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그들의 ‘선택적 정치’ - 수습편집위원 안즈
연세대학교에 다닌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내가 입학할 당시 연세대학교에는 총학생회가 없었다. 총학생회가 없는 신입생 시절을 보내며 ‘총학생회가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총학생회에 거는 기대가 더 컸다. 우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대표자를 상상했다. 그런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벗어난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과연 내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있는가? 총여학생회 폐지 직후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당선된 전 총학생회와 이를 이어 당선된 현 총학생회, 이번 대 중앙운영위원회의 행보를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듯하다.
언젠가부터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되는 ‘중운위, 그것이 알고싶다’(제55대 총학생회 ‘Mate’의 공약 중 하나로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 안건의 의결 사항을 카드 뉴스 형태로 공유하는 사업이다.) 카드뉴스를 보면 상당한 안건이 다수 단위의 ‘기권’으로 인해 부결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당당한 주권자로서 생활하고 싶다. 그러나 다수의 대표자는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하는 안건들에 기권으로 일관했다. 학생회원의 주권은 무시당했고 대표자에 대한 신뢰는 점점 떨어졌다. 한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이자 대표자를 견제하는 감시자로서, 학생 대표자들이 위임받은 정치적권한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총학생회칙 전문에 따르면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본교 학생(연세인)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한국 사회와 연세대학교에서 진보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대중조직이다. 중앙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의 상설 운영 기구로서 총학생회의 활동 전반에 대한 심의, 의결권을 가지며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총동아리연합회장,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으로 구성한다. 현재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의 재적 단위는 총 21단위다. 중앙운영위원회는 등록금심의위원 선출, 생활협동조합 이사 선출 등 학내 교섭단체에 들어갈 학생 대표자를 뽑는 것부터 아카라카, 연고전의 단위별 자리 배분, 티켓 배분 등 학내의 다양한 일들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각종 단체에 연대하거나 지지 대자보를 쓰는 등의 안건을 의결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학내외 정치적 사안을 총괄하는 기구다. 총학생회장단, 총동아리연합회장단, 단과대학 학생회장단, 과/반 학생회장단 및 단과대학 동아리연합회장은 모두 투표를 통해 정당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학생 대표자다.
연세대학교 제55대 총학생회 ‘Mate’는 연세인의 ‘Mate’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당차게 출마하였고, 투표율 51.15%, 득표율 79.51%로 당선되었다. 그러나제55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임기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올해 1월 국내로 넘어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새내기 새로배움터 등의 신입생 맞이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개강 2주 연기를 거쳐 결국 1학기 전면 온라인 비대면 강의가 확정되었다. 사실상 학생 대표자와 학생회원 사이의 물리적 단절이 반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 대표자가 ‘대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학생회원이 대표자의대표직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것 또한 어려워진다. 각종 행사와 사업이 대면으로 진행되지 못하며 학생회의 존재를 느끼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에가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소식을 접하면서 제공받는 정보에 제한이 생기고 대표자와 학생 간의 단절이 가속한다.
SNS가 보편화한 2020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또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많은 학생회원이 접하는 총학생회페이스북 페이지의 경우 팔로워가 20,000명에 육박한다. 주 1회 정기회의를 하는 중앙운영위원회의 안건 및 의결 현황은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오는 카드 뉴스를 통해 간편하게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속기록이나 회의록같이 더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누리집을 방문해야 한다. 그런데 단위별 찬성/반대/기권 여부를 보니 조금 이상하다. 부결된 안건 중 기권한 단위의 비중이 큰 안건이 종종 보인다. 기권은 ‘투표, 의결, 경기 따위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행사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왜 학생 대표자들은 학생회원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을까?
기권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안건은 네 가지로 다음과 같다.
[4월 6일] 제14차 정기회의
논의 안건 나.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세브란스 병원의 결정을 규탄하는 입장문 작성 논의의 안
[5월 25일] 제19차 정기회의
논의 안건 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등록금 반환 운동본부 참여 논의의 안
[6월 1일] 제20차 정기회의
논의 안건 가.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대위 입장문 연명 및 연세대학교 규탄 입장문 작성 논의의 안
[7월 6일] 제22차 정기회의
논의 안건 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청년 공동행동)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요청 논의의 안
먼저 제14차, 제19차 정기회의는 속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14차 정기회의는 아예 없었고 제19차 정기회의는 파일 형식이 잘못되었다. 이 부분에서 이미 총학생회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카드 뉴스를 참고하였다. 제14차 정기회의의 ‘논의 안건 나.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세브란스 병원의 결정을 규탄하는 입장문 작성 논의의 안‘은 출석 13단위, 찬성 4단위, 반대 2단위, 기권 7단위로 부결되었다. 제19차 정기회의의 ‘논의 안건 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등록금 반환 운동본부 참여 논의의 안’은 출석 13단위, 찬성 1단위, 반대 0단위, 기권 12단위로 부결되었다. 출석 단위 중 한 단위를 제외한 모든 단위의 기권으로 안건이 부결되었다. 부결이 문제가 아니다. 기권이 문제다.
제20차 정기회의와 제22차 정기회의는 다행히도 속기록이 남아있었다. 먼저 제20차 정기회의의 ‘논의 안건 가.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대위 입장문 연명 및 연세대학교 규탄 입장문 작성 논의의 안‘은 ‘학교를 규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권한 단위가 다수였다. 후에중앙운영위원회는 6월 8일 진행된 제21차 정기회의에서 ‘논의 안건 가.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공대위 코비 퇴출 투쟁 연대 논의의 안’을 상정하였고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는 용역업체 코비컴퍼니 퇴출을 위해 책임 있는 대응을 한다‘는 내용을 출석 단위 만장일치 찬성으로가결하였다. 그러나 책임 있는 대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후에 페이스북 게시글이나 중앙운영위원회 속기록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공유된 바는 없다.
제22차 정기회의의 ‘논의 안건 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청년 공동행동)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요청 논의의 안’은 ‘시기상조‘,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학교인데 기독교 내부의 합의가 부족해서’, ‘학내 문제가 더 중요해서‘ 기권하거나 반대한 단위가 다수였다. 심지어 기권한 단위 중에 “차별금지법 어느 측면에서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동성애 옹호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보인다”고 발언한 단위도 있었다. 정치단체의 대표자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두려워 이를 피하다 오히려 본인의 정치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다. 합의가 부족해서, 덜 중요해서, 동성애 옹호법이어서 기권한다는 말조차 결국 하나의 주장을 내세운 정치적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중앙운영위원회가 소위 ‘정치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있다. 총학생회장은 6월 16일 제3차 임시회의를 소집하여 연세 학우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등록금 반환 요구 집회 진행을 가결하였다. 다음 날인 6월 17일 새벽, 총학생회 집행위원회 국장급 이상 인력과 중앙운영위원들로 구성된 ‘등록금 반환 총궐기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에서 이미 5월 중에 등록금 반환 운동본부 참여를 제안하는 등 등록금관련 활동은 대학가에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이에 기권으로 일관했던 학생 대표자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안건’마다 기권으로 일관했던 중앙운영위원회는 왜 갑자기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했을까? 이에 강력하게 작용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에브리타임‘이다. 등록금 의제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자 에브리타임에서 총학생회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글들이 게시되었고 이즈음부터 총학생회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비정규 공대위 입장문에 연명하는 안이 다수의 기권으로 부결되었다가 이에 대한 비판 댓글이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30개 가까이 게시되자 책임 있는 대응을 한다는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다시 의결한 사례가 있었다. 이를 통해 짐작하건대, 기권은 결국 어떠한 책임도 지지않음으로써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로부터 비판받고 싶지 않다는 얄팍한 심보를 비열하게 드러내 보이는 행위이다.
학생회와 학생 대표자의 역할은 크게 대리와 대표로 나뉜다. 대리와 대표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이다. 대리는 학생회원 개인이 일일이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교 본부에 교육권 관련 내용을 단순 질의하는 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럴 경우 효율이 떨어지기에 학생회가 대리하여 학생회원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대표는 이에서 나아가 학생회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을 파악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 본부에 교육권 관련 내용을 질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요구안을 작성하여 협상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이 그 예이다. 대표의 경우 꼭 학생회원 개인 혹은 다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집단의 특성을 고려하여 외면받는 소수자의 의견 또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단순히 대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학생 대표자의 정치적 역할, 나아가 정치 자체에 대한 오독이다. 다시 총학생회칙 전문으로 돌아가 보자.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본교 학생(연세인)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한국 사회와 연세대학교에서 진보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대중 조직이다. 대중 조직이란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여러 분야에서 하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성된 사회단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의 목적은 학생회원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한국 사회와 학생 사회에서 진보적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다. 진보란 말 그대로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총학생회칙 전문에 현시대와맞지 않는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모두를 고려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 대표자들은 단순히 다수자만 대표하지않는다. 그들이 대표하는 사람 중에도 당연히 성 소수자, 여성, 장애인, 외국인 등이 있다. 본인들이 누구를 대표하는지 돌아보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제55대 총학생회와 중앙운영위원회의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으로 그들이 직면해야 할 의제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학생 대표자라는 직책은 분명 무겁고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책임 있는 자세로 치열하게 임기를 보내야 한다. 비판받는 게 두려워 ‘선택적 정치’를 지속한다면 이는 곧 본인들을 믿고 투표로써 권리를 행사한 학생회원들에 대한 기만이다. 부디 기만적인 모습을 거두고 남은 임기라도 소신 있게 활동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수습편집위원 안즈(chicchick97@naver.com)