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지긍
2020년 1학기를 앞두고 입학 이후 처음으로 개강을 기다렸다. 2019년 한 해 동안 학교를 잠시 떠나고 나니 괜히 학교가 그리워졌다. 한 학기는 휴학을 하고 한 학기는 교환학생을 다녀오면서 한국으로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송도에서 1년 그리고 신촌에서 1년은 짧지 않았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익숙한 언어로 수업을 들으면 더욱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기가 끝나고 한참 여행을 하고 있을 쯤 학교는 개강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3월에 한국에 돌아가고 4월이 오면 대면 강의 개강을 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한 학기 전체가 비대면 강의로 전환되었다.
3월에 한국에 돌아와 매일같이 투덜거렸다. 개강을 바라니 개강을 하지 않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한탄도 해봤다. 격한 감정은 차차 줄어들었지만 아쉬움이 가시지는 않았다. 방학도 아니고 학기도 아닌 미적지근한 3, 4월을 보내고 반쯤은 체념한 마음으로 Zoom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졌다. 다른 학년이라면, 다른 과라면, 그리고 다른 상황이라면 이 순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래서 나와 다른 위치에서 이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학우들을 만나 묻고 싶은 세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요즘 내 일상은 [ ]하다.
올해 나에게 학교는 [ ]이다.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 ]라고 생각한다.
빈칸이 뚫린 질문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러 나섰다. 필자가 3학년인 관계로 3학년을 제외한 사람들을 만났다. 상황에 따라 전화로도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실제 답변에 기반해서 필자가 다시 작성했다.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글 독스를 통해서도 받았다. 총 48명이 남긴 답변을 정리한 후 워드 클라우드로 재구성했다.
다람쥐 (사회복지학, 1학년), 별쟁이 (천문우주학, 2학년), 소소 (문화디자인경영학, 4학년)
다람쥐: [휴식기 ]다.
오전 수업이 많아 10시~11시쯤 일어나 수업을 듣고 점심 먹고 수업 복습을 해요. 저녁이나 밤에는 드라마/예능을 보거나 출석 과제를 하곤 해요. 사실 드럼 학원을 등록하고 싶었는데 비대면 강의 기간이 확정이 안 돼서 못했어요. 보통 악기는 한 달씩 끊어서 하다 보니까 그랬는데, 이제 아예 한 학기 내내 비대면 강의라 학원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솔직히 수능 이후부터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에 조금 질리는 부분도 있어요. 입시 직후라 그런지 학교생활에 대한 태도가 좀 변했어요. 시험이 없기도 하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서 수업을 열심히 듣거나 공부를 하기 어려울 때가 있네요. 또 집에서 다들 있다 보니 수업을 듣거나 공부하는 일이 방해될 때도 있어요.
별쟁이: [치열] 하다.
저는 이번 학기에 오전 수업이 많아서 7시쯤 일어나서 강의 듣고 하다가 보면 3시쯤이에요. 그 후엔 과제하고 저녁 먹고 공부하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학교를 실제로 나갈 때랑 비슷하게 지내고 싶어서 계획을 짜고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비대면 강의 방식 때문에 살짝 꼬일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1시 수업 동영상이 오후나 저녁에 올라오게 되면 제가 계획한 대로 지내기가 어려워요. 저는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과외나 알바처럼 저녁에 고정 일정이 있는 학우라면 이거 곤란하겠다 싶더라고요. 학교에 가면 시간표대로 흘러가니 예측이 되는데 비대면 강의는 그렇지 않아요.
소소:[고요] 하다.
막 학기라 수업이 많이 있지는 않아요. 대신 졸업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기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쓰고 있어요. 팀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회의를 많이 하고 교수님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에 매일 오지 않는 게 의미하는 바가 많아요. 저한테 학교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집이 가까워서 학교에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학교 안에 학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차이가 크네요.
지긍:[오락가락] 하다.
인터뷰를 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다들 성실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영 인강을 못 듣던 나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밀린 강의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동안 침대와 더욱 친밀해졌다. 이제야 중간 과제가 밀려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침대와 가까웠던 관성은 그대로다. 마지막으로 아침 식사를 했던 게 언제였더라. 실시간 강의가 아니라면 아침에 일어날 일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뭐, 나름 열심히 사는 날도 있으니까 오락가락한다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건… 아니고.
다람쥐: [새로운 경험]이다.
학교 입학 후 기대하는 새로운 경험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과 잠바를 입고 꽃이랑 사진을 찍는다거나 선배랑 밥약을 하거나 합동 응원전을 가는 일이요. 대학 입시를 할 때 합동 응원전 영상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기도 했거든요. YBS나 연고 TV를 통해 지금도 간접적으로 알아가는 중이긴 해요.
실제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YBS에서 올려주는 캠퍼스 투어 영상을 보기도 해요. 고등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서 지냈거든요. 그래서 기숙사 자체에 대한 기대는 없지만 2인 1실에서 사는 건 처음이기도 하고 고등학교랑은 생활이 또 다를 것 같아 궁금했었는데… 결국 다음 학기로 미뤄졌네요. 동아리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대부분 학과 공지 방이나 총동연(총동아리연합회) 페이지 에브리타임, 페이스북 등으로 정보를 얻었어요. 저는 다음 학기쯤 기회가 되면 연극이나 국궁과 같이 고등학교에서 하기엔 흔치 않은 동아리를 도전해보고 싶어요.
별쟁이: [가상공간]이다.
학교 근처에 살고 있지만, 학교에는 잘 가지 않아서 가상 공간이라고 느껴요. 솔직히 신촌 캠퍼스가 국제 캠퍼스보다 꽃도 많고 푸릇푸릇한 전경도 있으니까 기대를 좀 했는데 와장창 깨졌네요. 수업 들으러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캠퍼스를 누릴 생각을 했었는데 … 아무리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없으니 학교 같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소소: [더욱 소중한 곳]이다.
이 순간이 그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학교를 다니는 게 자연스럽고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제 마지막 학기니까요. 후회 없는 마무리를 하고 싶어서 새로운 도전도 해봤어요. 사실 운동 동아리에 지원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취소가 되어버렸네요. 아쉽지만, 뭐… 저는 과거에 겪어본 거니까. 새내기분들이 얼마나 아쉬울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갔던 기억이 나요.
다람쥐: [기회] 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기회’라고 한 건 원래대로라면 행사나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면서 시간을 보냈겠죠? 그런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워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어서예요.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이번에 필수교양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집에서 연습도 많이 해보고 있어요. 또 혼자 있다 보니 입시 준비할 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기도 하고요. 비대면 강의로 인한 상황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입시 때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할 수 있어서 기회라고도 느껴지나 봐요.
소소: [필수] 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던 두 달이에요. 단순히 약속이나 일정이 줄어서는 아니고 하루 루틴이 아예 변하면서 무기력할 때도 있었어요. 물론 이런 무기력을 혼자 겪는 게 아니고 다 같이 느끼는 거라 이야기를 나누며 해소하기도 했죠. 또 동시에 이 상황이 생존에 위협이 되거나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무기력할 짬도 없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언젠가 역사책에 실릴 과정에 있다는 게 신기해요.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서 최대한 편안하게 즐기면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긍: [모순(이)] 라고 생각한다.
집순이를 자청하던 나도 어느 순간 마스크를 쓰고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다가는 관절이 녹슬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야 친구를 만나지 않고 사람이 드문 곳을 가면 됐다.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은? 거리를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나는 사회와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다.
다람쥐: 저는 시간표를 짜는 것과 같이 정보나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어려웠어요. 중앙 새맞단이나 새맞단에서 송도 꿀팁이나 시간표 짜는 방법에 대해 ppt 등으로 안내를 해주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더라구요. 전공필수, 필수교양 이런 단어들이 익숙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시간표를 짜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또 RC101 과 RC자기주도학습은 뭐가 다른지 아니면 채플은 뭔지도 잘 모르니까요. 심지어 이 때는 직접 물어볼 사람도 없어 혼자 해야 한다는 부분이 막막했던 기억이 나요.
별쟁이: 과 학생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안타까운 점이 많아요. 시간표 짜는 것부터 과잠을 맞추는 것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과 같은 경우에는 새내기와 기존 학우들을 연결해 줘서 질문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학번을 기준으로 하면 연결되지 못하는 새내기도 있어서 신청을 받아서 진행했습니다. 2학기에 대면 강의를 하게 되면 OT 대체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기들은 함께 송도에서 지내고 수업 듣다가 보면 알아갈 기회가 있지만, 다른 학번을 만나서 친해질 자리는 많지 않으니까요.
소소: 저야 이미 있는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로 확장이 안 된다 뿐인데 새내기는 이게 아니잖아요. 물론 저도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보고 싶었으니 아쉽긴 하지만요.
다람쥐: 학우들을 못 만나는 게 제일 아쉬워요. 실시간 강의로 이루어지는 RC수업이나 강의들로 얼굴을 보는 게 전부에요. 20학번 새내기 그룹 통해서 사회복지학과 단톡에 들어가 있는데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 조금 경직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강의 관련 이야기도 하고 수업 자료도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종종 나누기도 해요. 또 과 학생회 차원에서 뻔 선배, 뻔 후배를 이어줘서 직접 만나진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처음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라는 거대한 상황 앞에서 자리를 잃은 작은 이야기들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대를 향한 시선은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대학생으로 혹은 젊음이 주는 건강을 믿고 놀러 다니는 무책임한 젊은이로 모두 묶어버린다. 그러나 뭉뚱그려진 20대 뒤에 있는 작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특별히 일상 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에 대한 질문은 빼놓을 수가 없다. 교정에 직접 가지는 못하더라도 사이버 공간 속 학교가 일상에 여전히 자리한다.동시에 혼자 있는 나날은 자연스럽게 애써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되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학교에 입학하던 때를 떠올려보자. 각자 조금은 달라도 이런저런 기대를 안고 첫봄을 기다리지는 않았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거나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 청춘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수식이 싫으면서도 청춘이니까 해보고 싶은 일들을 꿈꿔본다. 그런 마음을 샘솟게 하는 봄이 이번에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모두 일시 정지에 접어들었고, 학교라는 공간을 잃은 사람들이 여기 있다.
학기를 시작하기 전인 2월부터 3월 그리고 4월은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새로운 관계가 싹트는 시기다. 오리엔테이션과 새내기 배움터에 가지 못하게 된 20학번 신입생에게 보내는 안타까움은 단지 재미를 잃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학교를 입학해서 함께 시간을 보낼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이자 학교에 먼저 들어온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의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할 사람을 만나며 지식을 얻거나 문화를 배우는 일은 그 공동체를 이어나가는 핵심 작업이다.
시간표를 어떻게 짜면 좋을지 묻는다면 단지 졸업요건을 알고 끝나지는 않는다. 어떤 수업이 좋은지 필수 교양 카테고리 중 무얼 채워야 할지를 물었다면 그 대답은 익명의 강의 평가나 조언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하루 정도는 공강을 만들어서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알게 되거나 언더우드 기념 도서관에 있는 달걀 모양 의자가 좋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사람을 만나야만 알게 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카드뉴스와 같은 공식적인 자료에는 담겨있지 않다.
마치 새내기에게만 국한된 문제 같지만 그건 아니다. 처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도 모두 동일하게 관계를 만들어나갈 공간을 잃었다. 단지 이미 맺어진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을 뿐이다. 교정에서 이 수업 저 수업을 들으며 사람을 만나거나, 친구를 따라 동아리 부스에 홀린 듯이 끌려 들어가 등록해 볼까 고민도 해본다. 심지어 질색하던 조별 모임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도 있다. 비는 시간에 편하게 갈 수 있는 도서관 아니면 학생회관에 있는 동아리방에서 뜨거운 커피가 식도록 있어본다.
우리는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만나고 모여서 어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오늘을 만들 우연을 쌓아간다. 학교는 우연을 위한 공간이자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러나저러나 학교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학교가 단순히 수업을 통해서만 배움을 얻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한 만남과 새로운 경험과 여러 사람을 통해서도 배운다. 그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을 우리는 잠시 잃었다.
학교에서 사람을 만날 수도 학교 공간을 이용할 수도 없는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비대면 강의’ 뿐이다. 유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부분은 잘 굴러가고 있나? 1학기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학기 초를 돌아보면 Zoom에서 벌어진 대참사 같은 이야기는 이제 지난 일이 되었다. 어떤 교수님은 학교 전경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려주셨다. 매시간 제출한 출석 과제가 폴더에 쌓여간다. 평소보다 자주 YSCEC에 들어가다가 이것도 중독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매끄럽지 않은 시작이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적응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은 적응을 가장 잘하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잘하는 걸 떠나서 적응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냐고 묻고 싶다. 이게 무슨 딴지 걸기 인가 싶겠지만, 적응한다는 건 불편한 상황이 있어야 가능한 건 사실이 아닌가! 애초에 비대면 강의에 ‘적응’해 나가는 상황은 학생에게 주어진 조건이 열악했다는 방증이다. 적응을 했다고 해서 모든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학교에 남은 마지막 기능이 위태롭게 굴러왔던 과정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개강을 2주 미룬 후 연세대학교에서 발표한 첫 공지사항은 수강 신청과 기숙사 격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중 기숙사 격리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중국 혹은 동남아에 다녀온 이력이 있다면 2주간 개인실에 격리하고 외부 출입을 금한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연세 교육권 네트워크는 입장문을 통해 격리조치를 비판했다. 당시 정부에서도 자가격리를 권고할 뿐 특정 국가에서 입국한 사람을 격리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교가 보낸 ‘개인실에 거주, 외부출입 불허 (도시락 제공)’에는 격리방식에 어떠한 정보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격리 조치를 학생들이 신뢰할 수도 없었다.
이는 격리 대상자가 마주할 상황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고 행정적인 처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결정이다. 극한으로 끌어올린 행정 효율성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 바로 기존에 기숙사에 머물고 있던 학생들이다. 2월 10일 학교는 기숙사에 머물던 학생들에게 19일 이후 퇴소를 요구했다. 앞서 비판을 받은 조치를 실행한다는 이유였다. 기숙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짐을 싸들고 나선 학생이 갈 곳을 잃는다면 그건 급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삶의 기반을 흔드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린 학교는 학생을 단 한 순간도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총학생회 대응 이후 이 결정은 기숙사생의 입장을 고려한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10일 해당 조치를 알리고 13일 수정되기까지 학생들은 불안정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불안정한 상황은 기숙사 바깥에도 퍼져있었다. 2학기에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는 올해 자취방 계약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이 보통 일 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취방에 있지 않으면서도 다달이 월세를 내야 한다. 언제 개강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거공간과 관련된 선택을 섣불리 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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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집단 감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학교도 비대면 강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가 가장 먼저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보다 한주 앞서 성균관 대학교가 비대면강의를 시작될 때 곳곳에서 반쯤은 실소 섞인 반응이 나왔었다. 윈도XP를 쓰던 시절에 찍어둔 온라인 강의를 올리거나 조잡한 PPT 디자인을 쓰는 것을 보면서 얼떨떨한 이 상황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마저도 ‘배꼽 잡은 대학가’라는 표현과 함께 온라인 강의 시작과 함께 발생한 다양한 사건을 전하기도 했다.
웃음 섞인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막상 비대면 강의를 시작하고 나니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모두가 감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당사자가 되자 더는 웃을 수도 없었지만, 2주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태가 심각한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2주가 4주가 되고 4주가 두 달이 되고 결국에는 한 학기가 되는 동안 더이상 넘어갈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했다. 수업 자체가 비대면 강의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뿐만 아니라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총학생회가 학교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 결과 3월 30일 총학생회는 교무위원회에서 네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그 중 첫 번째가 ‘등록금 일부 환급’이다. 그만큼 등록금 반환에 대한 이야기는 학우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의제였다. 인터뷰에서 등록금 반환에 대한 의견을 추가로 물었다.
다람쥐: 과 공지방에서 총학생회가 진행하는 등록금 반환 설문조사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저는 상대적으로 실험이나 실습이 많이 없어서 현재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하지만 과 특성상 실험, 실습 등이 많다면 학교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동네 도서관이 휴관 중이고 공부할 공간이 없어서 책을 빌리고 읽거나 공부할 수 있는 학교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때가 있어요. 카페를 간다고 해도 돈을 내고 일정 시간 이상 있기가 어려우니까요.
별쟁이: 저는 이번 학기에 실험 수업이 하나 있어요. 사실 작년에 송도에서 실험 수업을 들어봤기 때문에 지금 하는 방식에 아쉬운 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요. 제가 직접 경험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 제일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꼭 실험 과목이 아니더라도 음대나 체대도 비슷한 상황일 듯하네요. 등록금 반환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어렵다면 꼭 학비를 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수업이 부족한 부분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으니 다른 교육 자료를 구매할 수 있게 방침을 정하던지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소소: 등록금 반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조심스럽네요. 저는 학교를 운영하는 쪽에서 섣불리 돌려주겠다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가적인 지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제가 학교에 와서 계속 학교는 돌아가고 있는걸 보면 인건비 같은 부분도 계속 나갈 텐데… 결국 학교가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는 건 아쉽네요.
비대면 강의를 이유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처음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문제다. 예를 들어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시간 강의가 진행되지만 네트워크 문제가 생겨 강의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경우다. 혹은 비대면 강의를 과제로 대체해서 교수자가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강의도 있다. 비대면 강의가 처음이라 수업 방식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부담이 되기도 했다. 출석을 직접 부를 수 없다는 이유로 부과하는 출석 과제는 불필요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한편으로, 비대면 강의가 본질적으로 보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별쟁이’처럼 직접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우나 ‘소소’처럼 비대면으로 진행하기 까다로운 수업 방식이 대부분인 과가 있다. 학교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실험을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거나 교수자가 학생과 개별적으로 화상 면담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대체해도 해결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실기, 실습 수업이다. 실기, 실습 수업은 학생과 교수자가 물리적인 공간에서 만나야만 교육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를 진행할 수 없고 동시에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수업 진행을 재량권에 맡기면서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비대면 강의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많은 학우들이 등록금 반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을 학교측에 전달했음에도 비대면 강의로 인한 예산 추가 지출과 수입 감소를 이유로 등록금 반환을 거부했다. 그러나 예산에 대한 명확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총학생회가 4월 8일 기획처가 회의를 진행하였으나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연세대학교는 총 세 번에 걸쳐 비대면 강의를 연장했다. 대학마다 한 학기 전면 비대면 강의를 결정하는 방식에도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먼저, 연세대학교와 같이 몇 차례에 걸쳐 일정 기간 개강을 연기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무기한 연장’과 같은 방식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2020년 1학기로 한정해서 비대면 강의를 진행하도록 결정한 학교도 있다.
대면 강의 개강 날짜를 정하는 방식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자취방 계약을 결정하거나 기숙사 환불을 요청하는 일은 주거환경을 결정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이다. 동시에 보통 한 학기 혹은 일 년 단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학사일정이 중요하다. 또는 비대면 강의로 진행된다면 수강 변경이 필요하게 되거나 아예 휴학을 결심할 수도 있다.
차라리 한 학기를 전체 비대면 강의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맥락도 여기에 있다. 여러 번에 걸쳐 연장하거나 무기한’과 같은 단어는 학생들이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학교가 기한을 결정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무엇이 옳았는지 사후에 논하려는 건 아니다. 행정적 편의뿐 아니라 학생들이 직면할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한참 상황이 나빠지고 있던 3월, 친구가 2020년은 없던 거로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다음 해를 2020년으로 정하자는 실없는 소리였다. 그만큼 코로나는 그 누구도 달갑지 않은 방식으로 2020년 상반기를 장식했다. 친구가 했던 말대로 마법같이 2020년을 지워버리는 일이야 당연히 불가능하다. 결국 2020년은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리라. 인터뷰에서 소소가 역사책에 남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처럼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한 줄 짤막한 글이 남는 상상을 하면 괜스레 억울하다. 그 한 줄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매 순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손에 남은 것은 다시 찾아올 봄을 맞이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최초라는 이유만으로 용납되었던 결정들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갑작스레 집을 잃어서도 안 되고 모든 결정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아서도 안 된다. 이번에는 애써 비대면 강의에 적응했지만, 다음에는 그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기술이 미비해서 벌어진 일은 개선해야 한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통해 배운 바를 통해 더 나은 학교가 되도록 재정비해야 한다.
대학은 취업 사관학교에 불과하다는 오명 아래 학생은 등록금을 학교에 지불하고 강의를 제공받는 소비자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니 등록금 반환 요구는 환불 요청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지나면서 세상에 작은 항변을 남겨 놓는다. 학교가 내린 일방적인 결정 앞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싶지 않다고. 학교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 존중받기를 바라며 동시에 학교를 채워 나간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든 문화를 그리워한다고 말이다.
지긍(ourindepen@gmail.com)
1.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2020년 3월 30일자, 2020년 4월 1일자 게시글).
2. “개강연기 대학생들 "자취방 월세만 날려"…집주인도 울상”, 중앙일보, 2020. 4. 5.
3. “교수에 별풍선 세례… 온라인 개강 배꼽잡은 대학가”, 국민일보, 2020.3.20.
4. 연세 교육권 네트워크 페이스북 페이지 (2020년 3월 30일자 게시글).
5. “대학생들 “찔끔찔끔 연장 말고 1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한겨레, 2020.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