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 SR
다들 애인과 하고 싶은 데이트가 있겠지? 혹은 어떤 데이트라도 괜찮으니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카페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 취미를 같이 즐기기, 손을 잡고 산책하기, 진한 스킨십을 동반한 애정표현 등, 다양한 데이트 방법 중 각자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전부 좋을 수도 있고, 일부만 좋을 수도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혹은 이미 성인의 삶을 사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보통 개인의 취향은 예전부터 무엇인가를 좋아했던 기억의 집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누군가 당신에게 자극을 주었고, 그것이 마음에 든 스스로는 그때부터 그런 자극을 자신의 취향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보다가, 예컨대 유튜브에서 격투기를 보다가 추천영상을 따라 고양이 애교 영상을 지나 공룡의 멸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흘러흘러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며 취향을 발견하고 쌓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성적인 자극은 다르다. 물론 야한 동영상을 통해 본인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 스스로가 즐기는 자극은 보는 것과 아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이래저래 상담을 하며 이야기를 듣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른다. 분명 자신이 안 좋아하는 분야나 장르인데 생각보다 취향에 맞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기분이 좋을 수 있다. 예컨대 전시회는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사진전은 흥미로울 수 있다든지 하는 경우다. 지금부터 얘기할 성감 또한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새로운 세상일 수 있겠다. 자위를 통해 본인의 성감을 발견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만 그때 발견하는 성감은 신체의 자극부위를 찾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어디를 어떻게 자극하니 좋더라, 하는 정도에 그친다. 사람 간 사랑을 나눌 때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자극이 오고간다. 그 날의 컨디션, 신경의 예민함, 상대의 손길과 감정적 교류, 체온, 주변 환경 등 변수는 넘치고 넘친다. 이 상황을 과연 혼자 편안한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자극을 줬던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기고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A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물론 전반에 관련하여 허락을 받았다. A는 강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거친 방식의 애정표현을 싫어하게 됐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은 상대의 애정표현에 지쳐서 연애를 그만 둔 것도 여러 번이다. 가끔 애인과 관계를 가질 때도 서로 엉덩이를 때린다거나 비속어를 쓰는 상황을 극히 싫어했다고 한다. B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B는 쾌활하고 적극적이며 어느 모임에 속하던 간에 리더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A가 B에게서 발견한 모습은 약간은 소심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B는 A와 만나면서 A가 과거에 받은 상처와 고민들을 들어주었고 공감해줬으며 관계에 상처가 많던 A의 속도에 맞춰가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늘 부드럽고 친절한 섹스만 계속했던 그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들의 기념일 중 하루였다. B의 입에 살짝 입을 맞추며 “잡아먹고 싶다”라고 한 A는 이후 B와의 키스에서 격한 숨소리와 함께 허리를 으스러질 듯 끌어안기도 하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다가 어느새 후크를 풀며 자신의 성감을 자극하는, 조금은 거친 손을 것을 느끼며 평소와 다른 흥분을 느꼈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정말 싫어할 법한 거친 몸놀림일거라 생각하며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지만, 곧 A가 찾은 답은 B의 약간은 거칠고 많이 적극적인 몸짓에 자신을 강렬히 원하는 갈구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전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아온 강압이나 무시, 압력이 아닌, B의 순수한 관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부터 A와 B는 서로 몰랐던 각자의 취향을 고백하기도 하고 노력을 통해 찾아나가기도 하며 행복한 커플로 살고 있다. 이제 A는 상대가 자신이 싫어하는 애정표현을 해도 예전만큼 힘들어하지 않으며 그저 달갑지 않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B가 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성감도 찾아나갈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본인의 취향을 확고하게 알아가고, 또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벚꽃 같은 화사한 웃음으로 행복을 얘기했다.
A가 자신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스스로의 취향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놓쳤을 것이다. 당신의 취향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예전에는 매운 것을 못 먹다가 이제는 생마늘이나 양파를 쌈에 싸먹는다던가 하는 것처럼, 취향은 변한다. 확장되기도, 축소되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본인의 취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을까? 자신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본인의 취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성감뿐만 아니라 인생을 걷는 길을 조금 더 폭 넓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Foreplay. 보통 전희라고 하는 것과 후희에 대한 것도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생각보다 많은 커플이 전희나 후희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전희를 그저 삽입 전 애무단계로만 치부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후희는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아쉽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급지고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껏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옷을 잘 차려입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기분 좋게 주문을 하고 설렘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며 첫 요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요리를 즐기는 순서 역시 몸에서 메인 요리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게 샐러드나 에피타이저, 오르되브르 등으로 미각을 깨우고, 한식을 예로 들면 가벼운 죽으로 속을 달래는 등의 순서를 통해 음식을 먹으며 에스컬레이트를 느낄 수 있도록 조절하게 된다. 적절한 온도의 고기 또는 해산물을 메인으로 즐기고 식후 입가심을 하고, 디저트를 즐기며 행복한 식사를 마무리한다. 미식과 섹스는 정말 비교하기 좋은 주제다. 데이트를 시작하자마자 모텔로 직행하여 섹스를 즐기고 쉬다가 헤어지는 것은 코스요리 집에서 스테이크만 한 덩이 맛있게 먹고 그냥 나오는 셈이다.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가끔은 스테이크만 한 덩이 딱 먹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항상 이런 식이면 곤란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
데이트를 하러 만나서 연인과 조우했을 때의 기쁨, 편안함을 즐기고,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며 서서히 더 기분 좋은 상황이 된다. 오븐을 예열하는 것처럼 서서히 몸과 마음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로 원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의 전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육체, 신경의 자극을 통한 천천히 피어오르는 쾌락에 앞서, 마음까지도 충만하게 그럴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 이후의 우리가 보통 아는 “전희”에 관하여는 조금 후에 다루기로 하겠다.
생각해보면 상대에게 뭔가 선한 뜻으로 베풀었는데 고마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면 서운할 때가 있다. 친구나 연인, 선배와 후배,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도 그러하다. 괜히 나만 상대를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심한 반응에 상처 입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훈수 두는 사람에게 좋은 수가 더 잘 보이듯, 한 걸음 물러서서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상대와 연애할 때 종종 다투는 이유는 “이해”와 “배려”에 대한 기준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사슴이 사자에게 풀을 양보하는 것은 배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자의 입장에서는 배려가 아니다. 내가 하는 사랑의 표현이 상대에게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내 사랑이 너에게는 집착인지 슬퍼하고 절망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다. 상대가 받고 싶어 하는 사랑의 표현이 무엇인지 물어봤는지를. 그저 짐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판단하는 기준은 내가 살아온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내가 추측하거나 예상하는 것이 사실인 경우는 생각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철수는 분식집 떡볶이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다. 영희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둘은 데이트 할 때 엽기적일 정도로 매운 국물 떡볶이를 자주 먹었다. 사귄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철수는 영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한다. 사실 자신은 매운 국물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그냥 분식 떡볶이지, 매운 국물 떡볶이는 싫어한다고.
위와 같은 경우도 생각보다 자주 보았다. 철수는 참았고 영희는 몰랐다. 둘 다 잘못을 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내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고, 상대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연인 둘 모두 스킨십을 좋아하지만 한 사람은 손잡는 걸 좋아하고, 상대를 그걸 싫어할 수도 있다. 하물며 수많은 교감이 오고가는 경우의 스킨십은 더욱 복잡할 것이다. 내가 들어온 수많은 상담 중 끊이지 않는 고민 중 하나는 연인 간 스킨십의 문제였다. 자취방이나 모텔 데이트만 하는 상대에 대한 답답함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줄을 이룬다. 물론 성적 유대감이 굉장한 쾌락과 행복감을 주는 것은 반론을 가지기 어려운 진실이다. 단, 서로가 같이 유대감을 느끼는 경우겠지만 말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유아기에 아이가 본인이 좋아하는 간식을 엄마나 아빠에게 양보하는 정도의 사고다. 혹은 고양이가 보은을 위해 바퀴벌레나 죽은 쥐를 물어다 주는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 이유는 이제 얘기할 예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피임, 그 중에서도 콘돔이다.
대부분 피임기구를 떠올릴 때 가장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 콘돔이다. 여기서 왜 피임기구가 중요한지 모르는 청년들을 위해 간단히 짚고 가자면, 의도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여성이 겪는 사회적, 생물학적 변화는 남성이 겪는 것의 적어도 오만 배는 될 것이다. 임신은 축복일 수 있지만 원하지 않은 임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재앙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나눌 때 피임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보통 여성이 피임을 하는 방법은 다양한 부작용들을 수반하기 때문에 남성이 콘돔을 착용함을 통해 피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추가로 성병을 예방하는 아주 좋은 기능도 있으니 꼭 착용하는 것을 권장하는 바이다. 하지만 불편하다거나 귀찮다거나 본인의 쾌락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피임을 하지 않고 콘돔을 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기분 좋은 섹스를 위한 준비물 중 하나는 편안한 마음이다. 설렘이나 긴장은 좋지만 너무 과도하면 제대로 느끼기 어렵지 않은가?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즐기는 섹스는 아주 중요하다. 일례로 심한 긴장이나 걱정은 성욕을 감퇴시키고 자극에도 둔하게 반응하게 된다. 몸에 열정과 열기가 가득하다가 순식간에 식을 수도 있고 애초에 열기가 적게 오르거나 오르지 않기도 한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피임 없는 섹스, 그런 엄청난 불안을 껴안고 사랑을 나눈다면, 과연 집중이 잘 될까? 그런 걱정거리를 안고 편안하고 즐겁게 섹스를 할 수 있을까? 이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상대의 취향을 얘기하고 있는데 대체 왜 콘돔의 얘기가 나왔을까? 제발 이 글을 보며 “내 취향은 콘돔 없이 섹스를 하는 것이야. 그러니 그것 역시 존중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반대인, 본인의 취향과 쾌락만 쫓는 상대에게 쏘고 싶은 일침이다. 둘의 육체적 교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애정표현을 하는데, 본인의 욕심만 추구하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행동이다. 물론 정말 드물긴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의 콘돔 착용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얘기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말은, 여기 있는 얘기가 다수의 의견도 아니고, 혹 다수의 의견이더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따를 이유는 없다. 그저 이러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하면 좋을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성들이 본인의 파트너가 콘돔을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보았다. 첫 번째, 본인도 콘돔을 낀 느낌을 싫어한다. 두 번째, 어차피 피임은 자신이 할 거니까 걱정은 없다. 이러한 경우는 보통 월경 주기를 맞추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성분 모를 라텍스와 윤활유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왔다 나가는 것에 대한 싫음이었다. 내가 이어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세 번째의 경우에 대한 상담 중 나온 이야기다.
X와 Y는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이다. X는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Y는 이와 반대로 골치가 아픈 그런 일은 딱 질색이다. 본인 주변에서 할 수 있는 부분만 신경을 쓴다. 이 둘이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봤는데,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둘은 추운 겨울에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갔다가 고요한 파도와 차가운 바람, 그리고 상대의 따뜻한 손에 심취해 있었다. Y가 X를 안아주며 허리 부근에 손을 넣어 차가운 겨울바람에 굳어있는 X의 허리를 살포시 쓰다듬으며 녹여주었다.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손이 문제였을까? X는 얼른 Y를 데리고 숙소로 향한다. 하지만 진정한 놀람과 감동은 숙소 안에서 발생했다. 평소 자주 쓰던 브랜드의 콘돔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꺼낸 Y를 보며 X는 “여행 온다고 설레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거야?”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Y의 답변은 그녀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연재료로 만든 콘돔이라고 해서 이걸 샀어. 윤활유랑 재질 전부 친환경 자재라서 좀 비싸기도 했어.”
평소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고, 빨대 사용을 포함한 일회용품 줄이기 역시 X를 따라서 겨우 하던 Y이기에 X는 기특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어지는 Y의 말에 X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네가 가끔 질염으로 고생할 때, 내 탓은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라도 콘돔도 여러 요인 중 하나일까 걱정돼서 자연재료로만 만든 걸 찾아서 샀어.”
그동안 Y는 X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해왔다. X는 처음에 이 사실을 몰라서 조금 서운할 뻔 했다고 한다. 평소 X가 좋게좋게 말했을 때, 달리 말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 전에, Y는 메시지를 알아듣고 스스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Y는 이제 스스로 생각해서 X에게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X는 Y의 이런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Y는 그 이전부터 X와 결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고 했지만, 숫기가 없어서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앞서 잠시 이야기했던 전희에 관해 이어 말하고자 한다. 위와 같은 경험을 했을 때, 혹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상대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마구 피어오를 때 사랑을 나눠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상상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대의 몸에 집중하여 반응을 살피며 자극을 해준다면 어떨까? 내게 상담, 혹은 이야기를 하는 커플 중 대부분은, 보통 남녀 불문하고 전희로 상대의 성기 혹은 그와 밀접한 부위를 자극하거나 서로의 성감대를 애무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서 제일 앞에 말한 “당신 자신의 취향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본 이유가 있다. 단순히 성감대만 자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들여 쓰다듬고, 여력이 있으면 안마도 해주며 스킨십의 시간 자체를 충분히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본인도 몰랐던 성감대를 발견할 수도 있으며, 서로의 궁합에 따라 정말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섹스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괜히 사랑을 나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체적 친밀감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정서적 교감도 나눌 수 있는 애정표현은 흔하지 않으니까!
사람마다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 받아들이는 정도나 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스스로는 존중한다 생각하지만 타인에게는 전혀 그렇데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이다.
취향을 존중하는 일, 말은 참 쉽다. 하지만 내게 별 영향 없는 타인의 취향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하물며 내 주변 사람의 취향을 그대로 존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겠다. 가장 쉽게 드러나는 가치관 차이부터 시작해서 정치적 성향, 지적 방향성, 오타쿠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과 선호가 있다.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테지. 그저 선호에 불과한 취향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같은 사회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봐온 사회의 단면이 다르거나, 자신이 경험한 사회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한 자세는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저 상대의 입장을 “그러하군. 이러한 부분에서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 라는 태도로 맞이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법은 실제로 하기는 어렵지만 생각보다는 쉽다.
하지만 취향이나 가치관이 부딪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컨대 앞에서 다뤘던 A와 B의 경우처럼, A는 거친 섹스를 싫어하지만 B는 좋아하는 경우 같은 상황 일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지쳐서 관계가 끊어지거나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에는 상대의 취향을 무시하면 안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이와 동시에 스스로의 취향도 존중해야 한다. 라디오를 들을 때 온갖 잡음 속에서 제대로 된 신호를 잡기 위해 안테나를 움직이며 집중하는 것처럼, 연애를 할 때도 언제나 안테나를 세우기를 바라본다.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래서 만약 갈등 상황이 발생하거나 취향을 존중하지만 둘 중 하나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일 때, 고전적인 해결방법을 추천해보고 싶다. 서로서로 타협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만 두 가지 룰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하나는 같은 주장을 두 번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은 이 타협안을 제시하는 과정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과정이지, 누군가의 의견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타협안이 아니다. 서로가 주장하는 취향의 기저에 깔려있는, 취향의 근원이다. 내가 왜 이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점점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 과정인 것이다. 이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 둘 다 합의할 수 있는 대체 의견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쓰다 보니 정말 많은 것을 추천한 것 같다. 꼰대의 오지랖처럼 보일 것을 각오하고 여러 가지의 추천과 이야기를 써내려 간 이유는 하나다. 이 글을 읽고 본인이 해볼 수 있는 노력이 있으면 시도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청춘이 경험하는 많은 상황 중에서도 유난히 감정을 크게 뒤흔드는 것이 연애이기에, 성장 역시 크게크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와 취향에 귀를 기울이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연애를 할 때에는 내 취향뿐만 아니라 상대의 취향도 귀 기울이며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더 많이 알수록 상대방에게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본인을 아끼는 마음도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서두에도 말했듯이 성별을 구분할 수 있을법한 단어나 글을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 열린 글을 쓰고자 했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상대도 몰랐던 본인의 취향을 타인이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경험이며, 발견한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 상대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연인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는 독자가 되길 바란다. 이미 봄인 사람에게는 즐거운 봄날을, 아직 봄이 아닌 사람에게는 다가올 봄날을 위해 행복한 오늘을 채울 수 있기를 염원해보며 글을 마친다.
기고자 SR(yonseiji@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