교육 시스템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예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됐다. 이번에도 역시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리대 파동 이후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하게 여성의 월경과 다양한 월경용품에 대한 정보가 생산됐다. 해외 직접 구매에 의존하고 있던 월경컵을 직접 생산하고자 사업에 뛰어드는 여성들도 있었다. 다른 여성들의 활발한 정보 공유와 홍보 콘텐츠가 아니었다면 내가 다른 월경용품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조차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매번 구조와 제도의 불합리함을 그 아래에서 고통받던 개개인의 연약한 연대로 해결해내는 모습은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거대한 구조에 균열을 내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다. 물론 나는 여전히 월경용품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다만 이제 둥둥 떠밀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노와 돛을 가지고.
[1] 당, 카페인, 우유는 모두 생리통에 좋지 않다.
[2] 발암물질 논란이 불거진 ‘릴리안’을 필두로 다수의 일회용 생리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된 사건.
[3] 1991.11.14 경향신문
[4] 여성 생리용품 현황조사 및 안전 정보 제공, 식약처, 2017.05.25.
[5] 『월경의 정치학』 박이은실, 2015, 119쪽.
[6] “여성이 꼭 알아야 할 생리대 상식 5”, 여성신문, 2006.12.08. 여성이 하루 평균 5개 내외의 생리대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한 달에 5일, 38년간 월경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7] 일반적인 일회용 생리대보다 더 작고 흡수체가 얇은 버전. 주로 월경이 거의 끝나 월경혈의 양이 많지 않을 때나 평소에 분비물이 많은 날에 사용한다.
[8] 주사기 모양의 플라스틱 도구. 탐폰이 이 안에 들어있어서 피스톤을 이용해 탐폰을 질 안에 쉽게 넣도록 도와준다.
[9] 황색포도상구균이 만드는 독소에 감염되거나 균이 혈액 내로 침범하여 생기는 감염성 질병. 탐폰이 들어있는 여성의 질이 포도상구균이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이 되어 감염되는 경우가 보고된 바 있다. 갑작스러운 고열, 구토, 설사, 발진 등의 현상이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치명적이다.
[10]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2017
[11]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실, 2017. 2016년에 유한킴벌리 제품의 경우 2012년에 비해 19.3%, P&G 제품의 경우 2011년에 비해 10.6% 상승했다.
[12] “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 한겨레, 2018.11.09.
[13] 『월경의 정치학』 박이은실, 2015, 26쪽.
[14] “생리대가 없던 시절의 여성들은 어떤 생리대를 썼을까?”, 문화뉴스, 2016.09.05.
[15] “’그날’은 정말 깨끗하고 산뜻하면 자신있을까”, 한국일보, 2017.08.24.
[16] 동아일보, 1996.09.17.
[17] “생리대 광고 ‘파란색’ 뺀 유한킴벌리…24년 만에 ‘붉은’ 광고 방영”, 아시아경제, 2019.04.29.
[18] 『월경의 정치학』 박이은실, 20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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