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navy
그저 언젠가는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던 ‘어른’이라는 게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건 열아홉 살 때였다. 그해 수 백 명의 또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잠기고,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 아우성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대상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에 차 있었다. 고3인 나는 구덩이 같은 독서실에서 막연히 ‘어른들은 너무 나빠’ 같은 생각을 하다가 다시 문제집으로 고개를 숙였다. 수능이 끝나고 12월 31일이 지나서 법적인 성인이 되었지만 나를 ‘어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건 나 자신도 포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회의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을 마주할 때마다 어린 왕자 마냥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른들은 도대체 그동안 뭐 했대?” 같은 속 편한 생각을 하며 기성세대의 책임을 물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봉사에서 만난 중학생이 내게 말했다. “저도 어른 되면 쌤한테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세상에, 나를 어른으로 보는 어린 사람들이 있다. 그간 나쁜 어른들을 욕하면서 저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은 여러 번 해보았지만, 도대체 ‘제대로 된 어른’이란 무슨 어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른이란 뭘까?
“게임 캐릭터 나이 설정이 다 나보다 어린 거……”
“미지근한 소주 마실 수 있는 거?”
“모든 걸 자기가 100%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장례식이나 결혼식 예절을 잘 아는 사람이 되면”
뜬금없는 질문에 주위 사람들은 다양한 답변들을 내놨다. 이 글에는 내가 들은 때론 장난스럽고 때로는 진지한 답변들과, 그 안에서 느낀 ‘어른의 단상’들을 담았다.
나이 강박이 심한 이 나라에는 유독 나이에 대한 자조가 많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나의 친구들도 새해마다 으레 ‘반 오십’ 타령을 하며 앓는 소리를 한다. 이젠 밤샘은 못 하겠다는 둥, 술 마신 다음 날 몸이 다르다는 둥…… 마냥 ‘드립’이라고 하기는 머쓱한 것이, 사무실에 슬그머니 종합비타민을 가져다 놓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센트룸, 밀크시쓸, 그리고 홍삼 진액에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류의 농담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양제를 챙긴다는 건,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돌볼 줄 알게 됐다는 신호인지 모른다고 말이다.
서울에 올라와 자취방 계약서에 서명 할 때 오직 내 이름만 적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항상 가정통신문에 엄마나 아빠의 서명을 받아와야 했던 탓일까. 대부분 까먹고 있다가 제출 직전 후다닥 엄마 사인을 흉내 내곤 했지만, 어쨌든 언제나 표면적으로나마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다. 자취방을 계약하는 날 나는 계속 부동산업자가 어머니는 어디 계시느냐고 물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제 뭔가 잘못되면 부모님이 아니라 오롯이 ‘내 탓’이라는 의미 같았다. 나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의 행동 동기는 엄마아빠의 자랑이 되기 위함이었다. 무언가 잘못했을 때 가장 무서운 것도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뭔가 잘못하면 그게 전부 내 탓이라니! 그냥 내 잘못이라니! 이상하게도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나의 건강과 안녕도 모두 내 손에 달렸다는 의미기도 했다. 사람이나 집이나 유지를 하려면 품이 든다. 이 사실은 송도 기숙사에서 알게 됐다. 바닥의 머리카락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았고 화장실 장 안에 뽀송뽀송한 수건은 알아서 솟아나지 않았으며 식사의 영양 균형도 자동으로 맞춰지지 않았다. 나는 수험생 때보다도 잦은 입병과 원인 불명의 호흡기 질환을 겪고 나서야 그걸 알게 됐다. 나는 자취 시작한 몇 년 동안은 나의 자취방을 ‘방’,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의 본가를 ‘집’이라고 불렀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상태였고 아마 무의식적으로 학업이 끝나면 다시 부모님 밑으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취업 준비는 아무래도 서울에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어느 날, 이대로라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일 없이 그저 학교 옆에서 회사 옆으로 옮겨갈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비록 작고 좁은 방이지만 자취집을 임시거처가 아닌 ‘내 집’으로 여기기로 했다.
고작 월세방을 집이라고 여기고 나니 뭔가 부레옥잠 같은 기분이 든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이 공간에서 어떻게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게 됐다. 평생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방에 풀지 않은 짐들을 쌓아 놓을 수는 없으니까. 그동안 집안일이란 곰팡이를 키우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해내던 퀘스트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나를 쾌적한 공간에서 재우며 건강한 걸 먹이고,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영양제를 먹는 것도 비슷한 것 아닐까? 이제 나의 보호자가 나라는 의미 말이다.
한동안 ‘혼자서도 잘해요!’를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문제를 해결하며 자신의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 말하자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섬이 되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늘려 월세와 등록금을 충당하고 핸드폰 요금도 내 계좌로 빠져나가게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개발하고, 심란한 날에는 혼자 DVD방에 가서 3연속 슬픈 영화를 보며 기분을 풀었다.
그렇게 열심히 나의 섬에 농사도 짓고 창고도 만들고 병원도 세우던 중에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 “엄마, 내 나이가 몇 갠데!”라는 내 말에 엄마는 “너는 네가 다 큰 줄 알지? 결혼하고 애 낳아봐라!”라고 대답했다. 열심히 자립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대로 스스로의 보호자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승선이 아득히 먼 곳으로 옮겨진 기분이었다. 물론 결혼과 출산을 ‘어른’의 조건으로 여기는 건 낯설지 않은 관습이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서도 잘해요’에 열을 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결혼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평생 미완성 취급을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점차 알게 되길, 내가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달성해야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은 “어느 순간 자립이라는 게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해쳐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삶을 돌아보니 늘 누군가에게 그때그때 가장 필요한 도움을 받았고 친구, 가족 또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말한다.[1] 나의 섬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적당한 다른 섬에 찾아갈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반대로 나의 섬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다정하게 맞아줄 수도 있어야만 한 걸음 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만큼 부모님도 자신의 아들과 딸에 대한 모종의 이유기가 필요하다는 건 잘 몰랐다. 이걸 깨닫고 당장에 내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어필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았다. 내가 다시 소소한 것들을 물어보고 도움을 구하자 엄마의 태도도 조금 누그러졌다. 반대로 점점 내가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부모님은 점점 나이 들지만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강하고 생산적인 시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접촉사고 보험처리에 뭉그적대는 가해자를 상대하거나 집에 당장 현금이 없을 때 급히 정수기 사용료를 송금하거나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엄마는 내가 모든 걸 혼자 해내려고 끙끙댈 때보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 종종 나를 다시 보곤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돌보고 돌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혼과 육아는 그걸 배우기 위해 엄마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물론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강력하게 연결되는 방법이 결혼과 출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인정해주는 사회를 바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을 책임과 자유의 기본 단위로 여겼다.”[2]이 관계 안에서 ‘돌봄’은 손쉽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종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쉽게 무시되기도 했다. 이제부터 중요한 이슈는 평등한 관계 속에서 타인을 돌보고 내가 돌봄 받는 것이다. 진정한 인간관계, 그러니까 섬과 섬 사이에 평화로운 교역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놓이지 않은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3]
그런 의미에서 내가 홀로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도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혼자서 잘하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준비운동이자 전제조건이었다. 혼자서 설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기대게 할 수 있고, 또 내가 다른 이에게 기대면서도 그를 넘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장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에서 자막으로 ‘세상 속에서 자립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나는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건 ‘자립’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른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자립’, 그러나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어른 때리는 걸 참 좋아한다. 어쩌다 조카나 교회 유치부 아이들을 놀아주다 보면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만 보면 이 친구들은 유독 말수가 없거나 몸집이 큰 어른들에게 그런 장난을 많이 친다.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들은 그 어른이 얼마나 힘이 센지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때려도 다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때리는 장난을 자주 치는 아이라고 해서 자기 또래의 친구에게도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닌 걸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막상 법적인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생각보다 별 것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귀여운 친구는 어린 시절 엄마가 쓰던 종이컵에 립스틱 자국이 남는 걸 보고 그거야말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교칙을 충실히 지키며 학창 시절 내내 틴트 한 번 바르지 않은 그 친구는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컵에 말린 장미 색깔 입술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는 그 별것 없음에 실망했다고 한다. 뮤지컬 ‘마틸다’의 넘버 ‘When I grow up’을 들으면 이런 기분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When I grow up, I will eat sweets every day on the way to work and I will go to bed late every night(내가 어른이 되면 회사 가는 길에 매일 군것질하고 밤에 잠도 늦게 잘 거야). 아이들 눈에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지 잘 드러나는 가사지만 이제 회사 가는 길에 할 수 있는 군것질이란 카페인 충전을 위한 아메리카노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막상 성인이 된 나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기보다는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것들만 잔뜩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성인이 된 나는 분명 그렇지 않은 작은 사람들에 비해서 많은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아이돌을 좋아하던 친구들이 성인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의 간섭 없이 굿즈를 사고 혼자서도 먼 서울에서 하는 팬 미팅을 가며 밤늦게 끝나는 콘서트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성인이 되면 얻게 되는 자유와 신뢰를 내포하고 있다. 이건 단지 아이돌 덕질의 스케일 변화 이상의 차이다. 예컨대 나는 가정 안에서 폭력을 경험하면 어렵지 않게 가정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을 벗어나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위험하고 검증되지 않은 일자리로 내몰리기도 하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쉽다. 어린아이들은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라기보다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누군가의 보호에 종속된 존재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는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대사다. 물론 어른이 되어 내가 가지게 된 힘은 ‘큰 힘’이라기엔 좀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한 명의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권력 관계에서 훨씬 우위에 있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때리고 도망가는 장난을 당한 어른은 당연하게도 아이를 마주 때리지 않는다. 자신이 아이에 비해 얼마나 힘이 센지 알고 얼마만큼의 아픔을 견딜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자신이 가진 힘을 자각하고, 이를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그 힘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게 초능력자의 슈퍼파워는 아니지만, 최소한 한 명분의 시민의 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이 있다.
내가 막연히 꿈꾸는 멋진 사회인이 된 모습이 있다. 집에는 TV가 없는 거실에 커다란 테이블을 둘 것이다. 종종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좋은 술을 마시면 좋겠다. 그리고 밥벌이에 치이는 와중이겠지만 적어도 하나쯤 나와 뜻이 맞는 사회단체에 정기 후원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은 지역사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는 지역주민 간담회니 공청회니 하는 곳에 참석해서 참여자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담당 공무원을 구원해주는 시민이었으면 좋겠다.
내 앞에 있는 세대들보다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나는 매분 매초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이 세상의 꼬락서니에 대한 나의 지분, 그러니까 나의 책임이 매 순간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어린 사람들이 커서 지금 내 나이가 되면, 분명 내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정치인이나 활동가가 되지 않더라도 내 뒤에 오는 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주기 위해 한 명 분의 노력을 하는 사람, 예컨대 고기 소비를 줄이거나 투표하기 전에 정책자료집을 꼭 읽어보는 어른이 되고 싶다.
사실 ‘어른’을 ‘책임’과 연결하는 발상은 진부하다. 어른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연히 여겨오던 어른이란 책임감 아래에는 나에 대한, 타인에 대한,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른이 되기란 그래서 더 어려운 모양이다. 이 모든 걸 다 충실히 이행한다고 해도 완벽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누던 친구는 갑자기 “야, 어른이란 ‘미지근한 소주 마시기’ 아니냐”라고 말했다. 미지근한 소주를 마실 수 있게 되는 게 어른의 조건이라면 난 아마 평생 어른이 되지 못할 거 같다. 미지근한 소주와 무관하게, 어른이란 평생 무한히 다가가기만 할 뿐 완벽히 달성하지는 못하는 무언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 자체가 그 ‘다가감’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작은 위로를 해본다.
편집위원 navy
[1] 세상을 바꾸는 시간 891회.
[2]『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이매진, 2019, 204쪽.
[3] 같은 책, 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