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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화

<124호> 겨울왕국2/들

같은 영화, 다른 글 시리즈② ─편집실

by 연세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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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세》 121호 <기생충/들>에 이어 ‘같은 영화, 다른 글 시리즈’의 두 번째 기획으로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연세는 종종 같은 작품을 본 편집위원들의 서로 다른 생각을 풀어내는 글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정기적이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봤을 법하면서도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진행되지 않을까 합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와 그 전편 ‘겨울왕국’의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본 후에 읽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줄거리: 아렌델을 통치하던 어느 날 밤 엘사는 노랫소리를 따라가다 물, 불, 바람, 땅의 정령을 깨우게 된다. 엘사와 안나는 정령들이 쑥대밭으로 만든 아렌델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안개로 덮여 있던 마법의 숲으로 떠난다. 그 안에서 엘사와 안나는 자신들의 할아버지 시절부터 숲 안에 갇혀 대치하고 있던 아렌델의 군대와 노덜드라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노덜드라 사람이었단 걸 알게 된 엘사는 자신의 마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혼자서 어머니의 자장가에 나오는 섬, 아토할란을 찾아간다. 아토할란에서 엘사는 자신이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다섯 번째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함께 자신의 할아버지가 땅을 약화시키는 댐을 지어 노덜드라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했다는 진실도 알게 되지만, 섬의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간 엘사는 얼어붙고 만다. 자신을 떼어 놓고 떠난 엘사를 원망하던 안나는 엘사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다. 안나는 기지를 발휘해 땅의 거인들을 유인해 댐을 부순다. 마법이 풀린 엘사는 무너진 댐에서 쏟아진 물을 얼려 아렌델을 구하고 안나와 재회한다.



차지의 생각 “초능력 같은 재능이 없던 안나에게 역할을 준 속편”

차지: 엘사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안나는 재능이라고 할 게 뭐 ‘밝은 성격’ 밖에 없었잖아요?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기껏해야 용기가 있다거나요. <겨울왕국2>에서는 그랬던 안나에게 자기만의 역할을 준 것 같아요. 엘사가 마치 제정일치 사회의 제사장 같은 초월적 존재라면 안나는 행정가의 면모를 보여줘요. 좀 더 세속적 리더라고나 할까?

이해일: 저도 그 점이 좋았어요. 저는 겨울왕국 1편을 보면서도, 엘사가 주인공으로 부각되지만 괜히 안나에 공감이 됐어요. 저는 얼음 같은 거 못 쏘니까요.

차지: 맞아요. 하지만 오히려 안나 쪽이 현실에 있을 법한 재능이죠. 문학적으로 해석하면 엘사는 마치 독일 낭만주의 소설의 주인공 같아요. 강하고 아름답고 고독하며 일반인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존재예요. 반면에 안나는 좀 더 현대적인 캐릭터고요. 물론 인기는 아직 엘사가 더 많은 것 같지만요.

이해일: 취직 준비를 하면서 제 재능들이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어학 점수나 자격증처럼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보니까요. 뭐 사람을 좋아하고…… 긍정적이고…… 분명 제 장점이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고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아서 슬프더라고요. 안나도 그럴 때가 있지 않았을까요? 언니는 ‘짜잔’하고 얼음을 만들어내고 나라를 막 구하는데, 자신의 애매한 재능이 비교될 때가 분명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달백: 저는 겨울왕국이 히어로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안나는 전편에서는 히어로의 ‘사이드킥’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엘사는 전형적인 히어로로서 자신의 운명과 현 상태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성장하고 문제를 해결해요. 그 후 엘사가 노덜드라 사람들과 숲에서 살기로 하자 엘사가 그동안 했던 업무들이 모두 안나에게 쏟아지고요. 안나에게는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에요. 3편이 나온다면 안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달백의 생각 “왜 안나를 결혼시켜야 했을까?”

달백: 전 안나를 결혼시킨 게 좀 아쉬워요. 1편의 주제의식이 옅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에는 백설공주, 신데렐라처럼 남성 캐릭터에 의존적인 인물이 대부분이었잖아요. <겨울왕국>은 그걸 벗어나서 주도적으로 고난을 개척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들을 보여줬는데, 갑자기 안나가 결혼해버렸어요. 전 크리스토프가 착하긴 하지만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유랑: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결혼 제도에 문제가 매우 많긴 하지만, 결혼을 한 사람이 주도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겨울왕국> 1편의 주제는 물론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였지만 그것만 다뤘다고 할 순 없어요. 안나가 똥차(?)를 버리고 크리스토프와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죠. 사랑의 형태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2편의 부모님의 사랑도 그렇고…... 그래서 안나가 결혼했다고 주제의식이 옅어진다기 보다는 안나만의 서사라고 생각해요.

차지: 사실 우리나라에서 유부녀가 주인공인 작품은 <부부의 세계> 같은 것밖에 없지 않나요? <인어공주>도 2편이 나왔지만 주인공은 에리얼의 딸이에요. 유부녀 공주는 시장성은 고사하고 상상조차 되지 않던 건데, 결혼한 안나가 주도적인 캐릭터로 계속 등장하는 건 참 혁명적일 것 같긴 하네요.

이해일: 전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관계설정을 충분히 보여줬던 것 같아요. 안나가 바위 거인 때문에 죽을 뻔한 순간에 크리스토프가 구해줬을 때 저는 ‘아, 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하지만 그 때 크리스토프의 첫 대사가 “I’m here. What do you need?”더라고요. 그리고 댐으로 가라는 안나의 대답에 “왜요? 댐이 무너질 텐데요?” 같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안나의 판단을 100% 믿고 바로 ‘알았다’고 해요. 이게 그동안 디즈니가 보여준 공주와 왕자 서사와는 달라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결혼식이 아닌 안나의 즉위식이었고요. 전 크리스토프는 앞으로 계속 순록을 키울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도 좋았어요.



지긍의 생각 “저는 과도한 해피엔딩을 싫어해요.”

지긍: 저는 해피엔딩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실제 세상은 마냥 해피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안나의 결혼도 그렇고 모든 게 그냥 너무,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모노노케히메>가 떠올랐어요. 자연과 인간이 어긋난다는 설정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런데 <모노노케히메>와 다르게 <겨울왕국2>는 이 문제의 해결이 너무나 간단하고 완전해요. 그냥 댐을 지은 게 잘못이었고, 그 댐만 부수면 자연은 완벽하게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모든 게 해결되잖아요. 이게 참 서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 거 같아요.

달백: 그러면 지긍은 최소한 아렌델이 부서질 거라고 예상하셨겠네요? (이해일: 오! 제가 그랬어요.)

차지: 일이 간단하게 해결될 거라는 순진한 긍정성이 오히려 인물의 성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인명피해도 없고, 아무 재산손괴도 없어요. 꼭 누가 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거대한 재난 상황이었다는 걸 납득시키려면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무언가 있다’는 여운을 줘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었다는 느낌이에요.

지긍: 그 점이 서양의 자연관을 너무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나…… “우리가 자연을 화나게 했으니까 이제 안 그러면 해결!”이라는 편리한 생각이 보여요. 자연은 그런 편리한 존재가 아닌데 말이죠. 만약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했던 걸 문재인 정권에서 다 부순다고 해서 자연이 간단하게 원상 복구되지는 못하잖아요. 물론 기술은 무조건 나쁘고 항상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도 늘 옳은 게 아니고요. 인간과 자연의 얽히고설키고 복잡한 공생을 너무 간단하고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랑: 저는 이 이야기가 환경파괴와 원상복구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식민주의에 대한 비유라고 봐요. 숲을 훼손하고 댐을 지어 자연의 분노를 산 게 말 그대로 ‘자연의 분노’가 아니라, 식민주의에 의해 비롯된 파국을 표현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가 마법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노덜드라의 지도자를 죽이려는 모습에서도 제국주의의 모습이 연상돼요. 자신과 다르게 생기고 잘 모르는 이들을 혐오하고 타자화하는 과정이 제국주의 안에서 계속 발생하잖아요. 실제로 거기서 엘사가 “It’s just your fear. Fear is what can’t be trusted.”라고 말하죠. 주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달백: <겨울왕국2>의 모티프가 된 지역과 사건이 실제로 있는 거 아세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사미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사는데 진짜 순록을 키우면서 산대요. 그런데 1970년에 노르웨이 정부가 사미족의 땅에 협의 없이 알타댐을 건설하려고 하면서 반대 움직임이 거셌다고 해요. 그걸 계기로 사미족의 인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다고 하는데, 결국 현실에서는 댐 건설을 막지 못했죠.

지긍: 어쩐지 저도 디즈니가 노덜드라 사람들의 외모와 컨셉을 확실히 잡고 인종적 특성을 부여했다고 느꼈어요. 저는 또 이해가 잘 안 됐던 게, 노덜드라의 족장 옐레나가 엘사와 친구들에 대한 의심을 숄 하나로 단번에 풀어버린 부분이에요. 수십년간 안개에 쌓여서 갇혀 아렌델 사람들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아렌델의 여왕이 노덜드라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화해를 받아들이잖아요. (이해일: ‘엘사도 우리 민족이었어’ 같은 건가). 식민주의에 대한 비유를 이용하자면, 식민주의의 폐해나 감정의 문제가 그렇게 마법처럼 한 큐에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해일: 그런 의미에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제가 ‘진상규명’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트롤이 엘사와 안나를 숲으로 보내면서 “과거의 진실이 왜곡되어 있군요.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아렌델이 위험해요. (중략). 진실이 없으면 미래를 볼 수 없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할아버지의 잘못을 묘사할 때도 안나가 “노덜드라 지도자가 무기도 없는데!”라고 말해요. 집이 연희동 근처인데, 얼마 전에 전두환 자택 앞에서 드라이브스루 시위를 하더라고요. 자본이나 국가 권력이 힘 없는 개인을 억압하고, 그 역사를 왜곡하고, 그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과정들이 역사적으로 참 자주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랑: 사실 이건 아동용 영화니까요. 꽉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유랑의 생각 “퀴어 엘사의 정체성 찾기”

유랑: 저는 <겨울왕국2>을 정말 좋아해요. 엘사가 아토할란을 찾아가면서 ‘Show yourself’를 부르는 장면을 정말 수백 번 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게, 명백하진 않지만 엘사가 퀴어로 그려진 것 같다고 해요. 엘사가 꼭 LGBT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퀴어’가 원래 어원을 찾아가면 그냥 ‘이상하다’는 뜻이잖아요.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왜 나를 이상하게/무섭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하는 모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엘사가 찾아 헤매던 ‘5번째 정령’이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는 서사도 정말 의미 있게 다가왔어요. 평생 원하던 답아 결국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었다는 거잖아요.

지긍: 저는 그런데 엘사가 계속 자신의 근원을 고민하게 하는 그 힘이 좀 아쉬워요. <겨울왕국2>의 갈등 해결을 다 보고 나면, 결국 엘사가 초능력을 가지게 된 건 엘사가 엘사라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버지를 구해냈기 때문에 운명이 아렌델과 노덜드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 첫째 자녀에게 열쇠를 줬을 뿐이고요. 엘사의 과제가 아니라 아렌델 왕가의 과업이라는 뜻이잖아요. 서사 내내 마법이 엘사에게 너무나 중요한 정체성인데, 도대체 그렇다면 ‘엘사에게 마법이 뭐냐?’라는 질문이 생겨요.

차지: 저는 이걸 그리스 신화 같은 고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스 신화에 보면 등장인물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신의 장난 같은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한 서사가 많잖아요.

유랑: 저는 엘사에게 마법이 그래서 무엇이냐는 질문이 영화에서 필요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주어졌든 <겨울왕국>의 세계관 안에서 마법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엘사가 자신의 근원을 고민하게 하기도 하죠. 퀴어는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질문을 당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답을 찾아냈을 때 마법은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차지: 어쩌면 마법을 얻게 된 게 역사적인 운명 탓이 아니라 정말 완전한 우연이었다면 오히려 그런 메시지가 강화됐을 수도 있겠네요.

지긍: 사실 이것도 어쩌면 제가 꽉 닫힌 행복한 결말을 싫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는 사실 올라프도 다시 살아날 줄 몰랐어요. 왜냐하면 올라프는 ‘Do you wanna build the snowman?’으로 만들어진…… 말하자면 엘사와 안나의 유년시절의 상징이죠. 그래서 슬프긴 하지만 올라프가 엘사와 안나의 성장을 상징하니까 결국 사라지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나더라고요.

달백: 갑자기 <인사이드아웃>에 ‘빙봉’이 생각나네요. 저는 빙봉이 사라진 것도 정말 슬펐지만, 놀랐던 건 그 뒤로 영화에서 빙봉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진짜 완전히 사라진 거죠.

이해일: 저희 어머니가 <토이스토리>는 좋아하시는데 <겨울왕국2>는 어린 애들 영화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면 <토이스토리>에는 이별이 참 많았던 거 같아요. 어떤 서사가 유치한지 아닌지는 인생 속의 불가피한 상실을 전부 다 봉합해버리느냐, 어쩔 수 없는 것은 남기고 넘어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이해일의 생각 “엄마로부터 딸로 전해지는 이야기”

이해일: 저는 <겨울왕국2>가 <라이온 킹>의 미러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이온 킹>의 모티프가 ‘햄릿’이래요.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한 삼촌을 몰아낸 다음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잖아요?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가 참 많아요. ‘아버지의 원수!’ 모티프라고 해야 하나. 꼭 원수가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도 많고요. <피구왕 통키>부터 <이태원클라쓰>까지요. 말하자면 원한이든 유산이든 부계로 전승되는 셈인데 <겨울왕국2>에서는 어머니로부터 딸로, 그러니까 모계로 전승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차지: 사실 ‘아버지를 극복해라’ ‘아버지를 이겨라’ 같은 서사도 많아요. <에반게리온>같이 뭔가 소년이 아버지를 이기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느낌이요. 하지만 미디어에서 모녀 관계를 다룰 때는 그런 ‘투쟁’류는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모녀관계는 굉장히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단 말이죠. 그냥 ‘친구 같은 딸~’의 이미지로만 표현하는 건 이상해요. 마냥 평화로운 관계가 아님에도 여성의 성장에서 엄마를 대적하는 일은 왜 그려지지 않을까요?

이해일: 맞아요. 사실 그런 점에서 <겨울왕국2>의 한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보통 부자 서사에서는 원한이나 경쟁을 물려주는데, 그래서인지 보통 작품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징적으로 주는 게 무기잖아요. 전설의 칼 같은 거요. 그런데 엘사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건 ‘화해’의 과업인 데다가 자장가나 숄을 물려받았단 말이죠. 그동안 미디어에서 모험 이야기를 그릴 때 어머니는 주로 따뜻한 조력자로 묘사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서 리더가 되었을 때 꼭 ‘여성 특유의 리더십’ 같은 얘길 하면서 ‘여성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 같은 성별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싶어요.

지긍: 엄마를 극복하는 서사라고 하면 <라푼젤>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델은 친모는 아니지만, 라푼젤이 평생 엄마라고 생각하잖아요. 물론 이건 엄마 자체를 극복하기보다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나가는 간접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모녀의 대립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달백: 그러고 보니 <겨울왕국2>에는 딱히 빌런이 없네요. 할아버지 정도?

유랑: 꼭 빌런이 인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명시적인 빌런이 없지만 <겨울왕국2>의 서사는 명확하잖아요. 엘사 자신의 근본에 대한 질문, 아렌델에 내재한 고질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빌런의 역할을 해요. 사실 현실 세계에서는 한 명의 나쁜 사람보다 손에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들이 우리 삶의 빌런인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이해일: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 앞에 다가온 원고 마감이라든가……

일동: (숙연)



저희는 <겨울왕국2>를 보고 대화를 나누기 전 각자 이 영화의 키워드를 가지고 만나기로 했었는데, 총 15개의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연세》의 독자 여러분들은 <겨울왕국2>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마지막으로 편집위원들의 추천 영화를 알려드립니다. <겨울왕국2>가 맘에 들었거나 혹은 아쉬웠다면 아래 영화들을 한 번 찾아보세요!


• <인사이드아웃>
디즈니의 성장 스토리가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졌다면 추천한다. <토이스토리>와 함께 디즈니식 스토리텔링보다는 살짝 더 성숙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
• <골든 에이지>
엘리자베스 1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겨울왕국>에서 여왕의 멋진 성장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 <모노노케히메>
<겨울왕국2>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식이 조금 불편했다면 추천한다. 1997년 애니메이션이지만 이보다 더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공생을 철학적이고 재미있게 그린 작품은 보지 못했다.
• <레이디버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이름이 싫어서 자기가 스스로 이름을 짓는 주인공의 성장물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무언가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겨울왕국>과 비슷하지만 훨씬 현실적이다. 특히 모녀가 싸우는 장면은 현실 그 자체다.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닌 대학생이 보면서 굉장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 <클라우스>
사미족이 등장하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색감과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지만 뻔하지 않게 풀어낸다. 다들 별 기대를 안 하고 우연히 클릭해서 봤다가 결국 박수를 치며 여기저기 추천한다는 작품.



편집실(yonseij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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