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내 이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세편집위원회 Mar 29. 2020

<123호> 그래서 (류석춘 사건) 어떻게 됐다고요?

기고자 해슬

류석춘! 19-2학기 ‘발전사회학’ 강의 중 ‘위안부’에 대한 혐오발언, 학생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이 프레시안의 단독보도[i]로 공개된 이래로, 그는 명실상부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교수가 되었다. 이후 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학내 단체에서 류석춘 교수의 징계를 촉구하였지만, 학교로부터 20-1학기 강의배제 조치만을 얻어냈을 뿐이다. 학생들은 답답하다. 왜 아직도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가? 분명 공론화 초기에 범국민적인 관심을 얻었고, 그에 힘입어 빠른 시일 내로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의 무엇을 문제삼아야 하는가?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각자가 생각하는 쟁점이 각기 다를 것이므로 처음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다시 한번 짚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앞서 각자가 생각하는 쟁점이 다를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실제로 위 발언에 크게 ‘위안부’ 및 여성에 대한 혐오발언과 학생에 대한 성희롱 발언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의 단독보도 이후 수많은 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망언’에만 집중하면서 범국민적인 분노를 자극시키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는 대다수의 국민 정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희생자 내지는 피해자로 생각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소위 ‘팔리는’ 기사를 쓰기 위함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사회학과 학생회장으로서 언론 인터뷰에 응했을 때 기자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도 ‘위안부’ 관련한 또 다른 망언은 없는지, 더 친일파다운 발언은 없었는지 하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9월 21일 저녁, 사회학과 학생회는 임시 제1차 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학과 학생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위안부’는 일본이 국가적으로 운영한 것이 아니며 전시 성폭력은 언제나 있었다는 주장이 (어찌 되었든) 학계에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류 교수를 위시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대학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식의 프레임으로 악용할 여지가 충분히 있어 징계요구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사회학과 학생회는 해당 내용을 다루면서 교수가 보였던 강압적인 태도와 여성혐오 발언, 그리고 성폭력 발언에 대해 학생들이 침해당한 권리를 호소하기로 결론지었다. 학과 학생회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그들을 대표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학교에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 집행위원 모두의 의사가 모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판 지점을 1) 매춘이라는 단어는 여성을 성판매 도구로 보는 혐오표현이라는 점, 2) 학생에게 매춘을 권유하는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점, 3) 교수-학생 간 권력관계에서 자신이 갖는 위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주입했다는 점으로 잡고 류석춘 교수에게는 사과를, 학교에는 교수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위안부’에 대한 류석춘 교수의 역사인식이 매우 왜곡되었으며, 이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한 것은 단순히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변호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싶다. 첫째, 전쟁범죄 피해자의 증언이 가지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청중의 구성을 포함하여 피해자들이 발화하는 환경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사람이 증언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구성방식이나 편집방식이 항상 같을 수는 없으며, 이로 인해 주장에 약간의 오류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우파 계열 학자들은 피해자들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증언을 신빙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주장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발견’ 정도로 포장하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모순은 언제나 약자를 향하지, 강자를 향하지 않는다. 강자의 입장에 유리한 증언과 증언의 사소한 모순을 짜깁기함으로써 전쟁범죄를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심각한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다. 

    

    둘째, 학문의 자유는 강단에서 혐오발언을 내뱉게 해주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교수는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다. 더욱이 강단 앞에서라면 선생으로서 역할 해야 하며, 이는 곧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학생들을 존중하며 학문을 발전시켜 나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정말 자신이 그토록 부르짖는 학문의 자유라는 가치를 추구한다면,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학생들에게 ‘속고 있는 것’, ‘깨어나야 한다’는 식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매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은 그 누구도 교수에게 개인적인 신념을 버리라 강요하거나 탄압하지 않았다. 교수에게는 강단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학생들을 같은 학문을 공부하는 동료로서 존중하고 혐오없는 공간을 만들 의무가 있다. 그러나 류석춘 교수는 강단에서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남성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로 대상화함과 동시에 “‘위안부’는 ‘매춘부”라 표현하며 전쟁범죄와 구조적인 여성혐오를 동시에 옹호하려 했다. 그렇기에 ‘궁금하면 한번 해’보라는 발언을 통해 매춘을 권유받은 학생들은 자신이 교수에게 존중받기는커녕 모욕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대응단체 일원화를 위한 움직임; 학생들이 바라는 해결

언론보도 초기에는 대응의 주축이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대응했다. 연세대학교 평화나비, 사회학과 학생회, 총학생회 등 많은 학생단체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학교 당국의 대응을 촉구했으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지 않아 학교를 압박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가장 대표성을 가진 단체는 사회학과 학생회였지만 워낙 단위 자체가 작고 구성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학교 고위 관계자와 면담을 하거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전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학교에 전달할 수 있는 헤드쿼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사회학과 학생회와 사회과학대학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사건 학생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사회학과 전임교수가 전공 강의에서 사건을 일으킨 경우였기 때문에 사회학과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대책위의 행동방향을 결정하고, 사회대가 더 큰 단위로서 대내외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는 운영방식을 채택하였다. 

    

    또한 사회학과 학생회가 구체화한 류석춘 교수의 발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아가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위로서의 대책위는 강단에서 혐오발언을 가능케 한 사회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그 구조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혐오가 가벼운 농담 정도로 소비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히 한 사람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이 사건을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수가 자신의 발언을 혐오표현으로 규정하는 단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진실로 자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이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혐오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왜곡한 류석춘을 보호해온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혐오는 그 자체로 사람을 분리하고 배제함으로써 사회를 파편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지속적으로 혐오에 노출되어 둔감해진 사람은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조차 없게 된다. 특별히 이 사건은 강의실이라는 교수와 학생 간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혐오표현에 노출된 사례였으며, 이렇게 혐오가 권리로 둔갑하는 사회에서 지금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또다시 혐오에 노출되어 두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류석춘을 파면하라는 주장은 (류석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강단에서 혐오를 자행했던 모든 교수에게) 더 이상 혐오를 권리로 내세우면서 약자를 억압하려는 시도를 참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한 선언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책위는 일차적으로 학교로부터 류석춘의 파면을 이끌어내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이 혐오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잡고 활동을 전개했다. (아래는 대책위 활동 타임라인이다.)


2019.09.26.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사건 학생대책위원회’ 발족>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

대책위는 위와 같은 활동을 통해 지속해서 학생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왔다. 강의실에서 성폭력을 행사한 교수의 파면할 것, 권리를 침해당한 학생들에게 교수가 직접 사과할 것. 학생들은 목소리를 쉬지 않고 내고 있는데, 강의배제 조치만 이루어진 상황에서 하염없이 학교의 징계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류석춘 교수가 징계를 받기 전에 스스로 교수직을 포기하거나 최악의 경우 경징계를 받고 교수로서 명예롭게 정년퇴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대책위로서는 과거 수업 및 뒤풀이에서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자행했던 문과대 A 교수가 정직 1개월 처분만을 받은 채 사퇴한 전례를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에, 학교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이다.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교원징계시스템의 한계다. 교원징계절차는 굉장히 복잡한데, 이번 사건은 강의실에서 발생한 성희롱 발언에 대하여 사건접수가 되었다. 따라서 교원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받았을 때의 매뉴얼로 징계절차가 이루어졌는데 징계에 관련된 대부분의 절차는 원칙 상 대외비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간단한 절차 정도만 소개하고자 한다.                     



보통 사건은 학내에서 공론화가 되어서 외부로 퍼져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은 외부에서 먼저 공론화가 되었다는 점, 녹음본이라는 확실한 물증이 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이번 윤리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이른 시일 내에 개최되었는데, 이는 언론 등 외부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1차 윤리위원회 폐회 후 학교가 언론에 내준 보도자료에는 학교가 류석춘의 발언을 학생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규정하고 필요하다면 징계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는 ‘위안부’ 관련 혐오표현은 교원징계위원회를 열기 위해 채택한 징계사유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곧 학문의 자유라는 모호한 개념을 건드리기보다는 보다 명확한 성폭력 발언으로 사건화를 완료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책위로서는 학생들의 문제의식과 요구가 처음으로 학교에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파악된 마지막 언론보도[ii]에서는 류석춘 교수 측이 성평등위원회가 징계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최종 징계가 결정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징계사유의 채택과정과는 별개로, 징계절차 자체의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 특히 연세대학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제2장 제2절 성폭력대책위원회[iii]의 구성을 보면 총 위원 18명 중 학생위원은 단 3명 뿐이다. 나머지 15명은 학교 처장급 인사 및 교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건을 심의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가 학생인 사건을 다룰 때 교수가 사건을 바라보는 수직적인 태도와 학생이 학생입장에서 사건을 다루는 수평적인 태도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교수/학교-학생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교원징계시스템의 한계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이외에도 학내외에서 사건해결에 어려움을 주었던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공론화 초기, 언론과 학생단체가 포커싱한 부분이 달랐다. 언론은 돈이 되는 기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국민들의 관심을 끌 소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재를 어떻게 하면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잘 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조회수를 높일 수 있는 주제는 당연히 ‘위안부’와 일제강점기 등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교수의 역사관이었고, 언론은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기 위해 이전 수업에서는 또 어떤 ‘망언’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아래 사진은 구글에서 ‘류석춘 발언’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 제목인데, 모두 ‘위안부’를 매춘에 비교한 것에 포커스를 두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진1, 사진2)

    그러나 이러한 기사는 앞서 설명한 강의실 안에서의 권력관계나 ‘매춘’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여성혐오 맥락까지 이야기하지 못하고 단순히 ‘위안부’를 매춘부에 비했다는 발언 자체만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기사를 읽는 국민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하고 사건에 대한 관심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긍정적이긴 했으나 교수에 대한 징계사유가 되기에는 불충분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교수와 학교에 대항하여 싸움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학생회나 대책위는 처음부터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집중해서 징계사유를 만들고자 하였고, 방송3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그러나 역시 류석춘 교수의 역사관에 대한 질의응답만 방송되었고, 실제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는 조명받지 못했다. 초기 대응 시기에도 학생회가 주장한 것은 교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교실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력관계를 성찰하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위안부’ 발언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학생회의 문제의식과 요구사항을 말했더니 결국에는 인터뷰를 해도 인용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데스크의 입맛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학생회는 보도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가끔 언론의 스탠스에 맞춰 ‘위안부’ 문제에 집중해서 문제의식을 발전시켰으면 일을 더 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위안부’에 대한 발언을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여성혐오라는 판단을 배제하고 민족주의적으로만 해석하는 시선은 해당 발언의 문제성을 축소하는 편협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정의함으로써 윤리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제소하는 것이 용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로부터 징계위원회 개최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언론이 언제나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학생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다 주의 깊게 듣고 보도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 류석춘의 자기방어 및 샤이 류석춘파의 등장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류석춘 교수가 선택한 자기방어 방법과 그를 옹호하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점점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9월 23일 발표한 류석춘 교수의 입장문과 연세춘추 인터뷰,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그는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와 토론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는 발언은 조사를 해 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지 절대 매춘을 권유한 것이 아니[iv]라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학보사와의 인터뷰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것이 여자가 피해를 주장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로서는 직접 한 말도 없고, 의도하지도 않았다. 이를 바꿔 해석하고 모욕감을 느꼈다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할 의향을 전혀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류석춘 교수의 이러한 자기방어는 법적대응을 고려하면서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류석춘 교수가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가해를 나 몰라라 하는 배경에는 몇몇 동료 교수들 – 나는 이들을 ‘샤이 류석춘파’라고 부른다 -의 은근한 지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개적으로 강의[v]까지 제작해서 용기를 내 문제제기를 한 학생들을 ‘인생의 패배자’라며 비웃은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인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연세대 내에서도 샤이 류석춘파 교수들은 강의 중 류석춘 교수를 옹호하고 학생들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며 비판의 화살을 학생들에게 돌렸다. 실제로 학생들은 작년에 송도에서 열렸던 수업에서 담당교수가 류석춘 교수를 옹호하면서 교수의 허락 없이 수업을 녹음하고 유포한 학생이 가장 나쁘고, 자신의 수업에서는 녹음을 절대 금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들은 류석춘의 현재 모습이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학생들을 통제하는 최악의 방식으로 해소하였는데, 나는 이를 교수들이 ‘말실수’를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류석춘이 그렇게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샤이 류석춘파 교수들로 인해 학생들은 또다시 강압적인 분위기에 노출되고, 류석춘 교수는 이러한 분위기에 공공연하게 힘을 얻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위에서 교원징계시스템 자체의 한계와 더불어 사건처리를 어렵게 했던 요소 몇 가지를 소개했는데, 대책위 활동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귀를 막아버린 듯한 학교와의 대화였다. 대책위는 지속적으로 학교와의 논의테이블을 만들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번번히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연락하겠다’는 답변만을 받았다. 이번에도 20-1학기 예정된 류석춘 교수의 강의 개설 문제 때문에 면담을 요구했을 때도 코로나-19가 더 시급한 문제라는 핑계로 요청을 거절했다. 코로나-19도 분명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지만, 류석춘 교수의 강의개설은 직전 학기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중대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학교는 계속해서 조금만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낼 뿐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미루고 미루다 보면 학생들이 제풀에 지쳐 떨어질 것이라는 듯이. 

    사실 앞서 언급한 이유 중 언론과 동료 교수들이 빚은 문제는 초기에 학교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면 크게 장애가 되지 않았을 이유들이다. 또한 징계시스템이 복잡하다고는 하나 학교가 정말 학생들의 침해당한 권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신속하게 모든 절차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학교의 대응방식은 언제나 한결같다. 앞에서 짧게 문과대 A 교수 사건을 이야기했는데, 당시에도 학생들은 연대체를 구성하고 학교에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성추문’으로 교수를 징계하는 것이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때에도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다가 A 교수가 사퇴하면서 학생들은 약속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로 후벼진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학교가 세간의 시선을 신경쓰는 동안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의 마음은 멍들어버렸다. 류 교수 대책위가 반년이 지난 일을 가지고 계속 학교에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과거 A 교수 사건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고, 현재 류석춘 교수가 자행한 만행을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권력관계로부터 비롯된다. 학교는 수많은 권력관계가 얽히고설킨 공간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학생과 교수, 학생과 학교 당국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당장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적을 결정지을 수 있는 교수는 그 자체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교수로부터 어떠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개인으로서는 쉽게 대응할 용기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교수에게 의문이나 반박을 제기할 수 없는 근본적인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일이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교수로부터 피해를 당했을 때 피해자인 학생이 직접 나서서 문제 해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피해자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피해를 증명할 때 학교는 ‘중립’을 지킨다는 핑계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간분리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인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수차례 해결을 요구할 때야 비로소 학교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는 사건해결의 시작도 전에 학생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면서 동력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는다.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에서도 대책위가 징계위원회를 요구한 지 5개월째가 되지만, 학교는 아직 징계위원회 개최 이전의 절차를 끝마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해결될 수 있을까?

2월 15일 현재 대책위가 강의계획서에서 류석춘 교수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한 결과, 드디어 학교에서 류석춘 교수의 강의개설 보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책위가 이룬 첫 번째 성과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이 다시는 폭력과 혐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학교당국에 후속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일이 남았다. 

혐오는 아래를 향한다. 얕잡아볼 수 있는 대상을 집단화하고 대상화하여 무시하고 경멸한다. 학생들이 가장 안전해야 하는 강의실에서조차 피해자혐오, 여성혐오에 노출되었던 이번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긴 했으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교수가 (굳이 류석춘 교수가 아니더라도) 자행한 크고 작은 혐오가 학내에 만연했다는 것은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다 경험한 사실이다. 따라서 대책위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학생들이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참지 않고 부당함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 알리고 권리를 되찾을 때까지 목소리를 낮추지 않을 것이다. 불균형한 권력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혐오발언에서 학생들이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기고자 해슬 (dyj06128@yonsei.ac.kr)



[i] “[단독] 연세대 류석춘 교수, 강의서 "위안부는 매춘부"”, 프레시안, 2019.9.21. 

[ii] “연세대 학생들 "'위안부 망언' 류석춘 파면하라" 캠퍼스서 집회”, 연합뉴스, 2020.01.13.

[iii] 연세대학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https://web.yonsei.ac.kr/helper/ys_rules.htm

[iv]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인터뷰”, 연세춘추, 2019.09.25.  

[v] “류석춘 옹호 나선 이영훈 “강의 내용 녹음한 학생, 인생의 패배자””, 아시아경제, 2019.10.02.



매거진의 이전글 <122호>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